***이 기사는 부산일보 임광명 기자가 쓴 2011.8.18자 32면의기사를 요약해 실었습니다
대동IC를 통해 신대구부산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니 얼마 못 가 상동IC가 나온다. 빠져나가 상동면사무소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장척계곡 이정표를 확인하며 20분쯤 천천히 달리니 왼편으로 상동롯데야구장이 휙 지나간다. 어! 이쯤이랬는데…. 급히 차를 되돌려 둘러보니 겨우 작은 간판이 보인다. '하늘마당'.
오리고기와 돼지고기를 요리해 파는 시골집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풀과 나무들이 그리 크지 않은 집채를 온통 둘러싸 녹색의 그늘을 드리워 놓았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그리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덕에 한여름 살 태우는 뙤약볕이 여기선 기세가 한풀 꺾인다. 그 녹음 아래서 새들이 산다. 금계, 은계 등 흔히 보지 못하는 것에서 여러 종류의 앵무새까지 10여 마리. 아이들은 신기해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해도 어른 키만 한 높이의 새장 앞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이 집 주인, 생각이 참 많은 사람임을 짐작하게 된다.
"사람들은 나더러 귀농했다 그러는데, 사실 난 귀농한 건 아니고, 그냥 마지 못해 살러 온 겁니다. 여기 와서 농사 짓는 것도 아닌데 뭘."
주인 신상경(61) 씨는 부산 산악인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이다. 1970년 다링산악회를 만든 뒤 입대 등 약간의 기간을 제외하곤 30년 이상을 산을 탄, '산사람'이다. 요즘도 1주일에 두 번은 산을 탄다. 부산에서 사업을 벌이다 실패하고, 이것저것 삶의 군더더기 다 버리고 11년 전 이곳에 들어와 음식점을 차렸다.
"식당은 여기서 처음 했습니다. 배운 적도 없고 해서 그냥 집에서 먹는 식으로, 집사람과 팔순 노모가 차려내는 걸로 그냥 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고향집 반찬 같다고. 먹어본 사람들이 소문 내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꽤 됩니다."
차림표를 보니 오리나 돼지고기로 구이나 바비큐 등을 하는데 그는 오리보양탕이란 걸 먹어보란 다. 자기가 직접 개발한 메뉴라는데, 시작한 지 3년쯤 됐다고 한다.
보양을 위한 것이니 들어가는 게 꽤 많다. 청둥오리에 엄나무, 계피, 오가피, 대추, 마늘, 황기, 감초, 호박, 당근, 흑쌀, 찹쌀, 조…. 한 냄비 그득 나오는 게 푸짐하다. 흑갈색 진한 국물 위에 금빛 기름이 떠 있다. 오리기름은 몸에 좋다 한다. 그런데 들어간 약재나 다른 재료가 냄비 안에 고기와 같이 들어 있다. 약간은 먹기가 거추장스러운데, 신 씨는 일부러 그랬다 한다.
"보통은 백숙하면 오리만 딱 삶아내고, 그 다음에 죽 끓여 내는데, 그럼 재료의 좋은 기운이 반감되는 거 같아. 따로따로 삶으니까. 그래서 같이 삶아보자 그리 한 겁니다. 같이 넣어보니까 고기에 향과 맛이 배는 거야. 약효도 훨씬 좋아지는 거 같고. 혼자 그리 결정한 건 아니고, 한의사 하는 후배한테 물어보고, 혼자 책도 보고, 그랬어요. 열에 한 사람 정도는 먹기 불편하다고 말하기도 해. 그래도 몸에 더 좋으면, 그게 더 좋지 않나?"
고기가 부드럽게 씹힌다. 쉽게쉽게 걸림 없이 잘 넘어간다. 느끼함도 없다. 입 짧은 초등 1학년 아들 녀석도 입에 맞는 모양. 국물은 시원하면서도 달다. 감초가 들어간 때문이란다. 애들 엄마는 어느 한 가지 맛이 아니라 여러 맛이 잘 어울려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대체로 만족하는 맛인데, 초등 6학년 딸 녀석이 결정적 한 마디를 날린다. "몸이 건강해지는 맛!" 방 안에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김치가 참 잘 익었다. 맵지 않고 새큼하고 진한 맛이다. 지난해 김장 때 담근 것이라 한다. 생고추. 맵싸하면서도 달다. 아삭고추라 한다. 고사리, 버섯, 나물 등 곁들여 나오는 반찬들도 깨끗하고 싱싱하다. 깻잎과 방아잎으로 만든 장아찌가 특히 입맛을 확 끌어 당긴다. 새큼달큼하다.
