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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4장 16절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열매로 아기를 갖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랑하는 부부들에게 자녀들을 선물로 주셔서 그 가정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지난 주 충남 연합회 목회자 체육대회에 갔을 때 자녀들을 많이 데리고 오셨는데 그 아이들을 보는 목사님 사모님들마다 행복의 미소로 관심을 갖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자녀가 아닌데도 그들은 자기 자식처럼 바라보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거기에 계셨어도 행복해 하셨을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시는 주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 사이에는 사랑의 열매를 사모하기 마련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보시면서 사랑의 열매를 기다리십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짐승들처럼 태어난 날 바로 걷지는 못합니다. 가축이나 짐승들은 그날로 일어나 걷지만 사람은 누워서 생활하다가 엎드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기어 다니기도 하고, 얼마 후에는 부모님 손을 의지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의 손을 의지해서 일어섭니다. 아이가 일어서 있으면 “섬마 섬마”하면서 잘한다고 박수를 치면서 칭찬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좋아서 조금이라도 더 서있고자 합니다. 그런데 조금 서 있다가 쓰러지고 또 서고, 쓰러지고 또 서고합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오래 서있지 못한다고 해서 아이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렇게 쓰러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아이는 설 때부터 시작해서 걸을 때 자랄 때 그리고 일생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이 넘어집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넘어짐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어린이들을 낳은 교회는 어떨까요? 새신자나 초신자가 넘어지는 것에 대하여 소망을 품고 관대할까요? 또 새신자나 초신자의 신앙이 서고 걷고 뛰는 것에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관심이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새신자와 초신자가 하나님 앞에 훌륭한 일군으로 세워질 때까지 그들을 위한 짐을 담당할 만한 사랑이 있습니까? 대천교회에 나왔던 초신자들과 새신자들은 모두 오늘 이 자리에 앉아계십니까? 그들이 처음 왔을때 여러분들은 행복해하면서 맞이 하셨습니까? 지금은 어떠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성도들, 그리고 목회자들 모두가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길 원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예외는 아닙니다. 새신자들 뿐 아니라 여러분들이 완전하길 바라는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안수집사님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탁월한 믿음의 선지자였던 모세나 엘리야도 넘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예외는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넘어질 때나 다른 사람들이 넘어질 때나 초신자가 넘어질 때나 목사님이 넘어질 때나 항상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 살아가다보면 바르게 잘 가려고 하는데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넘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사단의 시험 때문에 넘어집니다. 사단은 여러분을 유혹하고, 시험하며, 압력을 넣기도 하고, 비참한 환경 속에 넣기도 하면서 시험합니다. 사단은 여러분을 넘어뜨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넘어졌을 때 주어지는 사단의 시험은 여러분의 믿음의 시험입니다. 믿음을 잃게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사단 앞에서 사단의 지혜와 능력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넘어뜨리면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1-32절을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읽으실때에 “시몬아”에 여러분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겠습니다. “동기야 동기야,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시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또 사탄의 시험을 당당히 이길 것이라는 약속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약속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베드로가 당한 시험을 통하여,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자신들이 당한 시험을 통하여 다른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이 과거에 넘어진 경험이 있을 지라도, 또 오늘이나 내일이나 미래에 넘어지는 경험이 있을지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붙들어 굳게 세워주길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형제 자매를 굳게 세워주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사단의 시험으로 인하여 넘어진 것 때문에 결코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두 번째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실수로 넘어질 수도 있고, 욕심 때문에 넘어질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넘어질 수도 있고,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으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넘어진 것 때문이 아니라 그 넘어진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잘못된 시각에서 옵니다. 사람들은 넘어졌을 때 격려나 위로보다는 “저 사람 왜 저래” 혹은 “저 사람 실망이야”하고 비난을 하기 일쑤입니다. 현대는 비판이 일반화가 된 시대입니다. 여기저기 비판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의인은 오직 자기 자신 밖에 없는 것처럼 실랄하게 비판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 넘어졌든지 간에 비판이나 정죄를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여인의 미래를 제시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앞으로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도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하고 사명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과거를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사람의 미래를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속박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자유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희년입니다. 여러분들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선포되기를 바랍니다. 이 대천교회가 교회안의 형제, 자매와 온 세상을 향하여 용서의 희년을 선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여러분과 교회와 형제 자매들의 미래를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세 번째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원수처럼 대하는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사람과 자신이 가진 권세와 권세의 상징인 돈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이 사회에서 생매장 시킬 수도 있습니다. 마치 요셉을 감옥에 가둔 보디발의 아내처럼 말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의 허물과 자신의 요구가 거부된 것에 대하여 심각할 정도로 화가 났고 그 보복으로 요셉을 모함했습니다. 만일 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그는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보디발은 평소에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셉의 정직성과 성실성, 그리고 충성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요셉을 벌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정직성을 믿었지만 요셉을 감옥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은 그런 보디발의 아내와 보디발을 용서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뜻들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생애동안에 일어나리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을 대적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설사 그들 때문에 넘어졌을지라도 그들을 미워하지 말고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언젠가는 그들의 연고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높에 세우시고 여러분들의 무죄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잠언 24장 17-18절을 보면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 12장 14절에는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셨고, 20절에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하시고 21절의 마무리에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셨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셔서 넘어짐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원수로 대하는 그들을 하나님 앞에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원수 때문에 넘어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향하여 부으시는 한없는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네 번째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경쟁에서의 한계 때문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보다 더 뛰어난 경쟁자가 있을 때 여러분들은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첫 번째 왕으로 세움을 받았던 사울왕은 자신이 다윗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경쟁에서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인 다윗을 죽이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 많은 세월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잡지 못할 다윗을 잡는데 쓴 것입니다.
