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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진흥원 • 강원대학교 주관 인문학 포럼(세미나) 원고
강원도 시인의 대표작품에 나타난 장소성Placeness에 대한 시적 성찰
김진광 (시인)
1. 들어가기
강원도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문학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많은 향토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동해안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하여 절세미인 수로부인과의 얽힌 신라시대 향가인 「헌화가」와 한시로 전하는 「해가사」1) , 가사문학의 대표작품인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고려 말부터 지금도 창작이 이어지고 있는 인간편향의 제재 수용의 정선아리랑, 강원도의 지방적 특성을 수용하고 있는 이인직의 「귀의성」과 「은세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동백꽃」, 데릴사위인 ‘나’와 ‘장인어른’과 아내가 될 키가 잘 자라지 않는 ‘점순이’를 통해 해학과 풍자와 현실 비판적인「봄․ 봄」등이 강원도를 배경으로 하여 지어진 작품들의 좋은 예가 된다.
강원향토문학이 지역적 특수성을 문학 속에 수용해 온 양상은, 어느 지역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갈래에 의해 살필 수 있다. 2)
①자연편향의 제재 수용-향토적 소재
②인간편향의 제재 수용-향토적 언어와 정신
③자연과 인간 중심의 제재 수용-향토적 소재, 향토적 언어와 정신
④역사적 현실 중심의 제재 수용-향토적 정신
시에서의 장소성Placeness이란 무엇인가? 시에 나타난 사물이 위치한 곳 혹은 실존적 장소나 현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넓은 의미로는 지역성(locality)과 같은 의미 혹은 지역성의 하위 단위로 쓰인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는 하위 단위로 보고 작품을 성찰해보고자 한다. 남기택은 지역문학이 지닌 층위를 형식의 차원(지역에서의 삶, 지역적 연고, 구체적 경험 등), 내용의 차원(지역이라는 주제, 소재, 기타 지역적 경험의 형상화 등), 실정적 차원(상징권력, 인맥, 명망성, 독자층, 발표기회 여부 등)으로 도식화한 바 있다. 3)
강원문학 100년사 4) 를 맞이하여 강원문학대선집 발간위원회에서는 2005년 6월 30일
『강원문학 대선집』을 발간하였다. 시, 소설, 아동문학, 수필, 희곡 ‧ 평론 5권의 책으로 묶어내었다. 작품이 게재된 작가는 2005년 현재 등단하여 강원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강원도에 연고한 출생지나 거주지를 둔 사람, 강원도에 연고지를 둔 사람으로 타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 고인이 되었지만 연고지가 강원도로 문학 업적을 남긴 사람 등이었다. 즉 남기택의 지역문학의 개념이 지닌 층위 중 형식의 차원(지역에서의 삶, 지역적 연고, 구체적 경험 등)과 관련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원문학 대선집』이 발간된 셈이다.
시 대표작품은197명의 작품이 각 4편씩 게재되어서 총 788편이 본 연구의 대상작품이 되었다. 788편의 작품을 분석하기는 너무 분량이 많아서, 지역문학의 개념이 지닌 층위 중 형식의 차원에서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강원도의 장소성Placeness과 관련된 작품으로 한정하였다. 장소성과 관련된 작품을 앞에서 언급한 박민수의 강원문학의 지역적 특수성을 문학 속에 수용해온 양상 네 갈래, 남기택의 지역문학이 지닌 층위를 참고하여, 다시 향토사鄕土史 (local history) 관련, 통일 관련, 종교 관련, 광산촌 관련, 바다 관련, 강 ․ 호수 ․ 폭포 관련, 산 ․ 고개 관련 등으로 분류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2. 로컬히스토리, 관련 작품
낭낭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죽서루에 오르면/ 아주 먼 옛날, 민족자존의 소리/ 샘물처럼솔바람 소리에 섞이어/ 고려 때의 소리가 들린다// 구름에 허리 가린/ 두타산(頭陀山 )천은사(天恩寺)로부터/ 오십천(五十川) 강줄기 따라 묻어 오는/ 낭낭한 글 읽는 소리// 뼈 속까지 깨끗한 선비/ 이승휴(李承休) 선생이/ 제왕운기 글 읽는 소리/ 아주 먼 옛날, 자존의 소리/ 죽서루에 오르면/ 고려 때의 소리가 들린다 - 정연휘, 「죽서루에 오르면」전문
그 옛날/ 광화문이 열리면서/ 임금님은 해뜨는 쪽으로 길게/ 심호흡을 하셨다네// 일렁이는 정동진의 바다는/ 푸른 가슴을 열고/ 뭍으로부터/ 꿈틀거리며 달려오는/ 산맥을 모성(母性)의 숨결로/ 달래고 있었나니// 중략// 빛의 아들이/ 구천(九天)의 중심을 겨냥하여/ 쏘아 올릴 채비로/ 삶의 요람을 저리도 흔드는 데/ 정동진 연해선에 맴도는/ 낭낭한 아침의 기적 소리/ 모래톱에 젖는다 - 김남구 「정동진의 노래」
「죽서루에 오르면」을 쓴 정연휘는 두타문학과 삼척문협 회장, 초대 삼척 예총회장, 삼척문학 통사의 주역을 맡아 일해 온 삼척문학의 동량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 시인이다. 삼국유사와 더불어 단군을 떠올리고 발해를 떠올리며 몽고 항쟁 때 대 서사시 「제왕운기」를 써서 우리나라의 민족자존을 지킨 이승휴를 기린 시이다. 관동팔경의 제1루인 죽서루 건축연대를 이승휴의 시를 보며 그 이전으로 짐작하고 있으며, 이 시 속에 실제 지명 두타산, 천은사, 오십천, 죽서루의 장소성, 그리고 이승휴라는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 등장한다.
