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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제목 : 가슴 설레이는 히말라야를 향하여...
어제 저녁 늦게까지 전화 대신 집사람과 메일을 주고 받으며 그간의 상황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나니 마음이 좀 놓인다. 무용지물인 핸드폰은 그냥 안나푸르나 짐을 보관 하는 카고백에 넣어두고 가기로 하고(그러나 나중에 겪게되지만, 핸드폰을 놓고 간게 쿰부 히말 트레킹 내내 후회 막급의 실수가 된다), 최대한 쿰부 히말로 가는 배낭의 무게를 최소화 하여 백 팩킹을 한다. 대충 무게를 가늠해보니 약 13kg 정도 되는것 같다. 이 정도면 나 홀로 트레킹에 별 무리는 없을것으로 보았다.
이제 준비는 끝냈고 올 스탠바이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으나, 내일 아침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느냐, 마느냐의 염려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아 쉽게 잠을 이룰수가 없다.
최악의 경우 결항이 된다면 기약도 없이 공항을 왔다 갔다 해야 할것을 생각하니 더더욱 잠이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하든 내일 일정대로 루크라까지만 갈수있기를 소망하면서 억지로 눈을 부친다.
자는둥 마는둥 하다가 04시30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구 대장도 일어나 나에게 준비를 하라고 한다. 이윽고 05시 15분경 예약한 차가 도착을 하여 이구대장의 배웅을 받으며, 어두운 밤길을 가르며 공항으로 차가 달린다.
거리에는 아직 어둠이 깔려있어 사물 분별이 어려운데도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다. 밤샘근무를 한것일까? 아니면 이른 새벽부터 근무를 한것일까? 경찰인지 군인인지 잘 모르겠지만 검문을 겸하여 도로를 정리하고 있다.
겅거부에서 공항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은지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린다.
국내선 공항에 도착하여 예약 발급한 티켓(왕복 $270. 카트만두로 돌아 올때의 일정 오픈 상태)을 제시하고 수속대에 들어선다. 제법 보안검색을 구색에 맞춰서 한다고, 화물 검색대가 제법 복잡하다. 에어포트 챠-지로 200Rs 지불하고 차례를 기다린다. 혹시나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은 별로 없어 말을 붙여 볼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거의가 유럽쪽 사람들이니 영어가 짧은 나로선 불가항력이다.
카고백도 없는 나는 달랑 배낭 하나 뿐임으로 배낭을 매고 탑승을 하려고 하였으나 제지를 받는다. 배낭에 스틱이 착용되어 있어 화물로 보내야 한단다. 배낭을 화물로 탁송하고, 맨몸으로 보안 검색을 마치고 탑승객 대기실로 들어간다. 어느 시골 고속버스 대합실을 연상케 하는 허접한 대기실이다.
<국내선 탑승객 대기실>
내가 타야할 항공기는 Sita항공이다. 아무튼 모든 절차를 다 마치고 탑승객 대기실에 들어오니 이제는 루크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고산지대의 기상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 그러니 아직은 변수가 남아있다.
06시가 되니 에티항공이 제일 먼저 문을 연다. 나는 Sita항공의 06시 15분 발, 첫 비행기다.
뒤이어 06시 10분이 되자 Sita 항공도 게이트를 열고 탑승객을 버스로 안내한다. 정확한 시간에 이륙을 할 모양이다. 대부분의 쿰부지역 트레커들의 산행기에 루크라행 비행기가 제시간에 뜬 적이 없다고 하였는데,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너무나 정확하다. 역시 내가 럭키보이로 행운이 따라준것인가.
<공항 대기실 레스토랑>
버스에서 내려보니 타고 갈 비행기를 보니 우리가 어렸을때 많이 보았던 속칭 잠자리 비행기다. 가운데 통로 양쪽에 각 10명씩 탑승을 할 수 있는 작은 비행기다. 먼저 탑승 트렉을 내리고 비행기 앞뒤의 작은 공간에 화물을 싣는다.
<나와 함께 루크라까지 날아갈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
Sita 항공기 꼬리 부분의 멀리 구름속에서 해가 나오는 것을 보니, 루크라 현지 날씨도 괜찮아 보인다. 이미 예티 항공사의 비행기가 이륙장에서 이륙을 시도하고 있다.
