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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결혼식을 2주 앞 둔 4월 12일 야학 교실에서 진행됐습니다. 결혼을 2주 앞둔 예비신부 김설이 쌤은 샤방한 것만 써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웬걸. 인터뷰를 하다보니 김설이 쌤의
똘끼(?)만 부각된 느낌. 심 감사의 인물탐구 특징상 그대로 올립니다. 김설이 쌤... 지못미... ㅠㅠ
*심-심형식 감사, 김-김설이 쌤 ( )는 인터뷰 하면서 느꼈던 심 감사의 느낌.
심-자기 소개.
김- 김설이. 31살. 돼지띠. 야학에서 무지개반에서 한글수업을 맡고 있다. 나이 얘기 하니 참 오래 살았다.
심-야학에는 언제 왔나.
김-2011년 3월.. 2년 1개월 됐다.
심-일은.
김-질병관리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오송에 있고. 사무실은 대전에 있고. 대전 부사동에 있는 결핵협회에서 일하고 있다.
심-뱀파이어 아닌가(적십자혈액원에서 헌혈 업무 하지 않나)
김-2011년부터 2012년까지 쓰리잡을 뛰었다. 그때 혈액원에서도 일했다.
심-그럼 지금하는 일은.
김-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역학조사팀에서 충남지역 결핵소집단 발생시 역학조사를 맡고 있다..
심-오늘 출장 갔다 오지 않았나.
김-밝힐 수 없다. 밝히면 거기서 환자가 나왔다는 것인데. 밝혀지면 나 짤린다.
심-정규직인가.
김-연구원들은 무기계약이다. 전부.
심-쓰리잡은 어떤 일했나.
김-2011년부터 2012년까지 결핵연구원 소속으로 대전에서 결핵역학조사 했다. 낮에는 직장 근무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간호학원에서 강의했다. 주말에는 헌혈의 집에서 채혈아르바이트했다. 생각해보니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점심시간에는 근처에서 악기도 배웠다. 플룻. 치아교정기 끼고 나서는 플룻 못하니 첼로 배웠다. 주말에는 동호회 가입해서 봉사도 다녔다. 그때는 여기저기 다니는게 즐거워 많은 일을 했다는 것 몰랐는데. 지금은 다 그만두고 나니. 많은 것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심-야학에 왜 오게 됐나.
김-그냥 대학때부터 관심은 있었다. 내 목소리가 이래서. 굵어(ㅜㅜ) 고3때 책방에 갔는데 책방주인이 그러더라. 데모하면 잘하겠다고.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데모하면 죽는다고 하시더라. 대학교 들어갔는데 신문사에 들어갔다. 한밭대 신문사. 갔는데. 빨간문서 그런얘길 하더라. 사복경찰이 와서 한총련 소속 아니냐고 묻는데 무섭더라. 좌파는 몰랐다. 그당시 야학은 사람들 선동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야학을 잊고 살았다.
병원생활 3년하고 2011년도에 연구원 들어갔는데. 병원다닐때는 봉사활동 생각도 못했다. 병원을 나와보니. 노래도 배우고 싶고. 악기도 배우고 싶고 이것저것 다 해봤다. 그때 야학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야학 검색해봤다. 그 당시 가장 최근까지 카페에 글 올라오는 곳이 한마음야학이더라. 참관수업 열심히 채우고. 4월 1일인가 첫수업했다.
심-첫 수업 느낌 기억나나.
김-되게 잘해야 겠다. 이런 생각 많이 했다. 참관수업 할때 이 선생님은 뭐 잘하는데 나는 여기에 더해 뭐하겠다. 계획 많이 세웠다. 막상 해보니 덜덜 떨리더라. 그리고 잘해야 겠다는 생각 들면서. 아~ 내가 악기를 배울때 나는 너무 안되고 짜증났는데 우리 어머님들, 아버님들 마음이 그렇겠구나 생각했다. 내 머리속으로 좋아하는 곡들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은데..안되는 느낌. 그렇겠구나 생각했다. 그날 벚꽃놀이도 갔는데 전성하 선생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나중에 파전(파전 얘기 강조했다. 설이쌤의 유명한 먹는 얘기. 나중에 다시 나온다) 먹으면서 애기했는데. 일기로 따로 써놨다. 그만큼 기억이 남는다. 잘 만났다는 느낌.
