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법온족론 제3권
3. 증정품 ②
3) 승증정(僧證淨) (2)
‘이 승(僧) 가운데서’라 함은,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서이니, 이것은 곧 모임[聚]을 나타내고 쌓임[蘊]을 나타내며 부류[部]를 나타내고 요약하는 뜻[義]을 나타낸다.
‘예류향(豫流向)’이라 함은,
이미 무간도(無間道)를 얻고 예류과(豫流果)를 증득[證]할 수 있는 이이니,
이는 끊임없이 예류과를 증득한 이이다.
그는 욕계(欲界)의 탐냄[貪欲]과 성냄[瞋恚]에 대하여 세간의 도[世間道]로 말미암아 앞서 아직 많은 부분의 품류를 끊지 못했으며,
4성제(聖諦)에 대하여 앞서 아직 현관(現觀)하지 못하고, 이제 현관을 닦고 있으므로 ‘예류향’이라 한다.
‘예류과(豫流果)’라 함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이미 3결(結)을 영원히 끊고 두루 안 것이니,
유신견(有身見)과 계금취(戒禁取)와 의(疑)가 그것이다.
그는 이 끊어진 것[斷] 가운데 머무르면서, 아직 더 나아가 일래과(一來果)의 증득을 구하고 있지 않는 이이므로 ‘예류과’라 한다.
‘일래향(一來向)’이라 함은,
이미 무간도를 얻고 일래과를 증득할 수 있는 이이니,
이는 끊임없이 일래과를 증득하고 있는 이이다.
그는 욕계의 탐냄과 성냄에 대하여 세간의 도로 말미암아, 혹은 먼저 이미 많은 부분의 품류를 끊었으며,
4성제에 대하여는 먼저 아직 현관하지 못하고 이제 현관을 닦고 있으며,
혹은 예류과에 머무른 뒤에 나아가 일래과의 증득을 구하고 있으므로 ‘일래향’이라 한다.
‘일래과(一來果)’라 함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이미 3결(結)을 영원히 끊고 두루 알았으며,
그리고 많은 부분의 탐냄과 성냄을 끊은 이이다.
그는 이러한 끊어진 것에 머무르면서 아직 나아가 불환과의 증득을 구하고 있지 않는 이이므로 ‘일래과’라 한다.
‘불환향(不還向)’이라 함은,
이미 무간도의 불환과를 증득할 수 있는 이이니,
이는 끊임없이 불환과를 증득하고 있는 이이다.
그는 욕계의 탐냄과 성냄에 대하여 세간의 도로 말미암아 혹은 먼저 영원히 끊게 되었으나,
4성제에 대하여는 앞에서 아직 현관하지 못했고 여기에서 현관을 닦고 있으며,
혹은 일래과에 머무른 뒤에 더 나아가 불환과의 증득을 구하므로 ‘불환향’이라 한다.
‘불환과(不還果)’라 함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5순하분결(順下分結)인 유신견(有身見)ㆍ계금취(戒禁取)ㆍ의(疑)ㆍ탐욕(貪欲)ㆍ진에(瞋恚)를 이미 영원히 끊었고 두루 안다.
그는 이 끊어진 것에 머무르면서 아직 나아가 아라한과의 증득을 구하고 있지 못하므로 ‘불환과’라 한다.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은,
이미 무간도를 얻고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는 이이니,
이는 끊임없이 최상의 아라한과를 증득한 이이다.
혹은 불환과에 머무른 뒤에 더 나아가 아라한과의 증득을 구하고 있으므로 ‘아라한향’이라 한다.
‘아라한과(阿羅漢果)’라 함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등 온갖 번뇌를 모두 이미 영원히 끊었으므로 ‘아라한과’라 한다.
‘4쌍(雙)의 보특가라(補特伽羅)’라 함은,
예류향ㆍ예류과가 곧 첫 번째의 쌍이요,
일래향ㆍ일래과가 곧 두 번째의 쌍이며,
불환향ㆍ불환과가 곧 세 번째의 쌍이요,
아라한향ㆍ아라한과가 곧 네 번째의 쌍이다.
