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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경 제575권
만수실리분 ②[1]
[만수실리의 불가사의]
그 때에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수실리는 불가사의하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만수실리가 말하는 법상(法相)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만수실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말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진실로 사리자의 말이 옳다.”
만수실리가 이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의 설법은 불가사의가 아니라 할 수도 없고, 불가사의라 할 수도 없나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불가사의와 불가사의 아님의 성품은 모두가 있지 않거늘 다만 말뿐인 때문이옵니다.
온갖 음성도 불가사의라 불가사의 아니라 말할 수 없으니, 온갖 법의 제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이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라야 비로소 불가사의를 말한다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만수실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에 이 불가사의한 삼마지(三摩地)에 들어 있느냐?”
만수실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에 이 삼마지에 든 것이 아니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저는 이 삼마지의 성품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도무지 보지 못했고, 어떠한 마음으로도 나와 이 정려를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옵니다.
불가사의한 삼마지라 함은 마음의 성품이나 마음 아님의 성품으로는 도무지 들어갈 수 없거늘 어떻게 제가 이 정려에 들어간다 하겠나이까?
또 세존이시여, 저는 옛날에 처음으로 배울 때부터 이 삼마지에 들려는 뜻을 내었기에 지금에 다시 뜻을 내어 이 정려에 든 것이 아니옵니다.
마치 능숙한 사수(射手)가 처음에 활쏘기를 배울 때에는 굵은 과녁에다 뜻을 두고 쏘다가 오래오래 익히어 털끝을 쏠 수 있게 되면
다시는 저 굵은 과녁에다 뜻을 두지 않아도 마음 내는 대로 쏘기만 하면 맞는 것같이
제가 처음으로 정려를 배울 때에는 먼저 부사의한 데에다 뜻을 두다가 뒤에야 이 정려에 들게 되었고,
오래오래 익히어 이루면 다시는 이 정려에다 뜻을 두지 않아도 마음대로 머무르게 되었나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제가 모든 정려에서 이미 묘한 이치를 알았으므로 마음대로 출입하되 아무런 마음 다짐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옵니다.”
그 때에 사리자가 문득 부처님께 아뢰엇다.
“이 만수실리 동자를 보건대 믿을 수가 없나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 정려 가운데 항상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같나이다.
그러나 다른 정려의 미묘하고 고요함이 이 정려와 같을 것이 있지도 않나이다.”
만수실리가 문득 사리자에게 말했다.
“대덕이여, 어찌하여 다른 정려가 고요하기를 이와 같을 것이 없는 줄 아십니까?”
사리자가 말했다.
“어찌 다른 정려가 고요하기를 이와 같을 것이 있겠습니까?”
만수실리가 대답하였다.
“만일 이것을 얻을 수 있든지 말할 수 있다면 다른 정려의 고요함도 이와 같으리다. 그러나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자가 말했다.
“만수실리여, 지금의 이 정려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덕이여, 이 정려는 진실로 얻을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온갖 정려로서 불가사의가 아닌 것을 얻을 형상이 있지만 불가사의인 것은 얻을 형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정려는 이미 불가사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결정코 실제로 얻을 수 없습니다.
또 사리자여, 부사의의 정려는 온갖 유정이 얻지 못한 이가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온갖 심성(心性)은 모두가 심성을 여의었고, 심성을 여읜 것은 모두가 불가사의의 정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까닭에 유정들이 얻지 못한 이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만수실리 동자를 칭찬하셨다.
“좋은 말이다. 만수실리야, 너는 과거에 한량없는 부처님께 많은 선근을 심고 오랫동안 큰 서원을 세웠고, 닦은 범행은 모두가 얻음 없음[無得]에 의하였고, 말하는 것은 모두가 심히 깊은 이치를 설명하였다.
만수실리야, 네가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렀기에 언제나 심히 깊은 이치를 연설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만수실리가 대답했다.
“만일 제가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렀기에 능히 이와 같이 연설한다면 이는 나의 생각과 있음의 생각에 머물러서 이렇게 연설하는 것이옵니다.
만일 나의 생각과 있음의 생각에 머물러서 이렇게 연설한다면 이는 깊은 반야바라밀다도 머무는 바가 있는 것이옵니다.
