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군 경력을 쌓았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51년 대구공업고등학교를 거쳐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에 임관했습니다.
1960년 미국 육군보병학교를 수료하고, 1965년에는 육군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에 조직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장실 민원비서관을
지냈습니다.
1963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과 육군본부 인사참모부를 거쳐
1966년에는 제1공수특전단 부단장을 지냈습니다.
1967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이후락의 추천으로 청와대를 경호하는
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으로 발탁되었고,
1969년에는 서종철 육군참모총장실 수석부관을 지냈습니다.
이듬해인 1970년 백마부대인 제9사단 29연대장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1971년에는 제1공수특전단 단장을 지냈습니다.
1973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했고 ,
1976년에는 청와대 경호실 차장보를 거쳐,
1977년에는 육사 11기생 156명 가운데 가장 빨리 육군 소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소장 진급 후 1978년 제1사단장을 지냈으며,
1979년 초에는 국군 보안사령관에 임명되었습니다.
전두환 당시 국군 보안사령관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사태를 계기로 '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실권을 장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0·26사태 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 본부장으로서 대통령 시해사건의
수사책임을 맡았고 , 11월 6일 사건 전모를 발표하면서 국민 앞에 나타났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합동수사본부 소속의 허삼수·우경윤 대령에게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강제연행을 지시했습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강제연행과정에서 총격전을 벌였고 이를 계기로
권력 공백기에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1980년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고 4월 14일 공석 중이던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하면서 권력에 접근했습니다.
1980년 5월 17일 저녁 제42회 임시국무회의에서는 국방부가 제출한 비상계엄
확대 선포안이 찬반토론 없이 가결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두환은 치밀하게 짜여진 작전계획에 따라 18일 0시를 기해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하는 조치와 함께 계엄포고령
제10호를 발표하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하였습니다.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을 통해
실권을 장악한 후 대통령 자문 및 보좌기구라는 명분으로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회의를 신설하고 상임위원장에 취임하였습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행정과 사법 전반에 걸친 주요 업무에 대해 지휘·감독 및 통제기능을 수행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구로서,
유신체제 이후의 새로운 군사정권을 준비하였습니다.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군부의 권유에 의해 사임하고,
이로부터 6일이 지난 1980년 8월 22일 천하제1사단 영병장에서
육군대장으로 예편하였습니다.
대장으로 진급한지 불과 17일만의 일이었습니다.
같은 해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 제7차 회의에서
대통령선거 단일후보로 나서 2,524표를 얻어 99.9%의 득표율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