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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페라의 역사적 배경
오페라는 이태리에서 시작되었다. 14세기부터 작곡된 이태리의 마드리갈(madrigal)은 목동들의 사랑이야기를 노래하던 세속음악이었는데, 16세기에 이르러 연작마드리갈(madrigal cycle)로 발전하며 사건의 기승전결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연작마드리갈은 가사의 자연스런 억양과 흐름을 살려주는 반주법과 창법인 모노디(mondia)양식과 결합되어 발전하였다. 유명한 천문학자 갈릴레오의 부친인 빈센초 갈릴레이(V. Galilei, 1520~1591)는 당시에 대표적인 모노디 작곡가였는데, 그는 “가사에 곡을 붙이는 방법은 훌륭한 웅변가의 자연스러운 말의 억양을 살리는 독창선율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성악가이며 작곡가였던 페리(J. Peri, 1561~1633)와 캇치니(G. Caccini, 1546~1618)는 모노디에 성악적인 기교를 도입시켰고, 1600년 그리스신화를 바탕으로 모노디 <에우리디체>를 작곡하여 메디치家의 결혼식에서 공연하였는데, 이를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라 부른다. 몬테베르디(C. Monteverdi, 1567~1643)는 같은 신화의 줄거리를 5막으로 확대시키고 합창과 독창, 기악전주곡과 간주곡 등 다양한 형태의 연주를 추가하여 <오르페오>라는 이름으로 1607년 만토바에서 공연하였는데, 이것이 지금 형태의 오페라이다. 따라서 몬테베르디를 오페라의 창시자라 부른다.
오페라 <백록담>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먼저 오페라의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것은 갈릴레이가 말한 ‘자연스런 말의 억양을 살리는 독창’ 그리고 몬테베르디가 시도한 ‘다양한 형태의 연주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 우리나라의 창작오페라
지난 6월 9일과 10일 제주돌문화공원 야외무대에서는 제주창작오페라 <백록담>이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조선 정조 때 실존인물인 제주목사 조정철과 제주처녀 홍윤애의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 차범석님이 제주로 유배 온 선비 문길상과 금지된 사랑에 빠진 제주처녀 구슬이가 설문대할망의 도움으로 백록담에서 사랑을 이룬다는 줄거리로 각색하였고, 김정길 전 서울대교수가 음악을 만들었다.
이 오페라는 제주시가 제주의 문화상품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2002년 전국의 자치단체 중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창작오페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창작오페라들이 많이 제작·공연되었다. <이순신>, <안중근>, <유관순>, <고구려의 불꽃(동명성왕)>, <눈물 많은 초인(박정희)>, <동녘(전봉준), <황진이>, <부자유친(사도세자)> 등이 있는데, 제목이 보여주듯 모두 역사에 등장하는 위인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중에는 제주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도 한 편 있다. 서울시오페라단과 화희오페라단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이 공동으로 제작하여 2004년 9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하멜과 산홍>은 제주도로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과 제주도 여인 산홍과의 사랑과 이별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독일 베를린 음대 작곡과 교수인 프랑크 마우스가 음악을 만들었고, 파리 오페라극장의 총연출감독을 역임한 미하엘 디트만의 연출로 외국말로 공연된 바 있다.
3. 오페라와 언어의 관계
오페라의 줄거리는 오랫동안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설정한 도식의 영향을 받았다. 즉, ①주인공은 반드시 불행한 결말을 맞이해야 하며, ②그는 천한 욕망에 기인하여 죽어서는 안 된다. 즉 보다 차원이 높은 목적을 위해 일하는 과정에서 몸을 던져야만 한다. ③그러나 주인공이 완전무결한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며, ④비극적 주인공의 신분은 일반 시민이 아닌 영웅이나, 왕 또는 귀족이어야 하며 ⑤주인공은 도덕적으로 보통 이상이어야 한다.
오페라 <백록담>은 영웅이 아닌 귀양 온 선비와 제주여인의 사랑이야기이므로 영웅중심의 정가극(正歌劇, opera seria)이라기 보다는 진실주의 오페라(verismo opera)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다른 창작오페라들에 비해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변방 문화의 특색과 전통을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변방의 언어로 표현하며 그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보여주는 오페라는 생각보다 성공을 거두기가 어렵다. 오페라가 발달한 유럽에서조차 오페라가 탄생한지 거의 200년이 지나도록 오페라는 이태리식으로 작곡되고 이태리어로 노래되었다.