만일 깊은 반야바라밀다가 머무는 바가 있다면 깊은 반야바라밀다도 나의 생각과 있음의 생각으로써 머무는 곳을 삼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두 생각을 멀리 떠나 머무를 바 없음에 머물렀으나,
마치 여러 부처님께서 미묘하고 고요함에 머무시어 일어남이 없고 작위가 없고, 요동이 없고, 변천이 없음으로써 머무실 곳을 삼는 것 같나이다.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있음의 법에 머무르지 않고 없음의 법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이 까닭에 그가 머무는 바는 불가사의하나이다.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법에서 도무지 나타나 움직이지 않나니,
그러므로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가 곧 부사의의 경계요,
부사의의 경계가 곧 법계요,
법계가 곧 나타나 움직이지 않는 경계요,
나타나 움직이지 않는 경계가 곧 부사의의 경계요,
부사의의 경계가 곧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임을 알 수 있나이다.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에는 나의 경계, 즉 아계(我界)와 법계가 둘이 없고 차별이 없나니,
둘이 없고 차별이 없는 것이 곧 법계요,
법계가 곧 나타나 움직이지 않는 경계요,
나타나 움직이지 않는 경계가 곧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임을 알겠나이다.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가 곧 부사의의 경계요,
부사의의 경계가 곧 나타나 움직이지 않는 경계요,
나타나 움직이지 않는 경계가 곧 아무것도 없는 경계요,
아무것도 없는 경계가 곧 생멸이 없는 경계요,
생멸이 없는 경계가 곧 부사의의 경계이니,
부사의의 경계와 여래의 경계와 나의 경계와 법의 경계는 둘이 없고 차별이 없나이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만일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면 큰 보리를 다시 증득하려 하지 않으리이다.
무슨 까닭인가?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가 곧 보리이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실제로 나의 경계를 아는 이가 있으면 곧 집착 없음을 아는 것이요,
집착 없음을 알면 곧 법 없음을 아는 것이요,
법 없음을 알면 곧 부처님의 지혜이고,
부처님의 지혜는 곧 부사의의 지혜이니,
부처님의 지혜로는 알 법이 없으므로 법을 알지 못한다 하나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 지혜의 제 성품이 도무지 있지 않기 때문이니,
있지 않는 법으로 어떻게 참 법계 안에서 이 지혜의 제 성품을 움직이겠나이까?
이미 있지 않는 것이라면 집착할 바가 없는 것이요,
집착할 바가 없다면 본체는 지혜가 아닌 것이요,
본체가 지혜가 아니라면 경계가 없는 것이요,
경계가 없다면 의지할 바가 없는 것이요,
의지할 바가 없다면 머무는 바가 없고,
머무는 바가 없다면 생멸이 없고,
생멸이 없다면 얻을 수 없고,
얻을 수 없다면 나아갈 곳이 없고,
나아갈 곳이 없다면 이 지혜로는 온갖 공덕을 짓지도 못하고, 공덕 아닌 것도 짓지 못하리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것이 생각하기를 내가 공덕을 짓는다거나 공덕 아닌 것을 짓는다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이렇게 분별하는 생각이 없는 지혜는 불가사의한 것이니, 불가사의함은 곧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는 온갖 법에 대하여 취함과 취하지 않음이 없고,
전제(前際)ㆍ중제ㆍ후제도 아니며,
먼저부터 이미 난 것도 아니요, 먼저부터 아직 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나오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으며, 항상치 않고, 아주 없음도 아니어서
어떤 지혜도 이 지혜와 같을 것이 없나이다.
이 까닭에 이 지혜는 불가사의하나니,
허공과 같아서 견줄 곳이 없으며,
이것ㆍ저것ㆍ좋음ㆍ나쁨 따위가 아니어서 다른 어떤 지혜도 이 지혜와 비슷할 수도 없나이다.
이 까닭에 이 지혜는 같음ㆍ같지 않음이 모두 없나니,
그러므로 이 지혜를 같을 이 없되 같은 지혜[無等等智]라 하나이다.
