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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장기 마작 그리고 우리 집
바둑
바둑알 ; 단추와 십전동전
바둑판 ; 통 마루판
돈벼락 ; 18급
인터넷 바둑 ; 중독
우리나라 바둑왕 ; 조남철
장기 ; 아버지의 취미, 척사대회 송아지
장기알 ; 명품 음각, 체증
장기판 ; 철선
우리집 ; 2층 곡간 정자
화투 ; 동네타짜
마작 ; 마짱족보
내가 요즈음 인터넷 바둑에 빠져있어 거의 중독 상태다.
우리 집 잡기를 살펴보면 아버지의 장기, 작은형의 화투와 마작, 그리고 나의 바둑이 일반적인 상태를 벗어난 중독 상태다. 그래서 아버지 형 나의 3인에 대한 취미를 보며 우리 집을 살펴본다.
바둑
우리 집은 판교 신도시 하산운리 102번지로 아랫 뫼루니 윗말이다. 지금은 명칭이 산운동으로 바뀌었다. 선산이 있는 청계산 운중동의 아랫마을이다.
서울서 학교 다니다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 친구들과 놀기 위하여 장기에서 바둑으로 발전하였다.
바둑판 ;
바둑판이 없어 옛날 우리 집 고옥에서 뜯어낸 통나무 마루판을 2개를 이어서 바둑판을 만드니 두껍고 튼튼하고 훌륭하였다. 친구들은 우리 집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마루판으로 바둑판을 만드는 것을 보고, 괜찮으냐. 야단맞지 않느냐고 근심을 하였다. 새로 집을 지을때 쓸려고 보관하고 있는 통 마루판을 잘라서 나는 담담하게 바둑판을 만들었다.
마루판은 6.25때 불에 탄 안채의 두칸 마루에서 뜯어낸 사각의 통판마루로 옛날 마루라 두껍고 무겁다. 6.25때 사랑채에 불이 붙고 동리에는 모두 피난을 가고 남은 사람이 별로 없어 불을 끄지 못하고 사랑채에서 안채로 번지는데 피난을 못간 어머니가 안채의 마루장을 뜯어 낸 것으로 새로 집을 크게 지으면 사용하려고 지금껏 보관하고 있던 통판 마루다.
통판 마루를 이어 부쳐 대패질하고 사인펜으로 19로의 줄을 그으니 시골에서 놀기엔 더없이 훌륭한 바둑판이 되었다.
바둑알 ;
흑 백의 바둑알은 360개 만드는 것도 간단하지는 않다. 집의 구석구석을 찾으니 옛날에 바둑돌로 사용하던 조개껍질로 만든 흰 알은 몇 십 개 나왔는데 턱도 없는 숫자다.
궁측통이라 작업복 단추를 한 깡통 모아놓은 것이 나타났다. 청록색이지만 흑색 바둑알로 쓰기엔 안성맞춤이다.
백돌은 일정시에 사용하던 10전짜리 하얀 동전이 수백 개나 나왔다. 지금 환전을 해도 돈이 제법 될 것 같은데 당시엔 못쓰는 돈으로 간주하고 흰 바둑돌로 대체되었다. 왜 이렇게 많은 돈이 집에 사장되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10전짜리 닉켈 은색 동전으로 바둑판에 흰 돌을 놓으니 크기는 되었는데 동전이 바둑판에 붙어 들어낼 때 불편한 점은 있으나 바둑 두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
돈벼락
동네에는 우리또래의 친구들이 유난히 많다. 방학 때 내려가면 친구들이 우리 집에 자주 몰려온다. 우리 집에 오면 장기바둑으로 소일하기에 십상이다.
바둑을 잘 두는 친구는 하나도 없다. 네모반듯하게 하여 하나 잡아먹는 수준이니 기초 18급이고 오목 수준이다. 줄바둑이라도 자주 두니 나름대로 실력의 차이가 나게 되어 있다.
한웅이와 학균이가 대작을 하는데 뭘 잘못했다고 발끈한 성미의 한웅이가 참지를 못하고 흰 돌로 쓰는 동전을 한 움큼 들어 학균이에게 던진다. 십전짜리 동전이 학균이를 때리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바둑판은 흐트러지고 개판이 되었다. 내가 한마디 했다.
‘돈 벼락을 맞았네. 하며 다시 두라고 했지만 한웅이 성미에 ‘안 둬’ 하고 고만둔다.
