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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1권[4]
[제1조. 대가섭] 大迦葉 존자尊者
마갈국摩竭國 사람이며, 종성은 바라문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음택飮澤이요, 어머니의 이름은 향지香志이다.
병사왕甁沙王과 부를 겨루면 보습 하나가 모자라고, 마갈에서 부를 겨루면 천 배나 더 앞섰다. 존귀한 사람이 지녔던 패옥貝玉을 쌓아 놓고 나무 신[樹神]에게 빌고, 가난한 여인이 애지중지 지녔던 금 구슬을 얻어 탑을 웅장하게 장식하였더니, 비로소 금빛 나는 아들이 태어나 금빛 나는 아내와 짝을 맺었다. 과연 전생 인연이 맞고 오랜 소원이 맞아서 귀한 부부가 된 것이나, 정욕情欲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 출가할 뜻을 품었다.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자, 곧 세존께 귀의하여 큰 서원誓願을 밝히고 최상의 법을 배우고 계법을 받아 맑고 곧게 본바탕을 지켰으며, 아무런 애착도 욕심도 없이 항상 두타頭陀를 행하였다.
세존께서 살아 계실 때 앉으라 하시고 옷을 주시고 대중 앞에서 항상 제일이라 칭찬하셨다.
그때에 대가섭이 비구들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다비는 끝났다. 금강 사리는 우리들의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러 왕과 대신과 장자長者와 거사 중에 최상의 복을 구하는 자가 있을 것이므로, 이때에 공양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법보法寶를 결집하여 끊이지 않게 함으로써 말세의 큰 광명이 되어 바른 법이 융성하게 이어지게 하자.”
그때에 가섭이 큰 신통으로 수미산 꼭대기에 가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여,
열반에 들기를 우선 멈추시오.
만약 신통을 얻은 이가 있다면
마땅히 결집의 마당으로 나아갑시다.
이렇게 읊고는 구리종을 치니, 구리종 소리에 이 게송이 섞이어 두루 삼천대천세계에 퍼져 신통을 얻은 이는 모두가 모였다. 거룩한 대중이 매우 많이 모여, 마침내 안으로 3장藏을 통달하고, 밖으로는 5명明에 밝고, 힘은 여섯 가지 신통이 구족하고, 지혜는 네 가지 변재가 원만한 자만을 추리니, 그 수효는 전부 499명으로 모두가 왕사성 근교에 있는 기사굴산의 빈발라굴賓鉢羅窟에 모였으니, 빈발라는 칠엽암七葉巖이라 번역한다.
이때 아난은 번뇌가 다하지 못한 상태였다. 타심통의 지혜가 있는 발사跋闍 비구가 아난 사형에게 아직 탐욕과 번뇌가 있는 까닭에 성인의 무리에 끼일 수 없음을 관찰하고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아난이 혼자 생각했다.
‘나는 부처님을 섬겼고 계를 범한 적도 없는데 번뇌가 다하지 못해 성인 축에 들지 못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밤새도록 걷다가 새벽이 되니, 몹시 피로하여 잠시 누우려는데, 머리가 목침에 닿기 전에 깨달음의 지위를 얻어 기쁨을 이기지 못한 채 곧장 빈발라굴로 가서 돌문을 두드렸다.
그때에 가섭이 굴 안에 있다가 물었다.
“누가 나의 문을 두드리는가?”
아난이 대답했다.
“부처님의 시자이던 아난 비구입니다.”
“그대는 번뇌가 다하지 못했으니 들어올 수 없느니라.”
“나는 이미 번뇌가 없는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대가 이미 무루無漏를 증득했다면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대중의 의문을 풀게 하라.”
그때 아난은 신통의 힘으로 문고리 구멍을 따라 들어와서 대중 축에 끼니, 5백 명의 수효가 다 찼다.
『육왕경育王經』에서 말하였다.
“가섭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제가 지금 부처님의 3장藏을 결집하려 하니, 대왕께서는 저를 위해 단월檀越이 되어 주십시오.’
아사세왕이 대답했다.
‘여러 큰스님들께서는 부처님의 3장을 남김없이 결집하기 바라며, 자비를 버리지 마시어 나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사세왕이 결집의 주인이 되었다.
