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 파취착불괴가명론 상권
4. 세 가지 질문
“마땅히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등의 말에서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가?’라는 말은 어떤 모습의 과(果)에 대하여 마음이 머물기를 서원(誓願)하고 욕구(欲求)해야 하는가라는 말이며,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라는 것은 마땅히 어떤 행(行)을 닦아서 그 과를 얻어야 하는가라는 말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라는 것은 어떤 등류의 마음을 항복받아서 그 마음의 근원을 청정하게 하는가에 대한 말이다.
모든 법은 먼저 원인이 있음으로 해서 뒤에 결과가 오는 것인데,
어째서 결과에 대하여 먼저 설하시고 결과의 덕을 먼저 찬미하셨는가?
저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구하고 그 원인을 닦게 하려고 한 까닭이다.
‘자세히 들으라’고 한 것은 마음의 전일(專一)한 경지를 말한 것이고,
‘선(善)’이란 여여한 이치와 뜻에 대해 믿음을 내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며,
‘사념(思念)’이란 공경하여 지니고 잊지 않는 것이다.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는 말 등은 그 순서대로 이와 같은 과(果)에 그 마음을 머물게 해 이와 같은 행(行)을 닦아 저 결과를 증득하고 이와 같이 마음을 항복받으면 곧 원인이 청정해진다는 말이다.
[보살과의 네 가지 이익]
여기에서는 보살과(菩薩果)의 네 가지 이익이 서로 호응하고 마음을 나타내 보였는데,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한계가 없는[無邊] 것이며,
둘째는 최상(最上)이며,
셋째는 사랑해 거두어들임이며,
넷째는 바른 지혜이다.
[한계가 없는 마음]
무엇이 한계가 없는 마음인가?
경에 이르기를
“존재하고 있는 모든 중생의 종류”라고 한 이와 같은 등의 중생의 종류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니 호흡하는 유정중생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알에서 생겨나는 여러 새의 종류와 태(胎)에서 생겨나는 사람 등의 여러 종류와 습기[濕]에서 생겨나는 여러 곤충 등과 변화[化]로 생겨나는 여러 천상[諸天] 등이니, 이와 같은 네 가지가 각각 많은 종족의 종류를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중생들은 어떤 곳에서 살고 있으며 어떤 형태의 몸을 가지고 있는가?
경에 이르기를
“색(色)이 있는 것과 또한 색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색이 있다’는 것은 형상이 있는 것이고,
‘색이 없다’는 것은 형상이 없는 것이다.
3계의 중생들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형상이 있다’는 것은 욕계(欲界)의 스무 가지 의지처(依止處)와 색계(色界)의 열일곱 가지 의지처이며,
‘형상이 없다’는 것은 무색계(無色界)를 말한다.
여기엔 또 몇 가지가 있는가?
경에 이르기를
“생각이 있는 것과 생각이 없는 것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생각이 있는 것’이란 공무변처(空無邊處)와 식무변처(識無邊處)이니, 이들은 공이라는 생각과 의식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생각이 없는 것’이라는 것은 무소유처(無所有處)를 말하는 것이니 조그만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라는 것은 유정천[有頂]에 소속된 것을 말한다.
중생의 무리가 이와 같이 많은데 이 모두를 내가 다 거두어들인다는 것이다.
[최상의 마음]
어떤 것이 최상의 마음인가?
경에 이르기를
“내가 모든 중생들을 다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멸도(滅度)케 하리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무여열반’이란 무슨 뜻인가?
모든 법은 생겨남이 없는 성품이라서 공하다는 이치를 깨달으면 온갖 근심이 있는 모든 쌓임[諸蘊]이 영원히 사라진다.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끝없이 희유(希有)한 공덕이 있게 되고 청정한 색상(色相)으로 원만하게 장엄하며, 모든 중생들에게 광대(廣大)한 이익을 주는 미묘한 업(業)이 다함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거두어들이는 마음]
어떤 것이 사랑으로 거두어들이는 마음인가?
경에 이르기를
“이와 같이 한량없는 중생들을 멸도하게 하였으나 실제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이 뜻은 무엇인가?
보살은 자애(慈愛)로워서 모든 중생들을 자기 몸과 똑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중생의 멸도는 곧 내가 멸도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멸도된 것이 아니다’라고 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랑으로 거두어들인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제일의로써 초지(初地) 등에 들어간 모든 보살들은 중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것은 중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예류인(預流人)이 몸이라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저 보살이 어떤 중생을 걸고 내가 제도시킬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바른 지혜의 마음]
어떤 것이 바른 지혜의 마음인가?
경에 이르기를
“만약 중생이라는 생각이 있으면 보살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이른바 범부(凡夫)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틀림없이 제일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여 나라는 생각ㆍ중생이라는 생각ㆍ목숨[命想]이라는 생각ㆍ취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만약 진실한 제일의를 증득한 사람이라면 중생이라는 등의 생각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가운데 반야(般若)의 힘으로써 제일의를 증득하는 것은 모든 중생들이 할 수 없는 일이므로,
보살은 대비(大悲)의 마음 때문에 늘 중생들을 쫓아다니며 나고 죽음이 있는 세계에 살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 권유하며 제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마음으로 중생의 과업을 이롭게 하므로 마땅히 속제(俗諦)로써 그 마음을 머물게 한다.
이 네 가지 마음이 원만한 결과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다음에 나타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