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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1권
1.4. 계의 종류(2), 계목의 단속, 감각기능의 단속, 생계의 청정, 필수품에 관한 계
42. 네 가지의 네 번째에,
① 세존께서 설하신,
“여기 비구가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ācāra)과 행동의 영역(gocāra)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율을 받아지녀 공부짓는다. (Vbh. 244)”라고 한,
이 계가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다.
② 그러나 “그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nimitta=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anubyañjaa, 結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감각기능(眼根)이 제어 되어 있지 않으면 탐욕스러움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業)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 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 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귀로 소리를 들음에 … , 코로 냄새를 맡음에 … , 혀로 맛을 봄에 … ,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 , 마노(意)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며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業)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 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기능을 잘 단속하기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기능을 잘 방호한다.
마노의 기능을 [잘방호하여]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M. i. 180)”라고 설하신 것은,
감각기능(根)의 단속에 관한 계다.
③ 생계 때문에 제정한 여섯 가지 학습계율을 범함으로 생긴 삿된 생계와,
“계략, 쓸데없는 말, 암시, 비방,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함(M. iii. 75)”이라는 이런 삿된 법들을 통해서 생긴 삿된 생계로부터 절제함이,
생계의 청정에 관한 계다.
④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옷을 수용하나니 오직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파리ㆍ모기ㆍ바람ㆍ햇볓ㆍ파충류와 닿는 것을 물리치고 설한 숙고함을 통해 청정해진,
네 가지 필수품의 수용이 필수품에 관한 계다.
1.4.1.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
43. 이제 [네 가지의 네 번째 계에 관해서]
처음부터 차례대로 단어를 설명하고 뜻을 판별하여 주석한다.
‘여기’: 이 교법에서.
‘비구’: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기 때문에, 헤어지고 기운 옷 등을 입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명칭을 얻은 신심으로 출가한 선남자.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여기서 계목이란 학습계율(sīkkhāpada-sīla)을 뜻한다.
이것은 이것을 보호하고(pāti) 지키는 사람을 해탈케 하고 (mokkheti), 악처 등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계목(pāṭimokkha)이라고 한다.
단속하는 것(saṁvaraṇa)이 단속(saṁvaro)이다. 몸과 입으로 범하지 않는 것의 동의어이다.
빠띠목카삼와라(pātimokkha-saṁvara, 계목의 단속)라는 합성어는 계목이 바로 단속이 라고 풀이된다.
그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는 것이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는 것(pātimokkha-saṁvara-saṁvuta)이다. 그가 그것을 가진다. 갖춘다는 뜻이다.
‘머문다’: 행동거지(네 가지 자세 중의 하나)를 취한다.
44.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등의 뜻은 성전에서 설한 방법대로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바른 행실이 있고, 바르지 못한 행실이 있다.
여기서 무엇이 바르지 못한 행실인가?
몸으로 범하고, 입으로 범하고, 몸과 입 [둘 다로] 범하는 것이 바르지 못한 행실이다,
모든 나쁜 계행이 바르지 못한 행실이다.
여기 어던 자는 대나무를 주거나, 향기로운 잎을 주거나, 꽃과 과일과 목욕한 뒤 바르는 분가루와 치목을 주거나, 아첨하거나, 반쯤만 사실인 얘기를 하거나, 다른 이의 아이를 귀여워하거나, 심부름을 가는 것 등 이외에도 부처님께서 나무라신 다른 삿된 생계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것을 바르지 못한 행실이라 한다.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실인가?
몸으로 범하지 않고, 입으로 범하지 않고, 몸과 입으로 범하지 않는 것이 바른 행실이다. 계를 통한 단속은 모두 바른 행실이다.
여기 어떤 자는 대나무를 주거나, 향기로운 잎을 주거나, 꽃과 과일과 목욕한 뒤바르는 분가루와 치목을 주거나, 아첨하거나, 다른 이의 아이를 귀여워하거나, 심부름을 가거나, 부처님께서 나무라신 다른 삿된 생계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이것을 바른 행실이라 한다.”
45. “[탁발 등을 위한] ‘행동의 영역’: 행동의 영역이 있고, 행동의 영역이 아닌 것이 있다.
여기서 어던 것이 행동의 영역이 아닌가?
여기 어떤 자가 기생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거나, 과부, 노처녀, 주성, 비구니, 술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거나, 왕들, 대신들, 외도들, 외도들의 제자들과 섞여 마을 사람들과 부적절한 교제를 하면서 머물거나,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에 대해 믿음도 없고 기뻐하지도 않고 욕설을 하고 비방하고 손해를 바라고 해로움을 바라고 재앙을 바라고 유가안은(瑜伽安檼)을 바라지 않는 그런 가족을 의지해 살고, 섬기고, 자주 왕래한다.
이것이 행동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행동의 영역인가?
여기 어떤 자가 기생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지 않고, 과부 노처녀, 중성, 비구니, 술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지 않으며,
왕들, 대신들, 외도들, 외도들의 제자들과 섞여 마을 사람들과 부적절한 교제를 하면서 머물지 않고,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에 대해 신뢰가 있고 기뻐하고 우물과 같은 역할을 하고 가사를 수한 자들이 자주 오가며 성인들의 출입을 좋아하고 이로움을 바라고 유가안은을 바라는 그런 가족을 의지해 살고, 섬기고 자주 왕래한다.
이것이 행동의 영역이다.
이와 같이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구족했고, 바르게 구족했고, 가졌고, 바르게 가졌고, 충족했고, 갖추었고, 지녔다. 그러므로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춘 자라 부른다. (Vbh. 246-47)”
46. 다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도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알아야 한다.
바르지 못한 행실은 두 가지이니,
곧 몸의 바르지 못한 행실과 말의 바르지 못한 행실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몸의 바르지 못한 행실인가?