그때에 비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로인 대가섭에게 물었다.
‘3장 가운데서 어느 것을 먼저 결집하리까?’
가섭이 대답했다.
‘수다라修多羅를 결집합시다.’
그리고 다시 대중에게 고했다.
‘이 아난 비구는 많은 것을 듣고 잊지 않아 큰 지혜를 지녔습니다. 항상 부처님을 따라 모셨고, 여래의 청정한 범행을 닦았고, 들은 불법은 그릇의 물을 옮겨 붓듯 남김이 없어 부처님께서 총명하기로 제일이라 하셨으니, 그에게 수다라장을 결집하라고 청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대중이 묵묵히 따랐다. 이에 가섭이 아난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제 마땅히 법보를 선양하라.’
아난은 공손히 분부를 받들고서 대중의 마음을 살피고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여러 비구 권속이
부처님을 여의어 초라한 것이
마치 넓은 허공에
뭇 별들만 있고 달이 없는 것 같구나.
이렇게 읊고는 여러 성인들의 발에 절하고 곧 법좌에 올랐다.”
『칠사기七事記』에서 말하였다.
“그때에 아난이 법좌에 오르니 몸에 부처님 같은 존귀한 여러 상호相好가 나타나매, 대중이 이 상서를 보고 세 가지 의혹을 일으켰다.
첫째는,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까닭에 열반에서 일어나 우리들에게 매우 깊은 법을 말씀해 주시는 것인가?
둘째는, 다른 세계의 부처님께서,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드신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묘한 법을 말씀해 주시는 것인가?
셋째는, 아난이 성불하여 우리들에게 설법을 하는 것인가?
이때 아난이 말했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어느 성, 어느 곳에서 아무 경을 말씀하셨다. 이에 사람들과 하늘들이 절을 하고 받들어 행하였다.’
아난이 법좌에서 내려와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니, 보살들은 그것이 세존의 가피력加被力이었음을 알고 모든 의혹이 풀렸다.
이때 가섭이 모든 비구들에게 물었다.
‘아난의 말이 틀림이 없는가?’
비구들이 대답했다.
‘세존의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가섭이 다시 우바리優波離에게 율장을 결집하라 명했고, 다음은 가전연迦旃延에게 논장을 결집하도록 명하였다. 가섭이 곧 원지삼매願智三昧에 들어 결집한 3장을 관찰하니, 조금도 잘못됨이 없었다. 이로부터 유포되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아사세왕참회경阿闍世王懺悔經』에는 세 가지 아난이 있다.
첫째는 아난타阿難陀로 경희慶喜라 번역하며, 성문의 법장法藏을 지녔고, 상품의 2승법乘法도 힘과 분수에 따라 지녔다.
둘째는 아난타발라阿難陀跋羅로 경희현慶喜賢이라 번역하며, 중승中乘의 법장을 지녔고, 상품의 대승에 대하여 힘과 분수에 따라 지녔으며, 하품의 소승小乘도 겸해 지녔다.
셋째는 아난타바가라阿難陀婆伽羅로 경희해慶喜海라 번역하며, 보살의 대승법장大乘法藏을 지녔고, 하품의 2승법도 겸하여 지녔다.
또 천태교天台敎에는 네 가지 아난이 있는데,
어떻게 넷인가 하면,
첫째는 경희慶喜아난이니 장교藏敎를 결집했고,
둘째는 현賢아난이니 통교通敎를 결집했고,
셋째는 전장典藏아난이니 별교別敎를 결집했고,
넷째는 해海아난이니 원교圓敎를 결집하였다.
그 근본을 말하면 오직 하나의 금룡존불金龍尊佛이요, 그 행적을 말하면 네 아난이란 제자가 된다.
범어인 아난은 무염無染이라 번역되니, 아阿는 무無요, 난難은 염染이 된다.
이 무염이란 이름을 또 둘로 나눌 수 있으니,
첫째는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리므로 무염이라 하고,
둘째는 수행과 증득을 벗어났으므로 무염이라 한다.
번뇌를 끊어 버리므로 무염이라 한 것은 교법敎法을 전한 아난을 이르는 말이요,
벗어나서 닦아 증득하므로 무염이라 한 것은 선법禪法을 전한 아난을 이르는 말이다.
