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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철님와 만남은 이번이 구면이다.
물론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기림산방 송년회 때에 잠시 뵌 기억이 있지만,
그 이름 또한 낯설지 않기에 이번 인터뷰에 적지 않은 긴장을 했다.
예전에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라는 책을 접했을 때 한 문단에서의 부분을 기억하는가?
129쪽에 인용해보면
‘ 기림산방을 찾아온 한 학생은 머리카락이 반 이상이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내가 그 학생의 손을 만져보니 차가운 기운이 꽉 차 있었다.
그 학생은 기림산방에서 기거하면서 수련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연락이 왔다. 하얀 머리카락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몸이 따뜻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도
머리가 아프지 않고 재미있다고했다. ’
바로 문장의 주인공이시다.
책에서 본 이후로 기림산방의 수련 중간 그 분의 이름과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때 송년회 때 오셔서 많은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셨다.
그 이유철님를 인터뷰를 한다기보다 내가 한수 배우러 간다는 마음이 더 앞설 뿐 이였다.
도착한 남춘천역
12시 정각.
기차는 남춘천 역에 도착하였고, 역을 빠져나와 이유철씨와 만나기 위해 그 분을 찾았다.
역시나 내가 먼저 그분을 알아보았다.
작년 12월에 봤던 모습이랑은 조금은 달라진 짧은 머리로 스타일을 바꾸신 이유철님.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고, 가서 인사를 건냈다.
“제가 미리 알아봤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서먹하게 인사을 받아주셨다.
일전의 인터뷰에는 김종수 방주님과 동행을 하여서 그리 어색하진 않았지만,
이번 취재부턴 혼자서 진행해야하는 마음이 참으로 부담스러움이 더해졌다.
서로 인사말을 건내고, 서먹하게, 인터뷰할 장소를 찾았다.
다행이도 집이 역 근처여서 집에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고
걸음을 걸었다.
처음 보았을 때의 인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목소리와 말투를 들고 나니 새록새록 그때 그 분에 이미지와 맞춰지고 있었다.
“제 걸음이 안 빠른가요? 걸음걸이가 빨라서 기림산방에서 별명이 산 고양이이였죠.”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걸음이 무척이나 빠르셔서 따라가기 바빴다;
택시가 잡히질 않아 한참을 걸어가서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했다.
“제가 분가를 했어요. 부모님과 살다가 한 일년 전에... 혼자 살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와 계십니다.”
일하는 곳은 지방이고, 주말마다 춘천 집에 와 쉬신다고 하신다.
예상치 못한 집 방문에 저도 얼덜결 했지만 어머님께서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잠시 집 구경을 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집구경~^^
방 한구석에는 다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하나를 꺼내 작설차를 내놓으셨다.
이유철님의 어머님께선 다도지도자 자격증을 소유 하고 계신다고 하신다.
잘 가춘 다도로 차를 내놓으시며, 손님 분이 오셔서 잠시 나가셨고,
이제 주인공인 이유철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제가 기림산방을 다녀온 이후로 어머니께 다도를 배워 보시라고 권해드렸어요.
알아보시더니 그 곳에서 꾸준히 배우시더라구요.
지금은 자격증 있어서 남들을 가르칠 정도의 실력이 되시죠.
하지만 거기에선 방법을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다도란 마음이 중요한 것인데...
저는 기림산방에서 그 부분을 많이 배웠죠.“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갔다.
다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며, 다도로 수련을 하셨던 옛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마음 적인 부분에서 다도로서 많이 다스리는 이유철님의 모습에서 강직한 성품이 느껴진다.
“어떻게 기림산방과 인연이 닿았죠?”
“처음 인연 맺은 것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이죠.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 96년 12월이죠.”
“그 때의 몸 상태는 어떻셨나요?”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았었죠. 조금만 뛰어도 많이 헐떡이고,
현기증까지 있었으며 친구들과 힘자랑(주먹밀기)하면 항상 밀렸으나
수련 후에 그런 것들도 거의 없어지고 항상 힘자랑으로 밀리던 친구에게 처음으로 이겨보았죠.”
“아 그렇셨군요. 십년전의 기림산방이라... 그때는 무엇으로 수련했는지 궁금한데요?”
“요즘은 수련들이 많이 새롭게 만들어 진거 같은데... 저 할 때만 해도 단배공을 많이 했죠.
산을 타거나 단배공, 아직도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단배공 할 때 처음 땀이 날 때엔 짭짤한 맛이 느껴지곤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거의 물처럼 느껴졌어요. 그 기억이 생생하네요. ^^“
“아 십년 전이면 정말 까마득하네요. 그래도 그 이후 기림산방을 나가서 더욱 많이 노력하신 것 같은데....”
