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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1권
3. 장엄도수품(莊嚴道樹品)
[보살이 전생에 닦은 열 가지 법]
그때에 부처님께서 여러 현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옛적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 공을 쌓고 행을 더하여 청정한 법을 닦았는데,
앉으나 누우나 다니거나 4등(等:慈ㆍ悲ㆍ喜ㆍ捨)을 버리지 아니하고,
일시(一時), 일행(一行), 일념(一念) 사이에 열 가지 법을 닦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도솔천으로부터 신(神)을 내려 하계에 태어나서 시방의 수없는 부처님 세계를 다 보고,
여러 일생보처 보살들이 모두 도수(道樹)에 나아가 청정한 영락을 닦음을 보고,
그들이 오른발을 들어 도량에 나아가서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자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다 진동하는데,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길
‘내가 옛적에 맹세한 소원을 오늘 다 이루었으니,
반드시 마군의 세계를 헐어 없애고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겠다’라고 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자(大慈)의 영락으로 도량에 나아가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라.
둘째는 삼천대천세계 보살대사의 심식(心識)으로 생각하는 바와 또 정의(定意) 삼매에 들어가서 흐트러지지 않음을 다 보고,
혹은 보살이 공(空)에서 도를 이룸을 보고, 혹은 한가하고 고요한 나무 밑의 처소를 보며,
혹은 수광공계삼매(水光空界三昧)에 들어가서 도수(道樹)를 장엄하며 대비(大悲)를 여의치 않음을 보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비(大悲)의 영락으로 도량에 나아가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니라.
셋째는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보고 도량에 나아가서 기쁜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내가 이제 성불함은 필연으로 의심치 않는다.
내 법의 근본으로 일체를 널리 윤택케 하리라’고 하면서
중생과 더불어 똑같은 황금빛 32상(相) 80종호(種好)이다.
한량없는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여서 마군의 그물을 헐고 자기의 국토를 이룩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기쁨을 닦는 영락의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니라.
넷째는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고자 하여 보리수 밑에 나아가서 시방 아승기 세계를 다 보니,
일생보처 보살대사가 닦고 수호하는 마음을 다하여 도수(道樹)를 장엄하고,
무수한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와 똑같은 수호하는 마음으로 온갖 영락의 정의(定意)를 내버리지 않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수호하는 마음과 정수(正受)의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섯째는 보살마하살이 다시 시방의 무수한 세계를 보니, 일생보처 보살대사가 모두 법륜을 굴려서 물러나지 않는 행을 하고 있느니라.
법은 말이 없고 또한 형상도 없으며, 일상(一相)이 무상(無相)이고 공계(空界)는 형상이 없으니, 공도 오히려 공이 없거든 하물며 법계가 있으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공무(空無)를 영락하는 무형의 법이라고 말하느니라.
여섯째는 보살마하살이 시방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를 널리 보니,
지혜를 통달한 중생은 근(根)들이 맑고 정숙해서 뜻이 3승을 향하고 법인(法忍)을 버리지 않으며,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마음으로 여섯 가지 중한 법을 행하며,
4무애지로 한결같이 도인(道忍)을 향해서 수기를 받음을 스스로 아느니라.
또한 다시 남에게 수기를 주는 것을 보며, 혹은 아라한ㆍ벽지불에게 수기를 주는데, 보살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나는 무수한 아승기겁으로부터 몸을 버리고 몸을 받은 것이 모두 허깨비의 화현(化現)으로서 진실한 법이 아니다.
이제 수기를 받아 위없는 정진의 도에 나아가 최정각을 이루어서 허공을 걸림 없이 오고 가리니, 한 때[一時], 한 곳[一處]에서 총지정(摠持定)을 얻었다.’
여러 부처님이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를 찬탄하고 있다.
이 고(苦)는 고가 아니니, 고는 무엇을 말미암아 생기었는가?
고를 이해해서 고가 없으면 곧 밝은 슬기에 감응한다.
습(習:集)은 애착을 말미암아 일어나고, 애착은 본래 형상이 없어서 또한 볼 수 없다.
