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법집경 제2권
[법사의 뜻을 안다(1)]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능히 법사(法師)의 뜻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다문(多聞)을 성취하고, 총지(總持)를 성취하고, 문혜(聞慧)를 성취했지만, 바다처럼 모인 문혜의 곳간이니 이 문혜에서 젠체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뜻이 걸림 없고[義無礙], 법이 걸림 없으며[法無礙], 말이 걸림 없고[辭無礙], 말하기를 좋아함이 걸림 없지만[樂說無礙] 쉬지 않고 정진을 구하느니라.
세상을 알고, 때를 알고, 절도를 알고, 법을 알고, 중생을 알지만 공경을 닦고 덕을 증장시키며 수행을 버리지 않느니라.
논(論)을 알고 뜻을 알고 제도할 수 있는 중생을 알지만 자문(諮問)하는 일을 버리지 않느니라.
욕심이 적고 만족을 아는 행을 성취했지만 존자(尊者)에게 공급하는 업(業)을 버리지 않느니라.
묘하게 정숙하고 적정(寂靜)하며 유연한 마음과 겁약하지 않음을 성취했지만 부끄러워하며 바른 행을 버리지 않느니라.
매우 깊게 일컫거나 헤아릴 수 없이 두루 갖춘 공덕을 성취했지만 능히 세간의 때 낀 실천과 해탈을 얻지 아니함을 나타내 보임은 중생을 수순하기 때문이니라.
자기 성품의 곧은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과 안락한 마음을 성취했지만 모든 계율을 깨뜨리는 실천을 나타내 함께하느니라.
보시와 지계(持戒)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를 성취했지만 모든 처소에서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경계를 분별하지 않느니라.
모든 탐욕과 수번뇌의 자극을 멀리 여의었지만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번뇌를 끊고 정진하는 실천을 버리지 아니하니,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의 뜻을 안다고 하는 것이니라.
[법사의 뜻을 안다(2)]
다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의 뜻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보살마하살이 모든 구함을 멀리 여의었지만 모든 보살마하살은 공덕과 정진을 버리지 않느니라.
모든 법은 적멸하여 보리(菩提)는 증득하지 않는 것임을 잘 알지만 모든 보시와 정진을 버리지 않느니라.
모든 법은 결국에는 없어져 다할 것임을 현재에 알지만 인욕과 안락한 실천을 버리지 않느니라.
항상 매우 깊은 삼매의 경지에 있지만 모든 중생이 선근으로 짓는 일을 버리지 않게 하느니라.
묘하고 고요한 적정을 다 갖추었지만 항상 어지러운 마음과 뒤바뀐 마음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행을 버리지 않느니라.
다라니(陀羅尼)와 네 가지 걸림이 없음을 성취했지만 항상 많이 들음과 지혜와 정진을 구함은 버리지 않느니라.
모든 법의 비밀한 창고를 이룩했지만 한 게송을 위해 백천 유순(由旬)을 다니며 법을 구하여 정진함을 버리지 않느니라.
모든 법은 다른 이를 말미암아 얻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스승을 친근히 하고 공경하여 거듭 정진함을 버리지 않느니라.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을 알지만 항상 법을 보호하는 정진을 버리지 않느니라.
중생을 중생이란 이름으로 보지 않지만 항상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큰 보리를 얻게 하는 정진을 버리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의 뜻을 안다고 하는 것이니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의 뜻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섭수(攝受)하는 말을 성취했기 때문에 보시ㆍ애어(愛語)ㆍ이행(利行)ㆍ동사(同事)의 실천을 행하느니라.
부드럽고 연한 말을 성취했기 때문에 큰 자비심을 일으키느니라.
수순하는 말을 성취했기 때문에 곧 적정을 수순하고 번뇌를 여읜 것을 수순하고 해탈을 수순하느니라.
수순하는 말을 성취했기 때문에 곧 사마타(奢摩他)를 수순하고 비바사나(毘婆舍那)를 수순하고 진여의 길을 수순하느니라.
좋고 교묘한 말을 성취했기 때문에 곧 드러내어 훤한 말과 욕먹고 미움 받는 말이 없고 빼앗음이 없는 말[能奪語]을 두루 갖추느니라.
글자의 뜻에 대한 말을 성취했기 때문에 곧 나쁜 말을 여의고 옳은 말을 다 갖추느니라.
아첨하고 옳지 않은 말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중생의 무명(無明)과 속임을 깨뜨리느니라.
의심이 없는 말을 성취했기 때문에 지금 모든 법의 모양을 보느니라.
모든 번뇌사(煩惱使)의 말을 멀리 여의는 것을 성취했기 때문에 모든 번뇌와 수번뇌(隨煩惱)의 원인을 없애느니라.
근본이 되는 말을 일으키지 않으니 번뇌가 없음[無垢]과 낼 것이 없음을 성취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의 뜻을 안다고 하느니라.
[법사의 뜻을 안다(3)]
다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의 뜻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보살마하살의 모든 법은 다 묘한 법을 지닌 것에 의지하여 말하며 공양과 공경을 지닌 것에 의지하여 말하지 않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 지니신 것에 의지하여 설법하며 자기의 마음에 지닌 것을 의지하여 말하지 않느니라.
대자대비의 근본을 의지하여 설법하고 번뇌와 수번뇌의 근본을 의지하여 말하지 않느니라.
범부를 수순하는 태도를 끊고, 번뇌의 흐름[使流]에 의지하여 설법하고, 불ㆍ법ㆍ승 삼보를 수순하고, 법다운 수행이 단절됨에 의지하여 말하지 않느니라.
대자대비를 의지하여 다른 이를 이롭게 설법하며 즐거움을 받는 자기의 이익에 의지하여 말하지 않느니라.