“그 계기 이후로 꾸준한 수련과 생활 속의 실천을 통하여 강인한 체력을 키웠고 그에 연결되어 강한 정신력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대학 생활 때는 다른 또래들보다 월등한 체력을 자랑했으며 군 생활 내내 체력적인 부담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훈련강도가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일례로 유격행군을 할 때 막바지 코스에서 다른 부대원들이 심한 체력적 저하를 보일 때도 저는 전혀 흐트러짐 없는 행군을 끝까지 완수하여 부대 내에서 크게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와... 훈련강도가 약하셨다니;;;;"
"그때는 제가 수련 좀 열심히 했지요^^;"
“ 생활 속 에서 많이 노력 하신 것들이 보이네요... 아 궁금한 게 있는데 작년 송년회에서 소식을 듣기론 발명 쪽에서 입상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으로 입상을 하셨는지 궁금한데요?”
“계속 이야기가 자화자찬으로 흘러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으나,
교내 및 전국경진대회 출품한 작품입니다.
우리 팀은 멀티탭에 소모 전력과 사용요금을 나타내는 작품인데
그 프로그램을 만들 때 필요한 중요한 부분에서 막혔습니다.
전 계속 수련해온 것들이 있어서 그 부분에다가 생각을 집중하니까 답이 떠올랐어요.
참으로 신기하죠.
우리 팀 작품이 가장 높은 점수와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보다 사물을 넓고 객관적으로 보는 정신력의 결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 전공이 과학 분야 쪽이셨군요. 그럼 지금 하는 하시는 일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계실 것 같은데요?”
“이번에 일하고 있는 델파이코리아에서 정밀기계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안전벨트의 안전제어시스템을 나름대로 수학적 공식으로 정리하였는데,
우선적으로 선입견 및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강한 정신력이 뒷받침 되어서 그런 결과를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 강인한 정신력이라, 평소 학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신 것 같네요~"
“사회과학이 전공이지만 평소에 숫자에 대한 관심도 많았구요. 그래서 자연 공학 ...
이공계 쪽과 인문학과의 괴리가 있을 수 있겠으니 보는 본질은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학도 이 찻잔에 물이 얼만큼 있는지 수치로 나타내려고 노력하죠. 가장 근사치로서요.
하지만 가장 정확한건 직접 보는 것이지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과학이 어떤 의도로 시작되었고, 그 방법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나름대로 판단이 서면서 그 학문에 대하여 매몰되거나 빠지지 않고, 바라보면서 보다 창조적인 가설, 이론을 도출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정신력이 뒷받침 되는 것은 강인한 체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기림산방과 인연을 맺은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훌륭하게 학업과 생활 속에서 꾸준한 결과물을 내놓는 이유철님이 대단해 보 일 수밖에 없었다.
수련생의 입장으로 수행자의 입장으로 보아 생활 속에서 수행한 것들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어려운 점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인연이 되어 학업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보며, 한편으론 닮고 싶은 표본이 될 정도였다.
“학생시절에 수련을 받으신 분이라 이후 학업에 큰 영향이 받으신 것 같네요.
저도 가장 궁금한 부분이고요. 학문에 관한 이야기들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수련에서 배운 것을 공부하는 부분과 어떻게 연결되어 바라보셨는지...
그리고 가장 큰 변화라 하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수행이후 달라진 점들이 너무나 많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마음과 정신의 성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수행 이후 집중력이나 생각의 크기가 커지면서 어떤 사물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또 깊이 보게 되고,
그 사물의 고유한 속성을 느끼게 되면서 편파적인 관념에서 많이 탈피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학업에 적용을 시킨 것이죠.
학업 뿐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많은 부분이 도움이 되고있습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분쟁을 보게 되더라도
어느 한 쪽, 혹은 본인이 좋아하는 쪽의 입장만을 고려하지 않게 되고
이를 양 쪽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그 근본원인이 한 쪽이 잘되고 잘못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학업을 하면서도 느끼게 되었는데,
어떤 학문을 습득할 때 그 학문에 “매몰되는 것” 즉 “빠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학문에 대하여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게 되고,
그 학문을 제창한 사람의 의도를 나름대로 파악하면서 그 학문의 진행과 한계에 대하여
나름대로 파악이 되면서 어떻게 활용해야 올바른 학문이 될지 판단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실제 학창시절“ 민족주의(내셔널리즘)의 존재”란 것에 대하여 논쟁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민족주의가 좋다/나쁘다”라는 상반된 관념만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민족주의 자체의 존폐여부를 떠나 민족주의란 ‘심리적 현상’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따라
사회에 대하여 정효과 내지 역효과가 발생하는 법”이란 분석결과를 제시하고
“인간의 기본심리의 표출이기 때문에 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임”이라고 제시하고
학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매듭짓고 확연한 답을 도출하여 논쟁 자체를 종식 시킨 적이 있습니다. "
논리정연하게 자기가 경험했던 예와 생각들을 적절히 비유하면 말씀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필요한 요점을 집어주셔서 이해하기가 쉽게 다가왔다.
