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수에로 왕의 잔치
에스더 1:2-3.
성경연대의 흐름상, 에스더서는 에스라서 6장과 7장 사이에 위치합니다. 곧 에스더서는 스룹바벨에 의한 제 1차 포로귀환(B. C. 537년경)과 에스라에 의한 제 2차 포로귀환(B. C. 458년경)의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차 귀환 후 약 55년이 되는 때입니다. 에스더서는 유대인을 멸종시키려 한 하만의 악한 간계로부터 유대인을 구원해주신 부림절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당시 세계를 지배한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잔치와 그 잔치 때에 빚어진 와스디 왕후의 폐위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아하수에로’는 ‘크샤야르쉬’의 히브리식 이름이며, 그 헬라식 이름은 ‘크세르크세스’입니다. 그는 부왕 다리오 1세(Darius, 522-485년)를 계승하였는데, 부왕의 업적으로 넓혀진 당시 바사의 영토는 인도(인더스 강 서부의 서 파키스탄 지방)로부터 구스(이디오피아)까지 127도(道)에 달하는 광활한 대제국이었습니다.
아랍제국의 모든 왕들이 그렇듯, 아하수에로 왕 역시 자신의 권세와 부와 영광을 현시하면서,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고 자랑하기를 즐겼습니다. 본문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은 즉위 3년(B. C. 482년경)에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180일, 곧 6개월 동안이나 잔치를 계속했다는 것입니다(3-4절). 잔치를 6개월 동안이나 한번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그런데 주전 5세기의 희랍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아하수에로의 이때 잔치는 즉위 초부터 계획한 헬라(그리스) 침공의 군사적 준비를 모두 완료하고, 최종 작전을 점검하는 일종의 작전참모회의 성격의 연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은 잔치형식을 빌어 20개 지역의 총독과 127도의 모든 방백과 그 외 각 지방의 귀족 및 관리들을 교대로 초청하여, 그들과 오전에는 작전을 논하고 오후에는 위로의 피로연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전회의 완료되자, 또 7일 동안에 걸쳐 조만간 전쟁을 치를 바사 신민을 고무시키는 본격적인 잔치를 크게 베풀었다고 합니다(5절). 당시 아하수에로는 그리스를 침공하기 위해 2백만 명의 군대를 모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헬라군이 먼저 바사(페르시아)를 침공했고(B.C.482-479년경), 이 전쟁에서 아하수에로는 살라미스, 플라테아, 미칼레 등지에서 패배하여, 그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부하들에 의하여 암살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아하수에로 왕은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는 대단한 잔치를 베풀었고, 그리고도 또 수산성의 대소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잔치 마지막 날에 아하수에로 왕은 주흥이 일어나서 왕후 와스디의 미모를 자랑하려다가 와스디 왕후의 거절로 인하여 분노하다가 결국 와스디 왕후를 폐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1. 헛되고 부질없는 허영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하수에로 왕의 허영심을 볼 수 있습니다. 부왕 다리오 1세가 물려준 영토는 실로 광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더 이상 정복을 계속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사실 부왕 다리오 1세도 그리스정복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6개월, 즉 180일 동안이나 총독들과 귀족, 관리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계속하며, 또 그리스정복을 하고자했던 것입니다. 그러지 말고 물려받은 영토들을 잘 관리만 했다면 필시 그는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왕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헛되고 부질없는 그리스정복을 계속했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끝내는 부하들에 의하여 암살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인간의 욕심에는 만족이 없는가봅니다. 결국 인간은 만족과 감사가 없는 허욕 때문에 망하고 마는 것인가 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그랬지 않습니까?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되는데 허욕을 버리지 못하고 러시아 정복을 계속하다가 워털루전쟁의 패배를 당하게 되고, 끝내는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가 되어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허영심이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여건이 진정 슬퍼서라기보다는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비관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허영심이 없다면 어려운 때에는 남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합니까? 남 보기가 부끄러워서 그런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합니다. 뭐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비난받을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일은 못한다는 겁니다. 사실은 아직 배가 부른 소리이지요. 진정한 멋은 어려운 때,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궂은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허영심 때문에 사람들은 가진 것이 조금 있으면, 그것을 뻐기고 뽐내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하수에로 왕같이 아직도 허영심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그 때문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온전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못하고, 항상 불만 불평 원망으로 일관되는 것은 아닙니까? 사실 허영심을 버리면, 거지 나사로 같은 입장에서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예수를 믿노라하면서도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는 것입니까? 왜 우리의 삶에는 그렇게도 찬양이 나오질 않는 것입니까? 허영심을 버립시다!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그것을 주신 의미를 바로 알고, 받은 은혜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참된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2.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천국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대단한 권력도 사실은 보잘것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가진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러분! 땅위의 것을 바라보거나 자랑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 삼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바로 깨달은 사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18:1-2절‘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20:7절‘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빌3:20절‘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골3:2절‘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히11:13-16절을 보면,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가 땅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천국 본향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저는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를 통한 교훈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의 성격이 어떤 것이었던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훈으로 ‘헛되고 부질없는 허영심을 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천국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하여 더욱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고 승리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