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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본연경 중권
3. 일체지왕자품 ②
그때 왕자가 합장하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 앉아 부왕에게 공경하고 예배하고서 아뢰었다.
“제가 보시하는 것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명성을 위한 것도 아니며,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서 호화롭고 귀하게 되려는 것도 아니며,
미쳐서 착란된 마음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른 법을 구하기 위해서 이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이제 비록 부모ㆍ형제ㆍ처자를 옹호하지만 죽을 때를 당하면 비록 친척이 있더라도 누가 능히 따라가겠습니까?
오직 바른 법만이 쫓아가서 놓지 않음을 볼 뿐입니다.
제가 만약 마음에 선한 법을 행함이 없다면 오히려 대왕의 간곡하신 가르침을 바라겠나이다.
어찌하여 갑자기 그릇된 말을 신용하시고 제가 선하게 행하는 것을 끊으십니까?
왕께서 먼저 제게 보시의 마음을 버리라고 선칙하셨으나, 보시의 마음은 제 본성의 근원이니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마치 땅의 성품이 굳은 것을 버릴 수 없고, 불의 성품이 뜨거움을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물고기가 뭍으로 뛰어나오면 목숨을 어떻게 보전하겠습니까?
저 왕의 종[僮僕]은 6정(情)이 구족하고 신체가 완전히 갖춰진 것이 하늘 사람과 다름이 없거늘 이런 사람이 어찌하여 왕의 급사(給使)가 되었겠습니까?
왕가에 있는 수레ㆍ채녀(采女)ㆍ금ㆍ은ㆍ진귀한 보배가 다 어디서 난 것입니까?
틀림없이 이것은 과거에 보시한 업으로 지금 이 과보를 얻은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일체 아귀들이 굶주림의 불에 핍박되어서 몸과 마음이 타는 괴로움을 받는데, 이와 같은 것이 모두 탐하고 아낀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든 하늘 가운데에 7보의 궁전과 수명이 긴 것[長遠]은 모두 보시한 인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제가 이제 보시하는 바는 불로도 능히 태울 수 없고 물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왕가(王家)ㆍ도적ㆍ원수ㆍ빚쟁이가 능히 보시한 것을 빼앗지 못합니다.
모든 갈래[趣] 가운데에서 능히 친한 벗이 되니, 이것은 하늘에 오르는 수레입니다.
이 보시한 것은 생사 중에서도 저를 따라오는데 마치 송아지가 어미를 따르는 것 같습니다.
대왕께서 제게 신칙하시어 보시하는 마음을 그치라고 하셨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마땅히 깊은 산으로 옮기라고 하셨지만 비록 깊은 산으로 들어가더라도 적어도 보시의 마음은 쉬지 않을 것이며 빈궁한 사람도 역시 찾아올 것입니다.
제가 본래 진실로 산림을 좋아한다고 서원했지만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것은 대왕께서 놓지 않으실까 염려해서였습니다.
대왕께서 이제 이미 허락하셨으니 참으로 본래의 원하던 것을 얻었습니다. 바로 명령을 받들어서 길을 떠나겠습니다.
왜냐 하면 산림 속은 한가하고 적정한 곳이어서 신선과 성현들이 즐거워하는 바이며, 능히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여읠 수 있으니, 저에게도 만약 그곳에 이르면 반드시 스스로 이로울 것입니다.”
그때 왕자가 곧 왕의 발에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가서 다시 어머니 처소에 이르러서 꿇어앉아 여느 때와 같이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아갔다.
다시 아내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여기 머물러서 부모님을 잘 모시고 자식을 지키기 바라오. 이것이 곧 그대가 닦아 행할 바른 법이오.
나는 이제 멀리 산림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오.
왜냐 하면 내가 전부터 항상 깊은 산으로 들어가서 그 뜻을 수행하려고 했었는데, 대왕께서 이제 들어주셨으니 빨리 가서 내 마음에 맞게 하고, 모든 짐승들과 더불어 함께 반려(伴侶)가 되어서 물을 마시고 과실을 먹으면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소.
