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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균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의 시조사적 의의
전문수(창원대학교 명예교수)
고성오광대 놀이를 주제로 한 이달균시인의 [말뚝이 가라사대] 사설시조집은 현대시조가 자유시와 혼란스럽게 갈등하는 여러 문제를 해소하고 당당한 새 길 트기를 열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본래 시조는 조선 사류들의 오언 절구나 칠언 율시의 漢詩 옆에 있던 時調唱이었다. 노래하는 가창곡이라는 뜻의 평시조, 지름시조, 사설시조. 연시조가 그것이다. 한시는 詩言志라 노래가 아닌 문자의 뜻을 음미하는 것이고, 時調는 우리 나랏말로 가사를 만들고 이를 시조창 곡에 실어 노래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靑丘永言이요, 海東歌謠, 時節 歌調였다. 청구영언집, 해동가요집 같은 시조 모음집에는 평시조, 사설시조 연시조 등이 수집되어 있는데, 모두는 당시 시조창으로 불리던 가사 말만을 모아 놓은 악곡집이다. 시조 악보를 가사 말마다 같이 붙여 놓지 않은 것은 시조창의 기본 악보는 경체나 향체, 지름시조 등의 다소 다른 창법이 있더라도 차이가 미미하기에 기본 형식 악보는 한 가지 뿐인 셈이어서 일일이 악보를 붙여 놓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시조창인 평시조(악곡이름)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악장을 각장 2악구로 총 6악구를 초장. 중장 각 34박 종장 26박으로 1박을 2초씩으로 잡고 총 3분 30초 안에 한곡을 가창하였다. 다시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그 기본 창법은 /악장인 초장을 5 8 8/5 8<2악구>-총 34박-1분 10초//중장, 5 8 8/5 8<2악구>- 총 34박-1분 10초// 종장, 5 8/5 8-26박<2악구>-1분 10초//로 규칙을 정하고 장구나 무릎을 치면서 박을 맞추어 창을 불렀다. 멜로디인 가락은 3음계, 5음계, 12음계를 적요하였다. 그래서 이 기본 악보 하나만 소리 내는 법을 익히면 3음절(각 음보), 자수율 3,4/3,4로 총 14자-15자)로 된 여러 종류의 노래 가사 말을 언제든지 어느 장소에서도 노래 부를 수 있었다. 그래서 청구영언집이나 해동가요집은 비록 가사 말만을 모아 놓은 것이라도 당시로서는 시조악곡집인 것이다. 악보가 들어 있지 않다고 해서 이를 문자만의 가사 말, 즉 요즘 같은 옛 시조집으로 알면 큰 우를 범한다.
이런 무식으로 해서 교과서나 국어 교사들은 마치 이미 조선 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옛 시조집이 있었던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마 중인 계급의 김천택이 당시 유행하는 가사 말을 모아 청구영언집을 발간한 것은 시조창 악곡에 맞게 가사 말 만들기를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을 감안한 돈 벌이 용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조선후기 유교적 교양주의에 대항한 실학사상이 대두하면서 평시조 형식을 깨는 사설시조가 창작되는데, 몰락사류들, 서얼 계급, 수묵화나 글자를 아는 하류계급(여류 기생 등)등이 3악장 6악구 평시조의 中章을 확대하여 자유롭게 가사 말을 늘여서 정형 평시조를 파격하고 새로운 시절의식을 노래하고자 하였다. 일종의 정형시조창의 변형 양식이었다. 이런 사설시조창이 시조악보와 가창을 떼어버리고 가사말만 수집해 놓은 것이 오늘에 전하는 사설시조이다. 결국 오늘의 입장에서는 [청구영언]과 [해동가요]가 가사말만 모아놓은 대표적 시조모음집이 되었고, 20세기에 와서 최남선이 옛 시조 1,405수를 수집해 엮은 시조유취(時調類聚) 역시 그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사설시조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당시의 실제 시조창의 악보를 중심으로 그 형식과 내용을 고찰해서 사설시조와 정형 평시조와의 미학적 구조를 밝혀야 한다.