"방아 이거 몸에 좋은 겁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집 주변에 두어 포기 심었더만 지금은 천지가 다 방아야. 이 놈이 그리 생명력이 좋아. 요놈처럼 우리 집에 나오는 채소들은 다 우리가 키운 겁니다. 약간 고생이 돼도 그래야 맛이 좋거든. 시장에서 사온 거는 먹어 보면 아무래도 맛이 달라요. 직접 키운 게 믿을 수도 있고. 여기 채소가 맛이 좋은 건 아마도 물 때문이 아닌가 싶어. 여기 장척산 물이 좋아요. 저 옆에 생수공장도 있다니깐."
김해 향토주인 상동막걸리가 생각난다고 하니 신 씨는 낡은 주전자와 양은그릇을 들고 온다. 안주는 부추전이다. 예전에 맛본 상동막걸리는 약간은 컬컬하고 탁한 맛이었는데, 한 입 들이켜니 그때와는 달리 제법 깔끔한 맛이다. 그새 변했나? 신 씨는 "한때 다른 맛으로 빠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맛"이라 했다. 그는 상동탁주 박대흠(55) 대표와는 잘 아는 사이라 한다. 바둑 애호가인 박 대표는 이 집에서 바둑모임도 자주 갖는다고 한다.
산도 오래 탔고 매일 이리 좋은 음식을 먹으니 건강에는 문제 없으시겠다 하니, 그의 얼굴에 잠깐 그늘이 진다
"사실 내가 마실 수 있는 술이 막걸리밖에 없어요. 전에는 술 좀 했는데. 지금 제 말투가 조금 이상하지요? 혀를 조금 잘라내서 그렇습니다. 수 년 전에 암, 그러니까 설암에 걸렸었거든. 그런데 아프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어요. 평소 산을 타서 건강에 자신 있었는데 병이란 게 꼭 그런 게 아니더라고. 운동도 중요하지만 몸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겠다. 좋은 음식. 그쪽으로 생각도 많아지고 그랬지요. 오리보양탕 같은 건 그래서 만든 겁니다."
차림표 중에 추어탕이 눈에 들어 온다. 올해 86세 된 신 씨의 모친이 기력이 괜찮을 때 만들어 이 집 별미가 된 것이란다. 한 그릇만 주문한다. 뚝배기에 밥과 함께 나온 추어탕. 걸쭉하지 않고 국물이 많아 비교적 담백한, 그래서 시원한, 옛날 촌할매가 끓여주던 경상도식이다. 술국으로도 그만이겠다.
포도주스 한 잔 마시라며 내온다. 색깔이 맑고 진하다. 집에서 직접 만든 주스란다. "시장에서 산 거 아니야. 딸기주스, 포도주스, 우리 이런 거 전부 만들어 먹습니다. 흑마늘, 흑삼도 집사람이 직접 솥에 쪄서 만드는데. 맛 한 번 보시려나."
그는 이곳 생활이 마음에 든다. 도회지 생활에 염증을 느껴, 마음 수양 차 들어온 곳이지만, 이제 제대로 사람 사는 것 같다는 게다. "이사 와선 1주일에 세 번은 요 앞 개천에 나가 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여 먹고 놀았어요. 지금은 물고기가 많이 줄어 안 해.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여하튼 이 생활이 좋아요. 부산서 살 때와는 많이 달라졌지. 우리는 이제 도시에선 못 살아. 공짜로 아파트 준다 해도 안 가지. 진짜 산사람 다 된 거야."
오리보양탕·오리 바비큐 1마리 4만 원, 돼지장작구이·돼지훈제바비큐 1㎏ 5만 원, 부추전 8천 원, 추어탕 7천 원. 경남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1018의 1.
첫댓글 오리 보양탕 참 맛있어 보이네
정말 좋은데~~!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진짜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