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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보 보는 법, 자,호 스크랩 호(號)와 자(字) 짓는 법
희망나라 추천 0 조회 140 12.04.04 10: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호(號)란 무엇인가 ?

 

 

호에 대한 참고문헌을 요약해 보면

 

사람이 본이름이나 자(字)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

 

호는 2종 이상의 이름을 가지는 풍속〔複名俗〕, 또는 본이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實名敬避俗)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중국의 경우, 호의 사용은 당대(唐代)부터 시작하여 송대(宋代)에는 보편화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원효(元曉)의 호는 ‘소성거사(小性居士)’, 효자인 성각(聖覺)의 호는 ‘거사(居士)’, 낭산(狼山) 아래 살던 음악가의 호는 ‘백결선생(百結先生)’이라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이러한 호는 자신이 짓기도 하고, 남이 지어 부르기도 하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호는 아호(雅號)와 당호(堂號)로 나누기도 한다. 아호는 흔히 시·문·서·화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우아한 호라는 뜻으로 일컬음이요,

 

당호는 본래 집(正堂과 屋宇)의 호를 말함이나, 그 집의 주인을 일컫게도 되어 아호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호를 짓는 기준에 대해 이규보(李奎報)는 그의 ≪백운거사어록 白雲居士語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거처하는 바를 따라서 호로 한 사람도 있고, 그가 간직한 것을 근거로 하거나, 혹은 얻은 바의 실상을 호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서 세 가지 기준을 볼 수 있는데, 신용호(申用浩)는 이 세 가지 기준에, “자신이 목표로 삼아 도달한 경지나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와 의지에 따라서 호를 짓기도 한다.”는 한 가지를 더하여, 네 가지 기준으로 들어 말한 바 있다.

 

① 소처이호(所處以號)생활하고 있거나 인연이 있는 처소로 호를 삼는 것,

 

② 소지이호(所志以號)이루어진 뜻이나 이루고자 하는 뜻으로 호를 삼는 것,

 

③ 소우이호(所遇以號)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호로 삼는 것,

 

④ 소축이호(所蓄以號)간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호를

                                   삼는 것 등의 네 가지가 곧 그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스스로 호를 짓기도 하고, 부모나 스승·친구가 호를 지어주기도 하여, 사람에 따라서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의 호를 쓰기도 한다.

 

이미 고려시대의 이규보는 여섯 개의 호를 갖기도 하였다. ‘백운거사’·‘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지지헌(止止軒)’·‘사가재(四可齋)’·‘자오당(自娛堂)’·‘남헌장로(南軒丈老)’ 등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의 다양한 호를 사용한 이는 김정희(金正喜)이다. 오제봉(吳濟峯)이 조사, 수집한 ≪추사선생아호집 秋史先生雅號集≫에 의하면 무려 503개나 된다.

 

김상옥의 대표적인 호는 ‘초정(艸丁)’이고, 한때는 그의 집 이름〔堂號〕인 ‘초초시실(艸艸詩室)’을 따라서 ‘초초시실주인(艸艸詩室主人)’이라는 6자 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김상옥은 이 밖에도 20여 개의 호를 쓰기도 하여, 현대시인으로는 가장 많은 호를 사용한 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민족적인 자각과 자주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적인 기운에서 한자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로 호를 짓는 경향도 있었다.

 

주시경(周時經)의 ‘한힌샘’, 이병기(李秉岐)의 ‘가람’, 최현배(崔鉉培)의 ‘외솔’,

전영택(田榮澤)의 ‘늘봄’ 등이 곧 그것이다. 이병기는 자신의 호를 ‘가람’이라 한 데 대하여, 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수당(壽堂)께 갔었다. 이말 저말 끝에 내 호를 지어준다. 한자로 임당(任堂)이라 한다. 나는 이미 가람이라 했다. 가람은 강이란 우리말이니, 온갖 샘물이 모여 가람이 되고 가람물이 나아가 바다가 된다.

 

그러면 샘과 바다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 근원도 무궁하고 끝도 무궁하니 영원하며, 이 골물 저 골물 합하여 진실로 떳떳함을 이루니 완전하며, 산과 들 사이사이에 끼여 뭍〔陸〕을 기름지게 하니 조화(調和)함이다. 이 세 가지 뜻을 붙이어 지음이라. 우리말로는 가람이라 하고 한자로는 임당(任堂)이라 하겠다.”

 

이 일기는 1920년 7월 31일자의 것이다. 저때에 이렇듯 순수한 우리말로 호를 쓰고자 한 것은, 그 말이 지닌 뜻도 뜻이려니와 민족적·자주적인 것을 찾고자 한 당시 선인들의 생각에서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인들은 자신의 호에 대하여 설명한 변(辨)이나 기(記)를 짓기도 하였고, 남의 호를 지어줄 때에는 그 글자의 출전이나 뜻을 밝힌 글을 아울러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글을 호변(號辨) 또는 호기(號記)라 한다.

  

우리 나라에는 몇 종의 ≪호보 號譜≫가 전해지는데, 명인들의 호를 수집하여 그 호와 성명 밑에 잔글씨〔細字〕로 자·본관·관위(官位)·사적(事蹟) 등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호의 사용이 옛날과 같이 성행되지 않고 있다. 더러는 호라는 말 대신에 필명(筆名, pen-name)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호에서 우리는 선인들의 풍아한 취미의 하나를 엿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취미는 앞으로도 이어받으면 좋을 것이다.

 

≪참고문헌≫ 詩와 陶磁(金相沃, 亞字房, 1975)
≪참고문헌≫ 韓國人名字號辭典(李斗熙외, 啓明文化社, 1988)
≪참고문헌≫ 韓國人의 字·號 硏究(姜憲圭·申用浩, 啓明文化社, 1990)
≪참고문헌≫ 秋史先生雅號集을 내면서(吳濟峯, 갈숲 27, 갈숲同人會, 1989).

 

 전차

 

 아호의 작법(作法)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 뜻이 있는 문자를 사용해 인생관이나 좌우명 그리고 신념 등을 알 수 있게 한다.

둘째 : 본인의 소망 취미 적성 성격 직업에 알맞은 문자를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셋째 : 이름과 마찬가지로 부르기 쉽고 듣기 좋아서 울려서 퍼지는 소노리티(Sonority)가 좋아야한다.

넷째 : 아호 자체의 음양오행이나 수리오행에 서로 상극되는 경우를 피하고 길함이 좋다.

다섯째 : 타고난 사주와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루게 하고 본명의 결함을 보완해 주어야 한다.

여섯째 : 아호 두 글자의 획수를 합하여 길한 수리를 사용해야 한다.

일곱째 : 아호는 겸손을 미덕으로 하여 높고 고귀한 문자보다는 소박하고 정감이 있는 겸손한 문자를

            사용해야 한다.

 

사전적인 해석을 보면

 

1.자 [ 字 ]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이름.

중국에서 비롯된 풍습으로, 본명이 태어났을 때 부모에 의해 붙여지는 데 비해 자는 윗사람이 본인의 기호나 덕을 고려하여 붙이게 되며 자가 생기면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명을 휘명(諱名)이라고도 한다.

 

흔히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를 쓴다. 다른 사람을 부를 때도 자를 사용하나 손아래 사람인 경우, 특히 부모나 스승이 그 아들이나 제자를 부를 때는 본명을 사용한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제자 안연(顔淵)을 회(回), 자공(子貢)을 사(賜)라 부르고 있다.

또 공자는 본명을 구(丘), 자를 중니(仲尼)라고 했는데 중(仲)은 아우라는 뜻으로 공자에게는 형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지었고, 니(尼)는 그가 이산(尼山)에 기도를 드려 낳은 아들인 것에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이 습속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설총(薛聰)의 자가 총지(聰智)였던 것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자의 사용이 보편화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동시대인인 원효(元曉)는 자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근세의 유학자들이 중국을 본떠 자를 많이 사용하였다.


2.호 [ 號 ]

본 이름이나 자(字) 외에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

본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이나 중국 등 주로 동양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호가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반 ·사대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되었다.

 

중국의 경우 호는 당나라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송나라대에 이르러 보편화되었다.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인 이태백(李太白)이나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본 이름인 이백(李白)이나 소식(蘇軾)보다도 호가 널리 알려진 경우이다. 호의 사용이 정착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학자들간에 학문적 교류와 편지 교환이 일반화되면서본 이름보다는 호나 자를 사용하는 것이 예의를 차리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호는 대부분이 거처하는 곳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거처하는 곳이 바뀜에 따라 호가 달리 사용되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물건이 여럿인 경우 호는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호는 집안에서 사용한다는 의미의 당호(堂號)와 시 ·서 ·화 등에 쓰는 아호(雅號)로 나누어지기도 했으나, 양자간에는 뚜렷한 구별이 없이 혼용되었다.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 이규보(李奎輔)의 경우는 초기에는 시 ·술 ·거문고 세 가지를 좋아하여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호하였다가 나중에는 구름에 묻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좋아하여 백운거사(白雲居士)로 호를 바꾸기도 했다. 조선 중기 이후로 호의 사용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주로 자신이 학문을 배우고 가르친 곳을 호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황의 퇴계(退溪), 이이(李珥)의 율곡(栗谷), 서경덕(徐敬德)의 화담(花潭)등이 대표적이며, 이들 문인들을 지칭할 때도 퇴계문인 ·화담문인 ·율곡문인 등으로 호를 사용하였다. 성리학자 조식(曺植)의 호 남명(南冥)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용어로서 노장사상에 관심을 가진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표현하였다.

호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조선 후기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로서, 알려진 것만 해도 약 500여 개가 된다. 김정희가 많은 호를 사용한 것은 시 ·서 ·화에 두루 능하였던 예술인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의 대표적인 호는 추사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선객(仙客) ·불노(佛奴) ·방외도인(方外道人) 등으로서 유 ·불 ·도 삼교사상을 망라하는 호를 사용한 것이주목된다. 조선 후기 이래로 호 사전의 성격을 띤 많은 ‘호보(號譜)’들의 편찬은 호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해주고 있다.

1945년에 편찬된 《대동명가호보(大東名家號譜)》에는 호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있는데, 당(堂) ·암(巖) ·실(室) 등으로 끝나는 호가 많았다. 내용별로는 자신이 거주했던 곳이나 인연이 있었던 곳을 따서 지은 경우와, 인생관이나 수양목표를 한 경우, 완호물(玩好物)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일제강점기에서는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주시경(周時經)의 ‘한힌샘’, 최현배(崔鉉培)의 ‘외솔’ 등의 호가 나타났으며,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김정식(金廷湜)의 소월(素月), 박영종(朴泳鍾)의 목월(木月) 등의 호도 우리에게 이름보다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 외에 이상백(李相佰)의 호 상백(想白)과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의 호 이호우(爾豪愚)는 이름과 호의 음을 같게 한 경우이다. 오늘날에는 사회체제가 다원화되면서 2종 이상을 쓰는 호보다는 자신의 실명(實名)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문학 ·예술 등 일부 분야에서 호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호를 통하여 당시 인물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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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와 자(字)

 

1.관명[이름]

 

사람이 태어나면 부모가 이름을 지어준다. 그 이름을 그대로 호적에 올리면 바로 관명이된다.

 

어떤 사람은 이름이 두 개가 있는 수도 있다. 예컨데 호적에 오르지 않은 다른 이름은 아명이라 한다.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호라고 하지만 그건 틀리는 말이다. 이름이란 살아있으면 함(銜)자라고하고 죽으면 휘(諱)자라고 한다.

 

[예시 : 1] 상대방의 어른의 이름을 물을 때.

<생존시> 자네 어른 함자가 무엇이냐 ?

<사망시> 자네 어른 휘자가 무엇이냐 ?

 

[예시 : 2] 아버지의 이름 호칭은 원어 그대로 부르지 못한다.

<생존시> 우리 아버지의 함자는 0 자 0 자 입니다.

<사망시> 우리 아버지의 휘자는 0 자 0 자 입니다.

 

2. 자(字)

 

이름 대신에 불리워지는 호칭어를 바로 자라고 한다.

자는 부모나 집안 어른이 지어주는데 자가 있으면 곧 어른이 되었다는 증표이다.

자는 성인[16세이상]이 되어 관례를 치르면 자를 부여한다.

자를 부여받으면 어른으로써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는 이름대신에 부르도록 한 명사이다. 사람을 부르는데 있어서는 그 이름을 불러야 마땅하지만 때로는 어색 하거나 결례가 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관명 대신에 자를 불러주는 것이다. 호에는 존칭이 붙지만 자에는 존칭은 쓰지 않는다. 자를 서로 호칭하는 사이는 동료지간이나 아랫사람에게만 쓰인다.

 

[예시] 퇴계는 권질의 사위다. 결혼 전 그의 장인 권질이 한말은

          다음과 같다.

<경호 이사람 !. 자네가 내딸을 맡아 주어야겠네....>[전처를 상처하고 솔권을 못하고 있을 때 재취를 권하면서]

 

3. 호(號)

 

이름과 자이외의 호칭. 호는 아무나 있는 게 아니다.

덕망이 특출하거나 학문 또는 예술이 뛰어나 지방이나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사람이라야만 호가 있다.

 

호는 남이 지어 주는 수도 있지만 대개 자기가 직접 짓는다. 남이 지어주는 송찬(頌讚)은 그 사람의 인품이나 자질에서 호를 가질만한 사항을 들어 찬문과 함께 호를 만들어 준다. 대체적으로 호는 자기가 짓는 것이 더 많다.

 

퇴계도 자호하여. 퇴계. 도옹. 도수. 퇴도 등 여러 가지로 썼다. 그런데 요즈음은 웬만한 사람이면 모두 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흔한 서예학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호를 만드는데 이들이 호를 못가지란 법은 없다.

 

다만 책을 펴낸 문인이나 서예학원에서 글씨를 쓰거나 문인화를 치거나 관계없이 국전에 입선되어 전국이 알 수 있다면 호를 쓰는 것도 무방하다.

 

호에는 시호(諡號)가 있는데 시호란 국가에서 내리는 호를 말한다. 여기에도 송찬 글을 붙여서 그 사람이 국가에 기여한 공적을 감안하여 문순. 문충. 문경. 충무. 충의 등의 이름으로 죽은 뒤에 내린다. 학봉의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道德博聞曰 文. 危身奉上曰 忠 이란 글에서 그 끝자를 들어 <文忠>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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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 종류에 대하여 


 

별호

일반적으로 호라고 하면 별호(別號)를 가리킨다. 지은 사람의 개성이나 이름을 가지게 될 사람의 성품이나 직업, 취미, 특기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남이 지어주는 때도 있으나, 오늘날 대부분 자신이 직접 짓는다. 필명이나 별명도 별호로 볼 수 있다.

 

아호

아호(雅號)는, 별호 가운데 하나로서, 우아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성호(星湖)나 다산(茶山) 등의 아호는 지역 이름에서 취한 것이고, 의암(義庵) 또는 경재(敬齋) 등의 아호는 덕목에서 취한 것이다.

 

아명

아호(兒號)라고도 하며, 주로 어릴 때 정식 이름을 짓기 전에 집안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사용하는 친근한 이름이다. 옛날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천한 의미의 이름으로 아명을 지었는데, 대한제국 고종의 아명은 개똥이, 황희의 아명은 도야지(돼지)였다. ‘개똥’을 ‘개동’(開東)으로 표기한 예에서 보이듯이 아명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 정식 이름으로 발전한 예도 있다.

 

택호

주로 여성에게 붙이며, 택호(宅號)란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의 출신지 이름에 ‘댁’을 얹어 부르는 호칭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산 출신에게는 부산댁, 대전 출신에게 대전댁 등으로 호칭하는 방식이다. 주로 결혼한 여성의 시집오기 전 친정의 지명에 붙여, 본명 대신에 부르는 통명으로 사용하였다.

지명 외에 남편의 직업이나 직함(사장→사장댁, 김선생님→김선생님댁) 등에 붙이기도 하나, 엄밀히 말해 이는 택호는 아니다.

 

당호

당호(堂號)란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이 머무는 거처의 이름으로써 인명을 대신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예컨대 신사임당에서 “사임당”이나 여유당 정약용에서 “여유당”은 당호이다. 당호는 대부분 ‘-당’으로 끝나지만, 최한기의 당호 태연재(泰然齋)처럼 ‘거처’를 뜻하는 한자어(‘-재’)로 끝나며, 간혹 그러한 형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거처’의 이름이 당호로서 쓰인다.

 

시호

호 중에는 시호(諡號)가 있는데, 이 죽은 인물에게 국가에서 내려주는 특별한 이름이다. 시호는 동양의 봉건 왕조 국가에서 군주나 군주의 배우자, 군주 및 배우자의 친척,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사람(공신), 고급 관료, 기타 국가적으로 명망을 쌓은 저명한 인물 등이 죽은 뒤에, 그들이 생전에 국가에 기여한 공적을 감안하여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는 뜻에서 지어서 내린다.

유명한 시호로는 명성황후의 명성, 충무공 이순신의 충무 등이 있다.

국가에서 시호를 정하는 것이 원칙이나, 나라가 망하였거나 시대 상황이 맞지 않아 시호가 내려지지 않을 때는 저명한 학자나 문인,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시호를 올려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사시(私諡)라고 한다.

 

묘호

묘호(廟號)는 동양의 봉건 왕조 국가에서 황제 또는 국왕과 같은 군주에게만 붙인 명칭이다.

조선 태조와 같이 건국 시조에게 붙이는 ‘태조’나 ‘세종’이 대표적이며, 후대의 왕이 신하들과 논의하여 선대의 왕에 대한 묘호를 “유공왈조 유덕왈종”(有功曰祖 有德曰宗) 또는 “입승왈조 계승왈종”(入承曰祖 繼承曰宗)과 같은 원칙에 따라 붙인다. 곧 나라를 세운 왕(創業之主)과 그에 비견할 만한 업적이 있거나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功)이 있다면 “조”(祖)를, 나라를 다스린 것에 덕(德)이 우세하거나 선왕의 뜻을 잘 계승해 종묘사직을 지킨 수성지군(守成之君)이라면 “종”(宗)을 붙이며,

 

이 글자 앞에 군주의 치세를 잘 나타내는 글자를 하나 추가하여 2글자로 묘호를 완성한다. 앞에 붙이는 글자를 정하는 것은 시호를 정할 때의 법칙인 시호법(諡號法)에 준한다.

또 묘호는 원칙적으로 황제만이 가질 수 있었지만, 고려와 조선은 중국의 입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동아시아의 외교적 특수 상황 속에서도 불구하고 이러한 묘호를 사용하여 자주성을 대내에 표방하였다.

 

군호와 제호

군호(君號)란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이 받은 군의 작위로써 대신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군호를 쓰는 사람은 왕자와 공신, 국구(왕의 장인, 곧 왕비의 아버지) 등이며, 조선에서는 왕도 군호로써 자칭하기도 했다. 예컨대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에게 조선 왕이 왕자 시절의 군호로써 자칭하였다.

제호(帝號)는 제왕의 칭호이며, 왕호(王號)와는 다르다. 왕호는 군주의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를 가리키며, 황제, 왕, 칸, 천황 등을 가리킨다. 한편 제호는 군주를 가리키는 칭호, 곧 시호와 묘호 등을 가리킨다. 명나라 만력제, 청나라 강희제 등도 제호 가운데 하나이다.

 

 

자(字)와 호(號)의 특징은

자는 부모나 집안어른이 지어주는 것이 보통이나
호는 웃어른 또는 선생이 지어 주거나 스스로 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字)란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서 관례때 가명 외에 붙여 주는 성인으로서의 별명
입니다.

