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컨대 우리들이 보통 친구니 우정이니 하는 것은 어떤 기회에 또는 이익을 위하여 맺어진 지우 관계이거나 친교에 불과하며, 우리의 영혼도 오직 그것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우정에서는 두 사람의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어 두 개를 합치고 있는 꿰맨 자국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것이다. 만일 누가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물어온다면 “그것이 그였고, 그것이 나였기 때문이다”라고밖에 달리 대답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여기에는 나의 모든 이성을 넘어서, 내가 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이 결합의 매개체가 되었지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숙명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만나기 전에 서로의 소문을 듣고 서로를 찾고 있었다. 우리 귀에 들러 오는 소문은 우리 마음에 그 소문이 지니고 있는 이상의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것은 무언가 하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으로 포옹하고 있다. 우연히 시내의 어느 축제 모임에서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 완전히 매혹되어 친숙해지고 결합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세상에 우리 둘의 사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없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는 한 편의 훌륭한 라틴어 풍자시를 ― 출판되었지만 - 썼는데, 거기에서 그는 우리들 상호간의 이해가 너무나 급속히 이루어진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우정은 그 기간도 지극히 짧았고 시작도 너무 늦었기 때문에 ― 우리는 둘 다 어른으로, 그가 나보다 몇 살 연상이었으니까(몽테뉴가 25세, 라 보에티가 28세 때였다.) ― 시간을 낭비할 여유도 없었고 다른 우정들처럼 그전에 먼저 오랜 시간을 두고 교섭을 가지며 조심해서 상대하거나 미리 교제하다가 이루어지는, 그런 정상적이면서도 유약한 우정의 본을 따를 수도 없었다.
이 우정은 그 자체밖에 생각할 수 없었고, 그 자체밖에 인연 지을 수 없었다. 그것은 한 가지의 특별한 생각도, 둘․셋․넷․천의 생각도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인지 모르는 채 이 모든 것이 혼합된 정수(精髓)였으며, 내 전(全) 의지를 사로잡아서 그의 의지 속에 몰입시켜 지워 버렸고, 그의 전(全) 의지를 사로잡아서 하나의 갈망으로 똑같은 경쟁에서 내 의지 속에 몰입시켜 지워 버렸던 것이다. 지워 버렸다고 말했지만, 실은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는 그의 것도 나의 것도 남긴 것이 없었던 것이다.
티베리우스 그락쿠스4)의 처형이 있은 뒤 그와 기백이 상통하는 자들을 모조리 추소(追訴)하고 있던 로마의 집정관들을 앞에 두고 라엘리우스5)가 카이우스 블로시우스(이 사람은 그락쿠스의 제일의 친구였다)를 심문하는 자리에서 “그대는 그락쿠스를 위하여 얼마만한 일을 하겠는가?”라고 물으니, “모든 일을!”하고 대답하자 “뭐, 모든 일?”하고 이어 물으니 “그는 결코 그런 일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대꾸하였다. “그렇더라도 만일 명령했다면?”하고 라엘리우스가 다그쳐 묻자, “복종했을 것이오.”라고 대답하였다.
역사가들이 말하듯 그가 그렇게도 완벽한 그락쿠스의 친구였다면 그는 이 마지막의 과감한 고백으로 집정관들을 모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그가 그락쿠스의 의지에 대해서 가진 확신을 버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대답을 반란적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은 이 우정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블로시우스가 그 현실대로 우정의 힘과 이해에 의해서 그락쿠스의 의지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미리 짐작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서로 시민인 이상으로 친한 친구였다. 서로 자신을 온통 맡겨 버렸으므로 상대방의 의향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한 쌍의 이성의 힘과 지도에 이끌려 가고 있었다면 ― 그것 없이 이 한 쌍을 결합시킬 수는 도저히 없었을 것이니 ― 블로시우스의 대답은 마땅히 그러해야만 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의 행위가 제각기 흩어졌더라면, 그들은 이미 내가 생각하는 친구도 아니며 그들 자신에게도 친구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 나에게 “만일 당신의 의지가 당신에게 딸을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정말 죽이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내가 죽이겠다.”고 대답했다 해도 그 대답이 진실성이 없는 것처럼 블로시우스의 그 대답도 진실성을 결한 것이다. 