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중허마하제경 제2권
[감자왕과 자손들]
이 왕의 후로 자손들이 서로 계승하면서 1백의 감자왕이 있었는데, 보다락가성(補多落迦城)에 도읍하고 있었습니다.
그 최후의 감자왕에게서 넷의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의 이름이 오라가목가(烏羅迦目佉)요, 둘째의 이름이 가라니(迦羅尼)요, 셋째의 이름이 하실제나야(賀悉帝曩野)요, 넷째의 이름이 소나포라가(蘇曩布囉迦)였습니다.
네 왕자를 낳고 그 후에 후비(后妃)가 죽자, 왕은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손으로 턱을 괴고 회포에 젖어서 몹시 슬퍼하므로, 이때에 대신들이 왕이 슬퍼함을 보고 함께 아뢰었습니다.
‘대왕이시여, 어찌하여 근심하고 괴로워하시며 신정(神情)에 언짢아하시나이까?’
왕은 곧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후비가 이제 갑자기 죽었으므로 이런 고통이 있습니다.’
대신들은 듣고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저희들은 듣건대, 이웃 나라의 작은 왕에게 한 딸이 있다 하온데 큰 복과 덕을 갖추었고 단정하고 퍽 아름다우며 나라의 왕후가 될 만하다 하옵니다.’
그러자 왕은 여러 시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작은 나라의 왕은 나의 국경을 침략하려 하였거늘 어떻게 가까이할 수가 있겠소.’
대신들은 아뢰었습니다.
‘다른 작은 나라에도 단정하고 퍽 훌륭한 딸이 있사온데, 만약 왕후로서 받아들인다면 매우 왕의 뜻에 적합하실 것이옵니다.’
왕은 듣고 나서 즉시 사신을 보내어 그 작은 나라에 가서 자세히 왕의 뜻을 말하되,
‘딸에게 장가들려고 하며 왕후를 삼겠습니다’라고 하게 하니,
작은 왕은 듣고 기뻐하고 경사롭게 여기면서 사신에게 말하였습니다.
‘만약 큰 나라의 왕께서 나의 딸에게 장가들어서 왕후를 삼겠다고 하였는데 남자를 낳으면 정수리에 물을 붓는 왕위를 잇게 하여야만 나는 곧 허락하겠습니다.’
사신이 나라에 돌아와서 자세히 위의 일을 아뢰자 왕은 아뢰는 바를 듣고 매우 언짢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장자가 있고 왕위를 잇게 하는 것이 합당하거늘 어떻게 어리고 작은 이를 세울 수야 있겠느냐.’
대신은 아뢰었습니다.
‘오직 장가나 드소서. 뒷날에 있을 아들이요, 남자니 여자니 함은 아직 정하여진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자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금ㆍ은의 값진 보배와 비단과 명주며 몸을 장식하는 꾸미개를 써서 맞아들여 나라로 돌아왔는데, 뒤에 임신하여 무릇 아홉 달을 지나고서 하나의 아들을 낳으매 몸의 형상이 단정 엄수하였으므로, 낳은 날에 뭇 신하들까지 경하하는지라,
왕은 말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이 아들에게 어떠한 이름을 지어야겠소?’
대신들은 아뢰었습니다.
‘저 작은 나라의 왕의 딸이 시집 오셔서 왕비가 되었다가 귀하게도 태자를 탄생하여 왕의 보배 자리를 잇게 되었으니 이제 이름을 낙왕(樂王)이라 지으소서.’
여덟의 부인에게 명하여 유모를 삼아서 태자를 양육하였습니다.
그때 대왕은 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려 하였는데,
그 작은 나라 왕은 이 일을 알고서 마음에 성을 내어 곧 사신을 보내며 자세히 예전의 일을 말하였습니다.
‘먼저 나의 딸이 아들을 낳으면 왕을 삼는다 하기에 허락하였거늘, 어찌하여 이제 스스로 언약을 어깁니까? 만일 그렇게 하겠다면 나는 곧 널리 병사들을 거느리고 당신의 나라를 쳐 없애겠소.’
때에 큰 나라 왕은 이 말을 듣고서 조심하고 괴로워하며 대신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장자를 버리고 아우를 세운 것은 도리에 마땅하지 아니하오.’
신하들은 아뢰었습니다.
‘그 작은 나라의 왕은 마음과 힘이 뛰어나고 세서 싸움을 잘하므로 창을 들고 국경을 침범하면 반드시 패하게 되오리다.