심-야학에서 기억에 남는 어머님, 선생님
김-지금은 안나오시는데 그 어머님이 형편이 많이 어려웠다. 성함은 밝히는것은 아닌거 같다. ㄱㄴ도 모르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왔는데. 그 당시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1대1로 수업을 많이 했다. 그런데 참 서서히 깨우쳐 가는 모습 보면서 보람이 있었다. 둘만 있다보니 살아오며 한스러웠던 얘기 해주는데. 이것이 인생이다 싶은 분이 내 앞에 있구나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면 나라도 주저앉고 싶었을텐데. 이렇게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기 힘들었을텐데. 바른 정신세계를 가지신게 존경스러웠다. 예전에는 사람의 업적이라든지 사회적 잣대로 봤다. 직장 동료 외에 어르신들 볼일 별로 없었는데. 여기서 뵈면서. 배움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구나.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글을 몰랐으면 얼마나 불편했겠나. 그럼에도 삐뚤어지지 않고 바르고 곧게 살아오신 모습이 존경스럽다. 그 어머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지금도 형편이 어려운것 같다. 가진것은 없지만. 화장품이라던지. 어머님이 늘 화장 곱게 하시는데. 화장품도 같다 드리고 그런다. 그당시 유일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심-선생님 중 친한 분은.
김-신미정 선생님이 친하다. 어떤면에서 까칠해서. 첫느낌은 왜 이렇게 까칠하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매력있다. 정신세계가 독특하다. 어휘가 따라가고 싶은게 많이 있다. 잠재돼 있던 나의 창의적인 면들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얘기할때보다 카톡할때 보면 잘 통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 있다. 둘이 얘기하다보면 이거 기발한데 이런 면들 있다. 본인이 나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심-학교는.
김-월평동 성천초 1회, 만년중 1회, 둔산여고 3회, 한밭대 전기전자제어계측공학부 1학년도 안마치고 중퇴, 대전대 간호학과 졸업, 병원에서 3년 근무, 그다음에 결핵연구원에서 근무 시작.
심-학창시절은 어땠나.
김-학교를 되게 싫어했다. (모범적인 이미지인데 의외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게 너무 힘들었다. 허리 아프고 지루하고 졸리고. 지금 내 일이 너무 잘맞는 이유가 액팅이 많다. 남들과 어울려 하는게 아니라. 내 행동에 대한 지침은 있지만 스스로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 잘 맞는다. 학창 시절에 의자에 앉아 있는게 너무 싫었다. 척추측만이 있긴 한데. 그 이유는 아닌것 같고 공부가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야자도 안했다..
심-공부가 싫었다는 것 말고. 다른 학창시절 얘기 없나.
김-학창시절 문예반이었다.아웃사이더였다. 내가 글을 쓰면 선생님과 선배들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그런데 매니아는 많았다. 내가 학교는 싫어했는데. 간간히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나보다. 중고등학교 1학년때 반장을 했다. 입학성적은 좋았나 보더라. 임원활동 때문인지 친구들은 있었다. 여고생들은 벗어나는거 좋아하는데. 내 시가 시같지는 않은데 후련한게 있었나 보다. 제목이 ‘일탈’이었다. 시화전도 했는데. 남들은 예쁜그림에 시라면, 나는 투박한 그림에 투박한 시. 시화 밑에 감상평 있는데. 교사 중에서도 전교조 출신 선생님들이 ‘아름다운 이단아 꼳꼳이 살아라’라고 써주더라. 다른 문학동아리에서 오신 분들도 님의 시가 멋지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어머니가 데모하면 죽는다고 했나???
심-그때 썼던 시 ‘일탈’ 지금도 기억나나.
김-안난다. 나도 안난다고 할 거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진다. (정말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 왜그랬을까.
심-그래도 조금만 읊어달라.
김-첫줄만 하겠다. ‘내 걸음이 이상하단다’.
심-한 줄만 더. 몇줄짜린가.
김-2연 10행이었던 것 같다..
심-기억하네.
김-기억안날 거다. 결혼 2주 앞두고 있다. 샤방한것만 써달라.
심-3줄까지만...
김-내 걸음이 이상하단다.
고개숙인
허리굽은
(정말 이상하다.)
김-우리반에서 내가 반장이고 친구가 부반장인데. 둘이 문예반이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국어교사. 그 친구는 전도유망한 문학소녀였는데. 친구들은 내 글 좋아했다. 먼가 후련함을 느꼈던 것 같다.
심-어떤점에서 후련했을까.
김-우선 어휘선택. 시 같지 않지 않나. 어쟀든 시같지 않은데 시라고 썼지 않나.
심-시의 형식은 띄지 않았지만 정서는 시의 정서로 다가갔던게 아닌가.