 

 우리나라 경우 남자의 경우 20세가 되면 여자의 경우 15세로 결혼하게 되어 비녀를 꽂으면 자를 짓습니다.

 

자를 가지게 된 배경은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을 갖는 풍속과 또는 실제의 이름을

피하는 풍속으로 전해지는데 그 근원은 실제의 이름을 공경하여 부르기를 꺼리는데서 나왔다고 봅니다.

 

자가 붙은 후로는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가 쓰였다고 합니다.

 

특히 부모나 스승이 그 아들이나 제자를 부를 때에는 본명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

입니다.

成三問(성삼문)의 자 : 謹甫(근보)

李滉(이황)의 자 : 景浩(경호)

李珥(이이)의 자 : 叔獻(숙헌) 조금은 생소 하게 들립니다.

                         그건 그만큼 자 보다 호를 많이 사용 하게 되어서지요

호는 이름이나 자 외에 누구나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칭호 입니다.
호는 본래 중국에서 주거지, 출생지등에 연유해서 누구나 보편화 하면서
호를 많이 사용하므로써 자 는 피하게 된것입니다.

이 결과 후세인들도 선인들의 이름이나 자 보다 더 호를 더 잘 알게 되었구요
이황 보다는 李退계(이퇴계)로 이이 보다는 李栗谷(이율곡)으로 더 많이 부르고
기억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와 같은 호가 사라지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몇년전 신문이나 잡지 가운데는 정치인등을 애칭으로 부를 때 당사자에게

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DJ(후광), YS(거산), JP(운정)등 영어의 머리글자로 표기

하는 태도가 너무 시류에 영합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논어에 보면 공자는 제자인 안연을 회(回), 자공을 사(賜)라고 부른 것을 보면
중국은 예전부터 자와 호를 사용하고 우리나라에 전파를 했습니다.
출처 : "한국인의 자*호 연구" 신용호외 공저 pp29~30 인용

  

     

 

호와 이름을 혼용해서 사용 가능한가 ?

 

원칙적으로 본다면 호와 성을 붙여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호란 본명을 직접 부르는 것을 실례로 여기는 풍습에서 상대를 허물

없이 부르기 위한 호칭 입니다.

 

'소월'이나 '다산' 같은 경우 성을 붙이지 않아도 대상을 식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호를 앞에 쓰고 이름을 쓰는 것 '소월 김정식' '다산 정약용' 같이 표현 할 수는 있지만 '김 소월'이나 '정 다산' 같은 표현은 어딘지 어색합니다.

 

'소월'이라는 호는 시인 김정식을 부르는 호 입니다. 따라서 [김소월]이라고 쓴 것은 사실상 [김 김정식]이라고 쓴 것과 같고, 다산 역시 정약용이란 사람을 칭하는 호로서 이와 같습니다.

 

사실 시집이나 서적 등에 작가 이름을[김소월][김영랑]등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이들이 호가 본명 보다 널리 알려져 보통명사화 된 까닭에 출판사 등에서 잘못 표기한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역전(驛前; 역 앞)을 역전앞(역 앞의 앞)으로 잘못 표현한 것 처럼요.

호에는 성을 붙이지 않는 것이 올바른 표현 입니다.

 

 

 

字와 號의 개념

 

*자[字] ;

 사람의 본 이름 외에 흔히 장가든 뒤에 성인이 됨으로 본 이름 대신하여 부르는 이름. 

 

*호[號] ;

 본명이나 字외에 雅名(아명)으로 학자,문인,화가등 名士들이 즐겨 쓰는 별호,아호라함.

 <참고;삼국시대부터 `호(號)`라는  문헌이 있음>

  - 보통 五行을 적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짓습니다.

  - 齋나 堂자는 당 본인의 거처(所處以號)의 뒷 字입니다.

    즉,생활의 터전인 집이나 서재를 말함.

 

호에 쓰이는 한자를 보면

자기의 理想이나 隱, 堂, 庵, 齋, 江, 山, 谷, 石, 梅, 蘭, 菊, 竹, 松,과 같이

집이나 자연,  4군자를 비유한 글자들이 많이 보입니다.

 

일단 호는 자신 스스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스스로 짓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 자호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호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지어주고 스스로는 자를 짓습니다.

 

옛 선비들의 호 중에는 재(齋)를 씁니다. 과연 이것을 무엇을 뜻합니까?

여기서 齋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신독재 김집 선생이 있습니다.

김집 선생은 자신이 공부하고 기거하던 신독재라는 집의 이름을 자신의 호로 이용한 것입니다.

 

남자들도 호를 지을 때 당(堂)이 들어갑니까?

매월당 김시습처럼 당이 들어갑니까?

이 경우 당호라 부릅니다.

당과 재는 모두 집의 이름을 이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호라는 것은 겸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이 뛰어남을 자랑하는 것이 호가 아니라 자신의 겸손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현대에서 호는 그리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전 자나 호를 짓는 이유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호는 아랫사람이 손 윗사람을 부를때 많이 사용하였고 자는 일반적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접하는 뜻에서 지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름이면 다 통합니다.

 

요즘은 호를 작명소에서 많이들 짓기는 합니다만,

우리도 호를 한번 지어볼까요. 호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송죽(松竹)이라고 한다면

 

그의미는

푸를松 : 항상 푸르듯이 변함없는 마음, 변절하지 않는 마음 을 나타내고

대나무竹 : 곧곧한 선비의 절개

 

일죽(一竹) : 오직 대 처럼 곧게 프르게

                * 일(一)  이름자에 피해야 할 한자임 (맨 뒷쪽 글 참조)

 一(한 일): 독자(獨自), 독신(獨身)의 외로움 속에 어느 한 분야에 일위(一位)가 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으로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쳐야 하듯 매사에 고단함이 많고 주위의 시비· 모략

                 이 분분하게 된다.

 

청석(淸石)이라고 한다면

맑을淸 : 깨끗한 마음

돌 石 : 굳은 의지 .굳센 선비의 과묵하고 변절 없음을 의미

 

또는 다산 정약용 선생처럼 유배지에 있던 조그만 집의 이름을 따서 다산(茶山)

이라고도 하였읍니다.

 

참고로 요즘은 한글 아호짓기 즉 순 우리말로 아호나 필명도 많이

지으십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아호

포은(圃隱)-정몽주, 매죽헌(梅竹軒)-성삼문, 매월당(梅月堂)-김시습,

우암(尤庵)-송시열, 다산(茶山)-정약용, 수운(水雲)-최제우,

녹두(祿斗)전봉준, 송제(松濟)-서재필, 일성(一醒)-이준, 만해(萬海)-한용운, 백범(白凡)-김구, 도산(島山)-안창호, 해공(海公)-신익희,

매헌(梅軒)-윤봉길, 고당(古堂)-조만식

 

  

*현대 정치인들의 아호

중수(中樹)-박정희, 후광(後廣)-김대중, 운정(雲廷)-김종필

경사(俓史)-이회창, 소천(小泉)-조순, 우당(尤堂)-박찬종,

일민(一民)-이기택, 만초(萬初)-정대철, 후농(後農)-김상현,

허주(虛舟)-김윤환

 

 좀 더 아시고 싶은분을 위하여 아호관련 책 소개합니다.

 * 최근발간된 책입니다(참고로 저와는 연관없음)

 

표지글

필자는 오래 전부터 작명을 연구해 왔다.그러나 시중에 나와 있는 작명에 관한 책에는 대부분 아호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간혹 언급했더라도 단 몇 줄의 뜻풀이에 불과하거나 일반 작명법에 준한다는 암시만 풍기며 끝을 맺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호에 관심이 있어도 자료를 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이 책을 내게 되었다.아호를 짓는 것은 그리 대단하거나 복잡하지 않으니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착실히 공부한다면 누구나 좋은 아호를 지어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는 모든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목 차

1.아호란 무엇인가
2.작호방법
3.역대유명인의 아호

인터넷 판매가격 : 26,000  24,700(5%)   삼한출판사 | 2009.01.16

 

 

 

 

 

 

53.


 

 

 

시간이 나시는 분은 스크랩한 아래 글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호를 한 번 지어 볼까요?

 

이 글은 미술 시간에 서각과 전각 수업을 펼치면서 학생들에게 호 짓기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참고자료로
만든 것에 살을 붙여본 것이다.

 


1. 이름이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잘 알려진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입니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서기 위한 것이 이름입니다.

나를 넘어 ‘관계’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2. 내 이름에 이의(?)있습니다.


민학기(閔鶴基)

참 이름 좋습니다. 참 맘에 듭니다.

국민학교 때는 ‘학이 노는 터’ 등으로 해석하면서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뭔가 신령스럽기도 하고, 신선이 된 듯도 하고....’


제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습니다. 십장생 중 하나인 학(鶴)을 집어넣어 오래 무병장수하란 뜻으로 지어주셨다 합니다. 오래 사는 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鶴’자와 ‘基’자는 참으로 좋습니다.


민학기(閔鶴基)

이건 제 이름입니다.

내 이름이긴 하되 내가 짓지 않았습니다. 살아생전, 죽어도 내가 쓸 내 이름인데 우리 할아버지는 최소한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감히(?) 내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름이란 그렇습니다. 내가 쓸, 내가 주인인 내 이름을 내가 짓지 않았으며 내가 동의해준 적도 없는 것이 우리의 이름입니다.


3. 이름에는 부모의 욕심이 묻어있다.


내가 짓지 않은 내 이름에는 부모의 욕심이 묻어 있습니다.

부자 되라고, 오래 살라고, 남보다 뛰어나라고, 빼어나게 이쁘라고(秀美), 번듯하라고, 부귀와 영화를 한껏 누리라고, 높은 벼슬하라고.....이런 탐욕(?)이 아니더라도 우리 딸 시우(時雨 :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만물을 기쁘게 해주라)처럼 제법 겸양과 미덕을 강조한 이름에도 색깔을 달리할 뿐 부모의 욕심이 묻어있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4. 우리의  이름 짓기 문화


사람이 삶을 누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불리기 시작했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수단이 아니라 명예와 인격성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 형태는 국가나 민족, 그리고 배경이 되는 사회나 문화에 따라 복잡다양하며, 보통 각기 다른 유래와 의미나 이유 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토박이말로 지었던 우리의 이름이 한자의 유입과 함께 한자 이름으로 지어지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4-1. 참고로 토박이 이름 짓기의 유형을 살펴보면


1) 출산 장소에 따른 것(부엌손, 마당쇠)

2) 간지(干支)나 달 이름에 따른 것(갑돌이, 정월이)

3) 성격에 따른 것(억척이, 납작이)

4) 기원을 곁들인 것(딸고만이, 붙드리)

5) 순서에 따른 것(삼돌이, 막내)

6) 복을 비는 천한 것(개똥이, 돼지)

7) 동식물, 어류 이름에 따른 것(강아지, 도미)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 동물 이름입니다.


이름을 한자로 지을 경우의 성명 3자 가운데에서 선택권은 1자밖에 없지요.(외자이름도 있지만). 성과 항렬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1자도 같은 항렬의 동명이인을 피해야 하고 가까운 조상의 이름에 나오는 글자도 피했습니다.


4-2. 일생 네다섯 개 이상의 이름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에는 실명을 삼가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인데,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모독이라 생각하여 금기시 하는 풍습이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보통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착된 사대부집안의 이름 짓기의 경우 일생에 걸쳐 네다섯 가지의 이름을 갖게 됩니다.


◆ ① 아명 (兒名 : 어린아이 때의 이름)


아명은 보통 생존확률이 높지 않았던 옛날에 무병장수를 염원하며 천하게 짓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개똥이, 쇠똥이, 말똥이 등의 이름이 흔했지요. 이름을 너무 귀하게 지으면 운명을 관장하는 하늘이 시기해 일찍 명을 앗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입니다.

관명이 '희(熙)'였던 고종 황제의 아명이 개똥이었고, 황희(黃喜)의 아명은 도야지(都耶只)였음이 그 사례입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논개(朱論介)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무남독녀인 논개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논개의 부모는 일부러 천한 이름인 논개(개를 낳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도 갑술년(甲戌年, 1574년), 갑술월(甲戌月, 음력 9월), 갑술일(甲戌日), 갑술시(甲戌時, 오후 7∼9시 사이)의 4갑술(甲戌)의 사주를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술(戌)은『개』를 상징하므로 사주(四柱)가 모두 개이기 때문에『개를 놓았다(‘낳았다’의 사투리)』는 뜻에서 이두(吏讀)의 한음(漢音)을 따서 논개(論介)로 작명하였다고 전합니다.


아명이 그대로 관명으로 되어 한자로 '개동(介東), 계동(啓東), 소동(召東), 소동(蘇同), 마동(馬銅), 마동(馬東)'으로 되기도 합니다. 또한 서민들은 아명으로 평생을 살기도 했습니다.


◆ ② 관명( 冠名 : 본명. 장성해서 그 집안의 항렬에 따라 짓는 이름. 호적에 올리는 이름)


본명임에도 일상생활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보통 생후 백일은 지나야 ‘이 놈이 살 기미가 있겠구나!’하고 생존확률이 명확해진 뒤에 짓게 됩니다.


◆ ③자 (字 : 혼인한(성인식) 후에 본 이름 대신 부르는 이름 )


우리의 전통 예법에 의하면 남자가 20세가 되거나 여자가 15세가 되면 요즘의 성인식(成人式)에 해당하는 관례(冠禮)와 계례가 있었는데, 이때 남자는 어른의 의복을 입히고 모자인 관(冠)을 씌우고 여자에게는 비녀를 꽂아 성년(成年)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이 관례(冠禮)가 행해질 때 비로소 성인(成人)임을 인정해 주기 위해 어린 아이의 이름인 아명(兒名)을 버리고 관자(冠字)라 해서 지어주는 이름이 바로 자(字)입니다. 자(字)가 붙은 이후로는 임금이나 부모 또는 웃어른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本名)으로 말하지만, 동년배이거나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 대해서는 자(字)를 사용하여 명(名)과 자(字)를 구분하여 사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부를 때에도 자(字)를 사용하는데 자기보다 손위 사람을 부를 때에는 자(字)를 사용하고 아래 사람은 본명(本名)을 사용했습니다.


자(字)를 지을 때에는 본인의 기호나 윗사람이 본인의 덕(德)을 고려하려 짓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장유(長幼)의 차례에 따라 정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자(字)를 부르고 사용함은 곧 성인(成人)이 되어 상호 예(禮)를 갖추고 품격(品格)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 ④ 호(號)


호(號)는 본명인 명(名)과 자(字) 이외에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또 다른 이름으로 아호(雅號), 당호(堂號), 필명(筆名), 별호(別號) 등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택호(宅號)와 시호(諡號) 예명(藝名) 또는 법명(法名)도 넓은 의미로 호(號)라 할 수 있습니다.


아호(雅號)는 문인(文人)이나 예술가(藝術家) 등의 분들이 시문(詩文)이나 서화(書畵) 등의 작품에 본명 이외에 우아한 이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이름입니다. 이를 글 쓴 사람의 이름이라 하여 필명(筆名)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호(堂號)란 원래는 당우(堂宇)인 본채와 별채에 따로 붙인 이름이었는데 이것이 그 집의 주인을 나타내는 이름이 되어 당호(堂號)가 그대로 그 사람의 호가 되기도 합니다.


여성은 호를 갖지 않는 것이 보통의 관례입니다. 대신 당호, 또는 택호를 갖지요. 평민의 경우 순천댁, 수원댁 등처럼 친정의 지명을 딴 택호를 갖게 되지만 사대부집안의 여인들은 신사임당, 허난설헌처럼 당호를 갖습니다. 조선의 여인 중 유일하게 호를 지어 쓴 이는 이매창(李梅窓)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명이 향금(香今)이며 계유년에 낳아 아명은 계생(癸生)이며 천향(天香)이란 자를 갖고 있습니다. 황진이와 더불어 명기의 쌍벽을 이루는 이로써 유희경, 허균 등 당대의 호걸들과 교유한 특출한 신분이 여성임에도(?) 당호가 아닌 호의 사용을 가능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별호(別號)는 본 이름 이외의 이름이라는 뜻으로 보통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용모 또는 특징을 따서 지어 부르는 별명과 같은 호(號)를 말합니다. 그리고 택호(宅號)는 어떤 이름 있는 사람의 가옥 위치를 그 사람의 호(號)로 부르는 것으로 ○○ 대감댁 등으로 불렀으며, 출가한 여인에게는 친정의 지명을 붙여 진주댁, 하동댁, 부산댁, 공주댁 등으로 불렀는데 이를 택호(宅號)라고 합니다.


법명(法名)은 승명(僧名)이라고도 하는데 불문(佛門)에 귀의하여 승려가 된 사람이나 또는 불법을 공부하는 신도에게 의식에 따라 속명(俗名) 대신에 지어준 이름을 법명(法名)이라 합니다. 이 법명에도 이름의 항렬처럼 모시는 스승의 계보에 따라 항렬자가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호(諡號)란 벼슬한 사람이나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 행적에 따라 왕(王)으로부터 받은 이름을 말하는데, 착한 행적이나 나쁜 행적에 따라 정하는 시호(諡號)를 달리하였는데 이는 여러 신하의 선악(善惡)을 구별하고 후대에 권장(勸?)과 징계(懲戒)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시호(諡號)인 충무공(忠武公)이 한 예라 하겠습니다. 살아있을 때의 본명을 휘(諱:부르기를 삼가야할 이름이라는 뜻)라고 하고 죽은 후에 주어진 이름을 시(諡)라고 합니다.


점차 사회의 계층이 확대되고 계층간 또는 상하간 만남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이름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는데 성인(成人)의 본명(本名)은 부모와 스승 등 윗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부를 수 없게 되자 더욱 호(號)의 사용이 촉진되어 일반화되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후세인들도 선인들의 본명(本名)이나 자(字)보다는 호(號)를 더 많이 부르고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이름을 사용하는 데에는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명이 짧아진다는 속설에 따라 실명을 기피하는 실명기피풍속(實名忌避風俗)과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을 선호하는 복명풍속(複名風俗)에 기인해 허물없이 부르는 이름을 짓고자 한 것이 호라고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5. 우리시대에 호는 무엇인가?


일생 4-5개 이상의 이름을 갖는다는 것이 한 이름으로 평생을 사는 오늘에 비춰본다면 거추장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명분에 휩싸인 사치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럿의 이름이 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름도 불리고, 어떤 이는 이름보다 별명이 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주기도 합니다. 또 김부장, 이과장, 박선생님, 강변호사님 등의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고 시우아빠, 경윤이엄마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불리는 상대에 따라, 직함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느 블로그를 뒤지다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IMF때 명퇴를 한 이였습니다. 퇴직을 하고 나니 김부장, 이과장 등의 직함을 그대로 부르기도 무엇해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호를 하나씩 지어 보기로 했다는.... 그래서 자기의 호가 00이되었는데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나중에 보니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 새로운 호를 하나 새롭게 짓게 됐노라고.


1) 호는 누가 불러도 좋습니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 불러도 실례되는 일이 없습니다. 부르기가 적절찮아 ‘어이!’, ‘야!’, ‘너!’, ‘저-어-’ 등의 모호함이 없습니다.


2) 호는 바로 ‘나’입니다.

