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정점에 이르렀다. 한 해의 절반을 넘어가야하는 길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그래서인지 6월이 오면 이란 도종환의 시가 와닿는다. 시인에게 있어서 6월이란 이별과 그리움의 시간이자 다시 무언가를 기대하며 만남을 어떤 당위로 승화해야하는 시간인 듯 하다. 이 시의 첫 연을 분석심리학적 의미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숫자 6의 의미에 대하여 먼저 적고자 한다. 숫자는 의식화하는 질서의 원형an archetype of order which has become conscious<C.G.Jung, CW 8 par 255-293.>으로 정신 안에서 타고난 경향disposition의 기초이다. 숫자는 질서를 세워가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것을 고수하려 유지하려는 통제하려는 기능 또한 있다. 숫자 6은 그 곱과 합이 동일한 하나의 완전수이다. 해와 달, 낮과 밤, 계절은 모두 6의 분기점과 맞물려 있다. 종결의 시점에서 새로운 시작의 시점으로 넘어가는 숫자이다. 창세기에서 모든 창조는 6일동안 이루어졌다. 모든 순환적 변화가 6과 연결되어져 있다. 그림이나 꿈에서 2*3으로 6의 연결은 의식화할 수 있고, 의식화를 필요로 하는 활성화된 운명적 내용을 지적한다.<Theodor Abt, Introduction to Picture Interpretation, 138-141.> 6월은 개인적으로 시인에게 무언가 사건을 환기시키는 특별한 기억의 시간일 것이다. 더 나아가 새롭게 매듭지고, 운명의 새로운 판을 의식화해야하는 순환적 변환의 시간일 것이다.
시인은 첫 연에서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이라고 노래한다. 산은 의식화를 위한 어떤 오름의 표상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산 속'은 '숲 속'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듯 하다. 이런 숲 속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생명이 자라나고, 길러지는 모성영역이기도하다. 모든 삶의 토대의 공간입니다. 그 숲은 방향상실과 인간을 어둠 속에 빠뜨리는 퇴행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아무도 오지 않음은 어떤 외로움과 소외의 공간으로 산 속을 설정하고 있다. 이런 소외와 외로움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만나게 되는 인간의 정신경험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공간에 바람과 뻐꾸기만 울고 있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바람은 생기, 생명의 기운입니다. 히브리어로 '루아흐ruah', 산스크리트어로 '아트만atman'에 해당한다. 인간의 의식이 포착하지 못한 그 무의식의 영역에 영의 기운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한 뻐꾸기가 울고 있다고 한다. 뻐꾸기는 시인 자신의 어떤 연상과 맞물려져 있을 것이다. 뻐꾸기는 탁란을 하는 새입니다. 남의 새 둥지에 자기 알을 버리고 떠난다. 뻐꾸기의 울음은 특히나 짝짓기할 때이다. 알을 놓고 간 회한의 울음인지, 님을 그리는 울음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새의 속성은 하늘의 영역에 있는 사고와 공상과 연결되고, 하늘과 땅의 메신저로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언가 자신이 형상화되고 의식화되길 원하는 소리가 뻐꾸기의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이 피어났다고 노래한다. 감자꽃은 6월의 피어난다. 만개한 꽃은 절정, 무언가 성취되었음을 드러낸다. 어떤 정서적인 것, 생동하는 것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대지 속에서 감자가 자라기 시작한다. 구체화된 열매가 생성되는 것이다. 결국 버려지고 잊혀진 소외의 땅, 의식의 저편에 무시당했던 무의식의 영역인 그 산속은 어쩌면 플라톤의 <티마이우스>에 등장하는 '코라'일 것이다. 도시와 사막 사이에 버려진 땅, 그러나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모성의 땅이다. 그곳에서 생기의 기운과 뻐꾸기의 소리는 생명을 움돋게 하고 생동하게 하게 죽은 듯 적막한 곳을 새로운 희망의 땅으로 바꾸어간다.
그리고 그곳에 오면 수많은 말은 사라지고 오직 사랑한다는 말만 깃발처럼 나를 흔든다고 노래한다. 사랑은 바울의 말처럼 완전하게 묶는 띠이다. 사랑은 분열된 것을 하나로 묶고, 대극을 묶는 연결자, 대극을 하나되게 하는 에너지이자 심리적 충동력psychic driving-force of humanity, 관계의 기능the function of relation이다. 융은 “에로스는 우주의 생성원 즉 창조자이며 모든 의식성의 부모이다... 모든 인식의 가운데 최초의 인식이며 신격 그 자체의 정수”이다.<C.G.Jung 회상 꿈 그리고 사상 (집문당) 438.>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사랑의 깃발이 나를 흔들면 되는 것 아닌가?
6월이 오면 _ 도종환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많지만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 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아침햇살도 혼자 보고 있으면
사위는 저녁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것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닦아내는
그리운 당신 눈물의 몫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내 삶은 완성되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시 만나야합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꼭 다시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