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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명칭과 뜻
우리가 흔히 탑이라 부르는 특수한 불교건축은 원래 범어(梵語)의 stupa, 파리어(巴梨語)의 thupa 라는 낱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외에 지제(支提)라는 말도 예부터 쓰여져 왔다. 지제는 caitya 또는 chaitya 라는 범어를 소리(音)로 번역한 말인데 원래는 탑과 약간 다른 뜻이지만 후대에는 같은 뜻으로 써왔다.
(1) 탑(塔=stupa)
범어의 stupa를 음역한 말 중 가장 많이 쓰인 것이 「탑파(塔婆)」인데 뒤의 「파」를 떼어버리고 간단히 「탑」이라 통칭한다. 그러나 「솔도파, 藪斗婆, 蘇偸婆, 兜婆, 偸婆, 浮屠」 등 매우 다양하게 음역하고 있다. 뜻으로 번역하여 「大聚, 塚, 方墳, 高顯, 墳陵」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탑이란 무덤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기타 덕 높은 스님들의 신골(身骨)인 사리(舍利=Sarira)를 넣는 무덤이 바로 탑이다. 탑무덤은 사리를 넣어 흙이나 돌을 쌓아 올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大聚」라는 말로도 부른 것 같다. 그래서 마하승지율(摩詞僧祗律 三十三)33에 사리가 있는 것을 탑이라 한다는 말이 있다시피 원래는 사리를 넣은 불교무덤을 탑이라 했던 것이다.
(2) 지제(支提=caitya)
범어의 caitya(chaitya)를 음역해서 「支提, 制底, 制恒里, 帝浮圖」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이것을 뜻으로 번역하여 「聚相, 積集, 福聚」라고도 하고 「靈廟, 方墳, 淨處, 生淨信處, 可供養處」하기도 한다. 즉 보석이나 돌로 높이 쌓은 것을 뜻하는 것이다. 마하승지율에서는 사리가 없는 것을 지제(枝提)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기념비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탑으로 공양예배하는 본존적인 사당(祠堂)으로 이해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흔히 지제당(枝提堂=Caitya-graha)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러한 지제는 대개 부처님의 자취(聖跡)가 있는 곳에 세워졌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개념에 따라 탑이나 지제등으로 불렀던 때도 있었지만 사리신앙의 성행에 따라 탑의 수요가 급증해 지자 엄격한 의미로서의 본탑 즉 부처님의 신골을 넣을 수 있는 탑을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사리의 유무에 따라 구태여 탑과 지제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후대에는 탑과 지제를 함께 쓰게 되었으며 또한 무덤의 성격과 기념물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진 숭배대상으로 알려져 왔다.
Ⅱ. 기원과 전개
탑은 불교 이전에도 분묘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으므로 탑 만드는 일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사리탑(佛舍利塔)이 성행된 이후에는 불교의 독특한 건축으로 완전히 불교화 되었다. 부처님의 신골을 여덟 나라에서 공평하게 나누어 탑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 탑을 만드는 주역은 재가신자들이었다. 이들은 이 탑을 단순한 무덤으로서만 생각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불교의 교조인 부처님의 신성한 신골이 봉안되어 있는 성스러운 구조물로 여겨서 예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8탑은 부처님의 무덤이자 신성한 건조물이란 이중적 성격을 가졌다는 말이다.
8탑에 모든 사리를 넣은 후 새로 탑을 만들고자 했으나 사리가 없자 사리를 넣었던 병을 사리 대신 넣고 만든 것이 아홉 번째의 불탑이다. 그 후 부처님을 다비(火葬)하고 난 후 남은 재(炭)을 넣어 만든 것이 열 번째의 탑이다. 뿐만 아니라 사리탑 신앙이 점차 확대되면서 부처님의 머리칼이나 족적(足跡), 의발(衣鉢)에 대해서까지 숭배하여 이들을 넣어 탑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정된 부처님의 신표로서는 도저히 사리탑 조성의 열기를 충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쇼카왕 시대에는 옛날에 세웠던 8탑 간운데 일곱 탑을 열어 불사리를 다시 나누어 84,000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열렬한 사리신앙은 드디어 탑을 완전히 보존적인 예배대상으로 승화시켰으며 따라서 이제 분묘적인 성격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만다.