군대 중대장 할 때다. 간신히 길 갈 줄 아는 바둑으로 바둑을 두니 항상 하수가 되어, 누가 5급을 둔다하면 '아휴' 하고 3급하면 아예 나와는 상관없는 먼 세계의 사람같이 생각하였다. 7급 정도만 되도 잘 두는 바둑으로 나에게는 통한다.
전역하고 샐러리맨 생활을 시작하니 몇 십년간 바둑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둑 두는 사람은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등한시 했으니, 바둑에 대한 묘미를 알지 못하고 바둑 두는 사람을 보고 한심하다고만 생각하였다.
시간만 낭비한다고 생각한 바둑을 중장비하며 대지사무실에서 김영훈사장과 하루 종일 바둑상대를 하였다. 몇 날 며칠을 두었으나 둘 다 실력은 늘지를 않고 항상 그 타령이다.
나이가 들어 실력은 늘지 않고 더 이상의 진척이 나가지 않는다. 5급이라고 헛바람 치나 실질적으로는 7급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또닥거리며 깊은 생각 없이 빨리 두는 바둑이라 바둑의 묘미를 느낄 상태는 못 되었다.
인터넷 바둑
환갑이 지나 삼원 사무실로 와서는 쉬엄쉬엄 두다가 작년서부터 인터넷 바둑으로 붙어 시간 나는 대로 주야장창 바둑에 매달리니 인터넷바둑에 중독이 걸린 듯 하다.
늙어서 바둑도 안 는다고 하나 원체 많이 두니 약간 향상하여 3급에서 6급까지 오락가락한다. 컴퓨터로 인터넷 바둑은 유니텔 바둑에서 엠 게임으로 옮겨 다니다 지금은 넷마블에서 인수한 네오스톤에 죽자 살자 매달린다.
일생동안 2만판은 두었을 거다. 나의 바둑실력은 조시가 좋을 때는 1급도 올라가나 즉시 2급 3급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면, 6급은 최강 5급 최강 4급 강 3급 약 2급 최약으로 보면 현재실력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6급과 2급의 차이는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욕심 없이 두면 2급까지 승급하고 6급은 실력을 믿고 조급히 두면 6급에서도 패하여 8급까지 내려 간다. 아직도 수양이 덜 되었다는 증거다.
지금까지 내기 바둑은 한판도 두어보지 않아 큰돈을 놓고 둔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안정된 상태로 바둑을 둘지 가늠이 안 된다.
집에 가서도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 바둑에 매달리니 집사람의 짜증이 더해가고 영양가 없이 밤도 새면 몸도 축가고 머리도 띵하다.
친척 애경사에 가서 바둑을 밤새도록 둔다고 집사람이 나를 핀잔하면, 경희 댁은 얘 아빠는 마작을 토요일 날 퇴근하여 컴퓨터 잡으면 토요일 일요일 이틀 밤을 꼬박새우고 월요일 새벽에 그냥 출근한다며 한술 더 뜬다.
바둑 두는 것을 보고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나 유단자 근처에도 못가며 바둑중독 소리를 듣는다면 한심하게 느껴진다.
바둑을 두며 전화를 받던지 다른 일을 하면 건성으로 대답하기가 쉬어 정신집중이 안 돼 자기가 한말이 무엇인지 까먹기가 십상이다.
그래도 동네바둑이긴 하지만 고교동창 바둑대회에 가서 작년과 금년에 2등상 3등상을 타왔으면 급한 체면은 세운편이다.
아들놈은 인터넷 게임에 반 중독 됐으니 아들놈에게 인터넷 게임 스타크래프트나 배워 젊은이들 같이 이제는 게임도 한번 시작해 보려고 한다.
우리나라 바둑왕
우리나라는 해방 후에 불모지나 다름없는 바둑이었으나 일본에서 배워온 조남철 국수가 우리나라 바둑을 일으킨 바둑중흥의 수훈 갑이다. 대를 이어 김인 조훈현 이창호 9단으로 이어져 온다. 지금은 이세돌이 나타나 바둑왕의 바통을 이어가나 요즈음은 10대의 신성들이 대거로 나타나 군웅활거의 시대로 접어들고 우리나라가 세계의 바둑 최강국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세계의 바둑은 한중일 3국으로 대만을 제외한 여타국은 기초수준이다.
바둑의 발생은 중국이라고 하나 일본이 수백 년간 종주국으로 독주해왔다. 일본바둑이 조훈현시대에 슬슬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이창호시대에는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하여 이세돌시대까지 우리가 동양3국의 종주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10대의 신성들이 많이 자라고 있지만 중국의 추격이 무섭게 뒤쫓아 오고 있다.