김남구의 「정동진의 노래」역사성보다도 구전되어 전해오는 임금과 정동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시적으로 잘 형상화한 시이다. 정동진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동 쪽이 정동진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느 임금님이 안질이 심했는데, 일관이 궁궐에서 정동 쪽 바닷가에 누가 큰 집을 지어서 해를 가려서 그런다고 했다. 그 집을 철거한 후 안질이 씻은 듯 낳았다고 한다.
이외에 로컬히스토와 관련된 작품은 「무궁화 동산의 일출」(통일과도 관련), 「소리꽃」(우리의 역사를 비판한 작품이지만 시의 예술성에서 부족) 등이며 구체적인 장소성이 나타난 작품이 의외로 적었으며, 우리의 역사가 절실하게 가슴에 물결치는 작품이 없어 강원도의 지역성이나 장소성이 드러난 향토사(local history) 관련 시 쓰기가 숙제로 남는다.
장소성은 없지만 삼척지역 출신으로 훌륭한 시를 쓰는 원로시인 정일남 시인의 역사성과 관련된 예술성이 뛰어난 지조를 지키는 선비의 귀양길을 바라보는 민초(풀)의 노래를 감상해 보자. 다음의 시에 장소나 지역 이름이 들어가면 금상첨화가 될 터인데……
유배지로 가는 길목을 지키기로 했다/ 새벽이슬에 몸도 깨끗이 단장하고/ 입 다문 바위틈에 목을 뽑아/ 지나가는 상투 하나 똑똑히 보아야지/ 풀은 속임수가 없었다/ 갓 쓴 뒷모습 초라할지라도/ 그 지조 꺾이지 않았으니/ 풀은 길을 아낌없이 내 주었다/ 가는 길이 새로운 길임을 알까/ 옳은 말 옳게 해서 어전에 미움을 사고/ 산과 물이 있어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곳/ 풀은 가라고 가라고 하고/ 비록 형벌을 씌워 가둡는다 해도/ 버림받은 땅에 가시면/ 도감에도 없는 풀이 반길 것이니 - 정일남,「풀의 세상」전문
3. 장소성, 통일 관련 작품
흰 구름 떠도는 낙타봉/ 백학은 유유히 넘나드는데/ 더 이상 갈 수 없는 이 언덕// 아직도 안보교육관에서/ 과거와 현실을 비쳐 주어/ 눈시울이 젖어 있는데// 중략 // 바다가 보여준다/ 어서 어머니처럼/ 푸르게 하나 되어라/ 어깨동무 하고 달려와/ 좋아 소리치고 하얗게 웃으며/ 온몸으로 타이른다// 오늘도 통일은 어디가고/ 여기 온종일 바라만 보다가/ 쓸쓸히 돌아설 수밖에 없는데/ 삼천 년 후에 온다던 미륵불/ 이미 와 미소 짓고 서있네.
- 강수근, 「통일 전망대」전문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그시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가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흘깃 스쳐 가는/ 병사의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 정춘근, 「지뢰꽃」전문
강수근, 「통일 전망대」는 금강산 외금강의 낙타봉이 보이는 통일전망대를 방문하고 쓴 시이다. 백학은 남북의 휴전선을 넘나드는데, 남북으로 오래 갈라서 있는 현실의 아픔을 안타까워한다. 바다가 푸르게 하나 되라고 타이르고, ‘삼천 년 후에 온다던 미륵불/ 이미 와 미소 짓고 서있네.’하며 통일의 기원을 해본다.
「지뢰꽃」을 쓴 정춘근은 1999년『실천문학』으로 등단하여 철원문학과 한탄강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휴전선 근처 특수한 지역의 아픔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남북으로 갈라서 사는 동족의 아픔의 현실을 지뢰밭에서 지뢰를 밟고 꽃피우는 꽃들로 환치하였다. 통일을 주제로 한 장소성이 담긴 시 중에서는 시적 형상화의 비유가 가장 돋보이는 좋은 시이다.
통일을 주제로 한 장소성이 나타난 시로 신금자의 「통일전망대」가 눈에 띄었는데, 강수근의 작품과 제목이 같고, 평화로운 새와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사람들을 대비시킨 점이나 통일 염원의 공통점이 나타나 있다. <아, 눈 시리게/ 투명한 하늘// 금강의 산자락은 망원렌즈에 끌려와/ 안타까움으로 잠시 머물다/ 황망히 돌아서고 만다// 녹슨 철책에 찢겨진 허리춤/ 생채기만 켜켜이 깊어가고/ 발끝에 잡힐 듯 먼/ 해금강// 물새들의 나래짓은/ 저토록 평화롭구나>. 이 외에 통일들 주제로 한 시는 송병준의 「도라산역의 함성이」, 정경현은 대표작 4편 중 3편「돌아오지 않는 다리․ 1, 2」, 「통일전망대에서」가 통일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분단극복, 통일의 작품들 또한 작가들의 과제이다.
삼척 태생으로 좋은 작품을 쓰며 문학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수원에 가 사는 최홍걸의 대표작의 하나인「야전삽」은 남대문 시장이 배경이 되어 강원도라는 장소성에서 벗어났지만, 6․ 25의 동족상잔과 분단의 아픔을 시로 형상화한 좋은 작품이다.
남대문 시장에서/ 문득 손에 잡아본/ 낡은 미제 야전삽 하나// 접고 펴면/ 삽이 되고 곡괭이도 되는/ 어린시절 누구나 갖고 싶어했던/ MADE IN U.S.A// 육이오 동족상잔의 현장에서/ 숱한 시체를 묻어버리고/ 우리의 山河 곳곳에 묻혀 형체만 남아 있을/ 미제 야전삽.