김-시의 형식은 띄지 않았지만 정서는 시의 정서로 다가갔던 것 같다. 내가 한말로 해달라. (뭥미???) 후련함이라는 근거가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들은 그 시하고 내가 일치해서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애의 말과 행동은 그렇지 않은데 시만 번지르르하면 일치가 안되는데. 나는 평소 행동 말들과 가치관이 일치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심-평소 행동이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얘기인가.
김-나는 조용히 사는게 목표다. 아무도 욕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심-이재희 샘은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근데 아직도 결혼 안했다. 설이쌤이 조용히 사는게 목표라는 것 거짓말 아닌가. 일탈적인 행동을 했다는 얘기지 않나.
김-.......
심-껌좀 씹었나.
김-불량하진 않았다. ㅋㅋㅋ 생각이 특이했다.
심-어떻게.
김-글쎄 나는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1학년 크리스마스때 같은반 친구가 이런 카드를 주더라. ‘학교다니면서 너 같은 반장은 처음이야’가 전부인 카드를 주더라. 하긴 내가 반장치고 공부도 안했지.
심-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살지 않나.
김-‘내가 왜’라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아무튼 김일로 선생님은 나보고 똘아이라고 한다. 사실 뭐 똘끼있다는 얘기 많이 듣는다.(이제서야 인정하기 시작ㅋㅋ)
심-인터뷰에 똘끼 얘기 쓰겠다.
김-내 비주얼 봐서 어디가 똘끼인가. 얌전한 일반인이지. 하긴 대학교때 친구들이 그런말도 했다. 남자 만날때 입만 열지말라고.
조용히 지적이고 우아하게 예쁘게 고상하게 늙는게 목표인데. 어느순간 내 성격이 나온다.
심-그 성격이 뭔가.
김-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당당한 커리어우먼인데. 병원다닐때는 물론 나쁘고 못한것은 아니지만. 나는 3교대가 안맞아서 그만 뒀다. 남들에게 비쳐지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선현 쌤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지적인 우아하고 조용한. 30대 여성이 가져야 할 덕목들. 그런 것들을. 근데 어느순간. 어리광부리는 모습이 많이 나오더라. 생각이 어리다는 것 있지 않나. 커리어우먼은 흉내만 내고 있었고 내 내면은 그거를 원하지 않았다. 커리어우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심-선현 쌤과의 결혼 발표로 많은 총각 쌤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죄의 말이라도
김-누가 가슴이 아프다는 거냐 .누가 누가.
심-누군지 알면 어떻할 것인가.
김-누군지 알면 이노래를 바치고 싶다. 커피소년의 ‘장가갈수 있을까’. 이 노래를 추천해주고 싶다..
심-불특정 다수의 노총각에게 사과의 말을 한다면
김-여러분도 어서 좋은 인연. ........ 이런말 하고 싶지 않다. ‘야학에 처녀 많아요’라고 해주고 싶다.
심-선현쌤 어떻게 만났나.
김-헌혈의 집에서 알바할 때였다. 헌혈의 집은 주말에 바쁘다. 일요일에 연두색 조끼를 입은 무리가 들어오더라. 그 중에 한 사람 채혈하게 됐는데. 가슴에 따뜻한 세상 만들기라고 돼 있더라. 그 남자분이 막 설명을 해주더라. 그 당시 야학은 금요일만 가니. 주말 봉사활동을 찾고 있었다. 다른 카페에 가입했었는데 그 카페는 매주 3째주 일요일만 봉사하기 떄문에 못 나갔다. 3째주 일요일을 어찌어찌 하다보니 놓치더라. 따뜻한 세상 만들기는 매주 해서 가입했다. 그 다음주에 바로 나갔다. 너무 재밌더라. 매주 나갔다. 일요일이 제일 힘들 정도로. 예배·봉사·알바했다. 어르신 섬기고 아이들 봉사하고 하는게 재밌더라. 그 당시까지 한 번도 안간게 아동보호시설이었다. 이후 명절날 전부칠때 처음 만났다. 정구덕 감사와 2011년 추석에 노인보호시설에 전부치러 갔었다. 그때 선현 쌤을 처음 봤는데 인사도 안했다. 까칠하더라. 솔직히 내가 전은 안부쳤다. 내가 주방에서 깔짝거리니까 같이 일하는 언니가 민망해해서 밤샘걷기대회 가기전 선현쌤이 쪽지로 묻더라. 막상 현장에서 만나니. 회사분들하고 와서.. 따로 가버리더라. 그래서 다음날 따세 번개가 잇었는데. 번개때 만났다. 그때도 인사도 안했다. 번개 끝나고 전화가 왔다. 밤샘 걷기 할때 미정쌤한테 야학에 대해 들었다며 야학에 대해 묻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선현 쌤에 대해 묻자 속사포 같이 답변이 튀어나와서 도저히 다 적지를 못했습니다. 다시 읽어봐도 내용이 정리가 안됩니다. 죄송)
심-선현 쌤은 미정 썜한테 야학에 대해 물으면 되지 왜 설이 쌤한테 물었을까.
