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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무성론 상권
3. 분별하는 성품의 공용 차별(1)
이 분별하는 성품이 능히 앞의 여섯 가지와 뒤의 다섯 가지를 분별하는지라,
이제 이 여섯 가지와 다섯 가지 분별하는 성품의 그 공용 차별을 나타내기 위해,
3.1. 세 가지 일을 종류
여덟 가지 분별이 능히 세 가지 일 종류를 짓는 것이 있으니,
세 가지 일 종류란,
첫째 희론(戱論)의 종류이고,
둘째 아만(我慢)의 종류이고,
셋째 탐욕 등 미혹의 종류이다.
[此分別性能分別前六後五, 今爲顯此六五分別性功用差別.
有八種分別, 能作三種事類.
三事類者: 一戲論類, 二我見我慢類, 三欲等惑類.]
3.2. 여덟 가지 분별
여덟 가지 분별이란,
1) 제 성품의 분별
첫째 제 성품의 분별이니,
이를테면, 물질 등의 물질은 바로 물질인 것이다.
쌓임 등류의 네 가지 쌓임은 바로 앞서 명자에 의지해 이치를 분별한 것 등 다섯 가지 분별한 체 성품과 또는 앞서 여섯 가운데 최초의 제 성품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다 제 성품의 분별이라고 한다.
2) 차별의 분별
둘째는 차별의 분별이니,
이를테면, 물질 등류의 볼 수 있고 볼 수 없는 것과 거리낌이 있고 거리낌이 없는 것들이라,
이러한 한량없는 차별의 분별이 다 제 성품의 분별에 의지하나니,
이러한 것을 차별의 분별이라고 한다.
3) 무더기 가운데 어떤 하나를 잡는 분별
셋째는 무더기[聚] 가운데 어떤 하나를 잡는 분별이니,
이를테면, 물질의 쌓임 가운데 ≺나≻라든가, 중생이라든가, 수명이라든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가 그 성립을 기대하여 이것을 잡아 분별을 일으킴이고,
또는 많은 무더기 가운데 그 무더기는 잡는 것이 원인이 되나니,
이를테면 가옥ㆍ군졸ㆍ거마ㆍ의복ㆍ음식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도 모두가 그 성립됨을 기대하여 이것을 잡아 분별을 일으킴이니,
이러한 것들이 바로 어떤 무더기 가운데, 하나를 잡는 분별이다.
이 두 가지가 곧 안팎의 분별이니,
앞의 것은 사람이 있다는 잡음이고,
뒤의 것은 법이 있다는 잡음이다.
[三聚中執一分別, 謂於色等陰, 執我衆生命者受者如是等名, 共期所立, 執此而起分別.
又於多法聚中執聚爲因, 謂屋軍車衣食飮等.
如是等名, 皆是共期所立, 執此而起分別, 是名聚中執一分別也. 此兩卽是內外分別, 前執有人、後執有法.]
≪해석≫
이른바 모두 기대하는 것이란,
세간이 유포하는 그 성립한바 명자를 다 모두 하는 일에 계합되기를 기대하여 다 같이 하나의 풀이를 만들게 하려는 것이다.
4) ≺나≻의 분별
≪논≫
넷째는 ≺나≻의 분별이니,
이를테면 이 등류는 흐름[流]이 있고 잡음[取]있는 것이란,
[四我分別, 謂此類是有流有取,]
오랜 시일의 ≺아집(我執)≻이 자주자주 관습(慣習)을 의지해 이 치우친 집착의 관습으로부터 ≺신견(身見)≻의 의지하는 등류를 반연하여 허망한 분별을 일으키나니,
이것을 이르되 ≺나≻의 분별이라고 한다.
≪해석≫
이른바 이 등류는 흐름이 있고 잡음이 있는 것이란,
등류는 곧 아리야식(阿梨耶識)이 모든 미혹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흐름이 있음이란, 곧 탐애(貪愛)가 그것이다.
과거의 번뇌인 십사(十使)가 소멸하여도 분별할 수 없는 것이 모든 미혹의 명칭인데, 이것을 다만 무명이라고 통틀어 일컫는 것은 이 무명이 능히 지혜의 밝음을 막기 때문에, 이 무명이 능히 모든 미혹의 원인이 되어서 생사에 유전하기 때문에 흐름이 있다고 일컫는 것이다.
또는 법수를 논하는 사람[數人]들의 말과 같이 생사에 흘러 스며들기 때문에 마음의 번뇌가 연달아 스며들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가질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흐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잡음이란, 곧 흐름이 있는 그것의 결과이라,
이를테면 그 원인이 과거를 거쳐 왔기 때문에 흐름이 있는 결과라 하고 미래ㆍ현재 상속하는 중이기 때문에 잡음이라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현재 상속하는 가운데 수면(隨眠)과 탐욕의 종자이다.
