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산길이 봉황산 기슭의 浮石寺 安養樓에 닿을 수 없지만 부석사와 오전 약수가 가까우니 우선 김삿갓이 생각난다.
약 150여년 전 김삿갓이 안양루에 올라 그윽한 눈빛으로 부석사 앞마당 넘어 아득하게 펼쳐지는 산줄기를 바라볼 때 그 산줄기가 살포시 가슴에 餘韻을 남기며 유장히 흘러갔던가. 아마도 영주의 산줄기와 봉화의 청옥산, 문수산의 산줄기쯤 되려나.
부석사를 뒤에서 감싼 대간길의 감동과 여운은 더 클 수도 있을 터인데 感興에 젖은 김삿갓이 感傷的인 시 한 수를 남겼다니 몇 구절을 떠올려 본다.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백발이 되어서야 안양루에 올랐네)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렬: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렸는데)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백년 동안 이 좋은 경치를 몇 번이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무정한 세월에 나는 늙었네)
57세쯤에 죽었다는 김삿갓이 당시로서는 백발 노인이었겠지만 지금으로 치면 29회 정도의 창창한 나이이다.
또 박달령 아래 艾田(애전: 쑥밭, 오전의 원래 이름)약수는 조선의 3대 명품 약수였다 하고 당시 풍기 군수 주세붕이 <人生不老 樂山樂水>라고 칭찬한 샘물이다.
오늘 삼십여리 대간길이 西進을 하며 대체적으로 강원 영월과 경북 봉화의 경계를 이루어 나간다.
산길이 太白과 小白을 잇고 있는데 새롭게 다가오는 이 산길에서 설사 구슬땀 흠뻑 흘리는 고달픔이 있을지라도 어디선가 은근한 보상은 반드시 찾아올 터이고 싱그러운 봄바람을 벗하며 산중의 봄기운을 흠뻑 쐬는 산행은 삶의 상쾌한 경험이자 즐거운 자극이 될 것이라 기대를 한다.
마음속의 한 말씀을 고해 본다. 선달산 山神님! 부석사 부처님! 平安하소서! 저도 平安하리다.
예전(2005년 9월 24일) 당일 산행으로 선후배 산우 76명(7회~33회)이 도래기재~마구령 구간을 7시간만에 전투적 발걸음으로 마쳤던 기억인데 오늘은 갈곳산~마구령 구간(5.9km)이 산불 예방을 위한 통제 구간인 탓에 산길이 도래기재~늦은목이로 짧게 조정되어 있다. 오늘은 그만큼 시간이 넉넉하여 여유로운 산행이 될 듯하다.
2005년 당시 B팀에 끼여 박달령 아래 퐁퐁 솟는 오전 약수 한 모금 마시고 부석사 부처님을 가슴에 품어보고도 싶었는데 동기 산우(25회) 8명 전원은 완답팀을 선택하여 그저 컷오프 되지 않고 종착지 마구령에 닿아야 된다는 생각에 여유 없는 발걸음이 바쁘기만 하였던가.
농사에 필요한 단비가 내린다는 穀雨가 바로 오늘인데 다행히 비소식이 없다. 어쨌든 이 꽃 저 꽃 봄꽃이 앞다투어 환하게 터져나오는 시절의 세상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워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맙게 느껴진다. 그래서 <꽃이 지면은 울고 싶어라>인데 하산길에서 봄꽃이 다투어 피어난 꽃대궐 생달 마을의 봄 풍경은 무르익어 가는 산골의 봄을 제대로 감상하기에 충분하였고 마음의 안식이 찾아왔었다.
도래기재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3시쯤이다. 1시간쯤 버스에서 졸다 깨며 대기를 하다가 랜턴을 켜고 도래기재에서 2.7km 떨어진 옥돌봉을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도래기가 도룡농의 사투리인지 알았더니 예전 도역리라는 마을의 이름이 변했다고 해설판은 전하는데 삭도(索道)의 도르레를 쓰던 고개라고도 하니 도래기재의 유래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는 모양이다. .
산길 입구의 신식 나무 계단이 발걸음을 반겨준다. 도래기재에서 옥돌봉까지 해발이 450m쯤 높아지니 오르막 일변도의 산길이지만 돌계단과 통나무 계단이 계속 이어져 발걸음이 수월한 편이다. 누군가 오래전부터 우리의 발걸음을 기다렸다는 듯 허물어진 산길에 돌도 괴어 놓고 원통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고맙다.