생(生)의 근본은 생이 없음이니, 하물며 법에 멸함이 있으랴?
중생이 어리석고 미혹해서 다시 쾌락을 일으켜서 익히고 얻는다 해도, 익힘을 이해해서 익힘이 없으면 곧 밝은 슬기에 감응하느니라.
모든 법은 생겨남이 없어서 마멸의 법이 된다.
‘다함[盡]’이란 생겨남이 없어서 또한 다함이 있지도 않고, 모든 법은 다함이 없느니라.
중생이 어리석고 미혹해서 다함을 다함이 아니라고 일컬으며, 그 중에서 상념을 일으켜 모든 법을 사지 않지만,
‘다함’은 진실로 다함이니 이를 밝은 슬기라고 말하느니라.
도는 형상과 모양이 없어서 눈의 경계로 능히 보이는 바가 아니며,
8직평정(直平正)으로서 평탄하여 걸림이 없나니, 이를 밝은 슬기라 이르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수(道樹)에 나아가서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 말하느니라.
일곱째는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세계를 모조리 보니,
중생의 근기가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였다.
혹은 여래의 심식과 똑같은 취향이며,
근본행이 공통으로 합해서 지혜가 늘거나 줄지 않으며,
대자대비로 그 몸을 영락하며,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와 훌륭한 방편과 열여섯 가지 묘한 행과 백천 가지 총지가 있으며,
그 마음이 광대하여 협소하지 않아서 비록 아라한과 벽지불의 행을 볼지라도 마음에 물듦이나 집착이 없어서 그들을 추종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수를 장엄하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니라.
여덟째는 보살마하살이 8백 총지법문(總持法門)과 덕행법문(德行法門)을 닦아 행하는 것이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온갖 행이 갖추어져서 보리수[道樹]를 장엄하며,
다시 널리 참는 법문[普忍法門]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온갖 것을 널리 윤택하게 하려고 감로의 법을 비처럼 내리며,
다시 모습 없는[無相]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공(空)의 행으로 물러나지 않는 경지에 다 들어가며,
다시 음향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8등(等)의 행을 갖추어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하며,
다시 몸으로 행하는[身行]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몸의 행실이 청정하여 여러 가지 나쁜 일을 짓지 않으며,
다시 입으로 행하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네 가지 허물을 짓지 않고 다른 나쁜 행도 없으며,
다시 뜻으로 행하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뜻이 상념으로 치닫지 않고 고요해서 멸진(滅盡)하며,
다시 무념(無念)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서 형상 없음을 다 관하며,
다시 구경(究竟)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차안(此岸)으로부터 피안(彼)에 이르며,
다시 무집착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생사의 법에 물듦이나 집착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시 걸림 없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통달하여 오고 가면서 생사에 걸리지 않으며,
다시 소리에 응하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행을 따르면서 나아가되 저가 받은 것을 꾸짖지 아니하며,
신족통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변화가 자재해서 여러 부처님을 절하여 섬기며,
다시 청정한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지혜가 청정하여 국토의 상념이 없으며,
다시 공행(空行)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모든 법이 비고 거짓이어서 참되지 않음을 알며,
다시 환화(幻化)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중생의 권사(權詐)로 합한 수가 형상을 만져볼 수 없다고 관하며,
다시 형상 없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중생의 근원은 궁구하여 다할 수 없다고 하며,
다시 도의 종자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37도품을 닦아서 끊지 아니하며,
다시 의지(意止)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안팎의 몸을 관하여 생각 생각마다 끊기지 아니하며,
다시 의단(意斷)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모든 법을 관찰하여 약간의 상념도 없으며,
다시 신족(神足)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머무는 수명이 무수의 아승기겁이며,
다시 여러 근(根)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도의 슬기가 몹시 깊어서 굳건하여 걸림이 없으며,
다시 신력(神力)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모든 법에 편안히 처해서 무너뜨릴 수 없으며,
다시 각의(覺意)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각의의 꽃으로 티끌과 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다시 도품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선정에 들어 걸림이 없어서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며,
다시 공한 지혜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중생에 편안히 처하면서도 욕심과 분노를 영원히 여의며,
다시 모습 없는[無相]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도를 품게 하며,
다시 무원(無願)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는 보살은 중생을 교화해서 원하여 구함을 없애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8백 총지라고 말하느니라.