아랫사람, 윗사람, 아직 친밀한 밀착이 되지 않아 그 이의 이름 부르기에 적절하지 않을 때 우리는 00이 엄마, 00이 아빠, 00이 할아버지, 00이 처 등으로 부릅니다. 살아있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관계를 대리한 나일뿐입니다. 이렇듯 살아가면서 종종 나를(나의 이름을) 잃어 버리게 되지요. 호는 다른 이를 통하지 않고 나를 드러내는 내 이름입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나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개방형’ 이름입니다.


3) 호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더 명확히 해줍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의 본명이 나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일방적인 욕심에 의해 지어집니다. 그 이름에 따라 내 성품이 닮아가기도 합니다만 보통은 나의 주체성과는 상관없는 것이 우리의 이름이기도 한 것입니다.


4) 호는 자신을 반영합니다.

별명이 그 사람을 어떠한 형태로든 반영하듯이 호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모양, 바램, 의지 등을 반영하는 그릇이 됩니다. 스스로 자호하든 남이 지어주든 주인의 동의를 전제로 사용되는 것이 호이기 때문입니다.


5) 호는 자신을 가꾸게 합니다.

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남에게 나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삶의 방향을, 삶의 의지를 드러내는 일이기에 자신의 삶을 되보고 가꾸게 됩니다.


6) 호는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게 해줍니다.

자신을 가꾸는 이름이기에 그 사람의 ‘격’이 됩니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일지라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이름이 됩니다.


7) 호는 사회적 활동을 왕성하게 해줍니다.

호는 부모를 떠나 한 인간으로 내가 서 있음을 공표하는 이름입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받치는 당당한 한 축임을 공표하는 이름입니다. 이름이란 열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싹을 가리키는 부름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본 듯 합니다. 어떤 것의 이룬 결과가 이름이 아니라, 이루고자하는 스스로의 과제가 스스로의 이름이란 얘기입니다.


6. 호를 어떻게 지을까?


호는 나를 가장 나답게 드러내는 주체적인 이름입니다. 따라서 가장 나답게 지으면 됩니다.

특별히 정해져 있는 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꼭 한자를 이용해야 할 이유도 없고 글자수의 제한이 있지도 않습니다. 지어 쓰다 맘이 변하거나 다른 생각이 일면 또 지어 써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의 경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503개의 호를 지어 썼습니다. 70성상을 산 그 의 일생에 500여 개의 이름을 사용했다 함은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일입니다.

 

성년이 된 20세 전후부터 호를 지어 썼다 가정할 경우 70세까지 50년간 한 해에 10개 이상의 새 이름을 지어 썼다는 얘기가 됩니다. 워낙에 삶의 태도가 기고만장하고  지적 활동이 왕성한 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가히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김정희 입니다.

 

김정희의 호 짓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그의 관심 영역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이름이 생겨난 것이지요. 예를 들어 그에게 시서화와 경학, 금석학에 큰 영향을 준 중국의 거유 담계 옹방강과 교유할 땐 ‘담계 옹방강을 아주 보배롭게 생각하는 선비’라는 뜻으로 보담재(寶覃齋)라는 호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담계 옹방강의 또 다른 호인 보소재(寶蘇齋)를 재치 있게 차용한 것인데, 이는 옹방강이 적벽부로 유명한 북송 때의 시인 소식(蘇東坡)의 시에 흠뻑 빠져 보소재(寶蘇齋 : 소동파를 보배롭게 생각하는 선비라는 뜻)라는 호를 사용한 것을 같은 방식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또 보통은 호를 두 자로 짓는 경우가 많겠으나 외자, 석자, 넉자 그 이상의 글자수를 짓는 경우도 흔하긴 합니다. 하지만 추사 김정희의 경우 10자로 된 호(향각자다처로향각노인香閣煮茶處로香閣老人)도 사용했습니다.

 

워낙에 삶의 태도가 기고만장한 사람이라 각 시시기별 그의 사상편력과 관심의 편린들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해낸 증거들입니다. 또한 당대 최고의 신학문, 신예술의 수용자로서 고루한 겸손쯤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호기와 변덕, 자기에 대한 애착이 오히려 그의 힘의 원천이었음을 숨김없이, 부끄럼 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남송의 화가 鄭思肖는 송이 망한 후 스스로 호를 "所南", "木穴國人"("木"과 "穴"을 합쳐 쓰면 "宋"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호와 그 사람의 행실이 별개인 경우도 있습니다. 袁世凱는 파직을 당하여 고향에 머물고 있을 때 스스로 "洹上漁人"이라고 했으나 그의 뜻은 "東山再起"에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름과 字는 부모나 연장자가 지어 주지만, 호는 본인이 스스로 취하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정서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6-1. 이번에는 호를 짓는 기준이나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지요.


고려시대 이규보는 그의 [백운거사록(白雲居士綠)]이란 책에서 "거처하는 바를 따라서 호로 한 사람도 있고, 그가 간직한 것을 근거로 하거나, 혹은 얻은 바의 실상을 기준으로 호를 지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여 신용호라는 사람은 호를 짓는데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소처이호(所處以號): 생활하고 있거나 인연이 있는 처소를 호로 삼은 것

(예컨대 도곡 김태정 선생은 도곡이란 지명을 호로 삼았지요)


2) 소지이호(所志以號): 이루어진 뜻이나 이루고자 하는 뜻을 호로 삼는 것

(예컨대 여초 김응현 선생은 항상 처음과 같은 자세로 공부에 임하겠노라고 여초(如初:처음과 같이)라고 하였지요)


3) 소우이호(所遇以號):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호로 삼은 것

(퇴계 이황 선생은 고향으로 물러나 시내를 벗하면서 공부에 전념하겠노라고 퇴계(退溪)라고 하였지요)


4) 소축이호(所蓄以號):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호를 삼은 것이지요.


이와 비슷하기는 하나 저는 조금 더 세분화 된 기준으로 나눠볼까 합니다.

서로 기준이 중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호 짓는 발상을 돕고자 편의상 분류해본 것입니다. 유래와 같이 적어 봅니다.


1) 인연 깊은 장소나 처소를 호로 삼은 것 - 소처이호(所處以號)


○ 퇴계(退溪) 이황

고향이 안동 하회이다. 河回를 순 우리말로 바꾸면 ‘물돌이 마을’이 된다. 낙동강이 이 마을을 에두르고 지나간다. 집 뒤로 시내가 흘러가는데 이 시내를 일러 퇴계라 했다. 집 앞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집 뒤로 흐른다하여 ‘물러나는 시내’라 해서 퇴계이다. 어렸을 적 노닐던 이 퇴계를 자신의 호로 삼은 경우이다.

 

자신의 어릴 적 자양분이 되어준 장소에 대한 그리움 등이 녹아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이 속에 비유도 있다.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 뒤로 물러나는 것의 겸손함.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던 이황의 겸손의 덕이 호에 반영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표를 쓴 사람이 이황이다. 무려 79번의 사표를 썼으니 겸손도 그만하면 허물이 될 듯도 하다. 평생 야인으로 살고 싶어 동시대의 학자 남명 조식을 한없이 부러워했다는 그다. 임금이 그를 놓아주지 않아 임명과 사퇴를 번복하며 살았다. 그런 만큼 퇴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으리란 짐작을 해본다.


○ 연암(燕巖) 박지원

만년을 제외하고는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글로 인하여 정조와 불화를 겪게 된다. 문체로 인한 필화를 겪게 되는 것인데 정조의 대리인 격인 홍국영에 몰려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에 살 것을 다짐하며 그 지명을 빌려 연암이라 자호했다.

 

○ 다산(茶山) 정약용

19년 유배지인 전라도 강진의 뒷산 이름을 호로 삼았다. 19년 유배생활을 통해 그의 학문과 500여권이 넘는 저술이 여유당전서란 이름으로 완성되었다. 여유당(與猶堂)응 그의 당호이다. 다산 외에 삼미, 사암, 태수, 자하도인 등의 호가 있다.


○덕암(德岩) 이선열

나의 고등학교 미술선생님. 학교에서 그의 본명을 아는 이는 동료 선생님들과 미술부 학생들 뿐. 나머지는 모두 덕암 선생님이라 불렀다. 지금은 대한미협 경기지부장이다. 그 분의 고향 뒷산 큰 바위 이름을 따서 자호한 경우다. 어렸을 적 동무들과 총싸움도 하고 헤집고 다니던 뒷산의 큰 바위. 그 위에 벌렁 누워 흘러가는 구름도 보았으리라.

한번은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문제로 ‘한국 근 현대 화가 5인을 아는 대로 쓰시오.’라는 주관식 문제를 출제했다. 학생들 아는 대로 김환기, 이중섭, 나헤석 정도를 써 내려가다가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자 ‘에이! 누가 알쏘냐? 우기면 되지!’하며 자기 친구 이름, 아버지 이름, 마구 튀어나오는데 그 중 센스 있는 몇몇 학생 답하기를 ‘덕암’하고 버젓이 적어 놨겠다. 그런데 그 중 몇 놈은 보란 듯이 부르던 대로 ‘더감’이라 적어놨겠다! 덕암 선생님에게 불려나가 귀때기 적잖이 뜯겼구나. “어딜 더 가! 어디로 더 가라고!”


○ 토정(土亭) 이지함

마포 근처의 초라한 흙더미 집에서 헐벗은 자들을 구휼하며 지냈다하여 토정을 호로 삼았다.


○ 화담(華潭) 서경덕

화담은 개성의 교외에 있는 연못으로 경치가 아름다워 여기에 은둔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교지식인들이 호를 지을 때 보편적으로 사용한 방식은 자신의 향리나 승경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젊은 시절 학문을 닦았던 한양의 삼각산의 세 봉우리를 따서 지은 호. 이단의 학문을 배격하고 자신의 학문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봉(峰)으로 표현하고 있다.


 2) 자신을 한껏 낮춰 비유한 호


○ 쇠귀 신영복

‘쇠귀에 경 읽기’에서 따온 한글 호다. 즉 ‘나는 미련하고 아둔한 자로소이다.’의 속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 뿐일까? 이재와 이세, 처세에 밝지 못하지만 자신이 믿는 것 소처럼 우직하게 한 길을 갈 줄 아는 소의 숭고함이 진짜 속뜻이 아닐까? 한문으로는 牛耳를 쓴다. 또 간혹 그의 집이 있는 마을인 서울 목동(木洞)의 우리 말인 ‘나?골’을 쓰기도 한다.


○ 태골(怠骨) 도정일

도정일 교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냥 영문과 교수 또는 문화평론가, 인문학자 등으로 소개하기에는 너무 적절치 않다. 하여튼 그는 머리통이 무척 크다. 머리통이 커서 아는 것도, 든 것도 많다. 머리통이 무거워서인지 나는 그가 머리통을 꼿꼿이 세운 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늘 한쪽 팔에 책 뭉치 또는 서류뭉치를 들고 고개를 15도에서 45도 정도 옆으로 기울이고 걷는다.

 

거기에 죽죽 뻗쳐나간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은 그의 머리통을 더 크게 보이게 만든다. 그러면 그의 호 태골은 머리통이 커서 생긴 것일까? 아니! 그는 호를 내놓고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책에서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다.

‘게으른 뼉다구’. 태골怠骨이다.

 

그의 집은 우이동이다. 북한산을 지척에 두고도 남들 일부러 오르내리는 길. 그는 가본 적이 없다. 에라! 이 게으른 뼉다구야! 怠骨!

엄청 분량의 저술 계획을 잡아놓고도 이런저런 잡문청탁에 휘둘려 그의 이름 석 자 들고 나온 책이 별로 없다. 에라! 이 게으른 뼉다구야! 怠骨!

 

간만에 잡문이라도 엮어 부추김에 냈다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의 서문의 내용을 내 맘대로 옭아 썼다. 그에게 실례가 되질 않길 바란다. 나의 대학 때 교수다. 한번도 그의 강의를 들은 적은 없다.


○ 점필재(占畢齋) 김종직(金宗直) 

영남사림의 거두로 사화에 휘말려 부관참시까지 당한 성리학의 달통문인.

점(占)은 본다는 뜻이며 필(畢)은 간략하다는 뜻이다. 본 것이 적어 견식이 얕은 까닭으로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학문을 겸손히 표현함.


○ ?翁(역옹) 李濟賢

자신은 나라의 큰일을 할 사람이 못되며 단지 오래나 살고 싶다는 겸손한 소망을 표현. ?(상수리나무 역)은 재목감이 못되는 하찮은 나무를 뜻함.


○ 눌재(訥齋) 박상(朴詳)

자신이 아주 못났음을 나타내는 뜻. 졸(못날 졸)이나 눌(어눌할 눌)자를 써서 자신의 재주를 감추고자 했다.


○ 수졸당(守拙堂) 유홍준, 이의잠

우리나라에 수졸당이라는 당호를 가진 건축물이 두 군데 있다. 경주의 양동 수졸당이 그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서울의 학동(논현동) 수졸당이다. 경주의 수졸당은 400년 전의 건축물이고 학동 수졸당은 이제 채 10년이 못된 건축물이다. 

 

경주 양동의 수졸당은 회재 이언적의 4대손인 이의잠이 그의 호를 붙여 지은 집이고 서울 학동의 수졸당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이자 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교수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 이로재 승효상의 손을 빌려 지은 집이다. 수졸당이라는 이름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경구 ‘대교약졸-大巧若拙 : 큰 재주는 별 볼일 없다.’에서 따온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남루한 집’ 정도로 이해해도 될 듯. ‘욕심 없이 큰 재주를 부리지 않은’.


○ 백범(白凡) 김구

백범 선생의 처음 호는 연하(蓮下)였는데 1912년  37세 때 서대문 형무소에서 백범(白凡)으로 고쳤다.

백은 백정(白丁)에서 따온 말로 가장 천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범(凡)은 범부(凡夫). 즉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가 교육사업에 열중하던 중 한 번은 인근 아낙네들에게 이르기를 “아주머니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 白丁이 아니겠오? 무, 배추를 짤라 먹으니 무백정이요, 닭을 잡아먹으니 닭백정이요, 소돼지를 잡아먹으니 역시 소백정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런 신분계급을 따질 시대는 지났습니다. 누구나 다 하늘아래 똑같은 이 나라 백성으로 계급을 얘기할 것이 아니다”고 타일렀던 것이다.


3) 분기탱천형 호


○사암(俟庵) 정약용

정약용의 20세 전후로 사용한 호.

정약용을 얘기하는데 정조를 빼놓을 수 없다. 정약용의 최대 후원자는 바로 정조다. 뒤주에 갇혀 8일 동안 울부짖으며 죽어간 생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며 왕위에 등극한 정조. 왕위에 등극하는 과정도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이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가 내정된 세손의 신분이었지만 18차례의 자객침입을 당했을 정도였다. 잠을 청할 수도, 잠을 이룰 수도 없는 것이 정조의 세손 시절이었던 것이다.

 

매일 잠자리 처소를 비밀리에 옮겨야 했던 정조는 밤 동안 무섭게 공부를 했다. 왕의 신분이었지만 정조는 그 시대 최고의 학자였다. 사후에 정조의 호인 홍재를 붙여 엮은 그의 저서집 [弘齋全書 184권 100책)을 포함해 그의 총 저서가 5천권에 이른다 하니 세계 어느 나라의 왕이 이만할까? 학자군주인 정조는 스스로 군사(君師)를 자처했다.

 

군주이자 신하와 만백성의 스승으로서의 君師. 규장각을 설치하고 젊은 인재들을 길렀다. 신하들과 무릎을 맞댄 자리에서 스스로 강학하고 시험을 치렀다. 이 강학과 시험에서 늘 우등을 차지한 이가 바로 약관의 정약용이다. 스무살 남짓한 나이에 임금의 머리쓰다듬음을 받는 다는 것은 그를 매우 의기양양하게 만들었다.

 

사암은 그가 23세때 정조의 중용강의 80여조의 질문에 답술하여 1등평정을 받은 뒤 젊은 혈기에 득의만면하여 지었다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1표2서를 완성한 50대 이후에 지은 호라는 이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중요에 나오는 ‘百世以俟聖人而不惑’에서 따왔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즉 ‘훗날성인이 나오더라도 내 학설을 바꾸지 못하니 의심할 바 없다.’는 뜻이니 기고만장 분기탱천도 이만하면 국보 양주동, 우주보 김용옥에 비견할만하다.


○도올 김용옥

도올은 무슨 뜻일까? 도올은 맹자에 나오는 역사 책 이름이다. 노나라에는 춘추가 있듯이 초나라 역사책에는 도올이 있었다. 도올은 다듬어지지 않은, 가능성이 남아 있는 통나무를 뜻한다. 또 전설 속에서는 사나운 맹수 이름으로도 쓰이고 옛날 황제의 고집 불통 아들 이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 용옥은 어려서부터 「돌대가리」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도올=돌」의 음을 취하여 호를 삼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엣날에 도올 김용옥의 책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출판사의 이름이 ‘통나무출판사’였다.

 

學人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력하는 돌머리 天才’ 도올 김용옥. 서태지 못지않은 인기 구가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에듀테이너(Edutainer). 중고교 시절 술, 담배, 여자, 당구 등에 빠져 지낸 그가 마지막 빠진 곳은 바로 학문이었다는. 氣철학 원리 완성해 인류의 보편적 자산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인생의 설계를 가진 이이자 우리나라 최고의 학술분야 베스트셀러 작가.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은 어린애 같은 순수함이 아닐까? 도올!

 

 


*국보 양주동 VS 우주보 김용옥


한평생 자기가 "인간 국보 1호" "걸어다니는 국보" 라고 자칭하며 살았던 학자가 한 명 있다. 바로 국어학자 양주동(梁柱東)선생이다.


양주동 선생은 다 알다시피 향가연구에 가장 뛰어났던 권위자다. 중고등학교에 실려 있는 향가 <제망매가><찬기파랑가><안민가> 같은 작품들은 아마 양주동 선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배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양주동 선생 이전에는 향가를 표시하는 향찰과 이두의 뜻을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다.


양주동 선생에 대한 몇 가지 일화.


재기와 천재성, 박람강기(博覽强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애 양주동(无涯 梁柱東·1903∼1977) 선생은 생시에 인간국보를 자처했다. 선생의 자화자찬에 대해서는 물론 찬반논란이 있지만 그가 남긴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와 ‘여요전주(麗謠箋注)'에 대해서는 누구나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한다.


양주동 선생은 택시운전사에게 “국보가 탑승했으니 각별히 운전을 조심하라”고 했고, 노상방뇨를 단속하는 경찰관에게는 “국보를 몰라보느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국보가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신문도 무료구독을 고집할 정도였으니 참 재미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선생이 자신을 처음으로 국보라고 말할 때는 한국전쟁 때다.

1.4후퇴 당시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6.25 때 피난을 못한 바람에 수복 후 부역자(附逆者)딱지가 붙어 곤욕을 치렀던 양주동(梁柱東)선생은 피난을 서둘렀다. 열차 편을 알아보기 위해 신문사에 들렀다가 복도에서 서성대고 있던 같은 처지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孫基禎)과 동양화가 이용우 (李用雨) 를 만났다. 양주동은 "우리나라 국보들이 다 모였군. 국보를 이렇게 푸대접해서야 쓰나" 하면서 툴툴거렸다. 그 후 양주동은 자칭 '국보' 로 행세했다.


1903년 개성에서 태어난 양주동은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평양 숭실(崇實)전문학교 영문학교수로 부임했다. 이 때부터 양주동은 시인이자 문학이론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양주동은 돌연 국문학자로 변신했다.