<구름 사이로 일출이...>
탑승 트렉이 내려와 서둘러 탑승을 한다. 루크라로 갈때는 왼쪽편에 앉아야 히말라야 설산군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왼쪽편 3번째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우리 비행기가 이륙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군용 헬기도 어디론가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군용 헬기도 어디론가 출동 준비를...>
어라~~ 비행기에 예쁜 승무원 아가씨도 어느새 탑승을 하여, 솜뭉치와 사탕이 든 쟁반을 가지고 통로에서 써빙을 한다. 정녕 솜은 비행기 자체 소음 방지용으로 주는것이지만 사탕 한알은 무슨 의미인지 아마도 사탕 한 알이 입안에서 녹을 동안이면 목적지에 착륙을 하니까 긴장 느추고 잠자코 기다리라는 것인지 미묘하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앞자리에 앉은 유럽인들이 온갖 촬영 장비를 동원하여 조종석을 촬영하느라 야단 법석이다.
<비행기 내부와 조종석>
어수선한 틈새에서 나도 셀카 촬영을 해본다.
<비행기 내부에서 셀카>
앞.뒷 좌석에 타고있던 유럽인들이 조종사가 비행기를 이륙장으로 옮기려고 조종석 기계를 작동하자 낙싯대 비슷한 막대 끝에 카메라를 메달아 조종석 안으로 집어넣고 이륙 장면을 잡으려고 야단이다.
<조종석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유럽인들>
프로펠러가 작동을 시작한다.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천천히 이륙장에 들어선 후, 본격적으로 속력을 내기 시작하며 활주로를 질주한다.
<프로펠러 가동 이륙>
한동안 활주로를 전 속력으로 달리던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비상을 한다. 불안 불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의자를 움켜잡은 두손에 힘이 들어간다.
언젠가 루크라 공항에 착륙하려던 비행기의 추락사고로 18명 전원이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더욱 긴장이 된다.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좌우로 약간의 로링을 주며 점점 고도를 높인다. 고도계 시계를 보니 고도가 순간 순간 올라가고 있다.
<점점 고도를 높이며...>
2,000m~ 3,000m 고도가 높아 질수록 의자를 잡은 나의 손도 더욱 힘이 가해진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넓고 푸른 창공에서는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한 낮 낙엽 한잎에 불과 할 정도이니 말이다. 구름아래 산간 마을이 아스라히 보인다. 네팔리들은 왜 이렇게 산으로 산으로 자꾸만 높은 곳으로 생활의 터전을 잡는지 궁굼하다.
<구름 아래 산간 마을들이...>
산 능선을 따라 다닥 다닥 지어진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법 하지만 얼른 이해 하기가 쉽지않다. 보통 사람의 생활 근거지가 편리한 도로를 중심으로 조성되는게 정상이 아니던가.
<고산족의 생리 때문인지 높은곳을 지향해 마을이 형성 된 모습>
이륙한지 8분정도 지난 시간에 시계의 고도계가 3,085m를 가르키고 있다. 불규칙한 기압때문인지 기체가 심하게 움직일때도 있다. 그럴때 마다 간이 철렁,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조종석을 들여다보니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여유있는 눈짓으로 무언가 주고 받으며 조종간을 좌우로 움직이며 기류를 타는 것으로 보아 통상적인 비행인것 같아 안심을 한다.
<06 : 23 현재 고도 3,085m)
날씨 때문인지 멀리 히미하게 구름인양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군들이 힘차게 돌고있는 프로펠러 뒤로 아스라히 보인다. 무심코 힘차게 돌고있는 프로펠러를 응시하다보니 만약 저 프로펠러가 갑자기 멈추어 버린다면... 망칙스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것은 나 뿐일까?
<멀리 히말라야 산맥이...>
고도 때문인지 기체 내.외부의 온도 차이인지 프로펠러 주변에 물기가 흩날리며 창쪽으로 물기를 뿌려댄다.
<심하게 흔들리는 기체>
유럽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조종석 내부를 동영상 촬영을 하기에 열중이다. 나도 처음 타본 소형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지만, 나보다 더 신기한듯 설쳐대니 할말이 없다.
<동영상 카메라를 들이대고...>
06 : 35 현재 고도 3,840m 아직도 고도를 계속 높이고 있다. 잠시 후, 고도 4,100여 미터를 정점으로 점점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06 : 35 현재 고도 3,840m>
산기슭의 마을들이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착륙 항로로 접어드는지 계곡쪽으로 기수를 돌린다.
<고도를 낮추자 다시 집들이 보인다>
산봉우리에 잔설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계속 고도를 낮춘다. 프로펠러 부분의 기체가 누더기 처럼 기워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언제쩍에 제작된것인지 모르지만 오래된것 만큼은 확실하다.