그 요긴한 것만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佛樹]를 장엄하는데 마음이 금강과 같아서 무너뜨릴 수 없느니라.
아홉째는 보살마하살이 이 삼천대천세계의 한 발[足]ㆍ두 발ㆍ세 발ㆍ네 발을 가진 것으로부터 수없는 발을 가진 것에 이르기까지
애욕의 마음이 있는가, 애욕의 마음이 없는가,
화내는 마음이 있는가, 화내는 마음이 없는가,
어리석은 마음이 있는가, 어리석은 마음이 없는가,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없는가를 관찰하는데,
일시(一時), 일기(一起), 일념(一念) 사이에 모두 능히 분별해서 괴로움이 공(空)하고 나라는 생각[我想], 남이라는 생각[人想]이 없음을 설하여 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무상정(無想定)을 행해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열째는 보살마하살이 다시 삼천대천세계를 관하여 미래ㆍ과거ㆍ현재 마음의 모든 근(根)이 적정(寂靜)해서 그 행(行)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응함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오른발을 처음 들어서 땅을 밟을 때]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族性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처음에 오른쪽 발을 들고 첫 걸음을 걸어갔고,
그 중간에서는 열 가지 법을 수행해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였는데,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보살마하살이 오른쪽 발을 들어 땅을 밟을 때에 명호를 스스로 일컬으면서 말씀하였다.
‘삼계에서 지극히 존귀하다.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과거의 부처님도 모두 일곱 걸음을 걸으셨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에 세상에 출현하였으니, 삼계에서 홀로 존귀하여 나와 짝할 이가 없구나.
모든 부처님의 표식(標式)은 누설할 수가 없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부처님의 나무를 장엄함이라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문득 이렇게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이제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이미 이르렀으니,
중생들도 나와 똑같이 나아가게 해서 크나큰 서원의 넓고 큰마음을 버리지 아니하겠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보리수를 장엄하고 도량에 나아감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처음 오른발을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나간 세상의 여러 부처님도 이 법을 먼저 행하시었느니라.
마땅히 일생보처의 보살로서 나의 처소를 이을 자를 관해야 하리니, 그 명호가 누구인가?’
그리고는 곧 오른쪽으로부터 돌아서 미륵을 돌아보시고 이르기를
‘경(卿)이 뒤에 머지않아 나처럼 부처를 이루리라’고 말씀하시니,
백천의 하늘 사람이 이를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각기 다른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하면서 한량없이 좋다고 칭송하였다.
‘명쾌하고 만족스럽나이다. 부처님[世雄]이시여, 부처님의 씨는 끊어지지 않게 되었나이다.’
바로 이때 11나술(那術)의 천상사람과 백성들이 미륵에게 인봉(印封)을 맡기심을 보고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일으켰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보리수를 장엄하고 도량에 나아감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처음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온갖 지혜의 자재함에 이미 이르러서 신령스런 슬기가 걸림 없고 변재에 통달하였다.
이 중생들은 오랜 세월 의심을 품은 채 번뇌의 혼탁함에 빠져서 벗어나길 구하지 않으니,
내가 이제 지혜의 불로써 마음속 의심의 덤불을 태워버리겠노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보리수를 장엄하고 도량에 나아감이라고 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처음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문득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이제 무위(無爲)의 해탈을 이미 얻었으니, 반드시 유위(有爲)의 해탈을 접하여 제도하리라.
지난 세상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들도 모두 나와 똑같은 무위의 해탈을 얻었고, 오는 세상의 부처님들도 또한 이 법을 얻으리로다.
유쾌하고 기쁘구나, 복의 과보란 끊어져 멸하지 않는구나. 망령된 생각은 이미 다했으니 탐내어 구할 것이 없도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마하살이 오른발을 처음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다시 이런 마음을 내었다.