‘8척(八隻)의 보특가라’라 함은,
예류향 등의 보특가라를 여덟 가지로 벌여 세워 저마다 따로따로 나타낸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들[佛弟子衆]’이라 함은,
부처님의 제자들은 뛰어난 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 알아듣도록 말한 것이다.
‘계율이 구족하다[戒具足]’고 함은,
학(學)ㆍ무학(無學)의 승가[僧]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學]와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계율을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선정이 구족하다[定具足]’고 함은,
학ㆍ무학의 승가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선정을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지혜가 구족하다[慧具足]’고 함은,
학ㆍ무학의 승가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지혜를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해탈이 구족하다[解脫具足’]고 함은,
학ㆍ무학의 승가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해탈을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해탈지견이 구족하다[解脫智見具足]’고 함은,
학ㆍ무학의 승가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해탈지견을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청(請)에 응(應)한다’고 함은,
보시에 응하고 공양에 응하며 제사[祠祀]에 응하기 때문에 ‘청에 응한다’고 한다.
‘굴(屈)에 응한다’고 함은,
이미 보시하였고 잘 보시하며, 이미 공양하였고 잘 공양하며, 이미 제사 지냈고 잘 제사 지내면서, 적은 공로(功勞)를 지으면서도 큰 과보와 이익을 얻기 때문에 ‘굴에 응한다’고 한다.
‘공경(恭敬)에 응한다’고 함은,
아는 이거나 모르는 이거나 간에 모두 마땅히 일어나 맞이해야 하고 몸을 굽혀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발에 대고 찬탄하면서,
“바르게 행하면서[正行] 안락하십니까?”라고 문안해야 되나니,
이 때문에 ‘공경에 응한다’고 한다.
‘위없다[無上]’는 말은 마치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시되,
“온갖 화합한 부류(部類)의 대중 가운데서 부처님의 제자들을 맨 첫째로 삼나니, 가장 높고[最尊]ㆍ가장 수승하며[最勝]ㆍ맨 위[最上]이고 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無上]”고 하신 것과 같나니,
이 때문에 ‘위없다’고 한다.
‘복전(福田)’이라 함은,
세존께서 아난타에게 말씀하시되,
“나는 모든 하늘ㆍ악마ㆍ범(梵)ㆍ사문ㆍ바라문 등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 가운데서 이미 보시하였고 잘 보시하며, 이미 공양하였고 잘 공양하며, 이미 제사 지냈고 잘 제사 지내는 것을 받을 만한 이로서, 나의 승가[僧]와 같은 이들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
아난아, 그러므로 알아라. 만일 나의 승가에 대하여 이미 보시하였고 잘 보시하며, 이미 공양하였고 잘 공양하며, 이미 제사 지냈고 잘 제사 지내면, 적은 공로를 지으면서도 큰 과보와 이익을 얻느니라”고 하신 것과 같다.
또 하늘의 제석(帝釋)이 취봉산(鷲峰山)으로 와서 묘한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물었다.
모든 법으로 저 언덕[彼岸]에 이르는 것을
잘 분별하여 연설하시고
온갖 두려움을 초월하신
대교답마(大喬答摩) 높은 이께 머리 조아립니다.
한량없는 중생들이
복을 좋아하여 보시를 닦고
항상 지성껏 신심(信心)을 내며
모든 의지가 있는[有依] 복을 닦고 있습니다.
원컨대, 부처님은 가엾이 여기셔서
참되고 훌륭한 복전(福田)을 설하시어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적은 보시로도 큰 과보를 얻게 하소서.
세존께서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셔서 묘한 게송으로써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한량없는 중생들이
복을 좋아해서 보시를 닦고
항상 지성껏 신심을 내어
의지가 있는 복을 닦으면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참되고 뛰어난 복전을 설하여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적은 보시로써 큰 과보를 얻게 하리라.