아난이 조사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금란가사金襴架裟 이외에 또 무엇을 전하셨습니까?”
조사가 불렀다.
“아난아.”
아난이 대답을 하니, 조사가 말하였다.
“문 밖의 깃대를 꺾어 버려라.”
아사세왕이 조사에게 설법을 청하자 조사가 그 청을 받고는 법상에 올라 한참 있다가 도로 내려오니,
왕이 물었다.
“어째서 제자에게 법을 들려주시지 않습니까?”
조사가 대답하였다.
“대왕님은 지위도 덕망도 크십니다.”
가섭 존자는 1승법乘法을 드날리어 중생을 이롭게 하고, 2교(敎:대승과 소승)를 펴서 백성들을 제도하니, 진실로 타심통他心通을 얻으셨으며, 끝끝내 나[我]라는 생각은 없으셨다. 45년 동안 세상에 설법하시면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고는 아난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나에게 맡기셨는데, 나는 이제 늙어 부처님의 승가리 옷을 가지고 계족산鷄足山에 들어가서 자씨(慈氏:미륵불)의 하생下生을 기다리겠다. 그대는 부처님의 분부를 잘 받들어 바른 법을 퍼뜨려서 끊이지 않게 하라. 나의 게송을 받아라.
법을 법답게 하는 본래의 법에는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
어찌 한 법 안에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을 수 있으랴.
그때에 가섭이 게송 읊기를 끝내고는 왕사성으로 들어가서 아사세왕에게 하직하려 했으나 왕이 잠들어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문지기에게 당부했다.
“나는 계족산으로 간다고 왕에게 여쭈어라.”
『서역기西域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산의 세 봉우리가 닭의 발을 세운 것 같으므로 지어진 이름이다.”
가섭 존자가 이 산에 풀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생각했다.
‘지금 내가 이 몸에 부처님께서 주신 누더기를 입고 승가리 등을 지녔으니, 57억 6천만 년을 지나 미륵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실 때까지 더럽히거나 해어지지 않게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는 마침내 산신에게 말했다.
“만일 아사세왕과 아난이 오거든 들어오게 열어 주고, 돌아가거든 다시 꼭 닫아라.”그리고는 바로 멸진정滅盡定에 드니, 땅이 사방상하四方上下로 진동하였다.
그때에 아사세왕이 꿈에 대궐의 대들보가 부러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깨니, 문 밖에 대령했던 사자使者가 아뢰었다.
“대가섭이 대왕께 하직하고 계족산으로 들어가 열반에 들겠다고 왔었으나 대왕께서 주무시므로 감히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자 울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짐은 어찌 이다지 박복하여 성인들의 열반을 뵙지 못하는고?”
곧 죽원정사竹園精舍로 가서 아난의 발에 절하고 가섭 존자가 어디에 계시는가를 물었다.
그리고는 아난에게 계족산까지 함께 가자고 하고 길을 떠났다. 왕이 산에 이르자 산이 저절로 열렸는데, 가섭은 그 안에서 온몸이 조금도 흩어지지 않았다.
왕은 곧 여러 장사들에게 분부하여 향기로운 장작을 쌓아 다비를 하려 했으나,
아난이 왕에게 여쭈었다.
“마하가섭은 선정으로 몸을 지탱하고 미륵이 강탄降誕하시기까지 부처님의 승가리를 가지고 기다리다가 그것을 전하고서야 열반에 드실 것이니, 절대로 태워서는 안 됩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갖가지로 공양하다가 슬픔이 북받치자 발에 절을 하고는 선정의 몸을 하직하고서 아난에게 왕사성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아사세왕과 아난이 산을 나서자마자 산은 예전처럼 합해졌다. 조사가 열반에 든 때는 주周의 제8대 효왕孝王 5년 병진丙辰이었다.
정수淨修 선사가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장하도다, 가섭이여.
부처님 마음을 비밀히 받았네.
몸에는 한 벌의 옷을 걸치고
입은 바다런가 천 길의 깊이로다.
위의 있는 모습으로
짙은 미혹을 교화하여 건진다.
아직 자씨미륵불을 만나지 못했기에
우선 계족산에 입정했네.