이번의 이달균 사설시조집에 대해 유달리 필자가 크게 관심을 두게 되는 점도 실제 공연되는 오광대 놀이판에 사설시조가 뛰어 들었기 때문이다. 사설시조가 실제 노래판을 무시하고서는 그 양식미학의 진수를 깨닫지 못하기에 그렇다.
그런데다가 아주 시의 적절하게 오늘의 포스트모던 예술사조, 키치미학, 팝아트, 음악의 록(Rock ), 힙합 등등과 연계시켜 생각해보니 이번 이 사설 시조집을 예사로 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평소 요즈음 현대시조 흐름을 보면서 여러 문제가 있다고 보았던 터라 이달균 사설 시조집이 어떤 답을 줄 것으로 보았다. 비록 현대의 해체철학, 탈구조주의. 담론이론, 신서정론 등등 후기 현대의 미학사조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십분 감안 하더라도 우리 사설시조가 본래 해체적, 탈구조적 붉은 피 때문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오늘에 와서야 묻혔던 뿌리에서 진짜 새싹이 피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차제에 제대로 우리의 시조에 대한 사적 검토를 면밀히 하고 또 오늘의 시조 문학 실태도 점검하여 그 위상까지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 현대시조의 정체성 길트기
문제적 개인인 이달균 시인은 사실상 이 사설시집으로 현하 우리 시조 문학의 여러 문제에 강한 화두를 던졌다고 본다. 마치 이 사설시조집을 통해 현대 시조의 새길 트기에 누가 나서서 답하라는 요구를 하는 셈이 됐다. 얼핏 잘 못 생각하면 지금까지 기라성 같은 소위 평시조(실은 3행 단시조: 평시조란 이름은 시조창 악보 이름임) 내지 연시조의 시조시인 인들이 있었고 그 길이 시조의 본령이라 정평을 얻고 있는 형편에서는 이외의 이벤트정도의 작업으로 여길 수도 있다. 아무도 관심 없는 때늦은 사설시조집이냐는 핀잔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달균 시인이, 사설시조가 태어나면서 본래 갖고 있는 그 저항 근성 아니면 기존의 두꺼운 관습적 장벽을 두드려 볼 수 없다는 시각으로 굳이 사설시조집을 펴냈다면 이는 최적의 선택이요 최고의 해체 도구였다고 본다. 진실로 누가 우리시조의 적자로 취급되고 서자로 취급되는 가도 한번은 그 경중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볼 때, 시기 또한 매우 적절했다고 본다.
다음과 같은 <말뚝이 아뢰오.>를 통해 밝힌 작자의 창작의도를 보면 우리는 그의 이번 시집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금방 확인 할 수 있다.
//그냥 자유롭게 제 할 말하기로야 /자유시가 으뜸인데/산문시의 어조와 사설은 다르기도 하거니와 /왠지 이 노래는 앞말이 뒷말을 주워섬기는 /말 부림의 음보가/자연스레 율격을 갖는 고로/그 가락을 의지하여 풍자 재담을 비벼 넣어 /제 맛을 내기에는 /사설시조가 딱! 이란 생각을 하였소. //
--이달균['말뚝이 가라사대p.6
조선 후기에 사사설시조가 본래 “자유롭게 제 말하기” 위해서 평시조나 연시조의 형식과 격을 깬 것이다. 유교적 문치주의의 중심에 있던 상층계급 사류들의 고매한 고전적 격조가 현실과 유리된 허위의식임을 새로운 실학의 시대의식으로 충격을 가한 것이다. 이런 사설시조가 일제 식민지가 되면서 서양 문학양식에 심취한 새로운 신진 문학 계급(일본 유학생)에 밀려 자취를 잃게 되었다. 얼치기 유교적 교양주의에 묻힌 것이다. 전통단절론은 이런 불운에서 시작된다.
“ /풍자 재담을 비벼 넣어 /제 맛을 내기에는 /사설시조가 딱!” --
위 책 p.6
이라는 생각은 바로 오늘날, 후기 현대의 각종 억압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다. 너무 심한 과장이 아니라면 딱 한마디로 다시 100여년 만에 사설시조를 제자리로 부활시켜야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은 것 같다.