그대는 왕의 딸로서 몸이 부드럽고 약하며 단정하고 우아한데 어찌 능히 이와 같은 괴로운 일을 견디어 참겠소. 그러므로 마땅히 여기 머물러서 나를 따를 생각을 하지 마시오.”
그 아내가 듣고는 마음이 괴로워서 몸을 파초 잎처럼 떨면서 울다가 가슴을 치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소리내어 크게 울부짖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대왕께서 깊은 산으로 물리치시는 것입니까?
대왕께서는 너그럽고 인자하시어 바른 법으로 다스리시고 백성을 자식 같이 사랑하거늘 어찌하여 갑자기 이렇게 몰아내는 것입니까?
당신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귀하신 몸이 부드럽고 곱기가 첨바화(瞻婆華)와 같으신데 어떻게 갑자기 가시 찌르는 맨땅의 돌 위에 누울 수 있습니까?
그 동안 궁중에서는 5악(樂)을 스스로 즐기셨지만 만약 산에 들어가시면 호랑이와 사자 등의 악독한 짐승들의 사나운 소리만 들을 것입니다.
괴상하구나. 대왕의 자애로우신 마음이 오늘은 어디에 있으신가?
어떻게 부친의 사랑이 이별의 박정함으로 변하여서 작은 인연으로써 갑자기 원한을 이루시는가?”
그때 왕자가 곧 아내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착한 왕녀여, 그대에게는 깊은 지혜가 있을 것이오.
정진에 용맹함이 곧 나에게는 좋은 반려인 것이오. 설혹 내가 옳지 않아서 마땅히 꾸짖음을 당하더라도 어떻게 그런 거친 말을 합니까?
모든 임금은 나라를 위해 서로 싸우지만 모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으로 괴로움을 받는데, 나에게 복된 인연이 있어서 이제 부왕께서 내가 산에 들어가서 바른 법을 수행할 것을 들어주신 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기뻐하지 않는 마음을 내지 마오.
세간의 떳떳한 법으로 말하면 왕이 만약 노쇠하면 태자를 세워서 국사를 맡게 하는데, 국사가 많아지면 잘못이 많아지게 되고, 잘못이 이미 몸에 모여들면 도망하려 하여도 피할 곳이 없는 것이오.
그런데 왕께서는 아직 노쇠하지 않으셔서 능히 놓아 주실 수 있는 것이오.
내가 산에 들어가서 그 뜻하는 것을 닦아 배우도록 허락하셨으니 세간의 잘못은 영원히 보지 않게 되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기뻐하지 않는가?
그대는 잘 있기 바라오. 나는 이제 떠나야겠소.”
아내가 대답하였다.
“제 부모님께서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실 때 일월과 대지와 사천왕이 모두 증명하여 알았고, 처음 혼인하던 날에 당신이 서로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여 말하더니 어찌하여 오늘 문득 혼자서만 가신다는 것입니까?
해와 달 그리고 불과 빛이 서로 버리거나 여의지 않음을 아십니까?
당신은 어찌하여 버리려고 하십니까?”
그때 왕자는 집안의 보물을 모두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고는 곧 두 어깨에 두 아들을 업고 그 아내를 데리고 설산(雪山) 속으로 들어갔다.
왕자는 도착해서 과실을 먹고 물을 마셔서 목숨을 지탱하고 밤낮으로 자비의 마음을 닦아 익혔다.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본래 집에 있으면서 비록 5욕락을 받았으나 오늘 이 산에 사는 기쁨만은 못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즐거움은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받는 욕락으로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중생들이 바른 법의 미묘한 맛을 알지 못함이 마치 새가 연꽃의 맛을 모르는 것과 같도다.’
이때 왕자는 항상 중생을 위하여서 이 뜻을 생각하였고 아내는 항상 산에 들어가서 과실을 따다가 스스로 공급하였다.
