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학입문 상권
제9장 초선정
수행자가 욕계의 미도지정 가운데서 ‘움직이는 감촉(動觸)’의 열 가지 선법善法을 얻고, 움직이는 감촉이 발생한 뒤 또 열여섯 가지 감촉을 증득하여 성취하는 것이 초선의 모습이다.
즉 미도지정에서 선정에 점점 깊이 들어가면 몸과 마음이 비고 고요하여 안팎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나 이레를 경과하고 혹은 한 달이나 한 해가 지나도록 선정에 든 마음을 허물지 않으며 지키고 증장시키면, 선정 중에 홀연히 몸과 마음이 응집되어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움직일 때 도리어 그 몸이 구름 같고 그림자 같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먼저 몸의 윗부분에서부터 생기면 대부분 선정에서 물러나게 되고, 먼저 아랫부분에서부터 생기면 선정이 진전되는 경우가 많다.]
움직이는 감촉이 일어날 때는 공덕이 한량없으나 대략 말하면 열 가지 선법善法이 권속이 된다.
첫째 안정됨(定),
둘째 걸림 없음(空),
셋째 밝고 깨끗함(明淨),
넷째 희열喜悅,
다섯째 즐거움(樂),
여섯째 좋은 마음이 생김(善心生),
일곱째 지견이 밝아짐(知見明了),
여덟째 번뇌의 얽힘에서 벗어남(無累解脫),
아홉째 경계가 눈앞에 나타남(境界現前),
열째 마음이 고르고 유연함(心調柔輭)이다.
이 열 가지 권속이 움직이는 감촉과 함께 생겨 하루가 가기도 하고 혹은 한 달이나 한 해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지나간 뒤에는 다시 다른 감촉들이 차례대로 일어난다. 움직임(動)ㆍ가려움(痒)ㆍ시원함(凉)ㆍ따스함(煖)ㆍ가벼움(輕)ㆍ무거움(重)ㆍ거침(澁)ㆍ매끄러움(滑) 등의 여덟 감촉과
흔들림(掉)ㆍ기댄 느낌(猗)ㆍ차가움(冷)ㆍ뜨거움(熱)ㆍ들뜸(浮)ㆍ가라앉음(沈)ㆍ딱딱함(堅)ㆍ부드러움(輭) 등의 여덟 감촉,
합하여 열여섯 감촉이 된다.
여기에도 권속으로 수많은 선법이 있다.
왜 그런가?
색계의 청정한 사대가 욕계의 몸속에 머물게 되면 거친 것과 세밀한 것이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흔들림(掉擧) 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열여섯 가지 감촉은 다 갖춰지는 경우도 있고, 혹은 다 갖춰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미도지정을 얻기 전에 먼저 이 감촉이 일어나게 되거나 또는 열 가지 선법이 수반되지 못하면 대부분 병든 모습이거나 혹은 마사魔事이니 반드시 잘 분별해야만 한다.
초선에는 다섯 가지 지支가 있다.
첫째는 각지覺支이니, 처음 마음으로 지각해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관지觀支이니, 세밀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희지喜支이니, 그 마음이 경사스럽고 기쁜 것을 말한다.
넷째는 낙지樂支이니, 그 마음이 편안하고 담담한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일심지一心支이니, 고요히 흩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지支’란 갈래가 나뉜다는 뜻이며 가지가 지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나무가 뿌리와 줄기로 인하여 가지가 있고, 또 뿌리와 줄기는 하나뿐이지만 가지는 각각 다른 것과 같다.
지금 한 선정의 마음속에서 다섯 가지 지가 생겨나는 것이 마치 많은 나무가 숲을 이루는 것과 같으므로 또 지의 숲(支林)이라고도 한다.
욕계의 미도지정에도 비록 하나의 고요한 선정심禪定心이 있긴 하지만 각과 관 등의 다섯 가지가 서로를 지탱하지 못하므로 선정에 든 마음이 얕고 엷어서 잃어버리기가 쉽다.
만약 초선을 얻어 다섯 가지 지가 숲을 이루면 선정에 든 마음이 안온하고 굳세어서 파괴하기 어렵다.
초선을 ‘벗어났다(離)’고도 하고 ‘갖추었다(具)’라고도 한다.
벗어났다는 것은 다섯 가지 덮개(五蓋)를 벗어났음을 말하고, 갖추었다는 것은 다섯 가지 지(五支)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제2선ㆍ제3선ㆍ제4선에도 모두 지의 숲이 있다.
