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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하늘을 쳐다보는 내 마음은 그윽하고 상쾌하다. 아침나절엔 마늘밭(마늘밭이래야 마늘 세 이랑, 양파 두 이랑이 고작이지만)에 겨울 동안 덮어뒀던 비닐을 벗겼다. 비닐 속에서 제법 자란 파란 풋마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양파농사는 처음인데 겨울 동안 얼어죽지 않고 조그만 파란 싹을 보듬고 있다. 한 낮엔 나무보일러에 넣을 장작을 팼다. 톱질도 그렇지만 도끼질은 정신을 온전히 집중하게 해 준다. 온몸에 땀이 난다. 머리가 맑다. 마음은 그지없이 평온하다. 일 선(禪)은 이래서 좋다. 밭을 둘러본다. 응달엔 아직 땅이 언 채이고 눈도 더러 남아 있다. 그런데 양지쪽엔 어느 틈엔가 냉이, 망초, 쑥, 비단갱이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거미, 개미, 작은 벌레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생동의 계절에 밭을 둘러보고 씨 뿌릴 준비를 하고,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있음이 기쁘고 감사하다. 이 우주천지에 그리고 나에게. 이 신성한 생명돌보기를 시작한 여러 님들에게, 또 막 시작하려는 그대에게 진심으로 축하 드린다. 삶의 참다운 길로 접어든 님이시기에. 돌아보면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고 있었던가? 낡은 문화와 교육에 일찍부터 그리고 오래도록 길들여지고 주입되었기에 사람답게 살고 인간구실 하려면 당연히 출세하고 성공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얼마나 자신을 들볶아 왔던가? 남들(부모, 친척, 친구, 동료, 경쟁자, 애인, 고향사람)이 알아줄 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수준(사회적 지위든, 재산의 크기든, 명성이든)이 되기까지 나는 바쁘다 바빠. 마음은 온갖 계획과 갈망으로 가득 차 있다. 때론 좌절과 절망으로, 어떨 땐 분노와 탐욕으로 가득 차 잠시도 평온하고 고요할 겨를이 없다. 시선은 온통 밖을 향해 있다.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사랑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남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우쭐해져 울고 웃는다. 참된 자기 신념도 아니면서, 주입된 전도망상의 가치체계 속에서 난파·익사하지 않고 거센 파도 헤쳐온, 막 헤쳐오고 있는 님은 그래서 소중하여라.
이제 참다운 출발을 하는 그대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으오. 몸과 마음을 고요히 가지시라고. 우선 몸을 조용히 돌봄이 좋겠어요. 동구불출(洞口不出)이라는 말이 있지요. 옛 어른들은 누가 농사지으러 왔다고 하면 한 3년은 동네 밖을 나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하다못해 1년만이라도 결심하고 해보면 공덕이 참 클 것입니다. 좀 느긋하게 마음먹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고 돈 없으면 동네 품팔면 되고. 이 품팔이가 농사꾼 되는 지름길이에요. 농사일 빨리 배울 수 있고 동네 사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귀는 데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네 사람으로 빨리 받아들여지고요. 농촌은 아직도 소위 텃새라는 게 있어서 한 동네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상당한 시일과 노력이 필요한데, 한데 어울려 일하고 같이 노는 것 이상 좋은 게 없는 거 같아요. 게다가 하루 품팔면 며칠 먹고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농사는 책보고 하는 게 아닝께. 옆집 아저씨 농사짓는 것, 아줌마 해 놓으신 것 보면서, 따라하면서 심고 뿌리고 매일 가보고 돌보면 되능기라. 우리가 키우는 게 아니라 사실은 저 태양이, 공기가, 물이, 바람이, 우주가 키워주지 않습니까? 괜히 차비 들여 멀리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참된 스승은 바로 이웃집 아저씨랍니다. 관행농업 한다고 무시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평생을 농사지어온 그들도 관점만 바뀌면 언제든 살림의 대열에 참여할 분들이니까요. 다음에는 마음을 고요히 하면 좋겠지요. 우리에게 들 씌워진 관념체계로부터 참으로 벗어나야 할 테니까요. 해야만 하는 것은 없으니까 정직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참고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부터. 스스로에게 정직해질 때 사회도 조금씩 정화되고, 본인도 조금씩 고요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어떻게 고요해지느냐고요? 마음을 지금, 현재에 붙잡아 두는 게지요. 몸이 지금 여기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면 마음도 함께 있도록 하는 거지요. 그냥 설거지에 집중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설거지를 얼른 해놓고 세수하고 갑돌이 만나러 가야 하는데…' 하면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지요. 마음은 오지 않은 미래에 가 있고 그래서 마음이 설레거나 조급해지지요. 또는 설거지하면서 '어제 갑순이가 나한테 환하게 웃었는데 너무 좋았어' 하며 그 장면이 떠오른다면 마음이 과거에 가 있는 게지요. 붕뜨든가, 후회하게 되고. 그러니 마음을 지금에 잡아와 보세요. 그럴 땐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 안 일어나요. 생각이 끊어진단 말입니다. 이땐 편해요.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 노동, 예컨대 도끼질, 쟁기질 등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은 저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함께 있어 마음이 쉴 수 있었기 때문일 겝니다.