<산 봉우리에 잔설이...>
설산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눈에 차지않고, 오래되지 않은 잔설들이 내려 앉은 산봉우리가 먼저 지척으로 다가온다.
<고도를 낮추고 계곡쪽으로 기수를...>
구름이 왔다리 갔다리... 계곡이 더욱 가까워 지며 약간 선회를 한다. 갑자기 이상 기후가 발생하면 루크라 공항 상공에서도 회항을 한 전례도 있다하니 끝까지 지켜 볼 수 밖에...
<좌우로 비행을 하면서 고도를 낮춘다>
루크라 주변의 마을들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무사히 착륙하기를 빌어야 할 순간이다. 루크라 공항의 착륙장 활주로의 길이가 짧아 세계에서 세번째 위험한 공항이라고 하던가. 어쩌던가.
아무튼 지금까지의 시계비행은 물론이고 시계착륙을 해야 하는 만큼 카트만두 트르뷰반 공항을 이륙할때부터 루크라 공항에 착륙할때까지 나를 비롯한 다른 탑승객 생명도 잠시 조종사에게 맡겨진 상태가 아니던가.
<멀리 루크라 주변 마을이...>
착륙이 임박한 타임에 루크라를 내려다 보고 하늘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루크라 주변 마을이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착륙 순간의 주변 모습이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바퀴가 활주로에 닿을때까지... 드드드득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소리와 함께 승객 모두가 탱큐를 연발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나도 덩달아 조종사를 향하여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미소로 답례를 하며, 뭘~ 보통이죠 하는듯 하다. 카트만드 트르뷰반 공항을 이륙한지 약 30여분이 지난 시간으로 시간상으로 별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바로는 1시간 이상 걸린것 같은 기분이다.
<루크라 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착륙>
공항 직원들이 내리는 승객들을 유도하고, 화물은 카고 BOX 에 옮겨 실고 대기실 쪽으로 간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내린 비행기에 바로 사람들을 탑승시킬 모양이다.
<계류장의 모습>
타 항공사의 비행기도 속속 착륙을 하여 계류장으로 들어 온다. 마치 벌이 꿀을 물고 제집을 드나 들듯이 들락 날락한다. 계류장 밖에는 포터와 셀파들이 예약된 손님을 찾으며 기다리고 있고, 손님 예약이 없는 셀파와 포터는 공항 계류장을 빠져나온 트레커들에게 붙어서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을 하면서 일거리를 찾으려고 동분 서주한다. 기상이 좋은날은 오전중으로 수십대의 비행기가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들어오고 나가는 트레커, 셀파와 포터들이 서로 섞여 제법 혼잡을 이룬다고 한다.
<공항 계류장 밖의 일부 모습>
나는 노 포터,노 가이드로 이들과는 볼일이 없다. 몇 사람의 포터들이 나에게 기웃거려 노 가이드, 노 포터라고 말하니 순순히 물러선다. 행장 폼새를 보니 붙어 보아야 별 영양가가 없을것으로 판단을 한 모양이다. 공항을 빠져 나와 남체방향의 상가 지역으로 가면서 철조망 넘어 활주로를 내려다 본다. 보이는 것이 활주로 전부이고 좌측으로 공항청사와 계류장이 있는곳이다.
<공포의 루크라공항 활주로>
예상보다 루크라 도착시간이 일러 잠시 기다려 비행기의 이륙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보기로 한다. 계류장에서 빠져 나와 짧은 활주로를 전 속력으로 달려 활주로 끝 낭떠러지 부분에서 가볍게 날아 오른다.
<활주로에서 막 출발을 하고있는 모습>
짧은 활주로의 경사도를 이용하여 착륙시는 오르막을 제동역활로, 이륙시는 내리막 탄력을 이용하여 이. 착륙을 하는 특이한 활주로다.
<활주로 끝 낭떠러지 부분에서 가볍게 이륙하는 장면>
공항을 뒤로 하고 남체방향의 상가지역으로 들어선다. 이제겨우 07시라 너무 이른시간이라 음식점들이 아직 문을 열기전이다. 등산장비와 의류점들도 이제 하나둘씩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나 혼자 마땅히 어디 들어가 쉴수도 없고 하여 남체방향으로 발걸음을 하다가 문을 연 장비점에 들어가 매트를 하나 사기로한다. 네팔에서의 물건 살때의 흥정 방법을 네히트에서 정보를 얻은 터라 700Rs 달라는 매트를 400Rs로 깍아 흥정을 하니, 어렵쇼~ 두말도 하지 않고 매트를 제자리에 집어 넣어버린다. 이러면 흥정 실패다하고 나도 문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600Rs 달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나역시 500Rs면 사겠다고 하니 OK 한다. 과연 누가 이기고 진 게임인지 알 수가 없다. 매트를 배낭에 패킹을 하고, 상가 지역을 벗어나 트레킹로에 들어선다.
