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자량론 제2권
[정진바라밀]
【문】
이미 인바라밀(忍波羅蜜)을 설명하였다.
이제는 마땅히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을 설명해야 한다.
【답】
용건(勇健)한 체상(體相), 용건한 작업 등을 정진으로 삼는다. 그 가운데 모든 보살들은 초발심으로부터 구경(究竟)의 깨달음의 도량에 도달하기까지 일체의 보리분[菩提分]에 상응하는 몸[身]ㆍ입[口]ㆍ마음[意]의 선한 업을 건립하니, 이것을 정진바라밀이라 한다.
또 모든 범부 및 학(學)ㆍ무학(無學)의 성문이나 독각 등과 더불어 정진을 함께하지 않으면, 이를 정진바라밀이라고 한다.
정진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몸ㆍ입ㆍ마음이다.
저 몸과 입의 정진은 마음으로 정진하는 것을 앞선 행[前行]으로 삼는다.
요약하여 말하면 세 가지의 복된 일[福事]이 있으니,
몸과 복된 일이 상응하면 이것은 몸의 정진[身精進]이요,
입과 상응하면 이것은 입의 정진[口精進]이며,
마음과 상응하면 이것은 마음의 정진[意精進]이다.
또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혹은 타인을 이익 되게 하는 선(善) 중에서 몸으로 용건하게 행하면[身健行] 이것은 몸의 정진이요,
입으로 용건하게 행하면 이것은 입의 정진이며,
마음으로 용건하게 행하면 이것은 마음의 정진이다.
다시 서른두 가지 보살의 정진이 있다.
이른바 삼보(三寶)의 종자를 단절하지 않는 정진,
한량없는 중생을 성숙시키는 정진,
한량없는 유전(流轉)을 거두어들이는 정진,
한량없이 공양하여 급시하는 정진,
한량없는 선근을 쌓는 정진,
한량없는 정진을 낳는 정진,
훌륭한 말씀으로 중생을 환희하게 하는 정진,
일체의 중생을 안온하게 하는 정진,
모든 중생이 짓는 바를 따르는 정진,
모든 중생 속에서 베풀어 버림을 행하는 정진,
모든 계학(戒學)을 받아들이는 정진,
인욕하는 힘을 가지고 조유(調柔)하는 정진,
모든 선나(禪那)ㆍ삼마제(三摩提)ㆍ삼마발제(三摩鉢帝)를 낳는 정진,
집착 없는 지혜를 만족하는 정진,
네 가지 범행[四梵行]을 성취하는 정진,
다섯 가지 신통[五神通]을 출생하는 정진,
일체 불국토의 공덕으로써 자신의 불국토를 성립하는 정진,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는 정진,
여법하게 모든 외도의 논사[外論師]를 항복시키는 정진,
열 가지 힘[十力]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無畏] 등의 부처님 법을 만족시키는 정진,
몸ㆍ입ㆍ마음을 장엄하는 정진,
모든 존재를 득도(得度)시키기 위해 행하는 정진,
모든 번뇌를 없애는 정진,
아직 득도하지 못한 자를 득도시키는 정진,
아직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시키고,
아직 소식(穌息)하지 못한 자를 소식시키고 아직 열반하지 못한 자를 열반시키는 정진,
백 가지 복된 모습의 자량을 모아들이는 정진,
일체의 불법을 거두어들이는 정진, 한없는 불국토에 유희하는 정진,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보는 정진을 말하니,
이 모든 정진은 큰 자비에서 나온다.
이는 몸ㆍ입ㆍ마음을 여의기 때문이고,
취하지 않고 버리지 않음에 머물기 때문이고,
거만하지 않고 비하하지 않음을 얻기 때문이고,
생겨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음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서른두 가지 법을 구족하면, 마땅히 정진바라밀을 얻어 청정하고 만족하게 된다.
여기에 또한 성자의 게송이 있다.
