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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의 언어
박보라
장똘은 원탁 테이블 위에 놓인 4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유심히 봤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 아름답게 빛나는 돌멩이를 본 적이없었다. 그래서 턱은 밑으로, 눈은 위로 잔뜩 늘려 놓곤 옆에 서 있는 강쥐를 불렀다.
“어이, 이봐. 이거 참 신기하구먼. 저 빛을 좀 보란 말이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도 저런 색을 가지진 못했는데 저 파란색은 마치 세상 모든 파란색 중 가장 멋진 것들만 모아 뭉쳐 놓은 것 같잖아.”
“당신은 그게 문제예요. 자, 잘 좀 보라고요. 딱 봐도 가짭니다. 당신 아버지 가게에서 파는 돼지 껍데기보다도 더 싸구려라고요.”
강쥐는 원탁 테이블에 상체를 늘어뜨리며 집게손가락으로 다이아몬드를 두 번 건드렸다. 그러자 이번엔 이 광경을 무심코 지켜보던딴따라가 나섰다.
“그게 뭐든 팔아서 돈만 되면 되는 거 아냐? 가짜라고 해도 저 정도 크기면 쇳가루 십만은 받지 않겠어? 아닌가? 그럼 단돈 얼마만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
“안 되네. 이건 우리 것도 아니잖은가? 우린 그저 음식을 털러 들어온 거고. 그러니 아름다운 돌멩이는 그냥 두세.”
장똘은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돌멩이를 바라봤다. 그의 두껍고 투박한 손이 큰 자루에 달린 줄을 쓸데없이 빙글빙글 돌려댔다. 난처할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나도 장똘의 말에 찬성. 저게 진짜라 하더라도 우리에겐 필요 없는 물건 아니겠어요? 우리가 저런 걸 선물할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자고 우리 목에 걸고 다닐 수도 없고요. 저 보십시오. 장똘의 큰 머리 때문에 들어가지도 않는 목걸이를 상상해 보란 말입니다.”
그 말을 마친 강쥐는 약 먹고 발작하는 새끼 고양이처럼 바닥을 뒹굴며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장똘의 얼굴이 술 한 드럼통은 들이킨 듯 벌게졌다. 딴따라는 생각을 좀 더 하다가 한발 늦게 바닥을 치며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목걸이가 장똘의 머리를 통과하지못하고 새집처럼 머리 위에 다소곳이 올려져 있는 모습은 최근에 상상해 본 것 중 가장 웃긴 것 같았다. 하지만 둘이 잠시 잊고 있었던 게있었다. 장똘이 왜 ‘장똘’이 되었는지.
“으아아아아!”
장똘은 갑자기 그 큰 몸을 공중으로 붕 띄우더니 나무 바닥에 어마어마한 힘으로 떨어져 내렸다. 나무 바닥이 우지끈하고 그의 발아래에 손바닥만 한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옆에 놓인 의자를 한 손으로 들더니 바닥에 누워있는 강쥐를 향해 내리찍었다. 강쥐가 날렵하게 몸을 굴리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어디라도 하나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하얗게 질린 그를 대신해 장똘을 막아선 건 딴따라였다.
“야, 장똘! 배고프지 않아? 우리 뭐라도 좀 찾아 먹을까?”
“아… 그래. 잊고 있었네. 배는 아까부터 고팠지. 아니, 사실 나 어제부터 고팠는데.... 우리 아버지 가게도 문 닫아서 먹을 게 없거든.”
사람들은 그를 ‘장똘’이라고 불렀다. 장내 똘아이. 그는 덩치가 산만 한 데 비교해 내면은 마치 여섯 살 아이가 사는 것처럼 언제나 감정 조절에 서툴렀다. 그래서 그는 장내 모든 사고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 장똘을 잡아준 건 바로 딴따라였다.
“강쥐, 뭐해? 빨리 먹을 것 좀 찾아와. 빨리!”
“아, 알았어요.”
그제야 강쥐는 허겁지겁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래 춤이 다 뜨듯하게 젖어 있었다. 하마터면 장가도 못 가고 이렇게 숫총각으로 죽을 뻔했단 생각에 그는 몇 번 더 찔끔하고 오줌을 지렸다.