“여기 어떤 자가 대중에 머묾에도 불구하고 불손하게 행동하면서,
장로들을 [몸과 옷으로] 부딪치면서 서고, 부딪치면서 앉고,
그들 앞에 서고, 그들 앞에 앉고,
높은 의지에 앉고, 머리를 덮어쓴 채 앉고,
서서 얘기하고, 발을 흔들면서 얘기하고,
장로들이 신발을 벗고 경행할 때 신발을 신고 경행하고,
그들이 낮은 경행처에서 경행할 때 높은 경행처에서 경행하고,
그들이 땅바닥에서 경행할 때 경행처에서 경행하고,
장로들의 자리를 밀치면서 서고, 밀치면서 앉고,
젊은 비구들을 의자에 앉지 못하게 하고,
한증막에서도 장로들에게 여쭙지도 않고
장작을 [더 난로 안에] 넣고, 문을 걸어 잠그고 …
욕실에서도 장로들을 부딪치면서 들어가고, 그들 앞에 들어가고,
부딪치면서 목욕하고, 그들 앞에서 목욕하고,
부딪치면서 나오고, 그들 앞에서 나오고 …
집안에 들어갈 때에도 장로들을 부딪치면서 가고,
그들 앞에서 가고, 밀어제치면서 장로들 앞에서 가고,
가정의 여인들이나 소녀들이 앉는 비밀스럽고 가려진 안방에 급작스럽게 들어가고,
아이들의 머리를 친다. (Nd1. 228-229)”
이를 일러 몸의 바르지 못한 행실이라 한다.
47. 그러면 어떤 것이 말의 바르지 못한 행실인가?
“여기 어떤 자가 대중에 머묾에도 불구하고 불손하게 행동하면서 장로들에게 여쭙지도 않고 법을 설하고, 질문에 답하고, 계목을 외우고, 서서 이야기하고, 팔을 흔들면서 이야기 하고 …
집 안에 들어가서 여인이나 소녀에게 이와 같이 얘기한다.
‘아무개 성씨에다 아무개 이름을 가진 자여, 무엇이 있는가? 죽이 있는가? 밥이 있는가? 씹어 먹을 음식이 잇는가?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씹어 먹을까? 어떤 부드러운 것을 먹을 까? 아니면 나에게 무엇을 씹어 주려는고?’라고 이와 같이 잡담을 늘어놓는다. (Nd1. 230)”
이를 일러 말의 바르지 못한 행실이라 한다. 이와 반대되는 것을 바른 행실이라고 알아야 한다.
48. 다시 비구가 공손하고, 정중하고, 양심과 수치심을 갖추고,
[속옷]을 단정히 하고 [겉옷으로] 잘 가려서 입고,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갈 때나, 앞으로 보고 옆으로 볼 때나, 구부리고 펼 때나, 그의 자태는 확신에 차있으며,
눈을 내리뜨고, 위의가 반듯하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음식에서 적당량을 알고,
항상 깨어있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소욕하고, 지족하며,
부지런히 정진하고, 선행을 성심으로 하고, 공경해야 할 분을 극진히 공경하면서 머문다.
이것을 일러 바른 행실이라 한다. 이와 같이 바른 행실을 알아야 한다.
49. 행동의 영역은 세 가지이니 강하게 의지하는 행동의 영역, 보호하는 행동의 영역, 결속하는 행동의 영역이다. 이 가운데서
① 무엇이 강하게 의지하는 행동의 영역인가?
열 가지 논의의 주제를 갖춘 좋은 도반(善友)을 의지하여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들었던 것을 분명히 하고, 의심을 해결하고, 견해를 곧게 하고, 마음에 청정한 믿음을 얻는다.
혹은 그 사람으로부터 배울 때 신심이 증장하고, 계와 들음과 보시와 통찰지가 증장한다.
이것을 일러 강하게 의지하는 행동의 영역이라 한다.
50.
② 무엇이 보호하는 행동의 영역인가?
“비구가 집 안에 들어가거나 길에 들어섰을 때 눈을 내리뜨고 쟁기의 길이만큼 내다보면서 단속하면서 간다.
코끼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쳐다보지도 않고, 전차병과 보병과 여자와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위로 올려다보지 않고, 아래로 내려다보지도 않고, 사방팔방을 바라보면서 가지 않는다. (Nd1. 474)”
이것을 일러 보호하는 행동의 영역이라 한다.
51.
③ 무엇이 결속하는 행동의 영역인가?
마음을 묶어 둘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자기의 고향동네(petaka vasaya)인 비구의 행동의 영역인가? 그것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S. v1478)”
이것을 일러 결속하는 행동의 영역이라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구족했고 … 갖추었고, 지녔다.
그러므로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춘 자라 부른다.
52.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무심코 범한 것과 해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증 아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는 습관을 가진 자가 되어,
‘학습계율을 받아서 실천한다’: 학습계율 가운데서 실전해야 할 것을 모두 바르게 받아 지녀 실천한다.
여기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한다라는 이런 [성전의 구절은] 개인에 관한 가르침인데 계목의 단속의 계를 설하신 것이며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등은 모두 그와 같이 실천하는 자에게 계가 원만해지는 그 닦는 방법을 보이기 위해 설하셨다고 알아야 한다.
1.4.2. 감각기능(根)의 단속에 관한 계
53. 그러나 그 다음에 ‘그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라는 등으로 설한 감각기능의 단속에 관한 계에서 그는이라는 것은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에 머무는 비구를 말한다.
‘그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보는] 도구이기 때문에 ‘눈’이라는 인습적인 표현(vohāra)을 얻었고 형상(色)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눈의 알음알이(眼識)로 형상을 보고, 그러나 옛 스승들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눈은 형상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citta)도 형상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눈이 없기 때문이다.
감각기능(dvāra)과 대상이 서로 접촉할 때에 눈의 감성(感性, pasāda)을 자신의 토대로 가지는 마음을 통해 본다.
이와 같은 것은 ‘그는 활로 쏜다’는 등의 경우에서처럼 부속물을 포함한 용법이다.
그러므로 [눈으로 형상을 본다는 말은] ‘눈의 알음알이로 형상을 본다’는 뜻이라고 알아야 한다.”
54. ‘그 표상(nimitta=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여자라든지 남자라든지 하는 표상이나 아름답다는 표상 등 오염원의 바탕이 되는 표상을 취하지 않는다. 단지 본 것에서만 그친다.
세세한 부분상(anubyañjana, 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손, 발, 미소, 웃음, 이야기, 앞으로 봄, 옆으로 봄 등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그런 형태는 오염원들을 더 상세하게 하기 때문에, 분명히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상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는 단지 있는 그대로 그것을 취한다.
55. 쩨띠야(Cetiya) 산에 머물던 마하띳사(Mahā-Tissa) 장로처럼. 장로는 쩨띠야 산으로부터 출발하여 아누라다뿌라(Anurādha-pura)로 탁발을 가고 있었다.
