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생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답니다. <낮은산> 출판사에서 2012년 4월 26일 처음 찍은 유정란 따끈뜨끈한 책입니다. '개성 강한 닭들의 좌충우돌 생태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암탉, 엄마가 되다]입니다.
어제는 동생이, 기르던 1년생 초짜 수탉 한 마리와 암탉 두 마리를 박스에 실어 광주에 왔지요. 몇 일 전 학교 교무실에서 우연히 닭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는데, 나도 개와 닭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아픈 경험의 소유자로서 가만 앉아 있을 리 없었죠. 아시잖아요. 일단 입이 열렸다 하면 함부로 마이크를 놓지 않는 제 난치의 버릇.^^ 강화의 동생네 닭이야기를 꺼냈지 않았겠습니까? 내 말을 가만히 듣던 교장선생님이 이번엔 그 닭 한번 키워보고 싶다 주문을 하는 거예요. 항, 강화에서 화순까지라니... 혹 토종닭의 '원형'을 바라셨을까? 아니면 우리 동생처럼 착하게 키워 대를 이은 유전적 '질'을 노리셨을까 싶었지만 어쨌든 꽤 특별한 '닭 인연'이 되는구나 싶어 동생에게 전화를 하였어요.
이틀 전에 그린님께서 광주에 내려오신다고 양순씨께 연락하였고 양순씬 내게 폰메시지를 남겼는데, 아 글씨 제가 이틀 뒤인 어제야 그 메시지를 봤다 아닙니까? 어제는 [나주 금성산]에 공지한 대로 나주 들꽃탐사가 있는 날! 초등동창회에 오시는 참이었으니 다행이었지 일부러 오셨으면 일정을 바꿨어야 했을 거예요.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일정이 끝났고 우리는 그 사이 가까운 화순 도곡의 음식점을 정해 만났고 거기서 닭을 인수한 뒤 고개 너머 읍내의 교장선생님께 전해드리는 약속을 잘 지켰답니다.
교장선생님은 종일 닭장을 지어놓느라 바빴다 하고 그 긴 시간 물 한 모금 먹지 못했던 닭들이건만 좋은 환경에서 다진 체력으로 파르르 일어나더니 새 닭장에 깔아놓은 모래를 씩씩하게 쪼아먹거나 물도 쪼르르 잘 넘기고 있드랬습니다. 참 희안하다 싶은 이 사건의 백미는 이것들을 적은 위의 책이었습니다. 닭장에 닭을 풀고 개를 묶고 하는 사이 맘씨 착해 보이고 얼굴 고운 사모님께 동생의 책을 건넸죠. 진돗개를 넘기면서 진돗개의 족보를 전해드린 기분이랄까! 보드라운 어미닭의 샅처럼 내밀었더니 갓 깨어난 병아리의 눈동자처럼 받아주었죠.
새벽에 일어나 이 책을 다 읽었어요. 맨 뒤에 적은 어릴 적 닭과 관련 된 동생 '희야'의 후일담에선 제가 눈물을 찔끔 흘렸답니다... 여기에 그 후일담의 바로 앞 글 한 편을 싣습니다.
사랑하고 늙어가네
엄마가 그러는데요,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런 '품앗이'래요. 생명을 가진 것들은 다 그렇게 '내리사랑' 품앗이를 한대요. 부모에게 받은 큰 사랑 다 갚지 못해서 자식한테로 내려보내고, 자식은 그 사랑, 또 자기 자식에게로 내려보내고......, 줄 때 되받으려는 계산 안 하는 '사랑 품앗이'래요.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어 키우고, 기대하지 않고 떠나 보내고, 또 품어 키우다가 어느덧 늙어 가는 것도 엄마가 말한 사랑 품앗이와 다르지 않겠죠? 내가 예뻐했던 소녀 닭 졸졸이와 귀여니, 우리 닭장에서 지낸지 가장 오래된 이 닭들도 이제 늙어서 할머니닭이 되어가고 있어요. 졸졸이와 귀여니는 알 품어 병아리를 키우는 어미닭은 못 되었지만, 수탉과 짝짓기를 해 유정란을 낳아 준, 병아리들의 생모들이지요
알 품고 병아리 키우느라 바빴던 꽃순이와 얼룩이와 순둥이는 깃털이 매끈한데, 졸졸이와 귀여니는 힘든 짝짓기를 감당하느라 많이 늙어 버렸습니다. 알만 낳아 준 닭들. 꽁지와 꼬꼬와 오골이도 잦은 짝짓기 때문에 깃털이 많이 상했어요. 꼬꼬닭장에 처음 올 때만 해도 대담한 펑크스타일 신세대 닭이었던 오골이는 앞머리가 왕창 뽑혔고, 꽁지와 꼬꼬의 빛나던 깃털도 푸석하고 초췌해졌어요. 귀여웠던 병아리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언제까지 병아리로 멈춰 살 순 없겠죠. 이렇게 자연스럽게 성장하고,사랑하다 늙어 가는 것도 괜찮아 보여요.
어른으로 성장해 보지도 못한 채 태어난 지 겨우 30일 어린 나이에 닭고기로 팔리는 육계들도 있고, 태어나 한 번도 흙을 밟아보지 못하고 비좁은 철망 안에서 쉴 새 없이 알만 낳다가 짧은 생을 끝마치는 닭들도 있는데, 그래도 우리 암탉들은 한 생애를 닭답게 살면서 자기를 닮은 새 생명도 남겼으니 나름 행복했을 거라 믿어요. 늙어 가는 암탉들에게서 새 생명을 이어 받은 어린 병아리들은 제 부모와 꼭 닮은 모습으로 아주 예쁘게 자랐답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어엿한 청년이 된 우리 봄병아리 수탉들은 모두 친환경 유정란을 생산하는 농장으로 장가를 갔어요. 농장에 새로 시집온 젊은 암탉들이 아주 많다니, 우리 새신랑 수탉들이랑 서로 잘 맞겠죠? 멋진 오골 수탉들도, 마음 여린 무녀리 총각도 잘 성장하여 장가갔답니다. 정들었던 아이들을 마음 놓고 보낼 곳이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엄마들과 딸들이 함께 몸 부비고 사는 꼬꼬닭장에 겨울이 지나가고 새봄이 오면, 딸들은 또 파릇한 봄기운으로 엄마가 되어 알을 품고 병아리를 돌보며 내리사랑 품앗이를 시작할 테죠. 그렇게 행복한 엄마닭이 되어 행복한 병아리들을 키우고, 또 느긋한 할머니 닭이 되어 행복하게 늙어갈 거에요. 우리집 행복한 꼬꼬닭장에서.
<낮은산> 전자우편 littlemt@dreamwiz.com 전화: (02) 335-7362(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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