[제2조. 아난 존자] 阿難
왕사성王舍城 사람이며, 종성은 찰리刹利요, 백반왕白飯王의 아들로서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다. 전생에는 금룡존불金龍尊佛이더니 금생에 여래에게 제도되어 법의 깃대[法幢]를 세우고 6만 대중을 교화하였으며, 부처의 해를 높이 달아 미혹한 무리를 널리 비추고, 널리 통달하고 잊지 않아 다문多聞 제일이었다. 조사가 거닐다가 어느 대밭 가에 이르니, 어떤 비구가 부처님의 게송을 잘못 외웠다.
사람이 1백 년을 살아도
큰 강물이 마르는 것을 보지 못하면
하루를 살아서
그것을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아난이 이 말을 듣고 탄식했다.
‘세상의 어떤 범부는 뭇 부처님의 뜻은 알지도 못하고, 공연히 4위타(圍陀:베다)만을 쌓아 두고 있으니, 빈 몸으로 조는 것만 못하리라.’
이렇게 탄식하고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지금 내가 부처님의 게송을 읊으리니 들어라.”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사람이 1백 년을 살아도
부처님의 기틀을 알지 못하면
하루를 살면서 분명히 알아
깨닫는 것만 못하다.나머지는 『보림전寶林傳』과 같다.
그때에 아난이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말했다.
“여래의 정법안장을 내가 전해 받았고, 내가 이제 그대에게 전하나니, 그대는 이 가르침을 널리 펴서 끊이지 않게 하라.”
그리고는 다시 말전지末田底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대에게 예언하시기를,
‘내가 멸도한 지 120년에 계빈국罽賓國에 말전지라는 비구가 있어 불법을 크게 떨치리라.’ 하셨느니라.”
그때에 상나화수가 말전지와 함께 아난 존자를 섬겼는데, 말전지는 제자가 없었고, 상나화수는 제자가 하나 있었으니, 우바국다優婆毱多라 하며, 인도 나한종羅漢宗의 우두머리였다. 그때에 아난이 법을 전하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본래 있음의 법을 전하지만
전한 뒤에는 없음의 법이라 하니라.
제각기 깨달았으니
깨달은 뒤에는 없음의 법도 없으리라.
조사가 법을 전하고는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18종류의 변화를 일으키다가 풍륜분신風輪奮迅삼매에 들어 몸을 네 조각으로 내어, 한 몫은 도리천忉利天에 바치고, 한 몫은 사갈라용왕沙竭羅龍王에게 바치고, 한 몫은 비사리왕毘舍離王에게 바치고, 한 몫은 아사세왕에게 바치니, 모두가 탑을 세워 공양하였다. 아난이 열반에 든 때는 중국 주周의 제10대 여왕厲王 12년 계사癸巳였다.
정수 선사가 찬탄하였다.
다문多聞 경희慶喜가
법의 깃발을 드높이 세웠다.
부처님의 황금 게송을 전했고
조사의 은 등불을 이었다
자비는 제일이며
지혜는 견줄 이 없다.
음광여래의 후계이니
가을 강의 달빛일런가?
[제3조. 상나화수 존자] 商那和修
또는 상낙가商諾迦라 하며, 인도에서 아홉 가지로 뻗는 자연생 풀이름이다. 마돌라국摩突羅國 사람이며, 종성은 비사다毘舍多요, 아버지의 이름은 임승林勝이고, 어머니의 이름은 교사야嬌奢耶이다. 어머니의 태胎 속에서 6년 만에 태어나 얼마 안 가서 출가하니, 몸에 원래부터 걸치고 있던 옷이 저절로 9조條의 가사가 되었다. 경희의 법을 받아 널리 많은 중생을 제도한 큰 등불이었다.
그가 말했다.
“부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내가 멸도한 지 2백 년 뒤에 성인이 나서 나의 법을 이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을 마치고는 곧 삼매에 들어 타리국吒利國에 이름은 선의善意이고, 성은 수타首陀인 장자長者가 장차 세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막내가 출가하여 자신의 뒤를 이어 이 가르침을 크게 드날릴 것임을 보았다.