뿐만 아니라 아쇼카왕은 부처님의 성적(聖跡)이 있는 곳을 모두 순례하면서 이를 기념한 기념탑을 만들었다. 물론 여기에는 사리를 넣지 않고 순전히 부처님의 자취를 기리는 뜻으로 탑을 모았는데 이것도 무척 신성시되어 예배되었다.
하여튼 이 때부터 탑은 본격적으로 널리 파급되었고 그만치 탑에 대한 신앙도 열렬했으므로 수 많은 탑들이 조성되는 일대 붐이 일게 되었다. 당(唐)나라의 현장법사(玄奬法師)가 녹야원(鹿野苑)을 찾았을 때 초전법륜을 상징하는 아쇼카왕탑, 석주, 5비구기념탑, 500나한탑, 미륵. 석가수기처의 각 1탑, 과거 4불. 과거 3불, 유적탑 등 허다한 탑을 보았다는 것은 이를 잘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탑의 붐은 비구, 비구니같은 출가한 스님들에게 까지도 일어나게 되어 탑조성에 참여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사원에 탑을 만들어 이를 공양하고 예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체로 기원전 2세기 이후부터 점차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탑은 절의 중심이 되는 예배대상 즉 본존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Ⅲ. 배치와 구조
(1) 배치(配置)
사원배치 가운데 탑의 배치는 여러 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앞 장에서 말한 바 있다. 탑이 어떻게 배치되는가에 따라 사원형식이 본질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탑의 위치는 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 할 수 있다. 탑배치에는 탑이 사원의 중심으로 주존적인 배치가 되는 경우와 불상을 봉안한 금당과 나란히 같은 비중으로 배치되는 경우 그리고 완전히 금당에 종속적인 위치로 배치되는 등 세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세 번째의 배치를 취하고 있는데 금당 앞에 1탑만 배치되거나 좌우로 대칭되게 쌍탑이 배치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인도에서는 탑원을 이루었을 때 탑 주위를 난간(欄楯=vedika)으로 돌리고, 동서남북의 4문(torana)을 설치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담 또는 회랑을 두르고 문을 설치한다.
(2) 구조(構造)
탑 자체의 구조는 인도의 산치탑같은 복발탑(覆鉢塔)일 때와 목탑(木塔)이나 석탑(石塔)등 중층탑일 경우에 따라 다르며 탑의 재료나 형식에 따라서도 다양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어느 탑이라도 크게 보아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탑의 기초가 되는 기단부(基壇部)와 중심인 탑신부(塔身部), 그리고 꼭지를 장식하는 탑두부(塔頭部) 즉 상륜부(相輪部)의 3부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라 하겠다.
여기서는 인도의 복발탑과 중층탑 가운데 우리나라의 석탑 등 두 형식의 탑을 예로 들어 그 구조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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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기단(基壇)
탑의 기초가 되는 부분으로 탑신인 복발을 받쳐주고 이를 더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벽돌을 첩첩이 쌓아 만들었는데 위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었다. 이를 이른바 요도(褥=Pradaksina-path)라 하는데 흔히 남쪽 문에서 좌우로 계단을 내었다.
나. 복발(覆鉢=Anda)
기단 위에 세운 탑신인데 내부는 흙같은 것으로 채우고 표면을 벽돌로 쌓아 모양이 마치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다. 상륜부(相輪部)
? 평두 平頭(=Harmika)
보통 네모꼴의 석감(石龕)인데 복발의 꼭지에 장치하는 것으로 여기에 사리를 안치하기도 한다.