- 최홍걸, 「야전삽」전문
4. 장소성, 종교 관련 작품
바람마저 단풍빛으로 물든 시월 하순/ 그리움 한 짐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모른 채/ 그 영화의 배경이 무릉계곡이라는 것만 아는/ 눈을 씻고/ 귀를 씻고/ 관음사로 향했다// “낙조”의 시인 최인희 시비(詩碑)를 지나/ 금란정과 삼화사를 지나/ 산길을 오르는 동안/ 발걸음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벼워졌다.// 가쁜 숨 몰아쉬며 만나는 관음사// 스님도 없고 관음보살도 없었다// 업보의 땀내를 지우고자/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합장하는/ 사람들의 발길에/ 들풀이 시들어가는 관음사의 오후// 빈 가슴 어루만져주는 깨끗한 바람 때문일까/ 똑 똑 똑 또또르르/ 내 몸에 청아한 목탁소리가 울려왔다
-김태수, 「관음사, 가을」전문
화암사 대웅전의 부처는/ 아무 말 없는데/ 무슨 설법 들으려고/ 저 산들은 풀빛 옷 깨끗이 갈아입고/ 그 앞에 나지막이 부복해 있는가.// 겹겹의 산에/ 밀려나 앉은 동해가/ 법당을 나서는 내게 선뜻/ 눈 맞추며 일어서지만/ 나는 전해 줄 말이 없네.// 내 온몸이 귀가 되어도/ 듣지 못한 말/ 반짝이는 나뭇잎들은 들은 게지/ 아름답게 가고 흐뭇하게 오는 길이/ 저리도 다소곳한 걸 보면.// 어지러운 내 심정이/ 풀빛으로 물들 수 있다면/ 부복해 있는 산들의/ 맨 뒤쯤이면 어떠랴/ 여기 엎드려 귀만 있는 산이어도 좋겠네.
- 김옥란, 「화암사에서」전문
김태수 시인은 삼척출신으로 처음에는 소설을 공부하다가 1991년 『시세계』에 시로 등단하였다. 삼척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여 공업계통의 자격증, 중등학교 자격증(실습은 모교인 도계고에서 필자의 지도를 받음), 삼척시청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면서 박사과정을 받고 삼척시 박물관장을 맡아 박물관 설립과 많은 지역 관련 연구서적을 발간하였다. 「관음사, 가을」에서는 ‘무릉계곡, 최인희 시비, 금란정, 삼화사, 관음사’ 등의 구체적인 지역의 이름과 장소가 여럿 나온다. 이 시는 ‘스님도 없고 관음보살도 없는 조용한 절간’ 에서 ‘빈 가슴 어루만져주는 깨끗한 바람 때문일까/ 똑 똑 똑 또또르르/ 내 몸에 청아한 목탁소리가 울려왔다’ 는 득도의 경지를 맛보는 부분이 이 시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조금은 알지 않겠는가?
「화암사에서」는 불교용어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이심전심으로 불심이 잘 녹아있는 비교적 성공한 작품이다. 산과 바다의 의인화와 시적자아의 자연에 대한 겸손한 마음이 이 시를 더 돋보이게 한다. 끝부분 ‘어지러운 내 심정이/ 풀빛으로 물들 수 있다면/ 부복해 있는 산들의/ 맨 뒤쯤이면 어떠랴/ 여기 엎드려 귀만 있는 산이어도 좋겠네.’에서는 시적자아의 자연과의 합일과 나아가 부처의 마음과의 합일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강원도의 장소성과 관련된 이외의 작품으로는 「구룡사 대웅전에 서서」, 「건봉사 담쟁이」, 「낙산사 범종소리」, 「낙가사 산수유」, 「봉정사에서」, 「봄날에」, 「백담사 비경」등이 있으며, 강원도 시인 대표작품에는 모두 불교와 관련된 작품으로, 관련된 타 종교의 작품은 한 편도 없는 것이 특이하였다.
5. 장소성, 탄광촌 관련 작품
카우카소스 산꼭대기/ 붕화가 오르고// 숲이 푸른 불꽃을 튀기는 동안/ 새의 부리에 간을 내어 준/ 그대 프로메테우스// 지층의 떨림/ 새는 다시 폐를 향해 부리를 들이대고// 카우카소스 산꼭대기서/ 검은 쥐 기어다니는 해저까지/ 전승의 신화// 아직, 우리의 프로메테우스는 살아 있다. - 정연수, 「광부」전문
안전등 불빛 앞에/ 하루살이 떼처럼 춤추는 탄 먼지는/ 단 한번의 호흡에도/ 공기보다 더 많이 폐에 쌓이는 듯해/ 자꾸만 생가래침을 뱉어낸다.// 전쟁터처럼/ 어제도 오늘도 다치고 주검이 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선뜻 팽개치지 못하는/ 손때 묻은 곡괭이//
몸을 팔고 건강을 팔아야만/ 몇 푼 돈을 얻는 하루 6시간의 처절한 노동이/ 결코 서러워서도 아니건만/ 자꾸만 눈시울이 젖어오는 건/ 이마에 돋는 땀방울이 흘러들기 때문인가/휘두르는 곡괭이에 힘을 주며/ 자꾸만 되새김질 하는 소리/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언젠가는 하늘 한 겹 훌훌 벗고/ 맑은 공기 가득한/ 저 눈부신 햇살 아래로 돌아갈 그 날을 위해서 - 성희직, 「광부」전문
정연수는 태백 출생으로, 시집 『꿈꾸는 폐광촌 』, 『 박물관 속의 도시』, 편저『탄전문학 』13권을 출간하며 탄전문학연구소 소장을 지냈는데, 필자도 여러 번 탄전문학에 작품을 실었다. 정연수의 「광부」는 주신主神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불을 준 프로메테우스가 주신의 노여움으로 카우카소스 산꼭대기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서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되는 고통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불과 관련된 탄광시에 접목한 상상력이 동원된 특이한 형태의 탄광시라고 할 수 있다. 탄광 갱에는 쥐들이 사는데 쥐들에게 광부들이 도시락을 나눠준다고 하는데, 굴이 무너지려고 할 때 쥐가 먼저 알고 도망을 친다고 한다.
