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원 작가의 책가방
우주 고아의 외로움
『우주 비행』(홍명진, 사계절, 2012) ,『류명성 통일빵집』(박경희, 뜨인돌, 2013)
그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봄방학 내내 집에서 종일 뒹굴던 동생들은 아침 밥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축구공을 끌어안고 학교 운동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마도 나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책 좀 보라는 엄마 잔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면서 빈둥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가한 아침이 지나갈 무렵 밖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민방위 훈련을 하는 날은 분명 아니었다.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북한 전투기가 서울 상공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곧장 동생들을 찾으러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억지로 끌려 나와 투덜거리는 동생들을 앞세우고 걸으면서 나는 북한 전투기가 머리 위로 날아들까 봐 연신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공군 비행장은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을 거라고. 언젠가 들은 그 말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툭하면 간첩단 사건이 터지고, ‘북괴의 무력 도발’을 수시로 경계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 전투기는 전투를 치르려고 남한 하늘로 돌진한 게 아니었다. 그날 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북한 장교가 전투기를 몰고 귀순한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사람들은 전투기값에 관심을 기울이며 돈 되는 걸 갖고 귀순한 사람을 장하게 여겼다.
그 봄날 떠들썩하던 귀순 사건 이후로 귀순, 탈북은 내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초소 두 곳의 문을 직접 두드렸다는 북한 병사의 조용한 귀순은 연예인의 열애 기사처럼 잡담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라오스에서 탈북 청소년들이 북송되었다는 기사를 뒤늦게 찬찬히 읽고는 가슴이 서늘했다. 북송된 아이들의 안전은 보장되는 걸까. 아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대사관은 무얼 한 걸까. 그 아이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곳까지 간 걸까.
우리는 장맛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야밤에 두만강을 건넜다. 누나를 생각하면 지옥처럼 캄캄한 물속에서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던 무서운 손힘부터 떠오른다. 강을 건널 때 어머니는 죽어도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가 먼저 강물에 들어섰고, 어머니와 손을 잡은 누나가 내 손을 잡고 강물로 들어섰다. 강의 중간쯤에서 나는 물살에 떠밀려 곤두박질을 쳤다. 그때 어머니의 손을 놓친 누나는 허우적대면서도 내 손만은 놓지 않았다.
- 『우주 비행』(사계절, 2012) 21쪽
『우주 비행』에서 주인공 승규가 넘은 두만강은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건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떤 이는 거친 물살에 휩쓸려 영영 강가에 닿지 못하고, 어떤 이는 국경수비대의 총에 맞아 꼭 부여잡고 있던 가족의 손을 놓치기도 한다. 박경희의 『류명성 통일빵집』 중 단편「자그사니」의 주인공 강희는 중국 땅을 코앞에 두고 엄마를 잃었다. 총을 맞고 자갈밭에 쓰러진 엄마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강희는 그곳에 엄마를 묻고 혼자 남쪽으로 내려왔다. 승규와 강희가 목숨을 걸고 온 길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얼마나 멀었는지 나는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니 짐작하려고는 했을까.
『우주 비행』과 단편집『류명성 통일빵집』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탈북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프다. 시퍼런 두만강을 목숨 걸고 넘어서 행여 잡혀갈까 봐 두려움에 떨며 중국 땅을 떠돌다가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국경을 넘은 그 험난한 여정이 아픈 게 아니다. 그래도 배는 곯지 않으려니 새 희망을 기대했던 낯선 땅에서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나도 아프다. 전투기를 끌고 와 개선장군처럼 카메라를 향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던, 전교생을 뙤약볕에 세워 놓고 북한의 우울한 실상을 얘기했던 그 옛날 귀순자들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박힌 탓일까. 그래도 미련 없이 떠나온 땅에서보다 잘살겠거니 했던 이들은 결코 잘살고 있지 않았다.