그리고는 “나는 조그마한 신통을 부려 거기에 가 봐야 되겠다”고 하시고는 아무도 거느리지 않고 혼자서 도착하니,
장자가 절을 하고 물었다.
“존자께서 멀리까지 오셨는데 무슨 소원이 있으십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나는 시자도 없고 혈혈단신이오. 제자를 얻어 불법으로 인도할 생각이오.”
“저는 세속 생활을 좋아하여 출가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자식을 낳거든 스님께 드리겠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좋소.”
말을 끝내고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윽고 장자는 과연 세 아들을 얻었는데, 위로 두 아들은 출가를 원하지 않았다. 셋째인 우바국다優波毱多가 17세가 되자, 조사는 그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다.
“부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이 아이는 내가 멸도한 뒤 2백 년 후에 제4조가 되어 무수한 무리를 제도하리라.’ 하셨소.”
아버지가 부처님의 예언을 듣고는 곧 존자의 말을 받들어 출가를 허락하였다. 존자가 우바국다에게 물었다.
“그대는 몇 살인가?”
국다가 대답했다.
“17세입니다.”
“그대가 17세라 하니 불성이 17세인가?”
불성이 17세는 아닙니다.”
그리고는 다시 조사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마음이 희십니까, 머리가 희십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머리카락이 흰 것이지, 마음도 머리도 아니니라.”
이에 국다가 말했다.
“몸이 제 홀로 17세이지, 불성이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조사의 곁에서 3, 4년 동안 있다가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성인의 과위果位를 증득하였다.
그때에 상나화수가 우바국다에게 말했다.
“여래께서 큰 법안을 가섭에게 전하셨고, 그렇게 차례차례 전하여 나에게 이르렀는데, 이제 나는 그대에게 전하나니, 그대는 나의 게송을 받아라.”
법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며,
마음도 없고 법도 없도다.
이 마음의 법을 말할 때에
이 법은 마음의 법이 아니다.자세한 것은 『보림전』에 있다.
상나화수 존자가 열반에 든 것은 주周의 제11대 선왕宣王 23년 을미乙未였다.
정수 선사가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태의胎衣 존자여,
어두운 방의 밝은 등불이요,
인간과 하늘의 눈과 귀요,
불법 안의 팔과 다리로다.
마음도 아니요, 물질도 아니며
줄지도 않고 늘지도 않는다.
장하여라, 거룩한 성인이시여
깨달음의 바다의 대붕이시여.
[제4조. 우바국다 존자] 優婆毱多
타리국吒利國 사람이요, 종성은 수타首陀이며, 부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선문의 넷째 조사로서 많은 중생을 제도하되, 오늘의 나와 같을 것이요, 현겁 동안에 성불하여 무상호無相好여래라 이름할 것이다” 하셨다.
17세에 출가하여 20세에 도를 이루고는 곳곳으로 다니면서 교화하다가 마돌라국摩突羅國에 이르니, 대중이 구름같이 모여서 보름 동안 설법을 하였는데 하늘에서 때맞추어 꽃을 내리고, 땅이 솟아올라 법을 들었으며, 모두 해탈을 얻었다. 자세한 것은 『보림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때 우바국다가 한 사람씩 제도할 때마다 네 치짜리 산가지[籌] 하나씩을 던졌는데 석실 하나에 가득하였다. 석실은 높이가 열여섯 자요, 가로와 세로도 그러하였다. 그 최후에 제도된 이의 이름이 제다가提多迦였는데, 출가할 생각이 간절하자, 조사가 물었다.
“마음이 출가하는가, 몸이 출가하는가?”
제다가가 대답했다.
“제가 출가하러 온 것은 몸이나 마음을 위하여 이익을 얻고자 출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사가 물었다.
“몸과 마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다시 또 누가 출가하려 하는가?”
제다가가 대답했다.
“출가한다는 것은 내가 없는 까닭이고, 내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생멸하지 않으므로 항상합니다. 항상하기 때문에 부처님도 항상하고, 마음은 형상이 없으며, 그 몸도 그러합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대가 크게 깨닫는 날에는 마음이 활짝 열리리니 불법 안에서 항하恒河의 모래같이 많은 무리를 제도하리라.”
그때 우바국다 존자가 다시 말했다.
