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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여기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1.합죽선의 비밀
공양간에서 만난 상원이 또 명담스님의 소식을 전했다. 아무래도 명담스님이 밤늦게 돌아올 것 같으니 차라리 내일 아침나절에 만나라고 권했다.
“삼소굴에 이부자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늦을 것 같은 은사스님은 내일 뵙지요. 아궁이에 장작을 많이 넣어 따뜻할 것입니다.”
김 화백은 상원의 호의가 고마웠다. 아직도 미소년의 티가 남아 있어 아주머니 신도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할 것 같은 상원이었다. 외모도 그렇지만 공손한 태도가 더 호감이 갔다. 김 화백은 좀 전 삼소굴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처사와 겸상을 했다. 스님들은 스님들끼리 질서정연하게 발우공양을 하고 있었다. 상에 오른 반찬은 의외로 많았다. 김치 종류만도 세 가지나 되었다. 큼큼한 냄새가 나는 묵은 김치와 배추속이 노랗게 익은 백김치, 그리고 가지런하게 썰어진 갓김치에다 주전부리거리 같은 다시마튀각, 들기름이 발라져 반지르르한 김, 흑진주처럼 반짝이는 콩자반, 향긋한 송이버섯구이, 순두부가 넣어진 청국장에 팥이 점점이 든 오곡밥이 입안 가득 침을 고이게 했다. 특별히 먹는 별식이거나 아니면 어떤 신도가 극락암 대중스님들을 위해 음식을 보시한 날 같았다. 상원이 김 화백의 공양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시다면 원주실에서 차를 한 잔 드시지요.”
“아, 감사합니다.”
김 화백은 녹차보다는 뜨겁게 마시는 발효차를 마시고 싶던 참이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했다. 세면장은 편리하게도 공양하는 요사와 붙어 있었다. 이제 절도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신도들을 배려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생활시설들이 예전과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공양간만 해도 온난방 시설은 기본이고, 대형냉장고에다 조리용 기구는 모두 엘피지가스로 사용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었다.
공양하는 동안 암자 둘레는 어둑어둑해지고, 굵어진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김 화백은 형광등 불빛이 하얗게 새어나오는 원주실로 바로 건너갔다. 상원이 여신도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얘기하다가 김 화백을 소개했다.
“이 분이 바로 큰스님의 진영을 그리실 화백님입니다. 오늘밤 삼소굴에서 머무르실 것입니다.” 그러자 여신도들이 일제히 환영한다는 표시로 탄성을 질렀다. 중년의 여신도가 합장을 하며 김 화백에게 친밀감을 나타냈다.
“우리 경봉 큰시님을 그리실 분이라고예. 큰시님 잘 그려주이소예. 부탁합니더.” 정진할 시간이라며 여신도들이 빠져나가자 비로소 원주실에는 상원과 김 화백만 남았다. 상원은 극락암 원주 소임을 맡고 있는 모양이었다.
“김 화백님, 들고 오신 가방은 제가 삼소굴로 옮겨두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큰스님의 진영을 그리겠다고 허락하셨다니 큰스님의 문도인 저희들로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큰스님 일기장에서 메모 형식으로 발견된 당부이긴 하지만 이제야 큰스님의 유훈을 지키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은사스님이 몇 번이나 좋아하셨습니다.”
“저에게 너무 기대하시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큰스님께 진 빚이 하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일찍이 저에게 화가로서 눈을 뜨게 했고 합죽선을 하나 주셨습니다.”
“은사스님께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 합죽선은 큰스님께서 몇 십 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셨던 부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김 화백님께 드리게 되었는지 저도 큰스님의 마음이 궁금해집니다.” 상원이 천진하게 부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사실 오늘 제가 극락암에 온 것은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큰스님 진영을 그리고자 하는 저의 각오를 명담스님께 보고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합죽선을 큰스님 유물전시관에 돌려준다 하더라도 큰스님께서 왜 저에게 그 합죽선을 주셨는지를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암자 주차장에서 승용차 소리가 날 때마다 김 화백은 혹시 명담스님이 아닌가 하여 귀를 기울였지만 그때마다 허사였다. 상원은 혹시 신도들이 은사에게 곡차를 권하는지 모르겠다며 은사의 건강을 걱정할 뿐 김 화백처럼 기다리지는 않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김 화백도 상원의 태도처럼 명담스님을 기다리지 않았다. 상원과 마주앉아 다담(茶談)을 나누는 시간이 무료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특히 삼소굴(三笑窟)에 대한 상원의 설명은 대단했다. 물론 상원 역시 전해들은 이야기였겠지만 김 화백이 듣기에는 심오한 것이었다.
“큰스님의 일지를 보면 삼소(三笑)의 깊은 뜻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 삼소는 과거 현재 미래의 미소인 삼세소(三世笑)와 과거 현재 미래의 꿈인 삼세몽(三世夢)을 초탈한 뜻을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가 삼소의 깊은 뜻을 알고자 한다면, 야반삼경(夜半三更)에 촛불 춤추는 것을 볼지니라.