따라서 모두 이구선離具禪이라 한다.
제10장 제2선정
초선의 미도지정에서 각과 관을 싫어하여 떠나게 되니, 이것을 ‘성스러운 침묵의 선정(聖黙然定)’이라 한다.
[사선四禪의 미도지정 뒤에는 모두 고요한 마음이 있다. 이전의 선은 물러나고 새로운 선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 그 마음이 조용하고 고요한 것을 말한다.]
각覺이란 신근身根과 신식身識이 상응하는 것을 말하고,
관觀이란 의근意根과 의식意識이 상응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 법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므로 받아들이거나 집착하지 않아서 그 마음이 고요한 것이다.
수행자가 초선의 허물을 다스릴 수 있으면 초선의 다섯 가지 지와 고요함까지 모두 물러간다.
초선은 이미 떠났고 제2선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 사이에도 또 선정법이 있다.
이것을 중간선中間禪이라고 하는데, 그 마음이 모두 사라져 없어진 듯한 것이다.
한마음으로 오로지 정진하여 공들이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마음이 맑고 고요해져 흩어짐이 없게 되는데, 이를 미도지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오랜 시간 동안 잃거나 물러나지 않으며 마음을 오로지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마음이 확 트여 밝고, 맑고, 희고, 깨끗해지면서 선정의 마음이 기쁨과 함께 일어난다.
마치 어떤 이가 어두운 방에서 나와 바깥의 광명을 보는 것처럼 활연히 밝아진다.
열 가지 선법은 초선에서 일어난 모양과 같으나 기쁨이 더 크고 아름답고 오묘해 초선보다 뛰어나다.
다만 초선은 촉觸의 즐거움을 느낄 때 신식身識과 상응하기 때문에 ‘바깥의 깨끗함(外淨)’이라고 하는 데 반해,
제2선에서는 심식心識과 상응하기 때문에 ‘안의 깨끗함(內淨)’이라 한다.
마음에 각과 관이 있으면 ‘안의 더러움(內垢)’이 되지만 지금은 각과 관이 없으므로 ‘안의 깨끗함(內淨)’이 된다.
제2선에는 네 가지 지가 있다.
첫째는 내정內淨,
둘째는 희喜,
셋째는 낙樂,
넷째는 일심一心이다.
일심지一心支란 비록 기쁨과 즐거움이 있긴 하지만, 안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반연하지 않고 밖으로 생각을 반연하지 않아 한마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일심지라 한다.
제11장 제3선정
제2선은 일명 희구선喜俱禪이라고도 하니, 그 선정이 기쁨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제3선은 일명 낙구선樂俱禪이라고도 하니, 이 선정이 몸 전체에 가득한 즐거움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제2선을 관찰하면 선정이 안의 깨끗함으로부터 일어나긴 하지만 큰 기쁨이 용솟음쳐 선정이 견고하질 못하다.
따라서 세 가지 법으로써 그것을 물리치니,
첫째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다스리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을 관찰하여 끝까지 검토하는 것이다.
모든 선정에서 허물을 다스릴 때 모두 이 세 가지 법을 쓴다. 끝까지 검토해 허물을 알고, 허물을 알아서 다스리며, 다스려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쁨과 고요함이 점차 물러난다.
제3선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중간에도 선정이 있다. 일심으로 오로지 제3선의 공덕을 상념하면 그 마음이 맑고 고요하게 되는데, 이것이 제3선의 미도지정이다.
그 후에 마음이 없어진 듯 선정에 들어가니 안팎에 의지하지 않고 즐거움과 함께 일어난다.
이에 따르는 공덕의 권속은 앞서 말한 것과 같다.
다만 용솟음치는 기쁨이 없고, 면면히 이어지는 즐거움이 안의 마음에서 일어나 아름답고 오묘함이 비유하기도 어려운 점이 다를 뿐이다.
즐거움의 선정(樂定 : 第三禪)이 처음 생겨 아직 몸에 두루 미치지 않았을 때 대부분 세 가지 허물이 있게 된다.
첫째는 즐거움의 선정이 아직 얕은데도 그 마음이 가라앉아서 지혜의 작용이 적은 것이다.
둘째는 즐거움의 선정은 미약한데 마음과 지혜가 세차게 일어나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는 즐거움과 지혜가 모두 면면하고 미묘하면 대부분 탐착을 일으켜 그 마음이 미혹하고 취해 버린다.