끼 산개(傘蓋=chattra)
① 복발탑(覆鉢塔)
복발탑은 인도의 초기 탑형식이었는데 이 역시 기단과 탑신인 복발, 탑두부인 상륜 등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예부터 여러 명칭으로 불려왔다. 「盤蓋, 輪蓋, 相輪, 承露盤, 露盤」등으로 불리워 졌는데 평두 위에 놓인 둥근 바퀴모양의 뚜껑이다. 산개의 수는 다양한데 이것을 꽂는 자루같은 것을 간(竿), 찰주(刹柱) 또는 심주(心柱)라 부르기도 하며 범어로는 Yasti 이다. 산개의 수는 매우 다양하여 1개에서 13개까지 있다고 말해진다. 우리나라같은 후대의 목탑이나 석탑등 중층탑일 경우에는 3개 또는 9개가 많았는데 이 때의 산개는 이미 발달된 형태로서 상륜부의 발취만을 한정해서 말한다.
② 중층탑(重層塔)
중층탑은 전탑, 목탑, 석탑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탑신부가 중층으로 이루어진 탑이다. 복발탑이 생긴 이후 후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교적 발달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석탑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가) 기단
흔히 2층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래에 있는 것을 1층 기단, 또는 하층 기단, 위에 있는 기단을 2층 기단 또는 상층 기단이라 부른다. 기둥은 각각 8,9, 4주(柱)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나) 탑신부
탑신부는 보통 3,5,7,9,11,13층 등 대부분 홀수로 된 중층으로 구성된다. 목탑일 경우에는 심주 또는 찰주라는 기둥이 중심부를 관통하면서 상륜부까지 계속되지만, 석탑일 경우에는 상륜부에만 표현된다. 중층의 탑신은 3층집이나 5층집과 같은 것으로 목탑처럼 내부가 공간으로 된 것과 석탑 같이 완전히 막힌 경우등이 있다.
(다) 상륜부
복발탑일 경우에서 복발위의 평두와 산개, 찰주등을 상륜부라 하는데 이것이 중층탑으로 변하면 매우 화려한 모양으로 변한다. 즉 복발탑의 기단, 복발과 평두, 산개(寶輪)는 물론이고 그 위에 갖가지 장식들이 더 첨가된 것이 상륜부이다. 이는 금속이나 돌로 매우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원칙이다. 그 모양은 각 탑마다 조금씩 다르고 이들의 명칭은 옛 문서에 따라 그리고 학자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탑신 바로 위에 있는 것을 흔히 「露盤」이라 부르는데 이말은 원래 복발탑일 경우 상륜부인 산개이므로 적당치 않다. 그렇다고 결코 평두도 아니다. 복발탑의 복발아래 기단부가 확실하므로 대(臺) 또는 기단이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위에는 복발을 받치는 판(蓋板이라 하기도 한다.)이 있는데 복발의 받침이다. 이 위가 복발이다. 복발은 복발탑의 탑신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복발탑 전체를 상륜부로 삼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중층탑에서는 복발탑의 탑신부까지 상륜부로 변한 것이다.
복발의 바로 위가 복발탑의 평두인데 흔히 「仰花」로만 보고 있지만 앙화는 평두의 머리장식에 불과한 것이다. 앙화 위에는 둥근 바퀴가 3개 또는 5개, 7개, 9개, 11개, 13개 등 다양하게 있는데 보륜 (寶輪) 또는 「盤」이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위에 노반관관(露盤冠管) 또는 보개(寶蓋)라 부르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보륜의 덮개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뚜껑 또는 보개라 부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이 위에 수연(水煙) 또는 수염(水焰)이 있고 그 위에 구슬이 두 개 있는데 밑의 것을 용차(龍車), 위의 것을 보주(寶珠)라 부른다. 이들은 모두 보륜위를 덮어주고 장엄하는 구실을 하는데, 근본설일체비나야잡사 같은 경전에서는 원래 보병(寶甁)을 안치한다고 했으며 사실 중국 북위의 영령사(永寧寺) 9층탑에 보병을 장엄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보주를 장엄하고 있다.