더욱 필자가 놀란 것은 다음 말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사설시조는 요즘의 랩을 닮았소./ 라디오만 틀면 쏟아지는 랩처럼/ 빠르게 부르지는 않았겠지만 / 당시로서는 매우 빠른 가락이 아니었겠소?//
위 책 p8
이라는 발언이다. 왜 당시 빠른 가락이었는가는, 평시조의 3악장 6악구의 박자를 사설시조도 그대로 따라야 했기 때문인데, 평시조에서 초. 중장이 글자 14자 내지 15자를 각 34박에 불러 각 1분 10초를 지키는 가창 규칙이고 보면 사설시조는 중장의 글자 수가 대개 2. 3배 많아지니 자연 빠른 부르기라야 1분 10초 안에 처리 될 것이다. 설령 당시의 시조창 악보를 몰랐다 해도 육감으로 사설시조의 본질에 대한 정곡을 찌르고 있다고 하겠다.
어쨌든 이달균은 우리에게, 지금 이 시대에 와서 현대시조의 정체성을 소위 평시조에 둘 것인가? 사설시조는 시조의 정체성이 결여된 안 나와도 될 서자정도로 둘 것인가? 되묻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사설시조에 대해 말들이 많은 줄아오/ 중략/자유시가 있는데 굳이 사설이냐고?/
고유의 정형을 가지는/ 시조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중략
허나 사설시조는 자유시 이전부터 이미 있어 왔던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걸 어쩌것소 위 책 p.10
분명히 당시로 보면 보수적 평시조에 대항한 근대적 성격의 시조는 사설 시조였고 요즘 말로 전위적 실험 양식의 시조였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거시적으로 바꿔볼 수 있는데, 만일, 전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제 강점기로 들지 않고 자생적 역사 발전을 거쳤다면 분명히 우리는 평시조 다음으로 사설시조가 다시 적자로 근대적 시조창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야 마땅한 것 아니가 한다. 이런 논리 접근이면 적자, 서자, 정통성, 정체성 등등 문제는 전혀 의미 없게 된다.
왜 요즘에 와서 새삼 친일파 문제를 들고 나오는가를 생각한다면 역사의 생명과 본질은 언제나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사설시조의 그 본질을 현재에서 다시 찾는 것은 정당한 역사 발전이고 현 시조사 다시 쓰기다.
한편 요즈음의 최첨단 시절 가요인 힙합의 랩을 사설시조와 연결시킬 생각을 한 것을 보면 이 또한 놀라운 예술적 감각이다. 거대담론의 자유시가 있는 옆에서 현대 시조에 대한 그의 무의식적 방황과 회의를 십분 짐작 하거니와 극복을 위한 고뇌도 매우 깊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랩(rap)은 록(rock) 음악의 연장선에서 현대의 최첨단 대중음악 인 힙합의 핵심이다. 힙합의 기본 틀은 비트+랩+브레이크 댄스=저항, 풍자, 수다, 골계적 해학의 등식이 성립되는 대표적인 저항 대중음악이다. 현대판 키치음악이고 포스트모더니즘 음악이고 팝아트 식 음악이다. 랩은 지배계급의 위선에 저항 하는 우리 말뚝이의 계급인 하층 흑인의 저항적 질타요 풍자요, 우스꽝스러운 수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는 힙합가수는 이 힙합의 랩 가사를 시라고도 부르거니와 이 랩 말을 작사하는 이를 시인이라고 하는 현실을 아는 이면 깜작 놀랄 것이다. 이달균의 랩에 대한 발언을 간과하지 않는 필자의 입장은 바로 이점에 있다.