오늘날도 심각할 정도로 경쟁이 심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이기 아니면 죽기”라는 의식으로 살벌할 정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세상 방식을 취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사울왕을 자신의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야 할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심각할 정도로 성도들 간에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역과 구역이 교회와 교회가 집사와 집사가, 장로와 장로가, 목사와 목사가 경쟁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상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표는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속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사랑의 열정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썩어질 작은 상을 얻고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우리 대천침례교회가 이 보령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게 해주시고, 우리 조성훈 목사님께서 대천과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능력을 가진 목사님이 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이제는 기도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우리 대천교회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게 해주시고, 우리 교회 주변의 이웃과 이 나라와 온 세계의 이웃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 이 일을 위해 목사님과 우리가 한 뜻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바뀌면 제일 큰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사랑에 굶주린 이웃들이 그 사랑의 품이 그리워 이곳으로 오지 않겠습니까? 경쟁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의 유익을 위해 수고하십시오. 많은 것을 구하기 보다 한 영혼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 안에서 일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구원받고 치료받고 가르침을 받아야할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몸된 이 교회로 보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연속해서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시련은 한 번만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반복해서 파도가 밀려오듯 계속해서 밀려올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한 꺼번에 많은 것들이 밀려와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몸된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코 쓰러진 사람들을 책망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양들의 미래를 맡기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그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길 원하십니다.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가십시오. 어린아이가 아빠와 함께 길을 가다가 넘어져도 자신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과 따뜻한 눈으로 용기를 주며 격려하는 아빠를 계속해서 즐겁게 쫓아가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어떤 이유로 넘어졌든지 간에 예수님을 즐겁게 쫓으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교회와 다른 성도에 대하여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강같이 흐르게 하십시오.
오늘 본문 말씀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 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넘어졌을때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이제 다시 시작하기는 틀렸어!” “저 사람 예수 믿더니 완전히 망했어” 그러나 여러분들이 거기서 하나님을 바라보신다면 여러분들을 향하여 인자하게 미소지으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며 여러분들을 향해 내미신 능력의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여러분들과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로 걸어가실 때 수십 번 쓰러지셨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 앉지 않으시고 앞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미국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은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8번이나 선거에서 패배했고, 두 번이나 사업이 망해서 그 빚을 17년 동안이나 갚아야 했습니다. 그의 실패는 모두 다시 일어설 가망이 없어 보이는 치명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다시 일어섰고 미국 대통령이 되어 낙심하고 주저 앉아있는 흑인들의 무릎을 견고하게 세워주었습니다. 그는 노예해방을 위해 싸웠고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를 선물로 안겨주셨습니다.
링컨은 말합니다. “내가 걸은 길은 험하고 미끄러웠다. 그래서 자꾸만 넘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약간 미끄러웠을뿐 낭떠러지는 아니었다”여러분들이 걷고 있는 길도 약간 미끄러울 뿐이며 옆에 있는 새신자, 초신자, 오랜 형제 자매와 목사님, 교회전체, 그리고 주변의 이웃들도 미끄러져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그들에게 다가가 따스한 차 한 잔, 따스한 식사 한 끼를 대접하시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용기를 내세요. 당신은 미끄러져 넘어졌을 뿐입니다. 저와 함께 다시 예수님을 손을 잡고 다시 시작해보시지 않으시겠어요”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