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나찰집 중권
[애욕]
보살이 곧 네 가지의 취를 버리고 다시 애를 붙드니,
애가 보살에게 말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정반왕의 아드님이여, 그대는 무량한 겁 동안에 모든 공덕을 짓고 모든 선행을 모았으니, 그대의 위력은 제석(帝釋)ㆍ대범천왕(大梵天王)보다 훌륭합니다.
그대는 잠시 멈추시고 나의 작은 공양을 받으십시오.”
보살이 물으셨다.
“너는 무엇으로 공양을 삼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다섯 근(根)에서 받은 다섯 가지의 욕락(欲樂)이 나의 공양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이 다섯 근으로써 나를 청하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나는 색(色)과 향(香)과 맛[味]과 촉감[觸]으로 그대를 청하려 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너는 지금 나를 향과 맛의 독한 과일로써 나를 청하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어찌하여 독이라 하십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이 다섯 가지의 욕락은, 비유컨대 염소를 불구덩이에 던진 것 같으며, 소경이 구렁텅이에 빠진 것 같아서, 해탈을 멀리하고 열반의 문을 막으니, 지혜 있는 사람은 꿈속에서도 버리려 하는데, 하물며 깨어 있을 때이겠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모든 하늘의 5욕(欲)이 수승하지 않은가요?”
보살이 말하였다.
“요술과 같고 꿈과 같으며, 손타라(孫陀羅)의 천녀가 단정한 것과 같으며, 해가 하늘에 오른 것 같아서 궁전과 음악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되,
복이 다하고 목숨을 마치면 도리어 지옥에 떨어지니, 어찌 속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만일 욕계(欲界)의 일을 싫어한다면 색계(色界)의 모든 하늘이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그 색계는 선정(禪定)에 안주하여 모든 허물이 적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그 색계의 괴로운 일을 내가 모두 안다.”
애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어떻게 관찰하여 아십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비록 선정을 얻어서 범세(梵世)에 태어나나, 복이 다하고 목숨을 마치면 3악도(惡道)에 떨어지니,
비유컨대 뜨겁게 달군 쇠가 물을 뿌리면 도리어 차가워지는 것과 같이,
중생도 복이 엷어져서 바퀴 돌 듯하며 고통을 받으리라.”
애가 대답하였다.
“그대의 견해로는 최상(最上)의 유정(有頂)도 그대의 마음에 천히 여기기를 잡초와 같이 하시겠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무엇을 유정이라 하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네 가지의 무색계(無色界)를 유정이라 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네 가지의 무색계에 어떠한 체상(體相)이 있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그 무색계의 모든 하늘은 수명이 8만 대겁(大劫)이나 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그 대겁이 다하면 다시 어떤 것을 받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8만 겁이 다하면 마쳤다고 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오, 괴이하다. 욕계를 관찰하니 괴로움이 무량하고,
색계를 관찰하니 체성이 반드시 망가지고,
네 가지의 무색계에 이르러서도 죽음을 면치 못하니,
세계 안에는 즐거움이 적고 괴로움이 많으니 매우 불쌍한 일이구나.”
애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만일 나의 경계를 벗어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즐거움을 구하겠습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너의 경계란 어디 있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일체의 유위(有爲)는 나의 경계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일체의 유위는 죽어야 자재하니, 이것이 너의 경계인가?
나는 지금 유위의 경계를 뛰어넘었으니 죽음이 이르지 못하며,
영원히 죽음을 여읜 곳이며, 사랑하는 것과의 이별과 미워하는 것과의 만남이 없는 곳이며,
생ㆍ노ㆍ병ㆍ사ㆍ우ㆍ비ㆍ고ㆍ뇌가 없는 곳이며,
5음(陰)이 다한 곳이며, 5근(根)이 멸한 곳이며,
일체의 근이 쓸모가 없는 곳이며, 일체의 지혜로 감로를 뚫어내는 곳이니,
이러한 곳들을 어찌 너의 경계를 벗어났다고 말하지 못하겠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비수밀다라바타(毘輸蜜多羅婆吒)와 같은 무량한 선인이 모두 이러한 말을 했으나, 얻는 이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그들은 비록 구하고자 하나 방편을 모른다.”
애가 대답하였다.
“그대는 지금 어떠한 방편이 있습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너는 지금부터 중생을 속이는 일과 모든 교만을 버려야 한다.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뽑아 버리되, 마치 큰 코끼리가 작은 풀을 뽑는 것과 같이 하리라.”
애가 대답하였다.
“훌륭합니다. 마음 큰 중생이시여. 나는 수(受)에게 의지하였으니 마땅히 먼저 수를 항복 받으십시오.”
