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는 아내 강씨와 아들 셋을 두었습니다. 세자빈 강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 양반규수의 다소곳하고
수동적인 성품이라기 보다는 현대적 여성의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던것 같아요.
남편인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끌려간 심양은 청나라의 수도였는데 (나중에 명나라가 완전히 망하고 베이징으로 옮깁니다).
청의 예법엔 심양으로 들어올 때 가마를 타고 들어올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가마를 타고 온 세자빈을 내리라고하고, 조선의
신하들은 조선의 예법상 그럴 수 없다고 옥신각신 했는데, 세자빈은 싸움을 멈추라고 호통을 치고 말을 타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또 불쌍한 조선인들을 불러모아 농사를 짓게하고, 그들을 보살핌과 동시에 큰돈을 모아갑니다. 그녀는 일종의 사업가역할을
했던거고 남편인 소현세자는 그 돈으로 청나라의 고위층과 사귀고, 조선과 청사이에 있을지 모르는 외교적 갈등을 중간에서
잘 조정한 외교관이었던거죠.
그런 아들과 며느리가 점점 못마땅해지는 시아버지 인조는, 며느리가 친정아버지 상을 당해서 볼모생활 중에 잠시 귀국
했을때 문상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소현세자가 돌아와 억울하게 죽은 후, 인조는 동생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일을 서두릅니다. 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이 책봉을 받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는데도 말이죠.
이후 세자빈 강씨는 임금이 보낸 궁녀들의 감시를 받았으며,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조의 후궁 조귀인의 모함을 받아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임금의 수라상에 오른 전복에 독약을 넣었다는 혐의였죠. 친정 식구들도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친정어머니를 그 일에 연루시켜 처형하고, 유배지로 보냈던 형제들도 몽둥이로 쳐서 죽이고 친정 조카들 마저 죽였습니다.
가까운 사람들 모두 유배되거나 파직되었어요. 강씨는 죽으면서 피로 '원수를 갚아달라'고 했다는군요.
세명의 어린 아들들은 제주도로 유배되어 그 중 둘은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엄연히 손자들인데도 인조는 그들을 돌보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답니다. 막내만이 살아남아 이후 삼촌인 효종의 배려로 경안군에 봉해져 강화도로 옮겨와 살았답니다.
이후 숙종 때 이들의 억울함이 풀려 복권되었으니 넋이라도 위로를 받을까요?
<신시온 역사교실>
첫댓글 When i heard this kind of unfair history, i feel really painful, so that's why sometimes i don't like watching history drama.
We are fortunate because we are ordinary people living in 21 century.
I think that even though we are common....as a human being, sometimes we faced unfair and unjust situation depends on circumsta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