07 : 25 첫번째 체크 포인트다.아일랜드 피크 퍼밋을 내미니 무언가 적으면서 영어로 몇마디 물어본다.
이윽고 대형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는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으로 빙 둘러 소형 마니차들이 설치되어 있다. 나는 특별한 종교적 의미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대형 마니차와 소형마니차를 돌리며,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녕, 그리고 이번 쿰부 히말 트레킹 및 아일랜드 피크 무사등반을 진심으로 소망해 보았다.
<옴마니 반메훔이라는 육자진언 문자가 새겨진 마니차 >
트레킹로에 들어서자 쿰부 히말 트레킹의 관문이며, 1993년 32세의 나이로 네팔 여성 최초 에베레스트를 오른 파상라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탑이 있다.
<파상라무 기념탑>
내가 지나왔던 체크포인트에 유럽인 트레커와 포터들이 체크를 받고 있다. 나처럼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서는 사람은 아직 몇 않되고 나하고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아마도 롯지에 머물며 아침 식사와 차를 마시며 여유있는 트레킹을 준비하겠지만 홀로가는 나에게는 그만한 여유가 없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고 호젖하게 걷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다.
<지나온 체크 포인트를 뒤돌아 보며...>
쿰부 히말에 트레킹로에 들어서서 처음 만난 초르텐이다. 규모나 모습으로 초라하지만 처음 만난 초르텐이라 기념으로 찍어본다.
<첫번째 만난 초르텐>
이어서 만난 다리는 물이 흐르지 않는 작은 지류를 건너는 다리다. 이 역시 규모도 작고 볼품없는 보통의 다리에 불과하다.
<첫번째 만난 철 난간 다리>
어제 내린 비로 땅이 적당히 축축하게 젖어있어 먼지도 나지 않고 트레킹하기엔 날씨가 안성 마춤이다. 아직 따가운 햇살도 없어그저 그만이다.
주변의 싱그런 연두색 나뭇잎이 발길음을 더욱 가볍게하고 더구나 루크라(2,840m)에서 200여 미터 고도를 서서히 낮추는 길이라 마음 또한 편하다.
첫번째 만난 작은 마을인데 손님을 받는 롯지의 모양세는 아닌것 같고 아마도 야크를 부리는 집 같다. 야크가 일을 하러 가려고 일찍부터 채비를 하는지 길에 나와 서성이고 있다. 야크 옆을 지나려니 약간 껄쩍지근하다. 온순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혹시나 해서 였는데, 역시 순진한 놈들이다.
<첫번째 만난 작은 마을과 야크들>
루크라 공항 아랫옄 마을의 군데 군데 밭들이 연두색으로 채색을 해놓은 듯 곱다. 그 뒤로 룽다가 휘날리는 곰파(빨간색 건물)와 중학교가 보인다. 이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인지 교복을 멋지게 입고 다닌것으로 보아 아마도 쿰부 히말에서 부유층에 속하는 루크라 롯지나 상가 주인들의 자제들인것 같다.
<루크라 공항 아랫녘 마을 >
비탈진 길 옆으로 오래된 나무가 수호신처럼 서있다. 그리고 반갑지만은 않은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산행에서 만난 내리막 길은 내려 간 만큼의 2배를 올라야 본전치기이기 때문이다.
<길목에 서 있는 세월의 나이를 먹은 거목>
07시 50분 챠플링 초입에 도착한다. 지금부터 고도 2,590m의 바닥에서 점차 고도를 높여 3,540m
남체까지 완만하게 오르막을 치고 올라야 한다. 그런데 어제 저녁 먹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 좀 무리가 되었나? 약간의 허기를 느낀다.
트레킹 첫날이고 루크라에서 부터 가벼운 내리막 길이라 무심코 계속 걸었더니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갑자기 고도를 높인 탓인지 몰라도 하여간 허기와 현기증세를 느낀다.