사실상 그 대답에는 그런 행동을 하는 데 동의한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의지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으며, 나의 친구의 의지에 대해서도 똑같이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떠한 공론도 나와 나의 친구(라 보에티를 말함)의 의도와 판단에 대하여 품고 있는 확신을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그의 행동이 어떠한 모양으로 보여도 그 동기를 알아보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로 단단히 뭉쳐 있고 너무나 열렬한 애정으로 각자의 오장육부까지 서로 드러내 놓고 똑같은 애정으로 서로 살펴 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마음을 내 것같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일에 있어서도 나를 믿기보다 확실히 그를 더 기꺼이 믿어 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우정과 다른 범속한 우정을 같은 계열에 놓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보통의 우정에 관해서 잘 알고 있으며, 또한 가장 완전한 우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우정을 혼동하는 건 원치 않는다. 그것은 오해의 시초이다. 범속한 우정은 고삐를 손에 잡고 조심조심 나가야 한다. 그 결합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긴밀하지는 못하다. “그를 언젠가는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라. 언젠가는 사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미워하라.”라고 킬론은 말하였다. 이 교훈은 우리의 지상지고(至上至高)의 우정에 있어서는 극히 자랑스럽게 울리지만, 보통 일반적인 우정에는 지극히 무용하다. 대개의 우정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즐겨 쓰던 “오 오, 친구여~ 친구란 없구나.”라는 말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이런 우리들의 고상한 교제에서는 다른 우정을 가꾸어 내는 봉사와 혜택 따위는 고려할 여지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 둘의 의지가 완전히 융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아 학파가 무어라 하건 내가 필요한 때나 자신에게 주는 도움 때문에 늘어나지도 않고,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봉사에 어떠한 감사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이러한 친구 사이의 결합은 정말로 완전하기 때문에 그러한 의무감을 없애고 둘 사이에 은혜․은의․간청․감사 따위의 분열(分裂)과 차별을 의미하는 말을 쓰기를 기피하고 배척하게 한다.
사실상 둘 사이에는 의지․사상․판단․재산․아내․자식․명예․생명 등 진실로 모든 것이 공통이며, 두 사람의 화합은 ―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극히 적절한 정의(定義)에 의하면 ― 몸은 둘, 마음은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서로 무엇을 빌려 준다든지 빌린다든지 할 수가 없다. 그 때문에 법을 만드는 자들이 결혼이란 것에 이 거룩한 결합과의 어느 상상적 유사성으로 명예를 주기 위하여 남편과 아내 사이에 증여(贈與) 행위를 금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각자의 것이 되며 둘이 아무 것도 나누어 갖거나 떼어 갖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하는 우정에서는 만일 한편이 다른 편에게 무엇을 줄 수가 있다면 그것을 받아 주는 일이 은혜가 되며, 그것은 그의 친구로 하여금 감사의 마음을 품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각자가 무엇보다도 상대방에게 더 좋은 일을 해 주고 싶어 할 터이므로 그런 자료와 기회를 대 주는 자는 자기 친구가 가장 바라는 일을 대신 실현시키며 그에게 만족을 주는 관대한 일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돈이 떨어졌을 때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대신, 돈을 돌려 달라고 했다 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실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여기 옛날의 흐뭇한 실례를 하나 들어 보겠다.
코린트 사람 에우다미다스에게는 시키온 사람인 카리크세누스와 코린트 사람인 아레테우스라는 두 친구가 있었다. 항상 가난하였던 그는 임종(臨終) 때, 부자인 두 친구에게 이렇게 유언하였다.
“아레테우스에게는 내 모친을 부양하고 그 노후(老後)를 보살펴 줄 일을 상속한다. 카리크세누스에게는 내 딸을 결혼시키고 가능한 한 지참금을 줄 것을 상속한다. 그리고 둘 중의 하나가 죽을 경우에는 살아남은 자가 그 권리를 대행한다.”
그 유서를 본 사람들은 모두 고소(苦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상속인들은 그 말을 듣고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그것을 수락하였다. 그러다가 그들 중의 하나인 카리크세누스가 닷새 뒤에 죽게 되어 상속의 대리권이 아레테우스에게 넘어갔다. 그는 지극히 정중하게 그 모친을 부양하고, 또한 재산으로 가지고 있던 5달란트 중에서 2달란트 반을 자기 딸에게, 나머지 2달런트 반은 에우다미다스의 딸에게 주어 같은 날 결혼식을 올리게 하였다.