삼세를 초월한 경계가 삼소란 말인데, 그것을 깨쳐 알고자 한다면 한밤중의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라고 한다. 일반인들이 듣기에는 어리둥절한 설명이지만 경봉선사로서는 자신의 경험담이었다. 경봉선사가 용맹정진 끝에 확철대오한 순간이 그랬었다. 음력으로 1927년 11월 20일 새벽 2시 반경 갑자기 촛불이 파파팟 파팟 소리를 내면서 크게 춤을 추자, 스님은 무릎을 탁 치고 하하하 크게 웃어젖히면서 자리를 박차고 달빛이 교교한 암자 마당으로 뛰쳐나갔던 것이다. 선열에 겨워 하회탈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심봉사가 심청이를 만난 것처럼 눈앞에 나타난 주인공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상상으로만 헤아렸던 우담바라 꽃이 빛으로 변해 온 세상을 향기롭게 적시고 있었다.
이뭣꼬(是甚?)?
바로 그 의문의 은산(銀山)과 철벽(鐵壁)이 남김없이 무너지고 깨지면서 마침내 주인공(참나)을 찾은 것이었다. 스님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자성(自性) 자리의 풍광은 이러했다. 이른바 스님은 깨달음의 노래를 다음과 같이 불렀던 것이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공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바라 꽃의 빛이 온 누리에 흐르네.
我是訪吾物物頭
目前卽見主人樓
呵呵逢着無疑惑
優鉢花光法界流
“이와 같은 설명마저 버거운 일반 신도들에게는 이렇게 삼소를 얘기해 주셨습니다.”
- 삼소의 삼(三)은 우주의 극수(極數)인 3이요, 소(笑)란 염주를 목에 걸어놓고 이리저리 찾다가 결국 목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는 ‘허허’ 하고 웃는 것이다. 자기에게서 한 치도 여의지 않은 자성(自性)을 온갖 곳에서 헤매며 찾다가 깨닫고 나서 ‘허허’ 하고 웃는 웃음이다.
그러니 삼소란 목에 늘 걸려 있는 염주와 같은 것이며 자성의 다른 말이라는 것이었다. 김 화백은 삼소굴로 들어서며 신발을 마루 밑으로 밀었다. 눈발은 벌써 삼소굴 마루바닥까지 들이치고 있었다.
따끈한 온돌방에 눕자 일시에 피로가 몰려왔다. 쌓아놓은 벽돌이 와해되듯 몸이 방바닥에 조각조각 쏟아져버리는 느낌이었다. 김 화백은 암자 뒤 대숲을 훑는 바람소리를 간간이 들었을 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편한 잠은 아니었다. 두어 시간마다 맑은 의식이 심연 같은 잠을 헤치고 댕그랑거리는 풍경소리처럼 떠올랐다가는 잠수하곤 했다. 분명하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충은 이런 의식이었다. - 경봉스님은 무엇 때문에 몇 십 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던 합죽선을 나에게 주었을까.
비밀이란 공개되지 않은 것을 일컬을 때 붙이는 추상명사이다. 그렇다면 경봉스님에게 물려받은 합죽선도 김 화백에게는 비밀의 물건인 셈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고민하게 했던 합죽선에 쓰인 글씨는 비밀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일곱 글자의 선필(禪筆)로 분명하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문장 해석의 정확성이나 격외의 도리만 문제될 뿐인 것이다.
김 화백은 요란한 새벽 도량석의 목탁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잠이 달아난 상태이기 때문에 소리가 더 크게 들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김 화백은 목탁소리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몇 시간의 짧은 잠이었지만 몸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꿈이 없는 잠을 자보기는 근래에 처음이었다.
객승이 도량석을 돌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여느 절과 달리 특이했다. 경허선사의 <참선곡(參禪曲)>이 김 화백의 마음을 빨래하듯 헹구어 놓더니 경봉스님의 <태평가(太平歌)>가 이방인의 허허로운 마음을 훈훈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목청으로 보아 극락암 선방의 법랍이 오래된 늙은 스님임이 분명했다. 더구나 해동선의 중흥조 경허선사는 경봉스님이 사표로 삼아 정진했던 고승인 것이다. 도량석은 솔바람처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千萬古)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 면할 소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에 이승이요,
바람속의 등불이라, 삼계 대사(三界大師) 부처님이
정녕히 이르사대 마음 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永斷)하고 불생불멸 저 국토에
상락아쟁 무위도(無爲道)를 사람마다 다할 줄로
팔만장경 유전(遺傳)하니, 사람 되어 못 닦으면
다시 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보세.