부엌엔 오늘 저녁 식사로 나왔을 닭고기 국과 찐 채소들이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릇에 담겨 있었다. 이 집 주인은 매일 밤, 이시간이면 집을 나가 동이 터야 들어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강쥐가 알아본 바로는 그랬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저녁을 거하게 차려먹곤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는 걸 확인했다. 집 밖에서 음식 냄새를 맡아야 하는 고통이라니. 코를 스치는 그 냄새는 감자와 양파를 넣은닭고기 국이 분명했다. 그리고 찜통에서 픽픽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냄새는 케일과 당근, 브로콜리라고 확신했다. 그에게 강쥐란 별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개 같은 후각과 청각 그리고 아주 작은 키. 그래서 강아지 즉, 강쥐란 별명이 붙었다. 사람들은 그를 동네 개부르듯 강쥐야, 요놈 강쥐.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강쥐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뭐라도 하나쯤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후각, 청각만큼은 장내 최고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강쥐의 배에서도 기근에 울어대는 어린애 소리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예민한 코가 더 크게 벌렁거리며 닭고기 국이 든 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이 솥은 맨 나중에 들고 가기로 하고, 일단 국과 찐 채소들을 장똘과 딴따라가있는 거실로 서둘러 가져갔다. 호기심 어린 달빛이 조심이 그의 뒤를 밟았다.
“자, 이거 먹고 나면 각자 흩어져서 가져갈 만한 것들을 모아 옵시다. 난 부엌을 뒤져볼게요. 여기가 가장 많을 테니.”
강쥐가 먼저 이번 계획을 말했다. 그러자 딴따라가 후루룩 국을 둘러 마시곤 그에 답했다.
“오케이, 알았어. 그럼 난 창고를 맡을게. 장똘, 넌 집 다른 곳에 또 먹을만한 게 있는지 둘러 봐.”
“알았네. 걱정하지 말게. 내가 뭐 찾는 건 또 잘하잖는가. 맡겨만 주게. 그런데 그 전에 나 한 그릇만 더 먹으면 안 되겠는가. 아직도 배가 고프네만.”
장똘은 배를 튕기며 어린아이 같이 웃었다.
“장똘, 우린 시간이 많지 않아. 동이 틀 때까진 겨우 세 시간밖에 안 남았단 말이야. 이 집 봐. 얼마나 크냐고. 밖에 창고는 또 얼마나 크고. 더군다나 우리에겐 그것들을 운반할 어떤 것도 없으니 미리 봐 둔 숲속 폐가까지 몇 차례는 왔다 갔다 해야 할지도 몰라. 서둘러야 한다고. 먹을 건 그다음에 먹어도 돼. 장똘 몫은 부족하지 않게 챙겨 줄게. 알았지?”
“알았네… 아쉽지만, 자네가 그래야 한다니 그래야지.”
딴따라는 장똘의 등을 몇 번 쓰다듬어 주는 거로 그를 위로했다.
“그런데 이 목걸이는 어떻게 할 건데요? 그냥 둬요?”
강쥐가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달빛에 다이아몬드는 더 영롱한 빛을 냈다. 장똘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멩이였다.
“일단 그냥 둬. 지금은 먹을 게 우선이야. 찾은 음식은 다 여기로 가져다 놔.”
“알았네. 난 위층부터 둘러보겠네. 조심들 하게.”
딴따라가 먼저 건물 밖 창고로 떠나고, 그다음엔 장똘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덩치 큰 장똘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계단은 그 육중한 무게를 견디려고 용쓰는 소리를 냈다. 달이 둥글게 대지에 쏟아지는 밤. 그 덕에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강쥐는 제일 먼저 감자나 양파 같은 기본 식자재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부피나 무게는 상당했지만 몇 번 다녀올 생각으로 무조건 거실로 옮겨다 놨다.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냉동고는 신세계였다. 장내엔 지금 흉년이라 먹을 것이 없어 다들 난리인데 이 집 냉동고엔 온갖짐승의 몸뚱이들이 부위별로 토막 나 매달려 있었다. 강쥐는 시린 손을 부지런히 비비며 섬뜩한 덩어리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생각 같아선 다 들고 가고 싶지만, 이 많은 양을 다 옮기다간 금세 동이 트고 말 것이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돼지 뒷다리 네 개와 갈비 부위, 그리고 소고기인 듯 보이는 고깃덩이 세 개를 옮기기로 했다. 장똘 아버지 가게 냉동고에 몰래 넣어두면 한 달은 너끈히 견딜 수 있을 양이었다. 가게는 이미 문 닫은 지 오래라 했으니 들킬 염려도 없을 것이다. 그의 입에서 하얀 행복감이 뿜어져 나왔다.