Ⅳ. 종류
(1) 재료
인도에서는 벽돌로 된 이른바 전탑(塼塔)이 유행했지만 금, 은, 동, 유리, 수정, 나무, 돌 등 다양한 재료로 탑을 만들 수 있다고 불경(根本說有部尼陀那第五 및 摩詞僧祗律)에도 나와 있고 실제로 갖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탑들이 많이 남아 있다.
① 벽돌탑(塼塔)
벽돌탑은 인도에서 가장 성행한 것인데 이것은 지역적으로 중인도는 석재나 목재보다 벽돌이 알맞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인도의 영향을 받아 목탑에 버금하여 많이 만들어졌다. 가령 하남성 숭악사(崇岳寺) 15층 전탑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 당 전탑의 영향을 받아 벽돌모양의 이른바 모전탑(模塼塔)이 634년에 분황사(芬皇寺)에서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그 후 순 벽돌탑은 통일기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진다. 지금은 파괴되어 벼렸지만 경주 석장사(錫杖寺) 전탑, 그리고 안동 전법흥사지전탑, 전법림사지 전탑, 조탑 동전탑 등은 물론이고 청도 매전동 불영사폐전탑, 운문사 폐전탑, 울산 농소면 폐전탑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② 나무탑(木塔)
나무로 만든 목탑은 인도에서는 드문 편(카니시카왕이 만든 雀離塔)인데 중국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중국 건축의 특색이 바로 나무로 된 것이지만 목탑은 실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가령 북위 영령사 9층목탑(永寧寺九層木塔)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인데 높이가 무려 150m(300m 라는 설도 있음)나 되는 거대하고 웅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선덕여왕때 세워진 황룡사 9층 목탑이 가장 대표적인 것인데 그 높이가 무려 80m나 되는 것으로 아마 영령사 9층 목탑을 염두에 두고 조성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망덕사의 목쌍탑도 저명하였으며, 물론 백제나 고구려에도 이런 목탑의 예가 많이 있었다. 현재는 법주사 팔상전, 쌍용사 대웅전가은 예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목탑은 상당히 많이 조성되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③ 돌탑(石塔)
이른바 석탑은 가장 독특한 우리나라의 탑이다. 일찍부터 양질(良質)의 화강암이 풍부하게 생산되었기 때문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석탑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석탑은 우리나라 탑의 대명사처럼 된 것이다.
④ 금속제탑
금, 은, 동, 철 등으로 만든 조그만 탑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특히 동으로 만든 예는 많이 남아 있는데 이 가운데는 상당히 큰 탑도 있다. 가령 이병철씨 소장 동탑같은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들은 모두 정교하게 만들어졋기 때문에 공예적인 성격이 농후한 것이 많은 편이다.
⑤ 기타탑(其他塔)
수정이나 유리로 된 이른바 옥탑(玉塔), 흙으로 된 니소탑(泥塑塔)같은 것도 많이 있는데 니소탑은 탑 속에 넣는 작은 탑으로 된 경우가 많으며, 이런 작은 탑 중에는 돌로 된 것도 상당수 된다.
(2) 형태(形態)
탑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복발형탑(覆鉢形塔), 둘째는 중층탑(重層塔), 셋째로 특이형탑(特異形塔) 등이다.
① 복발탑
복발탑은 앞에서도 여러번 언급했다시피 인도탑의 초기형태이다. 탑신이 마치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탑신 밑은 기단부이며, 탑신위는 네모꼴의 석감(石龕) 즉 평두(平頭)를 얹고 그 위에 산개(傘蓋)를 안치하는데 모양은 약간씩 다르다. 탑주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사방에 문을 설치하며, 탑 앞에는 기둥(石柱, 銅柱, 鐵柱)을 세워 그 위에 코끼리나 사자같은 동물상을 얹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라 고분과 매우 흡사한 모양인데 신라 고분에 상륜부를 안치한다면 바로 복발탑과 같은 모양이 될 것이다. 이 신라 고분은 아마도 인도 복발탑의 영향이 농후한 것이 아닐까 싶다.