어떤 집안의 며느리가 자기 남편과 말다툼을 한 뒤 천녀(天女)처럼 단장을 하고 꾸민 뒤 그 시간에 아누라다뿌라에서 나와 친정집에 가던 도중 길에서 장로를 보고 음란한 마음이 생겨 활짝 웃었다.
장로는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쳐다보다가 그녀의 이빨에서 부정상(不淨想, asubha-saññā)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녀의 이빨을 보고 이전의 인식을 기억했나니
그 자리에 서서 장로는 아라한이 되었다.”
잠시 후 그녀를 뒤따라오던 남편도 장로를 보고,
‘존자시여, 혹시 어떤 여인을 못 보셨습니까’라고 여쭈었다.
장로는 그에게 대답했다.
“이곳을 지나간 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노라
단지 뼈 무더기가 이 신작로를 지나가는 것만 보았도다.”
56. 만약 그의 등의 뜻은 다음과 같다.
그것을 이유로, 즉 눈의 감각기능(眼根)을 단속하지 않은 것을 원인으로 만약 이 사람이 눈의 감각기능(眼根)이 제어되어있지 않으면 마음챙김이라는 덧문으로 눈의 문을 닫지 않은 채 머물 때 이 탐욕스러움 등의 법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결박할 것이다. 추격할 것이다.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그런 눈의 감각기능을 마음챙김의 덧문으로 닫기 위해 수행한다.
이와 같이 수행할 때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고 한다.
57. 그런데 여기서 눈의 감각기능 자체를 가지고 단속이나 단속하지 않음을 말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눈의 감성을 의지하여 마음챙김이나 혹은 잊어버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인 형상이 눈의 영역에 나타날 때 잠재의식(bhavaṅga)이 두번 일어난 뒤 멈추고 단지작용만하는 마노의 요소(意界)가 전향의 역할을 하면서 일어 났다가 멸한다.
그 다음에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보는 역할을 하고,
그 다음에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요소(意界)가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그 다음에 원인 없는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意識界)가 조사하는 역할을 하고,
그 다음에 원인없는 단지작용만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意識界)가 결정하는 역할을 하면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그 직후에 속행(速行,javana)이 일어 난다.
여기서 잠재의식의 시기나 전향등의 어느 시기에도 단속이나 단속하지 않음은 있지 않다. 그러나 속행의 순간에 만약 나쁜계행이나 잊어버림이나 알지 못함이나 참을성 없음이나 게으름이 일어나면 단속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이와 같이 할 때 비로소 눈의 감각기능(眼根)을 단속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
58.
왜 그런가?
이와 같이 되면 문도 보호되지 않고, 잠재의식도, 전향 등의 인식과정들도 보호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과 같은가?
만약 도시의 4대문을 단속하지 않으면 비록 도시 안의 집의 대문과 창고와 실내 등을 잘 단속했다 하더라도 도시 안의 모든 재물은 보호되지 않을 것이고,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시의 문으로 도적들이 들어와 제 멋대로 설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속행에서 나쁜 계행등이 일어날 때 그것이 단속되지 않으면 문도 보호되지 않고, 잠재의식이나 전향 등의 인식과정들도 보호 되지 않는다.
그러나 속행에서 계 등이 일어나면 문도 보호되고, 잠재 의식과 전향 등의 인식과정들도 보호 된다.
무엇과 같은가?
도시의 문을 단속 했을 때는 비록 어떤 집안등을 단속하지 않더라도 도시 안의 모든 재물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지켜지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도시의 문을 잠가버리면 도적들이 들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속행에서 계 등이 일어날때 문도 보호되고, 잠재의식과 전향 등의 인식과정들도 보호된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속행의 순간에 일어나지만 눈의 감각기능을 단속 한다고 설한 것이다.
59. 귀로 소리를 들음에 등에도 이와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
이와 같이 이것을 간략하게 감각기능(根)의 단속에 관한 계 라고 알아야 한다.
이것은 형상(色) 등에서 오염원을 수반하는 표상 등을 취하는 것을 피하는 특징을 가진다.
1.4.3. 생계의 청정에 관한 계
60. 감각기능의 단속 다음에 설한 생계의 청정에 관한 계에서 생계 때문에 제정한 여섯 가지 학습계율이란 구절은 다음과 같이 제정한 여섯 가지 학습계율을 뜻한다.
① ”생계를 원인으로 하고 생계를 이유로 하여 삿된 욕심을 가지고 욕심의 희생이 되어, 존재하지도 않고 사실이지도 않은 인간을 넘어선 높은 법을 [얻었노라] 지껄인다.”
이것은 바라이죄(波羅夷罪. pārājika)를 범한 것이다.
② “생계를 원인으로 하고 생계를 이유로 하여 중매를 한다.”
이것은 승잔죄(僧殘罪, saṅghādisesa)를범한것이다.
③ “생계를 원인으로 하고 생계를 이유로 하여‘당신의 절에 살고 있는 비구가 아라한이다’고 말한다.”
자기를 자칭해서 한 것인줄 듣는 이로 하여금 알게 한 사람의 경우 조죄(粗罪, thullaccaya)를 범한 것이다.
④ ”생계를 원인으로하고 생계를 이유로 하여 비구가 아프지 않으면서 자기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부탁하여 먹는다.”
이것은 단타죄(單墮罪, pācittiya)를 범한 것이다.
⑤ “생계를 원인으로 하고 생계를 이유로 하여 비구니가 아프지 않으면서 자기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부탁하여 먹는다.”
이것은회과죄(悔過罪, pāṭidesanīya)를 범한 것이다.
⑥ “생계를 원인으로 하고 생계를 이유로 하여 아프지 않으면서 자기를 위해 국과 밥을 부탁하여 먹는다. (Vin. 146)”
이것은 악작죄(惡作罪, dukkaṭa)를 범한 것이다.
이 여섯 가지 학습 계율을 가운데서,
61. 계략 등의 구절에 대한 성전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무엇이 ① 계략인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집착하고, 삿된 소원을 가지고, 그런 소원의 희생이 된 자가 필수품의 수용이라 부르는 것이나 혹은 간접적인 말로눈살을 찌푸림, 거만함, 계략, 기만, 위선행위, 혹은 위의를 꾸미고, 취하고, 허식을 부리는 것을 일러 계략이라 한다.”
62.