김-미정쌤 번호를 몰랐다. 나는 따세 회원이라 알고 있고. 그리고 직장도 바로 근처였다. 그러니까 그때부터는 거의 매일 문자가 오고. 나중에는 퇴근하면 맨날 만나자고 하더라. 야학에 대해 물어볼게 있다구. 본인은 야학이 궁금해서 그랬다고 한다. 의아하긴 했다. 학원 강의 마치고 밤 9시 반에 만나 왜 족발집에 가서 야학 얘기를 하나. 주말에는 헌혈의집 끝나고 보자고 하더라. 또 앞에서 만나 철판구이 먹으러 가자고 하구. 선현 쌤은 나에 대한 사심이 아니라 야학이 궁금해서 그렇다고 하더라.
심-어떤점이 좋나.
김-내가 못난 모습을 보여줘도 그런것을 다 이해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마치 그거는 내 손바닥에 난 점처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 그리고 되게 침착하다. 나는 급하고 서두르는데. 두서 없는데. 논리하고 거리가 먼 그런 사람인데 이사람은 침착하고 논리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엽다.
심-결혼을 앞뒀는데 지면을 통해서 예비남편에게 하고 싶은말은.
김-.......
심-다음질문으로 넘어가겠다..
김-안된다. 매일매일 하고 있는 말로 하겠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총각선생님들 많이 뒤집어 질 것 같다)
심-요즘 먹방이 화제다. 하정우. 윤민수 아들 윤후가 먹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설이쌤도 야학에서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먹을 것 왜 그렇게 좋아하나
김-당긴다. 항상 허기진다. 남들이 주는 양가지고는 양이 차지를 않는다. 오늘도 출장 마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순대국밥 먹으러 갔다. 양이 안차더라. 결국은 같이 식사한 멤버중에 남자도 있었는데 제가 그 분보다 더 많이 먹엇다. 밥 추가는 물론이고.
심-주로 뭘 좋아하나
김-밥. 꼬기,
심-채소는
김-별로.
심-앞으로 같이 살 선현 쌤한테 미안하지 않나. 밥값이 많이 들텐데.
김-전혀. 복스럽게 먹는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 우리 어머님이 제 밥공기는 아예 따로 퍼준다.
심-쓰리잡까지 하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김-우리집은 먹고 살만하다. 그냥 그 당시에는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심-그런데 1년만에 그만둔 이유는.
김-체력이 딸려서. 몸도 힘들었지만 데이트할 시간이 없었다. 주말에 데이트를 할 수 가 없었다. 결혼 얘기도 서서히 나오는데 같이 할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만나기전 일과 자기개발에 에너지를 썼는데. 사귀니까 에너지가 그 사람에게 가더라.
(이쯤에서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랬는데.... )
김-이재희 쌤한테 첫사랑에 대해 물었지 않나. 나도 첫사랑 물어달라.
심-2주뒤에 결혼이다. 첫사랑에 대한 얘기 인터뷰 나가는 것 그렇지 않나.
김-나도 첫사랑 있다. 물어달라.
심-첫사랑 누구고 어땠나.
김-누구를 꼽을까. 누구를 넣어줘야 되나. 재희쌤하고 겹치면 안되지 않나. 모든 사람의 첫사랑은 겹치나 보다.
심-이재희 쌤과 겹친다면. 고백못했다는 얘기인가.