1937년 학술지 '청구학총(靑丘學叢)' 에 논문 '향가(鄕歌)의 해독(解讀)'을 발표하면서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에 도전했다. 경성(京城)대학 교수 오구라는 29년 발표한 '향가 및 이두(吏讀)연구'를 통해 신라 향가를 최초로 해독한 조선어연구의 권위 있는 학자였다.


양주동이 향가연구에 뜻을 둔 것은 1935년 무렵이다. 평소 향가가 일본인에 의해 비로소 해독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다가 스스로 향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주동의 향가연구는 정확성과 문학적 감성에서 오구라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1942년 단행본으로 발간된 '조선고가(古歌)연구' 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으로부터 "1백년 뒤 남을 한권의 책" 이란 극찬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향가연구의 정본(定本)으로서 위치를 유지해왔다.


게다가 양주동은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술과 재치가 철철 넘치는 입담으로 유명했다. "내 이름이 양주동이니 양주(洋酒)동이, 입이 걸쭉해서 양(兩)주둥이오"라며 희희낙락했다.

돈에 대해선 지독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주례를 부탁받으면 주례 값을 흥정하고, 원고청탁이나 방송국 출연요청이 오면 으레 선금을 요구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신문은 국보가 읽어주는 것만도 영광이라며 언제나 무료구독이었고, 집에 도둑맞을 물건이 없다는 이유로 방범비조차 내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 어느 날 양주동 선생이 도로를 무단 횡단하고 있었다. 달리던 택시가 급정지를 했다. "끼-익, 끼기끼기 끼-익"하는 소리와 동시에 택시 안에서 기사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양주동선생이 "어허, 이 사람아, 큰일 날 뻔했잖은가! 조심하지 않고 국보 1호 다칠 뻔 했네, 다음부터 조심하게!" 라고 말하며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어느 날 선생이 술을 거나하게 걸치고 비틀비틀 거리를 걷다가 그만 시궁창에 빠졌다. 그러자 선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시궁창에 국보가 빠졌다"라면서 소리치자 길 가던 행인들이 놀라 시궁창으로 모여 들었다. 하지만, 국보라는 물건이 있을 리가 없으니 행인들은 양주동 선생보고 국보가 어딨냐고 물었다. 이에 선생 왈 "내가 바로 국보일세, 걸어 다니는 국보, 양주동!!"


선생의 연애편지사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시인으로서의 문재도 뛰어났던 선생은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시절, 서울에서 짝사랑했던 여대생을 잊지 못해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구구절절한 미문의 연애편지는 흠모하는 여대생의 손에 닿기도 전 사감의 검열로 번번이 차단되곤 했다. 미션 스쿨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선생은 성경 가운데서 "사랑"과 관련된 대목들을 뽑아 연서를 보냈고, 정성에 감복한 여학생으로부터 마침내 승낙을 얻어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희대(稀代)의 천재이자 기인(奇人), 그리고 괴짜 양주동 선생, 그의 호가 국보는 아니다. ‘무애’다. 역시 우주보를 자처한 김용옥 또한 그의 호가 우주보는 아니다. ‘도올’이다. 스스로 최고라는 자부심이 그들을 키웠고 호언에 마땅한 능력을 스스로 갖췄다. 그것만으로도 국보이며 우주보이다.

여기에 내가 아는 이 한명을 덧붙이자면 젊은 민속학자 주강현을 꼽을 수 있다. 이 셋을 삼보(三寶)로 삼으면 되겠다.


4) 은자, 빈자의 호


화쟁에 자의, 타의 몸담았다가 환멸을 느끼고 몸과 마음을 숨긴 이들이 선택한 호다.


○ 조은(釣隱) 최치운 :

태조, 세종 때의 청백리로 어려운 정치현실에서 몸을 숨기고자하는 뜻과 함께 신유학(주자학) 추종자들의 학문적 지향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낚시(釣)는 은자의 최대 소일거리였다.


○ 망천(忘川) 이고(李皐)

여말 이성계의 창국에 반대하여 수원의 팔달산으로 은둔한 학자로 忘川은 수원천에서 낚시를 하며 망국의 시름을 잊겠다는 뜻으로 쓰임. 수원천의 옛 이름이 망천으로 불렸음. 한편 팔달산의 팔달도, 권선동의 권선도, 인계동의 인계도 이고 선생과 관련한 지명이다.


○ 무위자(無爲子) 강희맹(姜希孟)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 즉 자연의 상태대로 맡겨놓고 아무런 인공적인 작위를 가하지 않는다는 뜻.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매화와 달을 벗 삼아 현실에서 초연하여 은둔하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자신이 거처하는 서재의 이름으로 지은 당호. 어려서부터 시문에 재주가 뛰어나 五歲神童으로 불려 金五歲가 별명이 되었으나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분개하여 오세의 음을 빌려 汚世(더러운 세상!)로 호를 짓고 승려가 되어 산수를 방황하며 일생을 마침. 설악산에 그가 거쳐하던 오세암(五洗菴)이 있다.

한편 김시습의 시습은 논어의 학이편 첫 구절에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라! 그 이름 참 명쾌하다!


○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세속의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걱정 없이 한가로이 지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호. 세조의 왕위 찬탈 후 벼슬을 물러나 고향 태인에서 은거하며 후진을 양성. 賞春曲 불우헌곡, 불우헌가 등 시가문학사상 중요 자료가 그의 작품들이다.


○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정치현실에 환멸을 느낀 시인이 강가에 살며 낚시와 술과 시작으로 소일하며 지내겠다는 뜻의 호. 가을 강은 고독과 은둔의 이미지를 표현할 때 많이 쓰였다. 생육신의 한 사람.

 

5) 존경하는 인물을 기려 짓는 호


○ 청련거사 이후백

명종대의 이조판서. 이백(이태백)의 뒤를 잇는다하여 이름도 이후백. 호도 이백의 호인 청련거사의 ‘청련’을 그대로 썼다


○ 보담재(寶覃齋) 김정희, 보소재(寶蘇齋) 옹방강

위에서 언급


○ 사임당(사임당) 신씨-신인선

흔히 신사임당이라 불리는 이 율곡의 어머니 신씨. 본명은 인선이다. 신사임당이 스스로 자신이 거처하는 곳의 이름(당호)을 지은 것이다.


師任에서 師는 스승 '사'자로 ‘흠모하여 존경하다’란 뜻을 갖는다. 사임의 任은 옛날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뜻한다.

신사임당이 태임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태임을 스승으로 본받고 싶다는 의미에서 師任이라고 지은 것이다. 특히 태임의 태교를 본받고 싶었다고 전해진다.

 

태임의 성품은 단정하고 성실하며 오직 덕(德)을 실행하였다고 한다. 그가 문왕을 임신해서는 눈으로 사악(邪惡)한 빛을 보지 않고, 귀로는 음란(淫亂)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입으로는 오만(傲慢) 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문왕을 낳으니 총명하고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알더니, 마침내 주(周)나라의 으뜸 임금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태임의 태교와 교육을 본받고 싶어서 당호를 사임이라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堂은 본채나 별채 등 안주인이 기거하는 집안의 한 건물을 말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임당은 사람의 호가 아니라 집안 건물의 이름이다.


6) 즐겨하는 취미와 일, 그리고 완물을 이용한 호


○ 노가재(老歌齋) 김수장(金壽長)

늙은 시조가인들이 모여 시와 시조를 읊는 서재라는 뜻. 자신의 화개동(삼청동) 집에서 가객들과 교류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시를 지으며 살았다. 아전 출신으로 조선후기의 대표적 시조작가.


○ 삼혹호(三酷好) 이규보(李奎報)

세 가지를 지독히 좋아한다는 뜻. 시와 술과 거문고를 지독히 좋아하여 스스로 지은 호.


○육일거사(六一居士) 구양수(區陽修)

장서 일만 권, 금석문 일천 권, 거문고 한 개, 바둑판 한 개, 술 한 병,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늙은 자신을 가리켜 육일이라 했다.


○ 주선옹(酒仙邕) 이백(李白)

이태백이다. 태백은 그의 字다. 술을 즐겨 주선옹이라 자호했다. 詩仙이자 酒仙을 자처한 셈. 행동거지가 초연하여 이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라 불렸다.  靑蓮居士는 그의 또 다른 호다. 맑은 물에 씻기운 연꽃이란 뜻으로 군자가 좋아하는 꽃의 상징이다.


○ 취묵헌(醉墨軒) 인영선

먹 향기에 취하는 방. 서예가 인영선의 호다.


○ 석치(石痴) 정철조

조선후기의 벼슬아치다. 벼루에 미친 사람이다. 돌만 보면 벼루를 깎아 나눠줬다. 무엇엔가 미친 사람을 일러 벽(癖) 또는 치(癡)라고 한다. 돌에 미친 사람 석치!


○ 석당(石堂) 이유신(李維新)

신위(申緯)라는 이가 있다. 괴석에 미쳐 괴석 모으길 좋아하는데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며 수레에 괴석만 잔뜩 실어왔다고 한다. 동행한 화가를 시켜 그 그림을 그리게 하며.

이유신이란 화가가 있다. 그 또한 돌에 미친 사람이다. 어느 해 정초에 돌을 좋아하는 신위에게 세배하러 갔다가 그만 돌에 마음을 빼앗겨 세배하는 것도 잊고 돌만 어루만지고 있더란다. 신위가 그 돌을 선물로 내주자 역시 세배하는 일도 잊고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횡하니 내빼더란다. 그의 호가 석당(石堂)이다.


○ 억만재(億萬齋) 김득신(金得臣)

자못 엽기적인 노력가다. 절대로 IQ가 두 자릿수를 넘지 않았을 것 같은 위인이다. 그의 아버지가 태몽으로 노자를 보았다하여 노자의 이름인 담(?)을 따서 ‘몽담(夢?)’이란 아명을 주었다. 신통한 꿈을 꾸고 낳은 아이라 한  문장 하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머리가 지독히 나빴다. 10살에 이르러 글공부를 겨우 시작했는데 스무 살이 되어서야 겨우 글 한편을 지어 아버지께 올렸다고 한다.

 

머리가 나쁜 대신 지독한 노력을 하였는데 그 아버지는 “저 아이가 저리도 미욱하나 포기하지 않으니 대기만성 할 걸세”하며 그의 아들을 두둔했다고 한다.

그의 독수기(讀數記)가 전해지고 있다. 독수기란 책을 읽은 수를 기록한 문서다. 백이전이란 책은 1억1만3천 번. 모두 36종의 책을 1만 번 이상 읽었다. 1만 번 이하로 읽은 책은 아예 여기에 적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횟수를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다. 김득신의 미련이 아니고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의 엽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1억 번 이상 읽었다는 책. 때는 단옷날이라 그와 관련한 좋은 시제를 하나 얻었는데 그 댓구가 영 떠올려지지 않아 끙끙거리자 그의 말고삐 시종이 왜 그런지를 물었다. 이유를 말하자 그의 말 시종이 대뜸 그 다음 시제를 읊더란다. 그러면서 말하길 “마님이 노상 읽은 아닙니까?”라고 한다.  하도 읽어 주어들은 종도 다 외울 지경인 글을 그는 또 잊고 만 것이다. 이에 김득신은 말에서 내려 “네가 내 재주보다 나으니 내가 네 말구종을 들겠다”며 하인을 말안장에 앉혔다고 한다. 이런 그가 자신의 호를 억만재(億萬齋)로 삼았다.  억 만 번을 읽고, 읽고 또 읽고.


6) 이름으로 세상을 조롱하다.


○ 필재(疋齋) 이단전(李亶佃)

천한 신분의 조선 후기 시인이다. 그의 이름 亶佃은 ‘진실로 단’에 ‘밭갈 전’자로 소작인 또는 종놈을 뜻한다. 이를테면 ‘진실로 종놈’인 셈이다. 여기에 스스로 붙인 그의 호가 또 걸작이다. 필재(疋齋)! ‘필(疋)’자를 파자하면 하인(下人)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진짜 종놈에 불과하다며 신분사회에 대한 조롱을 퍼 부운 것이다. 천한 신분에 시인이라면 필시 筆才임에 틀림없겠으나 疋齋라!


○ 송산(松山) 조견(趙?)

여말선초.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도와 일등공신이 된 조준(趙浚)이 있다. 그러나 그의 아우 조견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불사이군(不事二君). 어찌 두 왕조 두 임금을 섬기겠는가? 해서 개성을 버리고 수원의 인근 청계산에 은둔했다. 원래 이름이 윤(胤)을 버리고 아예 견(?)으로 고쳤다. 견(?)은 지조와 절의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리그 그의 자(字) 또한 종견(從犬)으로 고쳤다. ‘옛 주인을 잊지 못하는 것이 개와 같고, 나라를 잃고도 죽지 못하는 것이 개와 같다’는 얘기다.


○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영화 [취화선]의 주인공이기도 한 오원 장승업. 세속의 일은 안전에도 없이 예술 혼을 불사른 조선의 3대가 또는 4대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19세기의 화가. 금전도, 권력도, 가정도 심지어 임금의 명도 거부한 채 살아가는 호기방탕한 사나이. 단원(檀園) 김홍도, 혜원(蕙園) 신윤복 등 가장 뛰어난 화가에게 붙여 준 원(園)에 빗대어 “나도(吾) 원(園)이다!”라고 자호 했다.


○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나와 시詩와 담배는 이음異音 동곡同曲의 삼위일체三位一體. 나와 내 시혼詩魂은 곤곤滾滾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曲線의 선율旋律을 타고 영원永遠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刻刻 물들어 스며든다....

 

담배와 함께 평생을 살다간 6.25를 전후한 시인 공초 오상순. 잠에서 깨어 담배를 피워 물면 다시 잠 잘 때까지 담뱃불을 꺼뜨리지 않았다던 그다. 세수할 때도, 밥 먹을 때도. 그래서 그의 별명은 ‘꼴초’다. 허나 어쩌랴! 그 전쟁 통에 시가 밥이 되었으랴! 담배 한 갑이 되었으랴! 꼴초인 그는 늘 남이 피우다 버린 꽁초나 탐내는 위인이었던 것을!

 

그의 별명을 빌려 공초(空超)라는 호가 만들어졌다. 시가 밥 한 줄이 되지 못하거늘! 늘 남의 꽁초에나 눈독 들이는 처지인들 가진 것을 탐할 소냐?  집 한 채! 시집 한 권! 소유하지 않은 무소유의 자유인 空超! 다.

북한산자락 그의 무덤 앞에 재떨이가 있다. 자연석 재떨이. 죽어서도 담배 공양을 받는다. 담배 굴뚝인지 구멍 뚫린 석비도 하나 서 있다.


○ 봉이 김선달

조선 후기의 풍자적인 인물 봉이 김선달 (본명 김인홍. 자호로는 낭사. 평양출신의 재사 김선달이 자신의 경륜을 펼치기 위하여 서울에 왔다가 서북인 차별정책과 낮은 문벌 때문에 뜻을 얻지 못하여 울분하던 중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권세 있는 양반, 부유한 상인,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기지로 골탕 먹이는 여러 일화들이 있다.


김선달이 봉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있다. 김선달이 하루는 장 구경을 하러 갔다가 닭전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닭장 안에는 유달리 크고 모양이 좋은 닭 한마리가 있어서 주인을 불러 그 닭이 '봉'이 아니냐고 물었다. 김선달이 짐짓 모자라는 체하고 계속 묻자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하던 닭장수가 봉이라고 대답하였다.

 

비싼 값을 주고 그 닭을 산 김선달은 원님에게로 달려가 그것을 봉이라고 바치자, 화가 난 원님이 김선달의 볼기를 쳤다. 김선달이 원님에게 자기는 닭 장수에게 속았을 뿐이라고 하자, 닭장수를 대령시키라는 호령이 떨어졌다. 그 결과 김선달은 닭 장수에게  닭 값과 볼기맞은 값으로 많은 배상을 받았다. 닭 장수에게 닭을 '봉'이라 속여 이득을 보았다 하여 그 뒤 봉이 김선달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유명한 일화로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재밌는 얘기가 있다.

김선달이 대동강가 나루터에서 사대부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물장수를 만났을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물장수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얼큰하게 한잔을 사면서 내일부터 물을 지고 갈 때마다 내게 한 닢씩 던져주게나 하면서 동전 몇 닢씩을 물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의관을 정제하고 평양성 동문을 지나는 길목에서 의젓하게 앉아서 물장수들이 던져주는 엽전을 헛기침을 하면서 점잖게 받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모든 사람들이 수군대며 살피고 있었다. 이때 엽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가 선달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이를 본 한양인들은 대동강물이 선달 것인데 물장수들이 물 값을 내지 못하게 되자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여 내일부터는 밀린 물 값까지 다 지불하여야 한다고 엽전준비에 야단이 났다.

 

이를 참다 못한 한양상인들은 어수룩한 노인네 하나 다루지 못할 것인가 하면서 장수꾼들이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꼬득여 주막으로 모시게 된다. 술잔이 오가고 물의 흥정이 시작되었다. 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것이므로 조상님께 면목이 없어 못 팔겠다고 버티면서 이를 물려줄 자식이 없음을 한탄까지 하였다.

한양상인들은 집요하게 흥정을 했다. 거래금액은 처음에는 1천 냥이었다. 2천 냥, 4천 냥으로 올라가 결국 4천 냥에 낙찰되었다. 당시 황소 60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시의 매매계약서는 다음과 같다.


품 명: 대동강(대동강)

소유자 봉이 김선달

상기한 대동강을 소유자와의 정식 합의하에 금년 5월 16일자를 기해 인수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천하에게 밝히는 바이다.


인수자- 한양 허풍선

인수금액-일금 4천 냥

인도자 김선달


선달은 못내 도장 찍기를 서운한 듯 도장 찍기를 주저한다. 그러자 상인들은 졸라대기 시작하여 결국 계약이 체결된다.


재산은 모으지 못했다고 한다. 워낙 풍류와 시를 좋아하고 어려운 서민을 보면 양반들을 골탕 먹이고 뺏은 돈을 서민에게 다고 한다.


7) 한글로 지어진 호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의 '한흰샘', 이병기 선생의 '가람', 최현배 선생의 '외솔' 등은 널리 알려진 한글 호다. 서예가 가운데도 '꽃뜰 이미경 선생, 갈물 이철경 선생께서 한글호를 사용한다.

앞서 설명한 쇠귀 신영복 선생도 마찬가지.

 

가람 이병기 선생은 자신의 호를 짓게 된 경위를 그의 일기장에서 술회한 바가 있다. 그의 일기장에는 "가람은 강이란 우리말이니 온갖 샘물이 모여 가람이 되고 가람물이 나아가 바다물이 된다. 샘과 바다 사이에 있는 것이니 근원도 무궁하고 끝도 무궁하다. ...중략...우리말로는 가람이라하고 한자로는 임당(任堂)이라 하겠다"라고 호를 지은 연유를 밝히고 있다.

 

또 문익환 선생님은 ‘늦봄’을 사용한다. 고희에도 만년 청춘이었던 그다.

이외에도 오리 전택부(전 YMCA 명예회장), 한솔 이효상(전 국회의장), 눈뫼 허웅(한글학회 이사장), 한결 김윤경, 한벗 김계곤, 구름재 박병순, 높세율 남영신 (이상 한글학자), 얄라 이봉원(영화감독), 늘봄 전영택(소설가) 등이 있다.

 

한글호를 짓는 또 하나의 경향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고한어(古韓語)를 살려 호로 사용하는 예가 그렇습니다. 주로 한배달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분들인데 봄수레 노재춘, 사라아리 권희영, 해머슴, 아라가비, 수바마니, 나난도리, 다라사니, 마루달, 나랑아루, 무파랑 등이 그 예다.


