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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궁전
러시아 모스크바
러시아 어로 요새를 의미하는 크렘린 궁 안에는 15세기의 장대한 교회에서 부터 현대적인 의회 까지 다양한 건물이 있다 또한 스탈린, 흐르시초프, 브레즈네프와 고르바초프가 여기서 서기장으로 활동했다 피터 대제때 만드러진 바로크 양식의 궁전 병기고 원로원 이반 대제의 종루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12사도 사원 우스페스키 사원 세계에서 가장큰 종인 황제의 종 황제의 개인 예배 사원이 있던 블라고베시첸스키 사원 아르항게리스키 사원등 셀수 없는 많은 건물들과 보물들이 있다.
붉은 광장 크렘린 궁전 러시아의 지하철은 지하 200m에 있고 지하 벽화 장식이 특징이다. 지하철 벽화 장식 붉은 광장과 바실리카교회, 크렘린궁전 도시의 야경 짜르 황제 대종 러시아 황제 안나 여제는 종을 만들 비용만 제공하고 인부들의 임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종 제작 책임을 맡은 이반은 황실 측에 항의했지만 종을 완성하라는 대답만 들어 결국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인부들에게 주며 거액을 빚을 지게 됐다. 하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로 이반은 사망 하게 됐다. 안나여제는 이반 아들 미하일에게 책임을 지고 종을 완성하게 했다. 종을 들어 올릴 방법이 없었다. 무게가 무려 200톤이 넘는 종을 들어 올릴 방법이 당시에는 없었던 것. 이 종을 끌어 오르는 것은 러시아 황제들의 숙원이 됐다. 나폴레옹 역시 이 종을 가져가려고 시도 했지만 포기했다. 단 한 번도 울리지 못 한 차르대종은 프랑스 건축가 오귀스트가 100년 만에 끌어올렸다. 내부를 완성하지 않아도 들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추 없이 제작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광장에 전시돼 있다.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위해 꺼지지 않는 불 신혼 부부들은 꼭 이곳 크렘린 궁전에서 꺼지지 않는 불에 와서 참배를 한다. 러시아 정교회 러시아에 전파된 그리스도교는 988년 키예프 공국의 국교가 되었고 1439년 독립자치교회가 되어 서열 제5위의 총대주교를 가질 만큼의 위상이 되었다. 1721년 후 표트르 대제의 탄압을 받다가 1917년에 부활되지만 1918년 이후 공산당의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세계대전 후 모스크바 총대주교구가 국제적인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다른 정교회들로부터 널리 승인을 받았다. 200년이 넘도록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었던 몽골을 항복시켰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러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중 한 사람인 이반4세가 지은것이다. 성당이 완공된 당시 이반 4세는 건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똑같은 건물을 다시 지을 수 없도록 건축가의 눈을 멀게 했다고 전해져 온다. 그러나 그 건축가가 그 이후에도 몇 개의 건물을 더 지었다고 하니 진실은 알 수 없다. 성 바실리 성당이 그 만큼 아름다웠다는 것을 의미하는 속설인지 모른다. "성 바실리 성당"은 러시아를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건축물 중의 하나로 199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