책읽기도 이제 그만두는 게 좋겠지요. 그 동안 많이 읽었잖아요. 강의 들으러 다니는 것도 좀 쉬고. 신문, TV, 라디오, 비디오, 컴퓨터도 멀리 하구요. 그 대신 무엇이든 직접 해보는 거지요. 언제나 그렇지만 정보가, 지식이 모자라서 문제가 아니고 경험이 부족해서 문제지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경험을 많이 할수록 당신은 실제적이 됩니다. 삶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밤시간 아침시간이 많이 나지요. 그때 가만히 앉아 호흡을 바라봐요(호흡관). 아니면 신체의 느낌이나 마음의 움직임을 바라보시던가. 차츰 호흡이 고르게 되고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욕심, 화남, 어리석음이 점점 줄어들고, 마음은 점점 평온해지고. 그래서 많은 소득 올릴 계획, 땅 더 살 마음, 약칠 생각, 비싼 농기구 살 생각이 새롭게 다시 살펴지고. 하루 저녁에 몇 채씩 지었다 허물고, 허물고 지었다 하면 오랜 생각놀음이 줄어들고, 그 생각이라는 것도 다른 방식으로 떠오르고. '지금 생각하니 참 부질없었던 생각인 것 같애…' 하고, 그냥 이대로도 참 좋구나, 마음이 너그러워져 주위의 동료도 생각이 나고 전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내가 잘못하고 모질게 했던 주위사람도 생각나고, 지금이라면 같이 잘 해갈 자신과 용기가 생기고 농사규모도 줄일 생각이 나고, 마음 쓰임새가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 조금씩 달라집니다.
아! 정말 가축을 친다는 것은 좀 생각해볼 문제구나. 소득, 수입, 거름생산 쪽에서는 더 없이 좋은 것이었는데(지금까지는 이런 관점에서만 생각해 왔지요) 살아있는 생명을 매어두고 사료를 먹이고, 팔고, 잡고…, 스스로도 놀랍니다. 어찌 이런 생각이 일어나는지. 수세식 화장실도 좀 문제야. 푸른누리처럼 재나 겨에 똥누고 오줌 따로 받아 밭에 뿌리면 흘러가는 물먹을 수 있어 좋고 거름은 거름대로 되고. 밥그릇 국그릇 씻어먹고 설거지를 최소화하면 하수구를 개울로 내지 않아도 되고 소금기 없는 구정물은 밭이나 마당에 뿌리고.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스스로도 속아온 그 헛된 욕심의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참신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어디서 들은 얘기도 아니고 책에서 본 바도 없고 유명한 강사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그대 속에 잠자고 있던 본디 성품이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앉는 게지요. 참된 주체로써. 이제 그대는 자유로워지기 시작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됩니다.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 있게 제발로 서는 게지요.
이제 무엇무엇이 없어도 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되어집니다. 그것이 내 삶을 내 행복을 지배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가스 없이도, 전기 없이도, 전화 없이도…, 또 무엇이 없어도 될까? 술 없이도, 담배 없이도, 고기 없이도, 비누 없이도, 치약 없이도…. 신문 없음이, TV 없음이 이렇게 좋을 수가. 밤에 밝은 불빛이 없으니 이렇게 경이롭구나. 별빛이 이렇게 온통 쏟아져 내리다니. 자동차 소리 들리지 않으니, 온갖 인조의 소음이 없으니 이렇게 고요하구나. 아니, 없으면 없을수록 혹시 더 자유로워지는 건 아닐까? 아니, 없으면 없을수록 혹시 더 평화롭고 행복한 것 아닐까? 그대는 그대 마음의 주인이 되어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하며 살 수가 있다!
이제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기꺼이, 즐겁게, 부족함 없이 넉넉한 마음으로 스스로 좋아서. 그래서 우리는 만 생명과 본디 그랬듯이 하나되어 살 수 있는 거지요. 정말 수 만년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매고지리 죽이면서 산지는 수 백년도 채 안되지 않아요?
원시시대로 돌아가느냐구요? 당신은 아직 낡은 패러다임으로 생각하고 있군요. 돌아가는 게 아니라, 파괴와 죽임으로 더 나아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 보듬어 살려 모시면서. 그것도 사람만이 아니라 뭇 생명공동체 전체를! 당위나 의무에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좋으니까요. 그렇게 사는 것이 나는 행복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