이때 한 늙은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 형상이 추악하여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먼 곳에서 왔는지라, 왕자가 보고는 곧 앉게 하고 물과 과일을 준 뒤에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여기에 온 것인가? 혹시 가정의 근심을 싫어해서인가?
젊어서는 응당 집에 있으면서 5욕을 뜻대로 다했겠지만 이제는 이미 늙고 쇠약해져서 죽을 때가 닥쳐오니 버리고 와서 도를 닦는다면 이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이곳은 한가하고 고요하여 집에서처럼 허물될 게 없으니, 그대가 만약 여기를 좋아한다면 내게 있는 단 과일과 시원한 물을 항상 공급하여서 모자라지 않게 하리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욕심이 없는 자라면 응당 여기에 머무를 것이지만 나는 지금 탐욕스러운 생각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살 수 없습니다.
큰 신선이여, 그대는 또 보십시오. 내 몸이 비록 늙어서 머리는 희고, 이빨은 빠지고, 걸음을 걸을 때는 떨리고, 눈으로 보는 것은 몽롱하며, 혀가 마르고 입이 메말라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머리가 무거움을 이기기 어려우니 마치 태산과 같고, 귀로는 들어도 분명하지 않고, 몸뚱이는 이렇게 변하여 쇠약해졌으나 탐욕스러운 생각은 오히려 젊었을 때와 같습니다.
큰 신선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나이는 많고 몸뚱이에 힘이 없는데다가 집이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으매 시종을 얻기가 곤란하니,
만약에 내 본래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려 하거든 두 명의 노복(奴僕)을 주어서 부리도록 해주십시오.”
보살이 듣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괴상한 노릇이로다. 이제 만약 없다고 한다면 본래의 서원에 어긋나며, 있다고 하자니 참으로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로구나.’
바라문이 말하였다.
“그대가 지금 머뭇거리면서 의심하는 모양인데 무엇을 생각하는 것입니까?
혹시 나를 바라문으로서 금계를 받아 지니지 않고 널리 배운 것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까?
만약 이것을 염려한다면 나는 실제로 그러합니다.”
보살이 대답하였다.
“나의 본래 집에는 노복들이 많았고, 금ㆍ은ㆍ진귀한 보배가 창고에 가득 했다.
그때에는 구걸하러 오는 자를 보면 종내 없다고 말하지 않았으나 이제 여기에서는 모두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어느 곳에서 얻어서 그대의 소원에 맞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이 일을 머뭇거리면서 생각한 것이로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내가 이제 늙고 쇠약해서 기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와서 필요한 것을 구걸하였거늘, 당신은 본래부터 무릇 구걸하는 자를 보면 일찍이 ‘내게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오늘은 어째서 이런 말을 하십니까?
큰 신선께서 만약 능히 딱하게 여기고 두 명의 종을 줄 수 있다면 내가 마땅히 본국으로 돌아가려니와, 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나는 필시 여기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때 왕자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마땅히 어떠한 방편들을 써야 이 사람을 보내게 될 것인가?’
그때 두 아들이 가까운 산중에서 놀고 있었다.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해서 헛되지 않은 인연을 지으리라.’
곧 그 아들들을 부르니 아들들이 오자 보살이 안고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나의 두 아들들이 깊은 궁중에서 태어나서 몸은 부드럽고 약하며 아직 춥고 괴로운 것을 겪지 않았는데 어떻게 갑자기 부모를 떠나서 남의 종이 되겠는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일을 생각하는가?
만약에 어려운 일과 괴로운 일을 닦아 나가지 않는다면 무슨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인가?
이러한 인연을 내가 마땅히 행하리니, 부디 이 행으로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두 아들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며,
천상과 인간 중의 과보로 전륜성왕ㆍ제석ㆍ범천ㆍ사천왕으로 태어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원컨대 이 공덕으로 중생들과 더불어 모두 위없는 도를 이루게 해주십시오.’
그때 보살이 두 아들의 손을 잡고서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 바라문이여, 내 두 아들은 내 목숨과 같다. 어려서 지혜가 없고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비록 사람 같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이제 종으로 주는 것인데, 아이들의 어머니가 올까 두려우니 빨리 데리고 가도록 하라.”