1752년 파리에서 공연된 페르골레시의 오페라부파 《마님이 된 하녀》가 성공을 거둔 후 파리에서는 프랑스 전통적인 궁정오페라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일파와, 이태리 오페라를 신봉하는 일파가 대립하여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음악사상 매우 유명한 논쟁이었으나, 말이나 글로 싸우는데 그치지 않았으므로 ‘부퐁의 전쟁(Guerre de Bouffons)’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프랑스측의 신봉자에는 국왕 루이 15세를 중심으로 하는 귀족과 라모를 비롯한 음악가, 이태리측에는 왕비를 비롯하여 J.루소, D.디드로, J.달랑베르 등의 계몽사상가와 그 밖의 지식계급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일제히 오페라는 이태리식으로 만들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루소(J. J. Rousseau, 1712-1778)는 논문을 발표하여 “프랑스어는 원래부터 노래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다.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음악이 없으며 또 가질 수도 없다. 만약에 음악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해로운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으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글룩(C. W. Gluck, 1714~1787)이 1762년 오페라 <오르페오와 유리디체>를 발표하며 프랑스어로도 훌륭하게 레치타티보를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까지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이태리오페라가 주류를 이뤘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모차르트는 20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그 중 독일어로 쓴 오페라는 <Bastien und Bastienne, 바스티엔과 바스티엔네>, <Die Entfuehrung aus dem Serail,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그리고 <Die Zauberfloete, 마적> 이렇게 단 세 편 뿐이다.
이러한 예는 투박한 제주방언으로 오페라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를 알게 한다. 오페라 <백록담은> 고 차범석님의 대본을 고 양중해 선생님이 필요한 부분을 제주사투리로 번역하였고, 출연자들과 지휘자가 연습을 하는 동안 노래하기 좋은 제주어로 다시 다듬어 작품을 완성시키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오페라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음악이 노래된다. 하나는 사건의 줄거리를 전개해나가는 서사적인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전개된 상황에서의 주인공의 감정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노래이다. 서사적인 노래는 음악보다는 대사의 전달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러한 노래를 레치타티보(서창, recitativo)라 부른다. 레치타티보에는 레치타티보 세코(recitativo secco)와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recitativo accompagnato)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 레치타티보 세코는 건반악기로 간단한 코드의 화성만을 반주해 줄 뿐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긴 대화나 독백을 음악적인 요소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가능한 한 빠르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세코 양식을 유효하게 구사한 것이 나폴리악파의 작곡가들이며, 그 후 로시니, 모차르트 등이 사용하였다.
반면에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는 다양한 악기의 반주를 받는다. 주로 긴박한 상황을 묘사할 때 쓰이며 대부분 아리아로 연결된다.
이태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만드는 오페라는 늘 이 레치타티보의 처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레치타티보는 단어의 자연스런 억양과 리듬 그리고 문장의 흐름을 살려 음악을 만들고, 소리를 공명시켜 대사를 멀리까지 전달시켜야 한다. 그런데 유성음(有聲音, 모음과 l, m, n, r 등의 자음)을 많이 사용하는 이태리어로는 어려움이 없지만 무성음(無聲音, f, k, p, s, sch, st, t 등의 자음)을 많이 사용하는 독일어로는 레치타티보를 노래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오페라에서는 반주를 간단히 하거나 아예 반주가 없이, 음정도 없이, 대사를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뷰-넨슈프라헤(Buehnensprach, 무대언어)의 발전을 가져왔다.
제주도 방언은 육지부의 말보다도 더 투박스럽다. 마치 이태리어와 독일어와의 관계로 비교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제주방언으로 레치타티보를 노래하는 것은 많은 부담을 가지게 된다. 오페라 <백록담>은 레치타티보에 지나치게 많은 반주악기를 사용하여 대사가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나폴리악파의 오페라는 음악적인 아리아와 문학적인 레치타티보를 뚜렷이 구별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는 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서정적인 아리아와 오페라의 현대적 경향
오페라 중에서 주인공의 감정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아리아는 과거부터 관객들의 주목을 받는 부분이었다. 청중들은 서사적인 레치타티보보다는 서정적인 아리아를 듣기를 원했고, 대본의 문학적인 완성도보다는 아리아의 아름다움과 그 아리아를 부르는 성악가의 기교를 감상하려고 했다. 그 결과 나폴리에서는 다카포 아리아(dacapo aria)가 발전하였다. 첫 부분을 반복하는 형식의 다카포 아리아는 반복되는 부분이 즉흥적으로 장식되었고, 성악가의 기교나 음악성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성악가의 기교와 아리아에 의존되는 오페라는 나중에 여러 가지 폐단을 낳았고, 글룩은 오페라를 개혁시키는 여러 조치들을 취하였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차이를 줄여서 극의 진행에 충실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도 도니제치, 로시니, 베르디, 풋치니 등 이태리 유명작곡가의 오페라들은 여전히 뛰어난 아리아로 인해 사랑을 받고 있다.