성희직은 광부 출신으로 광부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앞장서 싸우며 강원도의회의원에 진출하였으며, 1991년 시집 『광부의 하늘』로 등단하였으며, 강원문학대선집을 발간할 때 민예총강원지회장 자격으로 축사의 썼다. 성희직의 대표작 4편 중 3편(광부의 하늘, 어느 광부의 죽음, 진짜 광부는)이 광부를 소재로 한 작품이고 1편(탄광마을 아이들)은 탄광마을 아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성희직과 정연수의 작품에 장소성이 생략되었지만 그들이 글을 쓰며 근무한 곳이 탄광촌이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광부」는 자신이 하늘을 두 개인 열악한 환경에서 직접 체험한 일을 소재로 하여 쓴 탄광시이다. ‘살아야 한다! ’는 절박감 그 속에서도 ‘언젠가는 하늘 한 겹 훌훌 벗고/ 맑은 공기 가득한/ 저 눈부신 햇살 아래로 돌아갈 그 날을 위해’서라는 희망이 갱구의 안전등처럼 비추고 있다.
그 외에도 탄광이나 광부를 소재나 주제로 한 작품들로는 「절골 풍경」, 「상동의 봄」, 「통리역에 드리운 그림자」, 「철암을 지나 통리에 내리다」, 필자의 작품「함백항 폐광 입구에서」등이 있다. 탄광촌과 광부를 주제나 소재로 한 작품은 강원도 특히 삼척과 태백 정선의 로컬리티(locality)와 관련이 있는 지역의 시인들이 앞으로도 계속 다루어야 할 분야다.
6. 장소성, 바다 관한 작품
동해바다 어촌의 이야기를 소재나 주제로 하여 한 권의 서사시집으로 묶어낸 작업은 필자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했을 것이다. 필자가 고향에서 배를 타며 체험했던 이야기와 마을에 태어나 살면서 보고 들었던 60호 남짓한 반농 반어촌 시루뫼마실(증산)의 이야기 -이 세상에 가장 나지막하게 살아가는 어부들의 원초적인 인간냄새, 끈질긴 생명력, 노동의 현장, 가난과 죽음 전설과 인정 등-를 이야기가 있는 시, 서사시로 표현하려고 했다. 1988년도에 발간한 바다를 소재로 한 산문서사시『시루뫼 마실 이야기』5) 발문에서 시인이며 평론가인 엄창섭 관동대교수는 <시루뫼 마실 이야기’의 시사적(詩史的) 의미 (-동시로 해양문학의 지평을 열다) >라는 제목으로 평을 하였다. 위의 시집은 실존의 장소성과 마을 사람들의 이름들이 나타나 있다.
그 뒤를 이어 15여년 후인 2002년에 두 번째로 동해 묵호를 중심으로 한 동해안 바다와 어부들의 이야기를 소재나 주제로 하여 한권의 서사시집으로 묶어낸 사람이 이웃 동해시에 사는 류재만 후배 시인이다. 류재만 풍속서사시집 『해비늘 벗기기』해설을 쓴 평론가 최영호는 <바다의 라비린스> 6) 라는 제목으로 평하였다. 최영호는 ‘난맥상에 있는 바다의 라비린스(Labyrinth)를 그가 어떤 아리아드네 실로 풀어내는지를 찾아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하였다. 류재만은 2006년에 다시 바다를 소재로 한 연작시집 『파도를 재우다』를 펴낸다. 해설을 쓴 한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용찬은 <바다에서 길어 올린, 바닷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평했는데, 제1부의 7편은 장시들로 『해비늘 벗기기』연장선 속에서 읽을 수 있고, 나머지 제2부에서는 주로 바다의 고기, 조개, 해초의 이름에 ‘찌찌’나 ‘고추’를 붙인 제목으로 독백 혹은 대화체로 시를 형상화 시키고 있다. 『해비늘 벗기기』에는 물론 묵호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겠지만 장소성이나 실존 인물의 이름이 없는 객관적인 바다의 이야기이다. 『파도를 재우다』에서는 「고래찌찌」, 「 꽁치」에서 지역의 이름이 잠시 나오고, 장시(長詩)「망지기」에서는 멸치잡이 망지기 실존 지역의 장소였던 ‘망운봉’의 일부 해체에 대한 비판의 시각과 함께 망지기에 얽힌 이야기가 실감나고 재미있게 독백체의 시로 형상화 된 작품이다. 「노가리 고추」에서도 사람들 이름 성수 외할아버지, 노미 엄마와 아버지, 웅이 엄마가 등장한다. 필자의 『시루뫼 마실 이야기』에서는 시루뫼 마을의 지역성과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점과 시적 형상화에서 차이점을 보이지만, 끈기 있게 동해바다의 소재로 한 시를 발굴하는 시 창작 정신에 큰 박수를 보낸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막이 내리고 있었다.// 함경도 학성 학남 사람들의 공동묘지가/ 강원도 속초 장사동으로 떠내려 왔다./ 그 언제련가/ 한 번 닫힌 땅문은 까닭 없이/ 열리지 않은 빗장 지른 세월/ 어쩌다 생면부지의 이곳에 밀려와/ 퍼렇게 얼어 버린 손등 위에/ 속절없이/ 펑펑 눈물 같은 눈은 내리는데/ 왜 이리 안개만 가득한가./ 흐려진 시력을 문지르며/ 산 허리를 올라서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더기 무더기로/ 저마다 말 꽃을 피우며/ 모닥
불을 올리는데/ 그 위를 하얗게/ 재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 김춘만, 「葬地에서」전문
새벽 6시에서 8시 사이 매일 그맘때/ 바다가 손수레를 끌고 들어온다/ 살아서 마구 펄떡펄떡 뛰는 놈들은/ 연신 사람들에게 바다의 말을 한다/ 사람들도 어둠에 부딪쳐 하얗게 부셔지는/ 파도의 말로 무어라고 떠들어댄다/ 삶에 숨이 차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르다/ 그물에 아가미가 걸린 어부들의 아침해를/ 누군가 어시장 고기덕장에 걸어놓고 있다/ 여인들의 재빠른 칼질에 어둠이 잘려나가고/ 사람들은 햇덩이를 하나씩 들고 돌아간다/ 새벽 6시에서 8시 사이 잠시지만/ 삼척 역전 번개시장에서는 고기도 사람도/ 살아서 마구 펄떡펄떡 뛰는 바다의 말을 한다.