같은 시각, 딴따라는 창고를 뒤지고 있었다. 그의 키보다 서너 배도 더 되는 높이로 쌓인 곡식 포대들을 보니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그게 그의 주특기였다. 멋대로 만들어 부르는 노래. 달빛은 조용히 스며들어와 그의 마음을 더 부추겼다. 그리고 어깨엔 그의 몸무게쯤되는 곡식 포대가 얹혀 있었다. 포대 재질이 까슬까슬 그의 어깨를 긁었지만 상관없었다. 그 무거운 포대를 업고 달리면서도 발은 리듬을탔다. 그런 그의 끼는 사람들에게 늘 인기였다. 일부 여자들은 그의 목소리와 손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흐느적거렸다. 그가 그윽한 눈빛과 함께 윙크를 보낼 때면 바닥에 털썩하고 주저앉거나 졸도하는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이 동하지않았다. 그저 자유롭고 싶을 뿐이었다. 가난한 가족으로부터도, 자신을 이용하려는 친구로부터도, 그리고 이 세상으로부터도 자유로운영혼이 되어 신나게 한평생 멋대로 놀다 가리라. 그게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랬던 그가 놀림 받던 장똘을 자기의 유일한 친구로 삼은이유는 장똘만큼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장똘은 주인의 방으로 보이는 큰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엔 주인이 몰래 숨겨 놓은 술들이 장으로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병뚜껑을 열어 킁킁 냄새를 맡아 봤다.
“억… 이건 거드름 피우기 좋아하는 시장의 향수 냄새 같구먼.”
그는 다시 뚜껑을 닫아 진열장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다른 술병을 꺼냈다. 하얀색 자기에 든 의문의 술은 뚜껑을 열자마자 구수한 냄새를 잔뜩 코로 몰고 들어왔다.
“딱 한 모금만. 많이 마시면 딴따라에게 혼날지도 모르니까.”
그는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허기진 목구멍엔 그따위 주문이 통하지 않았다. 목구멍은 되려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물이 터져 나오듯 시원하게 길을 터 주었다. 심장이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팔딱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은 점점 까무룩 해졌다. 이러면안 되는데. 하면서도 목젖이 계속 꿀렁거렸다. 그렇게 술병은 금세 비어갔다. 심지어 너무 급히 마시다가 사레라도 든 건지, 모르는 뭔가를 더 삼킨 건지 목을 부여잡고 컥컥거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달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을 한참 동안 토닥거려 주었다.
그 사이 강쥐는 부엌 선반 위에 놓인 통조림까지 다 훑으려 사다리에 올라섰다. 정어리 통조림과 과일 통조림이 족히 스무 개는 넘어보였다. 통조림은 오래 보관할 수 있으니 비상식량으로 두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깨에 멘 자루에 통조림을 차곡차곡 넣었다.그리고 저 구석에 마지막 한 개가 보였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워낙 짧은 팔이 통조림에 좀처럼 닿질 않았다. 그래서 팔을 더 뻗으려 발꿈치를 들었다. 사다리가 균형을 잃고 살짝 휘청거렸다. 몸을 기댄 선반도 아슬아슬하게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조금만…조금만 더…”
드디어 통조림이 손에 닿았다.
“잡았다!”
하지만 순간, 사다리와 선반이 동시에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우당탕. 부엌이 떠나가라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무슨 소리야?”
딴따라였다. 곡식 포대를 막 열 포대 째 문 앞에 옮겨 놓고 다시 창고로 가려다가 소리를 듣고 달려 들어온 거였다. 강쥐의 모습은 말그대로 처참했다. 그의 몸과 뒤섞여 있는 사다리와 그 위로 떨어져 내린 선반, 그리고 그 와중에도 통조림을 꽉 잡고 있는 그의 손은 짠했다. 딴따라는 얼른 달려가 선반을 치웠다.
“괜찮아?”
“네. 어휴…”
강쥐는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하기로 했다. 팔, 다리는 잘 움직였고, 눈앞에 있는 딴따라는 잘 보였으며 괜찮다는 말까지 잘하고 있으니 딱히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하나 더. 마지막 통조림도 이렇게 얻지 않았는가. 그런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그의 발밑으로 웬 종이 한 장이 살포시 떨어져 내렸다. 선반 위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죠?”
“오래된 신문 같은데?”
누렇게 변색한 신문엔 어디서 많이 보던 사진이 실려 있었다. 흑백 사진이긴 했지만, 모양새가 익숙한 목걸이였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원탁 테이블 쪽으로 달려갔다.
“이 목걸인 것 같은데?”
“그렇죠?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만.”
“잠깐만. 기사를 다시 잘 읽어보자고. 그러니까… 전시 중이던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도난당했단 기산데.......”
“아이참, 이리 줘 보세요. 제가 읽어볼 테니.”