필자는 항상 생각하는 마음이 기림산방은 몸과 마음이 같이 가는 수행법이라고 생각하고있지만,
수련 받으시는 분들의 관심사는 몸에 한정되 있음에 늘상 안타까운 마음이였다.
이유철님의 인터뷰를 계기로 건강을 위한 수련 뿐 만이 아니라,
마음다스림과 바라보기에도 많은 관심이 보였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림산방 식구들과 학생들도 이런 점을 본 받고 각자의 분야에서 창조적인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좋은 말씀 너무 많이 듣고 가는 것 같습니다.
방장님께서 꾸준히 말씀하시길, 항상 기림산방과 연락을 취하시면서
전화로 상담하시면서 마음 공부를 하셧다고 들었는데...
그런 부분이 10년 동안 꾸준히 수행하시는데 많은 도움 되신 것 같습니다."
"아하하하; 가끔씩 전화를 하지요.
직접 찾아 뵙지 못하여 죄송함을 무릎쓰고 전화를 하면,
방장님은 꾸준히 말씀하시길 차아오는 것 보다 그 곳에서
열심히 수련을 하라고,,,항상 그 말씀을 들으면 생활 속에서 더욱 정진 해야겠단 생각이 들지요.
그리고 아주 가끔 시간을 쪼개어 찾아뵈면 내 태언난 고향집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인연이 깊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
"기림산방의 교육생들도 수련을 받고 난 뒤 마음 속에 기림산방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주 교류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진지한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춘천 막국수를 잘한다는 한 식당을 찾아가 춘천 음식을 먹어가며 여러대화를 나누었다.
춘천하면 막국수죠!
기차 시간 때문에 스케줄이 촉박하여 대화를의 시간이 촉박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근처로 나가 잠시 산책을 한 후 아쉬움에 사진을 찍고, 남춘천역으로 향하였다.
예술회관앞에서~
기회가 되시면 꼭 8월에 사랑방 모임에 참석하신다며, 다음 만날 약속을 기약하고
인사를 나눈 기차에 올랐탓다.
기림산방이 앞으로 발전하는데 있어서의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셨고,
또한 나 자신에게도 큰 부분 가르침을 받아,
이번 이유철님의 인터뷰 또한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터뷰를 빙자한 부족한 글 읽어주신 여러분들과
만남에 응해주시고 귀감이 되는 이야기을 들려주신 이유철님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첫댓글 벌써 기림산방 수련을 받은지 10년이 넘어 굵어지는 거목이 되어 지는듯 합니다.순간순간 겸손하게 정성 드려 인생을 만드는 유철님의 모습 !!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기림산방 수행교육은 대한민국에 밝고 큰 보배로운 인재들은 만드는데 온 힘을 다해 보렵니다.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인류가,, 더욱 평화롭고 행복해 지도록 한걸음 한걸음 더욱 정성 드리 렵니다.모두 모두 힘 내세요.
환골탈퇴한 이유철 형님!~ 인터뷰 잘 봤습니다.! ㅋㅋㅋ 참 옜날 생각하면 정말 재미 있고,,,,,,지금 보면 정말 많이 변한 형의 모습 보니..... 하하하!! 나중에 다시 보면 또다른 모습을 볼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한다고 많이 긴장하여서, 두서없는 응답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래도 일목요연하게 결과를 정리해 주셨네요....솔직히 정회장님께는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아하....마지막 사진.....해를 정면으로 보고 찍어서인지 잘 안나온 듯....지금 보니 재미있게(?) 나온 것 같습니다....공덕동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데....
유철아~ 알러뷰~~~^^
정회장님 항상 수고많으시네요,아니 2006년12월 송년회 에참석하셨던 머리장발이얻던 대학생 이유철님 이란말이내.인터뷰도겸손하게잘하셨고 송년회때보다 훨씬 잘생기셨고 의젖하심이 보기좋읍니다,저도모임에참석이 잘안되내요,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라는 책을 읽고 "아! 그렇구나!"무릎을 치며 감탄과 경이로움에 가끔 이 까페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참나"를 찾기 위한 수련을 겨울방학에 계획하고 있습니다. 책만 겨우 읽은 사람도 공덕동 모임에 갈 수 있나요?
얻고자 하는 마음,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시다면 누구든지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수련을 꾸준히 잘 하신 모습이 보여 자랑 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