- 김진광, 「역전 번개시장」전문
「葬地에서」작가 김춘만은 속초의 이성선과 최명길, 이상국을 뒤에서 이어가는 좋은 작품을 쓰고 있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이북에서 피란 와서 고향과 가까운 장사동에 자리를 잡고 사는 함경도 아바이 마을 장사동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공동묘지를 이루고 있는 마을 실향민의 아픔을 눈 오는 장지를 배경으로 쓴 통일의 염원이 담긴 가슴을 움직이는 좋은 시이다. 함경도 학성 학남 사람들 공동묘지가 속초 장사동으로 떠내려 왔다는 전설 같은 지역성을 시적형상화로 창조하고 있다.
「역전 번개시장」은 필자의 작품으로 편집하는 사람들의 실수로 ‘강원문학대선집’의 ‘시’가 아닌 ‘아동문학’에 분류된 4편의 시(시래기를 엮으며, 김칫독을 묻으며, 함백항 폐광 입구에서, 역전 번개시장) 중에 한 편이다. 요즘 들어 삼척에서 포항 쪽으로 가는 기찻길을 놓고 있다. 지금까지는 동해안을 통해 남쪽으로 가는 마지막 종착역 앞 새벽에 번쩍하고 열리는, 고기도 사람도 살아서 펄떡이는 ‘삼척번개시장’의 풍경을 공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엄창섭의 「해안 통신문」은 장소성 관련 ‘헌화로’가 나오는 자신의 기독교적인 삶을 일몰의 바다에 비추며 성찰 속에 희망을 내재한 훌륭한 산문시이다. 강원도 지역은 아니지만 불교적 이미지가 깔린 민족시인 심연수의 「안도의 바다」가 있으며, 그 외에도 「사근진 바다에서」, 「정동진 시간」, 「주문진」, 「추암역」, 「묵호항 등대」, 「묵호항」, 「어판장에서」, 「오징어 덕장이 있는 청호동」등이 있다. 탄광지역과 함께 바다 역시 동해지역의 삶의 현장으로 지역성 관련 시 창작이 요구된다.
7. 장소성, 강과 호수와 폭포 관련
오늘은 그가 물장난을 치고 싶은 모양이다./ 설악산에 걸린 저 무지개를 보아라/ 한 쪽 끝을 끄을어/ 달마봉과 울산바위 사이 老子샘으로 가져가고/ 다른 한 쪽 끝은 잡아당겨/ 청봉 너머 대승폭포에 갖다 대었다.// (설악산은 흡사 손잡이 달린 과일 바구니/ 울퉁불퉁 봉우리들은 입 조금 벌려 미소짓는 석류나/ 낯 찡그린 풋 모과/ 잠시 이 과일 바구니를 들어보이니/ 우르르 과일들이 쏟아지다가 무수한 동자보살로 변해/ 구름을 박차고 훌쩍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가던 길 멈추고 나 잠시 취하여 이걸 바라보는 동안/ 그가 외설악 老子샘을 길어올려/ 쏴 내설악 대승북포 돌함지박에 쏟아붓고/ 내설악 대성폭포 폭포수를 빨아들여/ 쏴
老子샘터 물안개로 흩뿌리고// 그렇지, 오늘은 나도 장난하고 싶은 날/ 서두르던 출근길을 휘적휘적 저어가니/ 달마봉 元曉가 싱긋 웃는다.
