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독자가 어떤 상황에서 책 읽은 보람을 느낄지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남의 사생활을 두고 잡담을 주고받는 사무실 정수기 앞을 떠올리곤 한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의 판단과 선택을 두고, 회사의 새로운 정책을 두고, 동료의 투자 결정을 두고 잡담을 나눌 때,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를 내가 좀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남의 이야기일까?
내 실수보다 남의 실수를 잡아내고 거기에 이런저런 꼬리표를 붙이기가 훨씬 더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내 믿음, 내 희망에 의문을 품기란 상황이 아무리 좋을 때라도 쉽지 않다.
꼭 그래야 하는 때라면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때 관련 지식이 풍부한 사람의 생각을 알면 도움이 된다.
우리는 대부분 친구나 동료가 내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지 즉흥적으로 예상한다.
이때 어떤 판단을 예상하고 기대하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이 나를 두고 수군대는 이야기가 지적이길 기대한다면 사전에 진지한 자기비판을 하게 되고,
그런 기대는 직장과 가정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새해 결심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의사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
각 질병의 여러 증상, 전조증상과 원인, 전재 양상과 결과, 치료나 증상 완화를 위한 개입 등을 한데 모은
질병 정보 목록을 많이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의학 공부에는 의학 언어 습득도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판단과 선택을 더 깊이 이해할 때도 일상적으로 쓰는 말보다 더 풍부한 어휘가 필요하다.
남 이야기를 수군댈 때 좀 더 지적이길 기대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오류를 저지를 때 특정한 유형이 있기 때문이다.
편향이라 부르는 이런 체계적 오류는 특정 상황에서 여지없이 반복된다.
예를 들어 잘 생긴 사람이 당당하게 연단 위로 뛰어오를 때
우리는 청중이 그의 연설을 실제보다 더 호의적으로 평가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편향을 진단해 이름을 붙일 수 있 다면 (이 경우는 '후광 효과halo effect)
편향을 예상하기도 인지하기도 이해하기도 더 쉽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못할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흔히 하나의 의식적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차그차근 이어진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며, 그것이 전형적인 방식도 아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 세계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여러가지 인상을 받는다.
내 앞 책상에 스탠드가 놓여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하게 되ㅇ었는지,
전화기에서 들어오는 배우자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다는 걸 어떻게 감지했는지,
길을 가다 위협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위험을 의식하기도 전에 어떻게 피랄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할 수는 없다.
인상과 직관과 많은 결정들을 형성하는 정신 활동은 머리속에서 소리 없이 일어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직관 편향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오류 에 주목한다고 해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의학교재에서 질병에 주목한다고 해서 건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는 대체로 건강하고, 우리 판단과 행동은 대체로 적절하다.
우리는 삶을 항해하면서, 내가 받은 인상과 느낌에 나를 맡기고,
직관적 느낌과 호불호에 대한 자신감을 쉽게 정당화한다.
그러나 느낌과 호붏가 늘 옳지는 않다.
우리는 자신이 틀렸을 때도 자신감을 갖는 때가 많아서,
나보다 객관적 관찰자가 내 오류를 더 잘 발견하곤 한다.
따라서 내가 목표로 정한 정수기 앞 잡담은 이렇다.
타인에게 나타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게 나타나는 판단과 선택의 오류를
풍부하고 정확한 언어로 토론하면서, 그 오류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 키우기,
오류를 정확히 진단하면, 그 상황에 개입해, 판단이나 선택을 잘못해 생기는 손해를 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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