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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La Peste)
작가와 작품⦁⦁⦁
카뮈(Camus, Albert, 1913~1960)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난 알베르 카뮈는 44세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수상 이유로 ‘인간의 양심에 관한 문제에 빛을 던진 업적’을 들었다. 카뮈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프랑스를 침입했을 때 한 번은 고향에 돌아갔으나 다시 파리로 돌아와 위험한 저항 운동에 참가한 적도 있었다. 인간이 양심을 유일하게 지킬 곳은 악이나 부조리와 어떻게 싸워 이기냐에 있다. 라고 카뮈는 생각했고, 이것은 그의 문학에서 일관된 테마였다. 이 점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페스트⟫(1947)는 실제 있을 만한 사실의 기록으로서 읽힐 수도 있지만 좀더 우의 어떤 일에 빗대어 뜻을 은연중에 나타냄-옮긴이)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페스트로 오염된 마을을 이 지구와 바꿔 놓고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 기록의 주제를 이루는 사건은 1947년 알제리 해안에 있는 프랑스의 1현청소재지 오랑에서 일어났다.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도 리외는 계단에서 죽은 한 마리 생쥐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거리까지 나와서야 그 생쥐가 평서에는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되돌아가 문지기 미셀 노인에게 주의를 시켰다. 같은 날 저녁, 리외는 아파트 현관에서 큰 생쥐가 비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생쥐는 작은 울음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돌더니 입을 반쯤 벌린 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는 생쥐가 토한 피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걱정거리로 되돌아갔다. 1년이나 앓아누워 있는 그의 부인이 내일 산속의 요양소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리외는 서른다섯 살, 그의 부인은 서른 살로, 앓느라 수척해졌지만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젊은 시절 그대로였다. 4월 17일, 리외가 아랫마을에 왕진을 하러 가자, 어디를 가도 온통 생쥐 얘기뿐이었다. 열흘 후 신문은 8천 마리의 쥐를 모아서 쌓여 놓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생쥐의 출현은 줄어들었으나 어쩐 일인지 원인 불명의 열병에 의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사망자는 하루에 30명에 이르렀다. 리위는 식민지 총독부에 보내기 위해 그 열병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로부터 며칠 지나 지사가 한 통의 전보를 보여 주었다. 전보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페스트라는 사실을 발표하고, 시를 폐쇄하라.’ 시를 폐쇄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드러난 결과 중 하나는, 졸지에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며칠 아니면 몇 주 후에는 재회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역에서 이별을 했던 사람들은 이제 서로 볼 수도,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없게 돼 버렸다. 편지가 병균의 매개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종이로 글을 써서 교환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시킨 것이다. 처음에는 허가했던 시외전화도 긴급한 경우만 빼고는 제한되었다. 시민에게 남겨진 유일한 전달 수단은 전보뿐이었는데, 전보에 사용하는 문구를 순식간에 다 써 버려 나중에는 “여긴 무사해. 잘 지내길” 정도의 의례적인 문구만을 정기적으로 주고받게 되었다. 시외 출입구에는 위병들이 배치되었고, 항구가 폐쇄되고, 해수욕이 금지되었다. 시내로는 교통수단이 한 대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가 폐쇄되고 3주일째, 금주의 사망자가 302명이라고 보도되었으나 이 숫자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시의 인구가 20만이 넘었지만 평소에는 사람이 일주일에 어느 정도 죽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5월 말경, 지사는 식량 보급을 제한하고, 석유를 할당제로 대 주는 조치를 취했다. 전기를 절약하기 위한 방도도 규칙으로 정해 놓았다. 많은 상점이나 사무소가 폐쇄되어, 이로 인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진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나 카페에 넘쳐 났다. 카페에는 상당량의 알코올 음료가 저장되어 있었던 덕분에 시민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어떤 카페는 ‘품질 좋은 술은 세군을 죽인다’라는 광고를 내걸었다. 