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단상
천년을 하루같이 지게목발을 지고 살았더랬는데 18세기 1차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그리고 오늘날 이른바 4차산업혁명이 막바지에 이르는 격변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짧은 한 생애를 살면서도 사물의 인식체계 패러다임이나 콘셉트가 몇 번씩이나 천지개벽하는 걸 목격하게 됩니다.
15세기 르네상스가 물에 잉크가 번지듯 세상을 바꿔놓았듯이 20세기 초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삐쭉삐쭉 고개를 들더니 이젠 아주 그 여진이 만연하여 세상이 온통 새 모양새로 짜여 지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18세기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편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고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등에 이르러 만연되어 전위예술을 비롯해 사회 정치 경제에 급물살로 파급됩니다.
이데올로기가 흐려지고 생겨난 것이 개성의 두드러짐이고 개성을 앞세운 개인주의의 창궐이 백가쟁명으로 기승을 부리고 IT발달과 맞물려 백인백색 주의 주장이 순식간에 하늘을 덮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수와 진보의 출현과 대비는 필연입니다.
어느 틈에 眞理, 理性, 不文律, 道德律, 良心, 아름다움, 성스러움..... 그 어느 가치도 제자리가 없어지고 음악 미술 문학이 꼰대들이 보기에 해괴망측한 도깨비를 보는 듯 탈바꿈을 합니다.
빗나간 포스트모더니즘 대중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종교입니다. 이면치례는 벗어버려야 할 껄끄러운 옷가지이고 겸손이나 존경심 같은 것도 거추장스러울 뿐인 세상이라면 신에 대한 외경심(畏敬心)도 귀의(歸依)도 사라지는 건 당연지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미 유럽의 기독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감염으로 초토화된 지 오랩니다. 시쳇말로 종교가 복음을 선포할라치면 낯설어하거나 콧방귀를 꾸는 세태입니다.
理性의 성곽 안에 관념적 합리론이 반대급부적으로 자행하던 독선. 도그마에 갇힌 종교,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 타파하는 의식의 혁명성이 급기야 교회 내의 권위주의와 성속이원론 즉 성직자와 평신도의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절박한 문제가 있습니다. 출산율이 사상 최하기록 갱신을 이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재난으로 인한 출산저하가 아니라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안 하고 안 낳는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동물은 암수가 있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본능이 있고 암수가 그 본능대로 살며 번식하지만 오늘날 이 시대 인간은 자웅의 경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섭리를 거스르는 역사적 암흑기를 격고 있음입니다.
그 원인이 사회적 환경 탓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런가?
변질된 포스트모더니즘 아류가 번진 세상. 봉두난발을 하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고, 흐느적거리며 쏠리고 몰리고, 두 집 건너 이혼가정이고, 세집건너 1인가구이고, 혼밥이 대세고..... 이 모두가 나 잘난 개성지상주의, 개인주의 탓이 아닐는지요. 의당 출산 같은 건 애시당초 관심 밖입니다. 유사 이래 번성을 포기한 개체가 언제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사계가 뚜렷하듯 모든 생물이 자웅이 유별하게 창조되었거늘 남자가 여자꼴을 하고 여자가 남자를 넘보는 판이니 어이없음입니다. 남녀평등사상이 서로 어깨를 맞닿자는 게 아니라 서로 타고남을 존중하고 보존하자는 게 아니던가!.....
理性을 포기한 난기류의 自由 ‘아니면 말고’가 대세입니다. 진즉에 이목을 의식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라 사는 게 아니고 좋고 싫음을 쫓아 삽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어쩌다 미친놈 바짓가랑이 꼴로 격하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순리로 輪廻합니다. 달이 기울면 다시 차오르듯 머지않아 새로운 사조,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종친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해마다 뵙지만 작년 다르고 금년 다르게 노쇠해 가시는 종친의 모습에 세태가 겹쳐 보여 소회를 긁적여 보았습니다.
- 김동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