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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제법본무경 중권
[업장이 깨끗해지는 법]
이때 만수시리동진(曼殊尸利童眞:문수사리동자)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업장(業障)을 깨끗이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하여야 업장이 깨끗해집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수시리야, 만일 어떤 보살이 모든 법이 업(業)도 없고 보(報)도 없는 줄을 알면 그의 업장은 깨끗하게 될 것이다.
또 만수시리야, 만약 어떤 보살이 탐욕의 경계[欲際]에서 실제(實際)를 본다면 그는 업장이 깨끗하게 될 것이다.
성냄의 경계와 어리석음의 경계에서 바로 실제를 본다면 그는 업장이 깨끗하게 될 것이다.
또 만수시리야, 만일 어떤 보살이 모든 중생이 바로 열반계(涅槃界)임을 알면 그는 업장이 깨끗하게 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만수시리야, 그는 순응하여 봄으로써 업장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만수시리야, 4성제(聖諦)를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해 네 가지 전도된 된 마음[四倒心]이 있는 중생은 참되지 못한 유전(流轉)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유견]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만수시리가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말씀해 주십시오, 중생은 어떻게 견해를 가지게 되고, 유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수시리야, 중생은 나[我]와 나의 것[我所]에 집착하기 때문에 유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수시리야, 나와 남을 보게 되면 그들에게 업행(業行)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만수시리야, 범부와 어린아이 같은 중생들은 들은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이 결국에는 멸도(滅度)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나와 남에 대해 보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보고 난 뒤에는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업을 짓는다.
그들은 없는 것에 대하여 취착함이 있어 나는 탐욕스럽다, 나는 성낸다, 나는 어리석다고 분별한다.
그들이 만일 여래의 가르침 속에서 출가했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계(戒)를 갖추었고, 나는 청정하게 행동한다.
나는 유전을 뛰어넘을 것이고, 나는 열반을 얻을 것이며, 나는 고통을 해탈할 것이다.’
그들은 또 ‘이 법은 선(善)이고 이 법은 불선(不善)이며, 이 법은 유루(有漏)이고 이 법은 무루(無漏)이며, 이 법은 알아야 하고 이 법은 끊어야 하며, 이 법은 증득해야 하고 이 법은 닦아야 한다’고 분별한다.
말하자면 고(苦)는 마땅히 알아야 하고, 집(集)은 마땅히 끊어야 하며, 멸(滅)은 마땅히 증득해야 하고, 도(道)는 마땅히 닦아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또 ‘모든 행(行)은 무상(無常)하고, 모든 행은 고통이며, 모든 행은 불타는 것이므로 나는 모든 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분별한다.
그들은 이와 같이 생(生)을 관찰할 때, 곧 화합된 생각에 싫어하고 버리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이런 생각이 스쳐간 뒤에 그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 고통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 모든 법이 알아야 할 것이라면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집(集)을 끊어야 한다.’
그들은 모든 법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며, 그들은
‘이 집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모든 법이 부끄럽고 싫은 것이라면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멸(滅)을 증득해야만 하고, 도(道)를 닦아야만 한다.’
그런 법을 분별하고 난 뒤에 다시 멸(滅)을 알고,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증득해야 할 그 멸이다.’
만일 이 모든 법이 증득해야 할 것이라면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도를 닦아야만 한다.’
그들은 곧 홀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모든 법을 사유하고 사마타(舍摩他)를 얻어 사념(思念)을 없앤다. 그들은 사마타를 얻는 까닭에 모든 법 가운데서 그 마음이 저절로 활짝 열려 시원하고 윤택해진다.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며 쾌락을 좋아하지 않는 마음이 더욱 생겨나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다.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없다.’
스스로를 아라한(阿羅漢)이라 일컬으며 그렇게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죽을 무렵 생(生)을 받는 곳을 보고는 곧 부처님의 보리(菩提)에 의혹과 바르지 않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마음이 의혹에 빠진 까닭에 죽은 후에는 대니리야(大泥犁耶‘:大地獄)에 떨어지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남이 없는 일체법 가운데서 분별에 떨어졌기 때문에 부처님의 보리에 대해 헐뜯고 해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4성제]
이때 만수시리동진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4성제(聖諦)를 보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수시리야, 만약 모든 행이 남이 없다는 것을 본다면 그는 곧 고(苦)를 아는 것이고,
만일 모든 행이 일어남이 없다는 것을 본다면 그는 곧 집(集)을 끊은 것이며,
만일 모든 법이 끝끝내 멸도(滅度)한 것임을 본다면 그는 곧 열반을 증득한 것이고,
만일 모든 법이 없다는 것을 본다면 그는 곧 도(道)를 닦는 것이다.