<챠플링 초입을 지나는 길목의 롯지>
롯지들 마다 아직 장사 준비를 하지 않고 있어 무얼 먹기도 그렇다. 가다가 아무곳이라도 문을 열면 아침을 먹을 양으로 팍팅을 향해 조금씩 오르막을 오르는데 몸 상태가 영 이상하다. 아직 1시간도 체 걷지 않았는데 걸을때는 괜찮다가도 잠시 쉬었다 일어나 걸을라치면 어지러움이 있다. 속이 비어 허기가 진 때문인지, 이 정도 고도에서 고소 때문만은 아닐텐데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일단 어디 문을 연 롯지에 가서 아침을 먹어보고 증상을 가늠하기로 하고 천천히 걷는데, 반가운 태극기와 네팔기가 나란히 걸린 하얗고 아담하고 예쁜 건물이 나타난다
<토토 하얀 병원>
가까이 가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립한 토토 하얀병원이라는 건물이다. 시간이 이른지 문을 열지 않았고 인적도 없다. 살펴보니 표지석에 이렇게 적혀있다. " 한국산악인을 도와준 네팔인들을 위해 이 병원을 바친다. 한국의 스포츠 토토가 지원하고 한국인 전유성,권경업,신영철,이명식,심재호,김양숙,이윤경,이정식,박용학,한원택,김옥자,정성철,한신호,문종상,이상일,이종한이 지었다. 이앞을 지나가는 모든 네팔인들과 한국인들은 이 병원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토토 햐얀병원 전경>
열악한 환경에서 병원을 세우는 것보다 병원운영이 더 어려울 터인데...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섬의 한국어 학교같이 시작만 거창하고, 끝이 미미하다면 아니함만 못하지 않겠는가. 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토토 하얀병원을 지난다.
마을의 중심가 도로변에 마니석과 룽다, 작은 초르텐 그리고 마니차가 네팔을 대변하는 상징물처럼 자리잡고 있다.
<마을 중심가에 마니석과 마니차가...>
투시코시 강의 물소리만 듣고 걷다가 고도가 낮아지면서 우유빛 물들이 계곡을 따라 소용돌이치는 히말라야 강물을 대려다 보며 걷는다. 강물은 흘러 내려가고 나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마도 이 강물의 발원지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할것이다.
<트레킹 중 처음만난 투시코시강>
우리가 걸어가는 트레킹로는 우리만의 길이 아닌 네팔리(네팔 사람을 부르는 말)들의 삶의 길이기도 하다. 건축 자재인듯한 각목을 지고 오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렴푸시 각목 숫자를 세어보니 약 20여개, 한 개 5kg 잡아도 약 100kg,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무게를 그들은 삶의 무게인양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무표정하게 걸어가고 있다.
이런 일도 없어서 못한다고 하니...
<100kg 넘는 건축 자재를 지고가는 네팔리들>
트레킹로 우측의 구름사이로 설산이 고개를 내민다. 아니~ 벌써 히말라야 설산의 모습인가 ? 물어보니, 택도 없는 소리... 히말라야에서 저런 것은 산도 아니라고 한다. 그냥 이름도 없는 한낮 봉우리에 불과하다고 하니, 히말라야 설산의 진면목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굼증이 더한다.
<구름사이로 처음 눈앞에 나타난 설산>
병풍처럼 둘러친 산 사이로 강의 상류쪽 계곡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인가 보다. 계곡을 따라 군데 군데 마을과 롯지들이 보인다. 가시 거리가 좋고 강만 따라 걷는다면 지도 정치도 할 필요 없고, 길
을 잃을 염려도 없다.
<계곡따라 롯지들이...>
투시코시강의 본류를 앞에두고 걷다가 우측 작은 지류의 계곡을 가로 지르는 출렁 다리를 건넌다. 다리는 이외로 네팔스럽지 않게 튼튼하게 잘 만들어저 있다. 다리의 건축 기법은 잘 모르지만 다리양쪽에 튼튼한 쇠줄을 걸어 지지기반으로 하고, 바닥판과 수직 쇠줄을 연결하여 만든 다리로 흔히 출렁다리라고 부르는 다리이다. 바닥판은 철판으로 되어 있어 짐을 진 사람은 물론, 짐을 실은 야크나 말들도 잘 건널수 있는 제법 튼튼한 다리다.
다리를 건널때 되도록이면 다리 중간에서 교차하는 것은 삼가하고, 기다려주는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건널때 다리의 가운데 쯤에선 약간의 반동을 이용하는 기교를 부리고 건너면 편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건널때는 간격이 필요한 듯>
스릴감을 맛보고 다리를 건너 마을을 지나며 거대한 마니석을 만난다. 이런 마니석이나 초르텐, 또는 마니차를 만나면 시계방향으로 돌아 간다고 하여 무슨 연유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나도 가급적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지나간다.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이 새겨진 거대한 마니석>
어라~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상이 세워져 있네. 언제 누가 만들어 세웠는지는 몰라도 한국의 토속적인 문화와 네팔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벙어리 트레킹을 하고 있는 나에게 유일하게 친근감을 주는 장소다.