또 어떤 지혜도 이 지혜와 상대할 것이 없기 때문에 이를 상대할 이 없되 상대하는 지혜[無對對智]라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만수실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묘한 지혜는 요동시킬 수 없지 않겠느냐?”
만수실리가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묘한 지혜의 성품은 요동시킬 수 없으니,
마치 금을 부리는 사람이 금광을 녹여서 정미롭고 순수해진 뒤에는 무게에 변동이 없는 것같이
이 지혜도 그러하여 오래오래 닦아서 이루어지면 지음[作]ㆍ증득함ㆍ태어남ㆍ다함ㆍ일어남ㆍ없어짐이 없이 안정하게 고정되어 요동치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만수실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이렇게 묘한 지혜를 믿고 이해하겠느냐?”
만수실리가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이가 반열반의 법을 행하지 않고, 생사의 법도 행하지 않으며,
살가야(薩迦耶)에서 적멸의 행을 행하며, 반열반에서 요동 없는 행을 행하며,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끊지 않으며, 끊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러한 세 가지 번뇌는 제 성품이 멀리 여읜 것이어서 다함과 다하지 않음이 아니며,
생사가 있는 법을 초월하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으며,
모든 거룩한 도를 여의지도 않고 닦지도 않기 때문이옵니다.
그러한 이라야 이 지혜를 깊이 믿고 이해하리이다.”
부처님께서 만수실리 동자를 칭찬하셨다.
“장하다, 매우 장하다. 이 일을 잘 연설하였다.”
[미래의 불법]
그 때에 구수(具壽) 대가섭파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는 세상에 누가 능히 이 법과 비내야(毘奈耶)의 심히 깊은 이치를 믿고 이해하여 닦아 배우겠나이까?”
부처님께서 구수 대가섭파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의 이 모임에 있는 필추들은 오는 세상에 여기서 말한 법과 비내야의 심히 깊은 이치에 대하여 믿고 이해하고 듣고 받고 닦고 배울 것이며, 또한 남을 위해서도 연설하여 퍼뜨리리라.
마치 큰 장자가 값진 구슬을 잃고 걱정이 되어 근심에 잠기다가 뒤에 다시 찾으면 뛸 듯이 기뻐하는 것같이
이 모임에 있는 필추들도 지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들어 믿고 이해하고 닦아 배우다가 뒤에 다시는 이런 법문을 듣지 못하면
고민에 얽히고 근심에 싸여서 생각하되
‘우리는 언제나 다시 이렇게 깊은 법문을 들으리요’ 하다가
뒤에 이 법문을 들으면 뛸 듯이 기뻐하면서 생각하되
‘내가 이제 이런 경전을 듣게 되었으니, 이는 곧 부처님을 뵈옵고 가까이하여 공양하는 것과 같다’ 하는 것과 같으니라.
마치 원채(圓綵)나무에 처음 싹이 나면 삼십삼천들이 모두 뛸 듯이 기뻐하면서 생각하되
‘이 나무가 오래지 않아서 꽃이 피어 향기가 찬란하리니, 그러면 우리들은 여기에 모여 와서 놀자’ 하는 것같이
필추들도 이와 같아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믿고 받들어서 수행하고는 기쁜 마음을 내되
‘온갖 불법의 꽃이 오래지 않아서 피어나리라’ 하는 것과 같으니라.
음광(飮光:가섭파)아, 잘 알아야 한다.
오는 세상의 필추들이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수행하되 마음이 침울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이 모임에서 이미 듣고 기뻐하면서 받아 지니고, 연설하고 퍼뜨렸던 사람이니라.
그런 이들은 이 법을 듣고서 뛸 듯이 기뻐하며 받아 지니어 수행했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서 온갖 불법을 모두 피워나게 하리라.
또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에 어떤 이가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연설하고 퍼뜨리면
그것은 모두 부처님께서 위신력으로 그렇게 되도록 하셨음을 알지니라.
음광아, 잘 알아야 한다.
만일 어떤 이가 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기뻐하면서 받아 지니면
그는 이미 한량없는 과거로부터 한량없는 부처님께 선근을 많이 심어 미리부터 들었던 것이요, 지금에 처음 듣는 것이 아니니라.