- 최명길, 「물장난과 과일바구니」전문
일어나야지./ 산새도 물새도 물안개를 나르고/ 靑松이 수놓은 옥순봉 병풍자락엔/ 아침햇살이 비스듬히 비춰주네/ 고요함이 물러가네.// 일을 하네./ 비바람에 오래 씻긴 三善岩 위로/ 오늘도 땡볕은 어루만지며 宇宙를 달구네/ 나무들도 옷매무새를 고치고/ 자갈돌도 길을 다듬을 때/ 여울은 소리 모아/ 한가닥 아라리를 길게 뽑네/ 잔치집 풍경일세.// 날마다 새로운 創作이지만/ 탄생의 기쁨은 대자연 속으로 돌려지네/ 물살은 세월보다 빠르게/ 강물을 흘러 보내네/ 5억년을 그렇게 살아 왔다지/ 그런데 시방 누가 훼방을 놓는가?/ 당최 안 될 일일세. (4, 5연 생략) - 문태성, 「동강 어라연」1, 2, 3 연
평론가 박호영은 「자연을 향한 외로운 존재의 思惟」 라는 주제의 작고문인 최명길 세미나 발표에서 ‘외로움 속에서의 자연과의 교감’, ‘명상에 귀 기울이는 만물 교융의 세계’, ‘극미묘의 세계에 대한 佛家的 사유’로 나누어 시를 분석하였다. 7) 최명길의 「물장난과 과일바구니」는 박호영이 나눈 앞의 셋에 모두 관련이 있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극미묘의 세계에 대한 佛家的 사유’에 가까운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앞에 선보인 시는 상상력과 개성이 돋보이는 불가적 사유가 담긴 좋은 시다. 그의 사유는 형이상학적이고 무위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시의 발상이 어린이다운 생각과 장난스러움이 보이이기도 하는 것은, 그가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직에 오래 몸담아 있어서 일수도 있겠다. 최명길의 작품에서도 설악산 소재의 이름이 8개로 가장 많은 장소성이 나타난 작품의 하나이기도 하다
「동강 어라연」은 시인 문태성은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며, 그의 대표작 4편 중 3편이 강원도의 장소성과 관련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목을 포함해 3개의 장소성 이름이 나타나며, 자연을 의인화하여 시청각적 이미지를 잘 살린 어라연의 풍광을 통하여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자연합일을 주제로 한 장시이다. 앞에서 소개한 두 작품 모두 현존하는 지역 사랑의 장소성이 많이 드러난 작품의 예이다.
강원도의 장소성이 나타난 작품 중에서 많이 다룬 소재를 살펴보면, 경포호를 소재로 한 시 5편, 정선 소재 4편, 내린천 소재 3편, 동강 소재 2편 등이 있었다.
8. 장소성, 산과 고개 관련 작품
설악산은 나의 지붕이다./ 지붕 끝으로 밤이면 별이 뜬다./ 기왓골 깊이깊이 물소리가 잠긴다.// 동해는 나의 마당이다./ 새벽에 일어나 뜨락을 쓴다./ 일렁이는 푸른 잔디밭에 올라온// 퍼들쩍거리는/ 생선 한 마리/ 붉고 싱싱한 햇덩이// 나는 빙긋이 웃으며/ 젓가락으로 집어 숯불에 구워/ 아침상에 올린다. -이성선, 「나의 집」전문
작년 봄 우리 님 이 산을 넘을 제/ 아흔 아홉 구비마다 눈물이 서렸나니,/ 얼켰던 머리카락 눈빛에 새로워라.// 소복하고 오실 님의 머나먼 구름밭./ 정왕산에 비만 내려 산천만 푸르렇다./ 해발 팔백미 八百美, 돌아가면 千里, 올라가면 萬里./ 봄마다 멀리 산앵두 핀다./ 내려다보면 어찌도 푸른 짐승이/ 높디 높은 하늘처럼 둥둥 떠서 놀까.// 중략(3~8연)// 仙子嶺을 따라서 국수당에 오르면/ 피에 젖은 옷자락, 마르지 낳는 눈물,/ 귀신나무 소나무만 애처러이 자랐거니, 목이 말라도 목이 말라도 山을 부르면/ 눈 앞엔 시원히 海圖가 열린다.
- 이성교,「大關嶺을넘으며」1, 2, 9연
이성선은 최명길과 함께 속초출신으로 현대 한국시문학사에 속초와 설악과 불교적 사유 등으로 한 획을 그은 작고 문인이다. 그는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서 이웃 속초에서 생활하고,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역을 소재로 한 작품을 창작하고, 지역문학 활동을 한 참신한 지역문학인이다.
이성선의「나의 집」은 그가 사랑하는 설악산과 동해바다를 소재한 2개의 내용으로 한 작품이다. ‘설악산은 나의 지붕이다’는 메타포 설정으로 지붕 끝에 별이 뜨고, 기왓골(산골짜기) 깊이깊이 물소리가 잠긴다. 그리고 다시 ‘동해는 나의 마당이다’는 메타포의 설정으로 일렁이는 푸른 잔디밭에 올라온 퍼들거리는 생선 한 마리(붉고 싱싱한 햇덩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숯불에 구워 아침상에 올린다. 은유를 통한 참신한 상상력이 설악과 동해바다처럼 살아 움직인다. 장소성인 고개와 관련 있는 그의 짧은 시에 우주를 담은 「미시령 노을」은 뒤에 언급할 장시 이성교의 「대관령」과 대조 된다.<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미시령 노을」전문)
윤병로 교수는 “일찍이 이성교는 김소월, 박목월, 서정주의 뒤를 잇는 리리시즘의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 된다.”고 했다. Lyricism이란 서정시체(体)혹은 서정풍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평안도에는 김소월, 경상도에는 박목월, 전라도에는 서정주, 그렇다면 강원도에는 삼척출신 이성교가 아닌가. 낙관적인 시선을 토속적인 언어와 고향의식으로 강원도 서정을 줄기차게 노래하는 月川8) 의 시편들 속의 향토는 승화된 특별한 장소로, 평안과 인정이 자리한 장소이다.