김-그렇다. 20살때 우리교회 전도사님을 좋아했다. 말도 못하겠는거야. 전도사님이 완전 동안인데 10살이 많았다. 나는 너무 어려보였고. 키는 내가 10㎝정도 컸다. 그랬는데 눈이 너무 사슴같았다. 그래서 좋아서. 전도사님 보려고 엄마따라 새벽예배 갔다. 그런데 전도사님이 너무 가난했다. 남편과 사별한 누나집에 얹혀 살았는데. 조카랑 누나랑 살았는데. 나는 그분을 좋아하는데 말을 할 수 없으니 엄마 통해서 옷도 주고. 그리고 어느 겨울엔가 엄마가 저기가 그분 사는 아파트야 하는데. 지금도 가슴이 무너지는게 아파트에 샤시가 없더라. 그 날 또 눈이 오더라. 엄마랑 그 앞에 지나가면서 울었다. 너무 불쌍해서(이 부분 설이 쌤의 눈이 빨개졌다). 아무튼 그랬는데. 나는 너무 보고 싶은데. 엄마 따라 새벽예배 가지 않으면 보기 어려우니까. 볼 방법이 없으니 엄마가 너무 안타까웠나 보다. 엄마는 딸이 그런 감정 가진 것이 좋았나 보더라. 엄마는 전도사님을 포함해 그 주변분들을 모두 식당에 초대했다. 그리고 전도사님 앞자리 비워놨다. 여자는 늦게 와야 한다고 일부러 늦게 오라고 했다. 엄마가 실컷 보라고 해줬는데. 역시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가지고 그냥 밥만 먹고 왔다.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게다가 내가 밥을 좀 빨리먹나.................... 먹다 보니 맛있어서 한 그릇 더먹고 왔다.................... 그 좋아하던 남자 앞에서. 그게 더 슬퍼(설이쌤의 첫사랑 얘기는 비운의 첫사랑으로 시작해 코미디로 막을 내렸다.)
심-똘끼가 정말 충만하다..
김-새신부한테 똘끼는 너무하지 않나(ㅋㅋㅋㅋㅋ) 난 내가 좋다.
심-그렇게 많이 먹는데 어떻게 몸매관리 하나.
김-그렇게 많이 안먹으면 빠진다.
심-야학에서 괜찮은 남자 쌤은.
김-유선현.
심-빼고..
김-정구덕.
심-재희쌤은 심 감사도 넣어줬다.
김-내가 그런 눈치는 없다. 왜 정구덕을 좋아하는지 물어달라
심-싫다.
심-카페에 올린 글 보면 상당한 글실력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김-기자한테 그런 말 들으니 영광이다...
심-고민해서 쓰는 것인가.
김-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심-본인 성격이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성격 급해서 손해본것은 없나.
김-급하다. 그래서 욱한다. 욱했다가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급한 성격때문에 상처준게 후회되곤 한다. 그래서 연애할때도 상처를 많이 줬다. .
심-마무리 단계로 가야하는데. 야학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말.
김-야학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더 생각해봤는데. 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면 늘 생각하는게 그거니까. 야학선생님들한테 감사드리니까. 거의 문 닫아가는 야학이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게 꾸준히 선생님들이 바뀌기도 했지만 끊어지지않고 해주신 덕분 아닐까.
심-‘나 멋있죠’를 많이 쓴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
김-평소에 한 번도 안쓰는 말이다.. 잘못 짚었다. ㅋㅋ 아니 그렇지는 않다. 고맙다. 내 살아온 얘기하는데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벌써 이런 얘기를 할 단계의 사람도 아닌데. 내 얘기를 하다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읽다보면 자랑은 없겠지만. 그게 마치 자랑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쑥스러워 그런 것 같다.
<끝>
첫댓글 싸랑합니다♡
우유빛깔 김설이! 두유빛깔 유선현!
가구장인 신미정 옹, 경애하옵니다...
저는 선생님이 정말 저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선생님이 제일 특이하세요 ㅎㅎ
동남아 일정땜에 그 날 함께하지 못해 죄송^-^
내 생각이 옳다고 믿지만 네 생각이 최선일 수도 있다는 배려
보이지 않는 손에 좌우되는 세상의 흐름을 인정하게 되면 행복은 언제나 가까이 있답니다.
한마음 속에서 늘 행복 하소서!!!
감사합니당~! 언제 생수 사들고 '장승백이네'(고유명사;;) 방문드리겠습니다!
결혼식날 ㅎㅎㅎㅎㅎㅎ너무 이뻐서 선녀가 하강하는것 같았음 ..
마음이 뭉쿨 ~~!!
선생님은 가슴이 뭉cooooooooooooooooooooooooool~
새색시는 느낌이 소cooooooooooooooooooooooooool~~ yeah~
나는 선현쌤 야학 오신 첫 날부터 알아봤지용!!
귀띔 좀 해주시지ㅋ 전 선현샘한테 소개팅까지 시켜주겠다고 했어요^^;;
잘 읽었습니다~~ㅋㅋ 선현샘~야학이 그렇게 궁금하면 저한테 직접 물어보시지~~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그렇게 말했어요. 교감 선생님이 훨씬 많이 아신다고... 근데 저랑 직장이 가깝다고;;
강혁샘~ 작업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ㅋㅋㅋ
선현님을 밤길걷기에서 처음 봤는데 제가 임자 있는 것도 이미 알고 있던데요?
문예부셨군요! 탁월한 글감각!!
이단으로 찍혀 방출되기 전 제 발로 걸어 나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