사설시조 역시 당시 힙합의 비트박스 격인 북과 장구의 타악기로 박을 맞추고 가창자의 자기 창작인 흡사 랩과 같은 사설을 약간의 춤사위와 적절히 섞어 노래 맛을 낸 것과 비교하면 현대판 힙합의 선조가 되는 셈이다. 랩은 멜로디가 있기는 하나 이에 강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적당한 음보의 시적 가사 말을 비트박스에 맞추어 그야말로 말을 톡톡 치며 튕기는 방식의 창법이기 때문에 브레이크댄스가 곁들여야 제구실을 한다. 사설시조에 비하면 월등히 큰 역동성에 도취되지만 만국공통어가 음악이라 듯 그 구조가 사설시조와 여간 근사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저간에 사설시조 연구가 몰락 양반계급의 한 저항 양식정도라거나 선비 계급의 고상한 품격의 고상한 시라고 치켜 놓고는 그 아름다음을 깨버린 한시적 호사가의 장난 정도로 아주 폄하하는 것을 보아왔다. 유교적 교양주의의 현대판 양반이고 싶은 오만의 편견이다. 이는 문학의 본질이 잘 못 된 세계의 부재에 대해, 타자로 밀리는 자아 삭제에 대해, 진지하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저 1900년대 신문학 초기의 이광수 식 여기론 자의 한담 정도일 뿐이다.
전통단절을 극복하기위해서 사설시조를 우리의 자유시 모체로 보는 몇 분 교수의 저간의 시문학사 연구는 옳았다고 본다. 그러나 당시 그 연구가 학계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증적 수준이었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증명할 자료가 엉성하다는 점도 물론 있지만 사설시조 자체의 정체에 대한 기초 연구가 안 되었기 때문에 우선 설득력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시조의 정통성은 훨씬 자유시의 정통성보다는 튼튼하다. 자유시는 서양문학과의 트기(혼혈)이지만 시조는 순종이다. 그러나 시조사는 제대로 순종을 복원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자기 동일성을 잃고 자유시 쪽에 추파를 던지는 제정신 잃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형편이다.
이달균의 사설시조가 과연 새로운 시조 실트기를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시조문학사를 다시 쓰려는 것이 오만일까?
2. 사설시조의 형식 창조
사설시조의 형식에 대한 미학적 논의는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평시조 3악장 6악구의 초장과 중장 종장의 구조적 기능은 이미 이글 서두에서 어느 정도 논한바와 같다. 그러나 사설시조가 왜 사설시조가 들어감의 초악장과 나옴의 종악장을 평시조의 구조 그 대로 고정시키고 중장만을 허물어 파격하고 사설을 확대 했는가에 대한 핵심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
사설시조의 형식 미학의 연구는 이 형식의 이원구조를 해명하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 사설시조 양식은 쉽게 말해서 당시의 상층계급미학과 하층계급 미학의 낙차에서 오는 이원성을 아우르고자 하는 매우 지혜로운 미학 창조였다고 보는 게 옳다.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은 유교적 관념론에 대항하는 일대 시대적 변혁론이었다. 모든 계층으로 침투해가는 새로운 실학사상의 와중에서 보수 상층계급도 매우 흔들리며 시대적 대세를 외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현실은 언제든지 이론에 앞서 가는 원리처럼 이미 계급을 초월해서 몰락 양반들과 식자깨나 하는 서얼계급과 기생 등은 한데 유희장에 동참하는 것이 현실화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계층 간의 미의식을 동시에 충족시킬 이원적 형식구조는 자연스럽게 요구 되었을 것이고 그로 하여 나타난 새로운 시도가 공감을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새 장르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실험성이 대중의 호응을 얻으면 새 장르로 성장하는 것이 장르 원리다.
예술은 또는 놀이는 서로의 싸움에 대한 화해이다. 야구가 총으로 사람 죽이는 擬似(의사) 놀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축구가 국제간의 전쟁을 놀이로 화해하는 양식이라는 것처럼 사설시조가 바로 조선 후기, 변화하는 계층이동에 오는 충돌을 막는 화해 미학이었다고 봐야 한다. 매우 지혜로운 근대 미학 양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왜곡 된 역사가 이를 정상적인 근대 시조로 발전하는 길을 막았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의 근대문학은 서구의 무분별한 문예사조를 일본을 통해 수입함으로써 우리 문학 전통을 단절시켰다는 것은 모두 합의하는 바이다. 새로운 20세기 신문학 계급들은 미쳐 전통을 연구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거니와 밀려오는 외세를 감당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설시조의 중장 확대 (사설 삽입 )는 품격 낮은 서민들 일상의 우스꽝스러운 재담과 수다, 질타, 해학, 풍자 등등 그 때 그 때의 판 마당마다 형편에 맞게 즉석 창작되어 이루어지고 요즈음 랩처럼 빠른 율격으로 시연되었다.