호를 지으매 같은 자수로 한글도 되고 한자도 되면 더욱 좋겠다. 쇠집 鐵齋, 쇠귀 耳牛, 늦봄 晩春, 눈뫼 雪山 등.


8) 그룹 짓기 호

흔히 스님들의 법명을 지을 때 사승관계에 따라 돌림자를 넣거나 한 동아리에서 인연이 있는 한 글자와 각자의 특징에서 찾은 한 글자를 따서 짓는 경우다.

정조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미스테리를 엮은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에 보면 죽란사(竹欄舍)란 비밀조직의 동아리들이 주자를 붙여 호 하나씩을 지어갖는 장면이 나온다. ‘얼굴이 검은 이유수는 오죽(烏竹), 담배를 많이 피워 공방대 장죽을 물고 사는 윤지눌은 장죽(長竹), 홍시제는 청승맞게 생겼다고 상제 지팡이를 뜻하는 상장죽(喪杖竹), 깡마르고 키가 큰 유치명은 수죽(脩竹)....’하는 식이다.


9) 선조의 대를 이은 호

호의 대종을 이루는 것 중 자신이 사는 곳이나 마을 · 산이름 · 강이름 등에서 한 글자를 따서 거기에 동 · 서 · 남 · 북 방향을 가리키는 글자를 넣거나 은거한다는 뜻으로 '은○' 자를 붙인 것이 많다. 자기를 겸손하게 표시하여 한낱 나무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초○' 자를 넣어 자호하기도 하였고, 선향의 땅이름을 담은 글자에 ○암 · ○당 · ○재 · ○헌· ○와 등의 글자를 붙여 짓기도 하였다. 그리고 선조의 호에서 한 글자를 따고 그 후손이라는 뜻으로 '후○' 자를 앞에 붙이든가, '운○' 자를 뒤에 붙여 짓기도 하였습니다. 또는 어느 부분에서 일가를 이룬 집안의 경우 그 후손이 선조의 호를 그대로 쓰고 ‘○○二代’ 식으로 대를 잇는다는 뜻을 표하기도 한다.


○ 철재(鐵齋) 오옥진 그리고 철재이대(鐵齋二代) 오윤영.

서각의 원류인 각자(刻字)에서 독보적 위치를 갖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기능보유자 오옥진의 호는 쇠집 철재(鐵齋)다. 4대를 이어온 목수집안의 손이다. 각자에서 일가를 이룬 그를 이어 장남 윤영의 호는 鐵齋二代다. 철재를 통해 사사받은 이들을 鐵齋刻緣이라 한다.


○ 이향(里香), 호호득(呼好得) 민학기

명성왕후 민비의 조카로 19세에 조선조 최연소 이조정랑이 된 민영익(閔泳翊. 1860-1914). 이향 민학기에게는 증조부 뻘이 된다.

 

선비화가로 자는 자상(子湘), 호는 운미(芸楣), 원정(園丁) 또는 천심죽재주인(千尋竹齋主人)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정치적 혼란기에 미국전권대신,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등의 요직을 지냈다. 개화기 외교업무를 통괄하는 자리에 있은 이유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일물로 기록되고 있다.

 

1905년 러일 전쟁 후 명성황후의 시해와 친일 정권이 수립되자 홍콩, 상해로 망명하여 오창석(吳昌碩) 등과 교유하였으며, 그곳에서 죽었다. 묵란(墨蘭), 묵죽(墨竹)을 특히 잘 그려 흥선대원군인 석파 이하응과 쌍벽을 이뤘다. 상해 망명 시 칠리향장(七里香蔣)이란 당호를 사용했다.

 

칠리향이란 ‘한눈에도 다 뵈는 아주 작은 마을에 맑은 향기를 전하는 집’이란 뜻이다. 이향은 선대의 당호에 장난기를 더해 지은 호다. ‘우리 할아버지가 7리를 풍기니 난 그 두 배 쯤 풍겨보지. 뭐! 십사리(十四里)는 그렇고 시오리향(十五里香) 정도!’ 그래서 사용한 것이 ‘시오리향’이고 그 중 두 자를 취해 ‘里香’이란 호를 사용하고 있다.

 

내 머무는 자리에서 한 시오리쯤 풍기는 맑은 향이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지었습니다. 주변에서 향기는 무슨? 발구린 내에 입구린내만 풍기고 다닌다는 조롱도 참아내며 사용하고 있지요. 담배도 하루 두 갑 정도 피워대는 왕골초니 그런갑다 이해하기를 빌며.

 

또 다른 호로는 호호득(呼好得)을 사용하고 있다. 전각을 새길 때 칼로 새겨낸 돌가루를 입으로 호호 불며 새기는데 이때 입부는 소리인 호호(呼呼)와 칼로 돌 새기는 소리인 득득 소리를 합치면 ‘호호득득’이 되는데 이  소릿말을 약간 바꿔 ‘득득[得] 새겨 호호 불면[呼] 좋은 한 세상을[好得 : 篆刻 一顆] 얻는다[득]’란 뜻으로 전각의 일과를 얻는 과정을 호로 표현 했다.


10) 특이한 호


○ 상백(想白) 이상백(李相佰)

국호도 없었던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를 가능케 만든 체육인 이상백(李相佰). 그의  호는 상백(想白)이다. 그의 4형제 모두가 독출한 지사들인데 그의 맏형은 이상정 장군이며 둘째형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항일 시인 이상화다. 농구를 올림픽 종목에 올려놓았으며 국제심판 1호도 그의 몫이다.

 

체육인 뿐 아니라 그는 사학자이기도 하다. 진단학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서울대사회학과를 만든 장본인이기 하고 몽양 여운형과 건준과 근로인민당 등의 활동을 했다. 체육을 통한 민족운동을 한 선각자다.

그의 형 이상화(李相和)의 호도 음이 같은 상화(尙火)다.


○ 이호우(爾豪愚) 이호우(李鎬雨)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의 호 이호우(爾豪愚)도 이름과 호의 음을 같게 한 경우이다. 이호우의 당호는 청우헌(聽雨軒)이다. 빗소리 들리는 집. 가람 이병기의 [청우헌에서 빗소리 듣다]라는 시조가 있다.


10) 호기(號記)를 적는다.

옛사람들은 자신이 호를 지으면 호를 짓게 된 변(辨)이나 기(記)를 짓기도 하고, 남에게 호를 지어 줄때도 그 글자의 출전이나 뜻을 밝힌 글을 주기도 하였지요. 이런 종류의 글을 호변(號辨) 혹은 호기(號記)라고 합니다. 다음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김지하의 호기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참고로 옮겨본다.


○ 노겸(勞謙) 김영일( 일명 김지하)-그의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글이다.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러해서 김지하의 지하 시대(地下時代)가 열리기 시작한다. 그 뒤로 내내 정보부 지하실과 경찰서, 유치장, 감옥, 지하 술집, 뒷골목과 허름한 싸구려 여관, 남의 집 문간방을 전전하거나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일쑤인 스산하고 을씨년스런 지하시대 삼십여 년이 펼쳐진다.


작명가(作名家) 김봉수 왈, “이것도 이름이야? 감옥에 서너 번은 족히 가겠구먼!” 그랬다.


심지어 한창 지하시대에는 ≪워싱턴 포스트≫의 한 특파원이 내게 처음 악수하며 던진 말이,


“헬로! 미스터 언더그라운드 킴! 이었으니까 뒷말은 할 필요가 없다.


‘언더그라운드’라면 혁명가를 뜻하는데, 모자라게도 그걸 은근히 즐길 때까지 있었으니 고생해도 싸다고 하겠다. 이름을 고치라고 충고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고집도 부렸지만 또 고쳐서 신문에 발표까지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엔 그것이 그것, 마찬가지로 나는 언제나 그대로 ‘지하’였다. 왜일까? 때가 차지 않아서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과시 나의 필명 지하의 유행과 삶에서의 지하시대는 필연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름은 ‘위(位)’요 ‘궁(宮)’이라 ‘중(中)’ 즉 ‘마음’이 놓이는 ‘자리’를 말함이다. 일종의 ‘닻’의 뜻이다. 큰 바람이 불기 전에 벌레들이 자리를 옮기는 것은 그 때문이니 내게 큰 변화가 올 것이 틀림없다.


연초에 역(易)에 물으니 왈,


‘견군용(見群龍)이라 했다.


천지가 요동하는 대개벽이다. 짐작대로다.


처신을 물으니 왈,


‘무수길(無首吉)’이라 했다.


‘목이 없으면 길하다’는 뜻이다.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목을 숙이지 않으면 가차없이 잘려나간다는 뜻이니 그러매 크게 깊이 겸손해야 겨우겨우 길하다는 말로도 된다. 그만큼 내게 다가올 변화는 심각하고 그에 대한 대응은 어렵다는 것이리라.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연초 한낮 내 방에 그냥 홀로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다. 문득 ‘노겸(勞謙)’이란 두 글자가 뇌리에 떠올라와 그 의미가 깊이 각인된다. ‘근로’와 ‘겸손’이니 언뜻 알아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앞으로 내 호(號)로 삼기로 작정하였다.


‘열심히 일하는 겸손’이요 ‘활동하는 무(無)’요 ‘아상(我相) 없는 노동자’, ‘노예 노동자’의 옛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게을렀으면 ‘근로’가 나오고 또 얼마나 오만방자했으면 ‘겸손’이 나오랴 싶었으니 앞날이 더욱 걱정되었다. ‘근로’와 ‘겸손’ 아니면 갈가리 찢겨나가 살 수조차 없는 운명이라는 내 맏아들 놈의 연초 카드점괘가 이미 나와 있었으니까.


물론 나도 안다. 『주역(周易)』의 겸괘(謙卦)는 노겸군자(勞謙君子)가 곧 타고난 천자(天子)이면서도 남의 밑에서 고개 숙여 근신하며 온갖 선행을 다 베푸는 그 아름다운 법(法)으로 결국 하늘을 차지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뜻에는 일말의 흥미도 없다. 나 같은 뼛속까지의 쌍놈, 민중에게는 도무지 안 맞는 뜻풀이기 때문이다. 그저 윤리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근로’와 ‘겸손’일 뿐이니 내게 지금 결핍되어 있고 앞으로 그렇게 일관하여 고개 숙이고 살다 가지 않으면 큰 실수를 범할 것이 빈번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굳세게 견지할 따름이고, 미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곧 ‘활동하는 무(無)’의 뜻이리라!

 

언어작업에서 훨씬 더 여백(餘白)과 틈과 침묵을 살리고 설명을 없애며 말을 줄이는 대담한 소통성(疏通性)으로 ‘흰 그늘’과 ‘한’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고 삶의 내면에서 무궁무궁 저절로 살아 생성하게 하는 그런 텅 빈 창조력의 언어구조를 갖추고 닦으라는 가르침으로 일단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제 작년 개천절에 공언(公言)한 대로, 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 꽃 한 송이 ‘영일(英一)’로 돌아가고자 한다. 내 인생과 민족 역사에 작고 소담하고 예쁜 삶의 꽃 한 송이만 피우고 가겠다는 조촐한 서원과 함께…….


그렇게 하여 결정된 것이 바로, 노겸(勞謙) 김영일(金英一)이다.


그런데 여러 친구들이 말한다. 영일은 너무 애 이름 같으니, 그냥 한글로 ‘김노겸’이라 부르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 편이 무던하고 친밀감이 있어 좋다는 것이니 원컨대 부디 앞으로는 이 이름을 즐겨 불러주길 바란다.


○ 공재(空齋) 진영근의 호기(號記)

다음은 전각가 ‘아주 특별한 선물 심인당 도장가게’의 주인 진영근이 ‘내 별명에 대한 사족’이란 이름으로 간략히 적은 호기다.


아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도 없이 텅 빈 놈이라는 뜻으로‘空齋’라 ‘빈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木口’, 부평초 같이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돌아 본다는‘顧萍軒’,

 

향기롭고 거창스런 理想은 엄두도 못낸다고 ‘察地人’, 허허로이 길을 걸어 간다는 ‘空步’,

 

수리산을 소요하면서 ‘수리산지기’, 마음을 새기고 마음에 새긴다는 ‘心印房’,

月·木房을 주재하면서 ‘月木舍主’, 분분한 세상사 능히 볼 수 있으나 굳이 말하지 않으리라

 

수리산 벙어리’, 虛名을 쫓다가 문득 깨달은 빛 좋은 ‘개살구’, 천둥에 개 뛰듯 살아온 부질없는 人生流轉을 되돌릴 수 없음을 지각하였는 바 이제부터는 ‘달팽이 걸음’, 사과나무도 시궁창도 다 보고 여기까지 왔다.

 

 역사속의 주한미군 :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1948년 이승만과 맥아더 장군

 

이승만(李承晩, 1875년 3월 26일 ~ 1965년 7월 19일, 황해도 해주 출생)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겸 교육가·언론인·정치인이며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대한제국 시대에는 협성회회보와 독립신문 주필, 교육계몽운동 등으로는 독립협회 활동 등을 하였고 도미 후에는 하와이에서 한인학원과 한인학교 등을 운영하였다. 일제 강점기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거쳐1919년 9월부터 1925년 3월 11일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직을 역임하고 주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다.1945년 해방 후 귀국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관하였으며 1948년 5월 30일부터 7월 24일까지 대한민국 초대 대한민국의 국회의장, 7월 24일부터 1960년 4월 26일까지 대한민국초대·2·3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사퇴한 뒤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는 우남(雩南), 본관은 전주이다.

 

               

                1951년의 이승만 대통령                                       한국 전쟁 중 이승만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아래는 양반가 사진모음

 

 

 

 

 

 

 

 

 

 

 

 

 

 

 

 

 

 

 

 

아호 짓는법


아호는 흔히 스승이나, 어른이 지어주는 경우와 스스로 자작 (自作)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대에는 주로 자작의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아호는 겸손을 미덕으로 하여 높고 고귀한 문자보다 소박하고 정감있는 문자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겸손에 있는 것이다.
간단히 아호의 작법(作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 뜻이 있는 문자를 사용하여야 한다. (인생관이나 좌우명을 알수 있다.)
둘째 : 직업이나 성격에 알맞은 문자를 선택하여야 한다.
셋째 : 이름과 마찬가지로 부르기 쉽고 듣기 좋아야 한다.
넷째 : 음양오행이나 수리오행에 서로 상극되는 경우를 피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 아호 두 글자의 획수를 합하여 길한 수리(數理)로 사용해야 한다.
여섯째 : 겸손한 문자를 사용해야 한다.

아호 (雅號)의 소재 (素材)

 

아호를 지을 때 가장 기초가 소재의 선택이다.
비(雨)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도 봄비가 내리는 날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춘우(春雨)
라는 아호를 가지고 싶지 않을까?
즉, 개인의 성격과 직업에 따라 소재를 변화 시킬수 있는 것이다.
소재를 분류시키면, 다음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첫째 : 이상 (理想)과 신념 (信念)의 소재 (素材)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좌우명(座右銘) 또는 목표 (目標)나 생각 등을 형이상학 (形而上學)적인 표현이나 의지 (意志) 의 표현으로 승화(昇華) 시키는 문자로 아호를 만드는데,
대표적으로 백 범 (白 凡) 김 구 선생이나 무애 (无涯) 양 주동 박사 그리고 허주 (虛舟) 김 윤환 의원등으로 백범의 경우는 白 + 凡 즉, 모든이가 평등함을 추구한 뜻 이 있고, 무애 (无涯)는 끝이 없는 일을 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고,
허주 (虛舟)는 빈배이니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아호가 아닐까?

 

 

둘째 : 지명(地名)의 소재 (오행분류 土)
평소 그리워하는 고향의 지명이나, 가고 싶은 곳의 지명 사랑하는 사람의 고향등을 사용하는 경우다. 율곡 (栗谷) 이 이, 우남 (雩南) 이 승만, 화담 (花潭) 서 경덕 등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율곡은 경기도 파주의 율곡촌을 뜻하고 우남은 서울의 중구도동 우수현 (雩守峴) 남족, 화담은 개성의 화담을 지칭한다.

 
셋째 : 산 (山)과 바위 고개 등 자연의 소재 (오행분류 土)
가장 많이 소재로 삼는데, 산의 고고함과 바위의 불변 등 지조(志操)나 의리(義理)의 대표적인 비유다. 다산 (茶山) 정 약용, 가산 (可山) 이 효석 , 거산 (巨山) 김 영삼 등의 인물을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넷째 : 강 (江) 호수(湖水) 바다 (海)의 소재 (오행분류 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바로, 순리(順理)와 복종(服從) 그리고 자연의 칭송(稱訟) 등의 뜻으로 사용하며 대표적으로, 단계 (丹溪) 하 위지(사육신의 일인), 퇴계 (退溪) 이 황, 해풍 (海風) 심 훈, 해공 (海公) 신 익희, 만해 (萬海) 한 용운 등이 있다.


다섯째 : 해(日) 와 달(月) 그리고 별(星)의 소재(오행분류 火)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하늘에 있다고 판단하여, 기원(祈願)과 소망(所望) 그리고 희망(希望)의 소재로 월남(月南) 이 상재, 몽양(夢陽) 여 운형 등이 사용하였으며, 해(日)와 별(星)은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여섯째 : 초목(草木)과 꽃의 소재(오행분류 木)
사군자(四君子)인 송 (松), 죽 (竹), 매 (梅), 국(菊)을 비롯하여, 낙엽(葉), 숲(林) 등을 소재로 하여, 의지(意志)와 불변(不變)을 또한 아름다움과 힘을 나타내는데 적합하며, 대표적으로 다산(茶山) 정 약용, 중수(中樹) 박 정희, 도원(道圓) 김 홍집 ,
송제(松齊) 서 재필 등이 있다.


일곱째 : 기후(氣候)와 계절(季節)의 소재와 기타
한난(寒暖)과 조습(燥濕) 그리고 사계(四季)를 뜻하는 문자의 사용으로, 개성(個性) 과 의지(意志)를 표현하고, 그 외 모든 분야에서도 소재를 찾을 수 있다.
운(雲) 우(雨) 설(雪) 상(霜) 한(寒) 서(暑) 춘(春) 하(夏) 추(秋) 동(冬) 등의 글자
이외에 호(虎) 견(犬) 용(龍) 구(龜) 학(鶴) 조(鳥) 돈(豚) 계(鷄) 등의 동물이름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아호를 짓는 시기


아호는 성인이 되면서,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직업이나 집안내력 주변환경에 의하여
가지게 되는데, 대부분 어떠한 분야에 입문하는 시기에 가지는 경우가 많다. 즉, 작가(作家)가 첫 작품을 내면서, 화가(畵家)가 첫 전시를 가지면서, 이런 시기에 부랴부랴 아호를 짓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어린시절이 지나면서, 아호를 짓는 경우가 많다.


역사 속 인물들의 아호 이제 유명인사들의 아호를 하나 하나 감정하면서 그 깊이를 알아보기로 하자. 각 인사 개인의 성격과 삶 그리고 인생관을 읽을 수 있다.


포은 (圃隱) 정 몽주(鄭 夢周 1337~1392) 성리학의 시조이며, 고려의 마지막 충신(단심가)

매죽헌(梅竹軒) 성 삼문(成 三問 1418~1456) 단종복위를 꿈꾸던 사육신의 대표적 인물

매월당(梅月堂) 김 시습(金 時習 1435~1493) 절개의 기인 학자.

