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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詩는 인간의 성숙에, 진료현장의 성숙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심지어 그는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묻는다. 진료현장은 병증과의 야전만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돌아보기가 괴로운 실수도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도 있다. 문득 10년도 훨씬 더 지난 실수들이 떠오른다. 그나마 극단적인 실수는 없었던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꽃동네 방바닥을 그을리다 충북 음성군에는 꽃동네가 있다. 거주지가 없는 사람들을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돌보고 있다. 학생이었을 때는 한의대 여학생회 이름으로 이곳으로 의료봉사활동을 갔었다. 의료봉사활동이 기본이지만 그 외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목욕시키는 일을 했다. 의료봉사활동에는 교수님이나 수련의 선배님들이 도와주셨다. 하루는 나를 보조하던 후배가 불이 꺼지지 않은 뜸을 개부 밧드에 내려놓아 밧드에 있던 알코올 스펀지에 불이 붙었다. 수십명이 생활하는 큰 방 중앙에서 욕실까지는 너무 멀었고, 사방은 비닐장판이라 불이 옮겨 붙으면 수족이 불편한 노인들과 함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날 일이 생길 터였다. 갑작스런 일에 당황한 나는 다른 알코올 스펀지로 불이 난 스펀지를 일단 찍어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수련의였던 선배님이 부드럽고 빠른 손으로 밧드의 뚜껑을 닫았다. 잠시 후 산소가 떨어지면서 불이 절로 꺼졌다. 비닐장판인 방바닥은 밧드를 놓아둔 부분만 그새 꺼멓게 그을려졌다.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선배님의 얼굴을 봤는데, 백제의 미소 그 자체였다. 차분히 대처하신 그분은 지금 모병원의 병원장님이 되셨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어요! 또 불이 났다. 이번에는 보건소에서 근무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간호사 1명과 나는 퇴근시간까지 쉴 틈이 없이 베드 4개를 오가며 종일 바쁘게 일했다. 하루는 고된 농장일로 양쪽 어깨가 굳어져 아픈 50대 아주머니에게 肩井혈에 침을 놓고 뜸을 끼웠다. 다음 환자 침을 놓는 동안 얌전히 앉아계실 줄 알았는데, 이 분이 고개가 불편했는지 갑자기 뒤로 목을 제꼈다. 그 순간 파마머리 끝에 뜸이 닿아 불이 났다. 수초 만에 뒷머리 1/3엔 불이 붙었다. 물이 없던 터라 나는 맨손으로 불을 쳐냈는데, 다행히 불이 꺼졌다. 하지만 불을 쳐낸답시고 아주머니의 뒷머리를 두 세번 사정없이 친 꼴이 되어 민망하고 송구스럽기 짝이 없었다. 주의의무를 소홀했던 책임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는 오히려 소란을 일으킨데 대해 미안해 하셨다. 그 후 뒷머리를 단정히 깎고 와서 2주간 치료를 더 받았고, 치료를 모두 마친 뒤에는 내게 금일봉을 주셨다. 성의에 대한 보답이니까 꼭 받아달라고 하면서. 아마도 머리카락 태우고 돈봉투 받은 후안무치한 사람은 나뿐이 아닐까 싶다. 百會에 침을 꽂고 온 사람 한번은 환자가 침을 꽂은 채로 왔다. 물론 이틀 전 내가 발침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 결과였다. ‘원장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꽂고 지냈어요’라고 했다. ‘아휴, 죄송합니다. 전화를 하시지 그랬어요?’라고 했더니, 아무 부작용이 없어서 그냥 꽂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침을 자기 손으로 빼라고 할까봐 그게 더 겁이 나서 일부러 전화를 않고, 이틀간 이 상태로 지냈다고 했다. ‘머리는 좀 덜 아프셨겠네요’하면서 발침을 했지만, 백회혈이니 망정이지 다른 경혈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소름이 쫙 끼쳤다. 