‘여기서 무엇이 ② 쓸데없는 말인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집착하고, 삿된 소원을 가지고, 그런 소원의 희생이 된 자가 남들에게 말을 건넴, 대답함, 장황하게 말함, 격찬함, 계속해서 격찬함 설득함, 계속해서 설득함, 제안함, 계속해서 제안함, 환심을 사는 말, 아첨하는 말, 반쯤 거짓말인 말, 귀여워함을 일러 쓸데없는 말이라 한다.”
63.
“여기서 무엇이 ③ 암시인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집착하고, 삿된 소원을 가지고, 그런 소원의 희생이 된 자가 남들에게 신호함, 신호를 보냄, 암시, 암시를 줌, 우회적인 말, 넌지시 말함을 일러 암시라 한다.”
64
“여기서 무엇이 ④ 비방인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집착하고, 삿된 소원을 가져, 그런 소원의 희생이 된 자가 남들에게 욕함, 얕봄 헐뜯음, 윽박지름, 계속해서 윽박지름, 비웃음, 계속해서 비웃음, 모욕함, 계속해서 모욕함, 소문을 퍼뜨림, 뒤에서 험담함을 일러 비방이라 한다.”
65.
“여기서 무엇이 ⑤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함인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집착하고, 삿된 소원을 가지고, 그런 소원의 희생이 된 자가 여기서 얻은 물건을 저곳으로 가지고, 그런 소원의 희생이된 자가 여기서 얻은 물건을 저곳으로 가져가고, 혹은 저곳에서 얻은 물건을 이곳으로 가져온다.
이와 같이 물건으로 물건을 구함 찾음, 자세히 살핌, 구하러 감, 찾으러 감, 찾아 돌아다님을 일러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 (Vbh. 352-53)”
66. 이 성전의 뜻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우선
(1) 계략의 해설에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집착하고란 이득과 공경과 명예에 마음이 쏠리고라는 뜻인데 ‘그것을 바라는’이라는 뜻이다.
‘삿된 소원을 가진’: 있지도 않은 공덕을 나타내기를 원하는,
‘그런 소원의 희생이 되어’: 소원에 습격당하여, 즉 정복되었다는 뜻이다.
『닛데사』(義釋, Ndl)에 필수품을 거절하는 것 간접적인 말로 하는 것, 위의에 바탕을 둔 것의 세 가지 계략을 언급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보이기 위해 바로 다음에서 필수품의 수용이라 부르는 것이거나 혹은이라고 시작했다.
67. 옥 등의 공양청을 받은 [비구가] 실제로는 그것을 원하지만 삿된 욕심 때문에 그것을 거절한다. 그 신도들이 자기에게 절대적인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는,
다시 그들이,
‘우리 스님은 참으로 욕심이 적으시구나. 아무것도 받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만약 작은 어떤 것이라도 받아주신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행운일까!’라고 생각하면서
고급스런 옷 등을 그에게 가져오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 하면서 그것을 받는다.
그 다음부터 이 위선은 그것을 수레에 가득 실어오도록 만드는 바, 이 위선이 필수품의 수용이라고 부르는 계략에 관한 사례라고 알아야 한다.
68. 『닛데사』(義釋)에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무엇이 필수품의 수용이라 부르는 계략에 관한 사례인가?
여기 신도들이 옷과 음식과 거처와 병을 치료하는 약품을 보시하기 위해 비구를 초청한다. 그는 삿된 소원을 가졌고, 그런 소원에 희생이 되어 옷과 음식과 거처와 병을 치료하는 약품을 원하지만 더 많이 원하기 때문에 옷을 거절하고 음식을 거절하고 거처를 거절하고 병을 치료하는 약품을 거절한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수행자에게 비싼 옷이 뭐 필요한가요?
수행자는 공동 묘지나 쓰레기 더미나 혹은 가게의 폐물로부터천조각을 모아 가사를 만들어 입는 것이 적합합니다.
수행자에게 고급스런 음식이 뭐 필요한가요?
수행자는 탁발을 가서 얻은한덩이의 음식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수행자에게 호사스런 집이 뭐 필요한가요?
수행자는 나무 아래나 노지에서 머무는 것이 적합합니다.
수행자에게 병을 치료하는 비싼 약품이 뭐 필요한가요?
수행자는 소의 오줌이나 혹은 오배자 열매로 약을 삼는 것이 적당합니다.’ 따라서 그는 낡은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고, 낡은 거처에서 머물고, 값싼 약을 사용한다.
신도들은 그를 이와 같이 여긴다.
‘이 수행자는 소욕하고, 지족하며, 은거하고, 대중과 더불어 교제하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두타행을 설 하신다.’라고,
그래서 옷과 … 약품을 마련하여 더욱 자주 초대한다.
그 [비구]는 이와 같이 말한다.
‘세 가지가 함께 존재 할때 신심 있는 선남자는 많은 복덕을 쌓습니다.
신심이 있을때 신심 있는 선남자는 많은 복덕을 쌓습니다.
보시할 물건이 있을 때 … 보시 받을 만한 사람이 있을때 신심 있는 선남자는 많은 복덕을쌓습니다.
당신들에게 신심이있고, 보시 할 물건이 있고, 보시를 받을 내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보시할 물건이 있고, 보시를 받을 내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보시를 받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복덕을 놓쳐 버릴 것입니다.
이것은 나에게는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당신들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받겠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그는 많은 옷을 받고, 많은 음식을 … 약품을 받는다.
이와 같은 눈살을 찌푸림, 거만함, 계략, 기만, 위선을‘필수품의 수용이라 부르는 계략에 관한 사례’라한다(Ndl. 221-25)” …
69. 삿된 소원을 가진 자가 인간을 넘어선 높은 법을 증득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말이나 갖가지 방법으로 부리는 위선을 ‘간접적인 말이나 부르는 계략에 관한 사례’라고 알아야 한다.
이와같이 설하셨다.
“무엇이 간접적인 말이나 부르는 계략에 관한 사례인가?
여기 삿된 소원을 가지고, 그런 소원에 희생되고, 존경받기를 원하는 어떤소원을 가지고, 그런 소원에 희생되고, 존경 받기를 원하는 어떤 자가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존경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서성자의 법에 관한 말을 한다.
