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보살경 제1권
23.
이때 무소유보살은 이 말씀에 기쁘게 귀의하고 다시 세존께 게송으로 여쭈었다.
이 말을 참으로 잘 말씀하셨습니다.
일체지에는 막힘이 없으니,
이 말씀에 기쁘게 귀의하여
다시 사람 가운데 가장 으뜸인 분께 여쭙습니다.
듣기를 마치고 한가한 곳에 이르되
마땅히 머물 만한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보리를 내어
그 이름이 최상(最上)이 되겠습니까?
이때 세존께서 해석하시어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듣기를 마치고 [보리심을] 일으키며
일으키기를 그치고도 머물지 않으면
그는 뛰어난 중생으로
마땅히 뛰어난 보리를 행할 것이니라.
만약 행을 이와 같이 행하면
그는 머물 곳이 없을 것이고
마땅히 보리를 빨리 깨달을 것이니
마치 사람이 화살을 쏘는 것과 같으니라.
이는 바로 삼행(三行)을 말하는 것이며
만약 마땅히 여실하게 깨달으면
본성(本性)과 같이 적정(寂靜)해져서
그는 보리를 행하지 않게 되느니라.
만약 유위(有爲)의 소리 가운데
세간에서 말한 바가 있어도
일체의 소리가 없기 때문에
마땅히 진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진실이 없는 가운데는 드러남도 없고
행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면
그 보리행(菩提行)을 실행하고
실행함이 없는 것으로서 행을 취하리니
역시 열고 더하는 것이 얕지 않으리라.
깨달을 것이 없음을 알아 마치면
그 행은 얻지 못할 것이니라.
24.
이때 무소유보살은 게송으로 여쭈었다.
이 말을 참으로 잘 말씀하셨습니다.
일체지에는 막힘이 없으니,
이 말씀에 기쁘게 귀의하여
다시 사람 가운데 가장 으뜸인 분께 여쭙습니다.
어떠한 인연으로 온갖 몸을 버리고
마땅히 일체의 괴로움도 없이
평등하게 모든 세계에 이르러
마땅히 수명(壽命)의 행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혹은 다시 오른쪽 옆구리로 눕고
혹은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혹은 다시 서서 머물고
혹은 또 마땅히 합장할 수 있습니까?
깊고 깊은 법을 말씀하실 때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인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진리는
머물지 않으며 모든 법을 고요하게 합니다.
혹 성불(成佛)하는 때를 보고
혹 모든 법을 찬탄하고
소유한 모든 법을 말하고
정해진 뜻을 그에게서 들어도
마땅히 신체(身體)를 버리기 때문에
뒤에 새로운 몸으로 태어납니다.
집에서 떠났지만 집에 이르러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고
혼미함에 빠지지 않고 생각을 빨리 가다듬어
일념(一念)으로 바르게 정(定)에 머무른다면
어찌 마땅히 명(命)을 버리는 것이겠습니까?
또 마땅히 신통력(神通力)을 나타내어
저를 위하여 이 물음을 풀어 주십시오.
무변(無邊)한 지혜를 모은 자는
간략히 말씀하시는 중간에서도 마땅히 아나니
조복(調伏)이 말하는 바와 같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공덕과
무량한 불사의(不思議)와
일체의 뛰어난 구족(具足)을
그들이 마땅히 성취하도록
스승이시여,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진실로 있는 것과 같은 상(相)과 같이
만약 이 공덕(功德)을 들으면
모든 것이 마땅히 공양하도록
마땅히 10선(善)을 온전히 지켜서
공법(空法)에 의심이 없고
4범행(梵行)을 갖추어
일체 모든 것이 성취하고
6근(根)을 얻지 아니하며
일체의 삼계(三界)를 얻지 아니하고
일체에 자재(自在)함을 얻어
의심이 생기지 않고 듣게 하여 주십시오.
지니고 있는 유위(有爲)의 법은
그 모두가 그림자와 같음을 마땅히 알고
마땅히 이와 같이 알면
그 그림자는 유위(有爲)가 아닙니다.