장기
우리 아버님의 장기는 알아준다. 아버님 취미는 장기다. 젊어서나 늙어서 장기로 소일한 시간이 매우 많다. 내가 어릴 때의 일이다. 아버님이 친구와 장기를 두면 사 나흘 밤을 꼬박세우며 장기를 둔다.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에 야식까지 하며 밤새워 두고 장기가 끝나고 변소에 가실 때에는 비실비실 걷는다.
노인들이라 내기 장기도 지금으로 치면 한판에 천 원 정도도 안 된다.
아버님이 밤새워 장기를 두시는데 어머님이나 자식들 누구도 불만을 말하는 식구가 없다.
아버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든 식구들은 다 순응한다. 판돈이 작아 당신께서 내기장기로 따신 돈이 밥 한그릇 값도 안 될 거다. 친구 분은 밥도 해준다고 며느리 잘 두었다고 한다.
이런 아버님이 광주군 대항 장기대회에 낙생면에서 뽑혀 갔다 오시더니 ‘젊은 사람들이 잘둬’ 하시었다. 나는 아버님이 장기에는 1인자라 큰상을 타서 오실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우물 안 개구리인 모양이다.
그래도 아버님은 판교 척사대회에서 송아지를 타 오신 경력이 있다. 온 동네 사람이 1등상 송아지 끌고 판교에서 꾕가리 치며 동네까지 와서 동리에서 1등 축하연으로 잔치를 하였는데, 축하연으로 나간 돈이 송아지 값보다 더 들었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송아지에다 꽃으로 장식하고 온 동네 사람이 끌고 오는데 장관이었단다.
장기알 ;
우리 집 장기 알은 명품이다.
초 한 장군이 어른 주먹만 하게 크며 글자도 참 잘 썼고 음각의 글자도 조각을 정밀하게 잘하여 장기짝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장기 알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정 육면체의 장기 알이 이렇게 초 한 왕이 큰 것은 지금까지 어디를 가서라도 본적이 없다.
장졸인 차포마상이 지금 유통되고 있는 장기 알의 초한장군보다도 훨씬 크다. 박달나무로 만들었다는 장기 알이 이렇게 멋있고 크게 참 잘 만들어 지금 봐도 탐이 난다.
한 일세기 전에 만들었을 이 장기 알이 장기를 하도 많이 두어, 길이 들어서 황갈색의 윤택이 난다. 장기 알에 손때가 묻어 가무잡잡하기도 하며 윤이 난다.
이런 장기 알을 금토리 친척이 위에 오래된 체증에 고생을 하는데 오랜 손때가 묻은 장기 알을 삶아먹으면 체증이 떨어진다고 아버님한테 장기 알을 삶아 먹겠다고 빌려달란다.
친척이 병이 낫겠다고 장기 알을 빌려달라는데 야박하게 안 줄 수가 없어 빌려주었다. 얼마나 솥에서 삶아댔는지 다시 가지고 온 장기 알이 허연빛이 나며 뽀송뽀송하다. 윤기 나는 장기짝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형은 살아있어 이 장기짝으로 장이야 멍이야 하고 또 장기를 둔다.
장기판 ;
장기판은 장기알 같이 명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장기판의 모양은 사각나무 상자 밑에 다리가 있고 나무상자 안에는 철사 줄을 넣어 장기를 둘 때에 장기짝을 내려치면 철사 줄이 울리는 퉁하는 소리가 나게 만들었다.
양쪽에 장기알 담는 서랍을 두개 만들어 장기알을 보관하기 편하게 만들었다. 이런 장기판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계속 장기를 두다 서울에 와서 판자로 만든 장기판을 두니 장기 두는 소리가 둔탁하게 송판 두드리는 소리가 나니 흥취가 나지 않고 삭막한 감이 든다.
장기 알은 나무로 만들어 나오더니 플라스틱으로 찍어내 장기의 행마는 매한가지이나 장기 두는 흥취와 멋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한국콘도 처음 생겼을 때 설악콘도에서 이벤트로 장기대회를 열어 준우승으로 장식용 대형 빗을 상으로 받은 적이 있다.
우리 집
우리 집은 대지 2백평에 뒷밭 3백 평이다.