이런 예는 실로 완벽한 것이지만 단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 그것은 친구가 복수(複數)였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완전한 우정은 분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기 친구에게 자신을 몽땅 주어 버리므로 달리 분배할 것이 아무 것도 남게 되지 않는다. 뿐더러 자기가 둘․셋․넷이 있지 못하고 또한 여러 마음, 여러 의지를 갖지 못하여 이 모두를 단 한 대상에게 넘겨 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일반적 우정이라면 분할이 가능하다. 어떤 자에게는 그 미모를 사랑하고 또 어떤 자에게는 그 느슨한 습성을, 또 어떤 자에게는 관대한 마음씨를, 또 어떤 자에게는 형제와 같은 애정을, 또한 어떤 자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자애로움을…… 하는 식으로 사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영혼을 점유하고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이 우정은 두 개가 될 수 없다. 만일 두 사람이 구원을 청해 오면 어느 쪽으로 달려갈 것인가? 만일 두 사람이 상반되는 도움을 청해 온다면 어떻게 서열을 매길 것인가? 만일 한쪽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다른 한쪽은 비밀에 부쳐 달라고 당부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러나 유일 최고의 우정은 다른 모든 의무를 면제해 준다. 내가 남에게 누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비밀도 남이 아닌, 즉 나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라면 그 비밀을 전해 줘도 배반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두 개로 만든다는 것조차 굉장한 기적일 터인데, 하물며 그것을 세 개로 만든다는 사람들은 이 우정의 높이를 모르는 자들이다. 무엇이건 그 자신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은 최고가 못 된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의 인간을 다 같이 사랑하고 그들도 서로 사랑하며, 동시에 나까지도 사랑하게 한다는 것을 상상하는 자는 절대로 유독(惟獨)하고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을, 단 하나라도 이 세상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것을 다수에게 분할하려는 무모한 자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의 다른 부분은 내가 말한 것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에우다미다스는 친구들을 자기 필요에 이용한 것을 그들에게 은혜와 혜택을 주는 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을 자기의 성실한 상속인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니 우정의 강도(强度)로 보면 아레테우스의 행위보다도 그의 행위에 훨씬 더 풍부하게 나타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우정을 맛보지 못한 자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한 젊은 병졸이 키로스에게 한 대답은 훌륭한 것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키로스가 그 병졸에게 “경기에서 승리한 말을 얼마면 팔겠느냐, 왕국을 주면 그 말하고 바꾸겠느냐”고 묻자, “폐하! 그것은 절대로 못 팝니다. 그러나 만일 친구로서 사귈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 친구를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 말을 내놓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만일 있다면’이란 정말 멋있는 대답이다. 왜냐하면 겉으로 사귀기에 적당한 사람은 많지만 마음속으로 사귀고 무엇이건 털어놓을 수 있는 우정이란 확실히 모든 동기가 완전히 순수하고 진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끝으로만 매어 있는 결합에서는 특히 이 한끝에 관계되는 불완전한 것만의 보충을 받을 뿐이다. 나의 의사와 변호사가 어떠한 종교를 믿건 그것은 나에게 아무래도 좋다. 그러한 것은 그들의 나에 대한 우정의 작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리고 나와 고용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집안에서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는 똑같이 생각한다. 나는 하인이 순결하다기보다 근면하다는 것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마부가 노름을 하건 내 요리사가 욕을 하건 관계치 않는다. 그저 무능하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나는 세상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이렇고저렇고 말참견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사람은 많이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말할 뿐이다.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그대는 그대가 좋을 대로 하라.
― 티렌티우스 <헤아우톤티모로우메노스>
식탁에서의 친밀감을 돋우기 위해선 나는 신중한 사람보다는 재미있는 사람을 택한다. 잠자리에서는 훌륭한 여자보다는 아름다운 여자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다소 정직하지 않더라도 유능한 사람을 택하고…… 기타의 경우에도 매한가지이다.
어떤 사람이 막대기 위에서 말타기를 하며 자기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 그 꼴을 보는 길손에게 “당신도 자신이 아버지가 될 때까지 아무 말 마오.”하고 말했다. 그 사람도 자식을 가져 아버지로서의 애정을 알게 되면 자기가 하는 행동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그것을 겪어 본 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우정이 얼마나 일반 사회의 습관에서 멀리 떨어진 것인지,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이해해 줄 사람이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정말 이 일에 대하여 예부터 전해 온 이야기까지도 내 자신의 감정에 비하면 미지근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 점에 관해서 경험의 가르침은 철학의 가르침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나에게 양식(良識)이 있는 한, 좋은 친구에 비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호라티우스 <풍자시>
옛날 메난드로스(기원전 342~291. 아테네 태생의 희극 작가)는 “사람은 친구의 그림자만 보아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지당하다. 만일 그가 경험으로 그렇게 말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나는 하느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일생을 즐겁고 평화롭게 그리고 이 친구와의 사별(死別)을 제외하고는 심한 슬픔도 없이, 타고 난 자질에 만족하며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도 않고 마음 편히 살아왔지만, 만일 생애의 전부를 ― 나는 감히 전부라고 말한다 ― 그 사람과의 감미로운 교제를 누리기 위하여 바쳐진 4년간에 비교해 보면 정말로 그것은 덧없는 연기에 불과하며 어둡고 지루한 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를 잃은 날부터 “오 제신이여! 이것이 그대들의 뜻이었으니!”(베르길리우스 <아에네이스>) 그날은 영원히 슬프고 성스러운 날이 될 것이다.