그 모든 보시 등의 바라밀은
정진의 힘으로 성취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정진을 근본으로 삼아서
모든 보살들은 부처님 몸을 얻는다.
정진의 방편으로 보리를 구하여
나는 정진의 수승한 방편을 염(念)하는데
그 정진을 버리고 나면
방편으로 능작(能作)과 소작(所作)은 불가능하다.
만약 오직 홀로 한 가지 방편이 있다면
채찍 없이도 부지런히 사업(事業)을 짓는 것이니
짓는 것이 모두 정진으로 짓는 것이라서
그러므로 정진은 수승한 방편이다.
마음에 교묘한 힘이 있는 것을 방편으로 삼는데
이 마음은 정진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므로 모든 짓는 바가 있는 일은
모두 정진을 근본으로 삼는다.
모든 논[諸論] 및 공교[工巧] 등은
정진을 구족하므로 피안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모든 짓는 것 중에서
정진이 최고의 성취자가 된다.
모든 자재함과 재물을
정진하는 사람은 능히 획득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모든 안락한 사업은
모두 정진으로써 획득의 원인[得因]을 삼는다.
수승한 정진이 존재하므로
부처님은 성문에게 상수(上首)가 되나니,
그러므로 이 정진의 힘이
최고로 수승한 원인이지 나머지 행은 아니다.
수승하고 우수하게 정진하는 용건자(勇健者)는
지와 지[地地] 중에서 비록 똑같은 지(地)라도
그는 항상 가장 수승한 것을 얻으니
그러므로 항상 정진을 일으켜야 한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 머무르실 때
정진으로 보리를 깨달으셨다.
그러므로 정진이 근본이 되어서
부처님 몸을 얻는 원인이 됨은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선나바라밀]
【문】
이미 대략 정진바라밀을 해설하였다.
이제는 마땅히 선나바라밀(禪那波羅蜜)을 설명해야 한다.
【답】
선나(禪那)에는 네 가지 선나가 있다.
소위 감각[覺]이 있고 관찰[觀]이 있는 이생(離生)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에 유희하고,
감각도 없고 관찰도 없는 정생(定生)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제2선(第二禪)에 유희하고,
기쁨을 여의고 사(捨)를 행하며 지혜를 염하여 즐거움을 감수해서 제3선(第三禪)에 유희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소멸하여 염(念)을 버린 청정으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서 제4선(第四禪)에 유희한다.
이 네 가지 선나[四禪] 중에서 성문지(聲聞地)와 독각지(獨覺地)를 증득하는 것을 여의고 불지(佛地)로 회향하고 나서야 선나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보살에게는 열여섯 가지의 선나바라밀이 있으나 모든 성문과 독각에게는 있지 않다.
무엇이 열여섯 가지인가?
이른바 불취실선(不取實禪)ㆍ불착미선(不着味禪)ㆍ대비반연선(大悲攀緣禪)ㆍ삼마지회전선(三摩地廻轉禪)ㆍ기작신통선(起作神通禪)ㆍ심감능선(心堪能禪)ㆍ제삼마발제선(諸三摩鉢帝禪)ㆍ적정부적정선(寂靜復寂靜禪)ㆍ불가동선(不可動禪)ㆍ이악대선(離惡對禪)ㆍ입지혜선(入智慧禪)ㆍ수중생심행선(隨衆生心行禪)ㆍ삼보종부단선(三寶種不斷禪)ㆍ불퇴타선(不退墮禪)ㆍ일체법자재선(一切法自在禪)ㆍ파산선(破散禪)이다.
이와 같은 열여섯 가지가 선나바라밀이다.
불취실선이란 여래를 만족시키기 위한 선이다.
불착미선이란 스스로의 즐거움을 탐내지 않는 것이다.
대비반연선이란 모든 중생의 번뇌를 단절하는 방편을 시현하는 것이다.
삼마지회전선이란 욕계를 반연하여 인연으로 삼는 것이다.