닦는 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 추려 적어보세. 앉고서고 보고 듣고
착의끽반(着衣喫飯) 대인접어(對人接語) 일체처 일체시
소소령령 지각하는 이것이 어떤겐고.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번뇌 본공(本空)하고
천진면목 나의 부처 보고 듣고 앉고 눕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눈 한 번 깜짝할 새
천리만리 다녀오고 허다한 신통묘용
분명한 나의 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의심하고 의심하되 고양이가 쥐 잡듯이
주린 사람 밥 찾듯이 목마른 이 물 찾듯이
육칠십 늙은 과부 자식을 잃은 후에 자식
생각 간절틋이 생각생각 잊지 말고
깊이 궁구하여 하여 가되 일념만년 되게 하여
폐침망찬(廢寢忘餐)할 지경에 대오하기 가깝도다.
홀연히 깨달으면 본래 생긴 나의 부처
천진면목 절묘하다. 아미타불 이 아니며
석가여래 이 아닌가.
김 화백은 오줌도 마렵고 하여 삼소굴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마루까지 휘날려 쌓인 눈이 달빛을 반조하며 보석처럼 반짝였다. 눈발은 이미 그쳐 있고 세상은 온통 은색의 별천지로 변해 있었다. 암자 뒤 대숲에서는 눈을 터는 대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듯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멀어졌던 도량석 목탁소리가 다시 삼소굴 쪽으로 가깝게 들려오고 있었다. 김 화백은 도량석하는 스님과 마주치는 것이 민망할 성싶어 얼른 대숲으로 들어갔다.
영리한 주인공아, 주인공아
그대 말이 그러하고 그러하다
오늘 날씨도 따뜻하고 바람도 화창하여
산은 층층하고 물은 잔잔하며
산꽃은 웃고 들새는 노래 부르니
손을 마주잡고 태평가나 불러보세.
주인공아, 주인공아
태평가를 불러보세
태평가를 불러보세
녹양천변(綠楊川邊) 방초안(芳草岸)에
백우(白牛)를 잡아타고
임운등등 등등임운
마음대로 놀아보세.
방으로 돌아온 김 화백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늦잠을 자버렸다. 방문 밖에서 상원이 삼소굴 마당을 빗자루질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사스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아무 때나 원광재로 올라오라 하십니다.”
“도량석 때 일어났습니다만 늦잠을 자버렸습니다.”
“피곤하셨나 봅니다. 아침 공양은 따로 치우지 않았습니다. 세면하시고 공양간으로 가시면 됩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원래 아침은 먹지 않습니다.”
암자의 풍광은 어제와 달랐다. 대중스님들이 눈가래로 눈을 치우느라고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제설작업은 시늉만 내는 듯했다. 스님들이 다니는 최소한의 통로에 쌓인 눈만 치울 뿐 온 산과 들은 은색천지로 바뀌어져 있었다. 김 화백은 눈이 부셔 찡그리며 원광재로 올라갔다. 명담스님이 잿빛 셔츠 바람으로 마루에 앉아 김 화백을 맞이해주었다. 명담스님 역시 눈밭에 난반사되는 빛살에 눈이 부셨는지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월백 설백 천지백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가 앉자마자 명담스님은 차를 진하게 우렸다. 다관에 찻잎이 가득 차도록 넣어 우리는 것이었다.
“제가 우린 차를 짜다고들 합니다만 효당스님의 차는 소태처럼 짰더랬습니다.”
명담스님은 큰스님의 진영 얘기는 잊어먹었는지 차 얘기만 했다. 김 화백은 스님의 말을 자르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질박한 우리네 입맛에는 서도니, 다도니 하는 것이 그저 생경스럽게 여겨지지만 차에는 동양적인 고요함과 의연한 선비정신과 사기(史記), 경교(經敎), 그리고 율시(律詩)가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다도가 엄격하기로는 효당 최범술 스님을 따를 이가 없지요. 한때 다솔사에 머문 인연으로 효당과 만나게 되었지요. 다솔사는 효당이 심은 차나무와 황금 편백나무가 윤기를 내고 만해 한용운 스님을 주축으로 한 만당(卍黨)의 긴장감이 도는 뜻 깊은 분위기가 절 구석구석에 스며 있었지요.
효당은 격조 있고 품위 있는 차도구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탕관에서 물을 푸기 전에 선방에서 입정할 때 죽비로 치듯, 차도구로 탁탁탁 하고 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차를 돌리는데 찻잔에서 손을 뗄 때는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 바쁜데 뭐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했더니 - 아, 이 사람아! 바쁘기는 뭐가 바빠. 공연히 바쁠 것이 없는데 스스로 만들어서 바쁜 것이지, 하며 핀잔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효당은 백탄(白炭)도 만들어 썼지요. 참나무를 잘게 잘라서 불을 많이 때는 아궁이 밑에 묻어 놓으면 얼마 지나서 저절로 차생활에 쓰기 좋은 백탄이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절의 부목이 이것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어찌나 호되게 호령을 하는지 기억에 남습니다.”
