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고향을 찾아서
생활속의 음악 (61) 남재 최영석 시인·클래식마니아
요즘 사람들은 영상 매체의 눈부신 발달로 안방에서도 세상의 모든 영화나 드라마 또는 다큐멘터리 등의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적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지만 오륙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열악한 경제 수준은 텔레비전도 제대로 보급되기 어려웠는데 그 시절엔 영화의 인기가 대단해서 가끔 영화관에 가서 고대하던 영화 한 편 감상하는 것이야말로 큰 즐거움이었지요. 필자의 경우에는 서부영화를 가장 즐겨 보았는데, <하이눈> <OK 목장의 결투> <역마차> 등의 유명한 서부극들의 공통점은 언제나 선악의 대결이 스토리의 기본이며 선과 정의가 이기고 악과 불의가 패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큰 매력이었지요. 또한, 서부극의 단골 주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리 쿠퍼, 커크 더글러스, 존 웨인, 등은 젊은이들의 우상과 같은 존재로 일세를 풍미한 스타들이었습니다.
이 정통 서부극은 삼, 사, 오십년대에 걸쳐 수많은 명작들을 내놓으며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았는데 육십년대에 들어서면서 007시리즈 같은 첩보영화가 인기몰이하는 가운데 혜성처럼 등장하여 서부극의 부활에 불을 지핀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의 <세르지오 레오
네> 감독이며 그가 만든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등이 대 히트를 치자 뒤를 이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시리즈가 등장하여 <스파게티 웨스턴>의 붐이 일게 되는데, 이 스파게티 웨스턴은 정통 서부극을 능가할 만큼 재미있는 영화로 그 독특한 주제곡 또한 시너지 효과가 커서 급속도로 전 세계에 보급되어 영화 팬들을 열광케 했지요.
필자는 영화 황야의 무법자를 통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영화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주연배우 특유의 냉혹한 캐릭터와 카우보이모자에 이전엔 볼 수 없었던 판초를 걸치고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에서 그만의 독특한 카리스마가 물씬 풍겨났으며 신기에 가까운 권총 속사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가슴 후련한 액션이야말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큰 매력의 포인트였다고 생각됩니다.
영화도 멋지지만, 주제곡 역시 기타 반주에 휘파람으로 연주되는 아주 단순한 멜로디인데 여기에 백 코러스가 가세하고 말 울음소리를 묘사한 오카리나의 신비한 선율과 채찍 소리 종소리 등이 긴장감을 고조 시켜 영화의 재미를 더해가지요.
이 멋진 주제곡을 작곡한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겸 지휘자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이며, 그는 1928년 11월 10일 로마에서 태어나서 2020년 7월 6일 타계하기까지 92년의 생을 살면서 500편이 넘는 곡을 작곡하였는데, 대중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위대한 음악 유산을 남기고 간 그 유례가 드문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모리코네의 소년기는 2차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였는데 아버지의 적극적인 교육열은 그를 산타 체칠리아 국립 음악원에 입학시켜 고프레도 페트라시 문하에서 트럼펫과 작곡을 또 합창곡과 지휘까지 배우게 했으며 전쟁 중의 어려운 여건에서 배고픔을 견디며 다년간 열심히 공부하여 비범한 재능을 갖춘 음악가로 성장하였으며 당시의 고생과 경험은 훗날 그가 훌륭한 영화 음악가로 도약하는데 든든한 발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탁월한 음악적 재질을 가졌지만, 클래식 음악의 작곡이나 지휘로는 돈을 벌기가 쉽지 않자 1961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하는데 영화 음악이야말로 그가 천재성을 발휘하기에 딱 좋은 분야였습니다.
영화 음악은 대본을 완전히 독파하여 스토리를 제대로 꿰뚫고 있어야 영화에 잘 어울리는--감동을 주는--테마곡을 쓸 수 있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 촬영이 시작도 되기 전에 이미 주제곡을 완성해놓고 촬영 현장에서 그 음악을 사용하게 했다고 하니, 모리코네의 천부적인 재질은 그가 영화 음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남긴 영화 음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단연 미션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 미션(The Mission)은 롤랑 조페 감독이 1750년 남미의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3국의 접경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실화)을 바탕으로 해서 제작한 영화로 로버트 드 니로와 제레미 아이언스가 출연해서 펼친 내면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인데, 먼저 이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원주민(과라니족)에게 잡혀서 순교 당한 줄리안 신부를 대신하여 과라니족 마을에 오게 된 가브리엘 신부와 동생을 죽인 살인범 멘도자, 악행 을 일삼아왔던 멘도자는 가브리엘 신부를 통해 설득되어 주님을 받아들이고 회개를 상징하는 짐을 지고 가브리엘 신부를 보좌하여 동행하지만, 그는 과라니족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은 죄까지 더하면 죄짐이 무거운 자였습니다.