그때 두 아들이 아버지의 옷을 잡고 돌아가면서 말하였다.
“아버지께서는 무엇 때문에 우리 형제를 이 사나운 바라문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저희들이 이제부터 부모를 영원히 여읜다면 나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덮어줌이 없고 보호해줌이 없이 어떻게 능히 살 수 있습니까?
저희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괴로움을 받아야 합니까?
이제 남의 손에 떨어지면 목숨이 반드시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국왕의 법을 범했다면 형벌을 받는다지만 저희들은 어리고 어리석어서 죄를 범한 적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오늘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설사 실제로 범했다고 해도 오히려 용서하고 놓아줌을 바랄 터인데 하물며 범한 바도 없이 뜻밖에 변을 당해야 합니까?
설사 아버지께서 저희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미 끊어졌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법만으로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늙은이와 어린이를 가엾게 여겨야 옳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모두 지니고 있는 마음인데, 아버지께서는 어찌하여 유독 괴로움과 독함을 보이십니까?
가령 법을 위하여서 버리시는 것이라면 자비로움과 측은함이 없이 어찌 옳은 법이라 하겠습니까? 저희가 비록 어려서 일찍이 바라문의 법을 듣지 못하였으나,만약 처자를 응호하는 인연이 있으면 범천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때 보살이 이 말을 듣고는 몸과 마음이 몹시 떨리면서 곧 스스로 꾸짖었다.
‘어찌하여 이러느냐? 마음아, 너는 모르느냐?
예전부터 생사에 유전(流轉)하여 오는 동안에 어떤 자가 원수가 아니며, 어떤 자가 아들이 아니었으랴?
네가 이제 어둠으로 덮여서 눈멀어 보지 못하는 것이냐?
어찌 마음을 차분히 하여서 깊이 생각하고 분별하지 못하느냐?
네가 이제 저 사람이 두 아들을 데리고 가는 것 때문에 문득 이렇게 움직이는가?
만약 죽음이 닥쳐올 때에 마땅히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 보살이 마음을 꾸짖고 나니 곧 안정되어서 머무를 수 있었다.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빨리 데리고 가라.”
이때 두 아들이 곧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직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어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려서 꿇어앉아 문안드리고 가더라도 늦지 않을 줄 압니다.”
보살이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그대로 가라. 내가 너희 어머니와 함께 너희들 뒤를 따라가리라.”
그때 바라문이 그 두 아들을 데리고 급히 출발하였다.
이때 두 아들이 길을 따라 돌아보고 아버지를 보고는 슬피 울부짖으니 보살이 그때 또 마음을 꾸짖었다.
‘너는 이제 또다시 떨지는 않으리라. 마땅히 형체를 받은 것에 늙음과 죽음이 치연(熾然)함을 관하여라.’
아들이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서원을 세웠다.
‘제가 이제 자식을 놓은 것은 진실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원컨대 이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서 모든 중생들이 일체의 번뇌[繫縛]를 제거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때 바라문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매우 기특한 왕자로다. 세간에 희유한 일이로다. 말대로 곧 행하여서 내게 두 아들을 보시하니 닦는 바 선한 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도다.
이제 이 두 아들을 마땅히 어디에 팔 것인가?
오직 본래 할아버지 왕의 나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좋으리라.’
바라문이 곧 두 아들을 데리고 왕궁으로 나아가니 이때 할아버지인 왕이 그 두 손자를 보고 슬픔과 기쁨이 뒤섞이어서 바라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이 두 아이를 얻었느냐?”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들어보십시오, 저 설산 속에서 대왕의 아들이신 일체지가 이 두 아들을 내게 주어서 종을 삼은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는 팔짱을 끼고 말하였다.
“괴이한 일이로다. 우리 아들이 법을 사랑함이 너무 지나쳐서 사랑하는 자식까지도 아끼지 않게 되었단 말이냐?
