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문수사리현보장경 상권
[문수사리의 설법]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내가 문수사리에게 강설할 법을 듣고자 합니까?
그렇다면 이제 선설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일찍이 지혜를 들어서 압니다.
옛날 문수사리는 무수한 백천 부처님 앞에서 설법하여 여러 큰 제자들로 하여금 잠잠히 말이 없게 하였습니다.
또 기억하건대 지난 때 내가 문수사리와 함께 나가서 동쪽으로 여러 부처님 국토를 유행하면서 무수한 백천 불국토를 지났는데, 그 세계의 명칭이 희신정(喜信淨)이고,
그 부처님의 명호가 광영(光英)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이신데, 지금 현재도 설법하시며,
그의 큰 제자로서 성지등명(聖智燈明)이란 이가 있는 지혜가 가장 높습니다.
마침 여래께서 한가로이 앉아 계심을 보고
그 성지등명 제자가 곧 몸을 솟구쳐 제7의 범천(梵天)에 가서 그 음성으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고하여 일체를 위해 설법하였는데,
내가 문수사리와 함께 저 국토에 도착하니, 그 무수한 백천 보살과 10만의 하늘들이 다 문수사리를 시종하여 설법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곧 광음천(光音天)에 올라가 큰 소리로 외치니, 그 소리가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하였고,
마왕(魔王)의 궁전을 흔들고 모든 나쁜 갈래[惡道]를 소멸시켜 즐거운 신심을 얻게 함으로써
이에 성지등명 큰 제자도 저 큰 음성을 듣고 곧 크게 두려움을 느껴 땅에 쓰러져 스스로가 어쩔 줄 몰라 했으니,
마치 수람(隨藍)의 큰 바람이 일어날 때에 모든 것이 다 무너져 스스로 견딜 수 없음과 같았습니다.
성지등명은 이때 너무나 겁이 나서 옷과 털이 곧추 선 채 전에 없었던 일이라 생각하고서
광영여래의 처소에 나아가 세존께 아뢰었습니다.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여, 누가 비구의 형상을 하고서 큰 음성을 내므로,
제가 그 음성을 듣고 겁이 나서 스스로 어쩔 줄 몰라 곧 땅에 쓰러지기를 마치 수람의 바람이 일어날 때에 부수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는 것이 없음과 같았습니다.’
그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문수사리란 보살이 있으니, 그가 퇴전(退轉)하지 않는 지위를 얻어 신통의 성스러운 즐거움과 밝은 지혜의 힘으로 이 국토에 이르러 여래를 보고서 머리 조아려 예배함과 동시에 모든 이치를 강문(講問)하려고 한다.
아까 광음천에서 형상을 비추고 큰 음성을 내어 널리 삼천대천세계에 들리게 하였고,
마왕의 궁전을 진동하고 나쁜 갈래를 소멸시켜 다 즐겁게 하였다.’
그 제자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문수사리를 뵙고자 합니다.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여, 이러한 정사(正士)를 보게 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그때 광영부처님께서 곧 감응(感應)을 일으켜 문수사리를 청하자,
이에 문수사리는 여러 보살과 하늘들과 함께 허공으로부터 홀연히 내려와 광영 여래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는 각각 신통의 힘으로 법좌(法座)를 조화로 만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광영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 세계에 왔으며, 무엇을 관찰하고 채택하려 하는가?’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대답했습니다.
‘세존을 뵙고 머리 조아려 예경을 이룬 다음 법에 대한 일을 묻고자 이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여래를 관찰하여야 청정한 견(見)이 되며,
어떻게 여래께 예배할 것이며,
어떻게 여래께 문안할 것이며,
어떻게 여래께 강문(講問)할 것이며,
어떻게 여래의 말씀을 받아 들을 것입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했습니다.
‘모든 법의 고요함이 바로 청정한 것임을 관찰하여 여래를 보는 것이 청정한 관(觀)이 되니,
몸도 없고 뜻도 없고 마음도 없고 예배도 없고 공경도 없고
갑작스러움도 없고 거칢도 없고 무너뜨림도 없고 머묾도 없고
항상 얻을 수도 없고 공으로부터 나와서 마음과 행이 없고 언제나 고요한지라,
이와 같이 관함이 여래를 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我]가 없이 평등한 빛을 조작하지 않으며,
평등을 평등이라 하지도 않고 삿됨을 삿됨이라 하지도 않으면서
한결같이 평등하여 모든 불세존의 법신(法身)이 함께 자기 몸이 되고,
법신에 들어가는 것을 보되 역시 보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멀거나 가까운 것도 없으니,
이러함이 여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고요히 문안하되 아무런 생각과 생각하는 것이 없어서
법을 있다고 보지도 않고 고요한 법이 없다고 보지도 않아 나라는 자체가 이미 일체 법에 고요하여서
곧 잠잠하고 평등한 문안을 할 뿐 미혹된 문안을 하지 않아
그 문안하려는 자나 문안하는 자가 모두 두 가지 마음이 없어 바라밀을 구하고
문안하는 그것이 곧 세 도량[三道場]을 청정하게 하니
이러함이 여래께 문안하는 것입니다.
오고 감이 없는 것처럼 뜨고 잠김이 없고
그 말씨가 부드럽고도 순하여 여래의 뜻에 맞고 모임의 대중들을 즐겁게 하되 남의 마음에 끌리지 않고,
나아가선 이러한 물음으로써 무수한 사람들로 하여금 도의(道義)를 세워서 공덕의 갑옷을 버리지 않고 보리수 아래에 앉게 하니,
이러함이 바로 여래께 강문하는 것입니다.’