이와 같은 발우와 철로 된 물컵, 물병, 여과기, 열쇠, 히러띠와 신발을 신고 다니는 수행자는 수행 의힘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은사 스님을 모시고 … 이런 스승을 모시고, 동일한 은사 스님을 모시고, 동일한 스승을 모시고, 그런 친구를 가졌고, 지기를 가졌고, 친한 사람을 가졌고, 동료를 가진 사문은 수행의 힘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절에서 머물고, 긴저택, 저택, 평평한 지붕을 가진 별장, 서굴, 작은 동굴, 오두막, 중각, 등대, 회관, 큰방, 집회소, 가건물인 천막, 나무아래에 머무는 사문이 수행의힘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혹은 아주 교활하고, 자주 눈살을 찌푸리고, 기이한 행위를 보이고, 뽐내고, 자기 입으로 자기 칭찬을 하여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ㅡ,
‘이 사문은 이와 같은 고요한 삼매의 경지(等ㆍ至)에 머묾을 얻었다’라고 심오하고, 비밀스럽고, 미묘하고, 은밀하고, 출세간적이고, 공함과 상응하는 얘기를 한다.
이와 같은 눈살을 찌푸림, 거만함, 계략, 기만, 위선을 간접적인 말이라 부르는 계략에 관한 사례라 한다. (Ndl. 226-27)”
70. 삿된 소원을 가진 자가 존경받기를 열망하여 위의를 꾸며서 짓는 위선이 위의에 바탕을 둔 계략에 관한 사례라고 알아야 한다.
이 처럼 말씀하셨다.
“무엇이 위의라 부르는 계략에 관한 사례인가?
여기 삿된 소원을 가지고, 그런 소원에 희생 되고, 존경 받기를 원하는 어떤 자가, ‘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존경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걷는 모습을 짓고, 서는 모습을 짓고, 앉는 모습을 짓고, 눕는 모습을 짓고, 고의로 [즉, 사람들이 나를아 라한이라고 알기를 바라면서] 걷고, 고의로 서고, 고의로 앉고, 고의로 눕는다.
대중 앞에서 참선을 한다.
이와 같은 위의를 꾸밈, 취함, 허식함 눈살을 찌푸림, 거만함, 계략, 기만, 위선행위를일러위의라 부르는 계략에 관한 사례라 한다. (Nbl. 225-26)”
71. (1) ‘필수품의 수용이라 부르는 것’(§61) : 필수품의 수용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라는 뜻이다.
간접적인 말로;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척하면서] 자신을 [지칭하는] 가까운 말로,
‘혹은 위의의’: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네 가지 위의의.
‘꾸밈’: 처음부터 꾸밈 혹은 신중하게 꾸밈이다.
‘취함’: 취하는 태도,
‘허식’: 잘 지음.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이 우러나오도록 짓는다는 뜻이다.
‘눈살을 찌푸림’: 중요하고 높은 지위를 보이는 방법으로 눈살을 찌푸리거나 얼굴을 찡그린다는 뜻이다. 눈살을 찌푸리는 습관을 가졌기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는 자(bhākuṭika)라 한다.
그런 자의 모습이 거만함(bhhākuṭika)이다.
‘계략’: 위선이다. 계략을 부림이 기만이다. 계략의 상태가 위선행위이다.
72.
(2) 쓸데없는 말의 해설에서(§62) 말을 건넴은,
절에 오는 사람들을 보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비구들을 초개하기 위해서 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먼저 가세요, 나는 나중에 발우를 들고 가겠습니다.”라고 이와 같이 먼저 말을 건넴이다.
혹은 자기를 알리면서,
‘나는 띳사라 합니다. 왕이 내게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이러한 대신이 나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이와 같이 자기를 소개하는 말이 말을 건넴이다.
대답함이란 질문을 받았을 때 앞서 설한 대로 말함이다.
장황하게 말함이란 장자들이 만족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기회를 주면서 칭찬하면서 말함이다.
격찬이란 그는 대지주이고, 대선주이고, 큰 시주자라고 이와 같이 사람들을 격찬하면서 말함이다.
계속해서 격찬함이란 다방면을 격찬하면서 말함이다.
73. 설득함이란,
‘청신사들이여, 이전에는 이맘때에 새로운 보시를 했는데 요즘은 왜 보시하지 않습니까?’라고 이와 같이 하여
‘존자시여 보시를 올리겠습니다.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라는 등으로 말할 때까지 점점 얽어맨다. 휘말려들게 한다는 뜻이다.
혹은 사탕수수를 손에 쥔 사람을 보고
‘청신사여, 어디서 오는 중입니까?’라고 묻는다.
‘존자시여, 사탕수수 밭에서 오는 중입니다.’
‘사탕수수가 달던가요?’
‘존자시여, 먹어봐야 알지요.’
’신도여, 비구는 사탕수수를 주시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뒤얽힌 사람의 뒤얽힌 말을 설득함이라 한다.
계속해서 설득함이란 다방면으로 계속해서 빗대어 말함이 계속해서 설득함이다.
74. 제안함이란,
‘이 가문은 오직 나만 압니다. 만약 여기 보시 할 것이 생기면 오직 나에게만 보시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지적하여 은근히 내비침이 제안함이다. 지적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기름 장수의 일화를 알아야 한다. 계속해서 제안함이란 다방면으로 계속해서 제안함이 계속해서 제안함이다.
75. 환심을 사는 말이란,
진리에 부합하는지, 법에 부합하는지 고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는 사랑스런 재잘거림이다.
아첨하는 말은 겸손하게 말함이다. 자기를 낮은 지위에 두는 태도다. 마치 녹두를 삶을 때 어떤 것은 삶기지 않고 나머지는삶기듯이 그 사람의 말속에 일부부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인 사람을 녹두죽을 [쑤는] 자라 한다. 그 상태를 녹두죽을 쑴, 즉 반쯤 거짓인 말이라 한다.
76. 귀여워함이란 귀여워하는 태도이다.
가정의 유모가 아이들을 귀여워하듯이 자기의 무릎이나 어깨에 올려 귀여워하는 것이다. 돌본다는 뜻이다. 그 귀여워하는 자의 행위가 귀여워 해줌이고, 그것의 상태가 귀여워함이다.
77.
(3) 암시의 해설에서 신호함이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필수품을 보시해야겠다는 인식이 생기도록 하는 몸과 말의 어떤 동작이다.
신호를 보냄이란 먹을 것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을 보고 ‘어떤 종류의 먹을 것을 얻었습니까?’라는 식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암시란 필수품을 시사하는 말이다.