만일 사성향(四聖向)을 행하는 이와
사성과(四聖果)에 머무른 이면
그가 곧 응공(應供)의 진실한 승가[僧]이니
훌륭한 계율ㆍ선정ㆍ지혜를 두루 갖추었다.
이 참되고 뛰어난 승가의 밭[僧田]은
공덕이 심히 넓고 커서
한량없는 이익을 주는 것이
마치 저 사대해(四大海)와 같다.
조어사(調御士)의 훌륭한 제자들은
이미 법의 광명을 놓으면서
뛰어난 공양을 받을 수 있고
뛰어난 제사를 받을 수 있다.
적은 승가에게 보시하여도
모든 승가에게 보시한 것이 되며
반드시 큰 과보를 얻게 되나니
나 일체지(一切智)가 칭찬하는 바이다.
모든 복전 가운데서
승전(僧田)을 가장 뛰어나다 하며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신 바이니
그 보시는 최상의 복을 얻게 된다.
부처님의 제자들에 대하여는
적은 보시로도 큰 과보를 얻나니
그러므로 모든 슬기로운 사람들은
마땅히 승가 대중[僧衆]에게 공양해야 한다.
성인 대중들은 묘한 법을 지니고
명(明)ㆍ행(行)ㆍ등지(等持)를 두루 갖추었나니
그러므로 승보(僧寶)에 대하여
보시하는 것이 최상이 된다.
세 가지 청정한 마음으로써
승가에게 옷과 음식을 보시하면
반드시 뛰어난 과보를 얻게 되어
인간과 천상의 착한 사람[善士]이 되며,
결정코 세상마다 사는 동안에
티끌[塵]과 때[垢]와 독화살을 여의고
모든 악한 세계[惡趣]를 뛰어넘어
인간ㆍ천상의 훌륭한 쾌락 받으리라.
스스로 보배와 재물 바르게 모아
자신과 다른 이를 이롭게 하기 위해
자기 손수 보시를 행하라.
그러면 반드시 큰 과보를 얻게 된다.
총명하고 슬기로운 모든 사람은
청정한 신심으로 보시를 하라.
장차 안락한 세계에 나서
묘한 쾌락과 총명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복전’이라고 한다.
‘세간의 공양에 응한다’고 함은,
성스러운 제자들은 청정하게 세간의 공양에 응할 수 있는 그릇[器]이기 때문이요,
이미 공양에 응할 만한 세 가지 청정한 업[三淨業]을 성취했기 때문에,
‘세간의 공양에 응한다’고 한다.
만일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은 모양[相]으로써 승가(僧伽)를 따라 염할[隨念]때의 소견[見]을 근본으로 삼아 증득한 지혜[證智]와, 상응하는 모든 믿음과, 믿는 성품과, 현전에서 믿는 성품과, 따르고 인가(印可)하고 애모(愛慕)함과 사랑하고 사모하는 성품과, 마음이 맑고 마음이 깨끗함을 승증정이라 한다.
만일 이것에 대하여 권하고 격려하고 벌여 세우면 이것을 ‘방편으로 권하고 격려하고 벌려 세워서 승증정 가운데에 머무르게 한다’고 하는 줄 알 것이다.
4)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聖所愛戒]
어떤 것이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聖所愛戒]인가?
무루(無漏)의 몸의 율의[身律儀]와 말의 율의[語律儀]와 생활이 청정함[命淸淨]을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이라 한다.
무엇 때문에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이라 하는가?
모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성인이라 하는데, 그 분들은 바로 이 계율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기뻐하며 참고 순종하면서 거역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이라 한다.
만일 이 법에 대하여 권하고 격려하고 벌여 세우면,
이것을 ‘방편으로 권하고 격려하며 벌여 세워서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 가운데 머무르게 한다’고 하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