매일 밤 수많은 술주정꾼이 길거리에 넘쳤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마을과는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문제의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뜻의 증명서를 써 주실 수 없을까요? 그 서류가 도움이 될 걸 같습니다”라고 레이몽 랑베르는 리외에게 문기자로, 파리에서는 애인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겠습니다만.” 리위가 말했다. “하지만 그 증명서를 써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 병에 걸렸는지안 걸렸는지 알지 못하며, 또 당신이 이 진료실을 나가 현청으로 가는 도중에 병에 감염될 리가 없다고도 보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증명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왜죠?” “이 마을에는 당신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몇 천 명이나 있죠. 그 사람들을 다 내보내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페스트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정말 바보 같은 얘기죠.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저희들 모두와 관계가 있는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안타깝게도 당신도 지금부터는 여기 사람이 되는 셈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랑베르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먼저 인도적인 문제야. 당신은 추상적인 세계에 있는 거라고요. 어쨌든 난 어떻게 해서라도 이 마을에서 빠져나갈 겁니다.” 리외는 5백 명의 페스트 환자가 수용된 병원의 운영을 맡고 있었다. 그는 진료실과 마주한 방에 환자의 접수실을 만들게 했다. 바닥을 파내고 크레졸 액을 채워 놓고 그 한가운데에 벽돌로 작은 섬처럼 만들게 했다. 환자를 그 섬에 옮겨서 재빨리 옷을 벗기고 그 옷은 크레졸 액 속에 떨어뜨렸다. 환자의 몸을 깨끗이 씻기고 잘 닦아서 병원용 까칠까칠한 잠옷으로 갈아입힌 후 리외의 손에 건네졌다가 병실로 옮겨졌다. 리외는 병원 내에서의 진찰이나 왕진으로 너무 바빠, 늘 늦은 밤에야 귀가 했다. 그는 아주 건강하고 인내력이 강했지만 매일 계속되는 왕진에 견딜수 없게 되어 갔다. 유행성 열병이라는 진찰 결과는 병자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병자의 가족도 예방을 위해 격리되었다. 그들은 완치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그 병자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도, 페스트의 사망률이 75퍼센트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매일 밤 사람들은 리외의 팔에 매달렸고, 아무 소용이 없는 말과 눈물을 쏟아 냈다. 그리고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엄청난 비단과 허무한 감정의 발작을 일으키게 했다. 6월 말, 지독하게 뜨거운 바람이 하루 종일 불었고, 희생자 수는 일주일에 7백 명으로 급상승했다. 집들의 문은 뜨거운 바람과 햇볕과 페스트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꼭꼭 닫혀 있었다. 때때로 새어나오는 신음 소리에 길을 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신음 소리가 인간의 자연스런 언어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신문에는 마을에서 나오지 말 것을 거듭 주지하는 기사가 실렸고, 이를 어긴 자는 사형을 면치 못한다는 포고가 발표되었다. 말을 탄 경비대가 시내를 순회했고, 생쥐에게서 페스트균이 읆은 벼룩을 뿌리고 다닐지도 모르는 개나 고양이를 죽이는 임무를 맡은 특수부대의 발포 소리가 가끔 멀리서 울려왔다. “나는 사형선고는 딱 질색입니다.” 장 타루가 말했다. 그는 페스트 소동이 일어나기 몇 주 전에 오랑에 와서 지금은 호텔에 묵고 있는 사람으로 상당한 재산가였다. “그래서요?” 리외가 말했다. “그래서, 전 지원자를 모아 보건대를 만들까 합니다. 당국에서만 처리하기에는 손이 부족하겠죠? 물론 저도 참가할 겁니다.” “그러나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 일은 목숨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 점을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백년 전에 페스트가 창궐한 페르시아의 어느 마을에서, 대다수의 주민이 죽어 갈 때 시체를 깨끗이 씻어 줄 남자만이 도움이 됐다고도 하더군요.” 당당 그 다음 날부터 타루는 맘먹은 대로 일을 시작해서 몇 개의 그룹이 조직되었고, 시내의 소독이나 의사의 진료 보조, 환자 운반 같은 일을 처리했다. “전에 말한 건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리외가 묻자, 랑베르는 포섭한 위병들의 안내를 받아 시외로 탈출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리외는 그것을 저지할 생각이 없었다. 멀리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개, 아니면 탈주범?” 타루가 말했다. 곧바로 구급차가 사이렌을 올리며 호텔 창문 밑을 지나갔다. 랑베르는 말했다. “어떠세요, 타루 씨? 