만약 장자를 빨리 바깥으로 내보내면 곧 우리나라는 병화(兵禍)를 면할 것이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서도 잠잠하여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대신들은 함께 꾀를 내어서 곧 가까운 교외에 하나의 임금의 동산을 만들되, 정자와 못과 꽃과 과일이며, 작은 산과 못에 흐르는 샘이며 높은 전각 곳곳에 두루 차게 하였고, 또 침단향(沈壇香)의 나무와 여러 보배영락이며 갖가지로 전각과 다락을 장엄하게 꾸며 놓았었는데
그때에 대왕의 장자는 여러 신하들과 함께 성을 나가서 유람을 하다가 이 동산 숲을 보고서 좌우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소유입니까?’
수종하는 신하가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임금의 동산입니다.’
태자는 듣고 즉시 말을 돌리는데, 좌우에서 잠시 들어가서 구경을 하자고 청하였다.
태자는 말하였습니다.
‘임금님의 동산인데, 내가 어찌 감히 가겠느냐?’
수종하는 신하가 다시 말하였습니다.
‘만약 이는 신하이거나 서민들이라면 들어갈 수가 없다 하겠거니와 국왕의 장자께서 유람하시는 것은 무방하옵니다.’
이때에 태자는 곧 도안에 들어가서 풍악을 잡히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한 대신이 왕에게 청하였습니다.
‘먼저 임금님의 동산을 지어서 이제야 이룩되었사오니 왕은 구경하시기를 청하옵니다.’
왕은 아뢰는 바를 듣고 즉시 나아가 동산에 가까이 다다르자 갑자기 풍악울리는 것이 들리므로 왕은 마음으로 의심쩍게 여기는데,
대신은 아뢰었습니다.
‘태자께서 먼저 여기에 계시며 풍악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왕은 마침내 불꽃처럼 성을 내며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 동산을 지어서 아직 유람을 못했는데, 어떻게 태자가 먼저 들어가서 풍악까지 울리는가. 그 죄를 용서하기 어려우니, 곧 나라에서 나가게 하라.’
대신이 간하여도 왕은 성내고 곧 칙명을 내리어 종과 그의 권속들을 데리고 7일을 한정하여 나라의 성을 나가게 하였으므로,
태자는 부왕의 칙명을 받고서 곧 신하며 모든 친애한 이들과 함께 보다락가의 큰 성을 나와서 성에서 멀지 않는 데에 머무르고 있자, 왕은 다시 칙령을 하여 멀리 머물러 있게 하였습니다.
이때에 설산(雪山) 곁의 바의라하(婆儗囉河) 물가에 가비라(迦毘羅)라는 한 신선이 있어서 깨끗이 맑은 행을 지니면서 암자에 살며 도를 닦고 있었는데,
태자는 권속들을 데리고서 신선에게 의지하여 날짐승ㆍ길짐승을 사냥하며 그 목숨을 살리고 있었습니다.
뒤에 태자는 색욕이 생각나서 얼굴 모습이 야위어졌으므로 신선은 의심하며 물었더니,
태자는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저는 음욕의 즐거움을 생각하며 이렇도록 괴로워합니다.’
신선은 말하였습니다.
‘친누이에 대하여서는 음행을 하지 말고 다른 이들은 뜻대로 하여도 좋습니다.’
태자는 지나치게 애착하여 남녀의 모두가 어린이처럼 장난하며 떠들어대면서 세월이 갈수록 더욱 심하므로,
신선은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감관과 의식이 산란하여지자 곧 태자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가서 살려고 합니다.’
태자는 듣고 매우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말하였습니다.
‘큰 신선께서 여기에 수행한 지 세월이 오래되었고 도의 과위를 이미 성취하셨거늘 옮기셔서는 안 됩니다. 제가 오늘 권속들을 데리고 따로 머무를 데를 구하겠습니다.’
신선은 듣고 매우 본래의 마음과 맞는지라 곧 살고 있던 암자의 근처에서 뛰어난 땅을 골라서 금병의 물을 땅에 뿌리며 경계를 삼고 태자에게 머무르도록 하였습니다.
그 뒤에 인민들은 왕성해지고 권속들은 많아졌으므로 경계에 의지하여 성을 수리하여 그대로 국토를 세웠는데, 이름이 가비라국(迦毘羅國)입니다.
