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중역형 승용차는 세단에서 시작하고, 세단에서 끝났지만 오늘날에는 실로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SUV와 오프로더, 해치백이나 쿠페 스타일, 혹은 이들 상당수를 아우른 크로스오버도 있다. 그중에서도 벤츠 CLS는 자동차업계를 주름잡는 정체불명의 변형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차다. CLS는 2004년 럭셔리 4도어 쿠페 혁명에 불을 지폈고, 지금까지 17만대 이상 판매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까지 이 부문에서 홀로 위세를 떨쳤던 벤츠에 맞서, 이제 BMW와 아우디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오늘, BMW 640d 그란 쿠페와 아우디 A7 3.0 TDI가 벤츠 CLS350 CDI와 맞붙었다. 3대 라이벌은 모두 4도어 쿠페로 날씬한 옆모습과 넓은 트렁크, 뒷좌석을 갖추었다. 이들은 ‘압도적’ 요소가 주입된 수더분한 스타일과 성능을 갖춘 대형 중역 세단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모두 디젤이지만 3대 라이벌의 위상을 오판해서는 안 된다. 휘발유 엔진 모델은 이 시장에서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BMW는 640d가 전체 판매량의 80%를 차지하리라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6시리즈 그란 쿠페는 눈부신 성능을 자랑한다. 그리고 넉넉한 3.0L 6기통 트윈터보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갖췄다. 옵션을 제외한 기본형의 가격은 6만1천390파운드(약 1억1천만원). CLS와 A7의 기본형보다 7천 파운드(약 1천300만원) 이상 비싸다. 그리고 오늘 나온 옵션을 모두 갖춘 BMW 640d 그란 쿠페 SE의 가격은 8만1천670파운드(약 1억4천600만원)에 이른다. 함께 나온 합리적인 사양의 벤츠 CLS350 CDI 스포트보다 2만7천 파운드(약 4천800만원), 아우디 A7 3.0 TDI S-라인보다 1만8천320파운드(약 3천280만원) 비싸다.
어째서 BMW는 도어가 더 많은 6시리즈가 그토록 큰 가치가 있다고 자부할까? 그 질문이 첫 번째 실마리가 된다. CLS와 A7은 한결 섹시하지만 세단의 가지치기 모델인데 반해, BMW(에 따르면)는 이미 섹시하고 비싸며 희소한 스포티 쿠페를 기반으로 하고, 실내 공간이 더 넓다. 게다가 기본형도 BMW 프로페셔널 내비게이션, 도어 개폐 리모컨, 전후방 주차 센서, 그리고 히팅 기능을 갖춘 전동식 앞좌석 등 풍부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옵션을 고르는 수고를 덜었다.
물론 옵션이 각 모델을 가늠하는 기준의 전부는 아니다. 두 라이벌보다 뚜렷이 한발 앞선 그란 쿠페의 실내는 출발하기도 전에 나를 매혹했다. 3도어에서 바로 뽑아낸 640d는 마감과 레이아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벤츠나 아우디가 넘볼 수 없는 메시지와 품질을 담고 있다.
때문에 BMW가 훨씬 비싸지만 중요한 대목에서 라이벌을 이미 앞섰다. 결국 이들과 수평 비교하여 가격을 결정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아우디도 벤츠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말이다.
스펙자료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CLS는 한발을 뒤로 빼고 타이틀을 방어하려는 자세다. V6 3.0L 터보디젤 엔진은 261마력의 출력과 63.0kg‧m의 토크를 7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에 보낸다.
그와는 달리 A7은 신형 V6 3.0L 트윈터보 엔진을 얹었다. 309마력의 출력과, 66.1kg‧m의 토크를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에 전달한다. 640d 그란 쿠페는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의 출력과 토크(각각 308마력, 64.1kg‧m)를 역시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보낸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A7 5.3초, 640d 5.4초로 둘이 비슷하고, CLS는 6.2초로 한물 지난 인상을 준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타고 영국에서도 가장 험악한 도로 서킷을 찾아 바스로 향했다. 불과 몇 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BMW의 파워트레인은 제값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 디젤로 개종하지 않았거나 디젤의 깊은 재미와 보상을 믿지 않는가? 그렇다면 640d의 운전대를 잡아보라. 더할 수 없이 시원스럽게 토크가 전달된다. 힘이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순결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21.1km/L의 연비와 149g/km의 CO₂ 배출량을 자랑한다. 이 부분에서도 640d는 벤츠(19.7km/L와 160g/km), 아우디(18.7km/L와 169g/km)를 따돌렸다.