대개 설법하는 이는 매우 깊은 법에 의지하여 설법하나니, 결국에는 공하여 모양도 없고 서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설법하는 이는 저 뛰어난 이를 의지하여 말하니, 수순함으로써 큰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니라.
설법하는 이는 모든 마(魔)와 원수를 항복받는다고 말하니 음마(陰魔)와 사마(死魔)와 번뇌마와 하늘의 마를 항복 받았기 때문이니라.
설법하는 이는 도량에 수순하여 말하나니 모든 세간의 공양에 알맞기 때문이니라.
설법하는 이는 모든 부처님의 지혜[智智]에 수순하여 말하니 결국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열여덟 가지 함께하지 않는 부처님 법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법사의 뜻을 안다(4)]
다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의 뜻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맑고 깨끗한 수행[梵行]으로 삶을 돕는 업을 즐기고 세간 삶을 돕는 도구를 즐기지 않느니라.
성인께서 행하신 법을 즐기지만 중생을 교화하고 범부가 짓는 것을 나무라는 일을 버리지 않느니라.
보살은 항상 법식(法食)을 즐기며 세간의 맛을 탐하지 않느니라.
항상 아란야의 생활을 즐기며 도시나 마을에 살지 않느니라.
항상 지장(智障) 끊음을 즐기며 번뇌장(煩惱障) 끊음을 즐기지 않느니라.
항상 32상과 80종호를 즐겨 물질의 몸[色身]을 성취하고 오직 법신(法身) 증득하는 것만을 즐기지 않느니라.
항상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열여덟 가지 함께하지 않는 부처님 법을 즐기고 오직 네 가지 진리[四諦]의 법만을 증득함을 즐기지 않느니라.
항상 모든 중생을 따라 선근 성취함을 즐기며 오로지 자기의 선근만을 모음은 즐기지 않느니라.
항상 모든 번뇌와 번뇌의 습기를 끊어 없앰을 즐기며 오로지 번뇌장의 법을 끊는 것만 즐기지는 않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법사가 알맞게 비유하는 것을 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가 알맞게 비유하는 것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땅의 성질은 평등하고 넓어 모든 중생을 담고 있지만 중생에게 은혜 갚기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보살 법사도 저 땅과 같아서 마음이 평등하여모든 중생을 떠맡지만 중생에게 은혜 갚기를 요구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큰 물은 그 성질이 널리 적시고 윤택하게 하여 모두를 다 불어나고 우거지게 하지만 저 물질에 은혜 갚기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법사도 이와 같아서 자기의 공덕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고 윤택하게 하여 다 편안하게 하지만 중생에게 은혜 갚기를 요구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불의 성질은 모든 과일과 열매를 자라게 하지만 저 일에 바라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법사도 이와 같아서 자기의 공덕과 지혜로써 모든 중생의 선근 과일 열매를 자라나게 하지만 중생들에게 은혜 갚기를 요구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바람의 성질과 힘은 모든 약초와 모든 씨앗을 트게 하고 자라게 해 주지만 저 일에 분별도 내지 않고 바라는 것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법사도 이와 같아서 힘으로 모든 중생의 생신(生身)과 법신을 늘리고 더하게 해 주지만 중생에게 은혜 갚기를 요구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허공의 세계는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으며 막히고 걸림이 없어 모두를 수용하지만 저 물건들에 분별하는 것도 없고 탐하고 애착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법사도 이와 같아서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모든 좋은 공덕의 몸과 막히거나 걸림이 없음을 성취하여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지만 중생에게 분별함도 없고 탐착함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밝은 달이 비추는 허공은 깨끗하고 원만하여 보는 중생은 사랑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고 빛이 세간의 모든 만물을 비추지만 저 어두움과 가림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법사도 이와 같아서 세상에 나타나 공덕이 두루 갖추고 곳곳에 있어 모든 보는 이가 모두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세간을 제도하고 구원하지만 저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느니라.
선남자여,비유를 들자면 해가 솟아 빛과 밝음을 널리 비추어 모든 어두움을 깨뜨려 가리거나 막힘이 없으면 모든 중생의 하는 일이 다 성취되지만 저 해는 모든 중생에게 분별과 은혜 갚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법사도 이와 같아서 세상에 나타나 모든 중생의 무명(無明)과 어두움을 깨뜨리고 지혜의 밝음과 빛으로써 널리 중생에게 비추어 여러 가지 선근이 다 자라도록 하지만 저 보살은 중생들에게 분별과 조금의 은혜 갚음도 요구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잘 만들어진 견고하고 튼튼한 배는 파괴되지 않고 넓은 바다에서 모든 중생을 건너게 하지만 중생들에게 값을 요구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법사도 이와 같아서 지혜로써 튼튼하게 하고 모든 바라밀로써 견고하게 하며 대자비로써 잘 만들어 나고 죽음의 큰 바다에서 모든 중생을 건너게 하지만 중생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거세게 흐르는 물이 급하고 험난하여 두려워도 중간에 교량이 있어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건너게 하여 즐거움을 주지만 건너게 했다는 생각과 분별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법사도 이와 같아서 번뇌의 거센 물결이 급하게 흘러 건너기 어렵고 험난하여 두렵고 나쁜 갈래의 흐름이 급하지만 그 가운데 큰 교량을 만들어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건너게 하여 해탈의 즐거움을 주지만 분별하거나 제도하고 해탈하게 했다는 마음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어두운 방에 큰 등불을 밝혀 하ㆍ중ㆍ상의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널리 비추지만 저 등불은 나와 내 것이 환히 비추는 것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법사도 이와 같아서 무명으로 어두운 방에 지혜의 등불을 켜서 하ㆍ중ㆍ상의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널리 비추지만 저 보살은 나와 내 것이 비추었다는 마음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법사가 알맞게 비유함을 안다고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