다시 뒷날에 지인(指引)이라는 어진 사람이 따로 하나의 성을 만들었으므로 지성(指城)이라 이름하였으며, 왕은 이 성을 또한 도읍이라 일컬었습니다.
그때 미로다가왕(尾嚕茶迦王)은 대신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태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신은 아뢰었습니다.
‘지금 설산의 남쪽 바의라하의 물가 가비라성에 있는데 두 개의 큰 성을 세워서 도읍을 삼았사오며 신하와 인민들이며 혈통이 같은 권속들이 아주 왕성하고 많아서 마치 큰 나라와 같나이다.’
이때에 미로다가 감자왕은 몸을 굽혀 고개를 숙이고 대신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동자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구나.’
대신이 아뢰었습니다.
‘태자는 어진 덕이 이렇게 뛰어나고 왕성하였는지라, 그것으로 성씨를 삼았나이다.’
미로다가 감자왕이 목숨을 마치자, 능인(能仁)이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능인에게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오라가목가왕(烏羅迦目迦王)이요,
오라가목가왕에게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약가니왕(若迦抳王)이요,
약가니왕에게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하실제왕(賀悉帝王)이요,
하실제왕에게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노포라가왕(努布囉迦王)이요,
노포라가왕에게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오포라가왕(烏布囉迦王)이며,
이렇게 하여 자손들이 서로가 계승하면서 5만 5천의 왕이 있었고 가비라의 큰 성에 도읍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다시 십거왕(十車王)이란 한 왕이 있었으며,
십거왕의 후에는 구십거왕(九十車王)이 있었고,
구십거왕의 후에는 백거왕(百車王)이 있었고,
백거왕의 후에는 획거왕(畫車王)이 있었고,
획거왕의 후에는 최승거왕(最勝車王)이 있었고,
최승거왕의 후에는 노거왕(窂車王)이 있었고,
노거왕의 후에는 십궁왕(十弓王)이 있었고,
십궁왕의 후에는 구십궁왕(九十弓王)이 있었으며,
백궁왕의 후에는 획궁왕(畫弓王)이 있었으며,
획궁왕의 후에는 노궁왕(窂弓王)이 있었는데 이 왕이 염부제에서는 활쏘기에 첫째이었습니다.
이때에 노궁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으니 첫째의 이름이 성하하노왕(星賀賀努王)이요, 둘째의 이름이 사자후왕(師子吼王)이었습니다.
그때 성하하노왕은 넷의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의 이름이 정반왕(淨飯王)이요, 둘째의 이름이 백반왕(白飯王)이요, 셋째의 이름이 곡반왕(斛飯王)이요, 넷째의 이름이 감로반왕(甘露飯王)이었습니다.
정반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의 이름이 실달다(悉達迻)요, 둘째 분의 이름이 난타(難陀)였습니다.
백반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의 이름이 사제소로(娑帝疎嚕)요, 둘째의 이름이 바내리하(婆捺哩賀)였습니다.
곡반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의 이름이 마하나마(摩賀曩麽)요, 둘째의 이름이 아니로타(阿儞樓駄)였습니다.
감로반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의 이름이 아난타(阿難陀)요, 둘째의 이름이 제바달다(提婆達多)였습니다.
정반왕에게 딸이 있었는데 이름이 소발라(蘇鉢囉)였으며,
백반왕에게 딸이 있었는데 이름이 발달라마려(鉢怛囉摩黎)였으며,
곡반왕에게 딸이 있었는데 이름이 발내려(跋捺黎)였으며,
감로반왕에게 딸이 있었는데 이름이 세바라(細嚩羅)였습니다.
실달다에게 아들이 있어서 이름이 라호라(羅怙羅)인데, 이는 부처님의 아들로서 이는 과거 여러 왕들의 성바지며 지금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서 부처님을 따라 집을 떠나서 나고 죽음을 환히 깨치고 윤회를 잘 끊어서 진공(眞空)에 개합하고 증득하여 성인의 지위를 이룩하셨습니다.”
그때 대목건련이 이 말을 하여 마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본래의 자리로 가거라. 장하고 장하도다. 너는 여러 비구니들을 위하여 석씨 성바지의 과거에 났던 바 성바지 일을 잘 말하여서 여러 비구들에게 좋은 이익을 쾌히 얻고 오랜 세월 동안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였느니라.”
이때에 여러 석씨 대중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믿어 받고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