그래도 계속되는 오르막의 지루한 느낌에 산길 왼편을 보면 물야면 서벽리의 새벽 불빛이 옥돌처럼 빛나며 따라온다. 옥돌봉은 산 정상 부근에 희게 빛나는 큰 옥돌이 있다는 산인데 그래서인지 산 아래 마을 이름도 <옥돌 碧>자를 써서 西碧里이다.
랜턴 불빛이 가는 곳에 갓 피어나 하늘거리는 진달래가 반갑다. 어둠 속이라도 가만히 살펴보면 나무에 아직 움이 돋지 않아 이 곳이 아직 초봄인 줄을 알 수 있다. 이 산중의 계절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정상 못미쳐 산길 옆에 보호수가 한 그루 있다 하여 어둠 속에서도 나무를 찾아본다.
수령 558년쯤 되는 철쭉 나무가 5m 높이에 몸통 둘레가 1m 정도라는데 조선의 최고령 철쭉 나무라는 것이 아닌가. 굵은 몸통에서 이리 꿈틀 저리 꿈틀거리는 네 줄기가 둥글게 벌어져 뻗어 올라간 모습인데 올봄에도 화사한 꽃을 피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시간 10분만에 헬기장이 있는 오늘의 최고점 옥돌봉에 닿아 한숨을 돌린다. 이 고요한 봉우리가 한 때 공비들의 은거지이자 격전지였다는 것인가.
아직 산중의 먼동이 터오지 않아 옥돌봉의 조망을 살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태백산 장군봉까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대간의 威容을 살필 수 있는 절호의 조망점이 아닌가.
오늘 봉화 지역의 일출 시각은 05시 44분이다.
내쳐 박달령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가는데 서서히 먼동이 터오니 운치가 있는 호젓한 오솔길이 계속 이어져 서늘한 바람 속에서도 이른 봄 산중의 정취를 전해준다.
불타는 순정을 가슴에 품은 청초한 진달래가 어여쁜 산골 처자의 모습으로 갓 피어나 하늘거리고 나무마다 움을 틔우기 위해 물을 힘차게 빨아 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찬 바람을 이기며 갓 터져나오는 연록색 이파리는 꽃만큼 아름답다. 발걸음을 반겨주는 앙증맞은 노랗고 하얀 봄꽃들은 누구의 어여쁜 마음인가.
초봄 산중의 싱그러운 아침 공기가 부드럽고 시원하여 심호흡을 여러 번하여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시며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숲속이 밝아오며 오솔길에 微風도 속삭이니 일단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오른쪽으로 태백산 산줄기의 威容이 언뜻언뜻 나타나 몇 번을 바라보지만 시원한 조망은 계속 터지지 않는다.
빙빙 돌아가는 임도로 도래기재와 연결된 박달령에 닿는다. 박달령의 이름이 대간길에 자주 등장하는데 일반적으로는 큰 산 사이의 고개라는 뜻인가.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 있는 박달령은 옥돌산과 선달산 사이의 안부인데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과 경북 봉화군 물야면을 잇는 고개이다. 이 고개에서 마을쪽 오전약수로 내려설 수 있다.
박달령 山靈閣에 마음의 一拜를 올리고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한다.
으슬으슬 몰려오는 찬 기운에 짧게 요기를 마치고 서둘러 선달산으로 향한다.
오르막 구간이 계속 되는데 박달령에서 5km 남짓의 거리이니 답파에 2시간 정도를 예상하며 발걸음을 서두른다. 몇 군데에서 산길이 작은 파도를 이루어 만만치 않은 구간이지만 그리 힘들지 않은 느낌이다. 왼편으로 오늘 하산지인 생달 마을과 물야저수지를 내려다 보고 그 너머 봉화의 산줄기들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긴다.
햇빛이 등 뒤 동쪽에서 비쳐져 산중이 사뭇 밝아진다. 느린 발걸음이지만 거의 쉬지않고 걸은 덕분인지 1시간 50분만에 선달산 정상 이정표가 나타난다. 앞으로 산길에 소백산 비로봉까지의 이정표가 계속 나타나기 시작할 터이니 이제 산길은 小白의 품안에 안긴 느낌이다.