유위가 없으면 그림자도 없고
말함이 없으면 분별도 없으며
생각이 없으면 말이 없고
인색함이 없으면 보시함도 없다.
행함도 없고[無爲] 그림자도 없는 가운데
말함이 없으니 분별도 없으며,
생각도 없어 말도 없는 가운데
지계(持戒)가 없으니 파계(破戒)가 없다.
행함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가운데
말함이 없으니 분별도 없으며,
생각도 없고 말도 없는 가운데
다툼이 없으니 참을 것도 없다.
행함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가운데
말함도 없으니 분별도 없으며,
생각도 없고 말도 없는 가운데
게으름도 없으니 정진(精進)도 없다.
행함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가운데
말함도 없으니 분별도 없으며,
생각도 없고 말도 없는 가운데
어지러움도 없으니 선정(禪定)도 없으며,
행함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가운데
말함도 없으니 분별도 없으며,
생각도 없고 말도 없는 가운데
어리석음도 없으니 지혜도 없다.
그림자 없애기를 마치고 나면
다시는 소견(所見)이 없다.
그가 소견이 없기를 마치면
이 때문에 말로 무영(無影)을 삼는다.
또 눈이 없지 않아도
그 눈은 깨끗하여 때가 없으며
그 안에는 사물이 없고
사물이 없으면 눈은 보지 않으며
청정하여 항상 사물이 없어
이름도 없으니 청정함도 없다.
이와 같이 깨끗한 눈은
청정하여 보는 바가 없다.
지니고 있는 그림자가 없으면
없음 또한 없음이며
그 공(空)이 공함 가운데서
온갖 번뇌들이
나타나지 않음에 마땅히 또한 없고
만약 남자와 혹은 여자 둘이
지금 없음에 마땅히 또한 없음이
허공과 같다.
생각이 없고 분별이 없음을
만약 이와 같이 아는 사람은
그는 집착하는 바가 없고
온갖 몸이 머무는 것을 떠나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법을 구한다.
무변한 허공과 같아
그가 머무를 곳은 없고
머무름이 없으니 반연이 없으며
뜻에 따라 가고 또 간다.
이와 같이 마하살(摩訶薩)은
마땅히 이 방편을 깨달아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는다.
마땅히 보리행을 실천하여
마음과 몸과 입이 함께
항상 중생을 위하여 실행한다.
몸이 허공임을 알지 못하는 것은
기름 짜는 수레바퀴와 같다.
그들이 행함을 볼 때
변제(邊際)를 얻지 아니하고
그로 하여금 부동법(不動法)에 머물게 하여도
머무를 곳이 없다.
수많은 중생을 봄에
온갖 고뇌(苦惱)를 받을 때에
그에게 자비심을 일으키게 하여
마땅히 보리행을 실천하여
모든 중생을 위하여
여실하게 진여(眞如)의 상을 말하고
너희들은 유위(有爲)를 떠나
진실을 마땅히 깨달아야 한다.
전도(顚倒)하여 지혜가 없기 때문에
우리[牢]가 없음에도 우리의 생각을 일으켜
우리가 없는 신체 안에
어리석음 따위의 맛을 집착한다.
이 몸은 항상 나날이 달라
음식으로서 유지[買贖]한다.
그는 자기와 남을 위하지 아니하고
허망하여 피곤함과 싫증을 느끼며
항상 즐거움을 주어 받을 때도
역시 은덕(恩德)을 생각함이 없고
은혜를 생각함이 없으며 피곤으로 약해져 있으니
마땅히 빨리 버려야 한다.
생사(生死) 가운데서 괴로움을 받으나
머무는 곳에 끝[邊]이 없어
지금도 또한 억을 수 없으며
미래도 역시 얻을 수 없다.
생사 가운데 욕망이 많아
머무는 곳에 끝이 없어
지금도 또한 얻지 못하며
미래 또한 얻지 못한다.