마치 구슬을 꿰는 이가 홀연히 값진 말니(末尼) 구슬을 만나면 몹시 기뻐하는데
그들이 일찍부터 이 구슬을 익히 보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요, 지금에 처음 보는 것이 아닌 것같이
오는 세상의 필추들이 바른 법 듣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다가 홀연히 반야바라밀다를 만나서 기꺼이 받아 지니고 닦아 배우면
그들은 이미 지난 세상 한량없는 부처님께 이 경을 들은 것이요, 지금에 비로소 듣는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하느니라.
음광아, 잘 알아야 한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묘길상(妙吉祥)이 말하는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기뻐 뛰면서 듣기 싫은 마음을 내지 않고, 또 거듭 거듭 연설해 주기를 정성껏 요청하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과거에 이미 만수실리에게 반야바라밀다를 듣고서 기꺼이 받아 지니고 닦아 배웠으며,
또 만수실리를 가까이하여 공경하고 공양하였으므로 이렇게 된 것이니라.
비유컨대 만일 사람이 우연히 성에 들어가서 그 안의 온갖 동산ㆍ숲ㆍ못ㆍ집ㆍ인물을 모두 구경한 뒤에 딴 곳에 갔다가
다른 사람들이 이 성안의 훌륭한 일을 자랑하는 것을 들으면 몹시 기뻐하고, 다시 들으면 더욱 기뻐하는 것은 그가 예전에 익히 보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이 일도 그러하여서 오는 세상에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묘길상이 연설하는 반야바라밀다를 듣고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그 깊은 이치를 거듭 연설해 주기를 청하여 듣고는 탄복하면서 갑절이나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이들은 모두가 지난 세상에 이미 만수실리를 가까이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면서 이 법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에 이렇게 된 것이니라.”
그 때에 구수 대가섭파가 문득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현재와 미래의 선남자들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믿고 이해하며 수행하는 형상을 잘 말씀하셨나이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러하니라. 가섭아, 네 말과 같이 나는 이미 그들의 수행의 형상을 잘 말했느니라.”
만수실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현재와 미래의 선남자들이 이 깊은 법의 온갖 수행의 형상을 듣는다 하여도 그는 수행의 형상들이 아님을 알아야 하리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들이 들은 법문이 미묘하고 고요하며, 여러 수행의 형상이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그렇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미 그들의 수행의 형상을 잘 말했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만수실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네 말과 같이 현재와 미래의 선남자들이 이 깊은 법의 여러 수행의 형상을 들으나 그들은 모두가 실제로 수행의 형상이 아니니,
듣는 법이 미묘하고 고요하며, 여러 행의 형상이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그들이 깊은 법을 들을 때에 기꺼이 받아 지니어 믿고 이해하고 닦아 배우는 것은 반드시 과거에 이미 듣고서 기꺼이 받아 지녔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나니,
이 수행의 형상이라 함은 세속의 법에 의한 것이요, 진리 속에 이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니라.
만수실리야, 잘 알아야 한다.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환하게 요달하는 것은 곧 온갖 불법을 환하게 요달하여서 진실하고 부사의한 일을 통달하는 것이니라.
만수실리야, 내가 본래 보살행을 닦아 배울 때에 모은 선근은 모두가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닦아 배웠기 때문에 바야흐로 원만하게 된 것이니,
보살의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머물러서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려 하여도 또한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닦아 배워야 바야흐로 이루어지리라.