암시를 줌이란 목동을 보고
‘이들의 젖소의 송아지인가 아니면 물소의 송아지인가’라고 묻고서
‘존자시여, 이들은 젖소의 송아지입니다’라고 대답할 때,
‘이들은 젖소의 송아지가 아닐거야. 만약 젖소의 송아지라면 스님들도 우유를 얻었을 테니까.’라는 식으로,
소년의 부모들로 하여금 알게 한 뒤 우유를 공양하게 하는 것 등이 암시를 주는 것이다.
우회적인 말이란 근처에 두고 말하는 것이다.
78. 어떤 가족의 부양으로 지내던 비구의 일화를 여기서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가족의 부양으로 지내던 비구가 음식이 먹고 싶어서 그 집에 들어가 앉았다.
그를 보고 공양 올릴 마음이 내키지 않은 부인이
‘쌀이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쌀을 꾸어오려는 척 이웃집으로 갔다.
비구는 광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다가 문 뒤의 모퉁이에 있는 사탕수수와 그릇 속의 당밀과 끈에 꿰어 소쿠리에 담아놓은 소금에 절인 마른 생선과 단지 속의 쌀과 항아리 속의 버터기름을 본 뒤 밖으로 나와 앉아있었다.
부인은 돌아와서는
‘쌀을 꾸어오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청신녀여, 오늘은 걸식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조짐을 일찍이 보았습니다’라고 비구가 말했다.
‘존자시여, 뭐라고 하셨나요?’
‘문 뒤의 모퉁이에 둔 사탕수수와 같은 뱀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때려야지 하고 쳐다보다가 그릇 속에 담긴 당밀 덩이와 같은 돌을 보았습니다.
뱀을 흙덩이로 쳤더니 소쿠리에 담긴 끈에 꿴 소금에 절인 마른 생선처럼 편 뱀의 목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흙덩이를 물려고 했을 때 단지에 담긴 쌀과 같은 이빨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화가 나자 마치 항아리 속의 버터기름과 같은 독이 섞인 침을 모았습니다.”
그녀는 ‘머리 깎은 자를 속일 수는 없구나’고 생각하면서,
사탕수수를 대접하고는 밥을 지어 버터기름과 당밀과 생선과 함께 모두 드렸다고 한다.
79. 이와 같이 근처에 두고 하는 말을 우회적인 말이라고 알아야 한다. 넌지시 말함이란 가능한 한 빙빙 둘러서 하는 말이다.
80.
(4) 비방의 해설에서 욕함이란 열 가지 욕의 사례들로 욕하는 것이다.
얕봄이란 경멸하여 말함이다.
헐뜯음이란 ‘그는 신심도 없고, 환희심도 없다’라는 식으로 허물을 들추어냄이다.
‘그는 신심도 없고, 환희심도 없다’라는 식으로 허물을 들추어냄이다.
윽박지름이란 그것을 여기서 말하지 말라고 입으로 타박을 줌이다.
계속해서 윽박지름이란 근거를 주고 원인을 주면서 다방면으로 계속해서 타박을 줌이다.
혹은 보시하지 않는 자를 보고,
’오 보시의 왕이여’라고 하는 것이 윽박지름이다.
‘보시의 대왕이라고 말하면서 전적으로 윽박지름이 계속해서 윽박지름이다.
비웃음이란 ‘씨앗을 까먹고 사는 이 사람의 삶도 삶이라 할 수 있는가?’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비웃음이란,
“모든 사람에게 ‘아무것도 없소’라는 말을 항상 보시하는 사람을 왜 보시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가?”라고 하는 지나친 조롱이다.
81. 모욕함이란 보시를 하지 않는 자라고 말하거나 욕을 하여 모욕함이다. 다방면으로 모욕함이 계속해서 모욕함이다.
나쁜 소문을 퍼뜨림이란,
‘이처럼 내가 소문을 퍼뜨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보시를 하겠지’라고 생가가면서 집집마다, 마을마다, 지역마다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뒤에서 험담함이란 면전에서는 달콤한 말을 하고 등 뒤에서는 욕을 함이다. 면
전에서 그들을 쳐다볼 수 없는 자가 그 사람들이 뒤로 돌아설 때 그 사람들의 등의 살점(maṁsa)을 물어뜯는 것(khādana)과 같다.
그러므로 이것을 뒤에서 험담함(maṁssikatā)이라고 한다.
마치 대나무 조각이 연고를 긁어내듯이 이것은 다른 사람의 덕을 깎아내리고 지우기 때문에,
혹은 향료를 갈아서 향을 추구하듯이 다른이의 덕을 갈아버리고 부순 뒤 이득을 뒤쫒기 때문에 비방이라 한다.
82.
(5)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함의 해설에서 추구함이란 뒤쫒음이다.
여기서 얻은 것이란 이 짐에서 얻은 것이다.
‘그곳’: 그 집에.
‘구함’: 원함.
‘찾음’: 뒤쫒음.
‘자세히 살핌’: 계속해서 뒤쫒음.
처음에 얻은 공양은 모두 이곳저곳의 가정의 아이들에게 주고 마지막으로 우유죽을 얻은 뒤 돌아간 비구의 일화를 여기서 이야기해야 한다.
구하러 감 등은 구함 등의 동의어일 뿐이다. 그러므로 구함이 구하러 감이고, 찾음이 찾으러 감이고, 자세히 살핌이 찾아 돌아다님이다.
이와 같이 구성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계략 등의 뜻이다.
83. 이제 이러한 삿된 법 등이라는 구절(§42)에서 등이란 단어는 다음과 같이 「범망경」(Brahmajāla Sutta,D1)에서 설한 여러 삿된 법들을 포함한다고 아야 한다.
“여기 어떤 훌륭한 사문과 바라문들이 신심으로 보시한 공양을 먹고 다음과 같은 하천한 재주를 부려 삿된 생계로 생계를 꾸린다.
즉, 손금보기, 점치기, 예언, 꿈 해몽, 관상, 쥐가 파먹은 옷의 구멍에 따라서 점치기, 불을 섬김, 주걱으로 헌공함 등이다. (D. i. 9)”
84. 이와 같이 삿된 생계는 생계 때문에 제정한 이 여섯 가지 학습계목을 범하고 또 계략, 쓸데없는 말, 암시, 비방,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함 등 이러한 삿된 법들으로 생긴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삿된 생계로부터 절제함이 생계의 청정에 관한 계다.
여기서 단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그것을 통해 그들이 살기 때문에 생계다.