기작신통선이란 일체중생의 마음의 행로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심감능선이란 마음이 자재한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다.
제삼마발제선이란 수승하게 모든 색계와 무색계를 벗어난 것이다.
적정부적정선이란 수승하게 모든 성문과 독각의 삼마발제를 벗어난 것이다.
불가동선이란 뒤의 한계[後邊]를 구경(究竟)한 것이다.
이악대선이란 모든 훈습이 상속하는 것을 없앤 것이다.
입지혜선이란 모든 세간을 벗어난 것이다.
수중생심행선이란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삼보종부단선이란 여래의 선(禪)은 다함이 없는 것이다.
불퇴타선이란 항상 선정에 들어간 것이다.
일체법자재선이란 모든 업(業)을 만족시킨 것이다.
[열여섯 번째의 파산선은 본래 빠져있어서 해석하지 않는다.]
또 염정(念淨)ㆍ혜정(慧淨)ㆍ취정(趣淨)ㆍ참정(慚淨)ㆍ지심희망정(持心希望淨)ㆍ회향보리정(廻向菩提淨)ㆍ근정(根淨)ㆍ무의정(無依淨)ㆍ불취실정(不取實淨)ㆍ기작신통정(起作神通淨)ㆍ심감능정(心堪能淨)ㆍ신원리정(身遠離淨)ㆍ내적정정(內寂靜淨)ㆍ외불행정(外不行淨)ㆍ유소득견정(有所得見淨)ㆍ무중생무명무인정(無衆生無命無人淨)ㆍ삼계중부주정(三界中不住淨)ㆍ각분문정(覺分門淨)ㆍ이예광명정(離翳光明淨)ㆍ입지혜정(入智慧淨)ㆍ인과불상위정(因果不相違淨)ㆍ업사유인정(業思惟忍淨)ㆍ개포장상지정(開胞藏相智淨)ㆍ섭방편전교정(攝方便前巧淨)ㆍ보리장장애정(菩提場障礙淨)ㆍ불착성문독각정(不着聲聞獨覺淨)ㆍ안주선나출생광명정(安住禪那出生光明淨)ㆍ불삼마지불산란정(佛三摩地不散亂淨)ㆍ관자심행정(觀自心行淨)ㆍ지제중생각각근여응설법정(知諸衆生各各根如應說法淨)이 있는데[본래 두 가지 정(淨)이 빠져있음],
저 열여섯 가지 선나바라밀은 이 서른두 가지 정(淨)을 말미암기 때문에 청정하게 되어 여래지(如來地)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 수로가(輸盧迦: 게송)가 있다.
만약 저 열여섯 가지와
서른두 가지 정(淨)이
선도(禪度; 선바라밀)와 상응하면
이것이 보리를 구하는 것이다.
선나(禪那)의 피안에 도달하여야
선나의 업을 잘 아나니,
지혜로운 자는 다섯 가지 신통을
낳아서 퇴보하지 않는다.
모든 색(色)은 다함이 없으니
그 참다운 성품에 통달하고
또한 수승한 천안(天眼)으로
널리 모든 색상(色相)을 본다.
비록 청정한 천이(天耳)로써
멀리까지 모든 음성을 듣는다 해도
지혜로운 자는 소리는 언설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통달하여 안다.
모든 중생의 마음은
그 각각의 모습을 관찰하면
모든 마음은 마치 환상과 같다고
그 자성을 깨달아 안다.
중생이 숙세(宿世)에 머물던 곳을
여실하게 생각하여 알며
모든 법은 과거가 없다고
또한 그 자성을 안다.
찾아가서 함께 국토를 알고
국토가 장엄을 구족한 것을 보아도
국토의 모습은 허공과 같다고
그 참다운 성품을 깨달아 안다.
중생의 모든 번뇌는
모두 어지러운 마음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수승하게 지혜로운 자는
널리 모든 선정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