만수실리야, 만일 산남자와 선여인이 보살이 모아야 하는 선근을 모으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또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보살의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머무르고자 하면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온갖 법계의 평등한 모습을 통달하려 하면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온갖 유정들의 마음씨가 평등함을 잘 알려 하면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온갖 불법을 속히 증득하려 하면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는 모든 법을 분명히 깨닫지 못했다’는 비밀한 이치를 알고자 하거든
또한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깨달아야 할 모든 법과 깨닫는 이를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또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는 모든 불법을 증득하지 못한다’는 비밀한 이치를 알고자 하여도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증득할 불법과 증득하는 이를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또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는 위없는 정등보리의 상호와 위의가 모두 구족하심을 증득하지 못한다’ 하는 비밀한 이치를 알고자 하거든
반드시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증득해야 할 위없는 정등보리의 상호 및 위의와 증득할 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또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 선여인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는 온갖 공덕을 성취하지 못했고, 온갖 유정을 교화하지 못한다’ 하는 비밀한 이치를 알고자 하거든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온갖 공덕이나 교화할 유정이나 여러 여래를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또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모든 법에서 걸림이 없으려 하면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에서는 조그만한 법도 실제로 염(染)ㆍ정(淨)ㆍ생ㆍ멸 등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모든 법은 과거ㆍ미래ㆍ현재와 무위의 형상도 아님을 알고자 하거든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참 법계는 과거ㆍ미래ㆍ현재나 무위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며,
모든 법은 모두가 참 법계에 들기 때문이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모든 법에 대하여 의혹이 없고자 하거든
반드시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세 번 굴리어 열두 가지 행상이 되는 법 바퀴를 굴리고 또 거기에서 집착이 없기를 바라거든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자비한 마음으로 온갖 유정을 덮되 거기에서 유정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자 하거든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세간 중생들과 함께 법성에 들어가서 다툼이 없고, 세간과 온갖 다툼에서 도무지 얻는 바가 없고자 하거든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제자리와 제자리가 아님을 두루 알되 도무지 걸림이 없고자 하거든
마땅히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또 만수실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여래의 힘ㆍ두려움 없음 따위 끝없는 불법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반야바라밀의 공덕]
그 때에 만수실리 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관찰하건대
형상이 없고, 작위가 없고, 모든 공덕이 없고, 생멸이 없고, 힘이 없고, 공능이 없고, 가고 옴이 없고, 들고 남이 없고, 손해와 이익이 없고, 앎과 봄이 없고, 본체와 작용이 없으며, 조작하는 이도 아니며,
또 모든 법이 생멸케 하지도 못하고, 또 모든 법을 하나가 되거나 다르게 되게 하지도 못하며,
이룸도 파괴도 아니고, 지혜도 경계도 아니고,
중생의 법이나 성문의 법이나 독각의 법이나, 보살의 법이나 여래의 법이 아니며,
증득함도 증득하지 않음도 아니며, 얻음도 얻음이 아님도 아니며, 다함도 다함이 아님도 아니며,
생사에 듦도 아니요, 생사에서 벗어남도 아니며,
생사에 들음도 아니요, 생사에서 벗어남도 아니며,
열반에 듦이 아니요, 열반에서 벗어남이 아니며,
모든 불법을 이루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으며,
온갖 법을 짓는 것도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불가사의도 아니요 불가사의가 아닌 것도 아니어서
온갖 분별을 여의고, 모든 희론을 떠났나이다.
이러한 반야바라밀다는 도무지 공덕이 없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유정들에게 부지런히 닦아 배우라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만수실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곧 반야바라밀다의 진실한 공덕이니라.
선남자들이 만일 이렇게 알면 그것이 곧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진실하게 닦아 배우는 것이니라.
또 만수실리 동자야, 만일 보살마하살들이 보살의 수승한 삼마지를 배우고자 하거나, 보살의 수승한 삼마지를 이루고자 하거나, 이러한 삼마지에 머물러서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의 명호를 알고, 또 그러한 부처님들의 세계를 뵈옵고는
모든 법의 실상을 증득하고 연설하기에 장애가 없고자 하거든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우되 밤낮으로 부지런히 하여 게을리하지 말지니라.”
[반야바라밀의 성품]
만수실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슨 까닭에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만수실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형상이 없고, 이름이 없고 끝이 없고, 짬이 없고, 귀의할 곳이 없으며, 생각해서 따질 경계가 아니요,
죄가 아니요, 복이 아니요, 어둠이 아니요, 밝음도 아니어서
맑은 허공과 같고, 참 법계와 똑같으며, 분류와 수량을 도무지 얻을 수 없나니,
이러한 갖가지 인연이 있으므로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또 만수실리 동자야,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보살들의 심히 깊은 수행 과정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과정을 행하면 모든 경계를 모두 통달하리라.
이러한 수행 과정은 아무 근기나 행할 바가 아니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러한 수행 과정은 이름도 형상도 없어서 분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아무 근기나 행할 바가 아니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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