무엇이 그것인가? 필수품을 찾는 노력이다.
청정이란 청정한 상태이다. 생계의(ājīvassa) 청정이(pārisuddhi) 생계청정이다.
1.4.4. 필수품에 관한 계 p171~
85. 그 다음에 설한 필수품에 관한 계(§42-④ 에서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란 수단과 방법으로 숙고한 뒤, 안 뒤, 반조한 뒤라는 뜻이다.
여기서 추위를 물리치고라는 식으로 설한 반조함이 바로 지혜롭게 숙고함이라고 알아야 한다.
86. 여기서 옷이란 내의 등 가운데 어떤 것이다.
‘수용한다’: 사용한다. 하의로 입거나 혹은 상의로 입는다.
‘오직’이란 것은 목적의 한계를 결정함에 있어 불가피함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수행자가 옷을 입는 목적은 오직 이 만큼이다. 그것은 곧 추위로부터 보호함 등이고 그 이상은 아니다.
‘추위’: 자신의 [사대의] 부조화나 밖의 온도의 변화로 일어난 어떤 추위.
‘물리치기 위해’: 방지하기 위해. 몸에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몸이 추위로 방해를 받으면 마음이 산란해져 지혜롭게 노력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추위를 물리치기 위해 옷을 입어야 한다’라고 허락하셨다.
이 방법은 모든 곳에 적용된다.
단지 여기서 더위란 불로 인한 더위이다. 숲 속의 불 등에서 생긴 더위라고 알아야 한다.
87.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와 닿는 것을’:
여기서 파리들은 물어뜯는 파리다. 눈 먼 파리다 불린다. 모기들은 그냥 모기들이다.
바람은 먼지 섞인 바람, 먼지 없는 바람 등의 동류이다.
햇빛은 태양의 햇빛이다.
파충류들은 뱀 등 기어가는 긴 생물들이다.
물려서 닿음, 이 두 가지로 그들과 닿음이 있다. 옷을 입고 앉아있을 때 이들이 그들 괴롭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서 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는다.
88. ‘오직’: 이 단어를 다시 말한 것은 불가피한 목적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다.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라는 것은 불가피한 목적이다. 다른 것들은 한 때의 목적이다.
부끄러운 부분이란 남녀의 은밀한 곳이다. 이 부분이 드러나면 양심이 방해를 받고 손상된다.
그것은 부끄러움을 흔들기(hiri-kopana) 때문에 부끄러운 부분(hirikopīna)이라 부른다.
‘hiri(부끄러움)-kopīna)(부분)-paṭicchādana(가림)-tta(위함)’라는 합성어는 hiri-kopīnassa(부끄러운 부분의) paṭicchādanatthaṁ(가림을 위함)이라고 풀이된다.
암송할 때는 ‘hirikopīnaṁ paṭicchādanatthaṁ(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함)’이라고 [끊어서 읽기도]한다.
89. ‘탁발음식’:
각종 먹을 것. 비구가 탁발을 행할 때(piṇḍo-lya)발우 속에 떨어지기 때문에(patitattā) 탁발음식(piṇḍapāta, 덩이가 떨어진 것)이라 부른다.
혹은 덩이들의(piṇḍānaṁ) 떨어짐(pāda)이 탁발음식(piṇḍapāta)이다. 각처에서 얻은 걸식의 모음, 수집이란 뜻이다,
‘오락을 위해서가 아니고’: 마을 청년들처럼 오락, 즉 재미삼아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취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권투 선수나 레스링 선수 등처럼 긍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힘의 긍지를 위해서, 남성의 긍지를 위해서도 아니며라는 뜻이다.
‘매력을 위해서도 아니고’: 궁녀나 기녀 등처럼 풍체의 매력을 위해서, 사지를 포동포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고라는 뜻이다.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며’: 연기자난 무용가 등처럼 예뻐지기 위해서, 밝은 피부와 안색을 위해서가 아니며라는 뜻이다.
90. 여기서 오락을 위해서가 아니고는 어리석음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을 버리기 위해서 설했고,
취함을 위해서도 아니며는 성냄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을 버리기 위해서, 매력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고는 탐욕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을 버리기 위해서 설했다.
오락을 위해서가 아니고 취함을 위해서도 아니며는 자기에 대한 족쇄가 생김을 방지하기 위함이고,
매력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고는 타인에 대한 족쇄가 생김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 네 가지로 지혜롭지 못한 도닦음과 쾌락의 탐닉에 몰두함 둘 다를 버리는 것을 설했다고 알아야 한다. 오직이란 뜻은 이미 설했다.
91.
‘이 몸을’: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존속하게 하기 위해.
‘유지하기 위해’: 삶의 과정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혹은 오랫동안 존속하기 위해.
마치 낡은 집의 주인이 그 집을 위하여 버팀목을 사용하고, 차주가 차측을 위해 기름칠을 하듯이,
그는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을 수용할 뿐, 오락과 취함과 매력과 장식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지탱이란 생명기능(命根)의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은 ‘이 몸의 생명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뜻도 설했음을 알아야 한다.
92.
‘해악을 쉬고’: 괴롭힌다는 뜻에서 배고픔이 해약이다.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탁발음식을 수용한다.
이는 마치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것과 같고, 추위와 더위 등을 중화시키는 것과 같다.
‘청정범행을 잘 지키기 위해서’: 일체 교법의 청정범행과 도와 청정범행을 돕기 위해서, 탁발음식을 수용하여서 생긴 체력을 의지하여 삼학(三學, sikkhattaya)에 몰두하여 존재의 사막을 건너기 위해 수행할 때 그는 청정범행을 돕기 위해 음식을 수용한다.
마치 사막을 건너고자 하는 자들이 자기 아들의 고기를 사용하고, 강을 건너고자하는 자들이 뎃목을 사용하고, 바다를 건너고자하는 이들이 배를 사용하듯이.
93. ‘그래서 나는 오래된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느낌을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마치 병든 자가 약을 사용하듯이 이 탁발음식을 수용하여 오래된 배고픈 느낌을 물리친다.
그리고 바라문들 가운데서,
손으로 잡아 일으켜야 할 때까지, 옷이 찢어질 때까지. 그 바닥에서 굴러야 할 때까지,
까마귀가 그의 입 속에 든 것을 쪼아 먹을 때까지,
먹은 것을 토해낼 때까지 먹는 어떤 무절제한 사람처럼,
‘결코 나는 무절제하게 먹어서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음식을 수용한다.