이성교의「大關嶺을넘으며」는 대부분의 그의 시와는 달리 마음먹고 공을 들여 쓴 유일한 서사적인 장시이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첫시집 『山吟歌』에 게재된 그의 대표작의 하나이며, 산문체를 사용하지 않고 운율 중시, 전통가락 중시, 언어의 조탁미, 토속적인 우리말 사용으로 전통적인 정신을 노래한 성공한 작품이다. 장소성에 관련된 실존의 지명 - 아흔 아홉 구비, 정왕산, 갈매골, 능경산, 횡계벌, 초막골, 점텃골, 약천 삼포암, 선자령, 국수당-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시는 월천의 시에서나 이번에 대상이 된 다른 시에도 볼 수 없다. 그는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강릉으로 나아가 강릉상고를 다닐 때 『수험생』지에 「남매」가 당선되면서 시인이 될 것을 결심하는데, 이 시는 그 때 학창시절 머물렀던 강릉의 큰 고개 대관령을 노래한 것이리라. 북쪽인 서울로 가는 영동지방의 관문이 대관령이라면, 첫시집에 함께 게재되고 강원문학 대선집에도 대표작으로 실린 「갈령재」는 영동지방에서 경상도로 가는 관문에 해당된다. 월천의 시에는 고개를 노래한 두 편의 시가 그의 대표작에 들어 있다.<오동나무/ 꽃 핀 마을은/ 죄다 잔치에 바쁜 마을./ 돌을 모아 산봉우리를 만들고/ 그 속으로 잎을 피어가게 함은/ 앞길을 더 창창하게 하자 함인가./ 우리 어머니가/ 나를 이 산에서 낳고/ 이 산으로 가게 할 산공을 드린 후/ 모진 놈의 창자 속은 황닥불이 붙는다.// 죽더라도/ 嶺南 길은 떠나지 말아야지./ 깜바구나 따먹고 아리랑이나 부르지.// 밤마다/ 지렁이는 섧게 우는데/ 나뭇가지에 붙은 하얀 침은/ 어느 누구의 눈물인고.// 차돌마다/ 地紋이 툭툭 튀어나와/ 영없는 놈의 팔자를 고치게 한다.// 산은/ 한 해/ 한번씩 운다./ 징소리가 울리면/ 떡을 훌훌 뿌리고,/ 아직 못다 푼 산돌메기를 달랜다. ( 「갈령재」전문>
이 외의 산을 노래한 작품으로는 금강산을 노래한「백운대」, 설악산을 노래한「겨울 비선대」, 「오징어 덕장이 있는 설악산」, 동해시의 산「초록봉에서」, 태백산을 노래한「불타는 산행」, 「태백산 한담」, 「고향산천․6」, 이원섭의「금강산과의 첫대면」, 주문진의「삼형제봉」, 치악산을 노래한「겨울로 가는 길목에 서서」, 최명길의 정선「민둥산의 노래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외의 고개를 노래한 작품으로는 「겨울 은비령」, 「대관령 옛길」, 「대관령을 넘으며」,「대관령」(2개), 「겨울 대관령」, 「한계령에서」, 「저항령 투구꽃」, 「진고개에서」가 있다. 확실한 산과 고개가 지명으로 작품에 나타난 가장 많은 곳이 대관령이다. 다음이 설악산, 태백산, 치악산, 금강산 등이 있다. 산과 고개 역시 바다와 광산촌은 강원지역의 삶의 현장으로 지역성 관련 시 창작이 요구된다. 이러한 장소성이 드러난 작품 창작은 지역의 사랑이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처럼 평창지역의 지명을 널리 알리는 관광홍보 역할을 하기도 한다.
9. 나가기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나 살고 있는 곳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품을 쓸 때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을 배경으로 하거나 소재나 주제로 하였을 때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예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앞에서 언급하였던 『강원문학 대선집』에 게재된 작품 중에 장소성과 지역성과 관련 작품들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는데, 각각 4편으로 한정된 대표작품이 실려서인지, 강원도의 지역성과 장소성 관련 작품이 많지 않았으며, 좋은 작품이 생각보다는 적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강원도에 태어났거나 강원도에서 작품 활동을 한 현대시부터 1995년 이전에 등단한 시인들의 대표작품을 읽고 분석할 기회를 부여한 국학진흥원과 남기택 평론가를 비롯한 강원대에 감사드린다.
필자는 작품을 쓸 때 되도록이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성(locality)과 장소성 (Placeness)과 관련을 시키려고 생각하며, 그러한 작품을 실제로 많이 써왔다. 동해안 어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을 때 앞에서 언급했던 필자가 태어나 자란 어촌 이야기 85편을 잡지에 발표하고 1988년에『시루뫼 마실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 또한 몽고가 쳐들어와서 나라가 풍전등화일 때 삼척 천은사 터에서 단군과 발해 등을 떠올리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시로 써서 민족의 자존을 일깨운 이승휴의 생애를 소재로 한 서사시『민족의 나침판 이승휴』9) 을 써서 1995년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는 정부정책으로 국영이 아닌 태백시와 삼척 도계의 수많은 개인 탄광이 문을 닫았다. 그 때 정부에서 탄광촌의 광부들이 먹고 살 공장 등의 자리를 미리 준비를 못하고 퇴직금을 주는 바람에 광부들이 모두 떠나서 태백시는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탄광관련 동시와 시를 많이 써왔다. 정부의 정책으로 많은 탄광이 문을 닫을 때, 필자의 장르는 아니지만, 이러한 광산촌에 대한 이야기를 리얼리즘의 장편소설로 쓰려고 자료를 준비하고 작품을 쓰다가 그 끝을 맺지 못하였다. 신문과 방송 잡지 등에서 앞으로 어떤 작품을 구상하느냐 물어올 때는, 말년에는 옛 삼척지역 명소와 마을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한권 분량의 책으로 내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박재문 시인의 유고시집 노래로 소개하는 삼척문화재 『신비의 환선굴』을 펴내었다. 박시인의 작품과 방향을 달리한 지역성(locality)과 장소성(Placenes) 관련 한 권의 작품을, 쓰다 중간에 둔 장편소설집과 함께 말년에 꼭 쓰려고 한다.