‘중생이 삿된 소견의 뒤바꿈에 영원히 머물러서 삼향공무(三向空無)의 지혜를 보지 못하는구나.
내가 이제 수호하는 마음의 청정함을 연설하리라.
지각도 없고 관함도 없어서 법의 성품은 비고 고요하다.
부끄러움을 알고 창피를 아는 것은 뭇 행의 근본이다.
괴로움이 공하고, 몸이 아니고, 인상(人相)도 없고, 수자상(壽者相)도 없구나.
마땅히 이 마음으로 일체를 널리 덮어주어야겠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처음 들어서 목욕하는 연못으로 나아가고자 하니, 유리와 수정 등 7보(寶)로 된 동산에 오리ㆍ기러기ㆍ원앙새ㆍ이상한 종류의 기이한 새들과 여러 천상사람들이 이끌려 따라옴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몸을 드러내는 것은 옳지가 않다.
혹시 세속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 벌거숭이 모습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할 터이니, 마땅히 가사를 구하여 몸을 가려야겠다.’
당시 천자가 있었는데 이름을 복개라고 하였다.
그는 보살의 마음속 생각을 즉각 알아채고는 이윽고 8만 4천의 금실로 짜서 만든 가사를 바쳤다.
보살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지나간 세상의 모든 부처님 법복은 어떠하였는가? 나아가고 다니고 오는 데에 어떠한 법을 썼는가?’
허공신천(虛空神天)이 합장하고 여쭈었다.
‘지나간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금실로 짜서 만든 가사를 입으셨는데, 오늘 여러 하늘 사람들이 드린 것과 꼭 같나이다.’
보살이 즉시 8만 4천의 금실로 짜서 만든 가사를 받으시어 도의 신통력으로써 한 개의 가사로 합쳐서 몸에 걸치시니, 32상과 80종호가 모두 다 밖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옛날 옛적에 무상(無想)의 보답을 베푸시고 바라밀을 행했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들었을 때에 이런 마음을 문득 내시었다.
‘대다수의 중생들은 성품과 행동이 같지 아니하니, 나는 이제 지혜의 광명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비추리라.’
그리고는 정수리의 광명을 즉시 놓으셔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 나라에 널리 비추니, 중생의 무리로서 광명을 본 자는 모두 구름같이 모여서 사바세계로 나아가 여래를 받들어 섬기고 향과 꽃으로 공양하였다.
위신(威神)이 감응한 바로서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여섯 번이나 반복하여 진동하게 하시었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를 장엄한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발을 들 때에 마음에서 저절로 생각을 내었다.
‘생(生)의 분수가 이미 다했으니 다시는 태(胎)를 받지 않겠다. 삼계에서 홀로 존귀하여 짝할 이가 없도다.’
그 이름을 불(佛)ㆍ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라 하고 10호(號)를 갖추신 분께서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의 그 국토에 사부대중과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람이면서 사람 아닌 것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오늘 사바세계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갖가지 상호가 갖춰져서 마치 별 가운데 달과 같으시며, 중생을 복으로 제도하시니 천상과 인간이 은혜를 받으리라.
공경의 마음을 일으켜서 저 부처님께 공양코자 하거든 바로 이때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때에 시방 모든 부처님 세계의 신통보살이 변재가 갖추어졌고 총지문을 얻었다.
그리고 천7백77억 나술(那術)의 대중이 모두 구름같이 모여서 이 사바세계에 나아가 공양을 바치니 꽃이 무릎까지 쌓였다.
다시 80만 해(姟)의 천마(天魔) 파순이 모두 사바세계에 나아가 공양을 올리고 보살을 섬기었다.
다시 백천억 해의 신력용왕(神力龍王) 중에 각각 일곱 수장(首長)이 향기로운 탕을 바치면서 보살을 목욕시켜 씻어드리니, 이것은 옛날 옛적에 감로의 싫거나 족함이 없는 법을 연설하신 데에 말미암음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안으로 스스로 생각을 내었다.