<네팔땅에 당당하게 천하장군상이...>
마을 어귀를 지나는데 야크가 길을 막고 비켜주지 않는다. 워이~ 워이 하여도 도대체 길을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아 할수 없이 목 마른놈이 샘 판다고, 내가 언덕위 밭두덩으로 우회를 하여 지나간다. 우이독경이라더니...
<이 길의 주인은 나(야크)다. 라고 버티고...>
트레킹로를 따라 롯지들이 이어져 있어 지도상 마을과 햇갈리기도 한다. 네히트의 선답자 산행기에서 많이 본 듯한 롯지가 나타난다. 제법 야영장까지 갖춰진 규모가 큰 롯지로 쿡을 동반한 단체 트레커들이 많이 이용할것 같다.
<야영장이 잘 갖춰진 롯지>
여기도 에외없이 마니차와 마니석 룽다 뒷편에 초르텐이 있다. 네팔리들의 불심은 대단한것 같다. 이곳은 왼쪽으로 지나가라고 친절하게 화살표시까지 해 두었다.
<오고 가는 길 가운데 마니차와 마니석이...>
우측 지류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하여 수차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다. 아직도 컨디션이 난조다. 빨리 아침을 먹어야 원인을 알 수있을것 같아 롯지를 물색하며 올라간다.
<수차가 있는 작은 건물>
올라 갈수록 롯지도 많고, 롯지의 규모가 크다. 쿰부 히말을 찾는 트레커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롯지의 대부분이 석조 건물로 두부모 자르듯이 반듯 반듯하다.
루크라에서 2~3시간 걸어 팍팅에 도착하여 1박을 하는것이 쿰부 히말 트레킹의 FM으로 알려저 있으나, 난 팍팅에서 아침을 먹고 결정을 하기로 한다.
<팍딩 근처의 석조건물 롯지 >
팍팅의 나마스테 롯지의 야외 테이블에 배낭을 내리고 간단한 아침을 주문하고 쉬어가기로 한다.
점심을 생각하여 달걀 후라이와 블렉커피를 시킨다. 루크라에서 출발한지 2시간 20분 되었으니 빨리걸어 온 편은 아니다.
간편식을 마치고 10시 30분에 몬조로 향한다.
<먹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카메라에>
팍팅은 1박을 하는 트레커가 많아서인지 롯지는 물론 마을이 제법 크다. 어린 아이들도 많이 보이는 것이 트레커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롯지나 가게뿐만이 아닌 농사를 짓고 사는 주민들이 더러있는것 같다.
<팍팅 마을의 거리>
몬조까지 가서 오늘의 일정을 결정키로 하고 팍팅을 뒤로하고 다시 걷는다. 허기는 면했으나 약간의 어지러움증은 가시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두시코시강을 왼편에 끼고 걸었지만 팍팅 마을을 막 벗어나면서 두시코시강 본류의 큰 출렁다리를 건너 강을 오른편에 끼고 걷게된다.
<강 본류를 건너는 다리와 강 건너 팍팅마을 >
강 본류를 건너는 다리인지라 다리가 길고 튼튼하고 안전하게 그물망까지 설치가 되어있다. 출렁거리며 건너는 재미가 있을것 같다.
<다리를 건너기 전 셀카로>
멋진 출렁다리의 모습과 강 건너 마을의 롯지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롯지에서의 조망과 풍경이
좋아 이곳에서 숙박하는 트레커들이 많을것 같다. 나 역시 팍팅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이곳을 택할것 같다.
<처음으로 두시코시 본류를 넘는 다리 같은 다리를 건넌다>
다리 중간에서 강 상류를 보니, 과연 이름에 걸맞는 우유빛 강물이다.네팔말로 두시는 우유를 뜻하고 코시는 강을 뜻한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강 왼편길이 몬조로 가는 길로 산 어귀를 돌아가는 편한길로 보인다.
<우유빛 강물>
아직은 수목 한계선에 도달하지 않아서인지 우리네 산하의 수목과 별 다름이 없는 주위 풍경이다.