“내가 이제 이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전하니, 그대는 잘 퍼뜨려서 끊이지 않게 하라. 나의 게송을 받아라.”
마음은 본래부터의 마음이니
본래 마음에는 법이 없도다.
법도 있고 본래의 마음도 있으나
마음도 아니고 본래의 법도 아니라네.
국다 존자가 법을 전하고는 바로 열반에 드니, 제자인 제다가가 석실 안의 산가지를 꺼내어 쌓아 놓고 불을 질러 다비하여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이때가 주周의 제13대 평왕平王 31년 경자庚子였다.
정수 선사가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우바국다 존자는
변재가 폭포수 내리치듯 하고
법의 산이 드높고
도의 숲이 빽빽하였다.
산가지가 석실에 가득하였고
시체를 마왕에 씌워 놀라게 했다.
성품이 17세가 아니니
깨달음은 찰나 사이에 있었다.
[제5조. 제다가 존자] 提多迦
마가타국摩迦陀國 사람이며, 속가에 있을 적에 아버지가 꿈을 꾸었는데, 황금 해가 지붕 위로 솟아서 큰 광명을 뿜어 어느 보배 산을 비추었고, 그 산꼭대기에서 샘이 솟고 있었다. 처음의 이름은 향중香衆이라 했다가 아버지의 이런 꿈에 의하여 제다가라고 고쳤으니, 번역하면 통진량通眞量이 된다.
우바국다 조사가 말하였다.
“여래께서 그대에 관해 예언하시기를,
‘내가 열반에 든 뒤 1백 년 중에 반드시 한 사람이 도과道果를 증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제다가를 위해 그 아버지의 꿈을 해석했다.
“보배 산은 나의 몸이요, 광명은 그대의 지혜요, 지붕 위로 솟은 것은 출가한다는 것이요, 산꼭대기의 맑은 샘은 위없는 법이니라.”
제다가가 국다의 꿈 해몽을 듣고 기뻐하면서 다음과 같이 송하였다.
높고 높은 7보의 산에서
끊임없이 지혜의 샘 솟아
참 법의 맛으로 변하니
인연 있는 무리를 모두 건진다.
이에 우바국다 존자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의 법을 그대에게 전하니
큰 지혜가 나타나리라.
황금빛 해가 지붕에서 솟아
천지를 두루 비추리라.
그때에 제다가는 국다의 게송을 듣고 합장하고 존자의 얼굴을 우러렀다. 법을 물려받은 뒤로 여러 지방을 돌면서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였다.자세한 것은 『보림전』에 실려 있다.
그때에 미차가彌遮迦가 8천 선인의 우두머리로서 출가하기를 원하니, 제다가 존자가 말했다.
“그대들이 출가하려거든 스스로 생각하되, 삭도에 의존하지 말라. 생각함에 따라 수염과 머리카락이 저절로 깨끗해질 것이요, 부처님을 깊이 공경함으로써 옷에서 가사가 생기어 단상檀相으로 변할 것이다.”
그때에 선인들이 제각기 부처님을 생각하고 공경한 까닭에 머리카락과 수염이 저절로 깎기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으며, 마음이 수행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아 모두가 거룩한 과위를 얻었다. 그때에 제다가가 미차가에게 말했다.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전하셨고, 이렇게 전해지고 전해져 나에게 이르렀는데, 내가 이제 이 법안을 그대에게 전하나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근본 법의 마음을 통달하면
법도 없고 법 아님도 없다.
깨닫고 난 뒤엔 깨닫기 전과 같으니
마음이 없어지면 법이 없음을 얻는다.
조사가 게송을 마치자 삼매三昧의 불이 솟아 몸을 태우니, 제자인 미차가가 사리를 거두어 반다산斑茶山에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 이때는 주周의 제15대 장왕莊王 7년 기축己丑이었다.
정수 선사가 찬탄하였다.
제다가 대사가
나[我] 없음으로 출가하였네.
6근根 6경境을 깨달아 알고는
허공 꽃에 미혹됨을 면했네.
몸은 형상이 아니요
진리는 언어표현[齒牙]을 넘어선다.
간 곳마다 중생을 돕거니
어찌 헛됨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