그래서 실제 시조창은 초장과 종장의 정통 평시조창의 매우 느린 율격과 가락에 맞추어 중장의 긴사설을 빠르게 조절함으로써 시조창 전체가 그 시간 규칙을 지켜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게 했다. 즉 중장이 길어졌다고 초장과 종장의 미학적 무게가 불균형하게 되는 것을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이렇게 미학적 균형과 변형의 조화를 이루었기에 사설시조창은 소멸되지 않고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달균 시인은 이번 사설시조집에서 제1양식으로 평시조 단수 장 구분 형식의 사설시조와 제2 형식으로 연시조 연 구분 확대 형식을 함께 섞어 오광대라는 큰 장마당의 놀이 맛을 다루었다. 아직 오광대는 실제로 공연되는 광대놀이다. 따라서 이 두 양식을 섞어 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다만 실제 창으로 불려 질 경우 중장의 시간적 길이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의 문제는 따로 문제가 남는다. 사설이 너무 길면 초장과 종장의 무게가 너무 기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사설시조는 중장의 사설길이가 무작정 길어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현대시조가 이미 악곡과 가창을 떠나보낸 시조창 공연의 언어적 상관물로 된 이 마당에서는 위의 두 사설시조 형식이 바로 현대적 사설시조 양식으로 될 수 있다. 혹자는 이번 시조집이 이 오광대 대본이란 한계가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적용된 형식 문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다.
본래 시조창의 악곡은 악장과 악구의 구분이었기에 악곡이 사라진 언어적, 문자적 상관물 인 현대시조로는 한시나 자유시의 관행처럼 행과 연 구분으로 문제를 풀어야하는 문제는 있다. 종래의 한 악장을 한 행의 연으로 취급하는 문제를 어떻게 하는 가이다. 가사 말로는 1행에 지나지 않지만 노래로는 긴 한 악장이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한 악장이 34박의 느린 노래로 공연되기에 가창자의 정서가 충분이 전달되었다. 실은 가사 말은 창의 보조라고 봐야 한다. 무려 1분 10초로 감정을 펼쳐야 하니 가사 말은 숨고 가창자의 정서만 점층 해 가는 것이다. 이런 가창을 가지고 있던 정서 무게와 기능을 빼버리고 달랑 가사 말만 남았을 때의 글자 14자 1행을 1 연으로 취급해야하는 턱없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즉 평시조를 정통시조라고 주장할 경우 문자로 읽히는 현대시조로서는 이 첫 행이 곧 첫 연이 되는 미학적 물음에 답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논의에서 이달균은 소위 평시조 단수 3행시와 연시조를 함께 아우르는 사설시조 형식을 오광대에 적용시킴으로써 사설시조 형식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형식에 맞는 시적 내용과 이를 표현하는 표현 기법의 창조가 없이는 저 자유시와의 경계에서 자기 동일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이글 아래에 이어지는 명제에서 재론하기로 한다. 다만 이 자리에 힙합의 랩과의 관계 발전 문제는 남겨두기로 한다.
3. 사설시조의 기능--말 굿
모든 노래는 계층을 막론하고 그 기능의 본질은 한풀이라고 본다. 무당의 신 굿은 무당의 주문으로 악귀와 맺힘을 푸는 화해가 기본이다. 신화가 제의의 상관물이라는 것도 이런 뜻이다. 그런데 유독 사설시조는 조선후기의 변화하는 시대상과 맞물리면서 앞에서 지적된 이원적 형식으로 계층 간의 경계를 허물고 닫히고 묶인 서로의 매듭을 푸는 화해적 사회적 기능을 가졌었다고 해야 한다. 평시조가 개인적 자아가 세계와 화해하는 형식이라면 시설시조는 집단적 자아의 세계와의 화해라 할 것이다.
