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밀해탈경 제1권
4. 성자선청정혜보살문품(聖者善淸淨慧菩薩問品), 제일의제(第一義諦)
그때 성자 선청정혜보살마하살이 같고 다른 모습을 초과하는 제일의에 의지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희유하고 묘한 법인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잘 말씀하시옵니다.
미세하고 극히 미세하며 깊고 깊은 뜻의 같고 다른 모습을 초과하였으니, 이른바 증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하니 지난 세상 어떤 곳에서 신행지(信行地)에 머무른 모든 보살들이 한곳에 모여 앉아서
‘유위(有爲)의 행이 제일의제와 같은가[一] 다른가[異]’ 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보살들은 ‘유위의 행상이 제일의와 다르다’ 하며,
다시 어떤 보살들은 ‘유위의 행이 제일의와 다를 것이 없다’ 하여 주장하기를,
‘유위의 행은 제일의와 다르지 않다’ 하며,
다시 어떤 보살들은 의심을 내고 이의(異義)를 일으키되
‘이 모든 보살들 가운데 어떤 것이 진실한 말이며, 어떤 것이 허망한 말이며, 어떤 것이 바른 생각으로 수행하는 법이며, 어떤 것이 삿된 생각으로 수행하는 법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저 보살들을 보고
‘이 모든 선남자들은 모두 우치하여 밝은 지혜가 없으므로 착한 법을 알지 못하고, 삿된 생각에 빠졌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유위의 행상은 미세하여 상이 없고 같고 다른 상을 초과한 제일의상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선청정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청정혜여, 그대의 말이 옳다.
저 모든 선남자들은 모두 어리석어서 지혜를 잘 밝히지 못하여 바른 법을 알지 못하고 삿된 구덩이에 빠졌다.
왜냐하면 미세한 행상이 같고 다른 모습을 초과한 제일의상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선청정혜여, 만일 유위의 행상이 제일의상과 다르지 않다면,
일체 어리석은 이와 모든 범부들도 모두 제일의제를 보아야 할 것이며,
범부의 몸에서 또한 위없이 청정한 열반의 낙(樂)을 얻어야 할 것이며,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할 것이다.
선청정혜여, 만일 유위의 행상이 제일의와 다르지 않다면, 제일의제를 볼 때에 유위의 행상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일 유위의 행상이 상(相)이 있는 것이라면 상은 속박되는 것이어서 응당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만일 실제(實諦)가 형상의 속박[相縛]을 여의지 않은 줄 알면 응당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며, 또한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속박을 여의지 못한 까닭에 위없고 청정한 열반의 낙(樂)을 얻지 못할 것이며,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얻지 못할 것이다.
선청정혜여,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범부들은 참된 진리를 보지 못하며, 또한 범부의 몸 그대로 위없고 청정한 열반도 얻지 못하며,
또한 범부의 몸 그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를 본 사람은 유위와 무위의 행상이 같은가 다른가를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유위의 행상과 제일의제의 모습에 같고 다른 뜻을 보나, 같고 다른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청정혜여, 모든 보살이 유위의 행상과 제일의제의 상(相)이 같거나 다르다고 한다면,
그 보살들은 바른 생각이 아니요 삿된 생각이다.
또 선청정혜여, 만일 유위의 행상과 제일의제의 행상이 다르지 않으면 유위가 미혹[染]에 빠졌을 때에 제일의제의 모습도 미혹에 떨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
선청정혜여, 만일 유위의 행상이 제일의상을 떠나서 있다면 모든 유위의 행상은 제일의제와 같지 않을 것이다.
선청정혜여, 제일의제는 모든 번뇌의 미혹에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유위의 행상과 제일의제는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청정혜여, 그대는 유위의 행상과 제일의제가 같은가 다른가 하지 말라.
또 선청정혜여, 유위의 행상과 제일의제의 모습이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면,
제일의제가 유위의 모든 행(行)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이렇듯 모든 유위의 행상은 제일의제와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위는 제일의제와 다르다.
만일 다르지 않다면 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유위의 행상을 보거나 듣고 깨달으면 다시 위없이 수승한 법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선청정혜여, 만일 유위의 모습이 제일의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면 유위의 모든 현상도 응당 아(我)가 없고 자체의 모습이 없는 제일의제의 모습이라야 할 것이다.
선청정혜여, 다시 허물이 있으니, 이른바
한때에 차별되고 다른 모습에 이것은 물든 모습, 이것은 깨끗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청정혜여, 제일의상이 유위의 행상과 다르되 유위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여실히 수행하는 이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데서 다시 훌륭한 법을 구하니, 확실히 유위의 모습을 아는 까닭에 아(我)가 없는 제일의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한때에 더럽고 깨끗한 두 형상의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유위의 모습과 제일의제의 모습을 모두 여의어야 ‘같지 않다’, ‘다르지 않다’ 하는 뜻도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선청정혜여, 저 보살들이 말하되
‘유위의 모습과 제일의 모습이 같지 않다, 다르지 않다’고 하면,
그 보살들은 잘 말하는 이라 할 수 없다.
선청정혜여, 그대는 알라. 그 보살들은 바른 생각으로 여실히 수행한다 할 수 없으니, 이는 삿된 생각이다.
선청정혜여, 비유하자면 구슬과 흰 것은 같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다르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금과 노란 빛, 공후(箜篌)의 묘한 소리, 침수향(沈水香)의 맛, 필발(畢茇)의 매운맛, 가리륵(訶梨勒)의 쓴맛, 감자(甘遮)의 단맛, 도라(兜羅)의 부드러움, 연유[酥] 나아가 제호(醍醐)의 맛들은 같다고도 말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말할 수 없다.
선청정혜여, 이와 같이 일체 유위의 본체와 덧없는 현상은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으며,
모든 유루(有漏)에 있는 괴로운 모습은 같다 고도 할 수 없으며 다르다고도 할 수 없고,
일체 법의 아(我) 없는 모습은 같다고도 할 수 없으며 다르다고도 할 수 없으며,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고요하지 못한 모습은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
선청정혜여, 이와 같이 유위의 행상과 제일의제의 모습은 같다고도 할 수 없으며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
선청정혜여, 나는 이와 같이 가늘고 더욱 가늘며, 깊고 더욱 깊어서, 알기 어렵고 더욱 알기 어려워서 같거나 다른 모습을 초월한 제일의제를 깨달았다.
깨닫고 나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말하고 보여 주며 열어 보여 주고 드러내 보여 주며 건립한다.”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유위의 세계와 참된 진리는
같고 다른 모습을 벗어났으니
같거나 다르다고 분별하면
어리석은 사람이요 바른 생각 아니네.
그 사람은 형상에 속박되었거나
또는 번뇌에 얽매였으니
비바사나(毘婆奢那)와 사마타(奢摩陀)를
닦아야만 벗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