반면에 이태리 이외의 지역에서는 독일의 바그너, 프랑스의 드뷔시, 오스트리아의 알반 베르크 등이 아리아에 의존되지 않고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현대 오페라의 중요한 경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오페라를 감상하는 청중들은 교향곡의 청중과는 다른 것 같다. 오페라의 청중들은 깊이 있는 음악을 이성적으로 체험한다기보다는 감성적으로 즐기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현대적인 오페라들은 외면되고 여전히 이태리낭만주의 오페라들이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제주의 청중들은 어떠한가? 오페라의 현대적인 경향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오페라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이라곤 이태리낭만주의 오페라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페라 <백록담>은 조선시대 후기를 시대로 설정하고 있지만 음악적인 어법은 사뭇 현대적이다. 청중들에게 친숙한 이태리식 보다는 독일식에 가깝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듭짓지 않고 흐르는 관현악의 선율은 바그너가 그의 악극에서 주장한 무한선율(無限旋律,unendiche Melodie)을 연상케 한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차이도 분명치 않다. 1,2-5,6도 간격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화성도 드뷔시나 라벨 그리고 바르톡 등 현대작곡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경향이지 전통적인 어법은 아니다.
현대적인 화성은 그 사용에 있어서 정당성이 획득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고풍스런 느낌을 주려했다’, ‘이국적인 느낌을 주려했다’, ‘공허한 느낌을 주려했다’, 또는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려 했다’, 그것도 아니면 드뷔시처럼 ‘그냥 멋있으니까 반복해서 썼다’등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작곡가의 설명을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귀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페라 <백록담>은 제주의 청중들에게 어려운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익숙한 음악이 아니라고 오페라 <백록담>을 폄하할 수 없다. 훌륭한 작품은 대중들의 기대를 반영하는 작품이 아니라 대중들의 수준을 높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5. 오페라 <백록담>을 통한 ‘평화의 섬’이미지의 표현
비록 제주방언으로 노래하고 설문대할망이 등장하지만 오페라 <백록담>은 제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데 문제를 안고 있다. 정체성은 ‘고유한 것’을 강조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 ‘고유한 것이’세계인의 보편적인 이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설명되어야 공감을 얻는 법이다. 작품을 통해 제주도의 ‘평화의 섬’이미지가 표현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작품 속에서 탐라도는 유배의 섬 또는 살기 힘든 곳으로 묘사되었다 .
마을사람들의 합창 ‘원악도’의 가사를 살펴보자.
원악도라 불리는 유배의 섬 탐라도 / 귀양살이 죄인만 오고 /
섬 밖으로 나가는 사람 없구나 / 탐라도가 무신 죄라, 무신죄라
다음은 문길상의 아리아 ‘바다여 말해다오’의 가사이다.
……… / 아! 극락보다 더 먼 원악도여 / 지옥보다 더 먼 원악도여 /
지옥보더 험한 탐라도여 / 나는 어찌 살란 말인가
덕쇠의 아리아‘종놈의 노래’는 주민들의 고달픈 삶을 그리고 있다.
미역케영 죽써 먹곡 / 전복 케영 상전 신디 바치곡 /
허구헌 날 빼앗기곡 / 눈물 꼬지 말라분 등신들아! /
백년 살아도 종놈의 조식은 종놈이주!
