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 청곡사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광해년간에 복원한 절이다. 대웅전은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신라 49대 헌강왕 5년(879)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도선국사가 진주를 지나가다 남강변에서 청학이 날아와 서기가 충만함을 보았다.
그는 이 일대가 천하에 명당이라 절터로 정하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청곡사 대웅전은 월아산 장군대봉을 주산(현무)으로 하는 혈처에 터를 잡고 있다.

청곡사에서는 국보급 은입사 향로가 발견되었다.
그 향로에는 '1397년 정축년 청곡사 보광전에 상총스님을 시켜 향로를 주조하게 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고려말 1380년 이성계가 전라도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왜구들이 서해와 남해에 침입하여 백성들에 많은 폐해를 끼쳤다.
왜구들의 장수중에는 아지발도라는 18세 밖에 되지 않은 장수가 있었다.
몸 전체가 비늘로 감싸고 있어 창칼로는 그를 죽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성계가 무학 대사를 초빙하여 아지발도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무학대사는 먼저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아 입이 벌어지도록 한 후 이때 입안으로 화살을 쏘아죽이라고 하였다.
마침내 이성계가 활로 아지발도를 쏘아 죽이고 남은 왜구들을 소탕하기 위해 하루 종일을 싸웠으나
해가 저물어 달밤에까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왜구들을 완전히 섬멸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안 이성계는 넘어가는 달을 붙잡아 달라고 무학 대사에게 청하였다.
이 때 무학대사가 달을 끌어올려 주어 이성계는 왜구의 잔당을 모두 섬멸하고 전쟁을 승리하였다.
이 때 넘어가는 달을 끌어올렸던 곳을 끌 인(引), 달 월(月)자로 인월(引月)이라 하여
지금의 실상사가 있는 지리산 자락의 지명이 되었다.

이때 이성계 장군도 청곡사 가는 길에 목이 말랐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미모의 여인이 우물가에 있어 물을 달라고 청한다.
그 여인은 물그릇에 버들 한잎을 넣어 주었다.
이성계 장군은 화를 내면서 그 물을 확 버리고 다시 달라고 하였다.
그 여인은 다시 물 한 박아지를 떠서 다시 나무한잎을 넣고 주는 것이 아닌가.
이성계가 “왜 물에 나무 잎을 넣는가” 하고 물었다.
“혹시 급하게 오셔서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까하여 서서히
나뭇잎을 불어 천천히 마시라고 나뭇잎을 넣습니다. ”
이성계 장군은 참으로 지혜와 미모를 겸비했음에 반하여
훗날 왕비로 삼으니 그분이 바로 신덕왕후이다.
청곡사 아래 ‘학영지’ 란 못이 있다.
신덕왕후가 되기 전 달밤이면 그 연못에 와서 맑고 깨끗한 물을 거울삼아 비춰보기를 즐겨하였다.
그는 자기미모에 빠져 자기를 고고한 학으로 비유하였고 자기 얼굴을 학의 그림자처럼 비추었다고 한다.
학영지라고 후일 연못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달빛이 산을 타고 올라왔다하여 달 올음산(달음산)이다.
달빛이 내려와서 연못에 자기 미모를 비추었다하여 월아산이라 했다.
방학교 환학루 등은 모두가 신덕왕후와 연류된 이름이다.
신덕왕후 강씨의 어머니는 진주 강씨로 진주는 그의 외가이다.
청곡사 환학루에는 퇴계 이황의 시가 있다.
1533년에 형 이해와 함께 퇴계가 청곡사를 방문했을 때 남긴 시조이다.
存亡離合一潸然 / 존망리합일산연 / 존망과 이합이 모두 산연하구나
琴山道上晩逢雨 / 금산도상만봉우 / 금산으로 오는 길에 밤비를 만났더니
靑谷寺前寒瀉泉 / 청곡사전한사천 / 청곡사 앞에 솟는 샘물 차기도 하네
謂是雪泥鴻瓜處 / 위시설니홍과처 / 이곳이 무상한 흔적의 곳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