본래 해학이나 풍자, 익살, 수다, 질타, 비꼼 등 골계미는 서로의 맺힌 한을 풀자는 것이다. 인간이 웃음을 가졌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한 것이다. 말로 욕하고 비꼬고, 풍자하고, 질타하고 수다로 푸는 웃음의 미학은 서로의 허물을 부끄러움 없이 인정하고 용서 하는 심리기제이다. 자기 혼자만의 갈등도 이런 자소로 푼다. 그래서 문학은 말놀이 즉 문자놀이 굿이다. 무당의 신에 대한 주문처럼 세계에 대한 멋진 말 굿이고 문자 굿이다. 한마디로 언어 굿이 문학이다. 모든 사회의 부조리한 제도적 억압도 푸는 언어 굿이 문학이다.
이런 데는 우리의 사설시조만 한 말 굿판 또는 문자굿판이 없다. 자유시와 다른 독특한 풍의 풀이 굿이 이 사설시조에 있고 3행시 (평시조)에 있다. 풀이 하는 굿의 언어 부림에서 자유시와 시조가 할 영역이 가려진다고 할 것이다. 이 개척은 전적으로 창작자에게 있다. 이론가는 창작을 보고 논리화하는 지적 작업을 하면 된다. 순수 우리 것의 이 귀중한 유산에 대한 보다 세심한 말 굿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21세기 물질문명은 극단에 이르고 있다. 풀어야 할 판은 널려있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 고용된 노동자이다. 층층 쌓인 계급 사이에 끼어 기계처럼 거대 권력과 자본에 복종하며 살고 있는 현대판 노예들이다. 교묘하게 대리니 과장이니 부장이니 하면서 위선에 포장되어 속셈이 위장돼 있다. 허명에 마취 돼 제가 묶인 노예 사슬을 모르고 있다. 이것을 알아차리고 싸우려는 자가 틈새에 낀 시인이고 경계지역에서 자기의 존재와 부재를 번갈아 고통 받는 자가 문학인이다.
거대한 억압구조가 방법론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구조주의 속성이고 이게 바로 현대의 소위 모더니즘이다. 왜 자유시의 은유가 모더니즘인가를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구조 언어학자 야콥슨은 언어의 은유는 등가의 원리로 수직축에서 선택해서 수평축의 인접성으로 투영하는 것이라 했다. 이런 원리는 존재의 의미는 항상 부유하고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랑그 체계는 계속 만들어지고 빠롤은 늘 위협을 당한다.
우리의 사설시조는 본래 提喩的(제유적)이고 換喩的(환유적)이었다. 언어를 은유로 모호하게 하는 것보다 최소한의 인접성으로 풀어 천재적으로 말을 부리는 재간이 중요하다. 은유 보다는 직유를 쓰고 환유를 써야 효과가 직방이다. 寓喩(우유), 해학 풍자 등 골계 적 언어를 미의 극치로 부려서 강력한 전달을 노리는 말재주 장르이다. 시적 화자의 신분이 말뚝인 점은 숙명이고 막돼먹은 척 해야 아래 위 없이 말로 씹어 돌릴 수가 있다.
4. 현대시조가 가야할 방향
현대시조는 왜 자유시의 트기로 변질되어 가는가 하는 문제이다. 자유시는 서양시의 트기이지만 시조는 순종의 우리 것이고 우리 심성과 정서에 그 뿌리를 둔 시가다. 품격 높은 우리고유의 시절 노래였다. 현대 음악에 비교하면 가곡과 같은 것이었다. 민요가 서민들의 한풀이였다면 시조는 중인 이상의 식자층 클래식이었다고 생각된다. 영 무식하고는 그 말맛을 즐길 수가 없는 시가이다. 자연의 삼라만상을 통해서 한 많은 인생살이를 순화시키고 천리를 빌어 맺힘을 풀고 세계와 화해하는 가장 일상적 삶에 접근해 있던 영언이요 가조였다. 그래서 시조는 삶을 노래해야 하고 이를 표현하는 언어는 잘 조율하여 연주하는 세련성이 있어야 한다. 언어를 거문고 가락처럼, 명주실처럼 풀어내는 섬세함이 있어야한다.