신선이 노닐던 산이자 먼저 깨달은 사람의 산이라는 선달산도 대간길의 조망이 좋다는 산이니 정상에서 기대하던 三白(함백, 태백, 소백)의 조망과 경치를 살펴 보려 애쓴다. 구름 아래 팔방으로 솟아난 산줄기들이 어른거리는 산그림자를 남기며 유유히 흘러간다.
북쪽으로 내리천 계곡 위로 정선의 두위봉이 어른거리고 그 오른쪽으로 함백과 태백을 잇는 능선이 아스라한데 동쪽으로 오전 약수를 품어안은 계곡 너머 봉화의 청옥산과 문수산의 산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남쪽 봉화읍 전경은 구름에 살짝 가렸는가.
산중의 파노라마를 즐기자니 부석사 안양루에 걸린 김삿갓 시 구절이 또 생각난다.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천지는 부평 같이 밤낮으로 떠있고)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지나온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 같이 헤엄치네)
선달산 정상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늦은목이로 내려설 준비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산길에 薰風이 불어오기 시작하여 산중의 분위기가 사뭇 따사해진다.
선달산에서 늦은목이로 가는 산길은 고도를 400여m를 낮추는 급전직하의 비탈길이 계속된다. 신바람을 내며 달려 내려갈 수도 있겠지만 무릎에 무리가 갈세라 천천히 걷는다.
산길 아래쯤에서 선달산을 향해 역산행을 하시는 맨발 형님(21회 김병우)과 반갑게 만나는데 늦은목이로 이미 내려선 아우(29회 김찬겸)가 오늘 산길이 미진한지 형님과 동행하는 모습이다. 이 아우가 예전 씨름판을 휘젓던 천하장사 출신인가.
나중 산행이 끝난 후 오전 약수의 진가를 아시는 맨발 형님께서 길어다 주신 오전 약수를 한 모금 정말 맛있게 들이켜 오장육부를 시원하게 씻게 되었으니 좋은 추억거리인 셈이다. 이 형님께서 약수와 생명의 물(위스키)을 동시에 나누어 주시는가.
산길 곳곳에 금강송이 미끈한 몸통을 틀어올린 모습이 반갑다. 이른바 춘양목 단지가 나타난다. 이 소나무들중 일부는 아직 아물지 않은 송진 채취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무자비한 수탈이 이루어진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늦은목이로 내려서니 오늘 대간길이 끝난다.
오지이기에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뜻인 늦은목이는 봉화군 물야면과 영주시 부석면을 잇는 고개이다. 잠시 숨을 돌리며 막혀 있는 갈곳산을 올려다보고 온갖 봄꽃이 피어나는 생달 마을길로 내려선다. 이 길을 내려가는 것은 천국이지만 다음 구간 산행시 3.5km의 이 길을 다시 올라올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시냇물 졸졸 흐르는 계곡을 끼고 호젓하고 편하게 흘러가는 하산길에서 산골의 봄을 제대로 느껴본다. 복사꽃 만발하고 벚꽃이 꽃비가 되어 흩날리는 어여쁜 길의 끝에 생달 마을이 나타난다.
생달 마을은 선달산에서 흘러내리는 마을의 개천이 두 개의 달 모양을 만들며 흘러간다 하여 쌍달이라 불렸다는 마을인가.
달이 두 개 뜬다는 쌍달 마을은 부석사와 오전 약수가 가까운 곳이다.
따뜻한 햇볕 내려 쬐고 꽃잎이 흩날리는 물야저수지 옆에서 맥주 한 모금 마시며 늘어지게 쉰 다음 영주의 순흥면으로 이동해 소박한 묵밥 점심을 즐긴 다음 누군가의 호의로 메밀묵 한덩어리씩 챙겨 서울로 향한다. 오늘은 대간팀의 맥주 인심이 아주 좋다.
돌아오는 찻속에서 대형 선박 사고의 안타깝고 어수선한 시국을 생각해 모범적으로 얌전히 잠을 청하는 분위기이니 좋은 술을 준비한 아우(28회 한만엽)가 조금 멋쩍을 듯도 하다.
대간길을 열심히 걸은 선후배 산우들 사이의 자발적 勸酒를 <樹欲靜而 風不止>를 탓하는 척하며 몇 모금 더 마시고 긴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늘은 대개 술을 찾지 않으니 곱게 모셔간 위스키 한 병이 그대로 살아 남는다.
章
2014.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