그대는 이제 이 아이들을 내게 돌려주어라. 마땅히 그대에게 값을 쳐 주리라.”
바라문이 공손히 응락하고 곧 진귀한 보배를 받아가지고 그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보살의 아내는 빈 숲 속에 있다가 왼쪽 눈에 경련이 일어나고, 마음이 불안하였으며, 채집한 여러 가지 꽃이 곧 시들고, 그릇 속에서 과실 두 개가 흘러나와서 땅에 떨어졌으며, 두 젖이 놀라 움직이면서 젖이 저절로 흘렀고 새가 앞에서 연신 우짖었다.
이것을 보고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이러한 조짐은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것임이 틀림없으리라.
장차 우리 남편의 목숨이 끊어지려는 것이냐?
혹은 호랑이나 사자 등의 사나운 짐승이 우리 아들을 물어간 것이냐?
아니면 산 위에서 놀다가 떨어져서 죽은 것이냐?’
이렇게 생각하면서 곧 처소로 돌아와서 보살을 찾아보니 가까운 한 바위 언덕에 풀을 깔고서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우리 남편은 여기 있으니 다른 염려는 없구나?’
곧 앞으로 가서 물었다.
“두 아이들은 지금 잘 있습니까?”
보살이 대답하였다.
“두 아들들은 모두 편안하오.”
아내가 다시 물었다.
“내가 지금 이 귀로 편안하다고 들었지만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보살이 대답하였다.
“그대는 좀 앉기나 하오. 자연히 보게 될 것이오.”
아내가 앉으니 다시 말하였다.
“그대는 가진 것 모두를 마땅히 남에게 보시하겠다고 한 나의 본래의 서원을 모르시오.
그대가 아침에 나간 뒤에 바라문이 와서 내게 구걸하기에 두 아들로써 보시했소.”
아내가 이 말을 듣고 그 마음이 어둠에 빠져서 온몸을 스스로 치면서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그때 보살이 물을 뿌려 주었고, 물을 뿌린 뒤에 깨어 났으나 온몸을 와들와들 떨고 앉아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괴이하오, 정법을 위하여서
고행을 한다는 것이.
자식으로써 보시할 때에
어떻게 마음이 편안하셨소.
당신의 마음이 강철이 아니거늘,
또한 사랑을 여읜 것도 아니거늘,
어떻게 능히 자식으로
남에게 보시할 수 있단 말이오?
우리 아들은 어리기도 하지만
단정한 것이 따를 자가 없는데,
얼굴은 마치 연꽃과 같고
눈은 마치 우발라(優鉢羅)와 같은데
스스로 물 마시고 과일 먹으니
또한 서로가 번거롭지 않거늘,
어떻게 인정이 없이
갑자기 남에게 준단 말이오?
이 길은 돌 자갈 모래도 많고
사나운 가시밭도 지나가는데,
자비도 지혜도 없는 사람이
어디로 데리고 갔단 말인가?
당신은 본 일이 없으신가요?
저 모든 노루나 사슴 무리도
오히려 다정스럽게 찾아오는데
하물며 아버지인 당신이리까?
못 보시나요? 이 산 속의
저 모든 나무들도
내가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모두 다 흐느껴 울어 주는 것을.
저 모든 풀과 나무들은
모두 다 심식(心識)이 없는 것인데
오히려 능히 이와 같거늘,
하물며 마음을 가진 사람이리까?
그때 그곳에 있던 파초나무가 온통 몸을 떠니 아내가 보고 말하였다.
“너도 남편이 자식을 남에게 주고도 불쌍해 하지도 않는 것이냐?
어찌하여서 이렇게 온몸을 떨고 있느냐?”
그때 그 아내가 아들을 생각하고 슬프게 울부짖으면서 동서로 달려서 그 처소에 안정하지 못하니 보살이 말하였다.
“너무도 가련하구나, 너무도 가련하구나. 이미 산에 들어와서 선한 법을 수행하는데 어찌하여 마음을 저렇게 괴롭히는 것인가?