퇴계 (退溪) 이 황(李 滉 1501~1570)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작가이며, 성리학의 달인.

율곡(栗谷) 이 이(李 珥 1536~1584) 조선시대 최고의 석학으로 신사임당의 아들.

토정(土亭) 이 지함(李 之函 1517~1578) 토정비결의 저자로 주역(周易)에 능통한 정치가.

우암(尤庵) 송 시열(宋 時烈 1607~1689) 성리학자이며 임금의 스승

다산(茶山) 정 약용(丁 若鏞 1762~1836) 실학자이며, 흠흠신서의 저자.

수운(水雲) 최 제우(崔 濟愚 1824~1864) 동학의 선각자.

녹두(祿斗) 전 봉준(全 琫準 1855~1895) 녹두장군으로 기억하는 동학군의 영수.

송제(松濟) 서 재필(徐 載弼 1864~1951) 의지의 독립신문과 충신.

일성(一醒) 이 준(李 雋 1859~1907) 이역만리(異域萬里) 헤이그에서 분사한 열사(烈士)

한헌샘 주 시경(周 時經 1876~1914) 한글보급의 선구자로 아호도 우리말 사용.

만해(萬海) 한 용운(韓 龍雲 1879~1944) 스님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우남(雩南) 이 승만(李 承晩 1875~1965)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초대 대통령

백범(白凡) 김 구(金 九 1876~1949) 민족의 지도자로 민족에게 피살.

도산(島山) 안 창호(安 昌浩 1878~1938) 교육의 등불이자 민족의 등불

해공(海公) 신 익희(申 翼熙 1894~1956) 독립, 민주, 투쟁의 정치가.

매헌(梅軒) 윤 봉길(尹 奉吉 1908~1932) 도시라 폭탄의 의사(義士)

월남(月南) 이 상재(李 商在 1850~1927) 민족 계몽의 선구자

고당(古堂) 조 만식(曺 晩植 1882~ ?) 이념을 초월한 애국지사(愛國志士)

중수(中樹) 박 정희(朴 正熙 1917~1979) 5.16혁명의 3공화국 대통령

  

아 나도 아호를 짓고 싶다.
나만의 아호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법 운치 있게 아호좀 지어서 내게 선물해볼사람?

내 시에, 내 아호가 새겨 있다면 난 너무 뿌듯할텐데........

그러니까 모두들 오늘부터 내 아호 짓기에 전념하도록 !

 

아호(雅號)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우리에게 본명은 그리도 귀한 것이라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본명은 모셔두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부르게
것이지요.

장가를 들면 새로 이름을 지어 불렀는데 이것을 ()라고 하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게 되면 만들어 부르던 이름이 있으니 그걸 아호(雅號) 혹은 ()라고
했습니다.
생전에 공덕이 많은 사람은 죽은 다음에 임금님이 이름을 하나 지어주는데 그걸 시호(諡號)라고 하니 이순신의 시호가 바로 '충무'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으로 부르지요. 임금님들도 죽은 다음에 시호(諡號) 받는데 그건 시호라고 하지 않고 특별히 묘호(廟號)라고 하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태조, 세종, 성종은 임금님의 묘호랍니다. 가끔은 성군이 아니라 묘호를 받지 못한 임금님이 있으니, 광해군, 연산군이 바로 그런
임금님이지요.

 

작명과 호 짓기

♤생년· 생일에 따라 쓰지 말아야 할 글자

 

후천운에 해당하는 이름은 성명 철학적으로도 좋아야 하겠지만,

선천운에 해당되는 사주와도 조화를 이루어야 완전무결한 이름이 된다.

 

가령 예를 들어 辛炫熙(신현희)라는 이름은 성명학으로 볼 때

대길(大吉)한 이름이지만 그 사람의 사주에 火가 많다면

더운 몸을 쩔쩔 끓는 더 더운 방에 집어 놓는 형상으로

성명과 사주가 부조화를 이루어 좋은 이름이 그 구실을 못하게 된다.

 

이처럼 자기가 태어나 선천적 명(命)과 성명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자기가 태어난 날(사주학에서는 일진<日辰>이라 함)과

태어난 해(사주학에서는 태세<太歲>라 함)에 따라

피해야 하는 글자는 다음과 같다.

 

 

·子日生 (쥐띠생): 午, 旿, 五, 吾, 晤, 奧

 

·丑日生 (소띠생): 美, 米, 味, 未, 眉

 

·寅日生 (범띠생): 信, 新, 伸, 辛, 晨, 臣, 愼, 申

 

·卯日生 (토끼띠생): 有, 裕, 柔, 由, 侑, 幼, 辰, 振

 

·辰日生 (용띠생): 述, 術, 戌, 茂, 琵

 

·巳日生 (뱀띠생): 海, 亥, 解, 諧

 

·午日生 (말띠생): 子, 慈, 字, 滋

 

·未日生 (양띠생): 祝, 丑, 子, 慈, 者

 

·申日生 (원숭이띠생): 寅, 印, 仁, 引, 麟

 

·酉日生 (닭띠생): 妙, 卯, 苗

 

·戌日生 (개띠생): 珍, 眞, 鎭, 辰, 進, 海

 

·亥日生 (돼지띠생): 士, 斯, 司, 師, 舍

 

 

위에서 열거한 글자를 이름에 사용하면 항상 궂은 일이 생기고

가정 화목(和睦)이 안되며 수많은 역경 속에

부상· 수술· 조실부모· 애정불길· 횡액 등의 흉운을 맞게 된다.

 

 

예를 들어 1991년에 태어난 아기에게는 자(慈),

축(祝)자가 이름에 들어가면 안되고 양력 12월 6일에 태어난 아기의 일진은

경술일(庚戌日)로 술(戌)일이므로

珍(보배 진) 鎭(진정 진), 進(나갈 진) 등을 이름자에 쓰면

사주와 이름의 부조화로 살아가는데, 장애가 많게 되는 것이다.

 

 

호(號)에 사용하는 글자

 

 

다음 한자는 주로 호(號)를 짓는데 사용할 수 있는 자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花(꽃 화) 紅(붉을 홍) 俠(협기 협) 鶴(학 학) 太(클 태) 春(봄 춘)

鐵(쇠 철) 川(내 천) 峻(클 준) 鼎(솥 정) 丸(둥글 환) 鴻(기러기 홍)

慧(똑똑할 혜) 翰(깃 한) 波(물결 파) 椿(나무 춘) 千(일천 천) 埈(높을 준)

帝(황제 제) 晃(밝을 황) 洪(클 홍) 呼(부를 호) 漢(한수 한) 捕(잡을 포)

出(날 출) 靑(푸를 청) 泉(샘 천) 浚(맑을 준) 照(비칠 조) 皇(황제 황)

厚(두터울 후) 虎(범 호)行(다닐 행) 杓(자루 표) 忠(충성 충) 楚(초나라 초)

天(하늘 천) 池(못 지) 潮(조수 조) 活(살 활) 羲(기운 희) 豪(호걸 호)

杏(은행 행) 豊(풍년 풍) 充(채울 충) 草(풀 초) 哲(밝을 철) 稷(피 직)

朝(아침 조) 輝(빛날 휘) 湖(호수 호) 鄕(시골 향) 必(반드시 필) 兌(곧을 태)

村(마을 촌) 澈(맑을 철) 塵(티끌 진) 州(고을 주) 華(빛날 화) 弘(클 홍)

香(향기 향) 荷(연꽃 하) 台(별 태) 秋(가을 추) 徹(관철할 철) 震(진동할 진)

朱(붉을 주) 月(달 월) 立(설 립) 惟(생각 유) 堯(높을 요) 魚(물고기 어)

巖(바위 암) 蓍(시초 시) 樹(나무 수) 城(성 성) 先(먼저 선) 鵲(까지 작)

偉(클 위) 維(벼리 유) 龍(용 용) 彦(클 언) 岩(바위 암) 新(새 신)

穗(이삭 수) 世(인간 세) 泄(샐 설) 汕(통발 산) 壯(장할 장) 臥(쉴 와)

禹(임금 우) 淵(못 연) 央(가운데 앙) 室(집 실) 壽(목숨 수) 蘇(들깨 소)

雪(눈 설) 西(서녘 서) 奬(포장할 장) 遠(멀 원) 栗(밤 율) 雲(구름 운)

連(연할 연) 昻(밝을 앙) 實(열매 실) 肅(나아갈 숙) 紹(이를 소) 省(살필 성)

誓(맹서 서) 章(문채 장) 苑(뜰 원) 垠(언덕 은) 芸(향풀 운) 蓮(연꽃 연)

鶯(꾀꼬리 앵) 雅(맑을 아) 舜(임금 순) 松(소나무 송) 聲(소리 성) 栖(쉴 서)

材(나무 재) 旺(왕성할 왕) 隱(숨을 은) 熊(곰 웅) 靈(신령 령) 野(들 야)

牙(어금니 아) 筍(죽순 순) 修(닦을 수) 聖(성인 성) 石(돌 석) 晶(수정 정)

越(넘을 월) 林(수풀 림) 柳(버들 유) 詠(노래할 영) 亮(밝을 양) (기러기 안)

丞(도울 승) 受(받을 수) 星(별 성) 仙(신선 선) 鵬(붕새 붕) 煩(번민할 번)

裵(옷길 배) 舞(춤출 무) 穆(화할 목) 瑚(산호 호) 唐(당나라 당) 鷺(백로 로)

暖(따뜻할 난) 弓(활 궁) 飛(날 비) 逢(만날 봉) 伐(칠 벌) 陪(모실 배)

默(잠잠 묵) 睦(친목할 목) 麻(삼 마) 堂(집 당) 雷(우뢰 뢰) 落(지질 낙)

槿(무궁화 근) 彬(빈할 빈) 烽(봉화 봉) 凡(무릇 범) 柏(잣 백) 珉(옥돌 민)

夢(꿈 몽) 滿(가득찰 만) 篤(도타울 독) 鹿(사슴 녹) 湳(물이름 남)

錦(비단 금) 司(주장할 사) 鳳(새 봉) 范(벌 범) 白(흰 백) 密(몰래 밀)

廟(사당 묘) 盟(맹서할 맹) 董(감독할 동) 能(능할 능) 南(남녘 남)

琴(거문고 금) 泗(물 사) 蓬(쑥 봉) 竝(아우를 병) 百(일백 백) 箔(발 박)

無(없을 무) 冥(어둘 명) 杜(막을 두) 陵(능 능) 覽(볼 람) 氣(기운 기)

肆(방자할 사) 釜(가마 부) 寶(보배 보) 白(성 백) 迫(쉴 박) 武(호반 무)

銘(새길 명) 燈(등 등) 達(통달할 달) 朗(밝은 랑) 佳(착할 가) 仕(살필 사)

崩(산무너질 붕) 輔(클 보) 澤(못 택) 放(놓을 방) 茂(무성할 무) 溟(바다 명)

濫(넘칠 람) 潭(연못 담) 郞(사내 랑) 歌(노래 가) 烘(화톳불 홍) 溪(시내 계)

炬(횃불 거) 絳(강호 강) 感(감동할 감) 覺(클 각) 觀(볼 관) 驚(놀랠 경)

巨(클 거) 綱(벼리 강) 岬(산기슭 갑) 各(각 각) 光(빛 광) 境(지경 경)

杰(호걸 걸) 鋼(강철 강) 甲(갑옷 갑) 幹(줄기 간) 廣(넓을 광) 鏡(거울 경)

繫(맬 계) 江(강 강) 鉀(갑옷 갑) 菅(왕골 관) 丘(언덕 구) 谷(골 곡)

谿(시내 계) 芥(겨자 개) 岡(산등성이 강) 葛(칡 갈) 邱(언덕 구) 公(귀 공)

季(끝 계) 蓋(덮을 개) 剛(굳셀 강) 渴(물결 갈) 菊(국화 국) 攻(칠 공)

桂(계수 계) 開(열 개) 堈(독 강) 監(볼 감) 然(그러할 연) 復(다시 복)

異(다를 이) 浮(뜰 부) 海(바다 해) 日(날 일) 森(빽빽할 삼) 皓(흴 호)

晩(늦을 만) 常(항상 상)

 

 

 

이름자에 쓰지 말아야 할 글자(1)

 

고대로부터 우리나라는 모든 문화와 역사를 한문자(漢文字)로 표기해 왔기에,

이름 역시 한문자로 된 것이 대부분이다.

 

한자(漢字)는 글자마다 뜻이 있고 어떤 모양이 담겨 있으므로 그 글자는 각

개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따라서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때문에 성명자에 쓰이는 글자에 뜻이 나쁘거나

모양이 나쁜 한자를 쓰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성명자의 뜻은 그 사람의 정신과 인품의 기질· 운세의 길흉을 암시하며,

처세의 방향과 생활 형태의 무형적인 면에 암시적인 영향을 주므로

이름의 자의(字意)가 가급적 뜻이 깊고, 웅대하고 고상하며 명랑하고

진선미(眞善美)한 뜻을 내포한 글자를 쓰는 게 좋은 것이다.

 

특히 병약· 죄악· 재해· 불길의 뜻이 담긴 글자는 절대로 쓰지 않아야 한다.

또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글자(예: 卍자 등 . . . .)는 이름에 쓰지 않는 게

상식인데 이외에도 통계 수치상으로 볼 때 다음의 한자는 행운보다는

불운을 야기시키므로 이름자에 쓰지 않는 것이 좋다.

 

 

愛 (사랑 애): 특히 여성에게 매우 불길한 글자로 여성은 한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받아야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받으면 고귀함이

상실된다. 따라서 이 글자는 부정(不貞)· 음란(淫亂)을 암시하여 일찍부터

이성 관계를 갖는 등 애정생활에 번민이 많게 되고, 부부 운에 이별을

유도하거나 간통(姦通) 등의 흉한 글자이며 부모 형제와도 인연을

박(薄)하게 한다.

 

 

光 (빛 광): 두뇌는 명석하나 체질이 약해 신병(身病), 쇠약하고 빛은 눈을

부시게 하므로 시력이 약하고 다소 단명(短命)하거나 불구(不具)수가 있으며,

명예는 있으나 재운(財運)에 풍파가 많다.

 

 

天(하늘 천): 부모 덕이 없고 빈한하며 성공이 미약하고 매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며, 특히 여자의 이름자에 天이 있으면 남편 운이 없어 재혼을 하는 수가

많고 고독과 불행을 초래한다.

 

 

大(큰 대): 살아가는데 심적(心的)고통이 많고 성공하기까지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며 인덕(人德)이 약하고 조난(遭難)·형액(刑厄) 등을 암시하는 흉자(凶字)로,

여자에게 있어서는 생계를 꾸려 가야 하는 고통과 가정에 적막이 있으며

특히 장남(長男)·장녀(長女)가 아닌 차남(次男)·차녀(次女)가 이름에 쓰면

손위 형제· 자매가 무능하고 실패가 많게 된다.

 

 

乭(돌 돌): 분별력이 약하고 의협심은 있으나 천박하며 일가 동기간에 덕이 없고

불우 빈곤하다. 특히 여성은 석녀(石女: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여인)가 되기 쉽다.

 

 

美(아름다울 미): 온순 다정하나 소년 시절이 불우할 수 있고 고독하며 일생을

통해 한 번은 크게 파란곡절을 당하고 부부운도 좋지 않다. 또한 건강이

허약하여 수술(手術)수가 있으며 여성적 건강이 약하거나 냉증(冷症)이

있게 된다. 다만 연예계에 종사하면 인기는 반드시 얻을 수 있다.

 

 

蘭(난초 란): 부부운과 자녀운이 쇠약하고 고독하며 신병(身病)을 앓거나

단명(短命)하게 된다.

1920년대 화류계(花柳界) 여성들이 이름 글자에 많이 썼다.

운세를 비하시키는 자이며, 모든 일에 결과를 쇠패(衰敗)하게 한다.

 

 

敏(민첩할 민): 성품이 강직하고 예민하며 인덕(人德)이 적고 노력만큼의

결과가 적으며 정상 일보 직전에서 물러서는 경우가 많게 된다.

 

 

日(날 일): 성품은 청수(淸秀)하나 모든 일을 헤쳐 나가는데 장애가 많고

부부운, 재물운이 약하며 포부, 이상은 광대하나 실현되지 않고

항시 고독감이 따르며 육친무덕(六親無德)을 초래한다.

 

 

子(아들 자): 사주에 물(水)이 없을 때는 사용해도 좋으나 그 외엔 흥(興)과

패(敗)가 교차하여 재액(災厄)이 많고, 가정에 불화가 자주 일어나며 부부

이별수가 있고 매사에 곤액(困厄)이 따른다.

특히 말띠· 양띠 또는 말날(末日)· 양날(羊日)에 출생한 사람이 子를 쓰면

흉이 더욱 증폭되어 만사가 불길(不吉)하다.

 

 

雲(구름 운): 바람부는 대로 흘러가는 뜬구름처럼 중심이 약하고 구름이

모여 비가 되듯 장마에 모든 것이 흩어져 버리는 형상처럼

재물이 새어나가고 색정(色情)의 난(難)이 있다. 역술인이나 스님의

호(號)에 많이 쓰는 독특한 글자이므로 일반인이 쓰면 좋지 않다.

 

 

庚(별 경): 오행(五行)상 금(金)에 해당하는 글자로 태어난 날

즉 일주(日主)가 갑(甲)인 사람에겐 특히 불길한 자이다.

대체로 인덕이 따르지 않고 앞길에 막힘이 많아 고독하고 신체 허약하며

교통사고· 수술 등의 흉터를 지니게 되고 가정도 우울하며 삶에

신고(辛苦)가 많다. 단 두뇌는 명석하며 군인·경찰·법률·의학계통에 종사하면

흉을 면할 수 있다.

 

 

明(밝을 명): 온순한 성품에 두뇌 회전이 명석하나 운세에 굴곡이 심하고

금전이 잘 모아지지 않으며 생활하는데 항시 변수가 많은 운이 유도되어

풍파가 있고 부부 애정운도 박약(薄弱)하다.

특히 건강상 시력과 심장이 약하게 되니 건강이 불리하게 된다.

 

 

仁(어질 인): 고집과 편견이 강하고 삶에 시련과 풍파가 많으며 건강운이

좋지 않다. 가정에 적막감이 흐를 수 있고 대외적으로 인덕(人德)이 약하며

특히 이름에 이 글자가 있으면 늦게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동업(同業)을

절대 삼가야 한다.

 

 

花(꽃 화): 아름다운 꽃은 쉽게 꺾이고 시드는 것처럼 일찍 이성에 눈을 떠

사랑에 고초와 실패를 겪기 쉽고 주관이 약해 마음에 흔들림이 많게 된다.

재물복이 약하며 고독· 구설· 이별· 허영· 과소비 등을 유발시키는 글자로

과거 화류계(花柳界) 여성 이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자이기에

여성에게 심히 불길한 글자이다.

 

 

石(돌 석): 일에 좌절이 많아 재물 모으기가 힘이 들고 다소 우직하고

고집이 세며 융화력이 없어 대인관계에 처세가 불편하다.

자식 농사가 잘 안되고 부부 애정운마저 허약하여 가정에 찬 기류가

흐르는 글자이다. 단, 아호(雅號)에 사용하는 것은 무방하고 오히려

큰 기백을 준다.

 

 

山(뫼 산): 고지식하고 강직한 성격으로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 남과

융화할 줄 모르고, 산을 오르려면 험준하듯 생애에 고통이 많고

고독하며 일에 시작과 끝이 무미건조하여 곤궁이 있으며 부부간에

정(情)이 소홀하고 자식 근심이 있다.