김 화백은 명담스님의 차 얘기 중간에 겨우 끼어들었다.
“스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삼소굴에서 하룻밤 잔 인연으로 큰스님의 진영을 그리겠다는 마음이 더욱 굳어진 것 같습니다.”
“선방 수좌들이 안거에 들어가듯 김 화백께서는 그림으로 결제에 들어간 겁니다.”
사실이었다. 상원의 빗자루질 소리를 듣고 삼소굴 방문을 나서며 김 화백은 기묘한 체험을 했던 것이다. 마치 경봉스님의 가사장삼 속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삼소굴이 경봉스님의 가사장삼 같았습니다.”
“노장님의 가사를 한번 입어 보았으니 이제부터는 진영을 그리실 분이니 노장님 마음속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노장님께서 부채를 주신 걸로 압니다. 그러니 노장님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아셔야 합니다. 더구나 그 합죽선은 노장님께서 오랫동안 간직했던 물건입니다. 수좌들이 오면 합죽선을 펴서 바람을 일으키시고는 묻곤 했습니다.”
“뭐라고 말입니까?”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입니다. 일찍이 노장님은 만공선사와 바람을 놓고 선문답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경봉스님은 오도 후 44세 때 통도사 주지를 맡은 적이 있었다. 스님은 업무차 서울에 가면 총무원보다는 선학원(禪學院)을 찾아가 머물며 고승들과 선문답을 주고받았다. 선학원에는 경허의 수법제자 만공과 젊은 청담이 자주 와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먼저 와 있던 만공이 선학원에 들어서는 경봉을 보더니 거량(擧量)을 시작했다. 경봉이 모자를 벗고 마루 끝에 앉아 신발 끈을 풀고 있을 때 여신도를 시켜 선문(禪問)을 띄웠던 것이다.
- 저기 있는 스님이 통도사 경봉스님이다. 네가 벗어놓은 모자를 덮어씌우면서 풍종하처래(風從何處來; 바람이 어느 곳으로부터 왔는가)라고 물어보라. 여신도는 만공의 지시대로 했다. 그러자 경봉은 모자를 벗어 다시 여신도에게 씌우면서 말했다.
- 풍종하처래오? 여신도는 말을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이번에는 경봉이 젊은 청담의 머리에 씌우면서 물었다.
- 풍종하처래오?
청담 역시 다급하게 모자를 벗어놓을 뿐 대답을 못하자, 경봉은 얼굴이 달덩이 같고 눈썹이 허연 만공의 머리에 모자를 씌웠다.
- 풍종하처래오?
- 스님이 일러보소. 경봉은 비쩍 마른 만공선사의 팔목을 잡아 통증을 느낄 만큼 혈(穴)을 꾹 눌렀다. 그러자 만공선사가 아얏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 수고했소, 앉으시오. 바람이 오고 감을 느끼는 것도, 아얏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도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말하려는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김 화백은 합죽선으로부터 촉발되었던 의문이 하나 둘 씻기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경봉스님이 67세 때 불화가 석정(石鼎)스님과 문답하는 얘기를 명담스님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는 눈에 끼었던 헛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통쾌함이 솟구쳤다. 극락암의 산신탱화 중에 산신이 학의 날개를 부채처럼 들고 있는 것에 대한 선문답이었다. 경봉이 먼저 석정에게 물었다.
- 학의 깃이 산 학의 깃인가, 죽은 학의 깃인가.
- 전단향을 쪼갬에 조각조각 전단이요, 생학의 분신이 낱낱이 생학입니다. - 산신은 다섯 가지의 신통과 다섯 가지의 힘이 있는데 부채는 어디다 쓰며 또 사철 부채를 들고 있으니 사철에 부채를 어찌 쓰는가.
이에 석정은 게송을 하나 읊조리며 대답을 했다. 경봉은 석정의 대답에 몹시 흡족함을 느꼈다. 자신의 일기장에 ‘1958년 6월 17일 화요일 맑음’이란 칸 밑에 다음과 같이 석정의 게송을 적어 놓았던 것이다.
봄날에 부채를 부치면 온갖 꽃 다투어 피고
가을에 부채를 부치면 온갖 나무에 낙엽지고
여름에 부채를 부치면 구름이 일고 비가 오고
겨울에 부채를 부치면 서리와 눈이 옵니다.
春日動扇白花爭發
秋日動扇萬樹落葉
夏日動扇能雲能雨
冬日動扇能霜能雪
김 화백은 찻잔을 들었다가 갑자기 수전증 환자처럼 손이 떨리어 놓았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가 등골을 타고 사라지고 있었다. 그동안 경봉스님이 건네주었던 합죽선에 대해서 품었던 두 가지의 의문이 다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하나는 풍종하처래와 같이 주인공을 찾는 마음공부를 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붓을 산신의 부채처럼 신통묘용하게 놀리라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1.합죽선의 비밀
상원이 우송된 편지들을 가져오면서 방문을 열자, 눈보라가 방안으로 들이쳤다. 잠시 멎었던 눈이 눈보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명담스님은 빈 찻잔을 하나 들며 상원도 앉아 차를 마시라고 말했다.