‘중생이 유(有)에 집착하여 미혹에 빠진지 오래되었다.
설령 공무(空無)하고 고요한 법을 듣더라도 두려운 뜻을 품어 몸의 털이 곤두설 것이다.
부처님 법은 깊고 오묘해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차츰차츰 차례대로 도의 근원을 설명해서 중생의 근원이 말미암는 바를 분별하고, 3세(世)의 생겨나는 법과 멸하는 법을 그윽이 비추어보아서 상념의 집착을 없애고 탐내고 인색한 마음을 없애 주리라.
무수한 겁 동안 행을 쌓아 왔는데도 도를 얻지 못하는 까닭은 모두 은혜와 애착을 말미암음이니, 내 이제 마땅히 은혜와 애착의 뿌리를 없애고 중생을 구제하여 무위(無爲)에 편안히 처하도록 하겠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족성자여, 이와 같이 보살 대사가 신(神)을 내려 태어날 때 땅에 떨어지면서 오른발을 드는 가운데 열 가지 법을 사유하여 보리수[道樹]를 장엄하고 또한 물러나지 않았느니라.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다시 다음의 족성자여, 보살이 처음 태어날 때에 땅에 떨어지자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금궤(金机)에 나아가고자 하였다.
그 다음에는 왼발을 들면서 안으로 스스로 사유하였느니라.
‘여러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은 한량이 없고 도의 법은 순수하므로 응당 바라밀의 무기멸법(無起滅法:일어나고 멸하는 법이 없음)으로 생멸 없는 불가사의를 행하리니, 이는 아라한과 벽지불이 미칠 바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한뜻일 뿐이니 많은 생각은 도가 아니며,
도는 마땅히 욕심이 적어야 하니 욕심이 많음은 도가 아니며,
도는 마땅히 만족을 알아야 하니 구하는 것이 많음은 도가 아니며,
도는 마땅히 바른 소견이어야 하니 삿된 소견은 도가 아니니라.’
그리고 이때 보살은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
‘지난 세상의 모든 부처님이 행하신 바른 법은 무엇을 말함인가?’
[신족의 힘으로 몸의 위덕을 나타냄]
또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
‘지나간 세상에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셔서 신족의 힘으로 몸의 위덕(威德)을 나타내시니, 열 가지 근본의 뜻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구나.
어떤 것을 열 가지라 하는가?’
그래서 족성자여, 보살마하살이 왼발을 먼저 들자 3천(千) 허공의 경계에 두루 찼는데, 중생의 깨쳐 앎이 없는 자를 희롱하지 않았다.
그 중 어떤 중생이 발의 상륜(相輪)을 보고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는데, 이는 옛날 옛적 예배하고 공경한 과보를 말미암은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족성자여, 이때 보살이 왼발로 땅을 밟자 마음이 스스로 생각을 내었느니라.
‘옛날에 모든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적에 구절과 몸의 의미를 어떻게 분별하셨으며,
무엇이 지나간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서 나아가시고 머무시고 가시고 오시는 위의(威儀)의 법칙이었으며,
한 글귀의 뜻으로 한량없는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연출하신 것인가?
겁으로부터 겁에 이르고, 나아가 백겁에 이르기까지 한 구절의 뜻도 능히 궁구하여 다할 수 없으니,
여래의 비밀하고 요긴한 뜻[秘要]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이것은 소절(小節)로는 능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하느니라. ”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보살이 그때에 한 털구멍의 광명을 놓아서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두루 비추시었다.
그 광명 속에서 6바라밀의 평등한 큰 법과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ㆍ불기법인(不起法忍)을 연설하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뜻을 굳건하게 해서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게 하였으니,
이것을 보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의 족성자여, 보살은 그때에 속으로 스스로 사유했다.
‘나는 이제 반드시 삼매의 정수(正受)로써 허공의 모든 부처님 법계에서 두루 유행(遊行)하겠다.’