 

 

鶴(학 학): 항시 외롭고 고독이 따르며 불시에 생각지도 않은 불행이

엄습하고 백원 벌면 이백원 나가는 형상이어서 금전 고통이 따르고 매사에

배운 지식과 능력을 활용치 못하며 여자는 홀로 되는 경향이 많다.

호(號)나 법명(法名)에 쓰이는 자이다.

 

 

鐵(쇠 철): 성품은 영리하고 민첩하나 성질이 난폭하기 쉽고 업무에

손재(損財)와 재난이 따르며 모든 일이 불성(不成)되기 쉽다.

특히 공부운이 약하고 생각없이 처신을 해 화근을 자초하는 자이다.

 

 

月(달 월): 낭만적이고 감정이 풍부하나 의지가 나약하며 밤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은 어둠만 밝혀 주지 자신은 받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인덕(人德)이 없고 고독하다. 달에게 소원을 비는 형상의 무속이 있어서인지

무속인의 호(號)에 많고 옛날 기녀(妓女)의 이름에 많이 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順(순할 순): 일시적인 성공은 있으나 실패가 따르고 신경이 예민하며

부부지간에 공방수(空房數:이별을 의미)가 있다. 중년말(中年末)부터 불운 속에

곤궁하게 지내는 수가 많게 되고 건강상 냉증(冷症)이나 잔병치레 및 관절

계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好(좋을 호): 여자(女)와 남자(子)가 서로 마주 보는 형상이니 바람기가 내포되어

있고, 매사 실속 없는 생활 속에 주거 변동과 직장 이동이 많아 생활 터전이

불완전하며 무슨 일이든 속성속패(速成速敗)하고 시종일관할 수 없게 만드는

자이다.

 

 

國(나라 국): 정신이나 육체에 기가 약하여 모든 일이 쇠약해짐을 나타내고

관재구설(官災口舌)이 많으며 조난(遭難), 박명(薄命)하기 쉽다.

 

 

新(새 신): 성품이 온순하고 사리는 밝으나 고독과 곤고(困苦)가 많으며

새것에는 쉽게 때가 잘 타듯 타인의 중상모략이 종종 있게 되고

풍파도 많으며 신체가 허약하게 되어 장수(長壽)할 수 없게 된다.

 

 

貴(귀할 귀): 부모 형제의 덕이 전혀 없고 천박하다. 가정불화 속에 부부간의

고정(苦情)으로 이별수가 많으며 부귀영화와 수명이 어느 한순간에 흩어지고

조난· 객사(客死)· 단명(短命)한다.

 

 

挑(복숭아 도): 끈기가 없고 허영이 많으며 일신이 고되고 되는 일이 없다.

방랑생활 속에 말년이 고독하게 되며, 기녀 이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男(사내 남): 밭(田)에서 힘(力)을 들여 밭갈이하는 형상 또는 열(十)식구의

입(口)을 위해 힘(力)을 써야 하는 형상이니 항시 눈코 뜰새없이 바쁘지만

소득이 적고 고독하며, 부부간에 갈등이 많고 자손 근심이 있게 된다.

 

 

女(계집 여): 천박할 수 있고 고독과 산재(散財)를 초래하게 되며

부모 형제의 덕이 없고 불의의 재난으로 고생을 면하기 어려우며

배우자덕이 없어 결혼에 실패하기 쉽다. 남녀 모두 만혼(晩婚)을 해야 하며,

여성은 결혼 후에도 사회 활동 등 직업을 갖는 게 좋다.

 

 

竹(대 죽): 겉은 화려하나 속이 비어 있는 형상으로 실속없는 생활이

지속되고 자존심만 강하고 아집 속에 융화력이 없어 인덕(人德)도 없고

고독하며, 가정에 수심이 많아 애정운도 적막하게 된다.

 

 

點(점 점): 흔히 몸이나 얼굴에 점을 갖고 있는 특징으로 인해

'점박이'니 '점순이'니 하며 다소 천박하게 사용하는 글자로

관상학에서도 면무호점(面無好點)이라 하여 얼굴에 있는 점치고

좋은 점이 없다 하였다.

성명학에서도 이 자를 사용하면 부모 형제간에 덕이 없고 건강이 약하며,

재난·관재(官災)·부상 등과 함께 부부간의 갈등과 이별을 유도하게 되어

있으며 출세길이 막히게 된다.

 

 

福(복 복): 흔히 지지리도 복이 없고 가난한 집안에서 아기가 탄생할 때

너는 오복(五福)· 칠복(七福)· 만복(萬福)을 지녀 부디 행복하라는 염원에서

이 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구한말(舊漢末)이후 주로 머슴의 이름에 많이 나타나는 자로 노력도

하기 전에 그저 하늘의 복만을 구원해서인지 몰라도 도리어 천박하게 되며

곤궁 속에 금전적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성에게는 남편덕이 없게 된다.

 

 

鳳(새 봉): 봉황(鳳凰)이라는 새는 상상의 새로 길조(吉鳥)의 상징이지만

성격적으로 자만하거나 교만해서 매사에 독불장군식으로 대처해 고독하고

성공하기까지 심한 고생을 한다.

가정도 불화하기 쉽고, 특히 여성에겐 남편을 극(剋)하고 자손을 파(破)할

수 있어 독수공방(獨守空房)하기 십상이다.

 

 

萬(일만 만): 꽃은 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형상이니 매사에 결과가

무산되고 노력의 대가가 없으며 남자는 정력(精力)이 약할 수 있고

여자는 난산(難産)하기 쉽다.

 

 

梅(매화 매): 매화는 눈 속에 피는 것이기 때문에 청순 가련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일신에 장애가 많고 배우자덕을 포함, 인덕이 없어 고독하며 건강상 여성적 질환을 앓을 수 있다.

과거 화류계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많이 볼 수 있었던 자(字)이다.

 

 

龍(용 용): 구렁이가 천년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하늘의 맑은

이슬만 먹어야 용이 된다는 전설처럼 성공하기까지 그 누구보다도

고생과 시련이 심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에 인덕이 약하고

주위로부터 경쟁· 시샘· 구설이 많으며 스캔들도 종종 있을 수 있다.

개띠(戌年生)나 개일(戌日)에 태어난 사람이 용자를 쓰면 흉이 증폭된다.

단, 용자가 이름에 있으면 인내하기 어려운 숱한 고생을 한 후에

겨우 크게 성공하는 장점도 있으나 대부분 중도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虎(범 호): 사자는 떼를 지어 행동하지만 호랑이(범)는 혼자 행동하듯

자만심이 강하고 과격하며 좌충우돌(左衝右突)하는 성격으로 일에 매듭이

없으며, 병약하거나 단명하기 쉽다. 특히 여성은 남편을 내쫓는 형이 되어

과부수이며 원숭이띠(申年生),원숭이날(申日),닭띠(酉年生), 닭날(酉日)에

태어난 사람이 호(虎)자를 쓰면 세상을 원망하는 일이 많이 생기고 매사가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된다.

 

 

末(끝 말): 과거 막내딸의 이름(末淑<말숙>, 末子<말자>)에 많이 사용한

글자로 어떤 사물이나 일에 종말 즉 끝남을 의미하기에 육친무덕(六親無德)

하여 고독하고 신체 허약하며 재물이 모이질 않고 흩어지며 부부간에 반목과

언쟁으로 가정에 불편함이 많게 된다.

 

 

未(양 미): 부모 형제의 덕이 없게 되고 고독 · 불행을 초래(招來)하는 자(字)로

특히 소띠(丑年生), 소날(丑日), 개띠(戌年生), 개날(戌日)에 태어난 사람이

이 자를 쓰면 흉이 더욱 증폭된다.

 

 

地(땅 지): 무릇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사물(事物)이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사장되어 버리듯 삶의 변화가 많아 신역(身役)이 고되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돌아오지 않으며 재화(災禍)와 조난(遭難)을 당하기 쉬우며 성공운에

막대한 방해를 준다.

 

 

幸(행복 행): 모든 것에 기초 부족으로 물거품이 되기 쉽고 살아가는데

시비(是非)가 많게 되며 부상· 수술 등의 횡액 속에 가슴 조이는 일이

많게 되고 천박할 수 있다.

 

 

富(부자 부): 천박하고 빈천하기 쉬우며 좋은 일 속에서도 항상 마(魔)가

끼어 복(福)이 깨지고 뜻밖의 재앙으로 말년(末年)이 쓸쓸하며 재물이

물처럼 새어나가는 등 경제적 고충이 많게 된다.

 

 

春(봄 춘): 잠깐 지나가는 봄에 비유하여 일에 의지가 약하고 막힘이

많으며 특히 여성에게 있어 화려함은 있으나 허영이 있고, 애정운이

쇠약하여 배우자복이 없으며 혼전혼후(婚前婚後)를 막론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야 하는 고달픔이 있게 된다. 단, 남성은 명예로 출세하는 자가 많다.

 

 

夏(여름 하): 여름엔 온갖 해충(害蟲)이 기승을 부리듯 업무에 파란곡절이 많고

뜻하지 않는 사고나 주색에 빠지기 쉽고 매사에 결실이 없으며 특히

수족(手足)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 자가 이름에 있는 사람은 운전시

교통사고가 많으니 각별히 신경을 써 운전에 조심해야겠다.

 

 

秋(가을 추): 쓸쓸히 떨어지는 낙엽처럼 고독하고 일시적인 성공은 있으나

곧 정상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며 부부간에 정(情)이 부족하게 된다.

 

 

冬(겨울 동): 북풍한설(北風寒雪) 눈보라의 겨울엔 산천초목(山川草木)이

얼어붙듯 끈기와 자신감의 결여로 일마다 실패가 많고 가정에도 냉기가

흘러 보이지 않는 부부 갈등 속에 이별수까지 있으며 고생· 부상· 수술

등을 야기시키며 특히 여성에겐 생식 부위에 질환이 있을 수 있다.

 

 

※ 흔히 주변에서 봄에 태어났다고 춘심(春心)이니 하는 계절과 연관된

이름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상(夏相), 추자(秋子), 동숙(冬淑) 등이 모두

계절적 분류의 이름인데 대체로 길(吉)보다는 흉(凶)이 많으며

오행상(五行上) 봄을 뜻하는 春(춘)자는 木이고 여름인 夏(하)는 火,

가을의 秋(추)는 金, 겨울을 뜻하는 冬(동)은 水이기에 위 글자를

이름에 사용하면 어느 한 오행이 편협 치중되어 다른 오행과 부조화를

이루어 인생항로에 지장을 주게 된다.

 

사주에 木이 많으면 인덕이 없고 중풍을 앓을 수 있는데 春(춘)자를 쓰면

안되고, 사주에 火가 많으면 매사에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고

심장이 약하게 되는데 夏(하)자를 쓰면 흉이 증가되고,

사주에 金이 많으면 매사에 결실이 없고 냉정한 면이 많게 되고,

秋자를 쓰면 더욱 손실· 손해가 많아지고

사주에 水가 많으면 모든 것이 물에 떠내려 가버리듯

삶 전체에 안정을 잃게 되고, 冬(동)자를 이름에 사용하면

홍수가 나서 재액을 당하듯 부평초(浮萍草)같이

정처없는 생활을 하게 되어 일생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되어 있다.

 

사주든 성명학이든 오행이 중화(中和)되어야 복록을 누리고 대내외적으로 안정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계절 단어에 해당하는 春夏秋冬의 글자는 이름에 사용치 않는 게

선천적 운명에 해당하는 사주와 후천적 운에 해당하는 이름에서

상호 오행의 부조화를 일으키지 않게 한다.

 

 

玉(구슬 옥): 두뇌는 명석하나 건강에 문제점이 있고 고독하며 부부 사이에

가정불화가 많으며, 신경이 무척 예민하고 항시 근심· 걱정이 떠나질 않으며

조난(遭難)· 객사(客死)· 단명(短命)을 초래한다.

 

 

王(임금 왕): 권좌(權座)의 최고봉 자리는 언제나 외롭고 고독하고 일도 많으며

타인에게 구설· 모함도 받고 쇠패(衰敗)와 산재(散財) 속에 일생을 통해

곤란지경이 많다.

 

 

勝(이길 승): 업무에 중단과 좌절이 많고 대인관계에 하극상(下剋上)의 일을

저질러 인덕과 출세에 손상이 오기 쉬운 자이나 직업이 스포츠 계통의

승부세계에 있는 사람은 도리어 전도양양하고 승승장구할 수 있다.

 

 

仙(신선 선): 사람(人)이 산(山)에 들어가 신선(神仙)이 되려 하면 세속의 온갖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버려야 하듯 고독하고 재물이 따르지 않으며,

부부 이별수 속에 갖은 고생을 다하는 자로 특히 여성에게 있어서는

그 흉(凶)이 더욱 증가된다.

 

 

吉(길할 길): 다정한 성품이나 매사 말뿐이고 실천력이 없으며 업무가

부진하고 곤궁하다. 주거가 안정되지 못하고 주색(酒色)을 조심해야 하며

가정운이 쇠약하다. 조난(遭難)· 교통사고· 형액(刑厄)을 초래하기 쉽다.

 

 

實(열매 실): 깨끗하고 고상한 성품이지만 하는 일이 막히고 끊기는 수가 많아

재물이 모아지지 않고 고독· 조난의 우려가 있는 불길(不吉)의 연속성이 있는

자이다.

 

 

※ 과거 우리 나라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을 때 보릿고개라는 궁핍한 단어 속에

헐벗고 굶주린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에 많이 상용된 이름자를 보면 여성은

子(아들 자), 美(아름다울 미), 花(꽃 화), 女(계집 여), 順(순할 순), 英(꽃부리 영),

등이고 남성은 福(복 복), 吉(길할 길), 乭(돌 돌), 壽(목숨 수), 龍(용 용), 등으로

통계적으로 볼 때 성명학적으로 불길한 자가 많았으며

또한 성명(姓名)을 종합감정(綜合鑑定)해 보아도 불길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뜨거운 교육열에 힘입어 지식이 고급화되면서

이름자 또한 매우 길(吉)하여졌고 그래서 그런지 개인의 부(富)도 늘고

사회도 풍요로워졌다.

따라서 대다수 국민들이 과거보다는 훨씬 좋은 이름자를 갖기 시작하면서

가정(家庭)의 흥왕(興旺)이 사회와 국가에 직결된 것이다.

 

 

鑛(쇳덩이 광): 일에 막힘이 많고 두뇌 회전이 빠르지 못하며 다소 우직

과격한 성품에 재수(財數)가 매우 유동적이며 안정된 생활이 결여되고

고독하며 신체 허약하게 된다.

 

 

良(어질 양): 배짱은 크나 실속이 없고 항시 주거가 불안하며 발전이 없는

자이다. 여성에겐 고독을 유도하며 이성적 갈등 속에 가정이 적막하다.

 

 

分(나눌 분): 자신에게 주어진 복(福)마저 반으로 감소· 소멸되고 이동이

잦고 객지에서 고생하며 타인의 덕이 별로 없는데다가 배우자 복이 없어

부부 이별수가 있고 모아 두었던 금전마저도 뿔뿔이 흩어진다.

 

 

粉(가루 분):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듯 마음에 중심이 약하고

정처없는 불안정한 생활 속에 애정에 파란(波亂)이 많아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하며 항시 경제적 고충으로 삶이 고달프게 된다.

 

 

壽(목숨 수): 그 옛날 문명의 혜택이 적고 학질· 염병 등으로 남녀노소

죽는 사람이 많을 때 또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손을 얻어

오래오래 병 없이 장수하라고 즐겨 쓰던 자이나 반대의 운기(運氣)를

유도하여 단명하지 않으면 심한 생활고 속에 번민이 많고, 일가 동기간

덕이 없이 고독하며 부부간에 고충이 많다. 건강상 고혈압· 당뇨병·

간 기능 계통에 유의해야 한다.

 

 

岳(산 악): 악(嶽)의 고자(古字)로 험준한 산령을 넘듯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악은 곧 악(惡: 모질 악)자와 발음이 비슷한 관계로 성명에 이 악(岳)자가

있으면 다소 몰인정하고 잔혹한 면이 잠재해 있고, 부부간에 정이 없어

이별수를 겪게 되고 변란· 형액(刑厄)· 풍파(風波) 등을 초래한다.

 

 

極(지극할 극): 매사가 극단으로 흐르기 쉽고 부모덕이 없으며 생활이

안정되지 못해 방랑, 주거 불안이 오며 높은 곳에 오르면 현기증이 나듯

두통· 정신질환이 있을 수 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남편을 극(剋)하는 경향이 많게 된다.

 

 

法(법 법): 성품이 편협적이고 융통성이 없으며 삶을 통해 재해(災害)와

곤고(困苦)가 많다. 매사가 흐르는 물(水)에 씻겨내려 가듯(去) 일정한

정착지가 없어 생활이 빈약하고 박명해진다.

 

 

命(목숨 명): 의지할 곳 없이 평생 고독과 재액(財厄)이 따르고 생활환경이

불우하게 되며 건강상 문제점이 있어 신체 병약하며 단명을 초래하게 된다.

여성은 남편덕이 없어 재혼수가 많으며 자식문제로 골치를 앓게 되고

혼전혼후를 막론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신역이 고되다.

 

 

遠(멀 원): 부모 형제덕이 없고 타향에서 고생하며 매사에 불화와 대립된

의견으로 고립되고 좌절· 실패 속에 일에 매듭이 없이 흐지부지 끝나는

관계로 재물복이 없으며 삶에 파란곡절이 많고 건강에 문제점이 돌출된다.

 

 

海(바다 해): 잔잔한 바다도 일시에 파도가 치고 풍랑을 일으키듯

인생살이에 고난과 풍파가 반복되고 재물이 새어나가며

특히 여성은 고단한 삶 속에 애정운과 자녀운이 쇠약하다.

불교의 법명(法名)이나 호(號), 연예인의 이름으로는 좋다.

 

 

英(꽃부리 영): 남자는 일신에 영화가 있고 자기가 맡은 업무에 두각을

나타내며 출세할 수 있으나 여자는 불길한 운을 유도하는 자로 자존심,

자만심이 강하고 팔자를 세게 만들어 부부간에 갈등을 유발시키고

자녀운이 적으며, 가정이 불화하기 쉽고 항시 삶이 고달프게 된다.

대체로 사회활동을 해도 재수(財數)가 항시 유동적이고 불안하여

금전이 잘 모아지지 않을 뿐아니라 신체 허약할 수 있다.

 

특히 여성에게 천박한 운을 주도해 미천한 직업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다.

 

月(달 월), 花(꽃 화), 英(꽃부리 영) 자가 이름에 들어 있다고 하여

전부가 다 미천한 직업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나 성명 철학적 통계로 볼 때

이러한 자들은 여성에게 있어 투박한 인생길을 만들고 애정에 시련을 주며

박복(薄福)한 운을 유도케 하는 자로 그때 그 시절 月, 花, 英 등의 자를

가명으로 썼든 실명으로 썼든 거리의 여인에게 많았던 것도 성명 철학적으로

볼 때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 하겠다.

 

 

菊(국화 국): 성품이 나약해져 용기와 기백이 없으며 일시적인 성공은 있으나

매사가 수포로 돌아가고 고독, 불운(不運)하며 신체도 허약하게 된다.