이에 광영 여래ㆍ정각은 문수사리 동자를 칭찬했습니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그대여, 이와 같이 여래를 보고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법의 이치를 강문하는 것이 과연 그러하다.’
이에 문수사리는 성지등명(聖智燈明) 큰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존자여, 어떻게 여래를 보고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며,
어떻게 법의 이치를 묻는 것이겠습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예, 문수사리여, 나는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또 그 유(類)도 아닙니다.
제자는 음성으로 해탈을 얻기에 이런 일을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또 물었습니다.
‘현자는 어떤 것을 증득하는 때라고 생각하며,
어떤 것을 진실히 증득하여 해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문수사리여, 나는 거칠게 말할 뿐이어서 깊은 이치를 강(講)하지 못합니다.’
또 물었습니다.
‘어떻게 깊은 이치의 평등함을 강하여 나타내겠습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평등함을 다루지도 않고 깊은 이치를 다루지도 않는 것입니다.’
또 말했습니다.
‘왜 일어나고 사라짐을 말하겠는가?
공의 이치란 깊음이 없으면서 깊고, 공의 이치란 평등함이 없으면서 평등한지라,
이것이 제일의 이치이니, 바로 성실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지는 말했습니다.
‘처음 배우는 보살로서 이 말을 듣는 자가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습니다.
‘그대도 이제 이미 두려워했는데 하물며 처음 배우는 사람이겠습니까?’
성지는 말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게 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왜 두려워했습니까?
현자는 아직 해탈을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싫어함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해탈을 얻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현자는 본래 두려움과 합하였으니, 이 때문에 그대도 이제 이미 두려워했는데 하물며 처음 배우는 자이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문수사리에게 물었습니다.
‘보살은 무엇으로 인하여 해탈하게 됩니까?’
대답하였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서 더럽게 여기거나 싫어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또 물었습니다.
‘문수사리여, 이 말씀은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대답하였습니다.
‘억백천 마군과 그 관속(官屬)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체를 위해 설법하되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으며,
한량없는 덕을 쌓고 무수한 지혜를 심되 그 소행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저 모임 가운데 있던 여러 천인들이 각각 가지가지 기이한 꽃을 가지고 문수사리의 머리 위에 뿌리면서 다 함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문수사리가 머무는 처소라면 마땅히 고루 관찰할 것이니,
이는 여래께서 바른 위신(威神)으로 문수사리가 있는 곳마다 옹호하여 일체의 덕으로써 뭇 사람을 구제하되 법을 강설(講說)하게 하신다.’
이에 문수사리는 성지등명 제자에게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 기년(耆年)의 지혜를 칭찬하셨으니, 어떤 것을 지혜로서의 유위이고 무위라고 합니까?
가령 유위라면 분별을 일으키게 되고, 무위라면 그것 또한 상(相)을 조작함이 됩니다.’
그는 문수사리에게 대답했습니다.
‘모든 성현들도 염(念)하는 바로써 무위를 강설하였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무위라면 어떻게 염(念)한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습니다.
‘모든 성현들이 무엇 때문에 무위의 행을 강설하셨습니까?’
그때 성지등명 제자가 잠자코 더 대답하지 못하자,
이에 광영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중의 모임을 위해 법문을 강설하여 여러 하늘들로 하여금 그 법을 받아 듣게 하며,
뭇 보살들도 그 법을 듣고 퇴전하지 않는 지위에 서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체득하게 하여라.’
문수사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바른 법문이란 행이 고요함이니,
고요한 법문에는 말이 없고 생각조차 없는 것으로써 청정을 삼는 것입니다.’
그때 저 대중 가운데 법의(法意)라는 보살이 모임의 자리에 있다가 문수사리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여래께서 음욕과 분노와 우치의 일을 말씀하실 때라면 어찌 고요한 법이겠습니까?
그 생각조차 없는 법문이 어찌 적정하거나 담박하거나 청정한 법이 되겠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음욕과 분노와 우치가 어디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염(念)하여 생각을 일으킴에 따라 있는 것입니다.’
또 물었습니다.
‘생각은 어디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습기[習]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물었습니다.
‘습기는 어디로부터 있게 됩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내 것이라든가 내 것이 아니란 데를 따라 있는 것입니다.’
또 물었습니다.
‘내 것이라든가 내 것이 아니란 것은 어디로부터 일어납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몸을 탐하는 것으로부터 있게 됩니다.’
또 물었습니다.
‘몸을 탐하는 것은 다시 어디로부터 일어납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라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또 물었습니다.
‘나라는 것은 어디로부터 일어납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문수사리여, 나라는 것은 머무는 곳을 볼 수 없고 있는 곳도 없으며, 처소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널리 시방에 이르러 나를 구하여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족성자여. 그 누가 시방에 나아가서 법의 처소를 찾고자 하여도 얻을 수 없고 볼 수 없을 것이니, 왜냐하면 저 법이 어찌 문(門)이 있겠습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문 없는 문이 있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 때문에 모든 법문은 다 고요하다고 말하니,
일체 설한 바 담박한 문은 고요하여서 청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설하실 때에 8천의 보살이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얻었으며,
그때 문수사리는 널리 대중의 모임을 위해 설법한 뒤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수보리여, 이것을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제자나 보살 할 것 없이 우리들로서는 그 변재를 당할 수 없는데 어찌 감히 문수사리의 강하는 법의 말씀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