만수시리야, 만약 이와 같이 4성제를 본다면, 그는 이 법은 선이고 이 법은 불선이며, 이 법은 알아야 하고 이 법은 끊어야 하며 이 법은 증득해야 하고 이 법은 닦아야 한다고 분별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고통은 알아야만 하고, 번뇌는 끊어야만 하며, 열반은 증득해야만 하고, 도는 닦아야만 한다고 분별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 모든 범부와 어린아이가 성냄과 어리석음에 물든 자리 그 가운데에서 저 모든 법이 생김이 없고 존재하지 않으며 참되지 못하고 분별에 얽매인 것임을 본다면, 이와 같이 보고 난 뒤에 그들은 법 가운데에서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을 것이며, 모든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이 모두 허공의 자성과 같음을 볼 것이다.
그들은 모든 삼계(三界)에서 집착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
모든 삼계에서 그들은 무생(無生)을 보고, 모든 삼계가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음을 볼 것이다.
또한 모든 선법(善法)과 불선법(不善法)에 대해서 그것이 불꽃과 같음을 볼 것이며,
저 탐욕의 세계가 그대로 열반의 세계임을 보고,
성냄의 세계가 그대로 열반의 세계임을 보며,
어리석음의 세계가 그대로 열반의 세계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든 법의 이와 같은 자성(自性)을 보고 곧 모든 중생 가운데서 사랑과 증오를 멀리 벗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법을 사랑스럽다거나 증오스럽다고 보지 않아 마음이 허공처럼 평등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佛)ㆍ법(法)ㆍ승(僧)도 보지 않는다. 그들이 이미 모든 법을 보지 않는다면 곧 법 가운데서 의심할 만한 곳이 없을 것이며, 이미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면 곧 취함이 없을 것이며, 이미 취함이 없다면 태어남이 없어서 곧 열반하게 될 것이다.
만수시리야, 상좌(上座) 수부제(須浮帝:須菩提)는 이와 같이 법을 알기 때문에 여래의 발에 예배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는 자신조차도 보지 않는데 하물며 어찌 여래를 보겠는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4념처]
이때 만수시리동진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4념처(念處)를 보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수시리야, 미래에 비구가 있을 것이니,
그는 청정하지 못한 몸[受] 가운데서 몸에 대한 관찰을 수순하여 염처(念處)를 설할 것이며,
생겼다 사라지는 느낌[受] 가운데서 느낌에 대한 관찰을 수순하여 염처를 설할 것이며,
마음[心]이 곧 생기는 법이고 사라지는 법임을 보고 이 마음 가운데서 마음에 대한 관찰을 수순하여 염처를 설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할 것이다.
‘만약 원만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곧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법이라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 역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법(法) 가운데서 법에 대한 관찰을 수순하여 염처를 설할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만수시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4념처는 또 어떻게 훈습하고 수행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럴 필요 없다. 만수시리야, 여래가 설하는 특별한 의미는 알기 어렵다.”
만수시리가 여쭈었다.
“대덕(大德)이신 세존이시여, 염처를 훈습하고 수행하는 일을 꼭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수시리야, 만약 몸을 허공과 평등하다고 본다면 이것이 바로 몸 가운데서 몸에 대한 관찰을 수순하는 염처이다.
만수시리야, 만일 안과 밖, 둘 사이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느낌 가운데서 느낌에 대한 관찰을 수순하는 염처이다.
만수시리야, 만일 마음이란 오직 이름으로 헤아리는 것만 있을 뿐임을 안다면 이것이 바로 마음 가운데서 마음에 대한 관찰을 수순하는 염처이다.
만수시리야, 만일 모든 선법과 불선법을 얻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법 가운데서 법에 대한 관찰을 수순하는 염처이다.
만수시리야, 이와 같이 4념처를 관찰해야만 한다.”
[8정도]
만수시리가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성스러운 8분도(分道)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은 평등하지 않음이 없고 둘이 없으며 또한 둘을 짓지도 않는다고 본다면, 이것이 바로 바른 견해[正見]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은 분별하지 않고, 갖가지로 분별하지도 않으며 두루 분별하지도 않으니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이것이 바로 바른 분별[正分別]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은 말로 할 수 없고 언설이 평등하니 잘 훈습하고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이것이 바로 바른 말[正語]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은 짓는 것도 없고 짓는 자도 없으니 짓는 자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이것이 바로 바른 업[正業]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을 모으지도 흩어버리지도 않으며 목숨을 유지하는 생활에 바르게 머문다면, 이것이 바로 바른 생활[正命]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에 대해서 일으키지도 않고 행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바른 정진[正精進]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 가운데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생각하는 업(業)을 이미 벗어나 추억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바른 생각[正念]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은 본성(本性)이 원래 정(定)에 들어 있어서 산란함도 없고 반연(攀緣)도 없으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이것이 바로 바른 정[正定]이다.
만수시리야, 이와 같이 성스러운 8분도를 보아야 한다.”