“차 한 잔 하거라.”
“방금 원주실에서 신도님들과 몇 잔이나 마셨습니다.”
“상원 수좌는 아직도 차 마시는 양과 수행이 비례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군 그래.”
명담스님의 말에 상원은 허리를 굽혀 엉거주춤하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명담스님이 허허허 웃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김 화백님, 우리 노장님은 이미 22년 전에 입적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노장님을 어찌 불러내어 그리시겠습니까.”
“우선은 큰스님의 행장을 따라 답사해 볼 생각입니다. 큰스님의 중요 상좌 분들도 만나 볼 생각이구요.”
“그거야 당연한 수순이지요. 제가 묻고자 하는 것은 어찌 노장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마음속으로만 들어가면 꽃을 다투어 피어나게 하고, 구름이 일고 비가 오게 하고, 온갖 낙엽이 지게 하고, 서리와 눈이 오게 하는, 말하자면 신통 묘용한 산신의 부채는 저절로 얻어질 것입니다. 김 화백님의 붓이 산신의 부채가 된다면 노장님은 반드시 진영을 방편 삼아 환생하시고 말 것입니다.”
명담스님은 석정이 경봉스님에게 대답한 게송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었다. 경봉스님의 마음속으로만 들어가면 김 화백의 붓도 신통 묘용해진다는 의미나 진배없었다.
“상원아, 너는 앞으로 김 화백님이 답사할 노장님의 인연 터를 안내하거라. 자, 이제 너에게는 할 말이 더 없으니 나가보아라.”
상원을 주저앉힌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화백은 결코 수행자인 상원을 앞세워 답사할 생각은 없었다. 경봉스님의 인생행로를 따라 혼자 사색하며 오롯하게 떠돌아다니고 싶었다.
“이렇게 눈보라가 치는데 극락암에서 하룻밤 더 묵어가야 하실 것 같습니다.”
“이왕 극락암에 왔으니 이번 기회에 통도사의 암자들을 순례할 생각입니다.”
“거, 좋은 생각입니다. 저 위의 백운암은 경허선사가 계시면서 통도사에 스님의 발자국을 흘렸고, 바로 옆 비로암은 저보다 더 오랫동안 노장님을 모시고 산 노승이 지금도 계시고, 저 아래 자장암에는 노장님이 지은 시가 주련에 걸려 있습니다. 또 향곡 선사가 계셨던 선방 백련암에도 노장님의 상좌가 주지로 있습니다. 이번에 그분들만 만나 보아도 소득이 아주 클 것입니다.”
김 화백은 이제 명담스님에게 돌려줄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양복 안 호주머니에서 합죽선을 꺼냈다.
“스님, 이제 이 합죽선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더구나 경봉스님께서 몇 십 년 동안 소중하게 소장했던 유물이라 하니 큰스님 유물 전시관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명담스님은 합죽선을 받아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말했다.
“이 합죽선은 노장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진품이 확실합니다. 글씨도 노장님의 친필이 맞고요.”
“제가 대학원 시절에 직접 받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명담스님은 뜻밖에도 김 화백에게 합죽선을 되돌려주려 하고 있었다.
“김 화백님, 이 합죽선을 지금은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가에는 활구(活句)가 있고 사구(死句)가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활구도 되고 사구도 됩니다. 그렇듯이 이 합죽선도 유물 전시관에 들어가면 죽은 유물이 돼버리고, 김 화백님이 가지고 계시면서 산 정신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활인검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경봉 노장님께서 김 화백님께 이 합죽선을 준 뜻도 거기에 있을 터입니다. 그러니 노장님의 진영이 끝났을 때 저에게 돌려주어도 늦지 않습니다.”
문득 명담스님이 내밀고 있는 합죽선이 김 화백에게는 화두가 된 느낌이었다. 경봉스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자물쇠의 비밀 번호가 돼버렸다. 김 화백은 머쓱한 얼굴로 합죽선을 되돌려 받으면서 내심으로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나무랐다.
“자, 김 화백님. 이제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상원이 안내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혼자 다니겠습니다.”
“상원을 길동무로 붙이는 것은 내 뜻이 아닙니다. 상원이 자청했습니다.”
“뭐라고요?”
“노장님의 법문집을 읽고 감동해서 출가한 상원입니다. 그러니 이 일이 어찌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진영을 그리는 데 상원이 일조할 것입니다.”
김 화백은 더 이상 거절을 못했다.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상원도 자신의 구도를 위해 경봉스님을 징검다리 삼고 싶어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더구나 은사에게 미리 부탁했다니 김 화백은 상원을 낙심시키고 싶지 않았다.