그때에 보살은 즉시 형상이 없는 선정(禪定)에 들어가서 허공의 여러 부처님 법계에 두루 노니시니, 좌우에서 추종하는 하늘과 땅의 백성들도 아는 자가 없었다.
이를 일러서 보살이 금궤(金机)에 나아감이라 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즉시 하나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채웠다가 다시 돌아와 그대로이지만, 중생의 무리들은 깨달아 아는 자가 없으니,
이것을 보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보살이 이때 혜명(慧明)의 빛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시고, 낱낱의 빛 속에서 모두 다음과 같이 음성을 내었다.
‘오늘 석가모니 불ㆍ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는 남섬부주에서 법륜(法輪)을 반드시 굴려서 아직 제도 못한 이를 제도하고 중생을 복으로 이롭게 해서 그 명성이 멀리까지 퍼지리라.’
이것을 보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족성자여, 보살이 그때 한 생각[一念] 사이에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으로 하여금 각각 손을 펴서 보살을 부축하시게 하시었는데, 일체의 대중 회상에서 모두 보았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족성자여, 모든 부처님의 법장(法藏)은 깊고 오묘해서 헤아리기 어려우니라.
나는 반드시 3승의 연각ㆍ성문ㆍ보살의 도를 차례로 펼쳐 나타냄으로써 법을 듣고 깨달아서 끝내 중간에 걸리지 않게 하리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지나간 3세의 모든 부처님이
‘나는 이제 무위(無爲)의 큰 도를 이루고자 하오니, 모두 마땅히 증명하여서 나로 하여금 도를 이루게 하옵소서’라고 하시자,
여러 부처님이 모두 앞에 서 계시면서 훌륭하다고 칭찬하셨다.
‘그대는 아승기겁으로부터 무수한 고행을 하면서 보시와 지계의 6바라밀을 갖추었고, 국토나 재물이나 아내나 자식에 애착하거나 인색한 바가 없었으니, 이제 반드시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널리 제도해야 하느니라.
우리들은 그대를 부축하여 위로 성불(成佛)에 이르게 하지 중도에 머무르게 하지는 않으리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보살이 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ㆍ오는 세상을 분별하니,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이 역시 모든 부처님께서 응한 행법(行法)이니라.
처음 뜻을 발함으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세 방향의 도와 네 가지 평등한 큰 사랑과 여덟 가지 걸림 없는 도를 닦아 익혀서 그 몸을 영락하였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신족의 열 가지 지혜의 불가사의]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다음에 오른발을 들어서 땅을 밟을 때 이 신족(神足)의 열 가지 지혜의 불가사의를 반드시 갖추었으니,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신족의 지혜를 이름하여 집착 없음이라고 말하는데,
보살로서 이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부처님의 깊고 요긴한 법장(法藏)에서 노니는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신령스런 지혜가 있어서 그 이름을 형상 없음이라고 말하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싫어함이 없는 정의(定意)에 들어가서 시방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물어서 받느니라.
다시 둘 없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중생을 권하여 위없는 등정각을 이루게 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는 취하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허공의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통한 지혜를 얻은 이는 세계의 공(空)함과 나도 없고 남도 없음을 다 관하느니라.
다시 모습 없는[無相]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을 창달하여 한 모습과 모습 없음[一相無相]을 알고, 나고 멸함에 집착하거나 끊는 법이 없느니라.
다시 공관(空觀)의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이루어지고 파괴되는 것을 손바닥의 구슬 보듯 하느니라.
다시 목숨을 버리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목숨의 반연된 과보로 형상 버리는 것과 형상 받는 것을 보느니라.
다시 언설(言說)이 없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법을 설해도 법상(法想)이 없고 또한 약간의 생각도 없느니라.
다시 가깝고 먼 것이 없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의 소굴(巢窟)의 멀고 가까움을 보지 않느니라.
