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군인 故 김오랑중령 29주기 추모행사 |
1. 일시 ; 2008. 12. 12. 10:00 ~
2. 장소 ; 국립서울 현충월 29번 묘역(東2923)
3. 주관 ; 김오랑중령 추모사업회
4. 후원 ; 국립서울 현충원,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회),
5. 사전행사 ; (10;00~ )
안내소 설치 및 추모객 맞이(29번묘역부근)
故 정병주 특전사령관 분향 참배
故 정선엽 병장 분향 참배
故 박윤관 상병 분향 참배
(현충탑) 선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에 대한 분향 묵념(13;30~ )
6. 故 김오랑중령 추모 식순(14:00~ )
개식 ; 사회자
국민의례 ; 사회자
내빈소개 ; 사회자
고인약력보고 ;
경과보고 ;
추모사1 ; 김용환(현 김오랑중령 추모사업회장)
추모사2 ;
추모사3 ;
대통령께 부치는 건의문:
헌화, 분향 및 추모
폐식 ;
* 약력보고
고인은 지금으로부터 64년 전인 1944년 4월 5일, 경남 김해에서 아버지 김종수씨와 어머니 임순이씨 사이에, 4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김해초등학교와 김해농고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1965년 육군사관학교 25기로 입학하여, 1969년 3월 28일 졸업,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습니다.
임관 후 월남을 비롯한 전후방 주요부대에서 소대장, 중대장, 참모장교로 훌륭히 임무를 수행하고, 고등군사반과 육군대학을 발군의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1973년 1월 3일 백영옥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를 채 두지 않은 채 짧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1979년 3월 19일에 3공수여단 16대대 부대대장으로 부임하여 1개월여를 근무한 뒤, 사령부 추천으로 운명의 보직인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에 임명되니, 마침내 12월 13일 0시 15분경 반란군의 무리들과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국가와 민족과 상관의 안위를 위해 장렬히 순직했습니다.
* 경과보고
12.12 당시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으로 근무하다 반란군에 의해 총상을 입고 강 제 전역한 김광해중령이 고급장교 출신으로는 최초로 1993년 5월 19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반란죄와 살인죄로 고발한 이후, 검찰의 조사과정 중에 김오랑중령의 셋째 형님인 김태랑씨와 장조카 김영진씨를 처음 알게 된 인연으로 1995년 11월 2일, 김오랑중령추모사업회를 발족시키게 됐습니다.
1996년 5월 1일 김오랑중령숭모회로 명칭 변경 후,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12.12사건이 정식으로 군사반란으로 최종판결이 확정됨으로 이를 기념하고 김중령의 명예회복과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장렬히 전사한 지 18년 만에 처음으로 김오랑중령추모기념식을 거행했습니다.
이후 매년 6월 6일 현충일과 12월 12일 두 차례 추모식을 진행하고 있으며 김광해님이 건강상 고문으로 물러난 다음 박대우위원장을 거쳐 2006년부터 김용환님이 김오랑중령추모사업회장 직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사전준비사항
1. 추모식 참석대상 조직(인원) 안내 및 공지 - 방법 및 연락 ; * 언론노출 여부 - 의도적인 요청은 자제 2. 진행요원 확정 - 현충원에 분향 사전예약 ; 13;30 (현충탑) - 현충원전례팀(☏ 826-6237); 13 ;30분 현충탑참배 예약(협조완료) - 현충원현충팀(☏ 826-6238); 천막설치(29번묘역부근 노상) 大탁자1개, 의자30 제단1조 협조 (요청공문 발송 -현충원 결재중) *행사지원요청서와 추도행사계획서 첨부 발송 - 진행요원 선정 ; 3명 - 진행절차 / 내용 ; 추모식 프랑카드 준비 검토 텐트부근 참배객 안내(2명) 사진촬영(1명) 3. 준비물 - 텐트 및 의자 - 방명록 - 사진기 - 화환(꽃바구니, 꽃다발) - 다과(음료, 차, 커피, 과자류) - 기념품 4. 예상소요 비용 - 기념품 - 준비물품 - 추모비용(추모화환 + 제사) - 기타 다과비용 5. 기타 이벤트 준비 (검토중)- 탁자 1개 준비와 의자 기록물 비취(현재까지의 김오랑 일대기 미완 자료) 12, 12관련 자료 및 사진 |
첫댓글 조만간 텐트설치에 따른 현장답사를 하고오겠습니다.
수고가 너무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