“스님, 답사는 스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스님이 첫 계단이 되어주십시오.”
“하하하. 좋습니다만 약속을 하나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경봉 노장님과의 내 인연담을 말할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지금 법당으로 가셔서 108배를 하십시오. 절을 하면서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인과의 도리를 조금은 체험하고 오십시오. 다만 그것뿐입니다.”
김 화백은 별 수 없이 마당에 쌓인 눈을 밟으며 법당으로 갔다. 108배는 대학원 시절에 많이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니나 명담스님의 선기(禪機)에 압도당해 얼떨떨함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명담은 김 화백이 절을 하는 동안 그에게 얘기해 줄 것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려고 했다. 김 화백은 절을 20배쯤 했을 때 문득 경봉스님이 떠올라 웃음을 참지 못했다. 대학 교수실을 찾아온 한 젊은 스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였다.
김 화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침 텅 빈 법당이었으므로 법당 천정이 메아리칠 만큼 큰소리로 웃었다. 고성의 수도원에서 수녀들이 경봉스님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수녀들이 경봉스님을 만나고 싶은 것은 당시 고승들 중에서 가장 도력이 높고 인자한 스님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스님은 삼소굴로 수녀들을 불러들이고 난 후 침묵을 했다. 수녀들은 스님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지만 도무지 말할 내색을 비치지 않았다. 10분이 흐르고 다시 20분이 흘렀다.
그래도 스님의 말이 없자 초조해진 나이 든 수녀가 법문을 청하려고 입술을 달싹였다. 바로 그때 스님이 벽력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다소곳이 인내하며 앉아 있던 수녀들이 가슴을 움켜쥐며 혼비백산하여 ‘에구머니나!’ 하고 비명을 질렀다. 빈대 똥이 드문드문 묻어 있는 벽 쪽으로 도망치듯 물러난 어린 수녀도 있었다. 그제야 스님이 능청맞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도하는 분들이 무얼 그리 놀라십니꺼.”
스님의 미소에 안도하며 늙은 수녀가 말했다.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 정도 고함에 놀라면서 수도한다고 할 수 있십니꺼. 하긴 사자가 포효하면 여우 고막이 찢긴다는 말이 있십니더.”
이후 스님을 만난 수녀 중 한 명은 이 말이 화두가 되었다고 한다. 기도하면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스님의 그 말씀이 놀라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말뚝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날 스님이 수녀들에게 한 법문은 무엇을 하든 목숨 걸고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일상생활, 밥 먹고 옷 입고 하는 온갖 것이 도(道) 아님이 없다. 정신을 한 곳에 모아서 무사무념(無思無念), 그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예전에 고인(古人)의 기연(機緣)이 하나 있다. 소산 광인(疎山 光仁) 선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누가 불법을 물으면 ‘나무로 깎은 뱀’을 들어보이고는
- 이것이 조가(曹家)의 여인이니라. 하고 말했다. ‘나무로 깎은 뱀’을 들어 보이는 것이 소산 선사의 유일한 법문이었다. 소산 선사가 그러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씨라는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다가 그만 풍랑을 만나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조씨 부인에게 가서 ‘당신 남편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그 부인이 애통해 하며 남편이 빠져죽은 바다까지 데려다 달라고 애원했다.
할 수 없이 그 사람은 조씨 부인을 데리고 조씨가 빠져죽은 바다로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그 부인마저 그 바다에 손살같이 뛰어내려 사라지고 말았다. 조씨 부인을 발견한 것은 사흘이 지난 후였다. 한 바닷가에 조씨의 부인이 자기 남편을 끌어안고 파도에 떠밀려 와 있는 것이었다. 망망대해인데 어디 가서 죽은 남편을 껴안고 나왔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노릇이었다. 소산스님이 공연히 나무뱀을 들고 ‘이것이 조가의 여인이니라’ 한 것이 아니라 조가의 아낙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기 남편의 송장을 껴안고 바닷가에 떠밀려온 그것을 말한 것이다. 송장이 가서 송장을 찾아 안고 떠밀린 뜻은 거기에 있다. 소산스님의 설법에 자수(慈受)선사라는 분이 착어(着語)를 달았다.
헤어지는 모습은 꽃이 웃는 것만 같지 못하고
이별의 정은 무심한 대나무와 같을 수 없어라
사람들에게 공연히 조가의 여인을 말해서
서로 생각하여 병만 점점 깊게 하는구나.
別面不如花有笑
離情難似竹無心
因人說着曹家女
引得想思病轉深
소산스님의 나무뱀 이야기에 대하여 한 방망이 준 것인데, 방망이를 준 곳은 어디인가? 그것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송장이 송장을 끌어안고 바닷가에 떠밀려 와 있었겠는가. 목숨을 걸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없다는 소산선사의 법문이리라. 불법도 마찬가지다. 목숨을 걸면 결코 불(佛)을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는가. 그림 그리는 흉내만 내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헛산 것이다. 허깨비로 산 것이나 다름없다. 유령처럼 떠돈 것일 뿐이다.