[5근]
만수시리가 다시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5근(根)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은 생기지 않으니 본성이 생기지 않기 때문임을 믿는다면, 이것이 바로 믿음의 근[信根]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 가운데서 마음을 일으키거나 없애지 않으니, 가깝다는 생각과 멀다는 생각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의 근[精進根]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니, 반연하는 성품이 벗어나 있기 때문에 생각이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생각의 근[念根]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을 생각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으니, 허깨비[幻]와 같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의 근[定根]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은 생겨남을 벗어나고 어리석음[無智]을 벗어났으니 본래 성품[本性]이 공(空)하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의 근[慧根]이다.
만수시리야, 이와 같이 5근을 보아야 한다.”
[7각분]
만수시리가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7각분(覺分)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부천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이 자성이 없음을 보고 생각을 짓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염각분(念覺分)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을 선택한 뒤에는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를 얻지 않으니 성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택법각분(擇法覺分)이다.
만수시리야, 삼계(三界)를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니 세계[界]라는 생각의 허물어짐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각분(精進覺分)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행 가운데서 기쁨에 얽매이지 않으니 기쁨도 기쁘지 않음도 무너지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희각분(喜覺分)이다.
만수시리야, 만일 모든 법 가운데서 그 마음이 멈추고 쉰다면 이것이 바로 지식각분(止息覺分)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과 마음은 얻을 수 없으니 깨달음을 수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다면 이것이 바로 정각분(定覺分)이다.
만수시리야, 모든 법 가운데서 의지하지 않고 머물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면서 모든 법을 보지 않고 버림[捨]을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사각분(捨覺分)이다.
만수시리야, 이와 같이 7각분을 보아야 한다.
만수시리야, 이와 같이 4성제와 4념처와 성스러운 8분도와 5근과 7각분을 보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건넌 사람[度者]이라 할 것이며,
저쪽 언덕에 이른 사람[到彼岸者]이라 할 것이며,
육지에 도달한 사람[到陸地者]이라 할 것이며,
안온함을 얻은 사람[得安隱者]이라 할 것이며,
두려움 없음을 얻은 사람[得無畏者]이라 할 것이며,
번뇌를 털어버린 사람[抖擻塵者]이라고 할 것이며,
가진 것이 없는 사람[無所有者]이라 할 것이며,
욕심과 번뇌가 없고 장애가 없는 사람[無欲惱無障礙者]이라 할 것이며,
아라한(阿羅漢)이라 할 것이며,
번뇌를 다한 사람[盡漏者]이라 할 것이며,
해야 할 일을 하여 일을 다 마친 사람[作所應作所作已辦者]이라 할 것이며, 무
거운 짐을 벗어버린 사람[離重擔者]이라 할 것이며,
자신의 이익을 얻은 사람[得自利者]이라 할 것이며,
결박을 없앤 사람[盡有結者]이라 할 것이며,
나아가 마음이 언제나 자재하여 훌륭한 저편 언덕에 오른 사람[心皆自在得勝彼岸者]이라고 할 것이다.
사문(沙門)이라고 할 것이며,
바라문(波羅門)이라 할 것이며,
건널 수 있는 사람[能度者]이라 할 것이며,
비타가를 건넌 사람[度鞞陀迦者]이라 할 것이며,
수로제의야자(輸嚧帝疑夜者)라고 할 것이며,
불(佛)이라고 할 것이며,
불자(佛子)라고 할 것이며,
사가자(奢迦子)라고 할 것이며,
가시를 밟아 없앤 사람[踏破刺棘者]이라 할 것이며,
구덩이를 없앤 사람[除却塹者]이라 할 것이며,
구덩이를 건넌 사람[度塹者]이라 할 것이며,
화살촉을 뽑아버린 사람[拔箭鏃者]이라 할 것이며,
뜨거운 번뇌를 벗어난 사람[離熱惱者]이라 할 것이며,
비구(比丘)라 할 것이며,
성자(聖者)라 할 것이며,
만족당(滿足幢)이라 할 것이다.
만수시리야, 이와 같은 인(忍)을 모두 갖춘 비구는 청정한 보시[淨施]를 할 수 있어 모든 하늘과 세상의 공양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수시리야, 비구가 백성들의 음식을 헛되이 먹고 싶지 않다면,
마라(摩羅:악마)를 쳐부수고 싶다면,
유전(流轉)함을 뛰어넘고 싶다면,
순조로이 열반에 이르고 싶다면,
고통을 해탈하고 싶다면,
모든 하늘과 세상이 청정하게 보시하는 복전(福田)이 되고 싶다면
이 법 가운데에서 열심히 익혀 상응해야만 한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 때, 3만 2천 명의 천자(天子)가 법 가운데에서 견해를 증득하였다.
그들은 만다라화(曼陀羅華)와 마하만다라화(摩訶曼陀羅華)를 부처님께 뿌리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덕 세존이시여, 이 법을 말씀하셨을 때 귀로 들은 사람은 곧 여래의 가르침 가운데서 훌륭하게 출가할 것입니다. 하물며 들은 뒤에 믿음과 이해를 인연하여 참되게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저 중생들이 만일 이 말씀을 듣게 된다면 증상만(增上慢)이 없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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