잣나무 같기도 한 소나무과의 수목이 제법 울창하다. 마을 주변 감자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트레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듯 하다. 다만 부모님의 밭일에 따라 나온 아이들이 공터에서 우리네 비석치기와 비슷한 돌차기놀이를 하다가 내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자 무엇인가를 원하는 눈치를 보인다. 수많은 트레커들이 오가며 베푸(?)는 작은 선심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
뱅카르 마을이다. 지나오면서 느낀것이지만 트레킹로 옆에 조그만 가게들이 너무도 많다. 트레커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구멍가게로는 휴식 공간도 없고 물품도 조잡하고, 그렇다고 네팔리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것 같지는 않고, 누구에게 물건을 팔아 가게를 꾸려 나가는지 몹시 궁굼하다.
<구멍가게>
<뱅카르 게스트 하우스 안내판>
네팔인들의 종교적 신앙심의 발로인지 모르지만 지대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고개마루에는 여지 없이 오색의 타르초와 룽다가 만국기 걸려있듯이 걸려있다.
타르초와 룽다란?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찍은 오색 천으로 룽다는 세로 기둥에 타르초는 가로줄에 매달아 바람결에 맡기는 의식으로 오방색의 청색은 우주공간, 흰색은 물, 검은색은 바람, 노란색은 땅, 빨간색은 불을 상징하며 새해가 되면 불타의 가르침인 평등과 중도의 사상이 바람 따라 온 하늘땅과 공기와 물기 열기에 충만하길 기원하는 티벳 불교의 의식이라고 한다.
<네팔 국화 랄리그라스 와 오색 타르초가 >
조그만 고개를 넘어 뱅카르 마을에 들어서자 야크들이 짐을 가득 짊어지고 줄지어 오고있다.
잠시 길을 비켜주며 묵묵히 걸어가는 야크를 보니 교통수단이 없는 쿰부 히말에서 야크가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으며, 야크 몇마리만 있어도 큰 재산이 될것같다.
<마니차 옆을 지나고 있는 짊을 진 야크들>
뱅카르 마을의 마니석과 수투파를 지나 몬조로 향한다. 몬조까지는 한 시간정도 더 걸어야 할것같다.
<뱅카르 마을의 마니석과 수투파>
뱅카르를 막 지나고 다시 강 본류의 다리를 건너 강 우측편 길로 붙기 위하여 다리를 건넌다.이번 다리도 제법 길다. 네팔 정부의 순수 재정으로 이 정도 다리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울것이고, 이 모든 재원이 트레커들의 국립공원 입장료 수입(1인당 1,000Rs)으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면 나를 비롯한 트레커들이 대단한 관광수입원 역할을 한 것이다.
<어느 트레커와 포터가 다리를 건너고 있다>
몬조 가는길 쉼터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충남고등학교 로고가 새겨진 에베레스트 원정팀의 짐을 진 포터들이 쉼터에 도착, 쉬어 가려고 짐을 내린다.
반가워서 나도 한국인이라고 소개를 하고 원정팀의 근황을 물으니, 포터들도 반가워 하며 한국의 원정 팀원들은 벌써 올라갔고 자기들은 짐을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운반하는 중이라고 한다. 나의 트레킹 일정에 있는 에베레스트 BC 캠프에 가면 한국인 원정대를 만날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설산과 함께 몬조 마을이 보인다>
몬조 마을에 들어서자 따사한 햇볕을 받고있는 남새밭에 사과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길옆 수도꼭지에서는 시원스레 물이흘러 나오고 있으나 선뜻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다.
<몬조 마을 초입의 사과나무와 수도전>
오른쪽 지류계곡의 다리를 건넌다. 깍아지듯 경사가 진 산위에서 쏟아저 내리는 수압을 이용하여 수차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작은 수력 발전소가 마을마다 있었지만, 몬조에 설치된 발전시설은 규모가 상당히 크다.
<무너저 내릴것만 같은 깍아지른 산>
그동안 여기까지 오면서 대화 상대가 없어 거의 입을 닫고 오던 중, 처음으로 루크라로 하산중인 한국인(서울에서 왔다는) 4명의 트레커를 만나 오랫만에 이야기를 나눈다. 칼라파타르까지 트레킹을 하고 내려가는 중이라고 하면서 포터도 없이 혼자가는 나의 일정을 물어보고 고개를 흔든다. 아마도 무모한 짓을 한다는 염려였을 것이다.