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자세히 일체 존재의 삶을 관찰하니, 모두 괴로움의 체상(體相)을 두려워하고, 모든 근을 부지런히 움직여 즐거움을 구하였다.
즐거움이 자재하지 못하고, 남[他]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있으니, 이는 거짓이며 잠깐 있는 법이다.
무릇 어리석은 이들은 비록 자주 즐거움을 얻으나 뜻에 만족함이 없으니,
즐거움은 방일하게 되어 능히 모든 근(根)을 겁탈하고,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게 하여 범부에 빠지게 하니, 파리가 꿀에 빠진 것 같이 얻은 맛은 적고 잃은 것은 많다.
좋고 추한 것을 분별하지 않고 보는 대로 애착을 내니, 기름을 큰 불에 붓는 것 같아서 치성한 불꽃이 배나 더하는구나.
애(愛)는 잠깐 있어라. 내가 수(受)를 사로잡아다가 너까지 다스리겠다.
너와 수의 허물이 각각 같으면 마땅히 너도 죄를 주리라.”
“정반왕의 태자여, 그대가 비록 애써서 이 뜻을 갖고자 하나 나를 금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겁초(劫初)의 옛날에 황두(黃頭) 따위의 큰 선인이 있었으니, 좋은 때에 태어나서 수명이 8만 세며 도덕이 두터웠지만, 오히려 나를 이기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그대는 말세의 악한 때에 수명은 단축되어 백 년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악한 세상에 나왔는가?”
애가 말하였다.
“진실로 악한 세상에 나왔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오늘날 비록 번뇌가 치성하고 흐린 때에 태어났지만,
만일 너희들 무명의 문을 깨뜨리지 않으면 어떻게 대장부라 불리랴.”
애가 말하였다.
“자기 자랑을 하지 마십시오.”
보살이 말하였다.
“나는 때를 맞추어 말했는지라, 때에 어긋나는 말이 아니며, 옳은 때, 옳은 곳에서의 진실된 말이며, 뜻이 있는 말이다.
마치 해가 처음 돋을 때에 광명을 가리지 못하니, 큰 사람의 지혜도 숨기기 어려운 것이다.”
애가 말하였다.
“그대의 뜻을 보건대 비록 용맹스러우나 아직 성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스스로 칭찬하시니 구름과 번개가 이는 듯합니다. 큰비를 내려야 공작이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다만 구름과 번개만을 일으키고 빗물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마른천둥이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내 짐작으로 그대를 요량하건대 그대는 허망한가 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지금 너에게 허망치 않은 일을 보이리라.
내가 무량한 겁에 쌓은 선행과 한 마음의 선정과 지혜의 날카로운 칼은 마땅히 너를 베는 데 쓰리라.”
애가 대답하였다.
“무엇이 끝나겠습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지금 누가 나에게 요란한 인연이 되려 하여 이러한 노래 소리를 내며, 누구의 맺힘과 번뇌의 손으로 3유(有)의 거문고를 퉁겨, 일체의 첨곡한 중생을 미혹하게 하는가?”
애가 대답하였다.
“내가 정히 이러한 노래 부르는 이와 거문고 연주하는 이를 인도하고자 하였으니, 그가 나의 근본입니다.
나는 지금 그에게 부림을 당하고 있으며, 그에게 심부름을 해 줍니다.”
보살이 물었다.
“이 애가 바로 사랑인가?”
“그렇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애는 가장 큰 불길이라, 능히 갖가지를 태우고 곳곳에 모두 두루하니,
즐거움에 애착하는 이는 모두 애(愛)에 떨어지고, 어리석은 이가 그 가운데 떨어지되, 개미가 불에 뛰어드는 듯하다.”
“다 관찰하십시오.”
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알기에는 탐욕의 즐거움과 생사의 즐거움이 반드시 애에게 해를 입고, 맛있는 것을 즐기는 새와 짐승은 반드시 그물이 얽는다.”
“그대는 진실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능히 모든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유(有)의 즐거움에 탐착하게 하며, 뒷몸[後身]에 반드시 굳은 괴로움을 줍니다.
중생이 유의 즐거움을 탐내는 것은 나의 것이며, 내지 유정(有頂)에 태어났다가 다시 떨어지게도 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너는 망령된 말을 말라.
세간에서 극히 목마른 것은 사랑보다 더함이 없으니,
마치 짠물을 마시면 더욱 목이 마르는 것과 같이 유(有)의 짠물을 마시면 애만이 더한다.”
“그대는 나를 죽이지 마시오.”
보살이 말하였다.
“너의 말은 비록 착하나 너의 마음은 악한 것을 품으니, 만일 너를 제거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안심하리오.
비록 그러나 너는 잠깐 기다리라. 내가 애를 항복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