생사에서 질탕한 즐거움을 받지만
머무는 곳에 끝이 없어
지금도 또한 얻지 못하며
미래 또한 얻지 못한다.
생사에서 많은 기쁨을 받지만
머무는 곳에 끝이 없어
지금도 또한 얻지 못하며
미래 또한 얻지 못한다.
이 몸을 이어받은 일을 다 해도
머무는 곳에 끝이 없어
지금 또한 얻지 못하며
미래 또한 얻지 못한다.
생사가 유전(流轉)하는 가운데
머무는 곳이 끝이 없어
지금 또한 얻지 못하고,
미래 또한 얻지 못한다.
생사 가운데 수면(睡眠)이 많지만
머무는 곳에 끝이 없어
지금도 또한 얻지 못하며
미래도 또한 얻지 못한다.
이 몸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받게 하여도
머무는 곳에 끝이 없어
지금 또한 얻지 못하며
미래 또한 얻지 못한다.
이 몸으로 하여금 괴로움을 받게 하여도
머무는 곳에 끝이 없어
지금 또한 얻지 못하며
미래 또한 얻지 못한다.
이 몸을 양육하여도
머무는 곳이 끝이 없어
지금 또한 얻지 못하며
미래 또한 얻지 못한다.
이 몸이 아소(我所)를 일으켜도
머무는 곳이 끝이 없어
지금 역시 얻지 못하며
미래 또한 얻지 못한다.
애욕(愛欲) 등이 유전(流轉)하여
머무는 곳이 끝이 없어
지금 역시 얻지 못하며
미래도 또한 얻지 못한다.
실상도 없고 사물도 없어
전도(顚倒)되어 항상 속이는 것과 같아
어리석어서 온갖 유위(有爲)에 현혹되어
이와 같이 세간을 속이는 어리석음은
마치 어리석은 어린아이가
남을 속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것은
헛된 일로서 속이는 것이며
실상도 없어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실상이 없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허망한 괴로움을 받는다.
어리석은 뜻은 독과 같은 생각을 일으키어
자연히 자신(自身)에게 있어서
자연히 괴로움과 스스로 합하게 만든다.
더욱 악행(惡行)과 같아지기 때문에
뒤에 스스로 목을 베는 형(刑)을 받고
마음의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온 뒤에
몸으로 좋지 않은 일을 지으면
그 생각은 있는 것이 아니다.
말도 또한 일이 없는 것이어서
그 소리도 과거가 없으며
과거도 또한 없다.
과거에 내가 무엇을 말했던지 간에
역시 실상(實相)이 없다.
만약 이와 같음을 알아
심신(心身)을 이와 같이 지니면
그는 곧 계행(戒行)을 갖추어
온갖 악도(惡道)에 생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들 네 가지 게송은
옛날부터 10억수(億數)를 짓고
옛날부터 따로 생긴 것 가운데서
뛰어난 보리를 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 게송을 듣고
아직 악도에 떨어지지 않았고
마땅히 여러 부처님의 일을 만났으며
무량한 사람 가운데서 빼어났고
나는 과거의 차제(次第)에
연등불(練燈佛)을 만나
그때에 지닌 바와 같다.
뒤에 나는 수기(授記:成佛의 印可)를 받아
나는 중생을 위하여 말하고
뒤에 부처님의 지혜에 머물지만
나는 취할 바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니
오호라, 중생의 우둔함이여
눈이 멀어 어둡고 어리석어 지혜가 없어
능히 괴로움의 인연을 다하지 못하는구나.
주어도 받으려 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해 취하지 아니하며
소법(小法:世間法)을 즐기는 중생들은
대법(大法:出世間法)을 취하지 아니한다.
만약 세간의 즐거움을 얻고
세간(世間)을 해탈하여도
항상 세간의 눈이 살아있어서
그에게 주어도 받지 아니한다.
이 게송을 들을 수 있어
만약 이와 같이 머물 수 있게 되면
세간에 있어서 분별이 없으리라.
나는 세간 가운데 있지만
고요하여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마땅히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
부동(不動)의 즐거움을 얻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