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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를 하자마자 이름을 부른다.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아직도 골이 아프십니까?”
“아뇨, 지금은 별로 안 아파요.”
“MRI 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내 마눌이 무슨 큰 병이라도 걸려서 MRI에, 엑스레이에 난리를 친 것이 아니라 가벼운 교통사고(?)로 허리와 머리가 좀 아프다고 해서 통원 치료 중이다.
다음 주로 예약이 되어있는 정형외과에 가서 진단서를 말하니까 접수를 하고 오란다.
접수를 하고 오니 1시간을 기다리란다.
원장 비서실에 전화를 했더니 10분쯤 후에 호명. 사실 이게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는 목사로서의 내 아픔 중의 하나이다. 그때에 마눌하가 입을 연다. 마눌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이래도 되는 건가?”
“맞아, 누구라서 바쁘지 않고, 누구라서 빨리 진료를 받고 싶지 않겠어?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그러구러 정형외과와 신경외과의 진단서를 받아가지고 병원을 나섰는데도 시간은 11시를 반이나 지났다.
느닷없는 마눌의 말,
“어디 이 근처에 할아버지네 집 없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
“KFC 말이야, 징거버거가 먹고 싶어서.”
그러고 보니 내 마눌은 징거버거를 제일 좋아한다.
“이 근처에선 못 본 것 같은데... 압구정 쪽에 없나?”
“없을 걸”
“고속터미널에 있을지 몰라.”
그러나 고속터미널에는 롯데리아만 있다. 신세계 쪽 센트럴시티에도 없고.
“그냥 다른 거 먹을까?”
실없는 말에 마눌의 눈꼬리가 살짝 움직인다. 이럴 땐 다른 것은 세상없는 것도 눈에 안 들어오는 게 내 마눌인데.
어깨가 쳐진 마눌을 데리고 다시 버스를 탔다.
“있다!”
버스가 신사동 사거리에 도착할 즈음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말. 길 건너에 할아버지가 보인다. (실제로는 KFC 간판이 먼저 보였다.)
버스를 내려서 지하도를 건너 할아버지네로 들어간 마눌은 서슴없이 “징거버거요.”
“세트를 먹지?”
“아냐, 그냥 햄버거면 돼.”
나는 불고기 버거를 시켰다.
“비스켓 하나 주세요. 당신도?” “그래,”
햄버거를 싸가지고 나오는데 마눌이 가판대에서 웰치 포도쥬스를 고른다.
“당신은 음료수가 있어야 하잖아?” 사실 그건 내가 늙었다는 표시 아닌가?
롯데마트에서 450원 짜리가 1,000원이란다.
다시 지하도를 건너 버스를 탔다.
맨 뒷자리로 가 앉아서 봉지를 열고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무는 마눌. 덩달아 나도 종이를 벗기고 한 입 벤다.
햄버거를 다 먹은 마눌에게
“비스켓은 안 먹어?”
“나중에”
“그럼 내 것도 가져가서 먹어”
빈 종이와 휴지를 비닐봉지에 넣어 옆에 놓고 앉아 있는 마눌의 옆모습을 그냥 흘낏 쳐다보았는데, 세상에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이 있을까? 3천원도 못되는 햄버거 한 개를, 그것도 시간 없다고 버스 맨 뒷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은 것이 무에 그리 만족스러울까?
그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