모든 번뇌가 다 현재 상속하는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것을 흐름이라고 말하고, 참음이라고 말하는데,
이 흐름은 곧 네 가지 흐름[四流]이고,
이 잡음은 곧 네 가지 잡음[四取]이다.
이와 같이 구별하여 말하지만, 이 흐름과 잡음들은 다 본래의 식(識)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이 등류를 흐름이 있고 잡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일의 ≺아집≻이 자주자주 관습에 의지하는 것이란,
처음이 없는 때로부터 이 흐름과 잡음들의 미혹이 있었음을 통틀어 말하기 때문에 오랜 시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집≻의 세 가지]
≺아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수면(隨眠)과
둘째 훌륭한 체하는 마음과
셋째 습기(習氣)가 그것이다.
[我執有三種:一隨眠、二上心、三習氣.]
자주자주란 말은 곧 수면을 밝힘이라, 이른바 ≺아집≻이 자주자주 본래의 식에 의지하는 것이다.
[言數者, 卽明隨眠我執數數依止本識.]
관(慣)이란 말은 곧 훌륭한 체하는 마음이니, 이른바 ≺아집≻이 자주자주 관습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言串者, 卽上心我執數數串起.]
습(習)이란, 말은 곧 습기를 밝힘이니, 이른바 ≺아집≻이 자주자주 습기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言習者, 卽明習氣我執數數而起.]
이 수면과 훌륭한 체하는 마음은 안의 번뇌이니, 진리의 도를 얻어 봄으로써 이 미혹은 곧 사라지는 것이다.
습기는 오랫동안의 버릇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바른 번뇌가 아니기 때문에 아라한(阿羅漢)이 되었을 때도 이 번뇌는 오히려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진리의 법을 얻어야만 바야흐로 점점 제거할 수 있나니,
이 세 가지 ≺아집≻은 다 본래의 식에 의지하는 것이다.
≺신견≻의 의지하는 등류를 반연하여 허망한 분별을 일으키는 것이란,
본래의 식에 두 가지 뜻이 있는 것을 밝힘이니,
이것이 곧 세 가지 ≺신견≻의 의지하는 곳이다.
[식의 두 가지 뜻]
두 가지 뜻이란,
첫째 종자를 지어내어 ≺신견≻을 낳을 수 있는 것이고,
둘째 ≺신견≻의 반연할 그 경계를 지어내는 것이다.
이 본래의 식을 반연하여 지어낸 경계가 일어나기 때문에 ≺나≻의 분별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5) ≺내 것≻의 분별
≪논≫ 다섯째는 ≺내 것[我所]≻의 분별이니,
이를테면 이 등류도 흐름이 있고 잡음이 있는 것이다.
오랜 시일의 ≺내 것≻이라는 집착이 자주자주 관습을 의지해 이 치우친 집착의 관습으로부터 ≺내 것≻이라는 견해의 의지하는 등류를 반연하여 허망한 분별을 일으키나니, 이것을 ≺내 것≻의분별이라고 한다.
집착하는 경계의 뜻이 넷째의 것과 다르지 않는데, 다만 ≺나≻라는 집착과 ≺내 것≻이라는 집착이 있어서 이것이 다를 뿐이다.
6) 사랑하는 분별
그리고 여섯째는 사랑하는 분별이니,
이를테면 깨끗한 등류를 사랑함으로써 그것을 반연하여 허망한 분별을 일으키는 것을 사랑하는 분별이라 한다.
7) 미워하는 분별
일곱째는 미워하는 분별이니,
이를테면 깨끗하지 못한 등류를 미워함으로써 그것을 반연하여 허망한 분별을 일으키는 것을 미워하는 분별이라 한다.
8)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아닌 분별
여덟째는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아닌 분별이니,
이를테면 사랑할만하거나 미워할만한 등류가 아님으로써 그것을 반연하여 앞의 두 가지 분별을 뒤엎어버리는 것을 가리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아닌 분별이라 한다.
[희론의 분별]
이 여러 분별을 따라 설하자면, 오직 두 가지 분별이 있을 뿐이니,
첫째는 분별의 의지이고, 둘째는 분별의 경계이다.
여덟 가지 분별 가운데,
제 성품과, 차별과, 또는 무더기 중에 하나를 골라잡는 이 세 가지 분별이,
능히 희론(戱論)을 지어내는 분별의 의지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희론을 지어내는 분별의 경계이기도 하다.
[此三分別能 作戲論分別依止 及作戲論 分別境界.]
왜냐하면 이 등류에 의지함으로써 명자와 생각과 말이 분별을 일으키는 것이고,
명자와 생각과 말이 분별을 훈습(熏習)하는 분별이니, 희론 분별이라고 한다.