혹은 지금의 적당하지 않고 무절제한 먹음으로 인해 이전의 업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오래된 느낌이라 부른다.
적당하고 절제 있는 먹음으로써 그 조건이 소멸되게 하면서 그 오래된 느낌을 물리친다.
그리고 지금 탁발음식을 적절하지 않게 먹는 업을 쌓아서 미래에 일어나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이라 부른다.
적절하게 탁발음식을 먹어서 그것의 뿌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그 새로운 느낌을 일어나지 않게 한다고 그 뜻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 적절하게 먹는 것을 포함하여 자기의 학대의 몰두 함을 버림과 여법한 행복을 바리지 않음을 설했다고 알아야 한다.
94. ‘나는 건강할 것이고’:
절제 있게 먹기 때문에 생명기능(命根) 끊어진다거나 혹은 위의가 무너질 위험이 없다. 그러므로 필수품에 의지하여 생존하는 이 몸에 오랫동안 지속됨이라 부르는 건강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수용한다.
마치 만성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약을 수용하듯이.
비난받지 않고 편안하게 머물 것이다.
부적당하게 찾고, 받고, 먹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비난받지 않고, 절제 있게 먹기 때문에 편안하게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수용한다.
혹은 적당하지 않고 무절제하게 먹음으로 인한 지루함, 나태, 하품, 지자들의 비난 등의 허물이 없기 때문에 비난받지 않고, 적당하고 절제 있게 먹음으로 인해 체력이 생성되기 때문에 편안하게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수용한다.
혹은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먹는 것을 피하여 눕는 즐거움과 축 늘어지는 즐거움과 혼침의 즐거움을 버리기 때문에 비난받지 않고,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네 번이나 다섯 입의 분량을 덜 먹어서 네 가지 위의를 적절하게 닦기 때문에 편안하게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수용한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네 다섯 덩어리를 덜 먹고 물을 마셔 끝내야 한다.
부지런히 정진하는 비구가 편안히 머물기에 적당 하다.”
-Th1. 983.
이와 같이 하여 목적의 파악과 중도의 실천을 설했다고 알아야 한다.
95.
‘거처’:
침상(sena)과 좌구(āsana)이다. 절에서든 저택에서든 눕는 곳이 침상이다. 앉은 곳이 좌구다.
그것을 하나로 묶어 거 거처(senāsana)라고 부른다.
‘오직 기후의 변화에서 생기는 위험을 없애고, 한거(閑居)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위험하게 한다는 뜻에서 기후가 바로 기후의 위험이다.
기후의 위험을 없애기 위함이고, 한거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부적절한 기후는 몸의 괴로움으로 인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기 때문에 거처를 수용하여 이해야 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함이고 한거를 즐기기 위함이라는 뜻을 설했다.
물론 추위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등으로 기후의 위험을 피하는 것은 이미 설했다.
그러나 마치 옷을 수용함의 경우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는 것이 불가피한 목적이고 다른 것들은 한시적인 목적이다(§88)라고 설했듯이 여기서도 기후의 위험을 피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임을 두고 이 거처를 설했다고 알아야 한다.
혹은 이미 설한 종류의 기후가 바로 기후이다.
그러나 위험은 두 가지이다.
드러난 위험과 숨겨진 위험은 탐욕이나 성냄 등이다.
방어할 문이 없는 것과 부적당한 형상을 보는 것 등으로 인해 이런 [두 가지 위험]들이 고통을 초래 하지 않을 그런 거처를 이와 같이 알고 반조하면서 수용할 때 그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오직 기후의 변화에서 생기는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 거처를 수용 한다고 알아 야한다.
96.
‘환자를 치료하는 약품을:
여기서 병과 반대방향으로 간다는 뜻에서 치료(paccaya)이다. 정반대로 간다는 뜻이다.
적합한 치료약과 동의어이다. 의사(bhisakka)의 일이고, 그에 의해 허가되었기 때문에 약(bhesajja)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약(gilāna-paccaya-bhesajja)이라는 합성어는 ‘환자(gilāna)를 치료하는 것(paccaya)이 바로 약(bhesajja)이다’라고 풀이된다.
의사가 환자에게 허락한 기름, 꿀, 버터기름 등 어떤 것을 뜻한다.
‘품’(品, parikkhāra, 資具):
"일곱 개의 도시의 성으로 그것은 잘 보호되었다. (A. iv. 106)"라는 등에서 장비(parivāra)를 설했다.
"이 수레는 계의 장엄이 있고, 禪의 축이 있고, 정진의 바퀴가 있다. (S. v. 6)"라는 등에서는 장엄(alaṅkāra)을 설했다.
"출가자는삶을 살아갈 자구를 구해야 한다(Mi. 107)"라는 등에서는 보조적인 품목(sambhāra)을 설했다.
여기서는 장비와 보조적인 품목이 적용된다. 왜냐하면 환자를 치료하는 약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장비이다. 이것은 삶을 파괴할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여 보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보조적인 품목이다. 생명을 연장할 기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보조적인 품목이다. 생명을 연장할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품(品, parikkhāra, 資具)’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환자를 치료하는 약품(gilānapaccayabhesajja-parikkhāra)’이라는 합성어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인 약과 품(자구)으로 풀이 된다. 환자를 치료하는 그런 약품을 [수용한다].
이것은 의사가 허가 했고, 환자에게 적당한 기름, 꿀, 버터기름등 삶의필수품의 어떤 것을 설한 것이다.
97.
‘일어난’: 생겼고, 실재하고, 생산되었고,
‘고통스러운’: 여기서 고통은 요소들(四大)의 부조화이다. 그것으로 인해 생긴 문둥병, 종양, 종기 등이다. 고통에서 생겼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느낌들을’: 고통스런 느낌,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느낌인데 그런 고통스런 느낌들을 말한다.
‘오직 병 없음(abyābajjha)을 최상으로 하기 위해서’: 오직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고통을 완전히 없앨 때까지 [약품을 수용한다]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필수품을 수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이 필수품에 관한 계를 간략하게 알아야 한다. 문자 적인 뜻으로는 여기서 옷 등 은중생들이 그것을 의지하고(paṭicca) 사용하면서 가고(ayanti), 움직이고, 나아가기 때문에 필수품(paccaya)이라 부른다. 그 필수품들에 관한 것이 필수품에 관한 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