모든 것을 비워서 없애고 한가히 있으면서 선하고 미묘한 이치를 닦거늘, 괴이하구나.
왕녀여, 비록 깊은 지혜가 있고 용맹스럽게 정진하지만 능히 생사의 과환(過患)은 알지 못하는구려.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원증(怨憎) 가운데 누가 능히 그 근원을 알 것인가?
아이의 과거를 본다면 혹 그대의 원수가 되어서 그가 만일 고통을 만나면 그대는 곧 기뻐했을지도 모르오.
이제 그대의 아들이 되어서 특별히 근심하고 괴로워하지만 설사 죽어서 굳이 간다면 그래도 내게 성내겠는가?
그대는 본디 모든 신선과 성현들의 말씀을 못 들었구려.
어리거나 늙거나 간에
모두 다 죽음으로 돌아감이
마치 과실이 익으면
저절로 땅에 떨어짐과 같네.
그대는 본디 보지 않았나,
나고 죽고 하는 것
마치 저 꿈 속에서
그릇되게 보는 일인 것임을.
무상(無常)한 나고 죽음이
모든 중생들을 이끌고 가니
비록 부모가 있다 하여도
누가 능히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비유하면 저 사자가
마치 사슴을 채가는 것 같으니
비록 어머니가 있어도
역시 구할 수 없네.
이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항상 중생을 해치는 것이
마치 저 과실 나무에서
사람들이 과실을 따는 것 같네.
굽지 않은 갓 만든 질그릇에
하늘에서 큰비가 쏟아지면
모두 무너져 버려서
남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삼계의 중생들 역시
모두 이와 같아서
무상(無常)이란 비를 만나면
아무도 면하지 못하게 되네.
지금 경영하는 이 세상의 업이
분명히 생사로 나아가는 일인데,
즐기어 탐착하고 관(觀)하지 않는가?
모르는 동안에 죽음이 오는 것을.
이와 같이 두 아들들은 반드시 버리게 마련인 것을, 내가 이제 법을 위해서 남에게 보시하였으니 그대는 마땅히 기뻐할지언정 근심하고 괴로워할 일이 아니오.
내가 비록 아이들을 버렸으나 아이들은 반드시 안락할 것이므로 마땅히 크게 괴로워하지 마시오.”
왕자 보살이 이렇게 말하고 나니 그 아내가 묵묵히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그때 석제환인이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기이하다. 이 보살이 사랑하여 아끼는 바가 없구나.’
곧 내려와서 몸을 바라문으로 변화해서 보살의 처소에 이르러서 게송을 설하였다.
큰 신선이여, 마땅히 아시라.
거룩한 이름 범천까지도 사무쳤소.
능히 크게 보시를 행하고
바른 법을 사랑하여 즐기시니
내가 이제 구하여 찾는 바는
말할 만한 것도 못 되지만
오직 원컨대 크고 바른 법으로
나의 소원을 채워 주소서.
보살이 대답하였다.
“내가 이제 몸과 목숨까지도 모두 일체 중생을 위하여서 사랑하고 아끼는 바가 없거늘 하물며 나머지 돈ㆍ재물ㆍ진귀한 보배이겠는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실로 애석함이 없노라. 내가 본래 집의 많은 고장(庫藏)과 코끼리ㆍ말ㆍ수레ㆍ노비ㆍ복사(僕使)가 있었는데 모두 바라문들에게 주면서 남기고 아까워함이 없었으나,
다만 지금 현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오직 몸뚱이와 아내뿐이지만, 만약 꼭 필요하다면 실로 이것도 아끼지 않겠노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그대가 능히 그럴 수 있다면 그대의 아내를 혜시(惠施)할 수 있겠소?”
보살이 대답하였다.
“질투와 아까워하는 마음은 멀리 여읜 지 오래다. 그대는 잠깐만 내가 그를 위하여 설법할 것을 허락하라.”
보살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이 바라문이 내게 그대를 달라고 하는데 그대의 뜻은 어떠하오?”