강쥐는 딴따라에게서 신문을 빼앗아 재빨리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이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 가장 비싼 거래요. 이름은 ‘보름달의 푸른 눈’. 경매에 나오지 않아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으나 대략 천억으로 추정, 천억? 천억이래요!”
“그런데… 사진 속 목걸이가 진짜 이 목걸일까?”
“아니라면 왜 이 집에 이 목걸이와 오래된 신문 기사가 있겠냐고요. 안 그래요?”
“하지만 집주인이 가짜 보석을 만드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거잖아. 진짜랑 똑같이 만들어서 비싼 값에 속여 판다거나.”
딴따라의 말에 흥분한 강쥐가 잠시 동작을 멈췄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설마 그 귀한 목걸이를 그냥 저렇게, 막 아무렇게나 테이블에 올려놓고 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강쥐는 다시 사진과 목걸이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하지만 흑백에, 삼십 년도 더 지난 신문은누렇게 변색하여 진위를 정확히 밝힐 수조차 없었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멈춰 있었다. 시간도 함께 멈춘 것만 같았다.
“아, 모르겠다.”
“진짜일지도 모르니까 일단 갖고 갈까요? 이런 감자나 양파, 돼지 뒷다리보다 훨씬 가치 있지 않겠어요?”
“그래도 될까?”
“안 되겠어요. 장똘을 얼른 데려와요. 다른 건 다 놓고 이 목걸이만 가지고 나가야겠어요.”
“장똘은 어디 갔지?”
“아직 위층에서 안 내려왔어요.”
장똘은 다 마신 술병과 함께 집주인의 침대에 뻗어 있었다. 심지어 그는 오래된 용달차처럼 불규칙하게 크르렁 크르렁 소리를 냈다.
“아유… 술 냄새.”
“한 병을 다 마셨나 봐요. 어쩌죠? 이 거구를 우리가 업고 갈 수도 없고…”
“강쥐, 부엌에 가서 물 좀 가져와. 찬 거로. 얼굴에 쏟아붓든, 목구멍에 쳐넣든, 어찌 해 봐야지. 이러다간 주인이 오기 전에 이 집을 못빠져나갈지도 몰라.”
“알았어요.”
딴따라는 장똘의 뺨을 세게 두 번 때렸다.
“장똘! 장똘, 일어나 봐. 먹을 만한 거 찾으랬지, 누가 술 마시고 뻗어 있으라고 했어?”
하지만 장똘은 ‘난 이미 틀렸네. 어서 가게’라고 하듯 손을 휘저을 뿐,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딴따라! 여기요.”
이번엔 강쥐가 가져온 찬물을 장똘의 얼굴에 후려치듯 뿌렸다.
“아푸… 사람 살리게! 아이고, 나 죽네!”
“드디어 깼네요. 장똘,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아니, 자넨 강쥐가 아닌가. 자네가 이 시각에 우리 집엔 웬일인가?”
장똘은 아직도 정신이 몽롱했다.
“여기가 왜 장똘 집이에요? 주위를 좀 둘러보라고요.”
“맞아. 우린 음식을 훔치러 온 거였는데? 그러다가… 그래, 내가 이 술장을 발견했지. 그래서 이 술병들도 가져가려고 하다가 한 모금만 마신다는 게 그만…”
그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런데 그 손에 든 건 뭔가? 신문 쪼가리 같은데…”
“아, 장똘. 이제 됐어요! 우린 부자가 될 거라고요. 우리가 아래층에서 본 목걸이가 세상에 무려 천억짜리래요. 천억!”
장똘은 천억이 얼마큼 큰 액수인지 알지 못했다. 그가 아는 금액의 한도는 고작 해 봐야 자기 아버지 가게에서 팔던 돼지 뒷다리 가격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그마치 공이 열 한 개나 된다는 강쥐의 말에도 공이 열 한 개나 되는 숫자를 머릿속에 그릴 수조차 없었다. 그건 강쥐도 딴따라도 감히 구경도 못 해 본 액수였다.
“빨리 나가요, 우리.”
“그렇다면 술도 좀 가져가세. 이 집 주인, 술 고르는 안목이 제법이야. 꽤 괜찮은 술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아휴, 답답해. 그깟 술, 이 목걸이 하나면 수백 개, 아니 수천 개, 아니… 에라, 모르겠다. 아무튼 아주 많이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빨리 나가요, 어서.”
강쥐가 장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끈다고 끌려 나올 장똘도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급하니 점점 조바심이 났다. 마치 빨리 이집을 나가지 않으면 이 꿈 같은 일이 모두 허상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기회는 머리카락만 있을 뿐, 꼬리는 없다 하지 않던가. 그러니 기회가 왔을 때, 얼른 머리채를 잡아채야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