다시 나고 멸하는 것이 없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12인연의 근본을 분별하여 ‘남’이든 ‘멸함’이든 모두 있는 바가 없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신족의 지혜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열 가지 업의 한량없는 구경을 갖춤]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처음 태어나서 왼발을 들 때에 마땅히 열 가지 업의 한량없는 구경(究竟)을 갖추어야 하나니,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그래서 족성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의 수행한 바로서 여래께서 형상을 내려서 세상에 출현하여 교화하시는데,
3세(世)의 12견련(牽連:연기)과 삼계(三界) 5도(道)의 티끌과 더러움과 얽힘과 집착을 분별하여 여러 가지 결사(結使)를 깨끗이 씻어서 티끌의 음산함을 영영 없애니,
이것을 보살이 제1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사 온갖 중생들을 교화하시는데, 3승에 편안하게 처해서 그의 원대로 따르시니라.
혹 어떤 중생은 그 뜻이 아라한으로 나아가지 부처님 문을 향하지 않고,
혹 어떤 중생은 연각의 행을 익혀 부처님 도에 나아가지 않고,
혹 어떤 중생은 위없는 도를 닦아서 성문ㆍ연각ㆍ벽지불을 향하지 않으며,
혹 어떤 중생은 부처님 도에서 물러나 소승에 뜻을 두어 사모하였다.
그때에 보살은 앞서 나간 사람을 권하여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하였으며,
혹 어떤 중생은 범부의 경지에서 방편을 구하여 3승으로 오르려고 하지 않으므로 보살이 나아가길 권해서 3승의 도를 이루게 하였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2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해서 언교(言敎)를 펼쳐 나타내시고,
권도의 방편으로 중생을 알맞게 교화하시고,
무거운 짐을 짊어져서 남을 위해 중임을 맡으시고,
혹은 중생과 더불어 나타나서 부모와 형제와 벗이 되며,
혹은 국사(國師)와 존장(尊長)과 도사로 나타나며,
혹은 큰 부호나 신력귀왕(神力鬼王)으로 나타나서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에게 두루 공급하되 7보(寶)를 보시하고,
도의 가르침을 열어서 3승의 과보를 이루게 하니,
이것을 보살이 제3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여 위없는 법륜을 굴리시면서 네 가지 변재(辯才)를 잃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열 가지 선행을 맡기고,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를 분별해서 연창(演暢)하고,
혹은 미혹을 낳아서 삼계에 빠지면 권도를 행하여 구제해서 생사를 영영 여의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4의 업(業)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해서 항상 대비(大悲)로써 중생을 감싸는데,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마음에서 여의지 않느니라.
비유하자면 이라발다라(伊羅鉢多羅)용왕이 수미금복산(須彌金福山) 주변의 7보(寶)로 꾸민 궁전에 살면서 여러 용녀들과 서로 재미있게 놀다가 만일 도리천궁에 올라가서 공양을 올리고자 하면,
몸을 7만 유연(由延)의 서른두 개의 머리로 변화해서 낱낱 머리의 가장자리에 일곱 개의 어금니가 있고,
낱낱 어금니 위에 보배로 된 목욕 연못[浴池]이 있고,
낱낱의 연못 가운데 7백의 연꽃이 피어 있고,
낱낱의 연꽃에서 7백의 옥녀가 서로 재미있게 놀면서 노래와 음악을 하며, 거문고와 비파와 북을 연주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으며, 다시 7보를 비처럼 내려서 무릎까지 이르게 하듯이,
보살대사도 마찬가지라서 네 가지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가피(加被)하고 7각의(覺意)의 다함없는 법재(法財)를 비처럼 내려, 그 지향(志向)에 따라 모두 도의 열매를 이루니,
이것을 보살이 제5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여래가 권도의 방편으로 때에 맞게 적절히 교화해서 다녀야 할 때 다닐 줄 알고,
앉아야 할 때 앉을 줄 알고, 말해야 할 때 말할 줄 알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할 줄 안다.
