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였을까?
엄마는 "시장에 가면 그거, 그거 있을 거야. 상추대라고 길다랗고..."
나는 "아유, 정말 이상한 것도 찾아."
라며 엄마의 말을 일축했다.
그러고서 마음이 좋지 않아 시장에 가서 상추인데 상추가 아니고, 부들부들 상추여야 하는데 딱딱하다는 상추대 그런 것을 찾으러 다녔는지 아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그때의 심정으로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으로 따지면 그때가 엄마 돌아가시기 몇 개 월 전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았다면 나는 기어이 그 '상추대'라는 것을 찾으러 다녔을 것이다. 하얀 눈발을 찾아서 부모님께 봉양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마당에 말이다.
그때 내가 엄마의 말을 일축하는 바람에 나는 오래도록 아니 지금도 대봉감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리다. 대봉감도 엄마가 좋아하던 과일 중의 하나였다.
고창에서 직거래로 한 달에 두 번, 농산물 박스를 받아 먹는다. 처음에는 내가 사는 시장 재료에 농산물 박스까지 겹치니 식재료가 버거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고창에서 무엇이 올라오나 미리 보고는 그에 맞게 살 건 사고, 안 사도 되는 건 고창의 것으로 재료를 삼아 해먹는다. 친절하게 래시피가 적힌 A4 종이도 동봉한다. 평소 잘 해먹지 않는 것은 그 래시피를 참고 삼아 해먹는다. 이번에는 죽순 같기도 하고, 대나무 자른 것 같기도 한 것이 왔다. 래시피 종이를 읽어 보고, '궁채나물'이란다. 궁채나물? 참 좋아한다. 오돌오돌하면서 순한 맛이 자꾸 젓가락이 가게 만든다. 몇 년 전부터 이 나물이 식당의 밑반찬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같이 밥을 먹던 사람들끼리 이 나물이 뭐지? 각자 알고 있는 나물 이름들을 다 댔더니 사장님이 조용히 '궁채나물'이라고 알려 주셨다. 그러더니 어떤 식당에서는 아예 '궁채나물'이라고 비닐에 싼 것을 팔기도 했다. 말린 것으로 보였고, 해먹으려면 물에 담가야 할 거 같았다. 굳이 그것을 사가지 않은 것은 이렇게 밑반찬으로 먹으면 맛있지만 내가 해도 그 맛이 날는지 모르겠고, 해 놓더라도 나만 먹을 반찬이기에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궁채나물'이 상추대라고 하는데, 나는 체험하고 보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인지 그 말을 내가 엄마에게 들었던 '상추대'와 같이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궁채나물'과 엄마의 그 '상추대'는 나에게는 전혀 다른 객체였다.
요 몇 년 텃밭을 하는데 그 일은 언제나 남편 몫이었다. 정확히는 그 일까지 신경쓸 여력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매일 가면 나는 가끔 땅콩이를 데리고 산책 나갈 겸 텃밭을 찾는데, 강아지를 데리고 텃밭을 가니 나는 그저 남편이 하는 일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일 뿐이었다. 물을 주고, 풀을 뽑고 해도 그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남편이 가꾸고 가져다 주는 상추며 오이며 가지며 고추를 받아서 이웃 주변과 나누고, 나머지는 씻고 요리를 할 뿐이었다.
올해는 남편이 일주일을 앓았다. 코로나는 아닌데 열이 나고 기운이 없어서 꽤 오래 누워있었다. 자연스럽게 남편이 아끼던 밭의 작물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물을 주러 몇 번 드나들었다. 그러니까 밭의 작물들이 눈에 계속 아사무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뜨거운데 물을 먹지 않으면 밭에 있는 얘들이 힘들텐데... 그러면서 상추도 따고, 아니 밭의 생리를 아시는 분들은 '상추를 오린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뭘 모르니까 뜯는 식이었는데 그러자니 상추 밑동이 너덜너덜해졌다. 내가 갖고 온 상추는 무리가 없지만 뜯고 난 흔적은 꽤 볼성사나웠다. 봄의 끝무렵부터 여름이 절정을 이루기 전까지 텃밭은 끊임없이 상추를 대주었다. 연두색이거나 검붉거나 진한 자주색이거나 진한 초록의 갖가지 상추들이 쉼없이 몸집을 불리고 흐드러지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면 밭의 작물들에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남편에게 '우리 밭에 물 주러 가야겠다'고 했더니 "몇 번 물 주고 나더니 이제 자연스럽네. 물 줄 때 잎에 싸아아 뿌려지는 그 소리가 너무 좋지?" 한다 아니, 난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물을 주지 않으면 너무 목이 마르겠다는 생각뿐이지. 아직까지 그런 경지는 아닌 거 같다.
원래 장마가 오면 상추는 끝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제 상추를 뽑고 그 자리에 다른 작물을 심어야 한다고... 정말로 큰 비가 몇 번 오고가고 하니까 상추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무섭게 상추 잎을 넓혀 가던 것이 작은 잎에서 더 이상 클 생각이 없었다. 상추를 오리고 나면 심지라고 할 수 있는 딱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쑥쑥 올라왔다. 늦는 '나'이지만 '아, 이것이 상추대인가 보다' 어렴풋하게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창에서 '궁채나물'이라면서 다 깎고 다듬어서 보내온 것이 아니라, 내가 텃밭에서 보았던 그 상추대 몇 개가 비닐에 담겨 올라왔다. 아, 이것이구나 상추대, 궁채나물 이제야 두 먹거리는 하나로 합쳐졌다. 내 머릿속에서.
어릴적을 생각해 보면, 엄마는 우리에게 궁채나물을 해준 적이 없다. 주로 할머니의 김치며 먹거리를 받아 먹는 우리 집이었는데 할머니도 궁채나물을 우리에게 해주신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궁채나물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엄마가 문득 '그 시장에 가면 상추가 있을 것이다. 그 상추에서 딱딱한 것이 있는데...' 그 말을 나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엄마는 아파 있는 와중에 갑자기 그 나물이 생각이 나신 모양이다.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두 발로 상추대를 찾아 다니셨을 것을... 사실은 엄마가 이 궁채나물을 말한 것인지, 좀 굵은 상추대 퍼런 것이 먹고 싶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에게 직접 확인해 본 것이 아니어서... 이럴 때 생각한다. 엄마가 홀로 누워 계실 때가 많았는데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여쭈어서 글로 남겨 봤어도 좋았을텐데... 왜 그렇게 엄마를 홀로 두었을까. 나는 무엇이 그리 바빠서 후다닥후다닥 엄마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을까.
오늘 '궁채나물'을 깎으면서 말년의 엄마가 먹고 싶었던 그 '상추대'라는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그 말을 싹뚝 잘라버린 무심한 딸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않았을까. 눈물 흘렸을지도 모를 우리 엄마가 그리운 토요일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