아내가 대답하였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십시오. 나는 이제 당신에게 매인 몸인데 어찌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곧 아내의 손을 잡아 바라문에게 주었다.
그때 바라문이 보살에게 말하였다.
“이제 이 부인은 얼굴과 자태가 단정하고 몸이 곱고 미묘하여서 색상(色像)이 제일인데, 길이 험난하고 도적이 많아서 내가 지금 홀로 데려갈 수 없기에 도로 맡겨 두는 것이니 다시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지 마시오.”
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내가 이제 그대로부터 뇌옥(牢獄)을 부수고 얽매임을 끊는 혜택을 입었는데, 그대는 이제 다시 나에게 뇌옥과 얽매임을 돌려주려고 하는가?”
바라문이 말하였다.
“만약 가엾게 여겨서 꼭 얻게 해주려거든 부디 다시 받아 주시오.”
잠시 지나서 보살은 그가 딱하게 여겨졌으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금방 도로 받으니 필경 또 무슨 고통이란 말인가?”
바라문이 말하였다.
“내가 만약 기약 없이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삼가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마시오.
이미 이는 내 소유이니 마음대로 할 수 없소.”
이렇게 말하고는 곧 가버렸다. 가다가 얼마 안 가서 또다시 다른 바라문으로 변화해서 보살의 처소로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능히 일체 중생들을 유익하게 함은 비유하면 마치 과실 나무에서 항상 단 과실이 나오는 것처럼 한다고 하니, 내가 멀리서 오래 전에 그 소문을 듣고 옷자락을 걷어쥐고 왔으니 부디 소원을 들어주시오.”
보살이 대답하였다.
“오직 한 아내만이 있었는데 이미 남에게 보시하였으니, 지금 있는 것은 몸뚱이뿐이로다.
오히려 이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만약 필요하다면 주겠노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그대의 몸뚱이까지는 필요하지 않고 오직 두 눈이 필요하니 능히 줄 수 있다면 깊이 감사하겠소.”
그때 보살이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바라문이 내게서 눈을 빌어다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이 몸뚱이는 마치 무덤 사이에 죽은 송장 같은 것을. 견고하지 못한 것으로써 견고한 것과 바꾸는 것인데 응당 기뻐할 일이지 무엇을 염려하랴.’
그때 보살이 가타라(佉陀羅)나무를 잡고 맹세하였다.
‘내가 이제 일체 중생을 모두 위하여서 두 눈을 버리되 탐내고 아까워하지 않으리라. 내가 먼저는 아내를 남에게 주었노라. 부디 이 공덕이 모여서 일체 중생에게 미치어 영원히 탐욕을 끊게 해주십시오.
그대에게 주는 인연은 애욕의 업습(業習)을 여의게 함이로다.
이제 두 눈을 보시하니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청정한 법안(法眼)을 얻게 해주십시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서원하고는 문득 나무 꼬챙이를 가지고 자기의 눈알을 빼려고 하였다.
그때 바라문이 얼른 그 손을 잡고,말하였다.
“아직 빼지 마시오. 눈은 이제 내 것이 되었으니 다시 남에게 주지 마시오.”
보살이 대답하였다.
“내가 이제 한 몸뚱이에 어떻게 하루동안에 연거푸 두 가지나 부탁을 받을 수 있는가?
먼젓번 바라문이 이미 내게 아내를 맡겼는데 그대는 지금 눈을 맡기니 내가 그것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그때 바라문이 곧 제석의 몸을 회복해서 보살에게 말하였다.
“아내와 눈은 모두 내 소유이지만 이제 모두 돌려주고 부탁하니, 다시 남에게 보시하지 마시오.”
제석이 곧 날아가니, 허공에서 네 가지의 꽃이 비내리면서 공중에서 소리가 나서 모든 하늘에게 선고하였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증장(增長)하는 보리도수(菩提道樹)이다.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을 행함에 그 일이 이와 같아서 버리지 않은 바가 없었나니, 일체 중생이 이 일을 들으면 응당 이 보살에게 모두 기쁨을 낼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