當歸鬚散의 부작용 시의원의 부인이 교통사고로 횡격막이 찢어지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여기저기 타박상도 입었다. 그때 당귀수산을 5첩 처방했고, 손바닥크기보다 넓은 근육의 타박상은 몇 군데 사혈을 했다. 이후 회복속도는 무척 빨라 나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오! 대단한 처방인데!!’하면서 감탄해마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이번에는 계단에서 추락해 타박상이 심해서 옆구리가 절리고 아픈 할머니를 진료하게 되었다.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당귀수산 몇 첩을 싸서 주고는 집에 가서 소주 1/2병과 물을 섞어서 달여 마시라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간 할머니는 무소식이었고, 나는 ‘잘 낫고 있겠지’라며 맘대로 생각했다. 그런데 5일 후 나타난 할머니는 한의원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불평을 쏟았다. ‘그 약 먹고 나서 가슴이 벌렁거려서 잠도 못자고 죽을 뻔 했어. 통증도 얼마나 심하던지…’10분간 원성을 듣고 나서 ‘지금은 어떠세요?’라고 물었더니 ‘병원 가서 진통제 먹고 나아졌다’고 했다. ‘그럼 한의원엔 왜 오셨어요?’ 했더니 ‘진통제는 그 때 뿐이야, 침을 맞아야 낫지. 그리고 요샌 좀 덜 결리네. 그런데 왜 그렇게 센(?)약을 처방한 거야?’라며 또 원망했다. 그래서 미소를 머금고 치료실로 모시고가서 침을 놨다. 환자를 고려하지 않고 증상만 보고 처방했다가 큰 코 다친 사건이었다. 과용량의 인삼을 먹고 뒷골이 당겨 보통의 한의사들은 내게 인삼이 잘 맞는 체질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숙지황이 들어간 처방은 복용하면 처음엔 괜찮았다가 며칠 지나면서부터는 배부른 느낌, 소화가 덜된 듯한 불쾌감 같은 게 느껴진다. 억지로 며칠 더 먹으면 담궐두통의 증상이 발생한다. 그런데 인삼은 몇날 며칠이 지나도 이런 증상이 없고, 몸이 가뿐하다. 피로감이 덜해진다. 어느 날 용량과 효과에 대한 호기심이 동하여 인삼을 상용량의 2배, 3배, 4배까지 올려서 복용해 보았다. 2배 증량도 차이가 없었고, 3배 증량까지도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4배로 올리자 뒷머리에다 맷돌과 자석을 붙여놓은 것 같은 자각증상이 생기더니 머리가 아프고 약간 어지러웠다. 혹시나 싶어서 혈압을 재보니까 고혈압 직전까지 올라가 있었다. 평소 110~70 mmHg 내외였는데 인삼을 고농도로 증량해서 복용했다가 느닷없이 부작용을 경험한 것이었다. 간혹 어떤 환자들에게는 상용량의 1/2이 맞는 것 같고, 어떤 환자들은 좀 더 과용량을 투여해야 효과적이었는데, 인삼 사건 이후로는 처방을 선택할 때 체질이나 병증만 고려해야 되는 게 아니라 용량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새삼 느꼈다. 君子 終日乾乾 예전에 실수했던 일들이 2008년 지금 발생한다면, 아마도 환자나 보호자와 겪을 갈등은 훨씬 심하지 않을까 싶다. 의료환경이 변했고, 환자도 변했다. 한의사도 변했을 것이고, 또 변해야 한다.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요구하는 진료수준, 관리수준, 갈등의 해소방안이 옛날과 다르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비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진료현장은 흔들리면서 피는 꽃과 같이 성숙해간다. 또 젖으면서 피는 과정을 통해 매번 적절한 교훈을 얻는다. 이제 내 귀에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胃氣를 손상시키지 마라’는 금언이 들린다. 우리는 終日乾乾할 의무를 가진 직업인이다. <-------->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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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국의 어느 신참 한의사 의 임상 기록 일지를 잠깐 올려보았습니다!
좋은 교훈이 되겠네요.