② 중층탑(重層塔)
다충건물의 모양을 탑에 이용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탑신의 모양은 다층건물과 흡사하다. 중국의 기념비적 탑에서 유래한 꼭탑에서부터 다층탑이 크게 성행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것이 다층전탑을 발생시켰고 우리나라에서는 다층석탑으로 번안되었다.
다층탑은 3층에서 13층까지(3층, 5층, 7층, 9층, 11층, 13층 탑이 보편적이었다)
가. 13층탑 .. 인도의 작리부도라든가 우리나라의 경천사 13층 석탑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나. 11층탑 .. 우리나라의 원각사석탑이 이에 속한다.
다. 9층탑 ..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 3보의 하나로 당대 무쌍(無雙)의 큰 탑이었고 중국 북위 영령사 9층탑도 유명하다.
라. 7층탑 .. 중국의 자은사대안탑(慈恩寺大雁塔)은 저명하였던 것이며 우리나라의 7층탑
마. 5층탑 .. 5층탑의 예는 꽤 많은 편인데, 가령 우리나라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유명하다.
바. 3층탑 .. 3층탑은 가장 많은데 우리나라 석탑의 대부분이 3층탑이다. 그다지 웅장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크기의 사찰에 가장 알맞고 만들기도 손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③ 특이형탑(特異形塔)
앞의 두 형태와는 다른 특이한 모양의 탑을 통털어서 이 부류에 넣었는데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
가. 다보탑(多寶塔)
법화경 다보품에 보이는 다보탑에서 유래한 것으로 초기에는 3층이었다가 후에는 2층탑에 화려한 장엄을 더한 아름다운 탑이다. 우리나라 불국사의 다보탑은 가장 유명하다.
나. 보협인탑(寶筐印塔)
탑 속에 보협인다라니경을 봉안하는 특이한 탑인데 중국 오월왕 전홍숙(吳越王 錢弘淑)이 84,000탑의 주조해서 널리 유포했다는 것으로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런 형태의 탑이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천안에서 발견된 석탑 한 예만이 있을 뿐이다.
다. 주탑(柱塔)
「十誦律」같은 경정에는 나타나 있지만 어떤 모양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아마 백률사 뒤편에서 나온 돌기둥의 사방에 탑을 조각한 것이 주탑의 범주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불광사(太原佛光寺) 공양탑 같은 형태일 것 같다.
Ⅴ. 탑 안에 넣는 보물
탑에서 여러 가지 보물이 봉안된다. 원래는 부처님의 사리 즉 신골만을 봉안하였지만 신골은 일정한 양에 불과한 것이므로 사리 이외에도 머리칼, 손, 발톱, 이(齒牙)는 물론 법사리인 불경과 법신사리인 깨끗한 모래, 수정, 금, 은 같은 보배들까지 봉안한다. 사리는 작은 병이나 합에 넣고, 이 병을 다시 내함(內函)과 외함에 차례로 넣어 사리공(舍利孔)에 봉안한다.
(1) 사리(舍利=Sarira)
중국에서는 음역하여 「室利羅, 實利」등으로 불렀고, 뜻으로 번역하여 「身骨」 또는 「體」등으로 불렀다. 즉 부처님의 신체를 화장하고 난 나머지 뼈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탑에서 나오는 매우 단단한 것은 진신사리는 아니다.
(2) 법신사리(法身舍利)
한정된 진신사리 대신 수정, 유리, 모래같은 보배를 작은 알처럼 만들어 탑에 봉안했는데 이것을 법신사리라 한다.
(3) 법사리(法舍利)
사리와 함께 또는 사리 대신 불경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처님의 법이 쓰여있는 불경을 넣음으로 사리 대신 법사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가장 많이 넣은 불경은 법화경(法華經), 금광명최승왕경(金剛明最勝王經)등이다.
특히 무후정광다라니경을 넣을 경우 99개의 작은 탑을 함께 봉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황복사탑, 동화사금당탑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文明大 / 동국대학교부설역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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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부했던 부분들인데 가물가물한 것이..._()_
다들 그런걸요 뭘...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