김 화백은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배우가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듯 웃다가 금세 울고 있었다. 진영을 그리려면 조가의 여인처럼 간절해야 한다. 송장이 송장을 끌어안고 바닷가로 떠밀려 와 있듯 목숨을 걸어야 한다. 김 화백은 이를 악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조가의 여인처럼 목숨을 걸면 죽은 경봉스님이라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훗날 경봉스님은 극락암의 한 제자에게 조가의 여인보다 더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충무에 살던 어부 부부의 일화인데 남편은 날마다 고기잡이를 하러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어부에게는 발밑이 저승이었다. 하루는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다 잘못하여 그만 바다에 빠져죽고 말았다. 함께 고기잡이하던 어부가 부인에게 가 사실을 말하니 그 부인은 아무 말도 묻지 않더니 바다로 걸어들어 가버렸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준 어부가 만류할 틈도 없었다. 부인은 며칠 후에야 죽은 남편을 껴안고 바닷가로 떠밀려 나왔다.
조가의 여인은 남편이 죽은 바다를 물어서 알고 뛰어들었지만 충무의 아낙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망무제의 바다로 걸어 들어가 죽은 남편을 찾아내었으니 더 불가사의한 것이다. 망나니에 얽힌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야기 역시 조가의 여인보다 신비스러운 것으로 경봉스님이 제자들에게 히히히 웃으며 틀니를 드러내곤 했었다. 옛날에는 역적모의에 가담하여 발각되면 구족(九族)이 멸문지화를 당했다.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조무래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 망나니가 차마 어린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양부처럼 데리고 있다가 어른이 되면 죽이겠다고 관아에서 허락을 받았다. 자라면서 망나니와 아이는 서로 정이 들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신이 양부 손에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눈치 채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는 양부에게 사정했다.
-아버지.
-왜?
-저를 죽이지 마셔요.
-오냐 오냐. 귀여운 내 자식을 어찌 죽이겠느냐. 세월은 흘러 아이를 죽이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관아와 약속한 참수형 집행일이 다가온 것이었다. 아이가 눈치 채고 양부에게 애걸했다.
-아버님, 저를 죽이지 마셔요. 망나니는 소년을 죽이지 않으려고 꾀를 냈다.
-내가 칼을 휘두르며 춤을 출 때, 나를 똑바로 보고 있거라. 그러면 내가 눈을 찡끗 할 테니 그때 도망가거라. 소년은 형 집행일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서는 양부가 시킨 대로 했다. 양부의 눈이 찡긋거리자 도망을 친 것이다. 소년은 멀리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다. 몇 년 후에는 몸을 의탁한 집의 딸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살았다. 어느 날 어른이 된 그는 양부의 은혜를 못 잊어 조랑말에 선물을 가득 싣고 찾아갔다. 그는 늙어버린 양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아버님, 제가 왔습니다. 그동안 어찌 지내셨습니까. 그러나 양부는 당달봉사처럼 눈을 뜨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네가 누구인데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냐.
-아버님은 저를 살려주신 은인이십니다. 은혜를 보답하고자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망나니는 그래도 꿈속의 일인 것처럼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이상도 하구나. 그때 나는 분명히 너를 목을 쳐 죽였는데 말이다. 망나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흐물흐물 형태가 무너지더니 마침내 연기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른바 몸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유체이탈(幽體離脫)이었다. 그러니 조가의 여인보다 더욱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법당 문이 화닥닥 열어젖혀졌다.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열렸다. 눈보라는 여전히 거친 바람을 타고 휘날리고 있었다. 눈가루가 법당 안으로 무법자처럼 침입해 들어왔다.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사라진 사람은 바로 명담스님이었다. 그는 김 화백이 그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법당 뒤편의 솔바람 소리는 파도가 날뛰며 허공을 물어뜯는 소리와 흡사했다.
우우우 우우우우-.
원광재 끝방으로 다시 돌아와 문을 닫자, 밖의 세상은 무성영화처럼 눈보라치는 소리가 죽어버렸다. 문득 김 화백은 명담스님과 함께 무거운 돌처럼 심연으로 가라앉은 기분이 들었다. 다관을 잡은 명담스님의 손놀림이 찻잔 사이로 무심히 이어졌다. 명담스님은 차를 천천히 따르며 좀 전에 약속한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것은 명담스님만의 얘기는 결코 아니었다. 경봉스님의 몽타주를 한 부분 한 부분 그려가는 소묘와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해인사에 입산하였을 때는 50년대 말이었습니다. 17살에 김포를 떠나 해인사로 갔지요. 그때 해인사에는 노사님들이 여러 분 계셨는데 금봉(錦峰), 응선(應禪), 고봉(高峰) 같은 스님들이었지요. 당시 퇴설당 선방에는 10여 명이 있었고 입승은 덕현(德玄)스님이었습니다. 광채나는 눈빛으로 후원에 와서 손가락질하며 애매모호한 표현을 하던 덕현스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공부가 무르익어 그랬는지 뒤에 경봉스님께서도 덕현스님의 견처(見處)를 관심 있게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해 겨울에는 법정과 고은 수좌도 안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소밭에서 고소를 뜯고 있는데 연산스님이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 누고?’하며 저에게 애정을 보여주신 연산스님도 계셨는데, 그 스님은 저에게 경봉스님을 안내해 주셨던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아무튼 나는 18살에 야반도주하여 삼소굴로 왔지요. 경봉스님은 그때 69세이셨습니다.”