물론 6시리즈는 다양한 하위 모델과 변형을 통해 번창하는 복잡한 차다. 기본적으로 640d는 드라이브 퍼포먼스 컨트롤(DPC)을 갖췄다. 스티어링, 드로틀, 변속기와 트랙션 컨트롤 세팅이 에코 프로(Eco Pro), 컴포트(Comfort), 스포트(Sport)와 스포트 플러스(Sport+)로 나눠진다. 우리 시승차는 3천400파운드(약 610만원)짜리 적응형 드라이브 시스템을 달았고, 적응형 댐퍼와 액티브 안티-롤이 들어있다. 아울러 BMW는 가격에 비춰 기대했던 대로 상냥하고도 여유 있는 주행 경험을 안겨줬다. 고속도로 정속주행에 들어가면 어느 모드에서든 차분히 달렸다.
하지만 벤츠와 아우디도 초라한 투어러가 아니다. 다만 아우디가 약간 뒤질 뿐이었다. 기본형과는 달리 20인치 휠을 끼웠고, S-라인에서 기본인 10mm 낮은 서스펜션을 달았다. 하지만 두 라이벌만큼 세련되지도, 편안하지도 않았다. 타이어 소음은 저 멀리서 들리는 장송곡을 연상시키고, 도로의 파동을 따라 달릴 때 승차감은 불안했다. 아우디 다이내믹 드라이브 시스템(DDS)의 어느 모드에 들어가든 마찬가지. BMW처럼 적응형 댐퍼, 스티어링과 변속기 세팅을 갖췄지만 정확하게 말을 듣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는 특별히 두드러진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 가벼운 결함 앞에서 BMW와 벤츠가 한층 돋보였다.
|
|
|
|
게다가 A7의 파워트레인은 640d에 약간 뒤졌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BMW가 요구하는 수천 파운드의 격차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아우디의 V6 트윈 터보디젤 엔진은 이 차와 찰떡궁합이었다. 쉬지 않고 듬직하게 파워를 내뿜었다. BMW 엔진의 비단같이 매끄러운 동작과는 간발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둘 모두 최고의 디젤 엔진들이었다.
그렇다면 CLS는 부족한 기어 단수와 파워 때문에 절뚝거리며 뒤로 물러나야만 할까? 천만에. 파워트레인은 두 라이벌만큼 뛰어나지 않지만 믿음직했고, 벤츠의 다른 강점을 부각시켰다. CLS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복잡하지 않고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오직 한 가지 변수는 변속기. 스포트(Sport)와 컴포트(Comfort) 두 모드밖에 없지만 BMW와 아우디가 보여준 여러 기능을 잘 해냈다.
우리는 바스에 들어갔다. 갑자기 대형차 대열이 좁고 우툴두툴한 시가지를 꽉 메웠다. CLS는 그런 도로에서도 침착했다. 정밀한 스티어링과 즐겁고 직관적인 페달 반응이 흐뭇하게 짝을 이뤘다. 궁극적으로 CLS는 더할 수 없이 잘 조율됐다. 라이벌들의 끝없이 적응하는 장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가 됐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졌다. 640d와 A7은 노면이 엉망인 시가지 도로에서 무너졌다. 특히 아우디는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불편했다. 가장 편안한 세팅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마구 흔들어댔다. 세팅을 차례대로 바꿔 나가자 거친 진동이 일어났다.
|
|
|
|
640d는 그보다 낫지만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A7과 비슷한 혼란이 일어났다. 특히 길게 굽이치는 구간에서는 보디 컨트롤이 듣지 않았고, 귀에 거슬리게 삐걱거렸다. 때로는 둘이 동시에 일어났다. SE 트림은 19인치 휠(과 기본형 런플랫 타이어)을 달고 있지만 벤츠보다 더 무겁고 둔한 느낌이 들었다.