작가는 장소성과 관련된 작품을 쓰면서 그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작품 속의 실제 사물의 재창조를 통하여 그 실존의 사물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다시 태어난다. 독자는 재창조된 실존의 장소성이 있는 사물과 실존하였던 사람을 작품으로 읽고, 실제로 해당하는 장소와 사물을 보았을 때 흥미로워하며,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관광적 효과 또한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즉 요즘 시대는 한국의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등이 나라경제에 큰 도움을 주며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윤리 도덕 교과서가 아닌 문학 작품이 총칼보다도 사람들의 내면의식을 바르게 변화시키고 내면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나 김유정의 『동백꽃』이나 『봄봄』 등과 같은 소설이 더 효과적이겠지만, 운문도 지역의 자연과 삶과 역사적 인물을 지역성과 장소성에 잘 접목시켜 연작시나 책 한 권 분량의 서사시를 좋은 작품으로 창작한다면 그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시 창작에 시간을 할애하여야 하며, 평론가는 이러한 작품 창작에 격려와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여야 한다.
■김진광(발표자)
․『소년』(1980년) 및『現代詩學』(1986) 추천으로 등단
․ 한국문협 대외협력위원, 한국동시문학회부회장(현), 두타문학회와 삼척문협 회장(역임)
․ 많은 서평, 월간문학, 아동문예(‘이달의 동시‧동시인’ 2012부터 현재 진행) 등의 잡지에서 평론을 쓰며, 각종 문학세미나 강연을 하고 있음.
․ 강원문학상, 관동문학상, 이육사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 어효선아동문학상, 월인문학상 등 수상
․ 봉황재단이사, 동양장학재단이사, 삼척여자고등학교장 등(역임), 삼척향토재단이사, 오십천수석회 고문, 포스파워삼척화력발전소 공동대책위원회 자문(현)
1) 헌화가와 해가사의 주인공 절세미인 수로부인이 경주에서 강릉부사로 부임하는 순정 공을 따라 가는 도중 ‘해가사’ 배경으로 가장 유력한 추암 촛대바위가 마주 보이는 시루뫼 마을(증산동) 와우산 기슭에 해가사의 배경이 된 <임해정>을 짓고 <해가사터비>를 세울 것을 필자가 삼척시에 건의하고 추진하여 복원되었고, 나중에 다시 오석에 헌화가와 해가사 작품과 그림을 새겨 넣은 <드레곤볼(사랑의 여의주)>가 세워지고, 그 이름을 <수로부인공원>이라 개명하였다. 그리고 삼척 임원 남화 산에 큰 자금을 들여 거대한 색채 대리석으로 <수로부인상>이 세워지고 <수로부인헌화가공원>을 조성했는데, 필자가 여러 차례 조언을 해주었지만 그대로 실행하지 않아 안타까운 점이 없지 않다. 해가사터에 세워져야할 것이 헌화가터에 세워진 까닭을 새겨두어야겠다.
2) 박민수,「강원향토문학의 지방성과 세계성」,『제7회 강원도 문인 심포지엄』, 한국문협강원지회, 1996, 20쪽.
3) 정연수, 「지역을 구심으로 한 이성선의 시세계와 계승 방안 고찰」, 2014 제1차 강원도 작고문인 재조명 세미나, 2014, 150쪽. 남기택,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경계와 소통, 지역문학의 현장』, 국학자료원, 2007, 56쪽 재 참조.
4)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의 탄생 100주년 행사가 2004년 철원에서 열렸는데, 강원도 현대문단사 시작을 상허의 탄생를 기준으로 잡은 듯함. 상허는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하여, 1926년 일본 동경의 조오지 대학에서 수학하다가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1929년부터 <<개벽>>기자,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등을 지냈으며, 1933년 박태원, 이효석, 이무영, 정지용, 김기림 등과 함께 예술파 문인들의 모임인 구인회(九人會)를 결성하고 동인지 <<詩와 小說>>창간호만 내고 종간했다. 단편 <오몽녀(五夢女)>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달밤>, <복덕방>, <패강냉>, <해방전후> 등이 있으며, 광복 후 1946년에 월북하였으며, 사망 시기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5) 월간잡지 『아동문예』에 1986년 11월호부터 1987년 10월호까지 85편의 바다를 소재로 한 『시루뫼 마실 이야기』를 발표하고, <한국동시문학상>을 수상한 기념으로 1988년 3월 10일 아동문예사에서 책을 발간해줌. 필자는 1980년에 동시로 『소년』, 시로 1986년에『現代詩學』으로 등단하여 동시, 동요와 시를 쓰며, 동화는 등단 초에 강원일보, 소년조선일보, <<소년>>, 사보 <<효성)), <<현대>>, <매일유업>>등에 10여 편을 발표함. 1989년부터 아동문학평론을 중심으로 아동문예, 아동문학, 아동문학평론, 오늘의 동시문학, 월간문학, 그 외 각종 세미나 발표 등으로 평론을 발표하고 있음. 초등과 중등 교과서에 시가 게재됨.
6)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왕 미노스가 지었다는 궁전의 미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아리아드네 공주가 준 칼과 실 한 타래로 괴물을 죽이고 실을 따라 미로를 빠져나옴. 그때 이후 공주의 이름을 따서 붙인 <아리아드레의 실>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 유력한 암시를 주는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류재만 시집 『해비늘 벗기기』최영호 해설 120~121쪽 참조.
7) 박호영,「자연을 향한 외로운 존재의 思惟」, 『제2차 강원도 작고문인 재조명 세미나』, 관동문학회, 2014.9 , 27~36쪽 참조.
8) 月川은 이성교의 호이며, 이성교가 태어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가곡천의 하류 삼척 호산읍 월천리이다. 근래에 가곡천과 바다가 만나는 하류에 있는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솔섬’이 월천의 고향집과 아주 가깝다.
9) 김진광, 「민족의 나침반 이승휴」, 『실직문화』, 삼척문화원, 1995. 328~33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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