경봉은 무테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어린 명담을 자상하게 맞아주었다. 손도 만져보고 어깨도 두드려보고 집안 사정도 시시콜콜하게 물으며 어린 명담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명담은 따뜻하게 이리 저리 살펴보는 경봉의 눈길에서 이런 말을 읽을 수 있었다.
-이놈아가 와 이제 왔노. 고승에 대한 경외심으로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한 어린 명담에게 경봉은 과분한 덕담을 하고 있었다.
-니는 전생에 많이 닦았으니까 이승에는 조금만 더 닦으면 되겠다. 며칠 후에는 사미계를 내려주었다. 명담은 일진(一眞)과 함께 경봉스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런데 경봉스님의 첫 마디는 비로소 석가모니 부처의 후예가 된다는 자부심에 부풀어 있던 명담에게는 놀랍고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나 경봉은 천하가 다 아는 대처다. 그래도 사미승이 된 명담과 일진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훗날의 명담은 그때가 다시 반복된다면 ‘영감이 뭐 장가 간 것 가지고 자랑하는가’ 하고 찔러보았을 터였다. 일진도 잔뜩 얼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중물이 든 일진은 경봉을 흉내 내곤 하여 사람들을 곧잘 웃길 만큼 장난기가 넘쳤는데 그때는 보리자루처럼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날 경봉스님에게 들은 첫 법문은 이랬다.
‘울산 태화강 건너편으로 사람들이 장을 보러 갔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배가 뒤집혀 사람들이 죽은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소식을 들은 어느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아범이 어찌 됐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일렀다. 그러자 며느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버님, 배탄 장꾼들이 다 죽었어도 그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저는 그 사람을 잘 압니다. 강물이 아니라 바다 한가운데 빠져도 살아나올 그 사람입니다. 과연 남편은 실제로 살아 돌아왔다. 아버지가 아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연 며느리의 이야기가 맞았다. 아들은 물살이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상투를 풀어 머리카락이 흐르는 반대방향으로 헤엄쳐 나왔다는 것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 장꾼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고서 급류에 휩쓸려 죽지 않았던 것이다. 짧은 법문 끝머리에 경봉은 사미승이 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서는 마무리를 지었다.
-니들이 강물에 빠져서 흐르는 머리카락을 보고 헤엄쳐 나올 정도면 대처(帶妻)든 취처(娶妻)든 상관없으니 중노릇 잘하면 그만인 거라. 이를테면 걸림 없이 잘사는 도리를 알아 중노릇 멋들어지게 하라는 법문이었다. 사는 도리를 깨닫게 된다면 여자를 취하더라도 여자에 죽지 않고 술을 마시더라도 술에 죽지 않는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무애의 경지를 말하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무애가 어찌 쉽게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이겠는가. 꿈을 깨지 못한 수행자가 막행막식(莫行莫食)한다면 저잣거리의 중생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었다. 경봉은 늘 극락암의 시자(侍者)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경책하곤 했다.
-소금이 바닷물에 나지만 물에 들어가면 녹으며, 봄이 오면 비바람으로 꽃을 피우지만 또 비바람에 의해 꽃이 지고, 여인의 몸에서 사람이 태어나지만 여인에 의해서 스러진다. 명담스님은 찻잔 속에서 스승 경봉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맑은 차를 응시한 채 김 화백을 아예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말을 할 때도 찻잔 속의 찻물을 보고 말했다.
“노장님께서는 누가 찾아오면 꼭 묻는 말이 있었습니다.”
“노장님께서 던지는 화두였군요.”
“그렇습니다. ‘여기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하고 물으면 대부분은 무슨 말인지 잘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돌아가려고 했지요. 그러면 또 말씀하지요. ‘대문 밖을 나서면 돌도 많고 물도 많으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도 말고 물에 미끄러져 옷도 버리지 말고 잘들 가라’고요.”
“하지만 스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물에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것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노장님의 평생 공부가 다 거기에 들어 있다고 봐야 옳습니다.”
명담스님이 가볍게 도리질하며 그제야 김 화백을 보았다. 그러면서 명담스님은 꿈에서 깬 자의 진리는 결코 밥 먹고 잠자고 똥 누는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