당신은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 죽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지금은.” “그렇겠죠. 그러면서도 당신네들은 하나의 관념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겠죠. 저는 스페인 전쟁에도 나갔는데, 이젠 관념을 위해 죽겠다는 무리는 딱 질색입니다. 저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은 오로지 사람을 위해서 죽고 사는 일입니다.” 리외는 랑베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따스하게 말했다. “인간은 관념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번 일은 영웅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실함이 따르는 문제입니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함이라는 것입니다.” “성실함이란 어떤 겁니까?” 문득 진지한 표정을 한 랑베르가 물었다. “제 경우 성실함이란 그러니까 자신의 직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전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랑베르는 리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와 함께 보건대에서 일하지 않겠습니까? 마을을 나갈 방법을 찾을 때 까지요.” 8월 중순이 되자, 페스트가 온갖 것을 다 뒤덮고 있었다. 이미 개인의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페스트라는 집단적인 사실만 있을 뿐이었다. 사망자가 급증함에 따라 관도 부족하고 묘지 내의 장소도 태부족이었다. 관은 소독해서 셀 수도 없이 다시 사용되었다. 시체마다 개별적으로 무덤 구덩이를 파던 것을 남자용과 여자용으로만 나뉜 거대한 무덤 구덩이 두 개로 팠다가 나중에는 마지막 남은 수치심마저도 사라져, 남자와 여자의 시체는 뒤섞이고 포개져서 묻혔고, 그 위에는 석회가 잔뜩 뿌려졌다. 리외의 선배인 카스텔이라는 의사가 만든 혈청으로 실험을 실시하게 된 것은 10월 하순의 일이었다. 그 실험 대상은 절망적인 상태라고 판정이 난 소년이었다. 그 실험 대상은 절망적인 상태라고 판정이 난 소년이었다. 모두들 이 결정적인 실험 효과를 살피려고 소년의 침대를 둘러쌌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아이들이 죽는 것을 보아 왔지만 이번처럼 아침부터 온종일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아직 없었다. 소년은 위 부위에 압박이 가해지는 듯, 가냘픈 신음 소리를 내며 수도 없이 몸을 구부리고 경련처럼 몸을 떨며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눈을 새빨개지고 그 눈꺼풀에서 커다란 눈물 방울이 솟구치며 납빛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년은 흐트러진 이불 속에서 책형에 처해진 사람 같은 자세로 고통스러워했다. “이렇게 죽는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괴로워한 게 돼 버리는 거야.” 파늘루 신부가 말했다. 그는 박학다식하고 전투적인 예수회의 수도사로, 보건대의 일원이기도 했다. 리외는 파늘루 신부에게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소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회색 점토처럼 변해 버린 소년의 얼굴의 움푹 팬 곳에서 입이 열렸다고 생각되자 이어지는 비명은 수많은 인간들에게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고 생각될 만큼의 엄청난 비명이 뿜어져 나왔다. 리외는 입술을 깨물었고, 파늘루는 “신이시여, 이 아이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라고 외쳤다. 소년의 비명은 점차 잦아지더니 결국은 들리지 않게 되었다. 투쟁은 끝을 고했다. 소년은 갑자기 잔뜩 웅크리더니, 얼굴에 눈물 자국을 남긴채 누워 있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괴로움을 당하게 만들어진 이 세상을 죽어서까지도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리외가 말했다. “분명 당신도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일하고 계신 겁니다.” 파눌 신부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건강이 제게는 가장 큰 관심거리일 뿐입니다.” 시민들이 예언을 마구잡이로 믿고 애용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매일 노스트라다무스를 인용하고, 페스트가 종식될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페스트로부터 무언가 교훈 같은 것을 끌어내려고 했다. 시민들에게 이러한 미신이 종교를 대신해 주고 있었다. 이에 대항해서 어느 날 파늘루 신부의 설교가 행해졌다. 그는 청중을 향해 이렇게 단언했다.“신이 원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저것은 이해할 수 있어. 그러나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 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인가, 둘 중 하나입니다. 중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을 미워하든지 아니면 사랑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신에 대한 사랑은 어려운 사랑입니다! 