집은 안채가 'ㄱ'자 사랑채가 'ㄴ'자로 전형적인 시골집이고 바깥마당 밑에 곡간 겸 정자로 2층 양철지붕 곡간이 있었다. 이 양철지붕 2층 곡간이 일정시대에 지은 것 같다.
바닥기소는 시멘트로 하였고 1층은 커다란 곡간이 둘이고 안 계단으로 올라가 2층이 있는데 2층은 아버님 정자용이라 커다란 마루방 하나다.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2층은 여름에 양철지붕이라 무척 더웠다. 양철지붕으로 한 것은 일식집의 영향인 것 같다. 당시에 신식으로 이렇게 2층을 지은 집은 낙생 인근에 우리 집밖에 없다.
집 지을 때 지경을 다라서 기소를 할 시절에 시멘트로 기소를 했다는 것은 여염집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 2층에 장기판이 있고 아버님 친구들의 마실 장소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고는 하나 아버지는 순 농사꾼이 못되고 날라리 농부다.
놀기 좋아하는 아버지는 돌마장에 사물놀이패가 왔다고 비가 오는데 순내개울을 넘어 돌마장으로 구경을 가신분이다. 돌마가 지금 분당이고 순내개울이 탄천, 낙생이 지금의 판교다.
6 .25때 안채 사랑채 모두 불타 없어지고 피란 갔다 와서 사랑채 자리에 움막을 짓고 임시거처로 삼았다. 내 초등학교 때 움막지은 사랑채자리에 아랫말 문목수가 사랑채를 먼저 짓고 안채는 여유가 있을 때 멋있게 짓자고 한 것이 지어보지도 못하고 사랑채 마저도 2천 년도에 판교신도시 개발에 헐리고 말았다.
화투
화투는 우리 작은형이 동네 타짜다. 작은형은 화투나 마짱 트럼프 등 잡기에 능하고, 운동은 권투 축구 배구 등이 선수급이고 주먹으로도 알아준다. 내가 군대에서 전역하고 집에 오니 화투도 기초는 알아야 한다고 육백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엔 고 스톱은 없었고 육백이 한참 인기를 끌 때다. 섰다나 짓고땡에 민화투 밖에 모르던 시절에 육백이라는 신종이 등장한 것이다.
삼형제중에 큰형이나 나나 화투는 만져보지 못하는데 작은형은 아예 화투놀이로 지샌다.
그냥 취미나 오락을 넘어 동네 노름꾼으로 변하고 있었다.
집안의 쌀독이나 뒤주에 쌀이 줄었다 하면 영락없는 작은형 짓이다. 노름은 곧잘 해도 잃기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장가를 가서도 화투를 놓지 않으니 집안 꼴이 잘 될 리가 없다.
작은형은 온실을 한다 개간을 한다 과일 중간도매를 한다 트럭으로 모래장사를 한다하면서 재산을 축내며 주위사람에게 피해만 주고 득 되는 일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마작
마작도 작은형의 주특기다.
큰 매형 먼애 매형도 마작을 할줄 알아 세 명이나 네 명이 할 수 있는 마작에 우리 집에서만도 팀이 짜인다.
전역하고 집에서 쉴 때 작은형이 마작의 일칭 족보를 써주어 나도 족보를 외며 마작을 배웠다. 족하인 경희 봉규도 덩달아 배웠다. 작은형이 주축이 되어 동네 청년들도 마작을 배워 명절 때가 되면 마작 팀을 쫓아 놀러 다녔다.
마작을 하다보면 고 스톱은 재미가 없어 마짱판에 붙게 된다.
마작은 족보가 복잡하여 오래 하다보면 관록과 머리 좋은 친구가 따게 되어있다. 화투는 재미로 많이 하는데 마작을 하는 사람은 거의 돈을 걸고 한다. 쉬지 않고 하면 재산이 축나게 되어있다.
작은형은 놀면서 마작이나 하고 먹고 살겠단다. 그런 상태이니 형수가 좋아할 리가 없다. 마짱하러 오는 친구들한테 아주머니가 싫은 소리를 해도 친구들 모두 마이동풍이다. 아주머니도 만성이 되서 한편으로 제켜 논다. 그러던 형 내외도 지금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자식들은 서로 의좋게 잘들 살고 있다.
작은형의 자녀들은 의외로 화투나 마작 등 잡기에 하나도 물들어 있지 않다.
중국에는 마작이 성행하나 우리나라는 마작이 아직까지도 많이 보급 되어있지 않다.
취미생활도 좋지만 도가 넘으면 과하여 해가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