따라서 현대시조는 왜 저 시조의 명창 황진이를 넘어서지 못 했는가는 문제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시조의 속성이 여성적인 호소성과 언어 부림으로 섬세성이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호소 속성의 특징을 면밀히 고찰해 볼일이다. 또 만일 민중들의 사라진 민요의 혼이 시조 쪽으로 깃든 것은 아닌가도 진지하게 궁구해 봐야 한다.
시조창이 떨어져간 문자 굿의 현대 시조가 마치 인간의 궁둥이에 아직도 남은 꼬리뼈 자리처럼 그 가창 귀신을 영 떼버릴 수 없다면 이는 분명히 吟誦詩(음송시) 또는 吟唱詩(음창시)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도 싶다. 비록 창은 떨어져 나갔더라도 가창 귀신(눈에 안 보이는 흔적)을 언어의 신명으로 받아들여 유창히 음송하는 시조로 개척할 수는 있을 것 아닌가 한다. 이런 논리가 일리 있다면 현대시조는 자유시의 주된 시각이미지에 대립한 청각이지를 주 무기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설시조의 말 부림에 대한 미학적 가능성은 암시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시조는 삶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애환의 포근한 자연생활시라 할 수 있을 것 같고. 한시나 자유시의 무거운 詩言志와는 그 무엇인가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야 하고 누구나 편히 접근할 수 있는 시가로 가야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부응한 시조 내적 장르 역시 현대와 같은 복잡한 삶의 문제를 자유롭게 펴는 방식으로 재구돼야 한다. 거듭 되는 문제지만 왜 이직도 악보와 가창이 떨어져 나간 낡은 악장이름의 평시조라는 용어를 예사로 쓰고, 초장, 중장, 종장이란 3악장 6악구의 굴레에 들어앉아 마치 평시조가 현대시조의 정통이라 우기는 일 과 같은 것 들이다. 현대시적으로 보면 분명히 3행시인데, 만일 평시조 본질을 그대로 쓰려면 현대적 시조론을 납득되게 펼쳐야 한다. 저 자유시의 3행 短詩와 구별되는 시조 특유의 미학적 가치를 밝혀야하고 그것이 밝혀지면 참으로 시조의 정제성이 확보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자유시와 변별성을 높이고 현대라는 시대의식을 살릴 수 있는 연시조와 사설시조를 쌍두마차로 해야 현대 시조 이론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평시조의 3장 6구의 악곡 무게에 동급 되는 서정을 펴려면 현대 시조로는 3행을 일연으로 하는 3 연시라야 같은 격에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3분 30초로 이루어 내는 열띤 가창에 대응한 문자 음송은 적어도 3행 3연은 돼야 등가의 정서물이 된다고 본다. 단수 3행의 시로서는 도저히 선조들이 이룬 우람한 평시조창 그 값에 대응되지 않는다고 본다. 즉 현대판 3장 6구를 3연시조로 풀어 보자는 것이다. 일찍이 가람 이병기와 노산 이은상은 이를 알고 연시조를 몸소 실천한 분들이다. 이분들이야 말로 현대시조의 비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시조문제는 시조창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청산할 때 그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왜 이달균의 이번 시조집이 시조사적으로 문제가 되는가를 이 정도만으로도 납득되었다면 이 글은 그 보람을 얻는 셈이 될 것이다.
이번 사설 시조집은 이달균 개인만의 영광으로 돌릴 문제이거나 추후의 사설시조 개척에 대한 책임이 그의 몫만으로 될 수는 없다. 현대시의 영광과 창조적인 장르 개척은 시조를 아끼고 이 길에 들어선 시조시인 모두의 몫이다.
이제 이달균 시인은 그간의 사설시조를 오광대 판에서 빼내야 한다. 본격적으로 시적 화자 말뚝이는 현대 사회라는 넓은 세계에서 판을 벌려야 한다. 그리하여 현대시조의 새 길 트기를 계속 시도해야 한다. <작은 문학 2001년>
첫댓글 “사설은 묶이지 않고 풀리는 것이다. 그런 만큼 매듭이 필요하다.”(박기섭)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