그것은 자아의 전면적인 포기를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랑만이 아이들의 괴로움과 죽음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한 부탁입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교훈입니다.” 이 설교에 이어 일어난 당시의 상황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고 싶고, 파늘루 신부는 설교가 있은 날로부터 며칠 후에 페스트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죽음을 맞이했다. 페스트가 시작된 그 봄에 이 마을에 공연하러 온 오페라 단체는 매주 시럽오페라극장에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연이어 상연했는데,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겨울이 가까워져도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오페라는 지옥에서 죽은 아내를 데리고 온다는 줄거리인데, 늘 죽음에 관해서만 생각하고 있을 순 없는 데다 이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 많은 시민들에게는 적당한 자극제가 되었다. 리외가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라고 묻다, 타루는 대답했다. “그건, 공감이라는 것이죠.” “결국.” 타루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어떻게 하면 성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당신은 신을 믿지 않으시죠?” “그래서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성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이것이 오늘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하고도 구체적인 문제입니다.” 크리스마르 무렵, 리외는 쥐가 도로를 가로지르는 것을 목격했다. 격리 환자 중에는 회복 기미가 눈에 띠게 나타났고, 통계치는 병의 쇠퇴를 나타내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페스트가 끝나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도시의 문이 열리기 며칠 전, 페스트는 마지막 공격을 가했고, 타루는 그 희생자가 되었다. 타루를 간호하며 죽음을 지켜본 리외는 자기 부인이 죽었다는 연락도 평정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새해가 돌아오고, 2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도시의 문이 열렸다. 이날을 위해서 예약석을 미리 주문해 둔 승객을 가득 실은 열차가 시를 향해 들어왔다. 그중에는 랑베르의 애인도 있었다. 모든 광장마다 사람들이 가득 나와 춤을 추었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휴일이 없었다. 리외의 업무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 기록도 결말에 접어들었다. 이쯤해서 의사 베르나르 리외가 이 글의 작가라는 사실을 고백해도 될까. 항구에서는 축하의 불꽃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그때 의사 리외는 이 기록을 쓰겠노라고 결심했던 것이다. 즉, 인간에게는 경멸할 일보다는 찬미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 또한 페스트균은 결코 사멸할 리 없으며, 아마도 언젠가 인간에게 불행을 주고 교훈을 주기 위해 또다시 생쥐들을 일으켜, 어딘가 행복한 도시에 그들을 죽음의 사자로서 파견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려고.
⦁⦁⦁편집자의 한마디
⟪페스트⟫에서 카뮈는 다양한 인물-각각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 군을 대표하는-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더불어 인류 역사 속의 큰 사건 ‘페스트’라는 소재로 인간의 시련, 즉 부조리한 일을 표현함으로써 그것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한다. 이것은 단순히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이며, 페스트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언제 어디서 불어 닥칠지 모르는, 그래서 결국은 받아들이거나 맞서야 하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무너지거나 혹은 리외 의사처럼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페스트는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나타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삶의 실체이며, 카뮈는 리외 의사와 같이 페스트에 맞서려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서 독자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비록 그 희망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외롭게 켜진 약한 등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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