그러므로 경전에 “이 즐거움을 성인은 버릴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은 버리기 어렵다.”라고 하였으니 수행자는 잘 조절해야만 한다.
만일 마음이 가라앉으면 염念ㆍ정진精進ㆍ혜慧 등의 법을 써서 북돋워야 한다.
만일 마음이 지나치게 일어나면 삼매 선정의 법을 생각하여 그것을 거둬들여야 한다.
만일 마음이 미혹되어 취하면 나중의 즐거움과 여러 가지 뛰어나고 오묘한 법문을 생각해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이 집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약 즐거운 법을 잘 닦는다면 그것이 점점 늘어나 온몸에 가득 찰 것이다. 이때는 식을 일으키는 바깥 경계가 없어도 즐거운 법이 안에서 나와 모든 근根에 가득 차고 의식과 상응할 것이니, 세간의 제일가는 즐거움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다.
제3선에도 다섯 가지 지가 있다.
첫째는 사捨,
둘째는 염念,
셋째는 지智,
넷째는 낙樂,
다섯째는 일심一心이다.
사지捨支란 즐거움의 선정이 생겨날 때 기쁜 마음을 버리는 것이고,
염지念支란 조화롭고 적당함을 되새겨 즐거움을 늘어나게 하는 것이고,
지지智支란 세 가지 법을 알맞게 써서 세 가지 허물을 벗어나는 것이고,
낙지樂支란 상쾌한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며,
일심지一心支란 즐거움을 누리던 마음이 쉬어 한마음으로 고요하고 안정된 것이다.
제12장 제4선정
수행자는 제3선에서 즐거움에는 고통과 근심이 있음을 깊이 보고 한마음으로 싫어하면서 다스려서 집착하지 않는다.
이에 움직이지 않는 선정(不動定)인 제4선을 구하면 미도지정에 들어가 마음에 움직임이나 흐트러짐이 없게 된다.
그 후에 활연히 눈앞이 열리고 선정에 든 마음이 안온해지면서 들고 나는 호흡이 끊어지니, 이것이 제4선이다.
선정이 일어날 때,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사수捨受가 함께 생겨나므로 사구선捨俱禪이라 한다.
마음이 밝은 거울처럼 움직이지 않고, 또한 맑은 물에 파도가 없는 것처럼 모든 어지러운 생각이 끊어지고 바른 생각이 견고하며, 허공처럼 모든 더러움에 물듦이 없으므로 또한 부동정不動定이라 한다.
또 세간의 진실한 선정(世間眞實禪定)이라고도 한다.
이때 수행자는 마음이 선善에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악惡에 의탁하지도 않는다. 의지하여 기대는 바가 없고 모양도 없고 바탕도 없으나 신통변화가 모두 이 선정으로부터 나온다.
제4선에는 네 가지 지가 있다.
첫째는 불고불락지不苦不樂支,
둘째는 사지捨支,
셋째는 염청정지念淸淨支,
넷째는 일심지一心支이다.
이 선정은 처음 일어날 때 사수와 함께 일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과 상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고불락’이라 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선정을 얻고 나면 아래 단계의 뛰어난 즐거움을 버리고도 혐오나 후회를 일으키지 않는다. 또 선정에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음이 생각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지’라 한다.
선정이 명료하여 평등한 지혜로 비추어 깨달으므로 ‘염청정지’라고 한다.
선정에 든 마음이 고요하여 온갖 대상을 대하여도 마음에 움직임이 없으므로 ‘일심지’라 한다.
대개 이 제4선에서는 여전히 색계의 속박이 남아 있다.
외도들은 유위법인 몸과 마음이 생멸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여 고요하고 영원하며 즐거운 열반을 구하려고 하지만 진실로 색을 파괴하는 법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삿된 지혜로 그 마음을 없애고는 삿된 법과 상응하여 마음에 기억과 생각이 없게 되면 열반을 증득했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 목숨을 버리고는 무상천에 태어나는데, 여전히 이는 색계色界이며 또한 객천客天이라고도 한다.
혹 어떤 수행자는 색이 있는 게 감옥과 같다고 여겨 한마음으로 색을 파괴하고는 곧장 네 가지 공한 선정(四空定)을 닦는데, 이는 범부선凡夫禪이다.
만일 불제자라면 자신의 수행을 갖춘 뒤엔 다시 남들을 이롭게 하고자 하므로 먼저 사무량심을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