탐라도와 주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결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왜곡은 아니다. 그러나 작품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끌고나가는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동네아낙들의 합창인 ‘이어도’그리고 ‘방아야, 방아야’는 즐거운 노래인데도 전혀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품을 통해 ‘평화의 섬’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신임사또를 반기던 순박한 제주도민들은 그가 조정에서 정쟁을 일삼던 주역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하게 된다. 더욱이 그가 주색잡기에 능하고, 또 사적인 원한에 사로잡혀 공사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더욱 실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비록 금지된 사랑을 했지만 구슬이와 문길상에게 동정을 보내게 되고, 그들을 탈옥시켜 사랑을 이루도록 돕는다. 한편 사랑과 평화의 섬이라는 탐라도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신임사또는 주민들에게 크게 망신을 당한다.” 이렇게 전개된다면 어떨까?
한편 작품속에서 설문대할망은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신격화 된 경향이 있다.
구슬이의 아리아 ‘백록담의 노래’에서는 죽어가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는 신(神)으로,
여성제창 ‘백록담의 지킴이’에서는 할망의 말씀이 곧 하늘의 말씀으로, 무당의 대사에서는 은혜가 풍성하고 자연의 조화도 일으키는 전능한 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만약 이 작품을 해외에서도 자주 공연하여 제주도를 알리는 문화상품으로 삼겠다면 설문대할망에 대한 우상화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설문대할망은 좀 더 추상적으로 묘사되고, 할망의 가르침을 받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탐라도민들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작품은 좀 더 밝아질 것이다. 여기에 해녀의 춤 등 제주의 아름다운 전통 춤을 가미시킨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프랑스 오페라의 가장 큰 매력은 발레에 있다. 사람들은 화려한 발레를 보기 위해서도 프랑스오페라를 감상하러 간다. 이왕 전문무용단을 출연시키기로 했다면 좀 더 많은 춤곡을 삽입하여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6. 오페라 <백록담> 작품의 완성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공연되지 않아도 ‘피가로의 결혼 서곡’은 수도 없이 연주된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오펜바하의 ‘천국과 지옥 서곡’,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등 독자적으로 연주되고, 그 때문에 유명해진 오페라가 얼마나 많은가? 아리아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개인 날’, ‘그대 찬손’, ‘공주는 잠 못 이루고’등 많은 아리아들이 오페라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노래되고 있다. 오페라 <백록담>도 독자적으로 연주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리아나 기악곡이 개발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인 요구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오페라 <백록담>에서는 구슬이와 문길상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꽃피는 전개가 너무 억지스러운 점이 있다. 그러나 대본의 비약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둘이서 아름답고 절묘한 사랑의 이중창으로 청중들을 감동시킨다면 청중들은 둘의 사랑에 감성적인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음악의 힘이다.
지나치게 많은 요구는 오히려 작품을 망치게 할 수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는가?
많은 요구들은 현대적인 오페라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들이다. 어찌보면 동서고금 좋은 점들만 뽑아서 작품을 만들라는 황당한 요구일 수도 있다. 제주 사투리를 살리고 주옥같이 감성적인 아리아를 만들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모차르트가 나서도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으로도 대중의 욕구와 예술성은 항상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음악가들이 고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오페라 <백록담>이 제주도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려면, 더 많은 도민들의 공감을 얻을 때 까지 계속해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극작가는 고인이 되셨고, 작곡가는 원로이시니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베르디나 푸치니도 수많은 수정작업을 거쳐 오늘날에 우리가 감상하는 걸작들을 남겼다. 제주시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과 더 훌륭하게 공연되기 위한 투자에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번 공연은 설문대할망을 주제로 한 제주돌문화공원 야외무대에서 열려 한층 의미가 깊었다. 맑은 공기와 반짝이는 별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지만, 추위와 음향의 열악함 그리고 집중하기 어려운 객석과 산만한 무대 등 문제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상품을 개발하려는 제주시의 새로운 시도는 높이 칭찬할 만하다. 덕분에 5천원이라는 저렴한 입장료로 좋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어려운 여건들을 감안하면 음악적인 완성도가 매우 높은 공연이었다. 다만 청중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만약에 시간이 아까왔다고 후회했다면 그는 제주의 공연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훌륭한 청중들은 인내할 줄 알아야한다. 제주돌문화공원에서는 앞으로 이런 저런 공연을 개최할 일이 자주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이 기회에 공연장으로서의 기반시설을 어느 정도 마련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추위에 떨며 공연한 모든 연주자들 그리고 마지막 까지 남아 박수를 보낸 청중들 모두에게 감사한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삶과 문화」2007년 7·8월호
[출처] 오페라 '백록담'을 제주의 문화상품으로 키워나가자|작성자 john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