중생의 심식(心識)이 생각하는 바에 두루 들어가서 병에 따라 치료하되 더하거나 덜하게 하지 않으며, 널리 무위(無爲)의 언덕에 영원히 처하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6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여서 중생을 교화하여 인도하시면서도 스스로의 안위를 돌보지 않으시고,
일체의 사람을 위하기 때문에 백천 겁을 지나도록 저 사람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걸 싫어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부처님 지혜에 편안히 처하여서 위없는 도를 이루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7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모든 부처님이 출현해서 법계를 무너뜨리지 않으시나니,
법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면서도 스스로 그렇지 않으며,
여여(如如)한 진제(眞際)는 무너뜨림이 있지 않고 또한 무너뜨림이 있지 않음도 아니며,
닦아서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무서워하지도 않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8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면 마땅히 다시 일상(一相)이면서 무상(無相)임을 갖추시나니,
손가락 튀기는 동안에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 가운데서 3세의 모든 부처님을 낳는데, 실다워서 다르지 않으며 또한 변하여 바뀌지도 않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9의 업을 닦아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부처님은 세상에 출현해서 중생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하루의 수(數)로써 3세를 1겁이 되게 하지만, 그 속의 중생은 깨달아 아는 이가 없느니라.
이것을 보살이 처음 태어나 땅에 떨어질 때 왼발을 들고 제10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佛樹]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처음 태어나 땅에 떨어지면서 일곱 걸음을 걷는데,
그 중간에서 다시 마땅히 열 가지 법을 사유하여 외도를 항복시키고 마군의 그물을 찢어버렸으며,
또 온갖 하늘사람의 호위 속에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고 나아가 멸도에 이르기까지 끝내 버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인가?
여기서 족성자여, 먼저 마땅히 마군을 항복시켜야 하나니, 몸에는 자비와 인애(仁愛)의 갑옷을 입고, 손에는 지혜의 칼을 잡고 훌륭한 방편으로 앞을 인도하며, 머리에는 무외(無畏)의 꽃다발[華鬘]을 이고 교만한 무리를 꺾어 없애서 자만(自慢)함을 없애느니라.
족성자여, 이것을 먼저 제1의 얻기 어려운 법을 닦아야 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다시 마땅히 현묘함의 넓은 뜻을 생각하여 번뇌를 끊고 증득을 취해야 하느니라.
저 외도를 다스려 우두머리가 되어서 신족(神足)과 신력(神力)의 한량없음으로 가해야 하나니, 상대가 하나를 나타내면 나는 반드시 둘을 나타내어서 삿된 무리로 하여금 바른 소견에 편히 처하게 하여야 한다.
족성자여, 이것을 보살이 제2의 얻기 어려운 법을 반드시 염(念)하면서 닦아야 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보살대사는 중생을 교화하면서 법의 기쁨을 받는데, 반드시 견고함에 이르러야지 다른 도에 나아가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3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모든 부처님의 항상 행하시는 법은 낮과 밤 네 때[四時]에 중생을 관찰하면서 손가락 튀기는 동안에 시방 항하 모래알과 같이 많은 세계를 두루하시는데, 두루하고서 다시 시작해도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시니,
이것을 보살이 제4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걸림 없는 지혜를 행함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원만하여, 비록 중생을 제도했으되 제도를 행하였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5의 얻기 어려운 법을 닦아 익힘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보살대사가 신족의 힘으로써 시방 항하 모래알과 같이 많은 국토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심식(心識)이 생각하는 바를 두루 관찰하는데,
어떤 경우엔 하나의 몸이 백천의 몸으로 변화하였다가 도로 합해서 하나가 되지만 깨달아 아는 이가 없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6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보살이 4무애지를 사유하는데,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닦는 바가 아니며, 또한 하늘ㆍ용ㆍ귀신ㆍ8부 대중이 능히 미칠 바가 아니니,
이것을 보살이 제7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여래의 신력은 불가사의해서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국토들을 하나의 티끌 구멍에 집어넣고 두루 돌면서 오고 가되 걸림이 없고, 원래로 회복해도 예전 그대로이지만 깨달아 아는 이가 없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8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네 가지 변재와 생멸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원만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9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모든 부처님은 다함없는 법문을 행하여 중생을 덮어 주시니,
10력(力)과 4무외(無畏)와 열여덟 가지 함께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의 법이다.
이것을 보살이 제10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하여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