이 과라니족 마을이 포르투갈 식민지에 편입되어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원주민을 두고 이들을 지켜내기 위한 사명감에 목숨을 건 선교사의 활약상과 박애 정신을 그리면서 침략자들의 비인도적 만행을 고발하는 이 영화는 그 시대 유럽 열강들의 무자비한 식민야욕이 부른 잔혹 상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영화 속에서 매우 인상적인 장면은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을 처음 만나게 될 때 그를 침입자로 간주한 원주민들이 활을 겨누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포위망을 좁혀오지만 당황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으로 거대한 이구아수 폭포를 배경으로 개천가 바위에 걸터앉아서 오보에를 꺼내 들고 연주하니 정글에 울려 퍼지는 신비롭고 매혹적인 선율이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켜 경계심이 풀리자 가브리엘 신부 곁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어 연주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천진스런 눈망울이며, 나는 당신들을 해치려고 온 사람이 아니라는 마음을 오보에 선율에 실어 소통할 수 있었던 그 유명한 곡이 바로 <가브리엘의 오보에>입니다.
OST(Original Sound Track)로도 대단한 호응을 받은 곡이지 만 영국의 유명한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가브리엘>의 오보에 곡에 가사를 붙여서 부른 <넬라 판타지아 (Nella Fantasia)는 대단한 인기를 얻어 불후의 명곡이 되었는데 "환상 속에서"라는 노래의 제목부터 신비감을 느끼게 하지만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 또한 절창인지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게 됩니다.
<미션>이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온 후 <가브리엘의 오보에> 선율에 매혹되어 깊은 감명을 받은 사라 브라이트만은 엔니오 모리꼬네 감독에게 이 곡이 너무 좋아 가사를 붙여서 노래하고 싶으니 허락해달라는 서신을 보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2개월 동안 매일 편지를 보내는 등 끈질긴 노력 끝에 3년 만에 모리코네가 승낙하여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영화 속 오보에 선율의 영감을 반감시킨다는 이유로 일부 팬들은 탐탁해 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키아라 페르라우> 작사 <엔니오 모리코네> 작곡 <사라 브라이트만> 노래로 세상에 나오게 된 <넬라 판타지아>는 정통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에서 <팝페라> 장르에 속하는 음악으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노래가 되었지요.
팔자가 오래전에 산 사라 브라이트만의 CD에 이 노래가 실려있어 한동안 즐겨 듣다 보니 이탈리아어 가사도 완전히 외우게 되어 노래의 뜻을 음미하며 감상하니 더 친숙해져 노래와 혼연일체가 되는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Nella Fantasia(환상 속에서)》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나는 환상 속에서 본다네>
Li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a
<모든 이가 정직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지>
Come le nuvole che volano
<저 떠다니는 구름처럼>
Pien d' umanita in fondo all' anima
<저 깊은 곳으로부터 인간애로 충만한 영혼을>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Chiaro <나는 환상 속에서 본다네>
Li anche la notte e'meno oscura
<밤조차도 어둡지 않은 밝은 세상을>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지>
Come le nuvole che volano
<저 떠다니는 구름처럼>
Nella fantasia esiste un vento caldo
<환상 속에서 훈풍이 부네>
Che soffia sulle citta come amico
<마치 친한 친구의 숨결처럼 따스한>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지>
Come le nuvole che volano
<저 떠다니는 구름처럼>
Pien d' umanita in fondo all' anima
<저 깊은 곳으로부터 인간애로 충만한 영혼을>
이 포근하고 사랑스런 시를 노래하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천상의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환상 속의 세상을 동경하게 합니다.
필자는 이번 글을 쓰면서 모리코네가 작곡한 수십 곡의 영화 음악을 들어보았는데 황야의 무법자(1964년), 석양의 무법자(1966년), 천국의 나날들(1978년), 원스 어폰 어 타임인 아메리카(1984년), 미션(1986년), 언터처블(1987). 시네마 천국(1988년), 벅시(1991년),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년), 말레나(2000년), 헤이트풀8(2015년), 등 생각나는 대로 열 손가락에 꼽아보는 외에도 수백 곡의 방대한 작품은 후대에 남긴 위대한 유산이지요.
뿔테안경에 과묵하고 근엄할 것 같은 인상과는 달리 그의 음악은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데다 듣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음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의 명복을 빌며 생전의 위업에 경의를 표합니다.
첫댓글 넬라 환타지아를 들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