탁 트인 시골길에 들어서자 640d는 안정과 평형을 되찾았다. 하지만 A7은 계속 허우적거렸다. 세차게 몰아붙이자 AWD 시스템은 건조하고 더운 날씨에 언더스티어를 일으킬 뿐이었다. 거의 2톤에 육박하고 5m에 달하는 이들의 크기와 무게가 원인이기도 했다. 3대 라이벌 중 어느 하나도 진정한 스포츠카다운 기질을 보여주지 않았다. 균형 잡히고 발랄한 대형 크루저? 맞다. 그러나 진정한 스포츠 쿠페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아우디는 특히 중립성이 부족했고, 고속도로를 제외한 어디서나 승차감이 일차원적이었다. 쓸모 있는 해치백 트렁크와 가장 균형 잡힌 성능, 그리고 가격으로 차별화했지만 제일 먼저 꼴찌로 밀려났다. A7은 물론 사랑스럽고 보상이 큰 차가 될 수 있다고 믿지만 S-라인의 서스펜션과 역동성은 큰 결함이었다. 드라이버가 차와 일체가 되고, 응석을 받아줘야 할 최고급 중역형 모델의 경쟁에서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요건이다.
따라서 BMW와 벤츠가 남았다. 서머싯을 누비는 조용한 B급 도로에서 둘은 서로 다른 부분에서 강점을 드러냈다. 640d는 마치 항복을 받아낼 듯 아스팔트를 내리눌렀고, 스피드가 올라가면서 보디 컨트롤과 승차감이 시가지에서보다 눈에 띄게 잘 다듬어졌다. 모든 부품들이 한 덩어리로 잘 맞물렸다. 보디는 팽팽했고, 시내에서 느꼈던 거부감은 거의 사라졌다. 광폭타이어와 긴 휠베이스를 살려 미끈하게 달리며, 파격적인 페이스를 보여줬다.
|
|
|
|
그러나 스티어링이 문제였다. 우리가 곧잘 비유하는 꿀 속에 빠진 파리 꼴이었다. 일관성이 없는 비중과 반응은 어떤 모드 버턴을 눌러도 완화하거나 제거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6시리즈 그란 쿠페를 몰아본 경험이 송두리째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을 총동원해 공격하려고 줄지어 대기하는 게 아니라 TV를 통해 그 광경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차급에서는 사소한 문제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그와 반대다. 잘 조율되고 직관적이며 적극적인 스티어링은 어떤 차급의 어떤 차에도 필수적이다. 벤츠가 바로 증거를 내놨다.
640d에서 나와 CLS에 들어가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CLS350 CDI는 필요한 일을 아주 잘 해냈다. 눈부시지만 동시에 좌절감을 안겨준 6시리즈를 경험한 뒤였다. 따라서 CLS350은 발걸음이 경쾌하고 유기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3대 라이벌은 모두 좋았고, 탁월하기까지 했다. BMW는 성능과 효율을 절묘하게 섞어놓았다. 주관적이지만 주저 없이 트리오 가운데 가장 잘생기고 바람직한 차라고 할 수 있다. A7, CLS와 함께 나란히 세워놨을 때 진정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모델은 6시리즈 그란 쿠페다.
당초 벤츠는 BMW와 비교해 시대에 뒤떨어진 인상을 줬다. 하지만 CLS는 몰고 다니기에 가장 유쾌하고 믿음직한 차였다. 매끈하게 다듬은, 섬세하고 정확한 거동을 보여줬다. 그리고 CLS와 라이벌을 비교할 경우 그처럼 복잡한 기술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다음으로 가격 문제가 있다. 640d는 풍부한 기본장비와 가장 뛰어난 실내를 갖췄다. A7과 CLS에 비해 뒷좌석 공간이 조금 작기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안락성과 재미가 뒤떨어지지 않았다. 만일 BMW가 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을 내세웠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눈부신 파워트레인과 인상적인 끝마무리가 우리를 끈질기게 설득했기 때문이다. 결국 BMW의 가격정책이 CLS에 승리의 트로피를 안겼다. 다시 한 번 오리지널이 정상을 지켰다.
글: 비키 패럿(Vicky Parr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