<네팔의 산과 룽다 >
드디어 12시 50분에 몬조에 도착을 하여 초입에 있는 몬주 게스트 하우스의 다이닝 룸으로 들어간다. 유럽인 2~3팀이 점심을 먹고 있어, 나는 일단 레몬티를 한잔 시켜 목을 축이고 일정을 정리해 본다. 시간상으론 여기서 점심을 먹고 남체로 바로 가도 충분한 시간이다. 루크라에서 출발 당일 남체까지 간 사람도 가끔 있지만, 아직까지 호전되지 않은 몸상태도 그렇거니와 되도록이면 당일 남체까지 가는 것을 고소적응 때문에 금기시 하는게 일반적이어서 갈등을 하고 있던차에 비까지 뿌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식사를 마친 유럽인들은 어디서 출발 했는지는 몰라도 오늘 남체까지 갈 요량으로 배낭 카바를 쒸우고 비옷을 챙겨 입고 길을 나선다.
잠시 충동을 느낀 나도 오늘 남체까지 올라 가볼까 하였으나, 첫날 무리한 일정으로 20여일의 쿰부 히말 전체 일정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고 쿰부 히말의 첫날밤을 이곳에서 지내기로 하고, 방을 정해 입실을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이닝 룸에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느지막히 점심을 주문하여 먹고 주위를 둘어보기로 한다.
<점심으로 시켜 본 칫킨 누들 >
고산지대의 변덕스런 날씨로 비가 금새 뿌렸다가 개이기를 반복한다. 아마도 남체정도의 고도에는 비가 아니라 눈이 내렸을것 같다.모주 게스트 하우스는 햇볕이 잘드는 다이닝룸도 좋고 정원의 분위기도 좋다.
점심을 먹고 나서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본다.
<몬주 게스트 하우스 전경>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을 카메라에 담아보는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 본다. 12시 50분에 도착을 하여 시간을 보내자니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내일을 위하 충전을 한다고 편하게 생각한다.
<몬조에서 망중한의 한때>
몬조 윗 마을까지 둘러보고 내려 왔는데 다음날 보니 얼마 멀지 않은곳에 조르살레 체크 포인트가 있었다.
<몬조 윗 마을>
몬주 게스트하우스 길 맞은편에 새로운 게스트 하우스가 한창 공사중에 있다. 경쟁 업소가 늘어나는데 대하여 기존 업소들의 반응은 어떨까 굼굼하다.
이 곳 역시 나무 보다는 석축을 쌓아 건물의 골격을 만들고 창틀 부분만 나무를 끼워 넣는 형식이다. 건축 기법은 돌을 다듬는 것이 문제인데 우리와 같이 기계로 연마하는것이 아니라 하나에서 열까지 수공업에 의존하고 있다.
돌을 다듬는 석공들의 모습이 천하태평이다. 집을 짓는데도 네팔 특유의 느림의 문화 탓인가. 세월아 가거라하고 일을 하고있는 모습이 우리네 빨리빨리 문화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몬주 게스트하우스 바로 길 옆에 신축중인 롯지>
다이닝 룸에는 나 말고도 두 사람의 트레커가 여기에 숙소를 정하고 오늘밤을 지낼 모양이다.
미국에 왔다는 젊은 여자분과는 간단한 인사만 나눌뿐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더 이상의 이야기를 진척 시키기는 어렵다. 미국 여자분은 가이드와 포터 두 사람을 대동하고 트레킹을 하는 중이다. 아무리 가이드와 포터를 데리고 다니다고 하지만, 여자의 몸으로 혼자 쿰부히말 트레킹을 시도한 자체가 보통은 아니다.
<다이닝 룸 파트너들의 모습>
시간이 지나자 숙박을 하려는 트레커들이 하나 둘, 새가 둥지를 찾듯이 롯지로 찾아들고 있다.
내 방 옆에 동양인 한사람이 입실을 하고 있어, 혹시 하고 물었더니 일본에서 온 트레커다. 가이드 한사람을 데리고 에베레스트 BC 캠프와 칼라파트라를 등반하고 루크라로 내려 가는 중이란다.
다이닝 룸으로 자리를 옮겨 통 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오사카에서 왔다는 50대 에노모토씨는 쿰부 히말에 두번째 왔으며, 첫번째에 이어 두번째도 독 같은 가이드를 데리고 등반을 하였다고 한다. 가이드가 일본어를 곧 잘하여 나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몬조 몬주 게스트하우스 다이닝 룸에서의 한때>
그리고 에노모또씨가 나에게 남체에 머물만한 롯지를 소개한다. 롯지 이름이 A. D. Friendship이고 롯지 주인이 유명한 셀파이며 일본어를 잘해 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저녁을 먹고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숙소로 들어와 내일은 쿰부 히말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까를 기대하면서 롯지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
첫댓글 노짱 드디어 루클라에 도착 현실감있게 산행기를 묘사하여 당신과같이 산행하는 착각에 빠져가는군.
멋지구만 사진이 실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