나는 그저 힘없이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나는 쾌락조차도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그를 잃은 슬픔을 한층 더 느끼게 한다. 우리는 무엇이나 반쪽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그의 몫을 빼앗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삶을 같이하는 친구가 없는 한, 어떠한 즐거움도 가질 수 없다고 결심했다.
― 테렌티우스 <헤아우톤티모로우메노스>
나는 어디서나 그의 반신이라는 것에 습관이 되어 지금은 내 반쪽만이 살아 있는 것 같다.
때 아닌 빠른 죽음이 내 영혼의 반을 앗아 갔는데 나머지 반쪽은 무얼 이렇게 늑장 부리는가?
이미 아깝지도 않은 생명이건만, 살아서 보람된 인생도 아니건만, 그 날이 바로 우리의 마지막 날 이었거늘.
― 호라티우스 <카르미나>
무엇을 하건, 무엇을 생각하건, 그가 없다는 것은 역시 쓸쓸하다. 만일 입장이 바뀌었더라면 역시 그도 그러했으리라. 그는 모든 다른 재능과 덕성(德性)에 있어 나보다 탁월했을 뿐더러, 우정의 의무에서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운 사람의 죽음을 애도함에 수치나 절제가 있을 수 있나?
― 호라티우스 <카르미나>
오! 형제여, 그대를 잃어 이 얼마나 슬픈가. 그대의 달콤한 우정이 키워준 우리의 기쁨도 그대와 더불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대의 죽음은 나의 기쁨을 때려눕혔다. 그대와 더불어 우리의 영혼은 모조리 매장되었다.
그대가 죽은 이래로 나는 공부와 기쁨을 몽땅 내몰았다. 그대와 이야기할 날이 또다시 있을까? 그대의 목소리를
또다시 들을 수 있을까? 그대를 볼 날은 영원히 없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그대를 사랑하리.
― 카툴루스 <풍자시>
그러나 열여섯 살의 소년의 말을 좀 들어 보자.
나는 그의 작품이 그 후에 국가를 개량한다는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오로지 국가를 혼란케 하여 변혁하려는 자들의 손에 의하여 좋지 못한 목적으로 간행된 것을 보았고, 또한 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문장을 만들어 함께 실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여기에 실어 볼 생각을 포기하였다6).
그리고 이 저자에 대한 추억이 그의 사상이나 행동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 나쁘게 비칠까봐 나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둔다. 즉 그 내용을 그가 소년 시절에 습작(習作)으로 쓴 글로 그때까지 여러 서적에서 따온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 나는 그가 자신이 쓴 것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는 것을 결코 의심치 않는다. 그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정직했으니까…….
또한 나는 만일 그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에 있어서는 사를라크(페리고르 지방. 라 보에티의 출생지)보다는 차라리 베니스에서 태어나기를 원했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기 마음에 깊이 새겨둔 계율(戒律)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법률에는 지극히 경건한 마음으로 복종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그만큼 선량한 시민인 동시에 조국의 평화를 사랑하고 당시의 혼란과 혁신을 적(敵)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없다. 그는 자기의 재능을 혼란이나 혁신의 선동에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진압하려는 데 사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현세기보다도 다른 시대의 틀에 자기 정신을 박아냈던 것이다.
------------------------------------------------------------------------------------
4) 기원전 163~132 로마의 정치가. 대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개혁이 너무 과격하여 원로원을 자극, 마침내 암살당함.
5) 로마의 군인․정치가. 스토아 철학에 통달한 웅변가.
6) 라 보에티의 <자발적 예속>이 1574년에는 그 일부가 Le Reveille-Matin des Francois에, 1576년에는 전부가 Memoires de I Etat de France sous Charles neuvieme에 게재되었으나, 그것이 신교도들의 바로아 왕조 공격의 글과 함께 실려 혁신 세력에 이용되었다.
첫댓글 ㅋㅋㅋ 아무래도 한 번 읽어서는 안될 듯 하네요. 날 잡아서 연필 들고 밑줄 그어 가며 읽어야 할 듯 정말 어렵다...
연필로 줄 그어가며 한 3번 정도 읽으니깐 조금 이해가 되더라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