하기야 이 땅이 어디 호락호락한 곳인가. 있고 없고를 따져 명확하게 선을 그어 놓으며,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기회만 되면 편을 가르고 패거리를 짓는 야박한 이 땅에서 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통일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판국에 탈북자들 가슴에 붙은 ‘동포’, ‘겨레’ 같은 낡은 명찰은 이제 어디서도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선족처럼 그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보는 시선은 더 냉랭하다.
“난 자기 나라 배신하고 온 탈북자들 보면 괜히 싫더라. 한번 배신한 자는 또다시 배신하기 마련이니까.”
아이들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말했다.
‘내래 조국을 배신한 게 아니라, 그저 배가 고팠을 뿐이라우.’
목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삼켰다. 배가 고파 탈북했다는 말을, 배고파 보지 않은 아이들은 절대 이해 못 할 것이다.
- 『류명성 통일빵집』 중「자그사니」(뜨인돌, 2013) 126쪽
남한 땅에서「자그사니」의 주인공 강희를 보듬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학교 선생님은 겉도는 강희가 자퇴하는 걸 은근히 반기는 눈치고,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구하는 가게 주인들은 강희 말투만 듣고도 고개를 내젓는다. 강희는 뿌리가 뽑힌 채 부유하는 자신의 처지가 수족관에 적응하지 못하는 물고기 자그사니와 같다고 생각한다. 두만강에만 산다는 자그사니는 결국 흰 배를 내놓고 물 위로 떠오른다. 강희는 자그사니처럼 쉽게 죽지 않을 거라며 주먹을 불끈 쥐지만, 그녀가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서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배고파 보지 않은 이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배고픈 것을 수치라고 강요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주 비행』에서 춤꾼이 되고 싶은 탈북 청소년 민우는 자신을 ‘우주의 고아’라고 말한다. 우주의 고아는 유목민처럼 떠돌며 사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주의 고아는 조국을 잃은 민우만이 아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 중 대다수가 자신을 ‘우주의 고아’라고 느끼지 않을까. 그러니까 자신이 태어난 땅을 어쩔 수 없이 떠나 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채 언제까지라도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들의 외로움은, 이 땅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도무지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이들의 외로움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남들이 그럴 것이라는 게 아니고 내가 그랬다. 두 권의 책에 그려져 있는 탈북 청소년의 모습을 더듬어 가면서 나는 자꾸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낯선 도시로 전학하고 적응하지 못해 울며 지냈던 십 대와 높은 빌딩 숲에서 수시로 길을 잃던 어리숭한 이십 대. 그리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나의 외로움은 그들의 외로움과 다르지 않다는 걸.
라오스에서 북송된 청소년들을 보면서 이 두 권의 책을 골라 읽고 나는 탈북 청소년 문제를 통일 문제와 그럴듯하게 연관 지어 서평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어 독일은 통일하기 전 이런 문제를 어떻게 했는지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서평을 쓰다 보니 나는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통일이니 뭐니 거창한 걸 잠시도 떠올리질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통일을 운운한다면 그건 허세일 뿐이다. 나는 그저 이 땅에 사는 모든 우주의 고아들이 씩씩하게 우주를 비행해 나가길 바란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청소년들이 평양 놀이공원과 능라 테마파크를 견학하는 모습을 북한 언론에서 촬영했다는 기사가 떴다. 아마도 그 아이들은 오래전 이 땅에 귀순한 이들이 반공 이념을 선전해야 했듯이, 북쪽 땅을 훑고 다녀야 할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세월이 흘러도 남과 북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빼닮아 있다. ‘우주의 고아’들의 외로움 따위는 알 턱이 없는 정치인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을 보면 우리는 한민족임이 틀림없다.
김해원
처음부터 지금까지 목표는 제대로 잘 쓰는 건데, 여전히 아득하다. 지은 책으로는 『고래벽화』, 『열일곱 살의 털』, 『오월의 달리기』 등이 있다.
첫댓글 좋은 글에 감동했습니다! 역시 울림 있는 글을 쓰시네요.
두권의 책, 모두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