 

 

 

 

雪(눈 설): 머리는 크나 꼬리는 적은 것과 같이 매사에 완결됨이 없고

업무가 부진하며 일찍이 한쪽 부모를 잃거나 육친(六親)의 덕이 없고, 금전이

잘 모아지지 않으며 특히 여성은 가정에 적막이 흘러 이별수가 있고 말년이

고독하게 된다.

 

 

平(편안 평): 온순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나 주도면밀하지 못해 경솔하며,

매사가 중도에 좌절되기 쉬워 재물에 실패가 많으며 삶에 역경이 많아

흥왕(興旺)된 인생과 거리가 멀고, 건강상 잔병치레· 위장 장애· 간 기능

저하 등을 겪을 수 있다.

 

 

風(바람 풍): 글자 그대로 풍류를 즐기니 주색(酒色)에 빠지기 쉽고 마음의

중심이 약해 항시 변동· 변화를 좋아해 제대로 성취하는 일이 없다. 특히

여성의 이름에 이 자가 있으면 남성보다도 더 심한 고생과 고초를 겪게 된다.

 

 

龜(거북 귀): 인품은 중후하나 성공이 지체되고 험준하여 박명하고 재물에

풍파가 많다. 단, 사주에 용신(用神)이 물(水)일 때 이 자를 이름에 쓰면

대길하여 의외의 성공과 발복· 발전이 있다.

 

 

千(일천 천): 선친의 덕이 없고 타향에서 고생하며 구설· 관재(官災)· 부상·

수술을 유도하며 초혼에 실패하기 쉬운 관계로 늦게 결혼해야 하고

여성은 나이 차이가 많은 남성을 만나야 다소 안정을 얻을 수 있다.

 

 

心(마음 심): 항시 주변 환경이나 마음에 갈등과 고통이 따르고

신경이 예민하며 부부 애정이 희박하고 불길해 이별수가 있으며,

신체 허약하고 재물이 흩어지며 매사에 실패가 속출해 말년이 고독하다.

 

 

甲(갑옷 갑): 빛좋은 개살구격으로 겉은 화려하나 속이 비어 실속이 없고

재물에 고통이 따르고 부부궁이 불길하며, 다소 화급한 성질로 대사(大事)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단, 사주에 용신(用神)이 나무(木)인 경우에 이 자를

이름에 쓰면 상당한 출세와 명예가 따르게 된다.

 

 

錦(비단 금): 극약(極弱)을 상징하는 글자로 운명적 운세의 흐름이

박약(薄弱)하고 자손의 불길(不吉)을 암시하며, 내적 번민과 빈곤으로

말년에 심하게 고생을 하며 고독하게 된다.

 

 

德(큰 덕): 부모 형제의 덕(德)이 없어 고독하게 되고 업무에 성과가

미진하며, 특히 여성에게는 부부간에 생리사별(生離死別)이 있고

자손에 따른 근심사가 있게 된다. 조난(遭難)· 피살(被殺)· 자살(自殺)·

단명(短命) 등의 암시를 초래한다.

 

 

童(아이 동): 일시적인 성공은 있으나 끝내 모든 것이 무산되고 하천(下賤)하게

되며 특히 심적 갈등으로 곤고(困苦)함이 많게 된다.

 

 

伸(펼 신): 인덕(人德)이 없고 노력만큼의 대가가 불충분해 결과가 미진하며

자손(子孫)을 극(剋)하고 고독이 유도된다.

 

 

淑(맑을 숙): 천품(天品)은 고결하고 착하나 고집이 지나치게 강하고

육친(六親)의 덕이 부족하며 애정사(愛情事)에 번민이 많고, 결혼 후에도

부부간에 의견대립과 이상의 차이로 이별수가 있으며 고독과 풍파가

겹치게 된다.

 

 

松(소나무 송): 투지적인 정신은 있으나 매사가 허무하고 박약하며

금전적 갈등 속에 건강에 애로가 많게 된다. 불교의 법명(法名)이나

호(號)에 사용하는 자이다.

 

 

霜(서리 상): 매사에 미결(未決)을 암시하는 자로 속성속패(速成速敗)하기

쉽고 부부간에 구설풍파(口舌風破)와 고정(苦情)으로 불화합하며

재난(財難)이 많게 된다.

 

 

忠(충성 충): 의리가 많고 박애정신은 있으나 하는 일에 고난, 고초가

많고, 생사(生死)의 극난(極難)을 몇 번 넘겨야 하며 조난(遭難)·

단명(短命)을 초래한다.

 

 

初(처음 초): 성품이 단정하고 청아하나 고난과 고독을 면할 길이 없으며

매사에 시작만 있지 끝이 없이 결실이 없는 허무한 자로

불행(不幸)· 불운이 유도된다.

 

 

完(완전 완): 부부간에 다정치 못하여 가정에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속출하고 자식에 근심운이 따르며 교통사고· 신체 허약· 부상 등이

초래(招來) 된다.

 

 

禮(예도 예): 성품은 영민하나 모든 일에 불성(不成)이 많고 금전적

애로가 많으며, 육친(六親)의 무덕(無德) 속에 부부간의 정마저 화합치

못해 이별수가 있으며, 조난(遭難)· 객사(客死)· 형액(刑厄)· 단명(短命)·

수술(手術) 등을 암시하게 한다.

 

 

義(옳을 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장애가 끼게 되어

효과를 볼 수 없으며, 인덕(人德)과 배우자덕이 없어 고독하며 불행해진다.

 

 

孝(효도 효): 성품은 충직(忠直)하나 부모 형제의 덕이 없고 가정적 적막

속에 운이 하락되어 고생을 한다.

 

 

※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이름자에 一(한 일), 二(두 이), 三(석 삼). . . . 등

숫자를 많이 볼 수 있다.

 

일용(一龍)이, 삼복(三福)이, 칠성(七星)이, 용팔(龍八)이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숫자를 쓴 이름은 필자의 성명 통계 연구자료로 볼 때

유익함보다도 불길한 경우가 더 많아 가급적 사용치 말도록 권하며

각 숫자가 뜻하는 성명 철학적 후천운에 영향을 미치는 운기(運氣)의 뜻은

다음과 같다.

 

 

一(한 일): 독자(獨自), 독신(獨身)의 외로움 속에 어느 한 분야에 일위(一位)가

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으로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쳐야 하듯

매사에 고단함이 많고 주위의 시비· 모략이 분분하게 된다.

 

 

二(두 이): 하나가 분리되어 둘이 되는 형상으로 주어진 복이 반으로 감소되고

육친무덕(六親無德)속에 부부운과 건강운마저 불길해진다.

 

 

三(석 삼): 王(임금 왕)자에 기둥(一)이 빠진 격이니 왕이 없으면 구심력을

잃어 신하가 제각기 흩어져 분열이 되는 형상으로 일시적인 성공은 거둘 수

있으나 그 성공의 생명력이 짧고 재물이 흩어지고 분산되며 말년이

쓸쓸하게 되는 등 하락운이 초래된다.

 

 

四(넉 사): 발음상 죽을 사(死)와 같은 관계로 이름에 이 자를 쓰면

조난(遭難)· 단명(短命)· 수술(手術)· 안과 질환(眼科疾患) 등의

흉운(凶運)이 뒤따른다.

 

 

五(다섯 오): 주관이 뚜렷하지 못하고 약하여 타인과의 승부에서

패(敗)하기 쉽고 주변에 적이 많으며 수술· 병약· 고난· 고초 등을

유발케 한다.

 

 

六(여섯 육): 부모 형제의 덕(德)이 없어 살아가는데 경제적 고통과 고생을

겪게 되며, 많은 좌절과 고초를 겪고나야 겨우 성공하는 자이다.

특히 재물과 인연이 적은 관계로 많은 금전을 모으면 그것을 좋은 일,

즉 자선에 써야지 혼자 모두 가지려 하면 재(財)가 살(殺)을

낳는다(財生殺)하여 일시에 병마(病魔)와 우환이 넘치게 된다.

 

 

七(일곱 칠): 하는 일마다 실패와 좌절이 많고 금전적 풍파가 속출하며

일에 매듭이 없다. 특히 성격에서 우리가 쓰는 말로 칠칠치 못하다는

식으로 다소 주도면밀하지 못하고 하는 업무나 일에 빈틈이 많다.

흔히 고전 드라마의 머슴 이름에 칠복(七福)이란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칠자는 부모 형제의 덕이 없다.

 

 

八(여덟 팔): 글자 모양 자체가 좌우로 갈라지고 퍼진 형으로 의지와

인내는 강해 일시적 출세와 성공은 있으나 그 생명력이 짧아 영화(榮華)를

오래 지키지 못하며, 특히 초년고생이 심하고 부부간의 정(情)이 소원하다.

 

 

九(아홉 구): 수리역학(數理易學)에서 무극(無極)에서 시작하는 0을 수(數)의

시초(始初)로 보고 9를 마지막 수로 보아 종말(終末)의 뜻이 있어,

일생에 파란곡절과 위험한 고비가 많으며 횡액 등의 액운이 뒤따른다.

 

 

오행상(五行上) 東은 木, 西는 金, 南은 火, 北은 水로

사주에 부족한 오행을 보충할 때 東과 南은 이름자에 사용해도 무방하나

西와 北은 운을 하락시킨다.

 

또한 천간(天干)을 나타내는 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와

십이지(十二支)를 뜻하는 子, 丑, 寅, 卯, 辰, 巳, 午, 美, 申, 酉, 戌, 亥 등을

역학의 지식없이 함부로 쓰면 파재(破財)· 단명(短命)· 이별을 유도하고

운세를 그르칠 수 있으며, 낮에 태어난 사람이 星(별 성)자를 쓰거나

月(달 월)을 이름에 쓰면 일에 실패가 많고 매사에 기회를 놓쳐 부귀와

거리를 멀게 한다.

 

 

또 一(한 일), 甲(갑옷 갑), 元(으뜸 원), 上(위 상), 允(맏 윤), 先(앞 선),

大(큰 대), 宗(마루 종), 東(동녘 동), 春(봄 춘), 太(클 태), 泰(클 태),

巨(클 거), 弘(클 홍), 長(길 장), 初(처음 초), 始(비로소 시), 碩(클 석),

乾(하늘 건), 天(하늘 천), 斗(말 두), 國(나라 국) 등의 글자는

그 구성 원리가 처음, 첫째, 으뜸, 시작, 크다 라는

함축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장남이나 장녀의 이름자에 사용해야지

그 외에 차남 또는 차녀 이하의 이름자에 사용하면 형제· 자매간에 덕이

없고 고난· 고초가 많으며 비록 형이나 언니가 있어도 본인 자신이 맏이

노릇을 하게 되고, 또한 형이나 언니의 운세가 하락하여 그들이 맏이로

태어났어도 장자(長子)구실을 못하게 한다.

 

 

이와 반대로 장남 장녀가 後(뒤 후), 末(끝 말), 終(끝 종), 小(작을 소),

二(두 이), 中(가운데 중), 仲(버금 중), 地(땅 지), 坤(땅 곤) 등을

사용하면 가운(家運)을 계승하지 못하고 무미건조한 운세 속에 고생을

많이 한다. 모든 자연법칙(自然法則)이나 일에 순서와 질서가 있듯이

성명학에서 상하의 질서를 갖추어야지 하극상(下剋上)의 원리적 이름을

쓰면 흉하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숙명(宿命)과 운명(運命)'이란 희비 쌍곡선의

카테고리에서 살게 마련이다. 숙명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하늘이 정해

준 명(命)이고 운명은 태어난 이후의 자연 조건· 성장 과정· 성품에 따라

다소 변화를 가질 수 있는 명(命)이다.

 

때문에 숙명은 그 누구의 힘으로도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의 명(命)이며, 운명은 자신의 각고어린 노력이나 밝은 성격· 고운 마음으로 운세의 흐름을 다소 호전되게 할 수 있는

유동적인 명(命)이다.

 

흔히 운명학의 주된 단어인 易(역)자는 日과 月이 합쳐서 된 것으로

그 뜻 또한 바뀔 역자로 영어의 Change와도 같은 것이다.

 

사주가 이미 하늘에서 지정해 준 숙명이라면 이름은 우리 스스로가 지을

수 있는 후천운(後天運)이요 운명이 될 수 있다.

 

사주팔자(四柱八字)라는 선천적 숙명과 태어난 이후 붙여지는 후천적

운명(이름)이 어우러져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창출하니 이름자의 운력(運力)은

참으로 크다 하겠다.

 

 

 

이름의 음양(陰陽) 오행(五行)

 

 

성명학에 있어서 한문의 수리(획수)가 음양(陰陽)의 배합(配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음양관계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게 된다.

 

 

음격 획수(陰格劃數)는 0. 2. 4. 6. 8. 10이며, 양격 획수(陽格劃數)는

1. 3. 5. 7. 9로서 자획(字劃)의 수(數)가 10획(十劃)이상인 경우에는

10(十)을 버리고(除) 나머지 수(數)로 계산(計算)하게 된다.

 

 

성명학에서도 사주팔자의 원리와 같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변화가

있어 음양(陰陽)의 획수(劃數)가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좋은 이름으로써

좋은 운을 받아 좋은 운명으로 유도하게 된다.

 

음양(陰陽)의 배합(配合)이 불교(不交)하면, 모든 일이 파패(破敗)되고, 일생(一生)동안 파란이 많고 처자(妻子)관계에 풍파가 많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어렵게 된다.

 

 

1)음양(陰陽)의 상교(相交)

 

▶3자 성명(三字 姓名) : 음 양 양. 음 음 양. 양 음 양. 양 양 음. 양 음 음.

음 음 양.

▶2자 성명(二字 姓名) : 음 양. 양 음

 

 

2)음양(陰陽)의 불교(不交)

 

▶3자 성명(三字 姓名) : 양 양 양...3자 순양(三字 純陽)

음 음 음...3자 순음(三字 純陰)

 

▶2자 성명(二字 姓名) : 양 양...2자 순양(二字 純陽)

음 음...2자 순음(二字 純陰)

 

이와 같은 배치(配置)는 음양(陰陽)의 불교(不交)함이니 통계학상

(統計學上)으로 보아도 사고가 많고 형액(形厄). 불구. 병고(病苦). 단명(短命).

처자이별(妻子離別). 자식난양(子息難養)하고, 파패(破敗)가 많게 된다.

 

 

삼원오행(三元五行)이란?

 

 

삼원(三元)이라는 것은 성(姓)이 일원이요. 성(姓)과 상명(上名)과 합수하여 이원(二元)이요, 상명(上名)과 하명(下名)을 합수로 하여 삼원(三元)이라 한다. 이 삼원 오행도 상생을 요(要)하고 상극(相剋)을 싫어 하는 것이다.

 

오행이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가지로 구분(區分)하여 자연계의 동정(動靜)과 변화를 오행(五行)으로 고찰하였으며, 그 상생(相生), 상극(相剋) 관계에 의하여 풀이하게 되는바, 오행에서는 서로 돕고 생하여 주는 상생의 원리와 해를 주며 극(剋)하는 상극(相剋)의 원리로 나눈다.

 

 

▶오행상생(五行相生)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

▶오행상극(五行相剋) 木剋土. 火剋金. 土剋水. 金剋木. 水剋火.

▶오행상비(五行相比) 木比木. 火比火. 土比土. 金比金. 水比水.

 

 

★ 삼원오행표(三元五行表)

숫자(數字) 1, 2. 3, 4. 5, 6. 7, 8. 9, 10.

천간(天干) 甲,乙. 丙,丁. 戊,己. 庚,辛. 壬,癸.

오행(五行)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보기 (예시)

 

한글: 이 승 만

한문: 李 承 晩

 

수리: 7. 8. 11.

 

삼원오행: 金. 土. 水.

 

삼원오행이란? 즉, 성자(姓字) 이(李)가 7획이니, 7은 금(金)이요. 상명자(上名字) 승(承)이 8획이니, 성(姓) 7획과 합하면 15가 된다. 10을 버리고 5만 보니 토(土)가 되며, 하명자(下名字) 만(晩)이 11획이니 상명자 승(8)과 합하면 19가 된다. 10을 버리고 9만 보니, 수(水)가 되는 것이다.

 

즉, 삼원오행(三元五行)이 금토수(金土水)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원오행을 보는 것이나 정통성명학에서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가급적이면 상생(相生), 상합(相合)이 된다면, 길함이 있을 것이다.

 

 

음령오행(音靈五行)이란?

 

▶목(木) 가 카 ㄱ ㅋ 아음(牙音)

▶화(火) 나, 다, 라, 타 ㄴ, ㄷ, ㄹ, ㅌ 설음(舌音)

▶토(土) 아 하 ㅇ, ㅎ 후음(喉音)

▶금(金) 사, 자, 차 ㅅ, ㅈ, ㅊ 치음(齒音)

▶수(水) 마, 바, 파 ㅁ, ㅂ, ㅍ 순음(脣音)

 

 

즉, 박만수(朴萬洙) 하면 박(朴)은 [ㅂ]이 첫 음(初音)이니 수(水)에 해당하고 만(萬)은 [ㅁ]이 첫 음(初音)이니, 수(水)에 해당(該當)하고 수(洙)는 [ㅅ]이 첫 음(初音)이니, 금(金)에 해당하여 수 수 금(水 水 金)이 되니, 서로 상생(相生)을 이루고 있어 음 오행(音五行)이 대길(大吉)하다.

 

이와 같이 음령오행을 보는 것이나 정통성명학에서는 크게 따지지 않는다.

 

 

자원오행(字源五行)이란?

 

자원오행(字源五行)은 글자 자체가 갖고 있는 뜻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오행에 적용한 것입니다. 성명학(姓名學)에서 자원오행은 성명자에 필요하거나 부족한 기운(五行)을 오행의 본질적 의미를 갖고 있는 글자자체를 보완보충(補完補充)하는 것입니다.

즉. 사주(四柱)에 오행(五行)중에 물(水)이 부족하다면 글자의 본질적 의미가 물(水)에 해당하는, 나무(木)가 부족하다면 글자의 본질적 의미가 나무(木)에 해당하는 자원(字源)을 보완보충(補完補充)하여 조화 및 상생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자원오행(字源五行)을 정하기 위해서는

 

1)첫째는 글자의 부수(변)에 따라 정하게 됩니다.

 

▶木氣 : 木, 杏, 杞, 林, 松...

▶火氣 : 火, 炫, 炯, 煇, 煥...

▶土氣 : 土, 圭, 均, 地, 戊, 己...

▶金氣 : 金, 銅, 銘, 錫, 鐘...

▶水氣 : 水, 江, 永, 沃, 流, 浩, 洙, 河, 海...

 

 

2)둘째는 부수(邊)가 木. 火. 土. 金. 水의 오행이 아닌 글자는 글자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여 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밭(田)전자 하면 밭은 곡식을 가꾸는 터전을 의미하므로, 삶의 터전은 흙이요. 흙은 土의 본성을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흙 속에는 금맥(金)도 있고, 나무뿌리(木)도 있고, 수맥(水)도 있고 불(火)도 있지만, 가장 비중이 크고 가장 주체가 되는 영동력(靈動力)은 土에 해당하므로 흙은 土라 하는 것입니다.

 

 

▶木氣 : 東, 栢, 竹, 寅, 卯, 角, 印, 卿...

▶火氣 : 南, 丙, 丁, 二, 七, 行, 術, 見...

▶土氣 : 完, 五, 十, 田, 由, 戊, 己, 中, 山...

▶金氣 : 申, 酉, 四, 九, 玉, 金, 西, 卒, 共, 義...

▶水氣 : 亥, 子. 一. 六, 淳, 深, 甘...

 

출처 : 사주와 나의미래 자영사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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