세 가지 등류 가운데에 세 가지 명자를 반연함으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자주자주 지어가는 갖가지 상모(相貌)를 일으키나니, 이러한 분별을 희론이라고 한다.
세 가지 등류로써 의지를 삼고, 세 가지 명자로써 경계를 삼고, 희론으로써 분별의 체(體)를 삼으니 만큼,
의지와 경계는 곧 분별하는 성품인 것이고,
희론의 분별은 곧 남을 의지하는 성품인 것이다.
≪해석≫
3.3. 세 가지 일과 여덟 가지 분별
여덟 가지 분별 가운데 앞의 세 가지 분별을 희론의 분별이라 한다.
이 세 가지가 각각 곧 의지가 되고, 곧 경계가 되고 곧 희론의 체가 되나니,
왜냐하면 세 가지 분별 가운데 각각 분별하는 것과 분별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3.3.1. 희론
분별하는 것이란, 바로 희론의 체이고,
분별할 것이란 그 중에 등류와 명자 이 두 가지가 있으니,
곧 이것이 세 가지 이치 등류의 명자이고,
곧 이것이 세 가지 등류의 갖가지 명자이다.
이 때문에 이치로써 의지를 삼고 명자로써 경계를 삼고,
이 명자를 반연하여 법문을 삼음이니,
이치의 등류를 취하기 때문에 바로 그 취할 것으로써 의지를 삼고,
반연할 것으로써 경계를 삼는다.
이 때문에 이 등류에 의지해 명자와 생각과 맘을 반연하여 분별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이다.
생각과 말이란, 이를테면 마음으로 이 명자를 생각하고 말로써 이 명자를 설하기 때문에 생각과 말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는 분별이 생각과 말의 의지하는 것이 되는지라, 이제 이 가운데 생각과 말을 성립하는 것은 모두가 명자이다.
명자를 나타내려면 거칠고 세밀한 것이 있기 마련이니,
명자인즉 세밀한 것이 되고, 생각인즉 작은 것이 되고, 거친 말은 가장 거친 것이 된다.
이 때문에 이 세 가지 명자로써 세 가지 분별을 지적함이다.
말하자면 맨 처음 제 성품의 분별은 바로 물질 등류 법의 체를 밝힘이니,
이 뜻은 세밀한 것이 되기 때문에 명자의 명자를 성립한 것이다.
다음 차별의 분별은 그 체의 차별을 밝힘이니,
곧 작은 부분이 거친 것이 되기 때문에 생각하는 명자를 성립한 것이다.
저 무더기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는 분별은,
이른바 병(甁)ㆍ가옥 등을 말함이니,
이것이 가장 거칠기 때문에 말을 따르는 명자이다.
명자와 생각과 말의 훈습한 분별을 희론의 분별이라고 하는 것이란,
이 세 가지 명자를 반연해 경계가 됨으로 말미암아 분별을 일으킴이니,
분별하는 것이 곧 훈습이 있어서 능히 이치를 분별하고 능히 이치를 분별하는 것이 곧 희론의 분별인 것이다.
세 가지 등류 가운데,
세 가지 명자를 인연하여 자주자주 지어가는 갖가지 상모를 일으키는 것이란,
의지하는 세 가지 등류와 반연하는 세 가지 명자가 법문이 되어서 자주자주 갖가지 상모를 일으키는 것을 밝힘이니,
분별에 있어서의 의지와 경계와 희론이 그 체는 다만 하나이면서 세 가지 뜻의 용(用)이 있을 뿐이다.
3.3.2. 아만
≪논≫
그 다음 ≺나≻의 분별과 ≺내 것≻의 분별인 이 두 가지 분별은,
능히 몸이라는 견(見)과 또는 모든 견의 근본을 짓고,
능히 ≺나≻라는 교만과 또는 모든 교만의 근본을 짓는 것이다.
≪해석≫
이 두 가지 분별은 앞에서와 같이 역시 밝혀야 하리니, 곧 이것이 의지와 경계와 분별의 체가 되기 때문이다.
앞서 이미 예를 밝힌 바 있어 스스로 알 수 있고, 다시 변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만 뒤에 ≺나≻라는 견을 내고 또 모든 견의 근본을 짓는 것을 밝힐 뿐이다.
≺나≻가 있음을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견을 ≺내 것≻이란 집착으로 말미암아 능히 ≺나≻라는 교만과 모든 교만의 근본을 짓는 것이다.
3.3.3. 탐욕과 진심과 무명
≪논≫
뒤에 사랑함과 미워함과 사랑하고 미워함에 대함인 이 세 가지 분별이, 능히 탐욕과 진심과 무명 따위를 내는 것이다.
≪해석≫
이 세 가지 분별이 바로 세 가지 독[三毒]이니, 이 때문에 능히 일체 세 가지 독을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